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물 (여직원/오피스)

어느 누드모델과의 사랑 -1

조회 11259 추천 0 댓글 0 작성 17.06.03


겨울은 시리다. 시리기 때문에 겨울은 아름답다. 따뜻한 사람의 마음이 입김으로 표출되고, 바깥보다 따스한 가슴으로 포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감상적인가? 먹고 살만해서 인가?
움추린 채 코트깃을 올리며 지하철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모두 얼어 있었다. 그들의 마음처럼, 검게 탄 손만을 내민채 구걸하는 어느 거지의 모습은 겨울이 너무나 냉혹하다는 것을 심감케 한다. 떨어지는 동전 소리가 몇 분마다 울리는 전차의 소리보다 덜 자주 들린다.

학교는 방학을 맞아 한산했습니다. 몇년 전 보다 도서관은 늙어 있었습니다. 때묻은 벽이 그러했고, 찢어진 책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대자보를 제치고 자격증을 알선하는 광고와 어학연수 문구로 허름해진 게시판도 늙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을 찾은 졸업생들의 모습도 그러했습니다. 백원 짜리 커피에 얼굴을 묻으며 앞 날을 걱정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안스럽네요.

나는 올 해 사학년이 됩니다. 군대를 갔다 왔으며 졸업하면 취직을 할 생각입니다. 전망 좋은 전자공학도이기에 취직 걱정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아임에프가 터졌습니다. 몇 해전에는 아임에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유식한 축에 속했지만 이젠 유치원 아이도 팔순 할머니도 아임에프가 뭔 줄 압니다.
'뭔가 해야겠다.'
막상 마음은 그렇게 먹었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냥 여느해 처럼 도서관을 나가 전공책과 시름하고 또한 TOEIC책을 하나 사서 조금씩 영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간혹 이벤트 행사가 열리는 홍보책자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긴 하지만 그냥 집에서 용돈을 받으며, 학교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기가 일수였지요. 도서관에는 친구들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고 또한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나. 우리 집 삼형제 중 둘쨉니다. 우리 집에는 어머니 외에는 여자가 없습니다. 저 초등학교 이후로 여자들과 어울려 본적이 거의 없죠. 내 또래의 여자들은 어떻게 지내나 생각하면 물음표만 떠 오를 뿐입니다. 우리과에 여자가 있기는 하지만 한 명뿐입니다. 멀리서 보면 남잔지 여잔지 분간도 되지 않는 여학생 꼴랑 하납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여자에 대해 알려고 생각했던 나는 바보였습니다. 걔는 남자 엉덩이 치는 게 취미고 남자들과 누가 술이 센지 내기하는 걸 좋아하며 당구가 200인 동학년의 후뱁니다. 으으... 싫다.
그래서 난 여자들에 대해서 모르는게 너무 많아 여자란 무엇인가,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여자친구 하나 생길까, 고민도 해 봤지만 해답은 하나였죠. '나중에 인연이 있으면 생기겠지.'
남자들 세계에 있다보니까 점점 여자애들에게 침묵해져 갔습니다. 나는 여학생 앞에서는 말을 더듬고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상대편 여자의 표정에 매우 심각하며 무슨 말을 할까 생각을 하고 말하기 때문에 남들 보다 늦고 뒷북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팅 나가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요. 하기야 요즘은 미팅하자는 친구도 없습니다.

도서관에 오면 좋지요. 근심을 허공에 뿌릴 수 있어 좋았고 나무들이 있었으며 지저귀는 새들처럼 재잘거리는 여학생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도서관에는 여학생이 많죠. 공대와는 달리 말입니다. 난 참 로멘틱한 사랑을 할 자신이 있는데 날 몰라 주는 군요. 어색함을 없애야 인연이 생길것이다. 용기를 가져야 인연이 생길 것이다.
"취직 걱정이나 해 형."
친구랑 햇살이 따스한 쓰레기통 근처에서 커피를 들고 건너편에 서있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내 생각을 얘기하고 있는데 우리과 여학우 녀석이 내 엉덩이를 치고 갔습니다.
"그래 난 너한테 형이야. 절대 오빠가 아니야."
그렇게 소리쳐 주었습니다. 그녀는... 그녀라 말하기가 어색합니다. 하여튼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뻑큐 손가락을 쥐어 보이고 유유히 도서관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난 다분히 감성적입니다. 음반점에서 좋은 음악이 나오면 꼭 다 듣고 자리를 떴으며 간혹 꽃도 사곤 합니다. 거지를 보면 항상 호주머니를 뒤지고 지하철 내 근처에 아가씨라도 섰을라면 머리칼의 향내를 맡고 그 아가씨의 아침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우리 아버지 얼마전에 퇴직하셨습니다. 대기업 부장이셨는데 감원 소식이 들리자 이때다 하고 바로 사표를 내시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제대로 돈을 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형은 의산데 이제 전문의 시험에 합격해서 레지던트 될 것이고 동생은 제대한지 얼마 안 되어 곧 복학을 할 것입니다.  우리 엄마는 아버지 시키는 데로 살림만 사셨지요. 좀 막막하긴 합니다. 그래도 벌어 논 돈이 있는지 생활에 바로 변화가 온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까지는 말입니다.

학교 도서관을 해 질녘에 파하고 그인지 그년지 그 쪽 패거리들과 당구 한 게임 치고 길에서 뽕짝 메들리 다 듣고 누가 흘린 장미 한 송이 주워서 어떤 거지의 돈통에 넣어주고 몇 일을 안 감았는지 졸라 냄새나는 어떤 놈의 돼지 털같은 머리가 내 코를 찌르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밤이 깊어 갈 즈음. 우리 세형제가 모두 집에 들어왔을 때 아버지가 자기 아들들을 불렀습니다.  우리 세형제는 아버지 앞으로 가 앉았고 어머니는 과일을 깎으셨지요.
"너네들 내가 백순걸 알 것이다."
"네."
"퇴직금을 조금 받았다만 내 생각해 둔 것이 있어 그대로 은행에 넣어 두었다.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우리 다섯식구가 살아야 하는데 니들 밑으로 들어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네."
"니들 세명 다 학비 대는게 힘에 부친다. 진이는 이제 돈을 벌테지만 그래도 녀석이 돈을 많이 까먹을거야. 민이는 제대를 했으니 복학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원이는 이제 졸업반이구나."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니네 셋 중 한명은 쉬어라. 올해 대졸 취업난이 장난이 아닐거라는 구나."
끝말이 영 이상합니다. 아버지 형. 동생이 나만 쳐다 봅니다. 엄마가 과일을 깍아 저한테만 주는군요.
분위기를 파악했습니다.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습니다.
"왜 하필 접니까?"
"반응이 참 늦구나. 미안하다. 너 밖에는 없구나. 쉬면서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간접적으로나마 사회를 경험해라. 우리나라가 전자 분야쪽에 많이 투자한 만큼 문제도 많다. 구조조정이 심하게 들어갈거야. 취직 못하고 백수 되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냐? 한 해 늦게 졸업해서 경기가 좀 풀리면 취직도 쉬울 거야."
아 막막하네요. 일년을 그냥 논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학비도 어렵다는데 학원 같은 델 보내 줄리가 없었지요. 외국이나 나갈까?생각도 해 봅니다. 정신차려라 주원아.
"그럼 일년은 제 마음데로 해도 됩니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조건에서 그리고 나쁜짓 하지 않는 조건도 붙겠지."
"일년을 자유와 바꾸겠습니다. 제가 휴학을 하겠습니다."
참 멋있게 말했는데 형과 아버지는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래 너야. 원이가 휴학하는 것으로 결정 봤다. 민이는 복학 신청 했느냐?"
"곧 할거에요."
동생이 안됐다며 나를 보고 실 웃었습니다. 엄마는 또 과일을 찍어 저한테만 줍니다.
'하늘이시여!'

휴학을 한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한동안 내 생활에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냥 도서관 갔다가 집으로 오곤 했지요. 마땅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네요. 자꾸 답답해 집니다. 일 월이 다 갔을때 난 휴학계를 냈습니다. 휴학계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환이라는 놈을 만났습니다.
"어. 잘 살았냐. 정환이 네가 학교는 왠일이냐?"
"나? 복학하려구."
"좋겠다. 난 휴학하고 오는 길인데."
"그래. 야 잘됐다."
이 녀석이 분위기 파악을 전혀 못하는군요. 뭐가 잘됐다라는 거지? 그가 복학하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가사휴학 복학은 좀 까다롭군요.
"너 뭐 할거냐?"
"아직 모르겠다. 도서관 나와서 공부나 해야지 뭐."
"너 나 대신 아르바이트 할 생각 없냐?"
"너 대신? 뭔데? 안그래도 아르바이트 자릴 찾는 중이었어."
"너 면허증은 있지?"
"응."
"짱개 배달이야.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 할래?"
생각지 못한 아르바이트군요. 망설여 집니다. 그거 힘들텐데... 하지만 친구의 유혹은 달콤했습니다.
"월수 구십이야. 시간을 많이 뺏기긴 하지만 바쁜건 식사때 뿐이지 점심때하고 저녁때. 밥도 주고 방도 주는데. 육개월만 하면 일년 등록금은 거뜬히 벌수 있어. 싫어?"
그 소리에 망설임은 사라졌습니다. 비록 낯선 경험이 될 것이라 막연함은 있었으나 바로 승낙을 했습니다. 철가방이라... 낯선 세계를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월수 구십만원이면 장난이 아니죠.

