야설(野說) 스타크래프트 '메딕 미스 리의 라이언 일병 구출 작전' 1부
********** 코플루루 태양력 6월 7일 13시 20분
"여긴 왜 이렇게 사람이 없어?"
와랑와랑 거리는 톤 높은 사내의 목소리가 3 대대 메딕 행정실에 울려 퍼졌다.
신형 CMC /500 강화 전투복의 어깨에 붙은 계급으로 그가 대위임을 알 수 있었다.
전투복의 왼 쪽 옆구리 부분에 날카로운 것에 의해 찢긴 자욱이 두 가닥 길게 나
있었고 흉하게 찢겨 벌어진 주변에는 점점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강화복이 찢길
때 상처를 입은 듯 했다.
신형 전투복의 장갑이 뚫릴 정도로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은 프로토스 족 질럿의
프라즈마 검이나 저그 족 변형 저글링의 아드레날린 강화 초 압축 발톱밖에 없다.
어느 쪽에 당한 것이건 메딕 행정실에 나타난 대위는 '코플루루 섹터'의 '차우 사라'
에서 연 칠일 째 계속되는 혼미하면서도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갓 빠져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깎지 않은 수염 탓에 상당히 지저분해 보이는 얼굴이며, 깊이를 알 수 없는 흐릿한
눈 빛이 가늘게 뜬 실 눈에서 배어 나오고 있어 섬뜩한 느낌을 주는 사람 이었다.
신체는 상당히 건장해서 전투화 굽의 높이를 뺀다 해도 180 센티는 확실히 넘는 키
였다.
행정실 안의 메딕 둘이 놀란 눈으로 요란한 방문객을 쳐다 보았다. 테란 '차우 사라'
소속 5 사단, 200 연대, 3 대대 메딕 중대, 행정 소대장 이 영혜 소위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거수 경례를 했다.
"소대장 이 영혜 입니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수염이 더부룩한 대위는 품에서 전통 용지를 한 장 꺼내 영혜의 앞에 툭 내 던지며
여전히 왕왕거리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나 201연대 4 중대 '밀러'야. 씨발! 한참 전투 중인데 웃기는 쪽지 한 장 받고
후방으로 돌아 왔어. 대대 본부에 메딕이라곤 너희 단 둘이냐?"
"예. 그건 아니고 지금 가용 병력은 전부 교전 지역에 나가 있고, 비 가용 병력은
캡슐에서 휴식 중이라……."
"그래 알았어. 하여간 가용이건 비 가용이건 간에 그 중에서 장교 하나 끼어서
세 명만 뽑아 줘."
이 영혜는 대위가 던진 전통 용지를 보았다. 용지 전체를 덮은 붉은 색의 도장을
보자마자 그것은 군 사령부의 1급 문건임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내가 처리 할 문제가 아니야.)
"저. 지금 지원 대장님은 200연대 교전 지역에 시찰 나가 있고, 중대장님은 보충
병력 인수 문제로 '타르소니아'로 간지라 현재 1급 문건을 책임지고 인수 할 간부가
없습니다. 22 시에 지원 대장님이 돌아 오실 때까지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밀러 대위의 눈꼬리가 가늘어 졌다.
"이런 씨팔! 하여간 후방에 있는 것들하고는……. 야! 소위! 전통 못 봤어. 시급을
다투는 일이니 즉각 협조 할 것! 맨 앞에 써 있잖아. 너희 지휘관이 없으면 내가
직접 뽑아 갈테니 현재 대대에 남아 있는 메딕 명부 가져 와 봐."
영헤는 순간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나 싶어 밀러 대위를 노려 보았다. 그러나 대위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군 사령부에서 직접 내려 온 명령서이니 연대에서조차 할
말이 없을텐데 하물며 대대 급에서야 뭐라 하겠는가?
"제니. 인사철 가져 와 봐."
제니 중사도 방문객의 행동이 못마땅한 듯 뾰루퉁 한 표정으로 서류철을 뒤적거릴 때
성질 깨나 급한 밀러 대위의 와랑거리는 목소리가 또 터졌다.
"야! 야! 인사철 볼 필요두 없구만. 너 제니라는 애 중사니까 전투 뛴 적 있지? "
"옙. 대위님. 타클라칸 공방전에 참가 했었습니다."
밀러 대위가 휘파람을 한 번 휙 불었다.
"호오라! 거기서 살아 남았어? 그럼 좀 하는 편이구만. 소위는 어때? 작전 뛴 적
있어?"
순간 영혜는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제니 플라잉' 중사가 타클라칸 전투에 참가
해서 혁혁한 전과를 세운 것은 그녀가 하사관 학교를 졸업 한 후 바로 첫 전투에서
였다. 제니는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 해병대원을 무려 7명이나 치료해서 타클라칸
전투가 승리로 끝났을 때 무공 훈장까지 받았다. 그리고 계속 되는 여러 전투에서
활약을 하다 두 달 전부터 포상 휴가를 겸해 후방 사령부에 시간제 파견을 내려 온 것
이었다. 그에 비해 영혜는 메딕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 한 후 8 개월 동안
한번도 전투에 참가해 본 적 없이 그저 대대 행정실에서 근무 했을 뿐이었다. 동기의
다른 장교들은 다 한 번 이상 전투에 나갔는데 유독 그녀에게만 참군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있는 전군 최고 지휘관 회의에 참석하라는 명령은 꼭
내려 왔다. 거기서 그녀가 하는 일은 회의가 끝난 후 있는 장군들의 만찬을 준비 하는
일 이었다. 회식을 마치면 취한 장군들이 슬쩍 그녀를 에스코트 해 주겠다는 등의
수작을 거는 것이 좀 느끼했지만 동기 중 두 명이 벌써 전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후방에서 근무하는 자신이 꽤나 행운을 타고 난 것으로 생각 되었다.
어쨌건 밀러 대위의 질문에 약간 챙피해진 영혜는 작은 소리로 답했다.
"전 아직 작전에 직접 참가 한 적은 없습니다."
밀러 대위는 가뜩이나 가는 눈을 더 가늘게 하고 영혜를 한참 쳐다 보았다. 그 시선
이 너무 흐리멍텅한 기분 나쁜 것이어서 영혜는 슬쩍 그 눈길을 피했다.
"좋아. 이번에 전투에 참가 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소위도 같이 가도록 해. 나머지
한명은 소위가 뽑도록 해. 전투 경험 많은 애가 가는게 좋을거야. 죽을지 살지 모르는
일이니…… 2시간 뒤에 올 테니 수속 끝내 놓고 너희 대대장 실에서 보자."
영혜는 밀러 대위의 말에 조금 놀랐다. 자신의 전투 참가가 이렇게 급히 준비없이
이루어지리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종군을 한 이상 언젠가 전투에 실전 투입
될 것은 기정 사실이고, 그것이 겁나는 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가슴이 묘하게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약간 멍청하게 밀러 대위의 뒷 모습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군대에서는 소위처럼 치장한 여자는 필요 없어. 화장이나 장신구 따윈
다 치우고 오라구. 지금처럼 하고 나타나면 애로 사항이 꽤 많을거야. 내 애들은 꽤
거칠어서 계급 따윈 별로 신경 안 쓰거든. 괜히 따 먹히고 징징 거리지 말고, 맘
단단히 먹고 오라구."
문을 열고 나가던 밀러 대위가 툭 내뱉듯 한 마디 던졌다. 영혜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 올랐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밀러 대위가 함부로 던지는 말이 너무 불손해서
상당히 화가 치밀었다.
"소대장님. 참 싸가지 없는 대위죠?"
제니 중사가 슬쩍 영혜의 옆에 다가 왔다. 영혜는 화가 나서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고
고개를 돌렸다.
"근데 저 밀러 대위가 꽤 유명한 인물이에요. 공화국의 영웅 '짐 레이너'와 사관학교
동기인데 성격이 워낙 직선적이라 윗 사람 눈에 빗겨나서 그렇지, 사관학교 시절엔
짐 보다 성적이 훨씬 좋았대요. 거기다 저 사람이 행한 작전 중에는 불가능하다고
한 것을 해 치운 것이 꽤 많아요. 데리고 있는 병사들도 역전의 용사가 많고요.
대단한 장교임에 틀림 없어요."
제니의 목소리에는 밀러 대위에 대한 존경심이 은근히 배어 있었다. 밀러 대위가 어떤
사람 인지 조금 알게 됐다고는 해도 영혜는 그에게 받은 모욕이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끓어 오르는 분노를 속으로 삭이면서 그녀는 꼭 앙갚음을 해 주리라고 단단히
결심 했다.
"근데 제니는 전투에 나가는 것이 즐거워? 갑자기 활발해지네."
서류철을 급히 정리하는 제니 중사는 조그맣게 콧노래를 흘리고 있었다.
"헤헤…….. 뭐 그런 편이죠. 소위님도 전투에 나가면 신나는 경험을 많이 겪을 거
예요. 이런 행정실에서 따분하게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낫죠."
"그래도 전투에 나가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잖아? 겁 안나?"
"호홋! 겁이야 나죠. 근데 실제 전투에서 보면요.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하지 않은
이상 메딕이 먼저 공격 받는 경우는 없어요. 프로토스 족이나 저그 족이나 모두
우리가 비 전투 병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 봐요. 그래서 해병대원보다 훨씬 위험이
적고요. 그리고 또 하나 엄청나게 즐거운 거는…….. 호호호호"
제니는 말을 다 하지 않고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영혜는 제니의 웃음이 왜 나오는지
진짜로 궁금했다.
"왜 뭔데? 뭐 때문에 그래? 뭐가 그렇게 좋아서 목숨 건 전투에 나가는게 그리
좋아?"
"호홋! 소대장님처럼 어린 여자는 몰라도 되는 거예요."
제니 중사의 말에 영혜는 약간 어리둥절하면서도 순간 무시당했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 해도 자신은 정규 사관 학교를 나온 간호 장교 아닌가? 제니는
비록 그녀보다 4 살 많은 24 세지만 나이로 군대를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영혜는 정색을 하고 명령조의 어투로 제니에게 말했다.
"제니 중사. 상관을 놀리면 혼 날 줄 알아. 또 하나 즐거운 게 뭔지 얘기 해 봐."
영혜의 엄포에도 제니는 빙글빙글 웃고만 있더니 영혜의 눈쌀이 찌푸려 지는 것을
보고서야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전투에 나가면 해병대들하고 같이 생활하잖아요. 일선 해병대원들은 이 본부에
있는 애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병사들이에요."
영혜는 제니의 말이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제니는 영혜가 어리둥절해 하는 것이
귀엽다는 듯 쳐다 보며 말을 이었다.
"해병대원들이 죽지만 않으면 우리가 치료해 줄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살아
난 해병들이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잘 해주는데요. 황홀한 밤이 끝없이 계속
되죠. 호호호호……."
"…………?……………"
"어휴. 이런 순진해가지고…… 아! 이거 말하는 거예요. 이거! "
계속 영혜가 말 뜻을 몰라 헤메자 제니 중사는 갑자리 책상 위의 지휘봉을 잡더니
그녀의 다리 사이에 끼고 위 아래로 흔들어 댔다. 그제야 말 뜻을 알아 챈 영혜의
얼굴이 붉어졌다. 영혜를 보고 제니는 놀리듯이 계속 입을 열었다.
"해병대 애들은 항상 목숨이 왔다갔다 하니까 얼마나 긴장해 있는지 알아요? 그래서
여자를 안았다하면 거의 끝장을 내겠다고 덤벼 들어요. 그 큰 물건이 죽지도 않고,
밤새 힘을 쓰는데………. 호호호 그거 겪어 보면 요기 사령부의 좀팽이들은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죠. 타클라칸 7고지 전투 D-1 데이에 해병대 애들이 절 어떻게
해 줬는지 알아요? 3 명과 날 새는 줄도 모르고 즐기다가 아침 점호에 둘이나 못
나갔어요. 휴우. 걔들 모두 그 날 전투에서 사망했지만 나도 실컷 즐겼고, 걔들도
죽기 전에 여한 없이 여자를 안아 봤으니 한도 없을거예요."
듣던 영혜는 제니의 말이 상당히 못마땅했다. 간호병을 마치 전쟁터에서 욕정을 해소
할 위안부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니 중사. 중사는 마치 간호병들이 전쟁터에서 해야하는 임무가 고작 남자 병사
들의 욕정을 풀어주는 위안부의 역할로 알고 있는 것 같아."
제니는 영혜의 표정이 굳어지자 찔끔해서 하던 얘기를 멈추었다. 슬쩍 책상을 정리
하는 척 이것 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나머지 한 명은 누구로 할까? 제니 누가 좋겠어? 전투에 대해선 중사가 더 잘
알잖아?"
"뭐 실비아면 어떨까요? 전투 경험은 한 번 밖에 없지만 하사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손이 무지하게 빠르니까 아마 잘 할 겁니다."
좀 어색해 진 분위기 탓인지 제니 중사는 사무적으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영혜는
제니의 판단을 거슬릴 이유가 없는지라 동의했다.
"그래. 실비아 하사가 좋겠다. 제니가 지금 가서 실비아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준비
시켜 줘. 난 대대장님께 보고 하러 갈 테니. 준비 다하면 출발 십 분 전에 대대장님
방에서 모이자."
"옙!"
제니 중사는 영혜의 명령을 수행하러 문을 나섰다. 그러나 나가기 전에 잠깐 멈추고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영혜에게 말을 던졌다.
"소대장님. 아직 시간이 많이 있으니 사단 정보처에 들르시죠."
"갑자기 뭔 소리야? 그건…."
제니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정보처 유 재인 대위하고 소대장님하고는 소문난 사이잖아요. 그러니 전투 나가기
전에 작별인사라도 해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제니 할 일이나 해!"
제니가 계속 영혜를 부끄럽게 하는 말을 해서 영혜는 진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니 중사의 표정은 농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은 저 밀러 대위가 참가하는 작전은 매번 지옥같은 작전들이었어요. 그러니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지요. 그래서 떠나기 전에 혹시 정리할 것이 있으면…."
제니가 나간 뒤 영혜는 제니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꼭 제니의 말을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첫 전투를 나가기 전에 재인을 만나 작별 인사를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녀는 '텔콤'을 꺼내 사단 정보처를 호출했다.
********** 코플루루 태양력 6월 7일 14시 00분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참전이라니!!!"
한 달음에 영혜의 숙소로 달려 온 유 재인 대위는 가쁜 숨을 헐덕이며 큰 소리부터
쳤다. 강화복에 여러 장비를 부착하던 영혜는 재인이 도에 넘게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아 이상했다.
"안돼! 내가 사단장님한테 말할게. 다른 장교로 대체하도록 해."
숨돌릴 틈도 없는 재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밀러 대위라면 내가 잘 알고 있어. 그 자식이 하는 작전은 항상 절 반 이상이
죽어 돌아오는 그런 것 뿐이야. 거기에 영혜를 보낼 순 없어!"
묵묵히 듣고 있던 영혜는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유 대위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난 지금 작전 명령을 하달 받았고, 그에 따라
출동 하는 겁니다. 작전이 위험하고 어렵다고 남에게 떠 넘길만큼 그렇게 연약한
군인이 아니예요. 잘 갔다 오라 격려를 해 줘야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재인은 영혜가 또박또박 존대말을 쓰며 대꾸하자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나 곧,
"영혜야 너가 몰라서 그래. 지금 일선은 얼마나 험한 상황인지 몰라. 더구나
밀러 대위의 부대는 항상 적 후방으로 들어 가는 특공 부대 일 뿐 아니라, 이번
작전이 군 사령부에서 직접 내려 온 작전이라면 위험하기가 장난이 아니야. 전부
몰살 당할 수도 있어."
"........"
흥분한 재인의 말에 대꾸 하지 않고 영혜는 묵묵히 힐링 팩을 언제라도 꺼내기 좋게
강화복에 순서대로 집어 넣었다. 영혜가 대꾸를 하지 않자 재인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너! 정말 왜 이러니? 안 가도 된다니까 그러네. 내가 알아서 조정할 께. 너 잘못
되면 내가 어떻게 견디니? 여태까지 얼마나 내가 너를 지키느라 애 썼는데......."
순간 영혜는 재인의 말에서 이상한 것을 느꼈다. 곰곰히 그 뜻을 생각해 보자 알만한
일이었으므로 그녀는 놀라는 한편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양 손을 허리에 치켜
올리고 재인에게 따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재인씨가 애 썼다니? 그럼 내가 한 번도 전투에 안 나간 것이
재인씨가 뒤에서 힘을 쓰고 있어서 그랬다는 거야?"
영혜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모를 재인은 아니었지만, 그녀를 전쟁터에 내 보낼 수
없다는 결심을 굳게 하고 있는지라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설득하기에만 애썼다.
"그래! 내가 여태까지 영혜가 작전에 나가는 것을 못나가게 막았어. 그래서 지금까지
무사히 영혜가 살아 있는거야. 내가 힘 쓰지 않았더라면 저 번 타클라칸 2 차 공방전
에서 죽어 돌아 온 에이린 소위 자리에 영혜가 있었을거야. 만약 영혜에게 그런
끔찍한 일이 생기면 난 살아갈 의욕을 잃고 말거야.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니?
내가 영혜가 치룰 모든 전투에 대신 나갈 테니까 넌 그냥 사령부에 남아 있어."
너무 화가 치솟은 영혜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재인의 말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투입했던 병력의 9할이 죽어 나간 그 치열했던 타클라칸 2차 공방전에서 죽은 에이린
소위가 사실은 영혜 대신 출정한 것이었다니..... 영혜는 머리 속이 아득해졌다.
"재인씨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
재인이 갑자기 영혜의 손에서 힐링 팩을 뺏아 들었다. 그리고는 영혜를 덥석 껴안았다.
"영혜야. 알았지? 내가 지금 바로 다른 장교로 대체할 테니까 넌 그냥 다시 대대
행정실로 가.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데..... 널 사지로 보낼 수 없어."
재인의 품에 안겨 있는 영혜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전혀 해서는 안 될 일을
해 온 재인을 욕할 수는 없었다. 재인과 교제한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재인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재인을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잘생기고, 상냥하며, 처음 교제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변함없이 뒤에서 조용히
그녀를 지켜 봐주는 그런 사내였다. 그녀를 너무 사랑하니까 사단 정보처에 있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대대 병력의 운용에 손 댄 것이 틀림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단 정보처에 작전 참모로 근무하는 그는 작전을 구상할 뿐 직접 작전에 참가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를 쓰고 전투가 벌어지는 일선
마다 종횡무진 돌아 다녔다. 영혜를 전투에서 빼 돌리는데에 대한 보상 심리로 자신은
사지를 마다않고 뛰어 다녔던 것이다.
"알았지? 영혜야. 그럼 그렇게 하는거다."
영혜가 아무 말 없이 안겨 있자 재인은 그녀의 반응을 긍정적인 대답으로 해석하고
안도 했다는 듯 큰 한 숨조차 내 쉬는 것 이었다. 그리고 밝게 웃었다.
"내 얼른 가서 인사 명령을 바꾸어 놓고 올게. 잠깐 기다려."
끌어 안은 손을 풀고 나가려는 재인을 이번엔 영혜가 붙잡더니 뒤에서 끌어 안았다.
재인은 영문을 몰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재인 씨. 난 정말 재인 씨를 사랑해."
영혜는 재인의 앞 쪽으로 돌며 나직한 소리로 속삭였다. 재인의 얼굴이 순간 약간
붉어지며 말을 더듬었다.
"나..... 나도 그래..... 어?..... 영혜야."
발돋음을 하여 훌쩍 커진 영혜의 얼굴이 재인의 얼굴에 다가 왔다.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느낀 순간 영혜의 입술이 재인의 입술에 덮였다. 재인은 약간
놀란 듯 했으나 곧 눈을 감으며 힘차게 영혜를 끌어 안으며 그녀의 입술을 빨아
들였다.
키스 정도는 몇 번 나눈 적이 있었던 둘 이지만 적극적 이었던 것은 항상 재인 쪽
이었다. 영혜는 언제나 수동적으로 받아 들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영혜의 혀가
먼저 재인의 입 안으로 파고 들어 왔다. 달콤한 방향이 입 안으로 퍼지며 재인의 혀에
말캉한 육질이 닿았다. 기다렸다는 듯 재인의 혀는 육질을 감싸안고 얽혀 버렸다.
영혜의 보드라운 입술은 한치의 틈도 없이 재인의 입술과 맞 닿았다. 서로 얽힌 둘의
혀는 끝없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실랑이 하였다. 슬쩍 재인의 손이 봉긋이 솟은
영혜의 젖 가슴을 움켜 쥐었다. 동시에 짜릿함을 느낀 둘은 잠시 멈칫하더니 영혜는
재인의 품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고 재인은 거침없이 군복의 단추를 풀고 손을 집어
넣었다.
곧바로 엷은 브래지어마저 들추더니만 영혜의 젖 살에 재인의 손이 곧장 덮혔다. 여린
듯 했던 속 살은 곧 팽팽히 부풀기 시작하더니 금새 재인의 한 손으로 덮기엔 조금
모자랄 정도가 되었다. 손바닥에 닿는 그녀의 맨 살이 납삭납삭 달라 붙는지라 재인은
가슴이 동동뛰기 시작해 다시 한 번 큰 숨을 몰아 쉬었다. 균형있게 자리 잡은 조그만
포도 알 같은 유실도 서서히 꿈틀거리며 일어 서는 것이 재인의 손에 느껴졌다.
재인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유실을 살짝 움켜 쥐었다. 영혜의 몸에 작은 떨림이 흘러
갔다. 재인의 손가락이 그녀의 유실을 움켜 쥐고 부드럽게 어루만져 완전히 곤두서게
만들 때까지 영혜의 몸에서 일어나는 가느다란 떨림은 그치지 않았다.
재인의 다른 한 손이 영혜의 어깨부터 아래로 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완전히
풀어 헤쳐진 군복 상의가 그녀의 어깨에서 슬쩍 미끄러져 내렸다. 우유 빛으로 뽀얀
영혜의 살이 충격적으로 드러났다. 눈 앞에 나타난 영혜의 속 살을 보고 재인은 자기
도 모르게 침을 꿀덕 삼켰다. 생각할 여지 없이 자동으로 그의 손은 영혜의 등 뒤로
돌아가더니 가슴을 가리고 있는 브래지어의 호크를 풀었다.
툭! 호크가 풀리자 억누름이 없어진 팽팽한 영혜의 가슴은 탄력있는 그 모습을 곧바로
드러내며 치 솟았다. 잠시 재인은 황홀한 듯 영혜의 벗은 상반신을 바라 보았다. 단정
하게 빗어 쪽 지어 올린 흑발은 그녀를 나이보다 조금은 어른스럽게 보이게 하였으나,
우윳 빛 뽀얀 살결만을 놓고 보면 아직은 완전히 성숙한 여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곡선으로 둥글게 내려간 고운 몸매며, 탄력 있게 솟아 오른 유방은
이미 그녀가 남자와 사랑을 나누기에 충분히 컸다는 것을 당당히 과시하고 있었다.
연한 연분홍 빛의 유실이 자신있게 꼿꼿이 솟아 올라, 보는 어떤 남자라도 한 입에
삼키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재인의 입술이 급히 그녀의 유방에 접근했다. 목 마른듯 그는 한 입에 그녀의 유방을
베어 물더니만 입 안에 들어온 육질을 부드럽게 핥기 시작했다. 워낙 한껏 베어 문
지라 유실마저 그의 입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영혜의 입에서 짧은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인은 영혜의 유방을 번갈아 탐했다. 그의 혀에서 작은 구슬
같은 영혜의 유실이 사정없이 굴러 다녔다. 간혹 재인이 살짝 유실을 깨물곤 했으므로
영혜는 그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점점 그의 품 안으로 허물어져 갔다.
허리를 어루만지던 손은 금새 스커트의 지퍼를 찾아내더니 아래로 주욱 끌어 내렸다.
밝은 카키색의 스커트가 그녀의 엉덩이에서 늘씬한 다리선을 따라 아래로 허무하게
떨어져 내렸다. 스커트가 없어지자 나타난 영혜의 하 반신.... 군용의 갈 색 스타킹이
비록 색이 짙다하나 그녀가 착용한 하얀 팬티의 색을 숨기진 못했다. 은은히 비쳐지는
그 자태는 남자의 욕망을 한껏 끌어 올리는 도화선 이었다.
재인은 천천히 침대 쪽으로 이동하여 영혜를 끌어 안은 채 누웠다. 꼭 감은 영혜의
속 눈썹이 다가 올 격랑을 예상한 듯 파르르 떨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재인은 급히
군복을 벗어 던졌다. 가슴에 타오르는 욕망의 불꽃이 너무도 급히 타는지라 서둘러
바지를 벗다 다리가 걸려 하마터면 꼴 사납게 넘어질 뻔 하였다.
곱게 모은 두 다리가 만나는 지점에 조그만 흰색의 팬티가 수줍게 비쳐 보인다. 침을
꿀덕 삼킨 재인은 스타킹과 팬티를 한꺼번에 쥐고 천천히 끌어내렸다. 금새 역삼각형
모양을 이룬 검은 풀 숲이 드러 났다. 재인의 머리 속에서 자신의 심장이 폭발하듯
고동치는 소리가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보드랍게 돋아난 영혜의 체모가 너무도 단정
하고 고와서 재인은 감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올랐다. 가장 부끄러운
부분까지 속속들이 남자의 눈 앞에 드러 낸 영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발개진
얼굴을 숨기기에만 급급했다.
재인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있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이었다.
그녀의 방초 숲이 끝나는 지점부터 열리기 시작하는 연한 분홍 빛 속 살이 삐죽
고개를 내밀고 두 갈래로 갈라져 내려 간 곳으로 훑어 내려간 재인은 눈길은 황홀함
으로 가득 차 멍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영혜의 몸 위로 재인은 체중을 옮겨 실었다. 탄력있는 그녀의 몸을 자신의 온 몸으로
느끼며 힘을 꽉 주어 끌어 안는 순간, 숨이 막히는지 영혜의 입에서 가쁜 탄성이 튀어
나왔다. 재인은 영혜의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리고 있던
영혜의 손이 재인을 감싸 안더니 부드럽게 등을 어루만졌다.
