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가게였다. 오랫동안 탐색을 했지
만, 들어서는 손님도 제대로 없었다. 안쪽을 기웃거려보니,
아직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여자 혼자, 카운터 상단에 올려
진 TV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문짝을 살짝살짝 밀어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한테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
았다. 실직한 후로, 몇군데 수퍼에서 훔쳐낸 통조림과 라면
따위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끼 식사만 해결하
면 그만이었다.
"아니, 저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라면 몇 개를 움켜잡는데, TV를 보고 있던 여
자가 고개를 홱 돌렸다. 순간, 섬칫한 기분이 들면서 빨리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
데 그때 하필이면 가게 앞쪽에 남자들이 서 있을게 뭐람? 상
황이 긴박한 만큼 머리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문쪽으로 뛰어
나갈 때, 여자가 소리치면 붙잡힐 우려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면 주먹질이라도 해야겠지만, 내 펀치력은 그다
지 위력이 없다. 거리상으로 봐서도 문쪽을 나가 거리를 뛰
는 것보다, 여자를 붙들고 사정하는 것이 빠르다.
그래서 여자에게로 빠르게 뛰어갔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이
미 내가 한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도 틈을 주지 않
고 바깥을 돌아보며 소리를 지를 태세다.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도둑...흡!"
입을 막힌 여자가 버둥거렸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여자
의 움직임을 따라 카운터 위에 있던 전화기가 아래쪽으로 떨
어져 내렸고, 유리항아리 하나도 바닥에 떨어져 날카로운 파
열음을 냈다. 그 잠깐의 소란에 내가 멍해져 있는 사이, 여자
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내 팔을
잡아 비틀기도 하고, 이빨을 드러내서 내 손을 물어뜯으려
했다. 숨구멍이라도 열어주면 금방 고함소리가 터질 것이다.
무엇인가 방법이 필요했다.
"이...씨팔!"
욕설을 내뱉으면서 팔꿈치로 여자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일
격을 당한 여자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가 옆으로 기우뚱거
렸다. 팔꿈치로 한번 더 그 부위를 내리찍자 여자의 어깨가
한쪽으로 표나게 기울어졌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여자의 얼
굴이 눈에 들어왔다. 몹시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자는 단지 아프기만 할 뿐이겠지만, 나한테는 죽느냐 사느
냐의 문제였다.
"소리지르면 죽어."
여자의 귀에 대고 협박을 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뭔가
를 들고 그녀를 위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찾은 것이 깡통캔이 진열되어 있는 찬장을 더듬었다.
병두껑을 따는 오프너가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손에 땀이
났다. 뭐라도 잡혀야 하는데, 마땅히 잡히는 게 없었다. 그래
서 여자를 끌고 카운터 뒤쪽으로 돌아들어갔다. 카운터 안쪽
에, 가게와 연결된 문이 있었고, 문 앞쪽에 박스에 매인 줄을
끊는 작은 칼이 보였다. 재크나이프 일종이었다. 급한 김에
우선 그 칼을 손에 쥐고 여자의 목에 댔다. 겁을 주어야 한
다는 생각에, 잔인한 인상으로 목에 칼금까지 만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죽여. 알겠어?"
여자가 겁에 질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도가 마음
에 들었다. 그래서 칼로 목을 겨눈 채로 입을 막고 있는 손
을 가만히 놓았다. 여자는 목에 칼이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
는지 표나게 떨었다. 가만히 두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거
아냐. 혼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시 이 가게를 빠져나갈 궁
리에 들어갔다. 문제는 여자였다. 이 여자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카운터 앞에 도르레에 감긴 노끈이 보였다. 그것을 잡아 풀
어낸 다음, 여자의 손을 묶고 입에는 테이프를 발랐다. 그래
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들어왔다가 이 꼴을 본다
면 틀림없이 나를 강도로 오인할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안전한 곳까지 달아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
서 카운터 뒤쪽의 쪽문을 열고 여자를 안쪽으로 들이밀었다.
빌어먹을, 근데 이건 또 뭐야?
"악!"
안쪽에 있던 여자 하나가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뒤
로 물러섰다. 그 여자는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채광이 부실해서 그런지 온통 시커멓
게 보였다. 어쨌거나 그 채크무늬 여자는, 금방 상황판단이
섰는지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출구를 찾았다. 그러
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 방의 출입구는 내가
들어서는 문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달아날 곳도 없었다.
"호들갑 떨지말고 너두 일루 와."
나는 재갈이 물린 주인 여자를 안쪽에 박아놓고 체크무늬
여자를 불렀다. 아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체크무늬
여자는, 급격하게 순종하는 자세를 취했다.
"살려주세요."
체크무늬 여자가 두손을 모으고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는 것으로 봐서 고함만 내질러도 오
줌을 갈길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알았어. 살려 줄테니까, 이리 와서 손 내밀어."
나는 그렇게 말해 놓고, 카운터의 노끈을 잡아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여자가 떨리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런데 거기
서 또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두려움에 떨던 체크무늬 여자
가 내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이게 또 안면이 무지하게 많은
여자였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여자가 그 부분을 걸고 나왔
다. 그 여자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든 것이겠지만, 나한테는
절망을 향한 첫발이었다.
"아...아저씨 혹시 요 아래에 미장원 맞은편 집에 사시는 분..."
"시끄러!"
고함을 버럭 내질러 여자의 입을 막은 다음, 서둘러 양손을
노끈으로 묶었다. 이 상황에서 안면이 무슨 소용이야? 미장
원 몇번 가면서 본적이 있다고 대답해 봐야 분위기만 깨진
다. 이미 도둑 차원을 넘어 강도로 변해 버렸기에, 장난이었
다고 말할 입장도 못되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냥 가주시면 없었던 일로 할게요. 아저
씨한테 피해 안가게 할게요. 정말이예요."
그런 말을 나더러 믿으란 말인가? 아무리 내가 어리석다고
해도 그런 말은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믿을 사람도 없다.
"이 썅년이, 입 닫아."
일부러 욕설을 입에 담았다. 험악한 인상을 보여야 고분고
분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의도는 확실히 효과가 있
었다. 여자는 입을 닫고 내가 하는대로 잠자코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