다음 날 정환이를 따라 중국집으로 갔습니다. 그 곳은 어깨가 떡 벌어진 주인 아줌마와 짱골라 같은 주방장 아저씨, 보조 주방장 형, 일하는 아줌마 한 분, 그리고 철가방이 둘이 더 있었습니다. 정환이는 저에게 근방의 주소가 그려진 지도를 한 장 선물했습니다. 빨간펜으로 동그라미 쳐진 곳은 단골집이라 했습니다. 일은 설이 끝난 이월 중순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며칠 정환이에게 물려 받은 오토바이로 학교에서 연습을 했습니다. 쉽네요. 패달을 한번씩 밟을때마다 기어가 올라가는 군요. 손잡이를 당기면 앞으로 가구요.
정환이에게 그의 일을 인계 받았습니다.

설날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우리 형제 중 세뱃돈은 저만 받았어요. 차례상에 올려진 닭의 다리도 모두 제 차지였습니다. 이렇게 안해도 되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제가 안스러웠나 봅니다.
부모님께는 그냥 아르바이트 자릴 구했다고만 했습니다. 뭐 왠만큼의 자유를 인정받았기에 그렇게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철가방 인생의 첫날은 그냥 중국집에 있었습니다. 배달을 나가지 않았어요. 홀에서 잔신부름만 했습니다. 두녀석의 철가방과는 오늘 일이 끝나면 정식으로 상견례를 할 것입니다. 주인 아줌마가 생긴 것과는 달리 친절했습니다. 부드럽게 말하시는게 정이 많은 아줌마의 모습이었습니다.
"강군아!"
"네."
중국집에서 전 강군으로 불려집니다.

첫날은 홀에만 있었는데도 힘이 들었습니다. 쉽게 돈 버는 것은 하나도 없군요. 여덟시에서 아홉시 사이에 일은 끝이 났습니다. 대부분 이시간에 하루의 일을 정리한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배달 주문이 많았습니다. 짱개 같은 경우 하루 백그릇 이상이 배달되어진다고 합니다. 뜨아!
중국집 건물 뒷편에 조그만 월세방이 하나 중국집 직원을 위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금 배달을 맡고 있는 두 녀석이 사용한답니다. 철가방 무시하면 안되겠군요. 다들 대학생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동윤이라는 놈은 명문대생이군요. 칠구라는 놈은 지방대생인데 상경한 놈이구요. 동윤이는 저와 동갑이었고 칠구는 저보다 세살이 어렸습니다. 동윤이는 철가방 시작한지 삼개월이 되었고 칠구는 한달이 조금 넘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휴학중이었죠.
동윤이는 과외도 병행하고 있었는데 자기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군요. 그동안 자기가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고 했는데 쫄딱 망했답니다. 600포인트 일 때 샀는데 지금 삼백포인트대죠. 자기 아버지 마이너스 통장에서 500만원이나 몰래 뽑아 썼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자기 잡을려고 난리가 났다는군요. 그 돈 갚을때 까지는 집에 못들어 간답니다. 칠구는 귀한 자식이라는 군요. 누나만 둘이 있는데 집에서 자기를 떠받쳤다는 군요. 집도 잘 산대요. 대전 녀석인데... 원래 공군으로 군입대 하려 했답니다. 근데 술을 많이 먹었던 관계로 간이 나빠 신검에서 떨어졌다는 군요. 다시 육군으로 입대를 해야 하는데 영장이 안나왔답니다. 짱개 배달을 하게 된 결정적 동기는 이랬습니다. 자기 아버지차가 그렌져 3000이래요. 그걸 아버지 몰래 몰고 나갔다가 전봇대 때려 박고 200만원짜리 에어백 양쪽으로 터뜨려 먹고 차를 완전히 망가뜨렸대요.  그래도 자기는 안다쳐 효도 했다면서 떳떳하게 집에 들어갔는데 졸라 욕들어 먹었다는군요. 태어나서 그렇게 야단맞은 적은 처음이래나요.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가출했답니다.

삼일째 되던 날부터 가까운 곳은 제가 배달을 나갔습니다. 한 달이 지나면서 계속 범위를 넓혀 나간 나는 짱개집을 중심으로 제 구역을 확보했습니다. 북쪽은 동윤이 구역이었고 남서쪽은 칠구의 영역이었으며 남동쪽이 제 구역이었습니다. 각각 특징이 있죠. 칠구의 영역엔 아파트가 많았고 동윤이 구역엔 상가가 많았습니다. 만화방과 주유소 심지어 여관까지 동윤이 구역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구역은 그냥 일반 집들이 대부분이고 학원 몇개와 멀리가면 울 학교의 하숙집들도 포함이 되었습니다. 학교 연구실에서도 간혹 배달 주문이 있었습니다. 학교 앞에 짱개집이 몇갠데 여기에다 시켜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철가방이라 무시도 많이 당했지만 하다보니 할 만 하군요. 헬멧을 안 쓰고도 태연하게 빽차앞을 지나쳐도 가구요. 학교로 배달을 나갈때면 수위아저씨가 웃어주더군요.
무시 당한 일을 회상하자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조카같은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철가방이라 놀렸구요. 빨간 등을 켜놓고 노란 옷을 즐겨 입는 예쁜 아가씨들의 집에 배달갔는데 철가방이라 쌀쌀맞게 대할 때는 서러웠어요. 고등학생들 한테도 꼬리치는 것들이. 그릇에 담배다 가래다 뱉어 놓은 사람들은 각성해야 되요. 시킨거 그대로 들고 온적도 많았습니다. 늦게라도 간 날이면 엄청 열받게 하는 놈들도 많았습니다. 피자 스쿠터가 나를 앞질러 가기라도 하면 엄청 열도 받지요. 재밌는 일도 많았어요. 어떤 아줌마가 잠옷차림으로 날 유혹도 했구요. 그릇 찾으러 갔다가 짱개하고 짬뽕 때문에 싸움난 부부도 말려 봤어요. 부부 싸움때 짱개 그릇은 던지지 맙시다. 한번은 시켜 먹은 중국집 그릇으로 살림 장만한 자취생도 보았구요. 물론 다 뺏어 왔지만. 짱개 시킨 놈이 삐져 가버렸다면서 같이 먹자고 한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난 호모가 싫어요. 짱개 배달갔다가 사진 찍힐 뻔도 했어요. 무슨 하우스 였나봐요. 배달나갔는데 번쩍번쩍 백차들이 서있었고 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여러명이 잡혀 나오더군요. 돈은 형사한테 받았어요. 이제는 능숙해지고 있습니다.

전 일을 마치면 집으로 귀가를 했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동윤이랑 칠구가 기거하는 방에서 자고 갑니다. 칠구는 집에다 전화를 자주 했어요. 몸값 협상을 하더군요. 자기 돌아가면 얼마 줄거냐고 자주 물어보더이다. 영장이 언제 나오는지도 계속 물어 보았습니다. 동윤이는 집에다 전화를 하지는 않았어요. 일주일에 이틀은 과외를 하기 때문에 보통 날보다 일찍 일을 마치고 어딘가 갔지만 방에있을때면 자기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하더군요. 완전히 잡혀 살고 있었습니다. 동윤이 녀석은 이상한 잡지 모으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가슴이 예쁜 모델들이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많은 그런 잡지 말입니다. 이 방에 동윤이가 모은 잡지가 굴러 다니고 있습니다. 방의 전화는 중국집 세개의 전화번호중 한 번호를 공유하고 있지요. 새벽에 배달주문 올때가 간혹 있습니다.
"우리 중국집은 저녁 8시 이후에는 배달을 하지 않습니다. 10쉐이야."
이런 전화를 받고 자다가 받으면 다시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전 어쩌다 하루를 자는데도 이런 전화를 받는데 얘들은 상당히 많이 받겠네요.

한달 한달 그렇게 갔습니다. 4개월이 후딱 지나갔지요. 날씨는 더워지고 있습니다. 제 통장에는 300만원 넘게 저금되어 있습니다. 저 부잡니다. 석달 정도 더하면 일년 등록금을 모으고도 백여만원이 남겠습니다. 이학기때는 그냥 공부하며 놀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여자친구라도 생기면 좋겠네요. 그런데 가망이 없겠습니다. 누가 철가방을 쳐다나 봅니까.

오늘도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애마가 된 오또바이는 햇빛에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저 오또바이에 철가방을 세개나 싣고 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 만큼 베테랑이 되었단 증거죠.
"강군아 미술 짱개 하나다."
아줌마의 낭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여기서 오또바이로 오분쯤 되는 거리에 미술학원이 하나 있습니다. 아줌마같은 노처녀가 하나 있는데 단골이 되었습니다. 엘레베이터도 없는 오층 건물의 사층에 위치하고 있는 그 미술학원의 원장이었습니다. 거의 주문은 짱개 하나였습니다. 별로 달갑지 않은 단골이지요. 사층까지 걸어 올라가면 다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완전히 체력단련하고 있지요. 내 다리에 알통이 보기좋게 생겼습니다. 주문은 점심 주문이 뜸해지고 쉴 만해 지는 세시경에 있었습니다. 항상 그 시간이에요. 밉습니다.
"잘 갔다 와라."
중국집 문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던 동윤이가 비웃으며 마중을 해주는군요.