재인의 손이 아래로 내려 가 영혜의 아랫 배를 더듬었다. 군살 하나 없는 미끈한 살이
재인의 손길이 미치는 곳마다 파릇파릇 봄 풀이 일어나듯 살아나기 시작 했다. 보송한
영혜의 체모가 재인의 손에서 농락되었다. 연체 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영혜의 긴
다리가 조금 열려 재인의 손길을 더 아래 쪽으로 끌어 내렸다.
다리가 조금 벌어지자 수줍게 드러나는 굳게 맞물린 작은 꽃잎 두 장은 그 이파리에
어디서 스며들었는지 모를 맑은 이슬의 물방울을 맺고 있었다. 손대면 놀라는 미모사
줄기처럼 재인의 손가락에 닿은 꽃 잎은 처음 접해보는 사내의 손길인지라 황급히
놀라며 그 잎새를 바르르 떨었다.
재인은 촉촉하며 따스한 영혜의 이슬을 손에 느끼고, 한껏 고조되는 흥분에 몸을 떨며
기분 좋은 감촉을 끝 없이 누리기 위해 듯 연신 손을 놀렸다. 살짝 도드라져 부풀어
오른 연분홍 속살이 그의 손에 사정없이 밀려났다. 자릿자릿하게 퍼져가는 나른한
쾌감에 몸을 맡긴 영혜의 꽃 봉오리 안에서는 본격적으로 맑은 이슬이 샘 솟듯 솟아
나왔다. 꽃 봉오리 속을 탐하려고 손가락을 밀어 넣어보았으나 완강한 저항이 벽처럼
가로 막아 재인은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저항을 깨트릴 수 있는 것은 결코
손가락 따위가 아니었으므로 재인은 몸을 일으켰다. 야릇한 쾌감을 주며 부끄러운
곳을 간질이던 재인이 물러나자 영혜는 깊은 숨을 몰아 쉬며 눈을 떴다.
발가벗은 사내가 당당한 위용을 과시하며 그녀의 몸을 꼼짝 못하게 누르고 있었다.
원래부터 저항할 생각이 없었던지라 그가 하는대로 따라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원초적
으로 부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재인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녀의 눈으로 그의
상징이 들어왔다. 그 굳센 남성을 보는 순간 영혜는 놀라움에 몸이 떨릴 지경 이었다.
'저렇게 큰 것이 내 몸에.....'
차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지만 사내가 한껏 팽창된 모습을 처음 보는지라 그것은
놀라움과 두려움이 반반씩 섞인 그런 충격 이었다. 재인의 남성은 한껏 팽창해서 그
위풍을 당당하게 과시하느라 천정을 뚫을 듯 굳세게 솟아 있었다. 툭툭 불거져 감싸
올라간 핏줄이 흉측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려 다리 사이
를 가리며 떨리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재... 재인씨. 나..... 처음이에요. 그래서..... 너무 겁 나."
어찌 그걸 모를까? 재인은 부드럽게 영혜의 손을 잡고 가린 곳에서 치우며 다정하게
말해 주었다.
"괜찮아. 조금만 참으면 될거야."
재인의 목소리가 아무리 부드러워도 영혜의 두려움을 가시게 해 주진 못했다. 영혜는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눈을 꼭 감고 다가 올 파과의 공포에 질린 채 떨기만 할 뿐
이었다.
기어코 재인은 영혜의 두 다리를 활짝 벌리더니 그 사이에 자신의 하체를 드리 밀었다.
스스로의 남성을 움켜 쥐고 영혜의 꽃 잎을 열며 진입을 시작했다.
"아아악!......."
째지는 영혜의 비명이 온 방에 절절이 울렸다. 찢어지는 듯한 예리한 통증을 하체에
느낀 영혜는 마구 도리질을 치며 재인을 밀쳐내려 하였으나 굳세게 감싸 안은 재인의
힘에 꼼짝 못하고 헛된 두 발만 공중으로 동동거렸다. 밀쳐 낼 수 없으면 차라리
의지하는 것이 나은지라 결국 영혜는 재인을 부서져라 끌어 안고 깨어지는 아픔을
참느라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거칠진 않지만, 힘차게 재인은 영혜의 처녀를 유린해 나갔다. 그리고 둘이 완전한
하나로 일치된 순간 영혜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그녀의 받는
고통은 아랑곳하지않고 재인의 몸이 천천히 위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동작이 비록 천천히 부드럽게 행해지고 있었으나 영혜에게는 끝없는 아픔만을 주는 일
이었다.
악몽같은 시간은 너무도 오래 계속 되었다. 재인의 몸 놀림이 점점 빨라지고, 거칠어
지기 시작해서 더욱 힘들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 이었다. 재인이 더욱 힘찬 기세로
영혜의 몸을 파고드는데 고통은 조금씩 줄어 들고 있었다.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연신 비명 소리를 내지르던 영혜가 겨우 조용해지기 시작했을 때 반대로
재인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며 묘한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또 시간이 흐르자 재인의 몸이 영혜에게 짚더미처럼 풀석 쓰러지며 일순간에 모든
동작을 멈추었는데, 그 때 영혜는 하체를 가득 채우고 있던 재인의 남성에게서 뜨거운
것이 용암처럼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적막..... 끝없는 고요가 방 안에
가득 차 버렸다.
영혜는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사내의 무게가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재인의 숙인
얼굴에서 땀방울이 송송 배어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밀어 핥아 주었다.
다시 그녀의 몸을 더듬는 재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를 끌어 안고 영혜는 한 손을
침대 밑으로 내려 강화복의 주머니에서 익숙한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재인의 목에 대고 한번 누르자 그 순간 퍼뜩 놀라며 고개를 쳐든 재인의 눈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경악의 표정이 떠 올랐다. 그러나 곧 눈꺼풀이 스르르 내리 감기며
재인은 영혜의 몸 위에 시체처럼 푹 쓰러져 버렸다.
재인을 바로 눕히고 영혜는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점점이 밴 혈흔이 눈에 들어 왔다.
스무살 처녀를 상실한 것에 왠지 모를 서러움 같은 것이 느껴져 다시 눈에 눈물이
고여 왔다. 재인의 벗은 몸에 담요를 덮어 주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온 몸을 세차게 때리는데 문득 아래를 쳐다보니 그녀의 허벅지에서
연한 붉은 색의 핏 물이 흘러내려 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점점 엷은 색으로 바뀌는
그것을 보며 그녀는 센티한 감정에 빠져 멍하니 서 있었다.
강화복과 장비를 챙긴 그녀는 방을 나가기 전 재인의 볼에 살짝 키스를 하였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 든 재인의 표정이 어린 애처럼 너무 편안해서 그녀의 입에 미소가
살짝 감돌았다.
대대 HQ를 향해 걷는 그녀에겐 한 시간 전까지는 있을 수 없었던 그런 뭔가 다른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가끔씩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감돌기까지 했다.
대대장 실 앞에 도착한 테란 '차우사라' 5 사단, 200연대, 3 대대, 메딕 중대의 전
행정 소대장이며 현재 알수 없는 특공 작전에 차출 된 이 영혜 소위는 당당하게 문을
두들겼다.
野說 스타 크래프트 메딕 미스 리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2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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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지명 및 시기를 미리 밝혀 드리겠습니다. 등장 인물의 구성
으로 메딕(Medic)과, 어둠의 기사단(Dark Templer), 럴커(Lurker) 등이 나오므로
종족 전쟁(Brood War) 초기 입니다. 이 세 종족이 조우를 하여 혼잡하게 어울리는
장소는 테란 연방의 최 외곽 식민지인 '차우 사라' 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오리지날 스타크에서 '차우 사라'는 저그 족에 의해 처음 오염되고, 프로토스 족이
저그의 그림자를 알게 되어 깡그리 몰살시킨 곳 입니다. 놀란 테란은 두 번째 행성인
'마 사라'로부터 함대를 급파하는데 프로토스는 잠시 물러가고, 저그와 조우를 하게
되지요. 이런 과정으로 오리지날 스토리가 연결 되는데, 이 '차우 사라'에서 다시
세 종족이 모여 이전 투구의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기본 설정으로 했습니다.
'차우 사라'의 테란 군은 원래 '알파 전대'로서 '블러드 호크'라 불리죠. 사령관은
'에드몬드 듀크' 였는데 뒤에 '캐리건'에게 죽음을 당합니다. 이 이야기는 '에드몬드
듀크'가 아직 살아 있는 시점에서 '차우 사라'에서 벌어진 세 종족간의 1:1:1 전투
상황을 배경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외에 원작에서 등장하는 영웅들이나 기타의
것들은 일부를 제외하곤 이 이야기에서는 전혀 쓸모 없는 것 입니다. 이 이야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그 주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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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프룰루 태양력 6월 7일 17시 10 분
"근데. 소대장님 우린 어디로 가는거죠?"
'실비아 그랑드류 마아치' 하사의 가뜩이나 큰 눈이 더욱 동그랗게 커져서 마치
놀란 토끼처럼 보였다. 언제봐도 귀여운 실비아였다. 하지만 얼굴은 귀여운 소녀
스타일이지만 유럽계인 실비아는 동갑내기 영혜보다 신체적 성숙도에 있어서는 훨씬
우월했다. 제니 중사는 이미 완전한 여성이니 더 말 할 나위도 없지만......
실비아의 질문에 영혜는 한번 어깨를 으쓱 치켜 올리며 나도 몰라라고 시늉한 뒤 앞
좌석에 마주 앉은 밀러 대위를 바라 보았다. 가르쳐 주겠지하는 영혜의 기대를 보기
좋게 저버리고 밀러 대위는 예의 그 흐리멍텅한 시선으로 드롭십(Dropship) 창 밖으로
펼쳐지는 '차우 사라'의 황량한 모래 밭만 무심히 보고 있을 뿐 말이 없었다.
머쓱해진 영혜는 실비아에게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원래
명랑한 실비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제니 중사와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가끔씩
까르르 웃는 실비아의 소리가 들렸다. 드롭십 창으로 바람에 날린 모래들이 부딪혀
부서져 내렸다. 한 때 이 땅은 테란 연방 식민지였다. 자원이 많고, 경관이 빼어낫던
이 행성에서 어느 때부터인가 외계 종족과 전쟁이 벌어지더니 지금은 각 종족의 군사
기지를 제외하곤 그저 황폐한 폐허만 여기저기 널려 있을 뿐 생물체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2 분 뒤 '카탄' 에리어에 도착합니다. 전 대원은 적색 경보가 꺼질 때까지 이동을
금합니다."
기내 스피커에서 착륙 사인이 들려 왔다. 황량한 사막에 또아리를 튼 뱀처럼 201연대
전진 기지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드롭십 창을 통해 보였다. 세 메딕의 머리 속에는
동시에 이제부터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두 눈에 긴장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드롭십은 서플라이 데팟(Supply Depot)이 뭉쳐 있는 지역을 날아 지나서 기지 끝에
위치한 허름한 막사 앞에 이들을 내려 주었다. 드롭십에서 내리는 영혜의 귀에 문득
앞 서 걷는 밀러 대위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새끼들. 연대 참모라는 것들이 전진 베이스를 이 따위로 지어 놔? 한번에 다
날리면 어떻게 할려구. 하여간 책상 머리에 앉은 놈들이 하는 짓이라군....."
전투 경험이 없는 영혜는 가지런히 뭉쳐 지은 데팟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그냥 묵묵히 밀러를 쫓아 허름한 막사로 들어 갔다.
"다녀 오셨습니까? 중대장님"
약간 살이 찐 상사가 급히 일어나며 경례를 붙였다. 막사 안의 마린(Marine) 들이
전부 일어서며 거수 경례를 붙였다. 밀러는 편히 쉬라는 듯 손을 허공에 한 번 저었다.
막사 안에는 상사를 포함한 6명의 마린이 있었다.
"전부 모여 봐. 작전 브리핑 할테니....."
밀러가 막사 중앙의 긴 테이블 정면에 서자 마린들이 주변으로 모였다. 세 메딕이
밀러 뒤를 쫓아 막사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한 번 흘낏 쳐다 보았을 뿐 그녀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마린은 하나도 없었다. 이 병사들은 사령부에서 흔히 보던 마린들하고
전혀 다른 느낌 이었다. 그들에겐 피 냄새 같은 것이 나고 있었다. 메딕들은 꿔다 논
보리 자루 모양 적절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와 같이 나갈 메딕 들이다. 소위가 직접 소개하도록 해."
밀러의 말에 영혜는 화가 치솟았다. 세상 어디에 병사들한테 장교와 하사관이 먼저
인사를 하는가? 막사에 들어 올 때부터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아 불쾌하던 참 이었다.
"분위기 철철 넘치는 대위님의 병사들을 먼저 소개시켜 주시죠."
불쾌한 감정을 실었는지라 영혜의 말투는 비양거리는 투였다. 그런데 밀러는 영혜의
볼멘 소리를 여전히 무표정, 무응답으로 받을 뿐 이었다. 한번 입 밖에 내어놓은 말은
절대 철회하지 않는 스타일의 남자가 밀러 대위였던 것이다. 오히려 부하 마린들이
영혜의 당찬 반응에 수근거리기 시작 했다.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막사에 울렸다.
머리를 박박 밀어 붙인 흑인 상병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며 기분나쁜 휘파람을
계속 불고 있었다.
"헤이! 메딕 언니! 대차구만. 대장님께 말 대꾸 하는거 보는게 딱 일년 반 만이야."
"얼굴 값 하네. 헤헤헤..... 우리 메딕들보단 확실히 상판은 좋구만. 우리 애들이야
지금도 죽을 지 살 지 모르고 아둥거리니까 세수 한 번 제대로 할 틈 없이 맨날 죽상
이라 벗겨 놔도 이게 영 스질 않는데 언니들은 그냥 보자마자 신호가 오네."
"후방 메딕들 하는 짓이야 뻔하지 않아? 장교들하고 뒹구느라 기본 구호법이나 알고
있을까 모르겠어..."
세상에 뭐 이런 막 되먹은 병사들이 다 있을까 싶어 영혜는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다.
실비아도 분해서 얼굴이 빨개진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노련한 제니마저도 화가 치밀어
입을 앙다물고 앞에서 비양거리는 마린들을 노려 보았다. 분위기가 아주 엉망이 되자
그래도 나이 많은 상사가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짜식들아. 그만 해! 같이 작전 뛰어야 하는데 시작부터 삐그덕 거리면 어떡해?"
"선임 하사님. 난 저런 배리 배리한 메딕들한테 내 목숨 지켜 달라고 못하겠수. 우리
대대 메딕 붙여 주슈. 상판은 엉망이어도 걔들하고 같이 가야 안심이 되요."
아직 앳되 보이는 얼굴의 일병이 이죽거렸다.
"야 이 개새끼야! 새까만 일병 놈이 어디서 장교한테 지랄이야!"
순간 제니가 제니답게 호통을 치며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욕을 먹은 일병의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제니는 사정없이 일병의 뺨을 갈겼다. 찰싹 소리와 함께 일병의 얼굴
이 충격으로 인해 왼쪽으로 홱 돌아 갔다. 일병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며, 욕설을
퍼부으려고 입을 여는데, 기관총같은 제니의 호통이 먼저 터졌다.
"이 씨발 놈들아! 이 제니 플라잉은 타클라칸에서 마린 삼개 대대가 몰살하던 곳에
피 뒤집어 쓰고 서 있었어! 니들은 그 때 뭐하고 있었어? 뭣도 아닌 것들이 자기
동네라고 왈왈거리는거야? 니들 다 똥개냐?"
마린들은 제니의 기세가 너무 등등한지라 일순 조용해 졌는데, 갑자기 큰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니? 제니 플라잉 하사? 당신 진짜 제니야?"
금발의 스포티한 머리를 한 병장이 앞으로 뛰쳐 나오며 소리를 지른 것 이었다. 뺨을
맞은 일병도, 노기등등해서 옆구리에 팔을 걷어 올린 제니도 순간적으로 그 병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 오하라야. 기억 해요? 타클라칸 일차 공방전의 스미스 부대 오하라!"
제니의 눈이 놀라움으로 둥그렇게 커졌다. 그리고 곧 그녀의 입이 함빡 웃음으로 크게
열렸다.
"야! 너 그 때 오하라 일병! 우와! 반갑다. 짜식 살아 있었네."
제니와 오하라 병장은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와락 얼싸 안더니 빙빙 돌았다.
그것으로 긴장이 풀려 버렸다. 오하라 병장이 제니를 가리키며 마린들에게 소개 했다.
"야! 다들 잘 들어 둬. 이 언니 진짜 프로야! 믿을 수 있어. 내가 말했던 그 메딕
이야. 스미스 부대 자동 화기 분대 12 명이 이 언니 하나 믿고 저글링 반 중대하고
맞짱 떳어. 그 괴물들 다 작살 내고 보니 7명이나 살아 남아 있더라구. 기가 막힌
솜씨였지. 야!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언니가 피를 폭포처럼 뒤집어 쓴 채 서포트
해주던 거. 그 귀신 같은 손 놀림 못 본 사람은 정말 몰라."
제니가 이렇게까지 유명한 메딕인지는 처음 알게 된 사실 이었다. 그냥 어느 정도
전과를 올려 일급 무공 훈장을 받은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 이었다. 오히려 제니의
성가는 전투의 일선에 선 마린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떠돌고 있는 것 이었다. 병기의
성능 향상보다 우수한 메딕 하나가 마린의 생존에 얼마나 절실히 도움이 되는 것
인가는 직접 전선에 서보지 않은 병사는 알 수 없는 일 이었다.
별 거 아닌 메딕들이라 보고 업신 여긴 밀러 대위의 특공 대원들은 제니 플라잉이란
걸출한 메딕을 대하고는 비양거리던 눈 빛이 금새 사라졌다. 선임 하사가 빙글거리며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자...! 자! 메딕 소대장님 말이 맞다. 소위님. 실은 그제 분대원 둘과, 우리 배속
메딕 둘이 전사 하는 바람에 애들이 신경이 날카로와져서 그런 거니 이해 해 주쇼.
야! 우리가 먼저 소개 하자. 난 주임상사 '코사크' 요. 순수 해병으로 짬 밥 22년
째 인거라...."
"분대장 '오하라' 병장 임다. 직책은 자동 화기 사수고요."
오하라는 제니 플라잉을 만난 기쁨에 연신 싱글거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좋아 진 탓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는 마린들의 표정이 훨씬 온순해졌다. 단지 뺨을 얻어 맞은
일병만 조금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대세를 파악한 듯 말은 고분고분하게 했다.
"기갑 돌격병(Fire Bat) '이스마엘' 일병 임다. 여기선 막내라요. 하지만 전투에선
최고참으로 봐주셔야 할거요."
성질 깨나 급해 보이는 일병은 과연 돌격 첨병인 화이어 뱃 이었다.
"일번 소총수 '새미 존슨' 임다. 계급은 상병임다."
"자동 화기 부사수 '콜린 주니어' 임다. 계급은 역시 상병이고요."
콜린의 얼굴에는 섬뜩한 느낌을 주는 상처가 길게 나 있었다. 메딕의 시선이 상처에
집중되자 묻지도 않았는데, 킬킬거리며 설명을 하였다.
"요건 저글링 발이 스치고 지나간 자욱이라요. 고 놈은 내 얼굴을 그냥 스쳤지만 난
고놈을 백만 조각도 넘게 갈갈이 찢어 놓았다구요. 크크큭....."
꽤나 가학적인 잔인한 성품을 지닌 것 같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어두운 낯 빛의 동양
계 마린이 자기 소개를 했다.
"삼번 소총수 '퐁 수린' 입니다. 상병 입니다."
마린들이 자기 소개를 끝내자 메딕의 순서였다. 제니가 먼저 나섯다. 역시 역전의
메딕답게 호탕하게 입을 열었다.
"나 잘 알다시피 '제니 플라잉'이야. 니들 지금 보니 나보다 짬 밥 많은 사람은
선임 하사님 밖에 없는 거 같아. 그러니 다 내 아새끼들로 생각하겠어. 우리만
콱 믿으라구. 이 제니 손바닥이 다 닳아 없어지는 날까지 니들 지켜 줄 테니..."
실비아는 여전히 귀여운 표정으로 생긋 미소까지 지으며 애교스럽게 소개했다.
"'실비아 그랑드류 마아치' 하사에요. 학교 나온지 얼마 안 됐고, 참전도 한번
밖에 못했지만 열심히 할께요."
영혜는 어떻게 자신을 말해야 좋을 지 몰랐다. 자신은 한 번도 참전한 적이 없는
햇병아리 소위 아닌가? 그리고 비록 지금 분위기가 좋아졌다 해도 방금 전까지
받은 모욕을 쉽게 잊고 헤헤 거리면서 소개한다는 것은 영혜의 자존심이 용납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그래서 그냥 무뚝뚝하게 말을 했다.
"소위 이 영혜 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작전을 하게 되어서 기쁘군요. 잘 해봅시다."
영혜까지 인사를 마치자 밀러 대위는 지루했다는 듯 하품을 크게 한번 하고 테이블을
짚으며 앞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이제 끝났어? 그럼 작전 설명해도 되겠구만. 자 다들 주목해. 상사 도면 펼쳐 봐."
코사크 상사는 전황 배치도를 테이블 위에 깔았다. 밀러가 지휘봉으로 짚어 나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현재 위치는 카탄 에리어 27, 42 지점이다. 작전 투입 지역은 스와핑 에리어
35, 72 지점으로 예상 된다. 작전 목표물은 '라이언' 이라는 이름의 일병 놈을
모셔 오는 것이다. 이 놈은 프로토스 사르가스(Sargas)족이 장악한 지역에 202연대의
조이기 병력으로 들어 갔는데, 병신같은 놈들이 조일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오히려
겹겹이 포위 되어 버렸다."
순간 모두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일병 하나를 데려 오기 위해 정예 특공대가
출동하다니..... 모두의 표정에서 나타난 놀라움은 금새 비난으로 바뀌었다. 역시
삐져 나오기 잘하는 이스마엘 일병이 금새 이죽거렸다.
"쓰팔. 또 어디서 높은 놈 자식이 하나 최 전선으로 나갔나부다. 젠장....."
"조용히 해. 이스마엘. 군 사령부에서 직접 내려온 작전이니 토를 달지 말도록! 목표
점까진 세 갈래 길이 있는데, 가는 방법은 그 때 상황을 봐서 결정한다. 중간에 저그
족의 발로그(Baelrog) 부르드 소속 3 콜로니가 장악한 지역은 어찌해도 피해 갈 길이
없다. 그곳을 돌파할 때는 이 소위가 수고해 주길 바란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영혜는 밀러의 말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특공 부대
는 밀러 대위의 말에 전혀 질문이나 의견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그냥 고개만 끄덕
거리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묵계가 느껴져 영혜는 도저히 질문을
할 용기가 안 났다. 영혜는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밀러의 말에 귀
기울였다.
"지금 시간 20 시 14 분이다. 22시까지 군사령부의 스나이퍼(Sniper, Ghost:탐색,
저격수)와 화뱃 한 명이 보충되어 올 것이다. 출발은 내일 새벽 04 시. 저그 콜로니
전방 88에리어까지는 드롭십으로 수송 된다. 출발까진 자유니 각자 장비를 챙기고
쉬도록. 이상 뭐 다른 질문 있나?"
질문은 없었다. 단지 코사크 상사가 걱정된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젠장. 완전히 적진 속으로 배째고 들어가는 거구만. 먼저 조이기 들어 간 놈
들도 배째고 들어가는 것 같아 영 찜찜하더니, 시펄! 우린 내장까지 째네."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공성전차(Arclite Siege Tank:씨즈 탱크)나 레이스(Wraith)의 지원 없이 우리만
들어 가는 겁니까?"
순간 마린들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아까 처음 만났을 때처럼 비양거리는 웃음은 아니
었다. 분대장 오하라가 설명을 해 주었다.
"하사님. 씨즈 달고 다니면 그거 지키느라고 우린 아무 것도 못해요. 또 레이스가
미쳤다고 우릴 지원해 주겠어요? 걔들 필요로 하는 곳이 '차우 사라'에 얼마나 널려
있는데, 우리 차례 오려면 아마 일 년은 기다려야 할 거요."
실비아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쟨 천성적으로 남자들 눈길 끄는
덴 뭐가 있구만, 실비아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조차 귀여운지라 영혜는 한 숨 쉬었다.
이번 작전의 절박성이나 위기감 같은 것은 아직 전투를 못 겪어 본 영혜인지라 실감
나진 않았지만 실비아가 이번 출전에서 상당히 마린들과 시끄러워 질 것이라는 것은
확실히 예감 할 수 있었다.
"그럼 제군들. 새벽에 보자."
간단한 브리핑을 마친 밀러는 출구를 향해 걸었다.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던 밀러는
깜빡 잊었다는 듯 말했다.
"근데. 제군들. 이번 작전에서 나 밀러 부대원의 목표는 뭔가?"
잠시 침묵하던 마린들은 이구 동성으로 크게 외쳤다.
"옙! 대장님. 살아 돌아 오는 겁니다."
밀러는 만족한 듯 뒤를 보인 자세에서 손을 한 번 쳐들어 흔든 뒤 막사를 나갔다.
마린들 대답하는 꼴을 보느라 밀러를 따라가지 못한 영혜는 처신이 곤란했다. 일단
들고 온 장비들을 주섬주섬 챙겨 들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나가야 좋을지 이대로
있어야 좋을지 행동의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마린들도 지금까지 보아 온 메딕
과는 전혀 미모의 수준이 다른 메딕을 셋이나 앞에 놓고 뭐라 말을 못하고 멀뚱 쳐다
보고 있을 뿐이라 어색한 분위기가 금새 막사를 뒤덮어 버렸다.
역시 제니 플라잉 하사가 노련하게 분위기를 확 틀어잡았다. 그녀는 갑자기 오하라
병장의 사타구니를 툭 건드렸다.
"어때? 그 동안 요거 좀 컷냐? 타클라칸 땐 완전히 애기 였는데....."
뒤로 급히 물러나는 오하라의 얼굴이 금새 빨개졌다.
"우이~ 씨! 그런 말을! 제니 중사. 그 때 내가 제니 중사 완전히 기절 시킨 거
벌써 잊은거야?"