헐레벌떡 학원으로 철가방을 들고 올라갔습니다.
"어 배달의 총각! 거기 놓아 주세요."
미술 학원의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앞에 원장실이 있었습니다. 책상이 하나 있고 세개의 소파를 거느리고 있는 테이블이 있었으며 저기 한쪽에 먼지가 앉은 컴퓨터가 하나 있었습니다.
다시 그릇 가져오기가 번거로왔습니다. 오늘은 아예 미술학원 밖 계단에서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짱개 하나 먹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어요. 배달주문도 뜸한 시간입니다. 계단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며 원장아줌마가 짱개 다 먹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박. 또박."
듣기 좋은 구두의 발자국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 옵니다. 팔 짤린 원피스가 참 잘 어울리는, 아직 타지 않은 하얀 피부가 너무나 고운, 그리고 딸기같은 입술을 머금고 천사같은 예쁜 얼굴을 소유한 아가씨가 그 좋은 구두의 발자국 소리를 내며 올라 오고 있습니다. 내 손에 쥐어진 담배는 재 털어 주지 않는 것을 시위하 듯 머금고 있던 재를 떨구어 버렸습니다.
"저. 좀 비켜주시겠어요?"
목소리까지 예뻐군요. 그녀를 보고 섰습니다. 그녀를 보며 웃어 주었지요. 그런데 그녀가 날 지나치지 않고 내 눈을 멀뚱멀뚱 쳐다 봅니다. 왜 안가고 섰을까? 사층일까? 아니면 오층 주인집 딸일까?
"좀 치워 주시라니까요."
"예?"
그녀는 손가락으로 밑을 가리켰습니다. 오늘처럼 철가방이 어색하게 보였던 적이 있을까? 이런, 제가 내 발 앞에 놓아둔 철가방이 계단을 떡 막고 있었습니다. 철가방을 힘껏 들어 머리위로 올렸습니다. 천사같은 그녀는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해주고 갑니다. '참 이쁘다.'
그녀는 미술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참 동안 학원문을 보며 있었는데도 원장 아줌마가 짱개 그릇을 밖으로 내다 놓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학원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요. 현관문을 열려고 손잡이 까지 잡았지만 문득 아까 들어간 아가씨 생각이 났습니다. 들어갈 용기가 서지 않네요.
'조그만 더 기다리자.'
또 십분이 흘렀습니다. 현관앞에서 철가방을 옆에 두고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날씨가 더운게 잠이 실 오네요. 졸았습니다.

"그래 내일봐."
현관문이 열렸고 원장아줌마가 날 내려보고 섰습니다. 아까 아가씨도 그 옆에서 날 쳐다 봅니다.
"배달의 총각이 여기 있었네. 어머 내가 그릇을 안 내놓았구나. 다림아. 내일 두시 정도에 와."
"알았어요. 그럼 저 갈게요."
원장 아줌마는 아까 그 아가씨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들어 갔습니다. 그 아가씨는 이제 계단을 내려 갑니다. 아까 처럼 좋은 구두 발자국 소리를 내며 말입니다.
"여깃어."
원장아줌마가 그녀가 한층을 다 내려 갔을때 쯤 그릇을 들고 나왔습니다. 재빨리 받아 철가방에 넣고는 달려 내려 갔습니다. 이층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그녀의 뒤에 섰지요. 그녀는 천천한 걸음이었습니다. 계단이 무서운 듯 앞을 보지 않고 밑을 보며 내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랐지요. 이제 한층만 더 내려가면 되는데 이 아가씨가 섰습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더니 한쪽으로 비켜 섭니다. 그녀의 올려세운 눈동자가 뇌쇄적입니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발을 뗄 수가 없군요.
몇 초간 그렇게 서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녀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군요.
"먼저 내려가세요."
그녀가 뒤따라 가며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재미를 빼앗아 버리네요. 먼저 가라니 가야 겠지요. 이 놈의 철가방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녀를 지나쳤습니다.
"아얏!"
결국은 철가방이 사고를 쳤군요. 철가방의 한 꼭지점이 그녀의 허리를 찔렀습니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으니까 가세요."
그녀의 마지막 말은 내가 철가방 신세여서 그런지 참 매정하게 들렸습니다. 그냥 나에게 눈길도 주지않고 아픈 곳을 보며 내가 손을 내밀자 뱉은 그녀의 말은 다소 차가웠습니다. 그냥 그녀의 말대로 뛰어 계단을 마저 내려왔습니다. 오또바이의 시동을 거는데 저기 그 아가씨가 더운 햇살을 한 손으로 가리고 걸어 갑니다.
"빠라바라 빠라밤."
그녀를 지나치며 괜히 경적을 한 번 울렸습니다. 그녀를 쳐다 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참 이쁜 여자지만 그냥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잊혀지는 그런 여느 아가씨들이라고만 생각을 했습니다. 단지 조금 다르다면 이름을 안다는 것.
'다림이라. 다리미? 세탁소 하나?'

짱개 집에 가니 주인 아줌마가 왜이리 늦었냐고 야단을 칩니다. 눈을 구슬처럼 굴렸습니다. 입은 열지도 못했구요. 그래도 기분은 괜찮습니다.
 

 

여느 여자들 같으면 금방 기억에서 지워 질텐데 오늘 미술학원에서 본 아가씨는 잠들때 까지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만큼 예쁜 여자를 못 본것도 아니었습니다. 시내 나가면 연예인 뺨치는 아가씨들이 참 많지요. 몇 마디 말이 오고 가서 그럴까요,기억에서 지워 지지 않습니다.
동생이 불을 켜놓고 책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형만 방이 따로 있고 전 동생하고 같은 방을 쓰고 있지요. 학과 공부하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기말고사가 일,이주 있으면 치뤄 지겠군요. 아직 저도 학생이죠 참. 너무 직업 정신이 투철했는지 자주 학생인 사실을 까먹습니다. 그냥 철가방인 줄 알아요.
"형아야. 자냐?"
"아니. 외에?"
"너 나하고 사귈래,가 좋냐? 그대 곁에 언제나 내가 있고 싶다,가 좋냐?"
이불 속에 있는 나에게 동생이 한 질문은 좀 황당했습니다.
"너 지금 뭐하는데 그런 질문을 하냐? 무슨 레포트 쓰냐?"
"연애 편지 쓴다 왜. 뭐가 좋냐?"
"뭐! 누구랑 사귀는데? 이녀석 신기하다."
놀랍군요. 이불을 걷고 벌떡 앉았습니다. 의자를 뒤로 한채 동생이 나를 보며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애가 있어. 뭐가 좋냐니까?"
"니가 할 수 있는 걸로 해 임마. 여자 옆에 가서 그대 곁에 언제나 내가 있고 싶다,이러고 싶냐?"
"편지에 쓸 내용이라니까."
"물어볼 놈 한테 물어봐라. 잠이나 자 임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동생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하기야 저놈은 영 아니지."
"뭐 새꺄?"
동생이 혼자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작게 말했지만 방은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형이 그랬잖아 뭐. 생각해 보니 여자가 형 찾는 전화 한 적은 한 번도, 내가 이성에 눈뜨고 나서 한 번도 없었더라."
"놀리지마. 있었어."
정말 있었어요. 우리과 그녀라 말하기 어색한 그녀가 당구치자고 몇 번 전화한 적이 있었는데... 동생은   난 놈입니다. 우리 형제 중 유일하게 여자를 사귀나 봅니다. 형은 자기는 의사라 뭐 중매 잘 들어 올텐데 연애는 왜하냐,하며 뒷짐지고 방에서 맨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형도 여자가 귀한 동네서만 살았어요. 이런 형들을 배신하고 동생이 여자를 사귈려나 봅니다. 오늘 미술학원에서 본 그 아가씨를 내가 데리고 온다면 동생도 형도 나자빠지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오늘 본 그녀는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바쁜 점심때가 조금 한가해졌습니다. 시계는 오후 세시를 머금고 울려 하고 있습니다. 금방 배달 갔다온 칠구녀석과 중국집 문앞에 앉아 담배를 폈습니다. 거기서도 들리는 주인 아줌마의 낭낭한 목소리...
"강군아. 미술 짱개다."
크. 그 미술 원장아줌마는 꼭 쉴려고 하면 주문을 합니다. 그냥 점심때면 다른 곳 배달하면서 같이 할 수도 있는데 짱개 하나 때문에 또 나의 애마를 굴려야 하겠습니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문을 열자 주인아줌마도 씩 웃습니다.
"오늘은 두개다."
왜 짱개가 두갤까? 하나로는 모자랐나요? 조그마한 체구의 원장아줌마가 생각보다 배가 큰가요? 곱배기는 모르나? 하기야 곱배기는 보통보다 맛이 없습니다. 같은 양의 짜장에 면만 많으니 당연히 맛이 떨어지죠.

철가방이 오늘은 다른 날보다 묵직합니다. 더운날 사층까지 뛰어올라갔습니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 집니다.
"식사 왔습니다."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굳어 버렸습니다. 테이블 소파에는 어제 본 아가씨가 마치 날 기다린양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괜한 생각은 몸에 해롭죠?
"배달의 청년. 짜장 꺼내야죠? 테이블에 놓아 주세요."
몇 초 서 있지도 않았는데 원장 아줌마 배가 고팠나요. 책상에서 만원짜리 지폐를 꺼냅니다. 다른 날보다 조금 서툴게 그릇을 내어 놓았습니다. 테이블 유리 밑으로 아가씨의 모은 다리가 길게 뻗어 있습니다.
원장 아줌마가 계산을 하려고 했는데 그 아가씨가 가로챘습니다.
"아니에요. 언니. 제가 계산할게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얼마에요?"
"네? 고...곱하기 인데요."
그녀가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거니까 당황이 되었습니다. 그녀도 당황이 되었는지 "네?" 그러네요.
원장 아줌마가 웃습니다.
"6000원. 내가 매일 하나만 시켜 먹으니까 불만인가 보다."
그녀의 손에는 빳빳한 천원짜리 지폐 여섯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았습니다.

오또바이를 타고 돌아오며 그녀 생각을 해 봅니다. 더운 날씨에 눈앞에 날리는 내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곱네요. 별것에도 다 감상적이 됩니다. 내 벨트지갑에는 그녀가 준 천원짜리 지폐가 들어 있습니다. 곧 주인 아줌마에게로 가겠지요. 그리고 이름없는 천원짜리가 되어 뿔뿔히 흩어 질것입니다. 가여운 그녀의 천원짜리. 오또바이를 세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천원짜리랑 바꿔치기 하고 다시 오또바이를 몰았습니다.
찾으러 간 그릇은 학원 현관 앞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 싶지만 그냥 돌아 왔습니다.

하루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 갑니다. 밤은 호떡처럼 둥근 달과 핫도그 짝대기 처럼 가는 가로등으로 밝습니다. 먹을 것을 생각하니 배가 고프네요. 그녀의 천원짜리 여섯장을 제외한 나머지 천원짜리 한장으로 근처 리어카에서 핫도그 하나 사 먹었습니다. 핫도그카 옆에는 장미를 떨이로 파는 일톤 트럭이 서 있습니다. '천원에 두개라...' 저 다분히 감성적이라고 그랬죠. 지갑을 보니 그녀가 준 천원짜리 여섯장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포기해야 겠습니다.
'천원짜리는 그녀가 주었다.'
걸어가다 도로 돌아와 빳빳한 천원짜리로 장미 두송이를 샀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꽃을 사주었다.'
혼자 너무 청승을 떠나요.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즐겁습니다.

내 방에 누웠습니다. 동생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꽃은 간혹 동생이 재떨이로 이용하는 자그만 화병에다 꽂으려 했습니다. 꽃이 없으면 불쌍히 재떨이로 변해버리는 내 화병에는 팔팔 라이트 꽁초가 집단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이 새끼를 업어치기 해버려? 힘이 부치겠네요. 화병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꽃 두송이가 이 방을 참 은은하게 비추어 줍니다.
천원짜리는 간혹 쓰는 내 일기장에다 꽂았습니다. 모아 볼 생각입니다. 얼마까지 모을지 의문은 들지만 그 돈이 쌓이는 만큼 그녀의 기억에 내 모습이 쌓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 두 구석이 즐겁습니다.
피곤하니 잠이 들어 버릴 만도 하지만 동생이 없는 방에 내 마음이 즐겁습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오늘 미술실 그녀의 말에는 내일도 그 미술실에 온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푸하하. 동생은 그런 나를 방해 하며 들어 왔습니다. 나를 보자 바로 나가 버리네요.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들어온 동생은 화려한 장미 다발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거 뭐냐?"
"선물 받은 거지."
"누구 한테?"
"오늘부터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다."
"어제 편지 쓴 애?"
"그래."
동생은 참 의기양양합니다. 철모르는 동학년 여학생 하나가 눈이 삐엿나 봅니다. 어떻게 예비역을 좋아하냐. 동생이 다니는 과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다고 합니다. 좋겠다. 참 잘생긴 우리 형도 꺼이꺼이 하고 그냥 잘생긴 나도 청승을 부리고 있는데 별로인 막내는 의기양양합니다.
"너 좋아한대?"
"그럼."
"뭐라 그랬는데?"
"너 나랑 사귈래? 니 곁에 내가 있으면 좋잖아. 멋있지?"
"진짜 그렇게 말했냐?"
"응."
"너 주워 온 자식 맞구나. 어쩐지 별로 배가 부르지도 않은 엄마가 애하나 덜렁 들고 올때부터 이상하더니..."
"너랑 나랑 한살 차이다. 하여튼 꽃 이쁘지?"
비싼 장미였습니다. 떨이로 파는 오백원짜리 장미가 아니었습니다. 자그만 화병에 꽂힌 그녀가 사준 장미 두송이가 초라해 보입니다. 꽃이 시들때 쯤 사귀기로 한 여자애가 다시 사 줄거라고 말하는 동생이 얄밉습니다. 같이 들고온 커다란 화병에 동생이 그 꽃을 담았습니다.
 

 

날이 조금 흐립니다. 오후의 짧은 휴식이 나를 답답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제일 소중한 시간이련만 답답합니다. 오늘은 동윤이와 담배를 피며 중국집 문앞에 앉았습니다.
"나는 여름이 되면 그만 둘란다."
"너두? 나도 그럴건데."
"나는 윤경이랑 베낭여행 갈거다."
"미친놈. 500만원은 모았냐?"
"당근이지. 오늘로서 오백만원 채울거다."
"너 오늘 월급받는구나. 베낭여행비는?"
"지금부터 모아야지. 그리고 오백만원 갔다준다고 부모님이 다 받겠냐."
"너 쫓겨 난 걸 생각해봐."
"다 받겠구나. 참 너 소개팅할래?"
"강군아."
동윤이와 이야기 하고 있는데 주인아줌마가 불렀습니다. 미술학원에서 주문이 왔을 것 같은 느낌이 왔습니다. 일어섰습니다.
"소개팅 할래?"
동윤이가 다시 묻는군요. 참 설레는 말이지요.
"너나 해 새꺄."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주인아줌마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미술 짱개 둘이다."

어제 손님이 두고 간 엘에이 다쟈스 파란 모자를 거꾸로 쓰고 흐려 빛을 잃은 내 애마에 철가방으로 빛을 주며 탔습니다.
"바랑. 바랑 바라라랑. 빠라빠라 바라밤."
신나게 오또바이를 몰았습니다. 비록 생긴건 텍트같지만 하레이, 가와사키, 혼다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사층을 너무 빠르게 뛰어 올라 왔나 봅니다. 숨이 차네요. 일단 호흡을 가다듬고 들어가야 겠습니다.
"식사 왔습니다."
나의 기대만큼이나 목소리는 우렁찼습니다.
"배달의 총각 소리가 너무 크다."
나는 눈이 커져야만 했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그녀는 고운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다소 계절에 맞지않아 더워 보이지만 예쁘네요. 늘어뜨렸던 머리도 쪽을 틀었습니다.
짱개를 꺼내어 테이블에 놓았습니다. 어제처럼 테이블 유리 밑으로 그녀의 다리는 볼수가 없었지만 그녀 한복 치마의 색깔을 머금어 유리는 잘익은 사과 빛이었습니다.
오늘은 원장아줌마가 계산을 했습니다. 구겨진 만원짜리 지폐군요. 구겨진 천원짜리 네장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녀의 모습만 보고 갑니다. 목소리는 듣지 못했어요. 나가는데 자꾸 고개가 뒤돌려 지려고 합니다. 중국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내려와 오또바이에 기대어 담배 한대 피었습니다. 멋있는 포즈죠? 철가방을 툭툭 차며 그냥 기다렸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렸나 봅니다. 그릇이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그릇 찾는 척 문을 열고 들어 가려고 했었습니다. 못 보고 가겠군요. 그릇을 들어 철가방에 넣었습니다. 순간 문에 붙어 있는 작은 광고 문구를 보았습니다. 아임에프식 피자 7900원. 맞다 아엠에프지.
학원의 현관문을 홱 열었습니다.
원장실에서 나오는 그녀와 눈이 떡 마주쳤습니다.
"그릇 밖에 내놓았는데..."
오늘도 그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 예. 안녕히 계세요."
별 말 못하고 그냥 나오고 말았습니다. 원장 아줌마한테는 내일 말해야 겠군요.

밤에 비가 왔습니다. 집에 가기가 싫었습니다. 오늘은 칠구와 동윤이와 함께 밤을 지새워 볼까 합니다.
칠구는 만화책을 보며 키득거리고 있습니다. 동윤이는 풀린 눈으로 자기의 잡지책을 보고 있구요. 전 별로 할 일이 없네요. 집에 있는 컴퓨터 생각도 납니다만 미술실 그녀의 모습속에 이내 사라집니다.
"이 여자 가슴 진짜 크다."
동윤이의 말에 난 생각없이 말해 버렸습니다.
"난 아담한게 좋아."
"너도 볼래?"
"그런거 보면 좋냐? 그만 둘때도 되지 않았냐?"
"새꺄 나이 들면 더 그리워 지는 거야 임마."
"같이 보자."
엉덩이 크고 젖 큰 서양여자들은 별롭니다. 아담하고 오목조목한 동양 여자가 보기 좋았습니다. 윤이는 무조건 큰게 좋다는 군요. 동윤이가 가지고 있는 잡지는 대부분이 서양여자들의 것이었습니다. 동양여자는 어쩌다 한 두명 찍혀 있었구요.
"재미 없다."
칠구는 여전히 키득거리며 만화책을 보고 있습니다. 만화책을 들추어 보니 순정만홥니다. 여자들이 보는거 말이죠. 그런데 왜 키득거릴까요. 이상한 놈들이 양옆에서 수준에 맞는 책을 보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오늘 본 한복입은 그녀를 생각해 봅니다.
'무엇때문에 한복을 입고 있었을까? 자기 집이 정말 세탁소 하는걸까?'
잠은 그녀의 생각이 이런저런 다른 생각으로 바뀌면서 들었습니다.