"놀고 있네. 담 날 아침까지 뻗어 있던 게 누구였어?"
둘 사이의 걸직한 농지거리가 흐르자 어색했던 분위기에서 다들 벗어 날 수 있었다.
"이~ 씨! 나가자구. 내 당장 그 거짓말을 응징해 줄 테니....."
오하라가 식식 거렸다. 제니가 영혜를 쳐다 보았다. 개인의 자유까지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영혜인지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혜의 허가가 떨어지자 제니는
오하라를 보며 씩 웃었다.
"오케. 나가자구. 누나가 한 수 가르쳐 줄 테니....."
오하라가 벌개진 얼굴로 빙글빙글 웃음을 흘리며 제니에게 다가섯다.
"가긴 어딜 가? 이 부대에서 지금 둘이 노닥거릴 곳이 어디 있어? 내가 나가지.
도저히 눈 꼴 시어 못 보겠구만."
코사크 상사가 몸을 일으켜 먼저 나가며 오하라에게 눈을 찡긋했다. 곧 이스마엘이
뒤를 따랐다.
"분대장님과 전설의 메딕이 공연하는 훌러덩 쑈를 공짜로 구경하고 싶지만 플라즈마
화염 방사기 연료 체크 땜에 아쉽지만 가봐야 겠네요."
연이어 전부 각각 희한한 이유를 대면서 하나씩 둘씩 막사를 빠져 나갔다. 영헤가 난
무슨 핑계를 대야 하나 고민하는 데 실비아가 영혜의 팔을 끌어 당기며 가만히 웃었다.
실비아를 따라 영혜도 막사를 나가니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린 실내에 둘만 남은 제니와
오하라는 멀뚱한 표정으로 한 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그 때 너무 고마웠어. 제니 중사가 없었다면 아마 난 죽었을 거야."
침묵을 깨고 오하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니는 싱긋 웃었다.
"차식! 메딕이 하는 일이 마린 구하는 건데, 당연한 거 한 거 갖구 뭘 그래."
"그래도 도움 받은 입장에서는 평생 잊지 못하는 거야."
"야! 야! 떠들 시간이 아깝다. 어디 요거 검사나 한 번 해보자. 진짜 좀 컷나."
대담한 제니의 손이 바로 오하라의 사타구니로 접근하더니 움켜 쥐었다. 오하라는
어이가 없어서 픽 웃었다.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완전 여장부야. 제니 중사는 남자로 태어 났으면 공화국
장군까지 갔을거야."
"그만 떠들라니까. 후방에서는 영 비리비리한 놈들만 있어가지고 사내 같은 놈
맛 본지 한 참 됐다. 일선 마린은 힘이 넘친다니 어디 확실히 테스트 해 보자구."
오하라보다 제니가 더 적극적 이었다.
"오케이. 내 진짜 남자의 힘을 한번 보여주지. 얼른 탈피하고 침상으로 Come!!!"
"나두 오케이! 너두 얼른 벗고, 발딱 세우고 기다려!"
말과는 달리 제니는 작은 순간까지도 음미하려는 듯 천천히 옷을 벗어 내렸다. 먼저
옷을 벗은 오하라가 침상에 눕자 다리 사이에 정말 그의 말대로 거대한 남성이 불끈
거리며 천장을 향해 굳게 일어 섰다. 오하라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천천히 드러
나는 제니의 농염한 알몸을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제니의 젖가슴은 상당히 풍만했다. 큼직한 유륜이 원을 그린 사이에 농익은 유두도
작은 편은 아니었다. 잘록한 허리며, 펑퍼짐하게 퍼졌다 급히 오무라 든 하체 곡선과
큰 키에 어울리는 탄탄하면서도 긴 다리가 잘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동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으와! 그 때보다 더 끝내주는 거 같아. 제니 중사는....."
"너도 좀 크긴 컷구나. 역시 시간이란게 좋은 거네. 그 때 애기가 이렇게 성장해서
발딱 세우고 누님을 기다리다니....."
"또. 그 따위 얘기!"
그러면서도 오하라는 제니의 농익은 언어가 싫지 않은 표정 이었다. 제니는 남자를
편하게 해주는 타입의 여자였다. 침상에 누운 오하라에게 다가 간 제니는 바로
손을 뻗어 오하라를 움켜 쥐었다. 그녀의 손에 잡히고도 남아 반쯤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오하라의 남성이 힘차게 반응해서 꿈틀거렸다. 제니는 손에 쥔 남성을 부드럽게
위 아래로 몇 번 쓸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제니의 머리가 오하라의 아랫배를 가리더니 뜨거운 입 속으로
오하라의 남성은 한 순간에 먹혀 버렸다. 오하라는 숨을 한 번 몰아 쉬더니 제니의
금발을 양 손으로 움켜 쥐며 자신에게로 당겼다. 제니의 혀가 구르며 오하라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핥고 빠는 행위를 반복하며 제니는 묘한 음향이 생기도록 애무를 하여 막사 안에
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하라는 자신의 분신에서 느껴지는 감미로운 혀의
터치에 의해 머리 속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제니의 머리를 움켜 쥔 손에 점점
힘이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선에서 매일 생사가 오고가는 그런 생활인지라 여자들과의 접촉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원래의 능력보다 훨씬 예민해진 오하라의 남성은 오랜만에
접하는 여성에게 쉽게 견딜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여성이 상당히 능란한 테크닉을
지닌 제니이기 때문에 금새 아랫배로 흥분의 줄기가 뻗치기 시작했다.
제니의 혀는 거침없이 오하라의 모든 것을 애무하였다. 그 혀가 미치는 길마다
오하라의 성감이 하나 하나 일어나면서 전기에 감전된 듯한 그런 전율을 느끼게 해
주는 것 이었다. 그래서 너무도 싱겁게 오하라는 절정에 올라 버렸다.
"윽! 이... 이런!....."
오 분도 안 돼어 오하라가 몸을 쭉 펴는 순간 그의 남성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뜨거운
분신을 제니의 입 안에 퍼 붓기 시작했다. 제니의 눈이 웃는 듯 하였으나 오하라는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짜릿한 황홀이 몸을 감싸 돌아 부르르 떨면서 두 번
세 번 뜨거운 열기를 사출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뭐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구만. 물건만 좀 커졌지. 어린애야."
제니가 오하라의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쳐 들었다. 그녀는 입 가에 흐르는 탁한 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 등으로 슥 닦아 내었다. 오하라는 창피해서 얼굴이 벌개졌다.
그는 항변을 했지만 아무래도 목소리가 조금은 기가 죽은 듯 작았다.
"그 때도 그랬지만 내 진가는 두 번째에 나타난다구. 기다려 봐."
제니는 오하라의 말에 킥 웃었다.
"오케이. 두 번째는 더 빨리 끝나게 해 줄게. 호호호..... 다시 한 번 세워 봐.
일선엔 좀 괜찮은 사내가 있을 줄 알았더니 이거 여기나 거기나 다를 게 없구만.
어디 나 확 터트려 줄 근사한 놈 없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제니의 손은 부드럽게 오하라의 몸을 계속 어루만지고 있었다.
한번의 사정을 마치고 크기를 줄인 남성을 다시 움켜쥐고 생기를 회복하려고 애쓰는
오하라의 노력을 도와 주는 것 이었다.
오하라의 눈이 제니의 온 몸 구석 구석을 샅샅이 훑었다. 건강하게 보이는 긴 다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특히 오래 머물었다. 머리 색과 똑같은 옅은 금발의 무성한 체모가
너무 신비하게 보이는지라 절로 침이 꿀떡 삼켜졌다. 펑퍼짐하게 한껏 퍼진 엉덩이로
오하라의 손이 뻗쳐 갔다. 그 부드럽고 풍요로운 굴곡을 쓰다듬던 그의 손은 동그랗게
솟아 오른 엉덩이를 한껏 움켜 쥐었다. 제니는 살짝 몸을 움츠리며 놀라는 시늉을
해서 오하라에게 즐거운 느낌을 주었다. 오하라의 손길이 두 언덕 사이의 골짜기로
거침없이 파고 들어 갔다.
뭔가를 느끼는 듯 제니의 숨가쁜 탄식이 새어 나왔다.
"흑!......"
오하라의 손은 제니의 은밀한 부분을 사정없이 헤집고 다녔다. 사내에게 적절히 반응
할 줄 아는 제니는 손이 자극적인 부분을 건드릴 때마다 몸을 들썩거리며 사내에게
호응 했다. 실제 오하라의 손길에서 나른한 쾌감이 전파 되므로 제니처럼 성에 대해
솔직한 여자가 그 감흥을 숨길 리가 없었다. 그녀의 애액이 숨차게 스며나오면서
오하라의 손 놀림은 더욱 가빠졌다.
기어코 오하라의 손가락이 벌써 흠뻑 젖은 제니의 몸 속으로 파고 들었다. 제니의
엉덩이가 주기적으로 움찔거렸다. 이 정도 되자 오하라의 남성은 다시 불끈거리며
힘을 쓰기 시작했다. 오하라는 괴물처럼 솟아 오른 자신을 확인 한 뒤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이젠 제니를 침상으로 이끌어 엎드리게 하였다. 제니는 기대가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이끄는 대로 침상에 올라 엉덩이를 높이 치켜 올렸다.
오하라의 손은 두 개의 보름달 같은 제니의 엉덩이를 쥐고 양 쪽으로 벌려 길을
열었다.꽃 잎처럼 예쁜 여인의 비문이 흥분에 의해 살짝 벌어진 채 애액을 퐁퐁
샘 솟듯 분비하는 그 모습은 너무 황홀한 정경이었다. 지금까지의 제니의 행위에
보답하려는 듯 오하라는 활짝 드러난 제니의 비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곧바로 혀로 핥기도 하고 빨기도 하며 제니의 향기를 머리 속에
깊이 새겨 넣는 작업을 쉼 없이 반복 하였다. 등 뒤로부터 제니의 팔 사이로 파고
들어간 손으로 그녀의 풍만한 유방을 움켜 쥐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한참을 씨름
하는 동안 그의 다리 사이에서 폭발할 곳을 찾고 있는 남성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올라 불쌍하게 보일 정도로 덜덜 떨며 목적지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드디어 때가 된지라 오하라는 번들거리는 자신의 단단한 남성을 움켜 쥐고 천천히
제니에게로 이끌었다. 살짝 꽃 잎을 벌리고 위치를 잘 고정 시킨 뒤 그대로 한번에
밀어 넣었다. 포근한 속 살의 감촉에 더하여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제니의 몸은
말 그대로 타오르는 용광로 였다. 긴박한 압축감도 있고, 편안하게 해주는 나른한
여유도 있는 그런 환희의 장소에 오하라는 뿌리 끝까지 깊이 자신을 파 묻었다.
그의 몸이 힘차게 반복적으로 왕복하는 동안 제니는 적절하게 반응을 하며 콧소리
섞인 신음을 내 질렀다. 그녀의 허리가 멋진 리듬을 타며 앞 뒤로 움직였다. 역시
제니의 호언한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오하라는 그녀의 상대로 부족해 보였다.
금새 오하라는 자신이 또 다시 함몰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끄
럽지는 않았다. 누구라도 제니와 상대하면 똑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짐승 같은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흐윽!... 나! 갈 거 같아."
"조금만..... 조금만.... 더!"
제니의 신음 소리가 애원하는 듯한 그런 소리로 바뀌었다. 황홀한 쾌감이 몸의 끝
말단을 향해 폭포처럼 터져 나가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기란 너무나 큰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 이었지만 그래도 용케 겨우 겨우 버티며 제니도 같이 절정으로 이끌려고 애
쓰는 오하라의 노력은 가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우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어쩔수 없는 충동을 해방 시킨 순간 그의 남성이 또다시 불끈 팽창하며 분수가 터지듯
제니의 몸 안 깊숙한 곳에 힘껏 자신을 쏟아 부었다. 제니도 억지로 누르고 있던
감흥을 오하라의 절정에 맞추어 풀어 주자 버티고 있던 팔이 허물어지며 앞으로
무너져 버렸다. 그녀의 몸으로 가느다란 떨림이 파도치듯 연신 흘러 갔다. 그렇게 두
남녀는 같은 시간에 동일한 쾌감을 서로 주고 받으며 끝이 없는 늪 같은 아늑함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며 덧붙여진 나른함 때문에 눈을 감고 한참 동안을 미동도 없이
육체의 열락을 느끼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 코프룰루 태양력 6월 8일 11시 20 분
"근데 말이죠. 난 정말 모르겠어요. 일병 놈 하나 데리러 도합 12 명의 정예 병력이
사지로 뛰어 드는 것을 어떻게 이해 하란 겁니까?"
보충 된 '제레미 안드레키스'라는 화이어 뱃은 말이 무척 많아서 드롭십을 타고 오는
도중에도 계속 시끄럽게 하더니만 이 열 종대로 행군하는 도중에도 연신 씨부렁거려
귀를 피곤하게 했다.
"내 말이죠. 평소 존경하는 밀러 대위님 부대에 배속 된 것은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개 같은 작전에 왜 나가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구요."
"자넨 정말 말이 많구만. 대장님. 이런 입 잰 놈을 왜 받으셨어요. 골치 아프게
시리......"
코사크 상사가 한심하다는 듯 밀러를 쳐다 보았다. 필요한 말을 할 때는 왕왕거리는
엄청 큰 소리로 떠들지만, 그 외에는 거의 말이 없는 밀러 대위의 입가에 웃음이 잠시
스쳐 지났다.
"어휴. 선임 하사님. 제가 이 부대에 낄 자격이 없는 줄 아세요? 제 강화복 어깨의
견장 안 보입니까? 저도 역전의 용사라구요."
두 줄의 행열 가운데로 밀러의 뒤를 따라 걷던 영혜는 제레미의 어깨의 견장을
보았다. 그것은 골드 마크로 'Blizzard'라 쓰여진 찬연히 빛나는 견장이었다. 10 회
이상의 승전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병사에게만 수여하는 테란 족 병사의 영광의 상징
이었다. 테란 연합 초기 '코랄의 난'에서 위명을 떨치고 전장터에서 죽은 블리자드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서훈 제도가 'Blizzard' 골드 마크로 역시 일급 무공
훈장에 속하는 것 이었다.
"짜식아. 여기서 그거 없는 애는 이스마엘 밖에 없어. 이스마엘도 아직 전투 참가가
10번이 안 되서 그렇지. 지금까지 8번 작전 뛰어서 전승이야. 우린 그런 거 달고
다니지도 않아. 쪽팔려서. 차식 깝죽거리긴...."
오하라가 제레미의 기를 팍 죽이려는 듯 말 했으나 제레미는 그 정도에 기가 죽지
않았다.
"어! 씨~ 분대장님. 만난지 하루도 안됐는데 갈궈요? 분대장님 담엔 내가 짬밥이
젤 높은데.... 이렇게 기 죽여도 되요?"
모두들 제레미 병장과 말 상대를 하기가 피곤했다. 그래서 넌 떠들어라. 난 갈 길
가련다 하는 표정으로 모래 언덕을 넘어 갔다. 제니와 실비아는 양 열의 가운데에
묻혀 연신 앞 뒤의 마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적진으로 침투한 특공대가 이렇게
한가하고 여유롭게 행군을 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저 밀러 대위와 영혜만이
처음과 끝이 똑같게 조용히 걸을 뿐 이었다.
"이봐. 신참. 이 누나가 자네라면 이렇게 말하겠어. 존경하는 사령관님. 저에게
무훈을 세울 기회를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꼭 라이언
일병을 구출해서 사령부로 보내겠습니다."
제니의 농담에 제레미가 부러 화가 난 듯 식식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산개!"
밀러 대위의 나지막한 명령이 떨어졌다. 이들을 지금까지 한가롭게 행군하던 부대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순식간에 원형으로 흩어지며 엎드리는 대원들의 동작엔 조금의
지체가 없었다. 맨 앞 열의 이스마엘과, 갓 합류된 제레미는 적당한 거리를 벌리며
사주경계의 자세로 들어 갔고, 자동 화기 사수와 부사수의 16 mm 가우스 기관총은
서로 보완하는 위치에 화망을 그릴 수 있도록 꼭 알맞은 거리로 모래 땅에 박혔다.
선임 하사를 포함한 세 명의 소총수가 양 옆과 뒤를 경계하며 밀러 대위의 주변에
엎드렸고, 제니는 어느새 화이어 뱃의 뒤로 달려 나가 적절한 위치를 잡았고, 조금
늦었지만 실비아도 이스마엘의 뒷 쪽으로 달렸다. 단지 경험이 없는 영혜만이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꾸물거리다가 밀러 대위 옆에 늦게 왔을 뿐이었다. 선임 하사가
안스럽다는 눈으로 영혜를 바라보았고, 영혜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전방의 모래 언덕에서 탐색병(Ghost, Sniper)이 엎드린 자세로 한 손을 하늘로 치켜
올리고 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선임 하사가 그 손 동작을 보면서 해독 하였다.
"전방 13 시 방향. 언덕 아래 저글링(Zergling) 10 분대. 약 120 마리. 오바로드의
지휘를 받고 있으므로 스나이퍼는 접근 불가. 하이드럴리스크(Hydralisk) 흔적은 없음.
아드레 날린 강화는 안 이루어진 것으로 보임. 명령 기다림."
"고스트는 일단 대기. 나머진 집결."
밀러의 나직한 명령이 떨어지자 선임하사는 고스트에게 사인 했다. 대원이 순식간에
모이자 밀러 대위는 지형을 살피기 위해 주변을 돌아 보았다. 곧 적당한 위치가 나타
났다. 남서쪽의 언덕 지형 이었다.
"스팀팩 준비하고 이스마엘 좌측. 제레미 우측. 메딕은 이스마엘과 제레미의 전열에
선다. 소위는 중앙 접근로 차단 할 것. 자동 화기는 화망 구성을 이스마엘과 제레미
앞 15 도 지점에 구축한다. 나머지는 2.4, 4.8, 8.16 방향으로 선다. 화뱃 외엔 스팀
팩은 사용 안해도 좋다. 내 위치는 6.12 점이다. 전원 화망을 자동화기와 일치 시킨다.
고스트는 사선까지 저글링을 유인 한 뒤 전열 뒤로 빠져 돌아 나가서 오바로드 사냥을
한다. 선임하사! 고스트에게 전달! 각자 위치로!"
모두 급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남 서쪽의 언덕으로 뛰어 올라갔다. 고스트에게 연락을
마친 선임 하사가 자리를 잡자 화이어 뱃 둘을 가운데에 놓은 완벽한 학익진이 구축
되었다.
적은 아군의 열 배의 병력이었다. 영혜는 가슴이 마구 고동치며 다리가 떨리기 시작
했다. 실비아도 두려운 듯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제니마저 긴장된 표정으로 연신
실비아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너! 잘 알고 있겠지만 이스마엘이 죽으면 너도 죽는거야. 이스마엘이 살아 있어야
네가 공격을 안 받아. 오버로드가 와서 직접 지휘를 한다면 그 땐 위험할지 모르지만
그 놈 오는 속도가 느려서 우리 저격수를 벗어날 수 없을거야.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이스마엘 하나만 지킨다고 생각하면 돼! 알았지?"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를 악물어 결심을 나타내곤 플라즈마 화염 방사기를
잔뜩 꼬나 쥐고 언덕 아래를 노려보는 화이어 뱃 이스마엘의 앞으로 달려 갔다.
제니는 다음에 영혜를 쳐다 보았다.
"소대장님! 잘 아시겠지만 두 화이어 뱃의 사이에 저글링이 못 들어 오게 차단하는
것이 소대장님의 역할입니다. 저글링이 워낙 머리가 나빠서 소대장님은 비 전투
병력으로 인식하니까 우선 공격은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땅에 추를 박고 부서져라
꼬나 잡고 버티세요. 이런 전투는 금새 끝납니다. 언덕 위에서 아랫 쪽 저글링 상대
하는 것을 제가 여러 번 봤는데 정말 식은 죽 먹기예요. 걱정마시고 자리 지키세요."
영혜도 정신 없이 머리를 끄덕이고 이스마엘과 제레미의 가운데로 이동했다. 추를
땅에 박고 로프를 강화복 허리의 고리에 단단히 고정 시킨 뒤 손으로 두 번 비틀어
잡았다. 처음 실전을 접하는 영혜의 머리 속은 텅 비어 버리고, 주변의 모든 사물이
눈 앞에서 의미 없는 파노라마처럼 소용돌이 쳐 흘러 갔다.
언덕 저 너머에서 한 발의 묵직한 총성이 울렸다. 고스트의 25 미리 C-10 산탄 총
소리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언덕을 넘어 고스트가 미친 듯이 도망 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뒤엔 엄청나게 큰 모래 먼지가 일고 있었다. 고스트는 전속력으로 언덕을 향해
달리는데 뒤 쫓는 모래 먼지가 점점 고스트와 가까워졌다. 먼지 사이로 잠깐 잠깐
흉측한 초록 색 저글링의 모습이 나타났다. 입을 쩍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칼날 같은 양 팔을 휘두르며 쫓아오는 저글링의 모습은 악귀와 같았다. 속도가 빠른
저글링 개 떼가 바로 고스트를 덮치며 날카로운 앞 발로 긁으려는 순간, 고스트의
모습이 순식간에 일렁거리며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클로킹(Cloaking) 이었다.
순간 목표물을 잃어 버린 저글링들은 당황한 듯 우왕 좌왕 거렸다.
그 다음 순간 플라즈마 화염 방사기가 마치 지옥의 불꽃처럼 사라진 고스트 때문에
진형이 흐트러진 저글링 개 떼의 전열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뻗어 나갔다. 앞 줄의
저글링 몇 마리가 순식간에 타오르며 조각 조각 부서지고 귀를 찢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동료가 죽어 나감으로써 새로운 목표를 포착한 저글링은 곧 바로 화이어 뱃을
향해 돌진하여 언덕으로 꾸역꾸역 올라 왔다. 화뱃의 화력이 비록 엄청나지만 시체를
쌓으면서 올라오는 저글링을 완전히 제압 할 수는 없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이스마엘과 제레미는 강화복 오른 쪽 어깨에 솟아 있는 작은 돌기를
사정없이 눌렀다. 치익하는 약물 주입 소리가 짧게 나면서 몸에 들어간 수퍼 교감신경
자극제는 대뇌에 반응하며 순식간에 화학 작용을 일으켜 에피네프린 분비를 최대로
올려 버렸다. 이스마엘과 제레미의 눈이 허옇게 뒤집히며 플라즈마 화염 방사기를
수동으로 조준하기 시작했는데 자동으로 적을 조준 할 때보다 거의 한배 반이나 빠른
속도로 저글링을 향해 불꽃을 뿜어 내는 것 이었다. 불꽃이 튕기는 지점마다 저글링이
떼로 흩어졌다. 두 개의 화염방사기의 화망이 겹치는 지점의 저글링은 순식간에 확
증발해 버렸다.
스팀팩은 원래 한 번 이상 연속으로 쓰면 신경 조직이 버텨 나지 못해서 죽음으로
몰고 가기 십상인데 지구집정연합(UED)에서 메딕을 양성하면서부터 스팀 팩의 충격을
완충시키는 방법을 연구 해 낸 덕에 이전처럼 스팀팩 쓰고나서 체력이 소진해 죽어
버리는 마린과 화이어뱃의 숫자는 현저히 줄었다. 그러므로 연속으로 스팀팩을 쓰는
기술이 연구 되었고, 무한 스팀팩이라 명명한 그 효과는 전투력을 상상할 수 없는
수치까지 올려 주게 되었다.
여기서도 무한 스팀 팩이 시작되자 제니와 실비아는 화뱃의 옆에 꼭 붙어서 CMC/660
중전투복의 뒤에 난 구멍에 두 손을 집어 넣고 이스마엘과 제레미의 중추 신경조직에
꽂은 힐링 포션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며 신경 폭주를 막아 주기에 바빴다. 너무 많은
힐링 포션을 넣으면 신경 반응이 급격히 느려지고, 적게 넣으면 폭주로 인해 마린은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해 죽음으로 빠져 들게 된다.
왠만큼 노련하지 못하면 양의 조절과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에 화이어 뱃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위험한 힐링이지만 제니와 실비아는 조금의 헛점도 없이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화이어뱃의 신경 조직을 보호해 주었다.
무한 스팀 팩을 쓴 화이어 뱃의 화력이 막강하여도 밀고 올라 오는 저글링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시체의 산을 쌓으면서도 기어코 언덕까지 올라오는 놈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레미의 앞까지 올라온 저글링 한 마리가 뒷 줄의 저글링을 쏘느라 미처 조준을 못
한 제레메에게 발을 치켜 올려 그으려는 순간!,
"발사!"
밀러 대위의 명령이 떨어지고 갑자기 온 사방에 귀를 찢는 가우스 소총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자동 화기에서 퍼런 불꽃이 피어 오르며 16미리 총탄에 순식간에 수십 조각
으로 갈갈이 찢어진 저글링의 갑옷 같은 살점과 푸른 점액이 허공으로 흩 뿌려졌다.
그리곤 지옥 같은 광경이 언덕에 펼쳐 졌다. 고막을 찢는 듯한 가우스 소총 소리와
플라즈마 화염 방사기의 쉭쉭거리는 소리, 저글링의 째지는 비명 소리가 어우러지며
천지 사방으로 저글링의 살더미와 점액이 튀어 올랐다.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 이었다.
영혜는 눈 앞의 처참한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눈을 꼭 감았다. 저글링의 파괴된
살덩이가 투둑거리며 영혜의 강화복을 때려왔다. 이미 헤드의 보호경은 저글링의 점액
으로 덮여 초록색으로 변질 되어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처참한 살륙 장면은
처음 보는 것 이었다.
단 한 마리의 저글링도 언덕 위를 뚫지 못하고 시체의 산을 쌓던 상황이 바뀐 것은
거의 절반 가까운 저글링이 피범벅이 된 후 였다. 북동 방향에서부터 초록색 피를
철철 흘리며 공중을 천천히 날아오는 거대한 물질이 있었다. 둥근 풍선처럼 생긴 그
괴물체는 바로 저그 족의 지상군을 통솔하는 지대장 오바로드 였다.