어제 내린 비는 오늘도 계속 되었습니다. 이런날은 배달하기가 힘들죠. 떨어지는 빗방울이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닙니다. 그런데 비가 오면 배달 주문이 더 많아지죠.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미술학원에서 주문 올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배달은 꾸준히 계속 되었습니다.
"강군아 이건 미술 짱개다."
어. 오늘은 하납니다. 그녀가 오지 않았나요? 아니지 그녀만이 먹을 수도 있습니다.
우려 반 기대 반으로 간 나는 실망했습니다.
"원장실 테이블에 갔다 놔요."
원장 아줌마만 있었습니다. 학원생이 하나도 없는 학원 실내의 중간에 놓인 빈 의자를 보며 연필을 이리 댔다 저리 댔다, 하는 원장 아줌마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천원짜리 석장이 놓여있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테이블에다 자장면 내려 놓고 나왔을 때까지 원장아줌마는 그 짓이었습니다. 걸상을 그릴려고 저러나?
"원장 샘?"
"어 배달의 청년, 왜요? 어! 옷이 우주인 같다. 머리가 참 귀엽네."
"아닙니다."
노란 비닐옷이 제가 봐도 웃기긴 합니다. 내 모자가 되어버린 어떤 손님의 엘에이 다쟈스 모자에 삐죽 튀어 나온 머리가 귀엽게 보였나 봅니다. 그녀는 어디 갔어요?라고 묻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안떨어지네요. 하기야 내가 뭔데 물어보겠습니까. 이 꼴로 말입니다.
"말해봐요."
"에. 요즘 그릇이 도둑을 잘 맞거든요. 내다 놓지 마세요. 부탁 할게요."
"그래요 그럼."
그래도 그녀 때문에 어제 하고 싶었던 말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네요. 도둑은 무슨 도둑입니까. 사층까지 올라와서 디른 짱개 그릇 훔쳐갈 놈이 누가 있겠습니까. 원장 아줌마도 저만큼이나 단순하네요. 철가방을 들고 문을 나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다 급하게 올라 오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모자를 쓴 모습이 참 이쁩니다. 내가 둘러쓴 엘에이 다쟈스 모자위의 노란 비닐 모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제가 또 계단을 막고 섰군요. 물기가 있는 우주복 같은 노란 비옷을 입고 한 팔엔 철가방을 들고 말입니다. 한쪽으로 최대한 비켜서며, 그녀에게 물이라도 묻으면 안되니까요. 철가방을 올렸습니다. 그녀가 보조개를 한 번 보였습니다. 그리곤 뛰어 올라 갑니다. 발자국 소리가 참 듣기 좋군요. 아쉽구요.
"저기요."
왜 그랬을까요 그냥 말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나보다 몇 계단 위에서 뒤돌아 봤습니다.
"저 말이에요?"
"호... 혹시 짜장면 안 시키세요?"
삐죽 내민 내 입이 얄미울겁니다. 그녀의 모습에는 또 쌀쌀함이 보이려 합니다.
"짬뽕 주세요."
"네?"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대답이었습니다. 얼떨결에 한 말인데 그녀가 답을 해주는 군요.
"비가 오니까 국물있는 짬뽕으로 달라구요."
"아. 예."
이제부터 그녀를 다림씨라 부를겁니다. 뭐 불러 본적은 없지만 마음속에 생각할 때도 다림씨라 그럴겁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 사이기 때문에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죄 될건 없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중국집으로 달려가 짬뽕하나 싣고 발로 또 학원으로 왔습니다. 다림씨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식사 왔습니다."
"어 아까 시켰는데 무슨. 다림이가 시켰나?"
"네."
원장아줌마는 아직도 그 짓거리네요. 다림씨는 원장실에 있나 봅니다. 원장실 문의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안돼요. 그 안에서 옷갈아 입고 있어요. 배달의 청년은 노크할 줄 몰라요?"
"자꾸 배달의 청년이라고 그러지 마세요."
손님은 왕인데 원장아줌마의 태도가 그렇게 쌀쌀하지 않았는데 원장실 안에 있는 다림씨 때문일까. 자꾸 철가방을 비꼬아 말하는 원장아줌마의 말이 참 듣기 싫었습니다.
"어머 화났어요?"
"화난건 아니지만..."
"들어 오세요."
그녀의 음성입니다. 들어오세요? 옛날 황진이가 그의 사랑하는 스승 서경덕을 배알하는 모습같이 곱게 한복입은 다림씨가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머리를 매만지고 있습니다.
짬뽕을 꺼내 놓았습니다.
"다림아 먹고 나면 바로 작업 시작하자."
"알았어요."
먹을땐 개도 안건드린다는데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저 원장아줌마가 다림씨를 다그치네요.
"얼마에요?"
"사...삼천 오백원이요."
다림씨는 들고 온 가방에서 지갑을 꺼 내어 저번처럼 빳빳한 천원짜리 석장과 백원짜리 동전을 하나 하나 세어 가며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녀의 손은 여름이지만 시원하군요. 동전을 건네 받을때 그녀 손의 감촉을 맛보았습니다. 다림씨는 조그만 일에 배려가 깊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매일 만원짜리 던져 주는 원장아줌마와는 달리 말입니다.

"잘 있어요. 원장 샘."
"잘가요. 총각."
그래 총각이라 부르는 것까지 뭐라 그럴수는 없지요. 원장 샘 진짜 시키는데로 하는군요. 문을 열려다 문안쪽에 놓여 있는 짱개그릇을 보았습니다.
짱개 그릇을 갖다 주고 주문이 있어 다시 배달을 나갔습니다. 비가 갑자기 많이 왔습니다. 이런 날씨에 짱개 보다 훨 무거운 짬뽕을 다섯그릇이나 시켜 먹는 놈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당구장이였군요.
저도 당구장에서 짜장이다 짬뽕이다 시켜 먹어 봐서 뭐라 할 수도 없겠습니다. 중간 중간 당구를 치면서 먹는 사람들은 한 그릇 먹는데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 예측 불가능 하지만 이렇게 공은 그대로 두고 타이머만 꺼놓고 먹는 녀석들은 엄청 빨리 먹죠. 기다려도 되겠군요.

미술실 앞에는 그릇이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말한 보람이 있군요.
"그릇 찾으러..."
다림씨가 학원 중간의 의자에 앉아 바로 이쪽을 쳐다 보고 있습니다. 원장아줌마는 다림씨를 약간 비켜 보면서 제법 큰 켄버스에다 선만 직직 긋고 있습니다.
"그릇 거기 있죠?"
원장 아줌마는 내 쪽을 쳐다 보지 않았고 다림씨도 변화없는 표정이었습니다.
다림씨는 모델이었군요. 어쩐지 예쁘다 했습니다. 내려가는 계단은 천천한 걸음이었습니다. 고정된 그녀의 눈이 너무나 뚜러지게 나를 바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안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눈빛을 내가 소유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방에 누웠습니다. 새 동전은 아니지만 깨끗한 편입니다. 다림씨가 준 동전을 만지작 거리고 있습니다. 아까 줄때의 손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천원짜리는 이미 일기장에다 꽂았습니다.
동생 책상의 여러송이의 장미는 벌써 시들어 갑니다. 서로 싸우나 봅니다. 내 책상 화병의 꽃은 다정하게 괜찮은 모습입니다. 두 송이가 참 보기 좋습니다.
"은정이가 시샘을 하나 봐."
동생이 화병의 꽃들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니 여자 친구가 은정이냐?"
"응."
"시샘을 왜 하는데?"
"꽃이 시들었잖아. 걔가 시샘하는 거야. 나를 독차지 하고 싶은 가 보지. 하하하."
베개를 집어 던졌습니다. 동생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쳤습니다.
"헛소리 할래?"
"시샘이 아니고 기다리고 있는 거구나."
"또 뭐냐?"
"빨리 시들어야 또 나에게 꽃을 사줄거아냐. 다음에 꽃을 사주면 키스 해준다고 내가 말했걸랑."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습니다.
"니 엄마 찾으러 빨리 가 새꺄."
"형아야."
"왜."
"약오르지..."
별로 약오르지 않다. 내 가슴에도 이제 한 여자가 살고 있다.
 

 

     날이 개었습니다. 어둑한 방에 햇빛이 들어와 두송이 장미에게 안깁니다. 오늘은 집에 있을 겁니다. 이주에 한번씩
     찾아오는 중국집의 휴일입니다. 동생은 베개를 껴앉고 웃음을 머금은 채 잠들어 있습니다. 다음주가 시험이라는
     녀석이 참 태평합니다.
     책상 위 동생의 삐삐가 울렸습니다.
     "0404 1004,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레이져 시켜 버렸습니다. 시계의 큰 바늘은 육과 포옹하고 있었고 큰 바늘에 밀린
     작은 바늘은 칠로 가고 있습니다.
     내 가슴 속 여자가 아침을 설레이게 했습니다. 오늘 하루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오전 내내 집에 있다가 뭔가 생각이 나 집을 나섰습니다. 다림씨가 준 지폐와 동전이 지금 내 호주머니에 있습니다.
     비록 떨이로 파는 장미지만 예쁘네요. 팔천 오백원어치 장미를 샀습니다. 열여덟 송이입니다. 한 송이는 그냥 끼워
     주더군요. 예쁜 포장지로 감싸지 못한 열 여섯 송이를 몰래 미술학원 앞에다 놓고 왔습니다. 그 시간이 두시 가까이
     되었을 겁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그 꽃은 분명 다림씨에게 안기겠지요. 두송이는 이젠 시들어 가는 내 화병의 장미
     옆에다 꽂았습니다. 몇송이 더 들어가면 화병이 비좁겠습니다.

     짱개 배달의 하루는 다시 시작 되었고 힘든 고비를 넘겼습니다. 오늘 미술학원에선 짬뽕 한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날씨는 맑았습니다. 대충 예상은 했습니다. 다림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원장 아줌마가 어제 내가 놓아둔 장미를 들고 쉼호흡하고 있습니다. 분명 내가 놓아둔 장미인 걸 알겠습니다. 열 여섯
     송이고 포장이 또한 초라합니다. 김 새내요. 그건 아줌마 것이 아니에요. 하기야 노처녀가 꽃을 받으면 저렇게 좋아
     할수도 있겠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사모하여 갖다 놓았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겠지요. 착각도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 혼자 즐거워 하세요.
     중국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녀석은 배달 나갔나 봅니다. 썰렁한 홀에서 잠이 들었어요. 날씨는 더웠고 선풍기 바람이
     좋았습니다. 주인 아줌마가 이런 날 깨우지 않았습니다. 삽십분 정도 조는 듯 잤습니다. 슬 저녁을 위한 주문이 시작 될
     때가 되어 갑니다.
     "강군아 미술 그릇 찾아 와야지."

     이제는 다림씨가 학원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릇을 밖에 내 놓았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됩니다. 계단을 후다닥 뛰어 올라
     갔습니다. 다행히 그릇이 나와 있지 않군요.
     "그릇..."
     많이 감격했습니다. 이건 분명 다림씨와 제가 인연이 있을 거란 암시를 해주는 대목입니다. 맞아요. 분명 그녀와 인연이
     있을겁니다. 모델과 철가방은 한복과 장미처럼 다소 어색하지만 말입니다.
     치마의 빨강이 가슴을 타고 올라와 있는 모습입니다. 치마색깔은 초록의 저고리에서 장미모양으로 빛이 났습니다.
     다림씨가 내가 준 장미를 안고 있습니다. 안어울리 듯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총각!"
     "저 말입니까?"
     "배달의 청년이 듣기 싫다며?"
     "총각도 별론데요. 그냥 원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원이씨."
     "왜요 원장 샘."
     "한복에 장미 꽃이 어울려 보여? 그냥 한복만 입은 여인으로 그릴까?"
     "꼭 장미를 그려주세요."
     무표정의 그녀가 눈동자를 굴려 이쪽을 한 번 쳐다 보았습니다. 참 희한하다 느꼈을 겁니다. 자기를 이렇게 앉혀두고
     철가방이 뭘 알겠다고 물어보는 이 원장아줌마가 신기할 겁니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맺힌게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로 열흘 정도 미술학원에서 주문이 없었습니다. 저 밑 사거리에 생긴 북경 반점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혹시 입맛을
     바꾼거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면 안되는데... 날씨는 더욱 뜨거워 지고 답답한 가슴으로 배달이 짜증이
     났습니다. 오늘은 더군다나 일요일입니다.
     "강군아. 미술 짱개 둘이다."
     정오를 갓 넘긴 시간에 들린 주인 아줌마의 그 소리가 더운 여름 날 소낙비처럼 내 답답한 마음을 씻어 주었지요.
     오또바이야 달려라. 설레는 날 싣고 말이다.
     하늘을 나는 마음으로 숨이 가픈지도 모르고 사층을 단숨에 뛰어 올라 갔습니다.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 휴지통에
     버려져 있는 시든 장미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장미들은 그림속 다림씨의 모습속에 아주 신선하게 안겨
     있었습니다. 그림은 거의 완성 단계였습니다. 아직 캔버스가 이젤 위에 놓여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저렇게 그냥 팔아도
     될것 같습니다. 내가 살까요?
     "식사 왔습니다."
     "들어 와요."
     원장실 안에서 원장아줌마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림씨의 향기가 납니다. 있을 겁니다.
     다림씨는 한복차림이었으나 머리는 풀어 있었습니다. 땀으로 젖은 몇줄기 머리 가닥이 그녀의 얼굴에 묻어 있습니다.
     그 모습이 화살이 되어 내 심장을 또 찌르는 군요.
     "며칠 못 봤죠?"
     "네."
     짱개 그릇을 내 놓으며 원장 아줌마의 말에 답을 했습니다.
     "딴데 시켜 먹어 봤는데 역시 총각 집이 제일 맛있더라구."
     이 아줌마가 진짜로 입맛을 바꾸려고 했군요. 나쁜 아줌마네.
     "총각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참. 뭐라 부르기로 했더라."
     이런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다림씨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때 원이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냥 고개만 끄덕거려 주었습니다. 날뛰는 마음을 붙잡아야 했기에 표정없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그녀 앞에 짱개 그릇을 꺼내 놓으며 말입니다. 손은 왜이리 떠는 거야.
     "맛있게 드세요."
     돈도 못 받고 그냥 나왔습니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고 해야 겠지요.

     그릇을 가지러 갔을 때 다림씨는 아까와는 다른 옷차림, 나에게 자기의 첫 모습을 보여 주었을 때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언니 저 가볼께요."
     참 시간 잘 맞추어 왔군요. 원장아줌마는 다림씨가 그려진 그림앞에서 명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몇일은 더 나와야 할거야."
     "그래요. 내일 봐요."
     그릇을 후다닥 챙겼습니다.
     "돈 받아 가세요."
     다림씨가 저에게 말까지 걸었습니다. 이렇게 황송할 때가...
     "네?"
     "언니가 돈 안줄거래요. 돈 꺼내는데 그냥 나가 버렸다구."
     다림씨는 이 말을 속삭이 듯 해주고 현관을 나갔습니다. 살 열 받네요. 원장 아줌마 들뜬 날 이용해 먹을려고 했단
     말입니까. 괘씸하게 느껴지는 군요. 짱개 하나 팔아 얼마나 남는다고...
     "원장 아줌마. 돈 주세요."
      "어머! 이 총각 봐. 이봐요 배달의 아저씨. 나 아줌마 아니야."
     제가 실수하고 말았네요.
     "죄송해요 원장 누나. 돈 주세요."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가고 했습니다. 결국은 웃었지만 한차례 원장아줌마의 표정엔 살기가 돌았습니다.겨우 돈을 받아
     오또바이로 왔습니다. 다림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걷고 있었군요. 꺽어진 대로를 따라 오또바이를 몰고 있는데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고 있는 다림씨를
     보았습니다. 팔이 예전보다 많이 탓군요. 그 버스 정류장 앞에 오또바이를 세웠습니다. 아는체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몇 보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조금 더 보기 위해 철가방을 바로 세우는 척 했습니다. 그런데 다림씨가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저...저기요."
     "저 말인가요?"
     "에... 사...삼선짜장도 맛있어요."
     "네?"
     "빠라빠라 바라밤."
     왜 바보같이 말을 걸어가지고 이런 낭패를 봅니까. 저기요,하고 나서 내 머리속은 온통 하얗게 변해 버리더이다. 눈
     앞은 깜깜해지고 말입니다. 다림씨가 날 쳐다보니까 뭘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나머지 잡고 있던 헨들의 경적 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앞에 말한 것도 영 찜찜합니다.
     둘러쓴 모자를 바로 하고 철가방아 날 살려라 도망치려 했습니다. 오또바이가 시동이 꺼졌네요.
     "바랑. 빠라빠라 바라밤."
     시동은 안걸리고 경적은 울려되고... 그녀가 아주 멀뚱한 표정으로 절 보고 섰습니다. 아주 멍한 표정입니다. 치마가
     조금 바람에 날렸습니다. 너무 당황이 되는군요. 나도 모르게 그녀를 보고 씩 웃었습니다.
     그녀가 이빨을 보였습니다. 코위는 그대로인 채 나의 모습을 흉내라도 내 듯 이빨을 보이며 그녀도 씩 웃었습니다.

     쪽팔림과 동시에 그녀의 웃음 때문에 오늘 밤은 많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왜 나는 여자 앞에서는 당황하는 걸까. 다림씨
     앞에서는 너무나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오늘처럼 뒷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런 생각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 내 친동생인지 많이 의심이 가는 민이 한테 배워야 겠습니다.
     "침착해.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잃지마."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하지만 이게 정답이겠죠.