저격수의 총탄을 계속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불리한 전황을 지휘하러 오는 것
이었다. 머리 나쁜 저글링과는 달리 오버로드는 금새 상황을 판단하고 옆으로 돌아
후면을 우회 공격하는 것이 현재로서 최선의 방법 임을 알아채고 그 명령을 전달
하였다. 그러나 전달이 끝나자 마자 스나이퍼의 마지막 한 발의 총알을 맞고 그대로
공중에서 터지며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버렸다.
오버로드의 명령을 받은 저글링의 공격 방법이 달라졌다. 무식하게 화뱃만을 향해
돌격하던 놈들이 옆으로 돌기 시작한 것 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이렇게 공격했다면
밀러 대위의 부대는 적잖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밀러의 특공대는 적의
공격 패턴이 바뀌었어도 당황하지않고 침착하게 바로 앞으로 뛰어 드는 저글링을 하나
씩 일점사하여 박살을 내기 시작했다. 앞에서 밀려드는 저글링은 화이어 뱃과 자동
화기가 상대하고 뚫고 들어 오는 저글링은 일단 길목을 막고 있는 영혜에게 걸려서
잠시 주춤하는 사이 이젠 고스트까지 포함 된 다섯 명의 집중 사격을 받고 처참하게
터져 나갔다.
영혜의 주변에 저글링의 부서진 살덩이가 쌓여 갔다. 승리가 눈 앞에 다가 왔는데
막상 길을 막고 있는 당사자인 영혜는 거의 실신할 지경 이었다. 처절하게 부서지는
살 덩어리와 초록 색 피가 사방으로 튀어 날았고, 그 파편이 영혜의 강화복 위로
부딛히며 흩어졌다. 미처 죽지 않은 저글링은 공격 본능 밖에 없는지 영혜를 스치며
뛰어 들어갔고, 그들과 스쳐 부딛힐 때마다 그녀는 몸서리를 치며 조금씩 물러서며
주저 앉기 시작했다.
영혜의 상태를 지켜보던 코사크 상사가 고함을 쳤다.
"버티쇼! 얼마 안 남았어요. 거기서 무너지면 여기도 위험해!"
이를 악물고 로프를 움켜 쥐었지만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다.
부끄럽게도 강화복 안의 하체가 축축하였다.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싸 버린 것 이었다.
챙피해 할 여유도 없이 손에서 자꾸 빗겨 벗어나려는 로프를 한번 더 부여 잡는 순간,
몸체가 없는 저글링의 커다란 대가리가 퍼런 피를 흩뿌리며 공중을 빙글빙글 돌면서
영혜에게로 날아 왔다. 그 처참한 악귀의 모습에 질려서 눈을 감으며 피하려는 순간
주변에 흘러넘치는 저글링의 점액에 미끄러져 영혜는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쓰러지자마자 대 여섯 마리의 저글링이 그녀를 타고 넘으면서 방어선을 뚫고 뛰쳐
들었다. 저글링이 학익진 안으로 뛰어 들자 상황이 급변해 버렸다. 코 앞에까지 다가
온 위기에 조금의 망설임 없이 '새미 존슨'과 '퐁 수린'은 메딕의 서포트없이 스팀
팩을 사용 했다. 자동 화기 사수는 아군도 살상할 위험이 있으므로 총구를 못돌렸지만
이스마엘과 제레미, 두 화이어 뱃은 뚫고 들어 온 저글링에게 프라즈마 화염을 쏟아
부었다.
뚫고 들어 온 저글링은 순식간에 다 박살이 났지만 화이어 뱃이 돌아 선 사이 다가선
저글링이 화이어 뱃을 습격했다. 노련한 제니의 서포트를 받고 있는 제레미는 방향을
바로 바꾸며 아슬아슬한 간발의 차이로 저글링에게 화염을 퍼 부었지만 이스마엘 쪽은
서로 방향이 꼬이는 바람에 실비아의 손이 강화복에서 떨어지며 힐링 포션 주입기가
떨어져 나갔다. 한 마리의 저글링을 태운 순간 옆에서 뛰어 든 저글링의 앞 발에
이스마엘이 찍히며 강화복이 터지고, 이스마엘의 붉은 피가 튀어 나왔다.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이스마엘의 노력도 헛되이 두 마리의 저글링이 덤벼 들어 이스마엘을
마구 찍기 시작했다.
밀러 대원들은 이스마엘과 저글링이 범벅이 되어 뒹굴고 있기 때문에 도울 방법이
없는지라 안타깝게 발만 구르며 다른 저글링을 학살 할 뿐 이었다. 이스마엘 강화복
가슴에 붙은 생명 지수판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급히 떨어져 내려 갔다. 생명이 끊어
질 것 같은 순간 벼락처럼 실비아가 뛰어 들며 이스마엘을 감싸 안았다. 원래 공격
우선 순위에서 제외 된 메딕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스마엘을 공격하던
저글링의 타격이 그대로 실비아에게 내리 꽂혀 장갑이 약한 메딕 강화복은 순식간에
걸레처럼 헤지면서 실비아의 고통스런 비명이 절절이 울렸다.
실비아가 두바퀴 뒹굴며 나자빠지는데 이미 사경에 빠진 이스마엘 주변의 유일한 공격
대상인지라 한마리의 저글링이 쫓아 붙으며 앞 발로 찍어 내렸다. 이스마엘 때와 같은
이유로 실비아를 공격하는 저글링을 물리 칠 방법이 없었다. 실비아마저 당할 위기
였다. 밀러 대원 모두의 안색이 잿 빛으로 변했다. 이미 저글링 10 분대를 거의 다
해 치웠는데, 살아 남은 한 두 마리로 인해 메딕이 죽을 위기에 빠진 것 이었다.
이 위기의 순간에 쉬익하는 화염 방사기 소리가 울리며 실비아를 찍으려던 저글링이
불꽃에 휩싸여 튕겨 날아 갔다. 쓰러져 있던 이스마엘이 간신히 무릎 꿇은 자세로
저글링과 실비아 사이의 틈을 노려 플라즈마 화염을 쏜 것 이었다. 이스마엘은 마지막
한 방을 쏜 뒤 천천히 쓰러졌다.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있었다.
제니가 미친 듯이 달려가더니 이스마엘의 등에 손을 집어 넣고 번개같은 손 놀림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실비아의 연약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상황 판단이 정확한 제니이기
때문에 실비아보다 이스마엘의 치료가 우선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짚었다. 한 참 치료
하던 제니가 고개를 들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생명 지수가 딱 2 남았었어요. 한 번 스치기만 해도 죽을 뻔 했는데... 근데 상처
보다 스팀 팩 조절을 못 한 것이 더 충격이 크네요. 잘못하면 이상을 남기게 될
지도......"
제니는 일단 이스마엘을 살려 놓고 실비아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고통과 두려움으로
흐느끼는 실비아의 신음이 너무 애처로왔다. 실비아는 다행히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어서 힐링 팩의 도움으로 곧 절뚝거리며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갈갈이 찢어진 강화복 땜에 맨 살이 드러난 곳이 많아 그것을
가리려고 애쓰는 실비아 하사는 천상 여자다운 여자였다.
밀러 대위가 침중한 표정으로 다가 왔다. 대원들 모두가 이스마엘과 실비아를 빙 둘러
쌌다. 그 무리에서 영혜 혼자 동떨어져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부들거리고 있었다.
"괜찮겠나?"
밀러가 제니에게 묻자, 제니는 자신 있다는 듯 대답하였다.
"예. 실비아는 곧 회복 될 거고, 이스마엘은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방금 얘기 했듯이 스팀 팩 과사용의 후유증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좋아. 저그 3 콜로니 뚫기 전에 202 연대 전진 베이스가 있는 쪽으로 우회한다.
거기서 장비를 보급 받자. 퐁 수린과 오하라가 이스마엘을 맡아라."
상황이 종료되자 그제서야 모두가 영혜를 의식하고 고개를 돌렸다. 영혜는 이를
악물고 버티고 섯지만 온 세상에 자기 혼자 외로이 서 있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이 씨발! 내 이래서 햇 병아리랑은 전투 나가기 싫은거야!"
'콜린 주니어'가 갑자기 헬멧을 바닥에 팽개치면서 욕설을 퍼 부었다. 다른 부대원도
같은 심정인지 영혜를 바라 보는 시선이 곱진 않았다.
"이런 좆같은 일이 어디 있어? 돌대가리 저글링 상대로 지형 이득을 누리며
이런 위기에 빠진 적이 언제 있었어? 하마터면 막내가 죽을 뻔 했잖아?"
길길이 날뛰는 콜린이 쉽게 진정할 것 같진 않았다. 치욕스런 이 순간이 너무도
가슴 아파서 영혜의 깨문 입술에선 피까지 배어 나왔다.
"그만 해라! 소위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잖아? 미끄러진건데, 할 수
없어. 그 전까진 잘 했잖아. 다행히 다 살았고... 자 그만 출발하자."
결국 밀러가 한마디해서 콜린을 진정 시켰다. 이스마엘을 부축하며 새로 진형을
짠 밀러 부대가 모래 언덕을 넘어 가는데 영혜는 움직이질 못했다. 걱정이 되어
남아 있던 제니가 위로해 주었다.
"소대장님. 쟤들 흥분해서 그런 소리 한 거니 신경 끄세요. 사실 소대장님 무지
잘 한 거 다들 알아요. 난 첨에 그런 길목 방어 맡았을 때 오줌까지 질질 싼걸요.
그거 엄청 어려운 거예요. 자 갑시다. 담엔 실수 안하면 되는 거예요."
"나도 쌌어. 엉엉엉....."
다정한 제니의 말에 간신히 참고 있던 눈물이 기어코 영혜의 눈에서 흘러 내렸다.
언니같은 제니 중사는 영혜를 끌어 안고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메딕 소대장
이 영혜 소위는 어깨까지 부들 부들 떨며 제니 중사의 품 안에서 한 참 동안을
목 놓아 서럽게 울었다.
野說 스타크래프트 ‘메딕 미스 리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3 부
********** 코프룰루 태양력 6월 8일 17시 00분
"이거 영 심상치 않은데…"
코사크 상사는 눈쌀을 찌푸렸다. 황량한 사구를 따라 행군한지 벌써 4 시간인데,
204연대 전진 베이스가 가까워짐에 따라 모래판을 울리는 둔한 굉음이 점차로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씨즈(Arclite Siege Tank) 포격 소리인데요. 베이스에서 전투가 벌어졌나 봅니다."
"고스트(Ghost, Sniper)의 현재 위치는 어디 쯤인가?"
"베이스 근처에 도착해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군요."
오하라가 '텔콤'을 켜고 고스트의 위치를 확인한 뒤 대답했다. 밀러는 잠시 생각
하더니, 곧 결단을 내렸다.
"베이스까지 일단 빨리 이동하자. 일단 상황을 지켜 본 후 다음 행동을 지시
하겠다. 신속 전개!"
모두 긴장을 하면서 이동 속도를 높였다. 베이스에 가까워질수록 씨즈 탱크의 포격
소리와 가우스 소총 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이윽고 베이스를 눈 아래 내려보는 언덕
까지 도착한 일행은 납작하게 엎드려 상황을 보았다.
"제길! 질럿(Zealot) 입니다. 엄청난데요."
코사크의 낮은 음성에 모두 아연 긴장했다. 언덕 아래 분지에는 한창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거의 두 중대는 됨직한 푸른 전투복의 프로토스 질럿들이 꾸역꾸역
베이스의 입구를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입구를 막고 있는 4개의 벙커에서는 엄청난
화력을 그들에게 쏟아 붓고 있지만 질럿들의 방어 실드는 워낙 알아주는 똥 맷집이라
벙커만으로는 깨기 힘들었다. 기지의 여러 곳에 씨즈 모드(Seige Mode)로 전환한 공성
탱크가 포신이 터져라 갈기는 위력적인 포격이 벙커의 화력과 어우러져 겨우 질럿을
쓰러트리긴 하지만, 워낙 질럿의 수가 많아 시체를 깔면서도 야금야금 기지를 먹어
가고 있었다.
"고전인데요. 저 병신같은 자식들은 벙커 앞을 서플라이(Supply Depot)로 막는 기본
방어진도 안 짜놨어."
오하라가 말한 순간 맨 앞의 벙커 뚜껑이 개 떼처럼 달라붙은 질럿의 플라즈마 검의
위력을 당하지 못하고 열리며 터져 버렸다. 그리고 벙커에 들어 있던 마린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학살 당했다. 하나의 벙커를 짓밟은 질럿은 다음 벙커를 향해
달렸다.
"저런 식이면 전멸 당합니다. 대장님."
코사크가 밀러를 쳐다보았으나 밀러도 이런 상황에서는 대책이 없었다. 벙커 보호를
받는 마린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양의 질럿 부대여서 밀러 부대가 끼어
들어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한 것이다.
고스트는 클로킹(Cloaking)을 하여 눈에 띄지 않으므로 나름대로 질럿의 뒤에서
열심히 하나씩 조준 사격하고 있으나 고스트 혼자만의 화력으로 저 똥 맷집의 질럿을
다 해치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이었다. 더구나
고스트의 클로킹은 시간에 제한을 받기때문에아 곧 철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벙커는 한 개씩 차례대로 터져버려 마침내 입구의 방어선이 뚫리고 말았다.
질럿의 다음 목표는 공성 전차 였다.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일차 포격 후,
다음 포격을 준비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결점 뿐만 아니라, 근접 공격(Melee
Attack) 하는 적은 보이질 않아 눈 멀쩡히 뜨고 선채로 당한다는 치명적인 약점까지
가지고 있는 씨즈 탱크 인지라 적의 근접 공격을 차단해 줄 외곽의 방어선이 뚫려
버린 지금, 푸른 질럿의 떼가 몰려 가는 곳마다 탱크는 무력하게 박살나고 있었다.
팩토리(Factory) 건물이나 서플라이의 틈에 숨어 저항하는 마린들도 하나 씩 둘 씩
질럿의 밥이 되어 죽어 나갔다.
"끝났군. 가망 없어."
코사크가 한 숨을 쉬는 순간,
갑자기 그들의 귀에 쌔액 하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스쳐 갔다. 곧이어 204연대
전진 베이스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질럿 떼에게 달려들어 25미리 연발 레이져를 쏟아
붓는 전투기 한 편대가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대공전투
능력이 없는 질럿들은 공중에서의 공격엔 속수무책인지라 우왕 좌왕하며 숨고, 도망
가기에 바빴다.
"레이쓰(Wraith) 떴네요. 참 기가 막힌 시간에 도착했어요."
레이쓰의 25미리 연발 레이져는 경박한 소리만큼 파괴력은 볼품이 없었지만,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적도 못 죽일만큼 약한 무기는 아니었다. 계속 집중으로 하나씩 갈겨
대자 똥 맷집의 질럿도 결국 보호 실드가 다 벗겨지며, 그들의 사망 형태인 연기로
승화해 사라졌다.
기지 안으로 밀고 들어 온 질럿들이 다 쫓겨 갈 무렵, 기지 반대쪽 상공에서 푸른
빛의 납작한 모양의 전투기 편대가 나타났다. 그것은 프로토스의 커세어(Corsair)
편대 였다. 급한 연락을 받고 출동한 모양이었으나 그것은 안오는 것만 못한 출격
이었다. 커세어의 접근을 알아챈 순간 아군 레이쓰 편대는 커세어 쪽으로 방향을 전환
하며 바로 요격에 들어 갔다. 커세어와는 당연히 공중전을 해야 하므로 레이쓰는
일제히 클로킹 하였다. 레이쓰 한 편대의 주위 공간이 일렁거리며 순식간에 기체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테란군의 빛나는 과학이 이루어낸 클로킹 필드
(Cloaking Field) 였다. 고스트가 시전하는 것을 대형화 시킨 것 이었다. 그렇게
사라진 레이쓰는 바로 전에 질럿을 섬멸할 때 쓰던 대지상용 연발 레이져와는 비교
할 수 없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제미니 공대공 미사일을 프로토스의 커세어 편대에
퍼 부었다.
"병신들. 레이쓰 상대로 옵저버(Observer) 없이 온단 말이야? 프로토스 놈들도
개 떼로만 밀어 붙이는 무한 맵 스타일이구만. 유닛을 아낄 줄 몰라."
밀러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적과 아군간의 공중전은 싱겁게 끝나 버렸다.
프로토스 족 답게 상당히 탄탄한 내구력을 지닌 커세어지만 보이지 않는 적에게서
쏟아지는 미사일을 감당 할 턱이 없었다. 순식간에 다 터지고 마지막 한대 남은
커세어가 도망치려고 기수를 돌렸으나 추적하는 20여발의 제미니 미사일은 그를
형체도 안남기고 박살 내 버렸다. 완벽히 적을 섬멸한 레이쓰 편대가 클로킹을 풀어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그들의 자취를 드러냈다. 레이쓰는 살아남은 마린들의 환호에
보답하듯 기지를 한 바퀴 선회 한 다음 모래 언덕을 넘어 처음 그들이 나타났던 곳
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멋지구만. 자 들어가자. 상사. 고스트에게 진입 허가를 요청 하라고 해."
밀러 부대는 204연대 전진 팩토리 베이스로 진입했다. 터져 버린 벙커와 씨즈 탱크의
잔해가 군데 군데 널려 있고, 살아 남은 마린들이 어수선하게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기지는 거의 폐허를 방불케했으나, 다행히도 질럿의 공격에 무사한 두개의 팩토리가
있어 정신없이 불을 번쩍거리며 생산 라인을 돌리고 있었다. 기지 안 쪽의 깊은 곳에
위치한 벙커에서 마린 몇을 대동한 고급 장교가 나와 밀러를 맞아 주었다. 기름진
얼굴에 배가 나올만큼 나온 중령 이었다. 좀 전의 전투에 혼이 난 듯 얼굴 빛이 완전
똥색이었다.
"여! 이거 밀러 아닌가? 이 곳엔 왠 일이야?"
반가움을 표시하는 중령에 비해 밀러의 대답은 별로 우호적이진 않았다.
"대대장 부대에 라이언이란 일병이 있어 데리러 왔소."
"라이언? 음... 잘 모르겠는데... 부관! 찾아 봐."
얍삽하게 생긴 소위가 급히 중형 텔콤을 꺼내더니 라이언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금새
결과가 나왔다.
"대대장님. 라이언 일병은 지금 프로토스 2 공략 부대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코사크 상사가 소위의 말을 가로챘다.
"그건 우리도 알고 왔습니다. 지금 어디쯤 있는건지 그걸 몰라서 그러는거지요."
"2차 공략 부대는 잘 아다시피 소식이 끊겨서 우리도 위치 파악이 안됩니다. 어쩜
다 전사했을지도 모르죠. 워낙 무리한 작전을 하달받았는지라 병력 손실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대대장이 거들먹거리는 투로 말을 이었다.
"후방 것들은 도대체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모르나 봐. 지금도 봐. 내가
기를 쓰고 레이쓰 지원을 요청 안했으면 여긴 그냥 초토화 되었을 걸. 음... 그나
저나 자네에게 도움이 못돼서 미안하구만. 아무래도 직접 찾아 봐야 할거야."
제니 중사가 영혜에게 속삭였다.
"한심해서... 원... 내가 전투 진형은 잘 모르지만 기본 벙커 넷에, 공성 전차
10여대가 수비하면 질럿따위는 대대 단위로 와도 못 뚫는 것은 알아요. 요는 기지
건설을 엉망으로 해 놓았다는 건데... 하여간 저 대대장 완전히 무능의 극치를
달리고 있어요. 거기다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영혜도 수긍이 갔다. 이 전진 베이스의 기지 형태는 군사 교본에서 보아 온 방어용
모범 베이스 건설과는 너무 차이가 났다. 기본적으로 벙커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완전
노출 되어 있어 공격을 받으면 쉽게 무너지도록 자리 잡고 있었다. 설마 베이스를
공격받겠냐고 안일하게 기지를 꾸려 놓은 것에 틀림이 없었다. 밀러의 대원들은 모두
같은 생각인 듯 대대장의 말을 들으며 혀를 찼다.
"하여간 대대장은 벙커나 씨즈는 깨져도 서플라이는 무사히 보호했으니 보급품은
확실히 지켰구료. 그나마 다행인 것 같소. 우리 대원 하나가 부상이고, 보급품을
보충해야 겠으니 협조를 부탁합니다. 특히 이번 작전엔 광학조명탄(Optic Flare)이
필요한테 여기서 보급 받을 수 있겠소? 저그 3 콜로니 전방에 설치한 4차 디포우에
준비는 해 놓았다고 하지만 여기 상태를 보니 거기도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을 것
같구료."
"옵틱플레어... 옵틱플레어... 아하! 그거. 시제품 몇 개 가져 왔지. 아다시피
우린 메딕이 전부 전방 조이기 병력으로 같이 가는 바람에 그거 쓸 장교가 없어
고대로 다 있을거야. 뭐 그정도야 얼마든지 보충해 줄 수 있어."
밀러의 말에 가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대대장은 여전히 거들먹거리며 제 딴에는
넉넉하게 보이는 미소까지 띄우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기지의 입구에서 다시
콩 볶는 듯한 가우스 소총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놀라서 그
쪽을 보는데 역시 전투 능력의 차이가 현저하게 드러난 것이 밀러의 대원은 벌써
산개하며 은폐와 동시에 사격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부상에서 겨우 회복되어 몸을
가누기 힘든 이스마엘조차 밀러의 뒤에 바싹 붙으며 프라즈마 화염 방사기의 안전
핀을 풀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뭔 소리야?"
당황한 대대장은 부관을 돌아보고 부관은 부관대로 헤메고 있는데, 입구에서 벌어진
소란은 금새 기지 안 쪽으로 밀려 들어 왔다. 푸른 색의 질럿 군대가 다시 습격을
해 온 것이다. 레이쓰가 거의 삼분의 이 가량을 섬멸하고 쫓아 냈지만 다시 모여
재 정비 한 뒤 한꺼번에 밀고 들어 온 질럿은 전의 공격에서 벙커나 씨즈의 저항을
다 없애 버렸기 때문에 수월하게 입구를 재 돌파 할 수 있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
라도 반드시 이 기지를 점령하겠다는 프로토스 쪽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이봐! 부관...... 레이쓰를..... 레이쓰 원조를 요청 해!"
대대장이 악을 썼다. 그러나 부관도 당황한지라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는 사이 질럿은
산발적인 마린의 저항을 무시하고 기지 한 가운데로 밀려 들어 왔다.
"대대장. 잠시 지휘권을 내게 주시오."
밀러는 대대장의 대답도 듣지 않고 예의 그 우렁찬 소리로 고함쳤다.
"나 밀러다! 지금부터 내가 지휘한다. 전 마린은 후퇴! 진을 짠 내 부대의 뒤로
정비하여 화망을 똑같이 구성한다. 빨리 뛰엇!"
그 시끄러운 속에서도 밀러의 워낙 큰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 되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응사하던 마린은 밀러의 명에 따라 일제히 도망쳐 이미 반원형으로 진을 짠 밀러
부대의 뒤로 각각 뭉치더니 일제히 달려드는 질럿 떼에 집중 사격을 시작했다. 마린
하나 하나의 가우스 소총 파괴력은 약하지만 일단 수십명이 뭉쳐 한 점으로 집중하여
사격을 하니 그 화망에 걸리는 질럿들은 순식간에 실드를 날리고 연기로 사라졌다.
개중 외곽으로 치고 드는 질럿이 마린을 공격했으나 그들의 플라즈마 검은 두 번을
휘두를 틈이 없었다. 부상 당한 마린조차 비로서 할 일을 만난 제니와 실비아, 영혜의
치료(Healing)에 전투력을 쉽게 회복하여 전투의 양상은 금새 유리해졌다.
처음 이 기지를 습격했을 때의 대군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병력으로는 기지를 점령할
순 없었다. 질럿은 결국 많은 희생을 내고 가우스 소총의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 나
서로 팽팽히 대치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지 안 쪽에서 방어를
하는 통에 질럿이 뭉쳐 있는 가까운 곳에 아군의 팩토리가 있었던 것이다. 질럿 중
몇 명이 팩토리로 달려 들더니 플라즈마 검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이 전진 베이스는
팩토리를 설치하기 위한 기지였다. 팩토리의 외벽이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마린들은
조금씩 질럿을 밀어 붙일 뿐 대책이 없었다. 밀러의 표정이 변했다. 팩토리의 중요성
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밀러였다.
"이런 쓰팔! 벌쳐(Vulture)! 벌쳐는 없어? 이럴 때 뛰쳐 나가야 할 거 아냐!"
밀러가 대대장에게 악을 썼다. 대대장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부관에게 지시했다.
위잉....... 요란한 이온 추진기의 엔진 소리가 기지 안 쪽에서 들리며 세대의 벌쳐가
뛰쳐 나갔다. 엄청난 속력으로 달려나간 벌쳐는 팩토리를 부수고 있는 질럿들에게
총류탄을 쏘기 시작했다. 연사 속도는 느리지만 파괴력은 대단한 총류탄이 터지자
질럿 중 몇이 충격으로 쓰러졌다. 그리곤 간신히 비틀거리며 일어 섯다. 전투력의
상당량을 잃은 듯 했다. 벌쳐가 다시 두번째 총류탄을 쏠 때 주변의 질럿이 우 덤벼
들었다. 한대는 총류탄을 쏜 뒤 얼른 뒤로 튀었으나 두 대는 머뭇거리다 질럿에게
둘러 쌓이더니 그냥 순식간에 터져 버렸다. 그 꼴을 보고 대대장과 밀러의 안색이
동시에 벌겋게 달아 올랐다. 밀러가 대대장을 쳐다 보았다. 분노로 인해 머리칼이
곤두서고 있었다.
"쓰팔! 이 개새끼야! 벌쳐 콘트롤을 어떻게 가르쳐 놓은거야?"
계급이고 뭐고 없이 밀러의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도망쳐 나온 한 대의 벌쳐를
향해 밀러가 이리 오라고 고함을 쳤다.
그 때,
부관이 들고 있는 텔컴에서 또 다른 욕설이 들려 왔다.
"이 쉬팔! 아까부터 불러도 아무도 대답이 없어! 뭐하는 거야? 완전히 똥싸고
질러 앉았구만. 내가 내려 갈게!"
전투의 와중이라 알 수 없었는데 어느 틈에 기지 위에는 드롭십(Dropship)이 한 대
떠 있었다. 그 드롭십이 하강을 시작하더니 지상 20 미터쯤 내려 왔을 때 아랫 문이
열리며 벌쳐 한대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땅에 충돌하기 전에 이온 추진 엔진에
불이 들어 오더니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땅을 박차고 나간 주황 색의 벌쳐에는 검은
가죽 잠바에 선글라스를 쓴 턱수염이 지저분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새로 도착한
벌쳐는 쏜살같이 팩토리로 달리더니 질럿에게 총류탄을 갈겼다. 질럿 몇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며 벌쳐에게 달려 들었다. 그 질럿 사이를 절묘한 운전으로 누비며 빠져
돌아 나간 벌쳐는 질럿이 돌아서는 사이로 총류탄을 갈겼다. 다시 쓰러지는 질럿,
일부의 질럿이 팩토리에 붙어 부수려하나 벌쳐는 귀신같은 운전으로 그들 앞을 스치고
돌며 또 총류탄을 갈겼다.
"저런 콘트롤 하는 놈은 내가 딱 하나 알구 있지."
밀러가 중얼거렸다. 그의 앞에 도망쳐 나온 벌쳐가 서자 밀러는 사정없이 조종사를
끌어내리고 대신 올라탔다. 그리고 팩토리 앞에 뭉친 질럿 떼를 향해 돌진을 했다.
벌쳐 두 대가 종횡무진으로 질럿 떼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둘의 콘트롤은 그야말로
막상막하, 서로 손이 딱딱 맞아 들어 갔다. 하나가 후퇴하면 다른 하나가 앞서 나가며
총류탄을 쏘고, 그 쪽으로 질럿이 몰리면 순식간에 뒤로 돌며 치고, 벌쳐 조종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서로 경쟁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반 중대는 될 것 같았던
질럿이 누적된 총류탄의 타격으로 하나, 둘 씩 사라지고, 더불어 뒤 쪽에서 조여오는
마린의 총격에 죽어나가서 결국 질럿의 2 차 습격은 완전 무위로 돌아 가고 말았다.
단 한 명의 질럿도 살아서 기지를 빠져 나가지 못했다.
벌쳐 조종술이 어찌나 황홀한 예술이었는지 싸우는 마린들도 넋을 잃고 볼 정도였다.
신중한 코사크 상사조차 감탄하고 있었다.
"대장이 벌쳐 콘트롤 하는 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전에 딱 한 번 보고 어찌나
환상적 이었던지 내 평생 밀러 부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 할 정도였어.
그나저나 대장과 저렇게 쌍벽으로 벌쳐를 조종할 정도의 사나이라면 누군지 말
할 필요도 없겠구만."
"누구에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실비아가 고개를 모로 꼬면서 질문했다. 그 대답은 제니가 했다.
"공화국의 영웅 '짐 레이너', 지금은 어느 부대에도 소속이 안 된 프리이지만
밀러 대위와는 사관학교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였지. 오늘 우린 정말 대단한 전쟁
예술을 본거야."
마린들이 가우스 소총을 하늘로 조준하고 마구 쏴대며 환호하는 앞으로 두 대의
벌쳐가 나란히 섯다.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두 남자가 각각의 벌쳐에서 내렸다. 짐
레이너와 밀러 대위는 지저분한 수염이 온 얼굴을 덮었다는 점에서 아주 비슷하게
보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밀러는 눈이 뱁새처럼 작았고, 짐 레이너는 왕방울처럼
퉁퉁거리는 눈 이었다는 점이다.
"자네 녹슬진 않았구만. 여전해."
짐 레이너가 웃으면서 밀러에게 악수를 했다.
"자네 또한 그래. 근데 여긴 왠 일인가?"
실눈을 더 가늘게 뜨며 밀러가 답했다.
"아다시피 내가 좀 그런 친구가 있지 않은가? 페닉스(Phenix)라고... 전쟁을 좀
끝내 볼라고 애 쓰는데 영 말들을 들어 먹어야지. 프로토스 어둠의 기사단과
선을 이어 주겠다고 해서 가는 길인데 이 눔들이 원래 안 보이는 놈들이니
찾을 길이 있나. 이리 저리 헤메다보니 드롭 십의 연료가 거의 바닥이 나서
보충하려고 찾아 왔는데 위에서 보니 영 똥을 싸서 뭉개고 있는 꼴이 답답해서.
일단 설치긴 했는데... 근데 저 위에 페닉스가 있어. 걔가 영 맘이 불편할거야.
어쨌건 프로토스 족 이니까....."
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호하는 마린의 가운데로 둘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갔다.
"어서 오게. 레이너, 밀러 수고 많았어. 역시 자네들은 대단한 실력이야.
사관학교 수석을 누가 하느냐가 우리 동기들의 최대 관심사였지."
"뭐 그래도 나야 일찌감치 프리로 돌았고, 밀러는 아직도 대윈데 자넨 벌써
중령으로 대대장 아닌가? 역시 자네가 우수한거지."
짐 레이너가 예의삼아 대대장에게 답했다. 그 말이 맘에 들은 듯 대대장은 연신 싱글
거렸다. 밀러는 일단 이스마엘을 야전 병원으로 보내 정밀 검사를 받게 하고, 부대원
들에게 장비 점검과 보급품 수령을 지시하고 5시간 후 집결을 명령하고 짐 레이너와
함께 대대장의 뒤를 따라 벙커로 들어 갔다. 실비아는 이스마엘을 쫓아 야전 병원으로
갔고, 눈웃음을 요염하게 흘기던 제니는 오하라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전방의 반 쯤
무너진 막사로 앞서 갔다. 오하라 역시 실실거리며 쫓아가는데 제레미가 투덜거렸다.
"이 씨~ 분대장만 독차지 할거요?"
오하라가 겸연쩍은 듯 더듬거렸다.
"야! 한번만 봐주라. 요번까지만이다. 아마 담부터는 제니 중사가 직접 니들 찾을
거야. 저 여자가 원래 그래. 워낙 이게 세거든....."
오하라는 손가락으로 묘한 사인을 하면서 제니가 사라진 막사로 들어 갔다. 대원들은
휘파람을 한 번 불어서 운 좋은 오하라를 격려해 주었다. 메딕 중 혼자 남은 영혜는
지금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샤워장이 있기야
있겠지만 이 폐허의 와중에 그것을 물어 볼 용기가 없었다. 어쨌건 지금 팬티를 갈아
입어야 했다. 저글링과의 전투에서 놀라 오줌을 쌌기 때문에 강화복 안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영혜는 두리번거리며 몸을 가릴 곳을 찾았다. 무너진 벙커 중 한 개가
그래도 형체가 조금은 남아 있었다. 그곳을 향해 갔다.
메딕 강화복은 무겁진 않았지만 부피가 상당히 커서 움직임에 적잖은 지장이 있었다.
그것을 벗어 던지니 살 것 같았다. 강화복에서 브래지어와 팬티만의 상태로 빠져나온
영혜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몸에 느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밀폐된 옷이라
답답하게 갇혀있던 육체가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시원함을 느꼈던 것이다.
벗은 강화복에서 야릇한 냄새가 스며 나왔다. 보는 사람이 없건만 영혜는 얼굴이 빨개
졌다. 이 강화복을 다시 입기는 꺼림칙했다. 어차피 여기서 새로 보급을 받을 예정
이므로 강화복도 한 벌 요청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이 강화복은 소각을 해서 절대로
남이 못 보게 해야 할 것이다. 문득 하체를 내려보니 팬티에 얼룩이 배어 있었다.
다시 부끄러워진 영혜는 악몽을 떨치듯 부르르 몸을 한번 떨더니 얼른 팬티를 벗어
내렸다. 찝찝한 이 기분을 없애려면 샤워를 하면 좋으련만......
강화복의 보조 주머니에서 새 팬티를 꺼내 막 입으려는 순간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영혜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헤이 소대장 언니. 죽이는 몸매구만. 끝내 줘! 엉덩이가 삼삼한데..."
'콜린 주니어'였다. 영혜가 허물어진 벙커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어느 틈엔가
뒤 쫓아 온 것이다. 얼굴의 흉터가 그의 음흉한 웃음에 따라 실룩거려 소름 끼쳤다.
"너! 뭐하는 짓이야. 빨리 못 나가?"
급한대로 새 팬티로 아래를 가리고 영혜는 호통 쳤다. 그러나 콜린은 느물느물한
웃음을 지으며 오히려 영혜에게로 접근해 왔다.
"킬킬... 인형 같은 년은 막내랑 같이 있어 형된 입장에 먹기가 좀 그렇구,
걸레는 내 차례 기다릴라니 한 참 있어야 할 것 같구, 좆은 꼴리는데 견딜
수 있나? 소대장 언니한테 기대봐야지. 킬킬.. 킬킬.."
걸어오면서 콜린은 바지의 앞 섬을 천천히 풀고 있었다. 열린 틈으로 흉측한 그의
물건이 삐져 나왔다. 파랗게 질린 영혜는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섰다. 콜린은 축
늘어진 물건을 주물러 그 크기를 키우며 연신 소름끼치게 킬킬거렸다.
"너! 이 자식! 안 나가면..... 소리 칠거야!"
구석까지 밀려난 영혜는 몸을 웅크리며 이를 악물었다.
"킬킬킬..... 소리 질러! 괜찮아 크게 질러 봐. 여기 주변엔 마린 밖에 없어.
들어 오면 같이 하는 거지. 언니 사실은 여럿 불러다 떼로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킬킬킬..... 그것도 좋겠다. 불쌍한 놈들 전방에 나와서 어디 여자
구경 해 봤겠어? 킬킬... 킬킬..."
콜린의 성기가 꿈틀거리며 빳빳이 일어 서는 것이 눈에 보였다. 영혜는 이 위기를
어떻게 탈출해야 좋을지 전혀 대책이 안섰다. 일미터 앞까지 다가 온 콜린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팬티를 보고 멈추더니 그것을 주워 들었다. 좀 전에 벗은 팬티였다.
그는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팬티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 것 이었다. 영혜는
순간 분노에 부끄러움까지 겹쳐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흐으으으..... 죽이는 냄새다. 근데 언니. 많이 찌렷나 보네? 색깔이 아주 보기
좋아... 흐흐흐..."
콜린이 영혜의 팬티에 취해 있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그녀는 콜린의 사타구니를 발로
힘껏 걷어찻다. 놀란 콜린이 몸을 움츠리며 겨우 피하는 사이에 입구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콜린은 잽싸게 그녀의 앞을 막아섯다. 영혜는 손과 발을 마구 휘두르며 콜린을
때렸으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킬킬거리며 콜린은 그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야아! 언니 독한데. 그렇게 팔닥거리니 정말 더 쏠린다. 맘에 쏙 들어!"
넘어진 영혜의 몸 위로 콜린이 올라타더니 양 무릎으로 그녀의 어깨를 내리 눌러 꼼짝
못하게 구속했다. 자연히 콜린의 거대한 성기가 그녀의 턱 아래에 자리 잡고 걸떡 거
리기 시작했다. 묘한 냄새가 성기에서 폴폴 풍겨 올랐다. 영혜는 바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콜린의 몸은 철석같이 그녀를 누르고 있었다. 손으로 성기를 움켜 쥔
콜린은 그것을 영혜의 볼에 마구 비벼댔다. 볼에 닿는 남자의 뭉클거리는 살 감촉이
너무 진절머리나서 영혜는 고개를 마구 도리질 쳤다. 콜린의 기분나쁜 웃음이 계속 벙
커에 울려 아프게 귀속으로 파고 들었다.
마구 영혜의 얼굴에 성기를 마찰시키던 콜린은 영혜의 입 속에 그것을 넣으려는 듯,
그녀의 입술에 가져갔다. 진한 남자의 냄새가 코 끝을 찌르며 입술에 닿는 이물질의
감촉에 영혜는 질색을 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쓰발 좋으면서 뭘 그래. 한번 대차게 빨아 줘. 언니"
콜린은 비양거리면서 영혜의 턱을 잡더니 손가락으로 입 술 아래를 꾹 눌렀다. 영혜의
입이 조금 열리자 콜린은 얼른 성기를 가져댔다. 영혜는 더듬거리며 간신히 소리쳤다.
"개 자식!..... 대가리 짤라져서..... 평생 불구로..... 살고 ..... 싶으면.....
니..... 맘대로..... 해 봐!"
워낙 서슬이 시퍼런 말인지라 콜린은 순간 동작을 멈추었다. 영혜의 눈을 보니 정말
입에 성기를 물렸다가는 잘릴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는 핏 빛의 살기가 번뜩이고 있
었다. 콜린은 영혜의 입 공략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헤이. 언니. 진짜 독하다. 뭐 할 수 없지. 언니 입은 아래에도 하나 있잖아? 고긴
이빨이 없으니 내 거 자를 수야 없겠지. 음... 좋구만. 내 좆을 아랫 입에 물려
줄게 한 번 힘껏 잘라 봐."
콜린은 자세를 바꾸어 영혜의 몸 위에 엎드렸다. 브래지어를 한 순간에 잡아 뜯더니
탄력있는 유방을 두 손으로 거머쥐며 얼굴을 묻어 버리는 것 이었다.
"헉!"
유방을 먹어 치우는 콜린의 입을 느끼고 영혜는 비명을 질렀다. 손과 발을 버둥거리며
콜린을 떼어내려 애썼다. 콜린은 그녀의 저항은 무시하고 거칠게 유방을 주물렀다. 발
버둥치는 두 다리가 헛되게 허공을 찻다. 아무리 뒷통수를 두들겨도 유방을 빠는 그의
입을 떼어낼 수 없었다. 힘의 강약이 완연한지라 꼭 오무리고 있던 두 다리 사이로
점차 콜린의 하체가 밀려 들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일어선 남자의 성기가 아랫배를
거칠게 찔렀다. 애무고 뭐고 없는 난폭한 강간 이었다.
"너!.... 너!..... 죽어! 이 새끼야!..... 비켜!....."
울음마저 섞인 영혜의 비명이 연신 터지건만 그것마저 즐거운 듯 콜린은 실실거리며
엉덩이를 쿡쿡 내리 꽂았다. 그 때마다 영혜는 하체를 이리 저리 틀며 간신히 피해
가곤 있었지만 곧 허물어 질 것은 너무도 뻔했다.
거칠게 찍어 누르는 콜린과의 사투는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영혜는 버티지 못하게 되었다. 전혀 느낌은 없었지만 연신 주무르며 빠는
콜린의 거친 애무에 그의 입 속에 담긴 젖꼭지가 팽팽하게 일어 섯고, 계속되는
성기의 마찰에 의해 음부에서도 어느 정도 미끈거리는 애액이 스며 나왔다.
"헤이. 언니. 역시 언니도 좋아하는구만. 이봐! 결국은 젖었잖아."
승리의 표정을 짓는 콜린의 손가락에 영혜의 음부에서 배어나온 애액이 번들거렸다.
영혜의 눈 앞에 손가락을 흔들며 예의 그 소름끼치는 웃음을 잔인하게 흘렸다. 손가락
에 투명하게 흐르는 자신의 분비물을 보며 영혜는 힘이 탁 풀리며 눈이 감겨졌다.
그리고 저항이 멈추어졌다. 힘이 다 한지라 어쩔 수 없었다. 가쁜 숨 때문에 유방의
흔들림이 매우 빨랐다. 콜린은 축 늘어진 영혜의 모습을 의기양양하게 바라 보았다.
이젠 다 된 밥인지라 그는 서둘지 않았다.
"언니야. 너무 서글퍼 하지마. 내 좆 맛을 보면 언니도 너무 좋아서 뿅갈거야.
내 힘껏 박아 줄게 기대 해 봐."
수치스런 말을 계속 듣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사단 정보처 유 재인의 얼굴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의 말을 듣는 것 이었는데, 이런 거지 같은 일에 쫓아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가슴이 아파왔다.
"허억!"
다리 사이의 가장 연한 살에 뜨거운 감촉이 느껴졌다. 어느틈에 영혜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은 콜린이 혀로 그녀의 민감한 부분을 핥기 시작한 것 이었다.
"으와! 이 냄새! 맛! 죽인다. 죽여!"
단 한마디의 말도 여자의 수치를 자극하지 않는 말이 없었다. 콜린은 입을 바싹
영혜의 음부에 붙이고 그녀를 확실하게 먹어 갔다.
열기가 조금씩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이었다. 저항을 포기
한 순간부터 예정된 수순이라 조금씩 영혜의 몸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콜린은
능숙하게 그 불길을 지펴 나갔다. 그의 혀가 움직이는 부분마다 일어서는 영혜의
속 살들이 애액을 분비하며 촉촉해졌다. 간질거리는 짜릿한 자극이 하체에서 조금씩
일어나는지라 영혜는 이래선 안된다 생각하면서도 몸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윽고 콜린은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 순간이 된 것이다. 영혜도 그 순간이 된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머리 속에 맴돌던 재인의 얼굴이 허물어지며 사라졌다. 콜린의
손이 그녀의 두 다리를 잡더니 양 쪽으로 활짝 열었다. 이슬이 맺혀 있는 그녀의 작은
꽃 잎이 살짝 열리며 안 쪽의 연한 살을 드러냈다. 손가락으로 조금 더 입구를 벌린
뒤 콜린의 성기가 힘찬 돌기를 파 묻기 위해 접근했다. 뜨거운 남성이 은밀한 곳에
닿자 영혜는 저도 모르게 몸을 퍼득거렸다.
"이제 그만 하쇼! 고기까지만!"
영혜도 콜린도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벙커 입구의 무너진 벽 사이로
새미 존슨과 퐁 수린이 서 있었다. 그 소리는 퐁 수린이 낸 것 이었다. 콜린은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그들을 쳐다 보았다. 영혜는 이런 모습을 남에게 보인 것이 또 챙피해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니들... 왔냐? 다 보고 있었어?"
새미 존슨이 픽 웃었다.
"하도 신나는 구경인지라 넋을 잃고 봤지. 헐헐헐....."
"마! 그럼 좀 기다려. 내 빨리 한 탕 뛰고 넘겨 줄게. 차슥들. 형님이 아무렴
니들을 버려 두겄냐?"
먹통처럼 검은 얼굴에 하얀 이만 드러낸 새미 존슨은 콜린의 말을 듣고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벌써 영혜의 알몸을 탐욕스럽게 훑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 명의 상병인 퐁수린은 전혀 웃는 기색이 없었다. 여전히 어두운 낯 빛의 그가
또박또박 끊어지는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난 그러고 싶은 생각 없어. 콜린 상병. 거기서 그만두라는 것이 내 생각
이야."
순간 콜린의 얼굴 빛이 확 변했다. 새미 존슨이 난처하다는 듯 퐁수린을 쳐다 보며
설득하려 하였다.
"헤이 퐁수린. 뭐 그냥 좋고 좋은게 역시 좋은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우리도 한번 즐기면 되는 거 아닌가? 저 여자도 이미 갈만큼 갔는데 뭘 그래.
봐 지가 다리 쫙 벌리고 가만히 있잖아?"
그 말을 듣고 영혜는 죽고 싶을 정도의 모멸감을 느꼈다.
"난 그렇게 생각 안한다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만 두라는 게 내 생각이야.
계속 이러면 대장에게 보고 할거야."
"이 씨발 놈. 같은 동양계라 끌린다 이거지? 너 죽을래!"
콜린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바지 주머니에서 짧은 칼을 꺼내어 퐁수린에게 겨누었다.
퐁수린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천천히 가우스 소총을 끌어 올리며 콜린에게 조준했다.
나직한 그의 목소리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니들 나 잘 모르냐? 아무 생각없이 난 이 총 방아쇠 당길 수 있어. 잘 알텐데."
말을 끝내자마자 퐁수린은 콜린의 발 아래로 사격을 했다. 요란한 총성이 벙커 안에
울리며 화들짝 놀란 콜린이 춤을 췄다. 새미 존슨이 얼른 퐁수린을 막아서며 당황한
말투로 말렸다.
"우이~ 씨. 진짜로 쏘냐. 야 콜린. 곤도라. 이 새끼 한번 한다면 하는 또라인 거
잘 알잖아? 우와 일 나겠다 일 나겠어."
일은 딴 곳에서 터졌다. 콜린이 갑자기 죽는 소리를 지르며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몸의 자유를 찾은 영혜가 제대로 콜린을 걷어 찬 것이다.
"우아악! 아구! 좆 같애. 이런 개 같은 일이!!!!"
"어서 나가는 게 좋을 거야. 총소리가 났으니 다들 올텐데....."
여전히 변화가 없는 퐁수린의 음성 이었다. 이젠 어쩔 수 없게 된 콜린은 이를 바득
갈았다.
"너 이시끼 오늘 빚은 내 꼭 갚아 주마. 각오 단단히 해."
"언제라도 자신 있으면 덤벼. 사양 안하니까."
퐁수린은 콜린의 협박 자체를 비웃고 있었다. 새미 존슨의 부축을 받고 엉거주춤하게
벙커를 나가던 콜린이 입구에서 갑자기 영혜를 돌아 보았다. 사타구니가 아직 아픈지
그의 손은 다리 사이를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아픔을 참고 씨익 웃는 모습이 여전히
징그러웠다.
"소대장 언니. 오늘은 그냥 끝났지만 우리 작전 끝나기 전에 꼭 한번 잘 해 보자구.
훼방꾼 없는 곳에서 말야. 어쨌건 언니 오늘은 끝내 줬어. 킬킬킬......"
둘이 나가자 퐁수린도 몸을 돌려 나갔다. 팬티를 입어 부끄러운 곳을 가린 영혜가
급히 말했다.
"저... 잠깐!"
입구에서 잠깐 멈춘 퐁수린은 여전히 변화가 없는 어조로 말했다.
"아무 말 안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죄송하지요. 콜린이 행동은 좀 그랬지만 아주
나쁜 놈은 아닙니다. 눈이 뒤집힌 거지요. 소대장님이 워낙 미모라서....."
"아무튼 고마워요. 절 구해주셔서....."
퐁수린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살짝 내비쳤다. 그는 고개를 한번 끄덕여
인사하더니 바로 벙커를 나갔다. 벙커 밖에서 이게 왠 총소리냐고 수런거리는 소리가
났다.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며 가까워 지는지라 영혜는 놀라서 얼른 강화복을
주워 입었다.
따로 갈 곳을 못 찾은 영혜는 야전 병원으로 갔다. 마린들이 영혜를 보며 수근댔지만
영혜는 애써 무시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야전 병원도 한 귀퉁이가 무너져 있었다. 많은 마린들이 신음을 내지르고 있는데
그들을 치료해 줄 군의관이 택없이 부족했다. 메딕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되련만 이
부대의 메딕은 전부 작전지역에 나가 있는지라 군의관 몇이서 땀 뻘뻘 흘리며 급히
뛰고 있었다.
이스마엘이 쉬고 있는 방을 겨우 알아 내었다. 야전 병원 지하의 모퉁이를 돌아 두
번째 방 이었다. 이미 죽을 마린들은 다 죽은지라 소란 떨 이유가 없었다.
문을 열려하는데 깔깔거리는 실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조금 열었던지라 방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실비아는 이스마엘의 침상에 같이 누워서 깔깔거리며
재잘대고 있었다.
"요거 무지 귀엽다. 킥킥"
하얀 모포 안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위치는 이스마엘의 다리 어림이었다.
이스마엘은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더듬고 있었다.
"저..... 하사님!"
"그냥 실비아라고 불러. 실비아 누나. 너 열 여덟이라며? 난 스물이야."
이스마엘을 바라보는 실비아의 눈 빛이 무척 따스했다. 서로 목숨을 구해 준 사이라
정이 듬뿍 든 그런 눈 이었다. 이스마엘도 귀여운 모습의 실비아가 적극적으로 몸에
감겨오자 어쩔줄 몰라하며 얼굴이 발개져서 그 답지 않게 자꾸 몸을 사렸다. 귀엽게
노는 그 모습을 보는 영혜의 입가에도 미소가 흘렀다. 방금 전의 그 끔찍했던 사건이
머리 속에서 사라져 갔다.
"너가 아무 이상 없다니 너무 기뻐. 만약 잘못 되기라도 했으면 무척 슬펏을거야.
근데 죽어가면서 갑자기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어?"
실비아가 제법 노련한 척하며 이스마엘의 얼굴을 쓸어 주었다. 이스마엘이 부끄러워
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머.... 먼저 실비아가 자기 죽을 것도 모르고 날 구해 주었잖아? 그래서 내가
죽더라도 실비아를 살리고 싶었지."
"호호호. 너 그제 첨 만났을 때는 꽤나 표독하더니 이제 보니 아주 순진한 애네.
꼭 내 막내 동생 같아."
"그런 말을.... 난 실비아 하사를 누나로 생각치 않아."
실비아가 빤히 이스마엘을 쳐다 보았다.
"오호라! 그럼 뭐로 생각하는데....?"
이스마엘은 대답도 못하고 실비아의 눈길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고개를 돌렸다. 모포
속에서 꿈틀거리던 실비아의 손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이스마엘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틀었다. 그 유치한 장난을 지켜보는 영혜는 웃음이 나왔다.
"악! 그렇게 꽉 쥐면...."
이스마엘이 벌개진 얼굴로 실비아를 쳐다보더니 확 끌어 안았다. 실비아는 가볍게
이스마엘의 손을 뿌리치더니 모포를 확 들쳤다. 순간 드러나는 모포 안의 모습은....
둘 다 하반신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 몸 이었다. 조것들 봐라. 영혜는 조금
놀랐다. 실비아는 그녀와 동갑이지만 하는 행동은 항상 어려 보였다. 그런데 지금
보는 모습은 그녀에 대한 그런 인식을 완전히 바꿀 정도로 다른 양상이었다. 근육질의
이스마엘의 다리 사이에 힘차게 솟아 오른 성기를 실비아의 손이 움켜 쥐고 있었다.