     오늘도 배달은 시작되었고 오또바이로 철가방을 운반하고 있습니다. 배달을 갔다오니 주방에서 그릇을 랩으로 싸시며
     아줌마가 말씀하셨어요.
     "강군아 미술 배달이다. 짱개하나에 삼짜 하나다."
     삼선짜장? 다림씨가 내 말을 듣고 삼선짜장을 시키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며 오또바이를 몰았습니다.
     오늘은 한창 바쁜 한시경이었습니다. 다른 곳의 음식도 함께 넣어 달렸지요. 탕수육 하나가 미술학원의 짱개들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미술 학원에서 학생 둘이 내려 옵니다. 학원이 맞긴 맞나 봅니다. 지금까지 수강원들을 보지 못했기에 긴가 민가 했는데
     학원생들이 있었군요. 아마 그림은 시간을 따로 내어 그렸던 것 같습니다.

     원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원장아줌마와 다림씨가 있습니다. 정다운 모습입니다.
     "식사 왔습니다."
     다림씨는 컴 앞에서 리셋키만 누르고 있었습니다.
     "언니. 컴퓨터 맛 갔다."
     "올해 샀는데."
     "식사 왔다니까요."
     나를 무시하는군요. 지네들끼리 이야기 하길래 다시 식사 왔다는 말을 해야 했습니다.
     "삼선짜장 누구에요?"
     "저요."
     다림씨가 먼저 꺼내 놓은 젓가락을 손에 쥐고는 들어 보였습니다. 참 귀여운 구석이 많네요.
     "왜 난 안 물어봐?"
     이 아줌마가 진짜.
     "야 탕수육이다."
     다림씨가 철가방 속을 보았나 봅니다. 같이 들고 온 탕수육을 보더니 귀여운 아이처럼 말했습니다. 짜장면을 꺼내다
     그녀의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어제보다 많이 어려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눈망울이 오늘은 더 커 보입니다.
     까짓것...
     "이 탕수육은 보너스에요. 드세요."
     원장 아줌마 다림씨 둘 다 멀뚱멀뚱 저를 쳐다 봅니다. 원장 아줌마가 물었습니다.
     "삼선짜장 시키면 탕수육 보너스로 주나요?"
     이 아줌마 진짜 바본가.
     "아니요."
     "삼선짜장이 얼마에요?"
     탕수육은 대짜였습니다. 엄청 푸짐했습니다. 분명 둘이서는 다 못 먹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꺼내
     놓았는데... 다림씨가 삼선짜장의 가격을 물어 보았습니다. 탕수육을 물끄러미 쳐다 보며 말입니다.
     "5000원이요."
     다림씨가 계속 탕수육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천원짜리 다섯장을 주었습니다. 원장 아줌마는 또 만원짜리 군요.
     다림씨에게 받은 오천원은 내 주머니에 넣고 벨트지갑에서 잔돈 칠천원을 원장 아줌마 한테 주었습니다.
     "이 탕수육만 시켜 먹으면 얼마에요?"
     원장아줌마가 물었습니다. 다림씨는 젓가락을 입에 물고 눈동자를 세워 저를 쳐다 봅니다.
     "이만원이요."
     자꾸 물을까봐 일어 서 나왔습니다. 나가다가 문득 내가 전자공학과 학생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까 컴퓨터
     얘기를 들었고 내가 컴퓨터에 대해서는 좀 안다는 사실도 기억이 났습니다. 원장실 문을 열다가 뒤돌아 섰습니다.
     "저기요?"
     탕수육 고기를 집어 올리다 놀라 떨어뜨리는 두 여자를 보았습니다. 고기가 떨어져 나간 젓가락을 들고 날 쳐다 보는
     다림씨가 깨물고 싶을 정도로 귀엽습니다.
     "네?"
     또 떨려 오는군요. 침착하자. 침착하자 주원아.
     "커...컴푸터가 잘 안되요?"
     "난 잘 모르겠는데 여기 다림이가 맛이 갔다고 말하네."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안 켜지길래. 친구거랑 좀 틀리길래 말한거에요."
     뭔가 책임지지 못할 말을 했다가 발뺌하는 듯한 어투입니다. 다림씨의 표정이 또 귀엽네요.
     "한 번 볼까요?"
     대충 보니 시간이 걸릴 것도 같습니다.
     "오늘은 안되겠고 내일 한번 봐 드릴까요?"
     "총각 컴푸터 잘 알아?"
     "제 전공이 전자 공학이에요. 제 컴은 제가 조립하고 프로그램도 다 제가 깔았는걸요."
     "학생이세요?"
     다림씨가 나에게 질문을 하는군요.
     "휴학생이에요."
     "총각 진짜로 한 번 봐줄 수 있어?"
     "뭐 단골이니까. 내일 중국집 노는 날이거든요. 봐줄 수 있어요."
     "총각 진짜 고맙다. 탕수육도 서비스로 주고 컴까지 고쳐 줄거야?"
     "자꾸 총각 하지 마세요."
     "그래 미안. 그럼 내일 언제 올거야?"
     다림씨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혹시 테트리스라는 게임 있어요?"
     그 표정을 읽은 듯 다림씨가 말했습니다. 98년도에도 테트리스 하는 사람은 있었군요.
     "물론 있지요. 그럼 내일 저분 있을 때 올까요?"
     난 입을 삐죽이 내밀어 다림씨를 가리켰습니다.
     "테트리스가 뭐냐?"
     "게임인데 정말 재밌어."
     아무래도 저 둘 굉장히 컴맹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럼 이맘 때 쯤에 와."

     내일은 다림씨를 좀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내 마음은 날고 오또바이는 그런 내마음을 싣고
     달립니다. 중국집 가서 주인 아줌마한테 졸라 욕들어 먹었습니다. 탕수육 값은 제가 치뤄야 했구요. 그래도 즐겁습니다.
 

 

     휴일이 이렇게 설레였던 적은 아마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습니다. 낮에 티비방영도 없는 휴일이지만 이 들뜬 마음을
     붙잡기에는 내 힘이 너무 약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험 끝나 뒤비져 자고 있는 동생 배 한 번 때려보고 아침
     준비하시는 엄마한테 달려가 실실 쪼개도 보고 어딜 나가시는지 일찍 일어나 계시는 아버지께 신문도 갖다
     드렸습니다. 형 한테는 차마 못가겠군요. 불쌍한 놈이라.
     약속 시간 몇 시간 전에 이미 전 나갈 채비를 마쳤습니다. 옷차림도 신경을 좀 썼구요. 머리도 단정히 무스 발라 넘기고
     혹시나 해서 은행에서 돈도 10만원이나 찾아 놓았습니다. 26살 사내의 마음은 진정이 되질 않았습니다.