이스마엘은 그냥 실비아의 가는 허리를 둘러 않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녀의 손은 연신
위 아래로 움직이며 그의 성기를 한층 더 힘차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실비아의 몸은 영혜가 상상한 이상 이었다. 유럽 계통이니 영혜보다야 그 굴곡이
현란 할 것으로 예측이야 하였지만 저렇게 세세하면서 풍요로울 줄은 몰랐다. 머리
색과 똑 같은 금빛의 방초가 너무도 귀엽게 자리 잡은 아래에는 나이보다 훨씬
성숙한 여자가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말없이 서로를 빤히 쳐다 보고만 있어 숨어 보는 영혜를 감질나게 하더니 마침내
실비아가 몸을 일으켜 이스마엘의 다리 사이로 고개를 묻었다. 작은 입술이 활짝
열리며 이스마엘의 성기를 덥석 물어 버렸다. 노련한 여자처럼 입을 움직여 성기를
애무하지만 이스마엘은 가끔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 소리를 냈다. 영혜도 경험이
없는지라 이스마엘이 아파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노련한 제니라면 결코 이빨로
남자의 가장 민감한 부위를 건드리지 않을텐데 실비아는 결코 제니가 아니어서
가끔씩 이스마엘을 고통스럽게 했다. 기특하게도 이스마엘은 몸을 찔끔거리면서도
잘 참아냈다.
어쨌건 서로를 생각하는 행위에는 사랑이 깃들게 마련이었다. 이스마엘의 한 손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실비아의 금발을 부드럽게 쓸고 다른 한 손은 풍요롭게 발육한
유방을 어루 만졌다. 이스마엘의 성기를 입에 가득 물고 실비아는 스스로 웃 옷을
벗었다. 브래지어는 이스마엘이 풀었다. 그야말로 하얀 백인인 그녀가 알몸이 되자
방안이 환해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스마엘에게서 고개를 치켜드는 실비아의 입가로 연한 물기가 흘렀다. 실비아는
이스마엘의 고개를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 당겼다. 이젠 이스마엘의 차례였다. 힘껏
실비아를 끌어 안은 이스마엘은 곧바로 그녀의 탐스런 유방에 깊이 고개를 파 묻고
빨아 들였다.
"하아...."
숨찬 실비아의 신음이 방에 울렸다. 영혜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만
보는게 나을 것 같은데 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실비아...."
이스마엘이 중얼거렸다. 그답지 않게 상당히 부드러운 동작으로 실비아의 유방을
애무했다. 실비아는 금새 달아오르는 타입인 듯 이스마엘의 혀가 도드라진 유실을
핥을 때부터 벌써 콧소리 섞인 신음을 내고 있었다.
실비아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이스마엘의 입에서 가슴을 빼내더니 거꾸로 그의
몸에 올라타고 다시 꼿꼿이 부푼 성기를 한껏 물었다. 자연히 실비아의 아랫배를
얼굴에 댄 이스마엘도 거리낌없이 혀를 내밀어 실비아의 다리 사이를 공략했다.
가끔씩 실비아는 애무를 멈추고 고개를 치켜든 자세로 눈을 지긋이 감고 자신의
음부를 자극하는 이스마엘의 애무를 황홀한 표정으로 느끼곤 하였다. 지켜보는
영혜가 다 부끄러워질 정도로 둘이 나누는 사랑의 행위는 적나라하였다. 영혜는
자신의 두 다리 사이로 무엇인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손을 강화복
안으로 넣어보니 어느틈엔가 다리 사이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씁쓸한 미소가
영혜의 입가에 감 돌았다. 자신의 손이 새로 갈아입은 팬티위에 닿자 짜릿한
감촉이 하반신에서 울려 퍼졌다. 이렇게 자위를 배우는구나. 영혜는 새로운 것을
하나 깨달았다. 그리 부끄럽다 생각 안했기 때문에 방안의 열기를 지켜보며 그녀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다리 사이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서로의 음부를 자극하는 둘은 이젠 완전히 걸신들린 것처럼 요란한 소리마저 내며
핥고 빨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윽고 때가 무르 익은 듯 몸을 벌떡 일으킨 이스마엘이
실비아를 아래에 눕히고 그녀의 몸에 올라탔다. 실비아는 긴 다리를 뻗어 이스마엘의
허리에 감았다. 그의 굳센 성기가 거침없이 실비아의 꽃 잎을 벌리더니 파고 들었다.
"하악! 좋아!"
실비아의 교성이 터져 나왔다. 이스마엘은 힘차게 하체를 내리 찍었다. 실비아도 뒤질
새라 이스마엘을 끌어 안고 박자를 맞추어 엉덩이를 흔들었다. 서툴어 가끔씩 방향을
놓치고 빠져 나오는 이스마엘의 성기 때문에 지켜보는 영혜는 웃을 뻔 해서 급히 입을
막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강철이라도 꿰뚫을 나이인지라 이스마엘의 성기는
그야말로 송곳같은 강인함으로 실비아의 몸 깊은 곳까지 한번에 관통해 나갔다. 묘한
신음 소리가 점점 고조되는 만큼 실비아의 몸놀림과 이스마엘의 동작이 빨라졌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행위가 조급해질수록 다리 사이를 문지르는 영혜의 손 놀림도
똑같이 조급해 졌다. 이미 팬티를 내리고 아예 맨 살을 문지르는 영헤는 전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부끄럼이 없었다.
드디어 이스마엘이 신호가 온 듯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짐승같은 신음 소리가 튀어
나왔다. 실비아의 높은 교성이 그에 박자를 맞추며 터졌다. 그리고 지금까지보다 훨씬
거세고 빠른 움직임으로 이스마엘의 성기가 실비아의 하체를 공격했다. 굳센 남자의
성기가 실비아의 몸 속을 거침없이 드나들었다. 영혜의 머리 속이 아득해지며 다리
사이에서 생긴 짜릿한 쾌감이 몸 전신을 감싸고 불꽃처럼 기분좋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리가 떨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어 영혜는 문 옆의 벽에 기댔다.
이스마엘이 실비아의 몸 위로 엎어지며 둘의 신음은 끌리는 듯 자지러져 갔다. 영혜의
눈에는 더 이상 둘의 모습이 들어오지 않았다. 감은 눈 앞으로 폭죽처럼 불꽃이 화려
하게 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때? 이스마엘. 누나 잘 하지?"
영혜는 실비아의 방울 굴러가는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환몽에서 벗어났다. 짜릿한
감촉이 아직도 다리 사이를 감돌고 있었다. 휴우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한 숨을
내쉬며 그녀는 문을 살짝 밀어 닫았다. 둘의 재잘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래도 실비아 하사! 무지 서툴어. 노력은 인정하지만. 자 이리 와 봐. 다시
해보자구."
"아쭈! 넌 잘해서? 좋아 다시 해 보자구....."
모퉁이를 돌며 영혜는 수년 내에 실비아가 제니 뺨치는 기가 막힌 메딕이 될 것이란
확신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실비아의 장래보다 엉망으로 젖어 있는 자신의 하체를
씻을 곳이 필요했다. 화장실이라도 찾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영혜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 코르룰루 섹터 6월 9일 04시 40 분
"저그 3 콜로니(Colony) 돌파의 개요는 이렇다. 정찰에 의하면 이곳은 협곡
사이 지형이므로 돌아 나갈 다른 길이 없다. 정면 돌파 밖에 없는데 적의
예상 병력은 저글링과 히드라(Hydralisk)가 섞여서 두 중대가 넘는 것 같다.
이들보다 골치 아픈 것은 가드 타워(Guard Tower)가 구축 돼어 있다는 점이다.
적절한 위치에 성큰 콜로니(Sunken Colony)가 박혀 있는데, 이것과 병력이
합쳐지면 거의 난공 불락이다."
벌써 발 밑은 저그 족의 콜로니에서 뻗어 나온 축축한 초록색의 융모로 덮여 있었다.
적의 기지가 근방에 있다는 표시였다. 협곡의 입구에서부터 펼쳐 진 저그 3 콜로니는
과연 빠져 나갈 길 없게 빽빽하게 좁은 골짜기 안 쪽을 점유하고 있었다. 적어도 대대
병력이 지키는 곳을 아무리 역전의 용사로 구성된 밀러 부대라지만 과연 돌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런 회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밀러가 된다면 되는 것이라 단단히 믿고 있는 부대원들이라 조금이라도 밀러의 말을
놓지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 이었다. 그들 사이의 견고한 신뢰에 메딕들은
새삼 놀랄 뿐 이었다.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먼저 가드 타워부터 부숴야 된다. 이것은
고스트가 할 일이다. 클로킹하고 들어가 이 지도 상의 3, 8, 13, 15 위치의
성큰 콜로니를 처치 한다. 정보에 의하면 이곳에는 오버로드(Overlord)가
셋 있다고 한다. 고스트가 접근하면 분명히 오버로드가 나타날텐데 이들을
처리하는 것이 이 소위가 해야 할 일이다."
영혜는 아직 밀러의 작전이 이해가 안 되어서 뻔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 보았다.
오버로드가 있으면 그 관측 능력으로 인해 고스트가 클로킹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간호 장교인 자기가 어떻게 오버로드를 맡아 처리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영혜의 고민을 알아차린 밀러가 곧 말을 이었다.
"광학 조명탄은 원래 야간 전투에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 되었지만 연구가 진행
됨에 따라 기막힌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옵틱 플레어의 많은 양이 2 클릭
앞에서 터지면 시야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소위는 고스트와
같이 침투해서 오버로드의 시야를 완전히 죽여 버리는 것이 그 임무다. 그러면
고스트가 아무 방해 없이 성큰 콜로니를 파괴할 수 있다. 다른 대원들은 이들이
침투할 수 있도록 입구에서 소란을 떨며 적의 시선을 끌어 들이는 역할을 한다."
비로서 영혜는 밀러의 작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옵틱 플레어는 강한 조명탄이고
일반 하사관 급 메딕은 직접 마린을 서포트하기 때문에 사용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일반 병사의 치료에 힘을 안써도 되는 장교급의 메딕이 옵틱 플레어의 사용법을 익히
게 된 것 이었다. 그러므로 이 무리에서 옵틱 플레어의 조합과, 작동법을 아는 것은
영혜 밖에 없었다. 상당히 위험이 많은 밀러의 작전이지만 어느 틈에 밀러의 부대원과
같은 눈으로 밀러를 바라보게 된 영혜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임무를 받아 들였다.
오히려 제니와 실비아가 걱정 된다는 듯 영혜를 근심 어린 눈으로 보았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작전은 저그 3 콜로니 전초 기지의 파괴가 아니다. 가장
빠른 코스로 돌파해 빠져 나가는 것이 최선의 목표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하지 말도록."
밀러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은 각자 맡은 지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화이어 뱃 둘을
전열에 세우고 메딕 둘이 중간 열에 서고, 밀러를 포함한 마린들이 뒷 열에 섯다.
가장 확실하게 일점사를 할 수 있는 학익진을 구축한 채 그들은 서서히 협곡으로 들어
섯다.
영혜는 옵틱 플레어의 큰 통을 짊어지고 고스트의 뒤를 따랐다. 여러 장비를 부착한
고스트와 영혜는 밀러 부대의 옆으로 협곡의 벽을 따라 들어 갔다. 질척한 저그 족의
콜로니가 발에 척척 감겨 들어와 걷는데 힘이 들었으나 긴장된지라 그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방에 세개의 흉측한 모습의 성큰 콜로니가 보였다. 일정 거리를 두고 땅에 박혀
있는 그 모습에 영혜는 겁이 덜컥 났다. 고스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클로킹을 걸어
몸을 숨기더니 바로 가장 왼 쪽의 성큰에 다가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40 미리 산탄
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보통 고스트가 쓰는 25미리 산탄총에 비해 파괴력이 월등
하지만 그래도 혼자 쏘는지라 그 파괴력은 성큰 콜로니에 험짓을 낼 정도로 미약할 뿐
이었다. 한 참 동안 쏘아서 산탄 총알의 파괴력이 누적되자 비로서 성큰에서는 초록색
피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시야에 보이지 않는 적인지라 성큰 콜로니는 속수무책
으로 고스트의 총알을 고스란히 다 맞았다.
이윽고 계곡 안 쪽에서 소식을 들은 듯 저글링이 예의 그 악귀 같은 모습으로 뛰쳐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저글링과 비슷한 모양새이면서 거의 두 배 쯤
큰 덩치를 가진 히드라가 쫓고 있었다. 수십마리의 그들은 일단 파괴 당하고 있는
성큰의 주변에 모였으나 역시 고스트의 흔적을 잡을 길이 없었으므로 두리번거리며
목표물을 찾다가 결국 돌 틈 사이에 숨어 있는 영혜의 모습을 발견했다. 히드라와
저글링이 요란한 소리를 내지르며 영혜에게 달려 드는데 그들을 향해 가우스 소총의
엄청난 화력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피 떡이 되어 몇 마리의 저글링이 날아가고, 공격
우선 순위에서 벗어나는 영혜를 버려두고 히드라와 저글링은 밀러의 부대로 돌진
하였다.
지형의 우위를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저그 족의 병력도 전처럼 많은 것이 아니어서
적절한 엄폐와 메딕의 도움을 받은 밀러 부대는 아주 조금씩 저그를 밀어 부치기 시작
했다. 히드라의 니들 스파인(Needle Spine)이 비록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지만 노련한
밀러 대원의 집중사를 견딜 수 없었다. 달라 붙어야만 싸울 수 있는 멜리(Melee)공격
유닛인 저글링은 이미 그들 잡는데는 도가 튼 두 화이어 뱃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두
메딕의 서포트를 감당하지 못하고 연신 죽어 나갔다. 넓은 지형이라면 수가 엄청 적은
밀러 부대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이겠지만 협곡의 좁은 병목 지역에서는 오히려
히드라와 저글링이 우왕좌왕하며 한 열씩 차례대로 공격을 받아 수의 유리가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오로지 성큰 콜로니만이 막강한 파괴력으로 저그 족에 힘을 더할
수 있건만 밀러 부대는 성큰의 사정거리 밖에서 저그를 상대하며 고스트가 성큰을
파괴하기만 기다리는 것 이었다.
피를 철철 흘리던 성큰이 기어코 철버덕하면서 내장을 까 뒤집으며 죽어 버렸다. 때를
놓칠세라 밀러 부대는 죽은 성큰이 있는 쪽으로 옆의 성큰의 사정거리를 재며 전진
했다. 히드라와 저글링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 섰다. 이렇게 조직적으로 잘 통제되는
군은 처음 겪는지라 맞짱을 떠서는 피해가 엄청 클 것임을 느낀 모양 이었다. 계곡
안에서 둥둥거리며 풍선 같은 것이 떠오기 시작했다. 개 떼처럼 달려 붙는 방법으로는
밀러 부대를 처치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저그 쪽에서 전투를 지휘하기 위해 오버로드가
급히 나온 것 이었다. 오버로드의 시야 안으로 들어 오면 고스트의 클로킹이 아무
소용이 없어지므로 고스트가 집중 공격을 받아 위험해 진다.
영혜는 지금이 자신이 나갈 때라는 것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무거운 옵틱 플레어
통을 지고 뛰쳐 나갔다. 여전히 저글링과 히드라는 그녀에겐 무관했다. 악귀같은 저그
무리의 가운데를 뚫고 지나 고스트의 옆으로 다가 갔다. 거대한 풍선 같은 오버로드가
다가옴에 따라 고스트의 클로킹이 벗겨지며 희미하게 그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적군 한 가운데서 공격 우선 순위 제 일번인 고스트가 자취를 드러내면 바로 집중타를
맞고 죽는 길 밖에 없었다.
영혜는 플레어의 발사구를 오버로드에 조준한 뒤 교범에서 배운대로 양을 조절했다.
섬광 발생을 최대로 맞추고 화망은 최대로 좁게 했다. 고스트의 모습이 거의 보이게
되자 저글링과 히드라의 시선이 고스트에게 향했다. 순간 영혜의 손에서 한 줄기
붉은 광선이 뻗어 나가 오버로드를 적중 시켰다. 굉음이 사방으로 울리며 밝은 빛이
오버로드의 앞에서 짧게 터졌다가 금새 사라졌다. 오버로드가 갑자기 공중에서 뒤뚱
거리며 방향을 못 잡더니 계곡 오른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보일듯 하던 고스트의
몸이 안개에 휩싸인듯 다시 사라져 버렸다. 성공 이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오버로드는 오른 쪽 절벽에 부딛혀 피를 흘리며 떨어졌다. 밀러
부대의 화력이 한층 치열해졌다. 히드라와 저글링은 꼼짝 못하고 뒤로 후퇴했다.
협곡의 중앙까지 밀고 들어가며 같은 방법으로 고스트와 영혜는 성큰과 오버로드를
제거 했다. 다른 성큰의 공격 거리를 교묘하게 벗어나면서 밀러 부대는 그들의 뒤를
따라 깊이 협곡 안으로 발을 디뎠다. 이미 이 지역에 있다는 세 오버로드는 전부
옵틱 플레어를 제대로 맞고 눈이 멀어 절벽에 부딛히거나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
가 버렸다. 고스트의 클로킹을 알 수 있는 디텍터(Detecter)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성큰 콜로니들은 지니고 있는 그 막강한 파괴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하나씩
고스트의 총알에 맞아 터져 나갔다.
드디어 전방에 부수어야 할 마지막 성큰 무리가 보였다. 그 중 15 번으로 찍어 놓은
것만 파괴하면 길이 열리는 것 이었다. 저그 3 콜로니의 본 지역으로 들어 가는 넓은
계곡 길 옆으로 모래 언덕으로 빠져나가는 샛길이 보였다. 이젠 다 되었구나 싶어
영혜는 한 숨을 몰아 쉬었다. 저글링과 히드라는 적이 본진을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본 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잔뜩 웅크리고 노려보고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고스트가 먼저 접근하여 성큰에 산탄총을 퍼 부었다. 히드라들이 마구
이동하며 적의 흔적을 찾으려 애 썼으나 조금이라도 접근하면 뒤에서 집중되는 일점사
를 맞아 하나 둘 씩 죽으니까 으르렁 거릴 뿐 함부로 앞으로 나오진 못했다. 성큰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고스트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스트의 흔적을 찾게 되자 성큰의 긴
촉수가 땅에서 뻗어 나오며 고스트를 공격했다. 고스트가 몸을 돌리더니 뒤로 도망을
쳤다. 성큰의 촉수가 다시 고스트를 찔렀다. 히드라와 저글링이 고스트의 모습을 보고
마구 덤벼 들었다. 다급해 진 밀러 대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스팀 팩(Steam Pack)
을 써서 화력을 높이더니 덤벼드는 히드라와 저글링에게 미친듯이 총을 난사했다.
엄청 바빠진 제니와 실비아가 스팀 팩 사용시 생기는 신경 조직의 충격을 완충시키기
위해 마린들 사이를 정신 없이 뛰어 다녔다.
영혜는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알 수 없었다. 밀러 부대를 보니 밀러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공중을 보니 거대한 풍선, 오버로드가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앞서 처치한
오버로드에 비해 크기가 더 컸다. 고스트는 간신히 성큰의 촉수를 벗어 났지만 이미
클로킹이 벗겨 진지라 히드라와 저글링의 일차 타겟이 되어 도망치기에 바빴다.
저 놈 때문이구나. 한 놈이 더 있었구나. 영혜는 다시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갔다. 정신
없이 플레어를 조준 한 뒤 쏘아 버렸다. 그런데 이번 오버로드는 좀 달랐다. 옵틱
플레어가 한 줄기 빛으로 올라 오는 것을 보더니 뒤로 물러서는데 속도가 전의 것들
하고는 비교가 안 되었다. 옵틱 플레어는 공중에서 터졌지만 오버로드는 벌써 사정
거리 밖으로 벗어 나 있었다.
속도가 업그레이드 된 지대장 이상 급의 오버로드 였다. 영혜는 약이 바짝 올랐다.
앞 서 세 번의 성공으로 드디어 나도 전투에서 한 몫을 했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격을 피하는 오버로드를 보니 오냐 한 번 해 보자라는 오기가 생겨 버렸다. 어차피
옵틱 플레어는 이제 한 번 밖에 더 쓸 수가 없었다. 영혜는 아무 생각 없이 저만큼
물러선 오버로드를 향해 달려 갔다. 히드라와 저글링이 옆에 있었지만 고스트를 쫓고,
나머지 대원과 전투하느라 영혜에겐 신경 안 쓴다는 것을 이젠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번엔 실수를 않기 위해서 영혜는 오버로드의 뒤 쪽으로 접근해서 사선으로 비스듬히
옵틱 플레어를 조준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의 플레어를 쏘아 올렸다. 지금까지의
어떤 것 보다도 화려하게 붉은 선을 그리며 올라간 플레어는 보기 좋게 오버로드의
정면에서 터졌다. 하늘을 찢는 오버로드의 비명 소리와 함께 쫓기던 고스트의 몸에
안개 같은 것이 스르르 감기며 클로킹의 효과가 다시 생겼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려는 영혜는 순간 땅에서부터 거대한 촉수가 뻗어나오며
엄청난 충격으로 몸을 때리는 지라 휘청하며 쓰러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데 강화복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주위를 보니 그녀는 15번 콜로니 촉수의 사정거리에 들어
와 있었다. 오버로드를 쫓느라고 거리를 잴 틈이 없었던 것이다. 공격 우선 순위에선
제외되는 메딕이지만 다른 공격 대상이 없으면 당연히 공격을 시작하는 성큰인지라
촉수를 뻗어 영혜를 공격했던 것이다. 이젠 쓸모가 없어진 옵틱 플레어 합성 통을
팽개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그족 콜로니의 끈끈한 점액이 자꾸 발에 걸려 거추장
스러웠다.
뜨끔한 충격이 다시 땅에서 터져나와 영혜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두 번째
공격을 받은 것이다. 성큰에서 피가 튀고 있었다. 돌아 온 고스트가 성큰을 다시 공격
하기 시작했다. 성큰은 고스트는 보이지 않으므로 긴 촉수를 뻗어 영혜를 추격하고
있었다. 영혜는 바닥을 뒹굴며 울부짖었다. 이렇게 아픈 충격은 처음 겪는 일 이었다.
터져 버린 강화복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거의 알몸처럼 되어 버렸다. 가슴에 달려
있는 생명 게이지의 눈금이 삼분의 이나 떨어져 버렸다. 두 번 더 맞으면 죽을 것이다.
아니 강화복이 다 터져 나갔으므로 한 번이나 더 버틸 수 있을 지 그게 의문이었다.
"소대장님!!! 빨리!!!"
실비아의 절규 소리가 귀에서 아롱지는데 의식이 자꾸 흐려 졌다. 그래도 억지로 비틀
거리며 일어서는데 몸을 갈갈이 찢는 듯한 세 번째 촉수 공격이 땅에서 솟아 올랐다.
그대로 공중으로 튕겨 오르며 영혜는 무참하게 나뒹그러졌다. 이젠 끝이구나 싶었다.
전 부대원의 얼굴 빛이 확 변했다. 그런데 앞에서 덤벼드는 저글링과 히드라 때문에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제니가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실비아는 비명과도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영혜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콜린 주니어가 영혜의 쓰러지는 모습을 보더니,
앞에서 덤비는 저글링을 일단 사살하고 다시 영혜를 보았다. 거의 알몸으로 쓰러져
부들거리며 떠는 영혜를 향해 성큰이 끝을 내려는 듯 촉수를 땅으로 박는 것이 보였다.
"이런 씨발! 좆 같네. 우와아아아아아아!!!!! 이 씨발아!!!!!!!!!!!"
콜린은 자동화기를 걷어 들더니 성큰을 향해 달렸다. 성큰의 공격 사정거리가 마린의
자동화기 사정거리보다 더 긴지라 콜린은 안 쪽으로 깊이 들어 갔다. 땅에 자동화기를
내리 박는 순간 공격 순위가 메딕보다 높은 마린이므로 영혜를 찌르려던 성큰이 땅을
가르면서 콜린을 향해 찔러 왔다.
"우와아아아아!!!! 이 씨발아!!!! "
콜린의 욕설과 자동화기의 불꽃이 같이 터졌다. 고스트의 산탄총이 한발, 한발 성큰을
때리는 가운데 콜린의 자동화기와 성큰의 맞대결이 벌어졌다. 체력이 열 배 가까이
우세한 성큰을 마린이 상대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지만 이미 고스트에게 당할만큼
당해 피를 철철 흘리는 성큰과 스팀 팩을 사용하는 콜린의 싸움은 백중지세였다.
영혜의 감겨지는 눈으로 성큰이 피를 공중으로 뿜으며 내장을 벌리고 터지는 모습이
들어 왔다. 그리고 맞대결하던 콜린이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병기인 자동 화기 위로
고개를 푹 숙이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의식이 드는데 몸 전체가 쇠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뻐근했다. 이미 날이 밝아 오는 듯
사방이 훤했다. 실비아가 마구 울며 그녀를 끌어 안았다. 손을 치켜 들 힘이 없었다.
흔들리던 시야가 차츰 고정되며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제니가 다정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수고 했소. 업된 오버로드가 있을 줄은 몰랐소. 소위 덕에 무사히 적진 돌파를
할 수 있었소."
밀러는 여전히 무뚝뚝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칭찬이었다. 비로서 영혜
는 자신이 한 몫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은 깨어질 듯 아프지만 자랑스러움이
가슴에서 번져 나왔다.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감돌았다. 그런데 모두의 얼굴이
침울했다. 문득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마지막 장면이 생각 났다. 성큰이 터지고,
콜린이 자동화기 위로 고개를 떨구던 모습이 머리 속을 스쳤다. 불안했다.
"저기..... 콜린 상병은.....?"
영혜를 끌어 안고 흐느끼던 실비아가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켜 비켜 주었다. 아직까지
몰랐던 숨고르는 격한 소리가 들렸다. 응급 산소 마스크를 덮어 쓴 콜린이 격하게 숨
쉬고 있었다. 그의 몸위로 주기적으로 경련이 스쳐 지나갔다. 영혜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고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범하려던 놈 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고 대신 쓰러진 것이다.
"늦었어요. 바이탈 메타가 0 입니다. 회생 못 시켜요."
제니의 침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혜는 간신히 콜린의 옆으로 비척거리며 걸어 갔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친 몸이지만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이 안 써졌다. 영혜가 다가오는
것을 실눈으로 보던 콜린이 몸을 다시 크게 뒤 틀었다. 체내의 신경 조직이 완전히
망가진 듯 그의 뒤틀림은 몸 부위별로 각양 각색 이었다.
한 쪽 눈을 간신히 뜬 콜린은 손을 들더니 마스크를 떼어 내었다.
"이..... 씨발!... 좆같이..... 헉! 헉! 내가..... 왜..... 왜 그랬나.....
모르겠어..... 씨발!..... 언니..... 죽건.. 말건.. 내... 헉! 헉! 상관.. 할 거
없는데......"
영혜는 뭐라 말을 해야 좋을 지 몰랐다. 캑캑거리던 콜린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씨발.... 그런.... 모습 ... 보니.... 못.... 따먹은 게.... 한이네......
저.... 씁새끼.... 땜에.... 완죤히.... 좆 됐어!.... 흐으으윽! 허억!......"
떨리는 영혜의 손이 콜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됐어! 씨발.... 맘에도.... 없는 짓.... 하지 마.... 난 이게.... 더... 좋아."
콜린은 몸을 뒤틀며 전투복 바지에서 천 쪼가리를 하나 꺼내더니 얼굴에 덮어 버렸다.
그것은 벙커 안에서 그가 나꾸어챘던 영혜의 팬티였다. 약간 얼룩이 진 그 팬티를
얼굴에 쓴 콜린의 숨가쁜 소리가 점점 작아 졌다. 자신의 팬티를 뒤집어 쓴 그 모습에
영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고, 그의 지난 행위에 대한 증오도 뒤로 숨었다. 그냥
자신을 구해주고 대신 죽음을 맞은 마린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있을 뿐 이었다.
"씨발!..... 좋은.... 냄새다."
콜린의 시신을 모래 언덕에 묻은 대원은 이제 거의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옷이
없는 영혜는 콜린의 전투복을 착용했다. 커서 헐렁거리지만 다음 보급소까지는 그럭
저럭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에 대해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팬티를 물고 죽은 콜린과 그의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어쨌건 우주의 여러
인과법칙 중 짧게 스쳐 지나간 덧없는 인연 이었을 뿐이다.
모두들 침울해져서 아무 말 없이 다음 좌표 지점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3 부 끝-
4부 예고
제니의 놀라운 힘(?) 밀러 부대원 전혀 쪽도 못쓰다! 그리고 갑작스런
예기치 못한 전투. 실비아와 이스마엘의 운명은......
문제의 라이언 일병과 조우하는 밀러 부대, 도대체 일병 하나를 위해
12명이 희생을 감수하는 이유가 뭔지 드디어 내막을 알게 되다.
마지막 전투의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고조되는 위기와 긴장에
메딕 미스 리는 어떤 활약을 할까요.
野說 스타 크래프트 '메딕 미스리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제 4 부
********** 코프룰루 태양력 6월 9일 11시 00분
"중대장님. 고스트의 긴급 호출 입니다."
코사크 상사가 건네 준 텔콤의 파란 바탕 화면에 고스트가 보낸 송신문이 한 줄로 주욱
떠올랐다. 고도의 훈련을 통해 눈과 귀의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고스트는 전투 시
저격수로서의 임무 뿐 아니라 부대 이동 시엔 전위 초계병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본진이 합류할 때까지 그 자리에 대기하도록!"
고스트에게 지시를 내린 밀러는 부대원에게 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다. 그런데 지금 고스트가 조금 이상한 보고를 해 왔다. 204연대
2 공략대가 투입 된 다리에서 후방 3키로 지점인 스와핑 71에리어에 정보에 없던
프로토스의 기지가 하나 있다는데 포토 캐논으로 입구를 막아 놓아 고스트가 정찰을
할 수 없다는구만."
코사크 상사의 양미간이 찌푸려졌다.
"출발 전에 그런 정보는 없지 않았습니까? 사령부에서 적 기지 파악을 소흘히 했단
얘긴데 이건 문제가 심각하군요. 적진 한 가운데 고립된 2 공략대에서 라이언 놈을
찾아야 하는 상황만 해도 갑갑한데, 후면까지 프로토스의 기지가 이런 식으로 널려
있다면 전투시 사방에서 적이 집결해 후방 퇴로를 끊어버리면 아군이 전멸하는 것
아닙니까?"
밀러 대위의 가는 눈꼬리가 더욱 가늘어졌다.
"글쎄 그렇긴한데 지금은 뭐라 판단을 할 수 없구만. 일단 가 보면 알게 되겠지."
"기분 증말 드럽구만요. 우리야 원래 목숨 내놓고 산다지만 이렇게 황당하게 대놓고
적진 한가운데에서 노는 것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새미 존슨이 투덜거렸다. 다른 부대원들도 마찬가지 심정인 듯 그들의 얼굴 표정에는
불만의 빛이 진하게 흐르고 있었다.
"자. 자. 어쩌겠어? 군 말 말고 가자. 윗 분들이야 일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뭐 알겠어? 그냥 의자에 앉아 이렇게 저렇게 명령내리면 전쟁이 잘 끝날 거라 생각
하는 거겠지. 결국은 우리 살 길은 우리가 찾는거야. 우리 부대 좌우명이 왜 '살아
돌아가자'로 정해 졌겠어? 각자 알아서 하도록 해. 개 죽음 당하면 지만 억울하니까."
말을 마치고 성큼 앞장 서가는 코사크 상사의 넓은 등을 보며 영혜는 밀러 부대가
기왕에 보아왔던 다른 해병들과는 확실히 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들에겐 자신들의 소속인 테란 연합에 대한 사명감이나, 충성심 같은 것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군인으로서의 능력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 일 뿐이지
프로토스나 저그족과의 지겨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테란 연합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승리에 바쳐지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사선을 같이 넘어 온 동료에 대한 믿음과,
중대장 밀러 대위에 대한 경외가 이 부대의 개개인을 이어주는 매개체일 뿐 이었다.
정보에 없었던 프로토스의 기지는 의외로 숨겨진 곳이 아닌 넓은 분지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활짝 핀 커다란 꽃과 같은 모양의 거대한 포톤 캐넌들은 삼각형으로
화망을 구성할 수 있도록 정확한 거리에 맞추어 기지 앞에 배치되어 있었다. 디텍터의
역할을 겸비하고 있는 그 포톤 캐넌은 프로토스 족의 강력한 방어용 건물(Guard Tower)
이었다. 테란의 과학 기술의 총아라 할 수 있는 고스트의 클로킹 능력은 포톤 캐넌에서
발생하는 플라즈마 자장(磁場)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면 무용지물이 되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어느 곳이던지 자유롭게 드나들던
고스트가 지금은 포톤 캐넌의 시야가 닿지 않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숨죽이고 숨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가드 타워로서의 포톤 캐넌의 능력은 디텍터로서의 역할과 그 가공할 화력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저그 족이나 테란과는 달리 프로토스의 포톤 캐넌은 대공과 대지의
동시 공격이 가능하였다. 테란의 벙커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화력의 크기나
사정거리의 면에서 포톤 캐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대공 방어를 위해
따로 미사일 터렛(Missile Turret)을 건설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테란은 안아야만 했다.
저그 족이야 애당초 대공과 대지를 동시에 갖춘 방어 시설이 없으므로 크립 콜로니를
성큰과 스포아로 각각 변태시켜 적의 외공에 대비하여야 했다. 그러나 그 시설물이
차지하는 공간 제약도 큰 문제이고 무엇보다도 변태시킬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수를
늘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방어를 하기가 힘들다는 종족 고유 특성
때문에 저그 족은 전투가 벌어지면 고지를 지키기보다는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많은
병사를 생산해서 공격 일변도로 밀어 붙여 적을 제압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밖에
없었다.
적절히 배치된 포톤 캐넌을 뚫고 돌파하려면 상당한 희생이 뒤따를 것은 불문의 사실
이었다. 고스트는 커다란 바위 뒤에 숨어 있었는데, 이미 포톤 캐넌에 한 방 맞은 듯
강화복의 옆구리가 터져 있었다. 본진이 도착하자 고스트의 급한 보고 내용이 밀러의
텔콤에 문자로 표시되었다. 코사크 상사는 바위 위로 올라서서 캐넌의 배치 사이로
뚫고 갈 틈이 있는지 살펴 보았다. 노련한 코사크는 곧 캐넌의 포격을 받지 않고 적
기지를 우회해서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의 입가에 히쭉 미소가
흘렀다.
"오케이! 옆으로 돌아 나가면 되겠어. 한 군데서 포톤의 품으로 들어가긴 하지만
그 옆의 바위에 붙어서 일렬로 돌아 나가면 포톤의 직격탄은 피할 수 있을것 같다.
대장님. 큰 피해 없이 빠져 나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코사크의 미소는 오래 갈 수 없었다. 텔콤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밀러의 얼굴
표정이 전에 없이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상치않은 일이 생긴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중대장님 좋지 않은 일이라도......?"
밀러는 천천히 부대원들을 돌아보았다. 부대원들은 아연 긴장을 하고 밀러의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영혜를 포함한 메딕 삼인도 분위기를 눈치채고 밀러에게 주목했다.
"고스트가 포톤에 한 방 맞으면서 기지 안을 슬쩍 들여다 본 정보에 의하면 적
기지 중앙에 탑이 높이 솟은 묘한 시설물이 솟아 있다는구만. 그리고 소수의
질럿이 그 시설물 앞에 엎드려 있다 하는데..."
"차식들이 싸움을 앞두고 지들의 신(神)이라고 하는 젤-나가에게 참배하나 부죠.
제발 죽지 않게 해 달라구요. 근데 그게 뭐 대수인가요?"
이스마엘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는 어투로 끼어 들었다. 그러나 밀러는 이스마엘의
말을 무시하고 코사크를 쳐다 보았다. 코사크 상사의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전투를
통해 쌓아 놓은 정보들이 어지러이 검색되고 있었다. 밀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토스 족이 전쟁터에 탑이 높은 시설물을 지었다면, 그리고 그 앞에서 질럿이
얼쩡거리고 있다면, 그것은...... 생각해 볼 필요도 없겠지."
곧 코사크 상사의 낮은 목소리가 밀러의 말을 바로 이었다.
"아.. 둔..의 성지......."
아둔의 성지(Citadel of Adun).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는 병사들은 적어도 프로토스와의 전투에 관한 한
겪을 것은 다 겪어 보았다는 역전의 용사들 일 것이다. 분대장 오하라를 비롯한 밀러
부대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긴장의 빛으로 바뀌었다. 전투 경험이 적은 이스마엘과,
영혜와 실비아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이었다.
"아둔의 성지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해서 이렇게 긴장들 하는 겁니까?"
역시 이스마엘이 긴장의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바로 퉁명스럽게 말을 뱉아내었다.
이스마엘의 그런 당돌함이 귀여워보이는 듯 코사크의 입꼬리에 잠시 미소의 기운이
감돌았다.
"앞으로 질럿들 상대하기가 좀 껄끄러워지겠군요."
분대장 오하라가 가우스 소총의 안전 장치를 한번 철컥 풀며 말했다. 반사적으로 새미
존슨도 똑같이 안전 장치를 풀었다.
"그렇지.아무래도 질럿들의 정신 강화가 이루어질 테니 우선 그 빠르기가 현저하게
차이가 날거야."
코사크의 진중한 말에 이스마엘이 반발하듯 바로 말을 이었다.
"짜식들이 빨라져봐야 얼마나 대단하겠어요. 난 하나도 겁이 안난다구요. 겨우
질럿 따위가 강화되었다고 밀러 부대가 이렇게 얼어붙다니 참 한심합니다. 이거
고참님들 다시 봐야 겠네요."
"짜식아. 질럿의 속도 강화 따위에 신경 쓰는게 아니야. 저 놈의 아둔 성지가
있으면 프로토스 놈들의 정신 강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바로 템플러 아카이브가
(Templer Archive)가 소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단 말이야. 너가 아무리 전투
경험이 적다해도 토스의 고등 기사단(High Templer) 놈들을 상대하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 아니냐?"
제레미가 이스마엘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스마엘이 순간 머쓱해지며 낯이 벌개졌다.
그래도 지지않고 뭐라 대꾸하려는데 밀러가 그의 입을 막았다.
"제레미의 말이 맞다. 아둔 성지가 보인다면 반드시 템플러 아카이브는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보통은 본진에 소환하는 고급 시설물을 이렇게 전진 배치
했다는 것은 이미 이 지역 전체가 토스의 본진이란 얘기다."
"그렇다고 봐야죠. 어쩌면 우리가 찾는 204 연대의 전진 부대는 이미 전멸했을
지도 모르겠군요."
"그 시키 진작에 칵 뒤져 버렸으면 이런 고생 안해두 되는데...... 산 놈인지
죽은 놈인지 알지도 못하는 놈을 구하러 사지로 들어 가야 하다니"
코사크 상사의 말에 이어 새미 존슨이 중얼 거렸다.
"여하튼 중대장님. 포톤의 사이로 빠져 나갈 틈이 한 군데 있습니다. 전황이
더 어려워지기 전에 72 에리어로 들어가지요. 가보면 라이언 놈이 죽었나
살았나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코사크 상사의 재촉이 있었음에도 밀러는 잠시 움직이지 않고 생각에 빠져 있었다.
무엇인가 중대한 결심을 하고 있는 듯한 밀러의 모습을 보고 부대원들은 순간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오랜 동안 동고 동락 해 온 탓에 중대장 밀러의 반응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단지 외부에서 배속된
제레미 병장과 메딕 삼인만이 그 의식의 흐름을 눈치 못 챌 뿐 이었다. 애초부터 특수
병기로 선발된 고스트는 주어진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지라 이런 분위기는 아랑곳않고
프로토스의 기지 내부를 시야가 닿는 범위 내로 계속 둘러 보고 있었다.
오하라와 새미 존슨, 그리고 이스마엘은 은근히 밀러에게 시위하려는 듯 입을 비쭉
내밀어 불만의 표현을 했다. 조용한 퐁수린은 고스트처럼 묵묵히 있을 뿐이고, 밀러의
침묵의 의미를 모르는 제레미 병장은 계속 이 사람 저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영혜는 적진 한 가운데서의 긴박한 상황인 것도 잊고 부대원들의 이런
각각 다른 반응을 재미있게 살펴 보았다. 한동안 답답해 보이는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결국 코사크 상사가 입을 열었다.
"중대장님 무리 입니다. 우리의 화력으로는 저 기지에 침입 할 수 없어요. 그냥
우회해서 통과 하는게 나을 듯 합니다."
코사크 상사의 말이 터지자마자 동시에 제레미가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아니 지금 이 병력으로 저 기지를 치자고 고민하셨던 겁니까? 중대장님. 말도
안돼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도 어느 정도지.... 이건 말도 안돼요."
밀러가 제레미를 보며 히쭉 웃었다. 밀러 같은 남자는 그 웃음에서조차 다른 사람을
기죽이는 어떤 것이 존재 하였다. 그것은 순전히 밀러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에 기인
한 것이며 끝없는 자신감으로 표현되는 것 이었다. 밀러의 웃음을 대한 제레미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밀러의 다음 말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우리 임무 밖의 일이다. 그러니 나로선 강요하지 않겠어. 여러분들의
각자 판단에 따라 의견을 말하면 그것에 따르겠다. 분대장부터 차례로 말해 봐."
밀러와 눈이 마주친 오하라는 고개를 숙였다. 바닥의 잔돌을 군화로 톡톡 건드리며
머리를 굴리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제레미의 말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죠. 다
죽고 말 것 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대장님이 하려고 하는 일인데......
대장님께 목숨 빚진게 하도 많아서 이때나 갚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난 그냥
하라는대로 따르겠습니다."
밀러의 눈이 새미 존슨으로 향했다. 새미 존슨은 혀로 입술을 한번 축이고 말했다.
"나야 워낙 말을 못하니 분대장처럼 멋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동감 입니다.
대장님 꼴리는대로 써 먹으십쇼. 따르지요."
퐁수린은 밀러의 눈을 받자 씩 웃으며 가우스 소총에 새 크립을 끼어 넣음으로써 답을
대신 했다. 그러자 바로 이스마엘이 흥분한 어조로 소리쳤다.
"우이 씨~ 난 말이죠. 불가능이니 가능이니 그런거 신경 안써요. 프로토스 족
최강의 전사라는 하이 템플러라는 놈들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맞붙어 보고
싶어 손이 근질거린다구요."
난처해진 것은 제레미였다. 당연히 모두 반대할 줄 알았는데 결과가 이렇게 어긋나자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부대원들을 계속 둘러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포기했다는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거 모두 미친 놈들이네. 죽는 결정을 뭐 이리 쉽게 해? 다들 죽고 나면 나
혼자 여길 빠져 나갈 수도 없구. 완전히 좆 됐네. 이 부대로 배속되서 영광으로
생각했더니만 완전히 죽을 길로 들어 선 거구만. 애라. 맘대로들 해라. 이래도
죽구 저래도 죽을 거니 느그들 한테 이쁘게나 뵈야지. 좋아요. 대장님 첨 만난
사이지만 나두 대장님께 내 목숨을 담보로 주지요. 한번 해 봅시다."
제레미 다음으로 밀러의 눈길을 받은 영혜는 생각할 틈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분위기로 보아 도저히 반대할 수도 없었지만 그 보다도 묘하게 밀러의
행동에 대해 믿음이 가서 왠지 이 무모한 작전이 성공할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메딕
소대장 영혜가 찬성하자 제니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호호..... 소대장님도 이젠 담이 엥간히 커졌네요. 나 제니야 원래 화끈한 것을
좋아하니까 당연히 찬성 입니다. 실비아 어때? 너두 괜찮지?"
실비아가 방긋 웃었다. 여전히 천진난만한 웃음 이었다.
"뭐 소대장님하구 언니가 찬성하니 저야 당연히 같이 가지요. 열심히 해 볼께요."
말을 하는 그녀의 눈길은 저절로 이스마엘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따사로운 시선을
느낀 이스마엘이 겸연쩍은 듯 얼굴을 붉히더니 보기좋게 씩 웃어 줌으로써 실비아에게
화답했다.
"그런데 대장님.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설마 정면 충돌하자는 것은 아닐테구."
코사크 상사는 원래부터 밀러가 가는 곳은 지옥 끝까지 따라 간다는 주의로 살아가는
골수 밀러 추종자이므로 의견을 물어 볼 필요조차 없었다. 역시 그는 작전 계획을
물었을 뿐 이었다. 부대원 모두의 의견을 들은 밀러는 고개를 들어 포톤으로 방어진을
짠 프로토스의 기지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나의 뜻에 동참하겠다는 데에 감사를 표한다. 어차피 누가 해도 할
일이니 딴 놈들이 어설프게 나서서 개죽음 당하는 것보다야 테란의 정예 특공대인
내 부대가 하는 것이 훨씬 성공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어 맡은 일은 아니지만 한번
나서 보는 것이다."
똑 떨어지게 말하고 나서 밀러는 다시 한번 부대원을 주욱 훑어 보았다. 부대원들은
밀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다구 개 죽음 당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상사의 말처럼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적 기지에 들어 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후방의
원조를 요청한다."
"그렇다면 레이쓰 편대의 지원을 요청하실 겁니까?"
"그 레이쓰 부대로 저 포톤의 감시망을 뚫고 기지를 부술 수 있다곤 볼 수 없지.
더구나 하이 템플러가 이미 기지 안에 존재 한다면 레이쓰 편대는 그야말로 종이
비행기에 불과할 거야. 레이쓰로는 안돼!"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한번에 다 부수려면 역시 핵 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 팀에 고스트가 있지 않은가?"
코사크 상사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대장님이 그 생각을 하시리라고 예측 했습니다. 그럼 우리의 할 일은 뻔한
거군요. 고스트가 포톤 밭을 뚫고 들어 갈 수 있도록 해야겠군요. 그런데 군단에서
핵의 사용을 허가해 줄까요?"
"템플러 아카이브가 건설되어 있을지모르는 적 기지가 눈 앞에 있는데, 군단에서
망설이진 않을거야. 전장에 하이 템플러가 나오기 시작하면 가뜩이나 불리한 차우
사라의 이 전투는 완전히 포기해야 돼. 아무리 멍청한 사령부 놈들일지라도 차우
사라를 적들에게 내어 주려고야 하겠나? 우리는 상사 말대로 고스트가 적진에 잠입
할 수 있게만 하면 된다. 자 그러면 상사는 포톤 밭을 뚫고 침투 할 수 있는 정확한
좌표를 계산하도록 해. 나는 군단과 통신을 열 테니까."
밀러가 텔콤의 비상 호출 번호를 눌러 군단과 핫 라인을 연결하는 사이에 코사크는
고스트와 함께 프로토스의 포톤 캐넌의 배치를 다시 관찰하기 시작 했다.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영혜는 슬쩍 밀러의 옆으로 다가갔다. 조용 조용 말하던 밀러의 언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야! 이 개새끼들아. 그렇게 말해도 못 알아 듣는거야? 템플러가 뜨고 나면 시즈고
레이쓰고 아무 의미가 없어! 이 먹통 놈들아. 사단장한테 연결해 봐! 직접 보고 할
테니까!"
잘 안되고 있는 듯 하였다. 밀러의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귀를 파고 들었다. 적의
약점과 아군의 장점을 냉정하게 파악하여 최고의 전투를 이끄는 그의 평상시의 모습과
너무도 다른 격한 흥분 이었다. 영혜는 밀러의 이런 양면적인 모습을 보고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진급이 한참 늦어 특공 부대를 이끌고 사지만을 전전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뭐야? 이런 쓰발! 나오라는 사단장은 안 나오고 넌 또 뭐야? 뭐?... 뭐?... 예라이!
썩어질......"
텔콤에서도 악쓰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 한동안 밀러와 텔콤이 서로 누구 목소리가
큰가 시합을 하듯 맹렬하게 말다툼을 하였다. 그러다가 밀러가 갑자기 영혜를 쳐다
보았다. 그 시선이 하도 험악해서 영혜는 순간적으로 찔끔했다. 밀러는 묵묵히 텔콤을
영혜에게 건네 주었다. 한껏 인상 쓰는 얼굴과는 달리 영혜에게 말하는 목소리는 그리
거칠진 않았다.
"소대장 받아 보시요. 군단 정보 장교가 소대장을 바꾸라는구만. 한시가 급한데
이게 뭐하는 짓인지......? 유 모 대위라는데 소대장 안 바꾸면 핵이고 나발이고
없다고 지금 아주 눈 까 뒤집고 지랄치고 있어. 비러먹을... 나보다 목소리가 더
큰 놈을 만날 줄은 정말 몰랐네."
화면을 들여다 본 순간 작은 충격으로 영혜의 몸이 떨려 왔다. 한없는 그리움을 불러
일으켜 주는 다정한 얼굴이 그녀와 똑같이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영혜야...... 영혜야......"
유 재인 대위의 모습을 본 순간 영혜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차마 보일 수 없었다. 텔콤으로부터 들리는 유 재인 대위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영혜야. 너 무사하지? 어디 다친데는 없지? 이렇게 너를 볼 수 있다니 너무 기뻐서
말이 다 안나오네."
영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롱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떠날 수 가 있니? 내가 얼마나 절망에 빠졌는지 알아? 텔콤은 왜
꺼 놨어? 아무리 해도 연락이 안 닿아서 난 네가 일 당하고 죽은 줄 알았어."
영혜는 유 대위의 급한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입을 열면 울먹거릴 것 같았고
그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일 이었다. 당당하게 그를 떠나오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겪은
일로 인해 한결 성숙해진 영혜는 자신의 떨리는 감정을 억지로나마 추스를 수 있었다.
격정을 참는 영혜의 모습을 보며 유 대위는 잠시 말을 끊고 다정한 눈 빛으로 영혜를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영혜도 마주 보았으므로 서로의 눈길이 정겹게 마주 쳤다.
영혜가 부드럽게 미소를 띄우자 유 대위도 벅차 올랐던 감정이 진정 된 듯 마찬가지의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그래. 이젠 네 생각을 존중해 주기로 했어. 하지만 결코 잊지 마. 영혜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살아 돌아와야 해. 너 없으면 나는 살아갈 수 없어. 너는 내 생명
이야. 알았지? 영혜야."
영혜는 여전히 말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때 옆에서 밀러 대위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곁 눈길로 슬쩍 보니 밀러가 연신 헛기침을 하는 것이 그만 끊어 주었으면
하는 의도가 역력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본 탓에 기분이 한없이 편해진 영혜는 밀러
에게 곱게 눈을 한 번 흘기고 유 대위에게 말했다.
"재인씨. 여기 상황이 너무 위험해요. 재인씨가 할 수 있으면 힘을 꼭 써 줘야 할
것 같아요."
유 대위의 빙긋 웃는 모습이 화면에 떠 올랐다. 언제 봐도 싱그런 웃음 이었다.
"이런! 처음 하는 말이 겨우 그런 말이라니......
그래. 영혜야. 내가 생각해도 거기 상황은 1급 비상 사태야. 단지 여기 사정도
좀 갑갑한 구석이 있는지라...... 하여간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안되니까
밀러 대위를 바꿔 줘. 작전이 되도록 해 봐야지."
영혜는 잠시 재인을 쳐다 보았다. 얼굴 구석 구석 세밀한 부분까지 머리 속에 담아
두고 간신히 한마디 말을 했다.
"사랑해요. 재인씨."
"나두 사랑해 영혜야."
재인의 마지막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영혜가 텔콤을 밀러에게 건네 주었기 때문
이었다. 약간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텔콤을 받아 든 밀러는 부대원들과 좀 떨어진
바위 뒤로 몸을 옮겼다. 지금부터 말 할 내용이 특급 기밀에 대한 것이므로 누구라도
그 내용을 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 고스트의 침투 경로를 확인하고, 각자 해야 할 일을 할당 받은 부대원들은
밀러가 통신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영혜는 벅찬 가슴을 안고 제니와 실비아의 옆에
섯다. 제니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영혜의 손을 꼭 쥐어주었다. 실비아는 괜히
실실거리며 웃기만 했는데 그녀의 웃음에 맞추어 두어 발자국 떨어져 있는 이스마엘도
바보처럼 실없이 따라 웃었다.
이윽고 통신을 마친 밀러는 부대원들에게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영혜에게 말
했다.
"소대장. 이번 작전에서 소대장은 절대 다쳐서는 안되겠소."
뚱딴지같은 밀러의 말에 영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밀러의 거친 턱수염이 실쭉거렸다.
평소의 밀러로서는 별로 익숙치 않은 웃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소대장의 신상에 나쁜 일이 생긴다면 지옥 끝까지 쫓아와 나를
죽이겠다고 지금 유 대위가 공갈을 놓는구만. 내가 그런 애송이를 겁낼리야 없지만
군단에 있는 장교 치고는 의외로 생각이 트인 녀석 같아 괜찮은 친구인 것 같은데
괜히 원수 짓고 살 필요는 없거든."
잽싼 제레미가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이런 행동은 답습되는 것이라 곧 오하라와 새미
존슨도 손가락을 입에 대고 휘파람을 불려고 하였다. 그러나 밀러가 손을 저어 그들을
제지 하였다.
"자. 잘 들어 봐. 지금 군단과는 작전을 일치시켰다. 문제가 조금 있긴 하지만 어쨋건
핵 한 방과 레이쓰 세 대를 지원해 주겠다고 군단장이 승인 했어. 중요한 것은 딱 한
방이라는 거야. 거기다 레이쓰는 포톤의 사정 거리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으니 후퇴할
때만 도움이 될거야."
"뭐 상관 없지요. 어차피 그 한 방이 실패한다면 우린 다 죽어 있을테니까요."
밀러의 말을 받는 코사크 상사의 말에는 약간 비장한 감이 어려 있었다.
"그렇지. 단 한번의 시도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상사가 이미 침투 경로를 다 계산
해 놓았을 테니, 모두 고스트가 제대로 적진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수고를 아끼지
말도록. 이번 작전은 포톤의 사정권 안에서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아군의 피해가 없을
수 없다. 견디기 힘들 것 같으면 제 때에 뒤로 물러서서 메딕의 서포트를 적절히
받도록 해라. 자 그럼 지금부터 3 분 후에 작전을 개시한다. 각자 위치로!"
밀러의 명령이 떨어지자 조금 전까지의 웃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긴장으로 경직되었다.
가우스 소총을 단단히 꼬나 잡은 부대원들은 급히 각자 정한 위치로 산개 했다.
고스트가 프로토스의 기지로 들어가기까지 그를 사정거리 안에 놓고 요격할 수 있는
포톤은 정확한 계산에 의하면 4개였다. 그 4개의 포톤에서 발사된 캐넌을 모두 다
맞을 경우 고스트는 꼼짝 없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그러므로 고스트 대신 그
캐넌을 맞아주면서 시선을 끌어 줄 마린이 필요한 것이다. 포톤 캐넌이 한 발을 쏜 뒤
다음 한 발을 발사하기까지의 지연 시간을 이용해서 고스트는 적 기지 속으로 달려
들어가고, 대신 맷집이 되어 준 마린도 다음 캐넌을 맞기 전에 포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 이 작전의 요점 이었다. 일단 포톤의 디텍팅 시야만 벗어나서
적 기지내로 잠입 할 수만 있다면 자랑스러운 클로킹 능력으로 적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고스트는 방해 받지않고 핵 탄두의 투하 지점을 핵 사일로(Nuclear
Silo)의 컴퓨터에 전송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자원 문제 때문에 기지 내부까지
포톤 캐넌으로 도배 했을리는 없으므로 잠입한 고스트의 행적을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이었다. 포톤 캐넌 같은 디텍터가 없으면 절대로 고스트의 행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3분의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밀러의 낮은 휘파람 소리가 울리자
분대장 오하라를 선두로하여 퐁수린, 새미 존슨, 제레미가 달려 나갔다. 제니 플라잉
중사와 실비아 하사도 뒤 질새라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맨 뒤에 고스트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달렸다.
오하라가 제일 먼저 사정거리에 들어서자 펼쳐진 꽃 잎처럼 퍼져 있던 포톤 캐넌의
한 가운데서 탑과 같은 포신이 불쑥 솟아 올랐다. 포신에 하얀 빛이 어리는 순간,
굉음과 함께 한줄기 빛이 포톤에서 오하라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양자포 였다. 한 방
맞은 오하라의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오하라는 충격으로 몸을 움찔하면서도 몇 걸음
더 포톤쪽으로 달려가서 앞 쪽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가우스 소총의 방아쇠를 미친 듯
당겼다. 다음 포격을 위해 꽃 술 속으로 급히 사라지는 포신에 탄알이 튕기는 소리가
요란했다. 오하라의 목표는 방금 공격한 포톤이 자신에게만 화력을 집중하도록 유도
하는 것 이었다. 양자포에 의해 진탕되어서인지 꾹 다문 입가로 한줄기 핏물이 주륵
흘러 내렸다.
포신이 다시 솟아 오르며 두 번째 포격의 빛을 번쩍 거리는 순간 오하라는 강화복 등
뒤의 구멍으로부터 부드러운 손길이 닿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바늘로 찌르는 듯한
따끔한 충격이 척추에 느껴졌고, 곧바로 등줄기로부터 신경 조직을 타고 물이 흐르는
듯한 기분좋은 감각이 퍼져 나갔다. 양자포에 의해 진탕된 내장이 안정되며 고통이 확
줄어 들었다. 그리고 제니의 속삭이는 듯한 음성이 귀에 울려 왔다.
"힘 내라구. 지금 치료로 앞으로 두 방은 더 버틸 수 있으니까 한 방 더 맞으면 바로
뒤로 후퇴 해."
고개를 돌려보니 제니가 힐링 팩의 주입을 끝내고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 윙크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오하라는 씩 웃으며 알았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포톤의
중심부를 향해 가우스 소총을 난사했다. 포톤의 사정 거리를 완전히 벗어나 달리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맡은 바 역할을 완수한 것이다. 그 때
포톤에서 한 줄기 빛이 다시 그에게로 번쩍였지만 그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두 번째 포톤에 대한 맷집 역할은 퐁수린이 담당하였다. 과묵한 성격 탓인지 평소에는
잘 눈에 띄지 않았지만 작전에 임하는 그의 태도는 언제나 진지하였고 실수가 없었다.
밀러 부대의 숨은 공신은 이 퐁수린 이었다. 오하라와 마찬가지로 양자포 한방을 얻어
맞으면서도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는 포톤에 접근 하여 공격을 감행 하였다.
제니는 퐁수린에게도 아낌 없이 힐링 팩을 사용하여 일차 치료를 해 준 뒤 파이어 뱃
제레미를 뒤 쫓았다.
일정 사정 거리를 가진 가우스 소총을 무기로 하는 일반 마린과는 달리 근접전을 해야
하는 돌격병(Fire Bat)인 이스마엘과 제레미는 당연히 포톤에 바싹 달라 붙어야만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도가 다른 마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메딕
두 명이 아예 전담해서 그들의 힐링을 맡았다. 이스마엘과 실비아가 기지 왼쪽 귀를
지키는 포톤으로 달려 들자 그 오른쪽의 포톤으로 제니와 제레미가 덮쳐 갔다. 제니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허공으로 울려 퍼졌다.
"헤이. 마린들...... 신나게 한번 싸워 보자! 나중에 이 언니가 니들 다 잡아 먹을
때까지 절대로 죽지 말라구! 살아서 천국 가는 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한치의 오차도 없이 포톤 캐넌의 공격 방향을 자신들에게 집중 시키는데 성공한 밀러
부대원들은 고스트가 안개에 휩싸인 듯 형체를 가물거리며 적 기지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 이 작전이 성공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기지 입구에서 요란하게 포격과 가우스 소총 소리가 터지니 프로토스의 기지 내부가
조용할 리가 없었다. 기지 안 쪽에서 질럿들이 한 분대 가량 뛰쳐 나왔다. 과연 정신
강화가 이루어진 듯 질럿의 이동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처음에 점으로만 보였던 질럿
무리가 순식간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빨리 접근했다.
세 번째 포격을 맞은 오하라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눈 앞에서 퐁수린이 자신과
똑같이 비틀거리며 도망쳐 나오는 것이 보였다. 자신이 맡은 포톤의 탑신이 솟아 나고
있었다. 저 네번째 포격 마저 맞으면 몸이 버틸 수 있을지 자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피한다면 그 포격은 퐁수린에게 향할 것이고, 퐁수린이 그것을 맞고 여기까지
후퇴 하는 동안 최소한도로 한번 더 포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퐁수린은 살기
힘들 것 같았다. 이런 것은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는 일인지라 오하라는 뒤로 물러
설 생각을 버리고 일어선 채 포톤을 향해 계속 소총을 갈겨 자신에게 양자포를 집중
시켰다.
번쩍 빛이 일며 가슴이 터지는 듯한 충격을 받은 오하라는 뒤로 튕겨 날았다. 바닥에
부딛칠 때 몸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지는 아픔이 있었다. 그래도 의식이 남아 있을 때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기어서라도 포톤의 사정거리를
벗어 나려 애썼지만 바닥을 버르적거리며 긁어 댈 뿐 제 자리를 빙빙 돌기만 했다.
쿨럭하고 치받는 기침을 하면서 동시에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 내었다. 머리 속이
아득해지면서 눈 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팽이처럼 빙빙 돌아갔다. 바로 이렇게 죽는
거구나 생각하며 의식을 잃는 순간 억센 손이 그를 확 끌어 당겼다. 그리고 지체없이
그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 올랐다. 희미해져가는 시야로 밀러의 수염으로 덮인 얼굴이
들어 왔다. 바람소리가 귀에 스치는 것으로 보아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 소리에
섞여 밀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애썼다. 수고 했어."
오하라를 들쳐 업은 밀러의 뒤로 양자포가 다시 번쩍거렸으나 밀러는 충격으로 전방을
향해 조금 튕겨났을 뿐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의 뒤를 오하라의
소총을 주워 든 퐁수린이 미친 듯 쫓아 달렸다. 영혜가 강화복의 옆구리 장비 쌕에서
힐링 팩을 꺼내 들고 이들에게 달려갔다. 코사크 상사는 부상 당한 이들 삼인의 옆 땅
바닥에 일전에 전사한 콜린의 것이었던 자동화기를 쑤셔 박아 넣고 총구를 프로토스의
기지로 고정 시켰다.
포톤이 밀러를 뒤 쫓는 공백을 이용해서 이스마엘과 제레미가 전속력으로 후퇴했다.
이미 두 세방 이상의 양자포를 맞았으나 실비아와 제니가 각각 달라 붙어 힐링을 해
주었기 때문에 이들은 부상 정도는 심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들의 뒤로 십 여명의
질럿이 쫓아 오고 있다는 것 이었다.
이스마엘과 제레미가 마지막 포톤의 사정거리를 벗어나는 순간 코사크 상사의 자동
화기가 뒤 쫓는 질럿 떼를 향해 불을 뿜었다. 질럿의 방어 실드에 총탄이 튕겨 나갔다.
포톤 캐넌의 영향이 없는 지점이므로 이스마엘과 제레미도 바로 몸을 돌려 제일 앞에
달려 온 질럿을 향해 화염 방사기의 출력을 한껏 높여 발사 하였다.
순식간에 푸른 화염에 휩싸인 질럿이 주춤거리며 잠시 뒤로 물러섯지만 그의 방어
실드를 어느 정도 손상 시켰을 뿐 치명적인 공격이 되진 못했다. 프로토스의 보병
전사 질럿의 막강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이었다.
다시 덤벼든 질럿의 날카로운 플라즈마 검이 제레미를 가로 갈랐다. 강화복이 마치
두부가 갈라지듯 서억 베어지며 핏방울이 튀었다. 제레미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
섯고, 제니가 황급하게 질럿의 앞을 막아서며 제레미의 옆구리 베어진 상처에 힐링
팩을 쏟아 부었다. 이스마엘이 발사한 화염이 질럿을 다시 한번 덮어 버리고, 연이어
밀러와 코사크, 그리고 퐁수린의 소총이 불꽃을 뿜으며 질럿을 뒤로 날려 버렸다.
그러나 가공할 맷집의 질럿은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성한 다른 질럿들이 앞으로
튀어 나오는데 밀러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전원 뒤로 후퇴하고 메딕이 길을 막아라! 삼 분만 버티면 레이쓰가 온다!"
세 명의 메딕이 후닥닥 앞으로 뛰어 나와 질럿의 서슬 시퍼런 플라즈마 검 앞에 몸을
곧추 세웠다. 묘한 일 이었다. 금새라도 절단 낼 듯 덤비던 질럿들은 메딕이 길목을
막아서자 그녀들에게 플라즈마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일순간 난처하다는 듯한 빛이
그들의 쾡한 눈에 번쩍이며 흘러가는 것이 보인 것 같기도 했다. 공격 안하는 그들을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으므로 마린들도 소총의 난사를 멈추었다. 일촉 즉발의 긴장이
양쪽에 흐르긴 하였으나 서로 충돌 없이 노려보는 기이한 대치 상태가 되어 버린 것
이었다.
"저 놈들은 고도의 정신 이상주의를 꿈꾸는 놈들이라 공격 능력이 없는 메딕을 살상
하는 것을 엄청안 수치로 여기고 있거든. 아무튼 메딕은 이래 저래 살아날 확률이
마린들에 비해서 굉장히 높은 편이야."
좋은 말인지 비꼬는 말인지 모를 코사크 상사의 중얼거림이 이 긴장 속에서 조금은
여유를 보이는 말 이었다. 밀러가 얘기한 삼 분의 시간이 지나자 과연 공기가 파열
하는 소리가 왼쪽 언덕 너머에서 들려 오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질럿들은
동요하는 듯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날카롭게 곧추 세운 플라즈마 검을 내리고 언덕
너머를 주시하는 것 이었다.
곧 요란한 굉음 소리와 함께 은 빛의 레이쓰 세 대가 언덕을 넘어 날아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공 공격 능력이 없는 질럿들은 화들짝 놀라며 후딱 포톤의 방어진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레이쓰 역시 위협적으로 질럿의 뒷 땅을 향해 몇 발 사격을
했을 뿐 포톤밭에 의해 보호 받는 질럿을 향해 돌격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진 않았다.
클로킹조차 포톤의 디텍팅에 의해 다 드러나기 때문에 할 수 없었고 그저 사정거리
밖에서 선회 비행을 할 뿐 이었다.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요절낼 듯 했던 조금 전의
상황과 순식간에 돌변한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서 생각해보니 영혜의 입가에 쓴 웃음이
감 돌 수밖에 없었다.
저그 족의 괴물들이 메딕을 공격 안 한 것은 틀림 없이 지능 발달은 미약하고 오로지
본능만 발달 된 탓에 메딕을 당장 위협이 안되는 대상으로 여겨서였다. 우선적으로
위협을 주는 대상부터 제거하고나면 그 다음이 메딕의 차례가 되는 것 이었다. 그래서
메딕 혼자만 있을 경우에는 저그 족의 공격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같은 적으로
여기고 있지만 프로토스 족은 그 지능 발달이 저그 족은 물론 인간 족인 테란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도 메딕을 공격하지 않는 것 이었다. 비록 공격 능력이
없다 하여도 메딕이 사실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그들의 발달된 지능으로 보아
모를 리가 없었다. 메딕 두 셋이 섞인 마린 한 분대는 능히 질럿 한 분대를 당해 낼
수 있었다. 끝없이 힐링을 시킬 수 있는 메딕의 능력은 이른바 무한 스팀 팩이라는
저주의 전술까지 고안해 내게 한 가공스러운 것 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위협적인 메딕을 단지 무장 안한 여자라는 이유로, 프로토스족의 높은
정신 세계에서는 공격하는 것을 대단한 수치로 여긴다는 것 이었다. 적이라면 무조건
최후의 최후까지 섬멸해야 하는 테란군의 강령을 외우고 있는 영혜는 프로토스 족의
이런 습성을 보고 지금껏 가져왔던 가치관에 작은 혼동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적을 눈 앞에 두고도 공격 않는 질럿들의 행동은 그녀에게 있어 충분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로서 이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옳은 목적인가라는 의문이 그녀에게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속해 있는 테란이 과연 절대적인 선인가 하는 작은 회의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또아리를 틀어 버린 것이다. 수 백마리의 저글링이
덤벼들 때 밀러의 부대원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학살 하였다. 또 지금
포톤 밭에 몸을 숨기고 있는 질럿들과 기지 안에 있을 프로토스 족의 병사들은 잠시
뒤 엄청난 핵 폭탄이 그들의 기지를 휩쓸어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테란의 전쟁 목적이 이 황량한 차우사라에서 프로토스와 저그 족을 완전히 없애는 것
이라면 프로토스나 저그 족의 전쟁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어째서 세 종족이 이렇게
어지러이 싸우게 된 것일까? 여태까지 한번도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고 그저 당연히
나의 적은 프로토스와 저그 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프로토스와 저그가 적인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작전에 참가한 지난 며칠동안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정신적으로 부쩍 성장하고 있는
영혜였지만 다른 족과의 전쟁에 대한 이런 식의 의구심이 생긴 것은 지금 처음이었다.
이것이 공화국의 영웅 짐 레이너나 현재 작전을 지휘하는 밀러 대위나, 프로토스 족의
영웅에 해당되는 태사다나 패닉스 같은 거물이 빠져 들었던 전쟁에 대한 짙은 회의의
시작이라는 것을 영혜는 아직 알 리 없었다.
"드디어 카운트 다운이 시작 되었다. 조금 뒤면 고스트가 빠져 나올거야."
밀러 대위의 나직한 말이 영혜의 생각을 깼다. 흠칫 놀란 영혜가 고개를 돌려 보니
밀러는 텔콤을 향해 작전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후퇴하는 고스트가 질럿과 포톤에 치명상을 받고 쓰러지지 않도록 레이쓰 편대는
포톤 캐넌을 공격하는 시늉을 했으면 한다. 그렇다고 너무 무리 하진 말고. 본진도
레이쓰의 후미를 쫓아 공격에 들어 가겠다."
"아이. 아이. 썰. 명령 접수 했다. 레이쓰는 알아서 하겠다. 귀 부대의 건투를
빈다."
레이쓰 편대장의 명쾌한 대답이 들려 오고 세 대의 레이쓰는 기수를 프로토스의 기지
쪽으로 돌려 큰 원을 그리며 선회 했다. 거리가 상당히 먼 탓에 밀러 부대가 위치한
곳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레이쓰는 프로토스의 기지 안 쪽에서
물살처럼 자취를 일렁거리며 뛰어나오던 고스트가 포톤의 디텍팅 시야에 들면서부터
안개가 걷히듯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단 클로킹이 벗겨지자 잠시
고스트는 뜀을 멈추었다. 이때 비로서 그를 발견한 질럿들이 우르르 그에게 몰려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요란한 굉음과 함께 레이쓰가 무서운 속도로 지면으로 내리 꽂히며
질럿을 향해 대지용 기관포를 쏟아 부었다. 마찬가지로 사정거리 안에 레이쓰가 포착
되자 포톤의 양자포가 공중으로 빗살처럼 퍼부어졌다. 질럿이 레이쓰의 총탄을 피해
잠시 우왕좌왕하고, 포톤이 레이쓰에 양자포를 쏘게 된 틈에 고스트는 전력을 다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한번의 하강 공격으로 질럿 떼는 쫓아 내었지만 포톤 공격을
그대로 받아 기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레이쓰 편대는 전속력을 다해 공중으로
높이 치솟아 올라 간신히 포톤의 양자포를 벗어났다. 밀러의 텔콤에 레이쓰 편대장의
다급한 연락이 들어왔다.
"기체의 삼분의 이가 손상 되었다. 더 이상의 공격은 무리다. 레이쓰 편대는 적
기지 밖에서 선회 하겠다."
"오케이. 수고 했다 그 정도면 됐다. 다음은 우리 차례다."
이미 언덕을 내려 온 밀러 부대는 달려 나오는 고스트를 향해 포톤이 재 충전한 양자
포를 쏘려고 포신을 드러 낼 때 먼저 포톤을 향해 사격을 하였다. 당연히 공격 받은
포톤은 자동으로 양자포를 밀러 부대에 조준하고 발사 하였다. 결국 처음과 똑같은
방법으로 밀러 부대는 고스트의 탈출을 돕는 것 이었다. 고스트가 강화복에 풀풀
연기를 날리며 밀러 본진에 겨우 달려 와 탈진 되어 쓰러진 순간, 겁 없이 그를 뒤
쫓아 포톤의 보호막을 벗어난 두명의 질럿이 레이쓰 세대와 밀러 부대의 집중 사격을
받고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연기로 승화되어 죽고 말았다.
고스트의 생명 게이지는 겨우 7이 남아 있었을 뿐 이었다. 포톤 한 방만 더 맞았으면
고스트는 시체로 돌아 올 뻔 했다. 질럿들은 분한 듯 플라즈마 검을 치켜 들고 위협
하듯 허공으로 흔들었지만 포톤의 보호막을 벗어나면 바로 레이쓰 편대의 사격을 받게
되므로 감히 나오질 못했다. 결국 이 작전은 대원들의 부상이 심각하긴 했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 밀러의 완벽한 승리였던 것이다.
"진짜로 카운트 다운 시작이다. 앞으로 십 초. 모두 차폐 막을 내려라."
텔콤을 보고 있던 밀러의 명령에 따라 부대원 전원이 헬멧의 녹색 차폐 막을 내렸다.
레이쓰 편대도 프로토스의 기지에서 조금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코사크 상사가 돌연 손가락을 펼쳐 하늘을 가리켰다. 하얀 연기의 궤적을 그리면서
하늘에서부터 핵 미사일 한 방이 프로토스의 기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모두 고개를
다리 사이에 묻은 자세로 몸을 바짝 움크렸다.
강한 섬광뿐만 아니라 모든 소리까지 차단하는 차폐막 덕에 번쩍이는 녹색의 빛만
느꼈을 뿐 적막만 끝없이 감돌았다. 영혜의 혼자만의 시간이 꽤 오랫동안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핵 미사일로 인해 발생 된 결과를 차폐막을 올리면 곧 알게 되겠지만
웬지 그것을 그녀의 눈으로 확인하기가 겁났다. 그냥 결과를 확인 안하는 이런 상태가
계속되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눈 앞에 펼쳐질 광경이 앞으로 평생을 살아가면서 악몽
처럼 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전쟁터
에서 이런 안일함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다고도 생각되었다. 아직 영혜는
그녀의 마음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두 가지의 생각을 각각 정리해 낼 수 없었다.
그 때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것 같아 고개를 치켜 드니 제니가 차폐 막을 올리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차폐 막을 올리자 매캐한 산소 타는 냄새가 코에
아리게 와 닿았다. 조금 망설이다 눈길을 전방으로 향해보니 두 눈에 가득 들어오는
프로토스의 기지는 그렇게 황량하게 바뀌었을 수가 없었다.
큰 삽으로 땅을 푹 떠 간 듯 깊은 분지로 지형 자체가 탈바꿈 되어 버렸다. 입구의
포톤 캐넌은 핵 미사일의 폭발 반경에 들지 않았던 탓에 대 여섯개가 실드를 날리고
불이 붙은 채 아직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본 기지가 사라져 버린 다음에야 그
쓸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포톤 캐넌의 틈에 숨어 있던 질럿들은 절반 정도는 이미
죽은 듯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그저 살아 남은 대 여섯명이 넋을 잃고 바닥에 주저
앉아 허탈감에 빠져 있는 듯 했다. 그들의 심오한 정신 세계의 궁극의 성전인 아둔의
성지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자 모든 의욕이 없어져 버린 듯 했다.
"차식들 까불더니만 꼴 좋다."
이스마엘이 비양거렸다. 그러나 비양거리는 이스마엘조차도 이런 모든 것의 말살에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듯 했다. 모두의 생각이 비슷한지 침묵만 무겁게
장내를 덮고 있을 뿐 이었다.
"레이쓰 편대장이다. 작전 성공을 축하한다. 남은 포톤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힘이 모자라면 레이쓰도 돕겠다. 답변 바란다."
텔콤에서는 승리에 도취한 레이스 편대장의 기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밀러는 약간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신경 쓸 것 없다. 남은 적은 이미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좌표만 기록해 두면
나중에 시즈 탱크로 포톤을 부수면 된다. 밀러 부대는 계속 임무를 수행하겠다.
귀 편대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건투를 빈다."
밀러의 대답을 듣고 세 대의 레이쓰는 공중으로 한 껏 치솟았다가 땅으로 곤두 박질
치는 곡예의 비행을 함으로써 영광의 표식을 그린 뒤 밀러 부대의 옆을 수평으로 날아
가며 존경의 표시로 날개를 위 아래로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큰 원을 그리며
선회 비행하였다. 그리고 왔던 길로 돌아가려고 기수를 언덕으로 돌리는데,
돌연!
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기이한 음향이 들려왔다. 모두 소리 난 쪽을 향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레이쓰가 날아가는 방향의 바로 앞 쪽에 하얀 거미 줄같은 파장의
막이 형성된 것을 볼 수 있었다. 형체는 보이지만 실체는 잡히지 않는 듯한 그런 막
이었다. 상당히 넓은 범위에 걸쳐 형성된 그 막은 마치 전기의 자장처럼 레이쓰를
가두었다. 수직 이 착륙 및 공중 정지가 가능한 레이쓰였지만 그 막은 레이쓰의 모든
움직임을 봉쇄하였다. 곧 이어 레이쓰의 기체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하였다. 텔콤으로
레이쓰 조종사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 이게 뭐야? 아아아악!......"
이미 포톤 캐넌의 양자포에 의해 상당히 손상을 입은 레이쓰 기체는 순식간에 펑펑
터져 버렸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모두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벼락치는
듯한 밀러의 명령이 터져 나왔다.
"싸이오닉 스톰(Psyonic Storm)이다! 모두 가능한 한 멀리 흩어져라! 템플러가
근처에 있다!"
밀러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 이었다. 메딕의 치료로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고스트부터
곧바로 클로킹을 하여 형체를 감추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다른 부대원들도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이들의 동작이 무척 빨랐음에도 달려가는 그들의
귀에 또 다시 기분나쁜 날카로운 음향이 파고 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거미 줄 같은 허연 싸이오닉 스톰의 막이 사정없이 펼쳐져 버린 것이다.
-4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