     디스켓 한장을 들고 학원으로 향합니다. 날씨는 덥지만 너무나 화창합니다.
     학원 현관앞에 섰습니다. 되도록 천천한 걸음으로 올라왔습니다. 침착하기 위해서죠. 호흡을 가다듬고 노크를
     했습니다.
     "들어와요."
     오늘 원장아줌마와 다림씨는 원장실이 아닌 학원 본 실에 있었습니다. 완성된 그림을 앞에 놓고 말입니다.
     "어. 배달의 총... 원이씨 정말 왔네요."
     그럼 오라고 했으면서 씨.
     "오늘은 제법 쌈박한데."
     우리집 세형제 중에 두번째로 잘 생긴 사람입니다. 그건 우리 엄마가 정한 것이지요. 내가 볼때는 내가 제일 잘 났어요.
     다림씨도 그림을 보며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그림 잘 그린거 같아?"
     뭐 실물 보다는 못하지만 원장아줌마가 그림은 잘 그리네요.
     "예."
     "오늘 완성했어."
     뭐 저번에 봤을 때와 별로 다른 것도 없는데, 오늘 완성했다고 그럽니다.
     "오늘 점심은 뭐 먹냐? 다림이 넌 뭐 먹을래?"
     다림씨가 저를 쳐다 봅니다. 어색한 가요?
     "뭐. 별로 생각없어요."
     "점심은 먹어야지. 배달의 총각이 여기 있으니 중국 음식은 안 되겠고 그때 시켜 먹었던 아임에프식 피자나 시켜
     먹을까? 원이씨 피자 좋아해요?"
     북경 반점은 아니었군요. 다림씨와 절 며칠간 못 보게 했던 건 아임에프였군요.
     "저야 뭐."
     "그래 언니. 그거나 시켜 먹어요."
     "그러지 뭐. 컴퓨터 고치는 데 시간 많이 걸려?"
     원장 아줌마가 일어 섰습니다. 켄버스를 들고 조심스럽게 벽장에다 넣더니 날 인도하 듯 원장실로 들어 갔습니다.
     "한 번 봐주세요. 정말 고장 났어요?"
     원장아줌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나는 그 눈을 받아 다림씨를 쳐다 보았고, 다림씨는 내 눈을 피해
     원장아줌마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켰는데 분명히 이상이 있었어요. 그 있잖아요 컴퓨터 크면 뜨는 화면이요. 제 친구꺼는 그게 떴는데, 그리고 소리도
     났는데 언니 것은 안 그랬단 말이에요?"
     뭐 죄 지었습니까? 다림씨가 약간 흥분 된 어조로 말했습니다.
     "무슨 화면이요?"
     오히려 제 음성은 차분했습니다. 다림씨가 저에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컴퓨터 켜면 뜨는... 그걸 뭐라 그러더라, 하늘색 있잖아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듯한 다림씨의 눈망울이 깜찍하네요.
     "윈도95 화면이요?"
     "맞아요. 그거."
     "빌 게이츠. 나 그 사람 아는데."
     원장 아줌마 갑자기 빌 게이츠는 왜 나와요. 유식을 자랑하고 싶었나 봅니다. 참 무식하게도 말입니다.
     여자 둘을 내 옆으로 세워 둔 채 컴 앞에 앉았습니다. 그 기분 괜찮네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모니터를 보았습니다.
     "아예 부팅이 안되는군요."
     "그게 뭐에요?"
     다림씨가 물어 보는데 대답 안 할 수가 없었죠.
     "컴퓨터에 꼭 필요한 거에요. 부팅이 있어야 아까 말한 그 화면이 떠요."
     "그거 비싼가? 왜 그게 없대?"
     원장선생님 너무 무식을 자랑하지 마세요. 다림씨도 막상막하네요.
     "제가 고장 낸거 아니죠?"
     "예 다림씨는 잘 못이 없어요."
     컴퓨터를 왜 샀는지 모르겠습니다. 컴퓨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어요. 단지 너무 컴퓨터를 오랫동안 켜지 않아서
     CMOS의 밧데리가 나가 있었습니다. 자주 사용해야 충전이 되는데 몇 달간 컴퓨터를 켜지 않았나 봅니다. 하드
     드라이버가 인식이 되어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팅이 되지를 않은 거였습니다.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쉽게 고칠
     수가 있었지만 다림씨가 옆에 있습니다. 시간을 끌어야죠. 뒤돌아 봤을 때 원장아줌마가 나를 쳐다 보고 있었고
     다림씨도 저를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모니터나 컴퓨터를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총각 내 이름은 알어?"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근데 다림이 이름은 어떻게 알아서 불러?"
     제가 다림씨 이름을 불렀나요. 하하. 저 원장아줌마가 이런 학원 차렸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저렇게 덜 떨어진
     머리로 말입니다.
     "언니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니까 알았겠죠 뭐."
     "네."
     "총각은 이름이 뭐야? 그냥 원이야?"
     이 아줌마가 저를 넘볼려고 하는 것입니까? 수상쩍습니다.
     "강 주원인데요."
     "그래? 난 이현자구 얜 손다림이야."
     아줌마 이름은 안가르쳐 주어도 되요. 그래도 원장 아줌마 덕에 통성명을 했습니다.
     "주원씨는 몇 살이야?"
     "저요? 26살인데요."
     "생각보다 많네. 나보다 다섯살 밖에는 적지 않다 야."
     아줌마 진짜 수상적네요. 감히 삼십대가 이십대를 넘보려고 하다니... 원장아줌마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림씨를 쳐다
     보았습니다.
     "전 24살이에요."
     잘 가르쳐 주네요. 오늘 내 옆에 철가방도 없는게 그녀가 가까이 다가와 있는 느낌입니다. 다시 원장아줌마에게로
     시선을 주며 물었습니다.
     "컴퓨터 뜯어 봐도 돼요?"
     "뜯어 봐? 뜯어 봐도 고장 안나나?"
     "그럼요. 드라이버 좀 갖다 주세요."
     컴퓨터 케이스의 두껑을 열었습니다. 옆에 서 있던 두 여자들이 신기한 듯이 고개를 숙여 컴퓨터 내부를 봅니다. 컴퓨터
     안 여러 카드들에 먼지가 수북히 앉아 있습니다. 전 그냥 카드를 분리해 먼지만 닦아 내었는데 그것이 그들의 눈에는
     아주 수준 높은 행동으로 보였나 봅니다.
     "진짜 컴퓨터 잘 아나 보다."
     "뭘요."
     "대학생이야?"
     "네."
     "근데 철가방은 왜 들고 다녀?"
     "아르바이트 하는 거에요."
     "아 고학생인가 보구나."
     "아닌데요."
     "어디 대학 다니는 거야?"
     "여기서 제일 가까운데 있는 대학이요."
     이렇게 원장 아줌마에게 말해도 다림씨가 다 듣겠죠. 대답하는게 즐겁습니다. 카드들을 이리 저리 돌려 보며 꽂힌
     칩들을 만지작거리기도 했습니다. 원장 아줌마가 신기한 듯 쳐다봅니다.
     "커피 먹을래?"
     "주시면 먹죠."
     "다림이도 한잔 할래?"
     "네."
     컴퓨터 뚜겅을 닫고 파워버튼을 눌렀습니다. CMOS를 맞추고 부팅을 시켰습니다. 윈도95화면이 뜹니다.
     "야 떴다."
     다림씨가 소리쳤습니다. 옆에는 다림씨만이 서 있었습니다. 원장아줌마는 커피 끓이러 갔어요. 내가 돌아보자 소리
     쳤던게 어색했던지 입을 쭝긋 한번 내밀고는 보조개를 띠우네요.
     "됐죠?"
     "네."
     "참 테트리스 깔아 드릴께요."
     "그거 있어요?"
     "네."
     난 디스켓을 꺼내 다림씨에게 흔들어 보여 주었죠. 다림씨는 그건 보지도 않고 모니터 화면만 주시하고 있네요.
     테트리스를 복사하고 친절히 아이콘을 배경에다 꺼내어 주었습니다.
     "이것만 누르면 실행이 되요. 해 보실래요?"
     "네."
     전 자리를 비켜 주었습니다. 다림씨가 예쁜 손으로 금방까지 내가 만졌던 키보드 한 쪽을 누르며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자 커피 끓여 왔어. 어! 다 고쳤네."
     다림씨는 게임에 빠져 있습니다. 끝이 나야 오겠네요. 전 소파에 앉았습니다.
     "고마워요."
     "뭘요."
     "피자 시켰거든요. 먹고 가요. 알았죠."
     "네."
     "앞으로 그냥 누나라 불러요. 계속 그 곳에 배달 시켜 먹을테니까."
     "감사합니다."
     다림씨는 내가 커피의 잔을 반정도 비웠을때 테이블 소파로 왔습니다. 놀랍네요. 윈도를 종료시키는 법은 알고
     있었습니다.
     "고장 났나봐요."
     "왜요?"
     "그냥 꺼져 버려요."
     "아. 그건 ATX 방식이라서 그래요."
     멀뚱히 날 쳐다보는 그녈 보았습니다. 다림씨에게는 어려운 말이었겠죠?
     "게임 좋아 하시나 봐요."
     "네. 언니 테트리스 해 봐요. 재밌어요."
     내 질문을 원장아줌마에게로 옮겨 버립니다.
     "할 줄 알아야 하지."
     "이 분 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요."
     "네? 하하. 게임 좋아하시면 몇 개 더 깔아 드릴까요?"
     "언니 컴퓨터에요?"
     "네."
     "저 내일부터 여기 안나올거에요. 언니한테 물어보세요."
     지금 까지 참 부드럽게 이어지던 내 말투는 다시 버벅거려졌습니다. 오늘 다림씨의 태도에 자신감이 생겼었어요. 꼭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처럼도 보였거든요. 그런데 그녀는, 다시 그녀라 해야 겠군요. 그녀는 나의 그런 마음을 여지없이
     뭉게 버리는 말을 참 태연히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습니다.
     "내..내일은 여...여기 안 계실거에요?"
     "네. 오늘로 작업이 끝이 났거든요."
     커피가 갑자기 씁니다. 원장아줌마가 내 표정을 알리가 없죠.
     "아임에프식 피자 치고는 맛이 괜찮더라 그치?"
     "응. 언니."
     "조금 늦네."

     피자는 내가 아무런 말 없이 몇 분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도착했습니다. 인연은 생각보다 쉽게 이어지지는 않는가
     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더니 틀린 말이군요. 그녀가 여기 없다면 만날 도리가 없겠지요. 그 동안 참
     설레였는데... 용기를 내어 전화번호라도 물어 볼까 생각을 해 봅니다만,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피자를 앞에 놓고
     평상시처럼 재잘 거리는 저 두 여자를 보니까 접어 둬야 겠습니다. 하기야 이 정도 가지고 사람 사귈수 있다면 누가 못
     사귀겠습니까. 저런 미인은 나에게는 맞지가 않죠.
     "주원씨는 피자 안좋아 해? 맛이 없어?"
     피자 한조각을 들고 너무 시간을 지체했었나 봅니다. 여섯 조각난 피자는 한 조각만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아직 난 몇입
     먹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다림씨가 눈치를 살피더니 그 남은 한조각을 가져 갑니다. 보기 보단 많이 먹는 여잔가 봅니다. 아까는 생각이 없다고
     그래놓구선. 내가 먹는 모습을 쳐다 보니까 또 깜직한 표정을 지어 주는 군요. 너무 자주 짓지는 마세요. 그 표정이
     나같은 녀석을 착각하게 만드니까...

     "전 그...그만 가볼게요."
     "왜. 좀 더 놀다가지."
     "야...약속이 있어요."
     "그래? 좀 더 놀다가 다림이랑 같이 가면 될텐데."
     "됐어요. 재밌게 노세요. 저 가볼게요."
     다림씨는 피자가 없어져 아쉬웠는지 빈 피자박스를 내려다 봅니다. 인연이 있으면 어쩌다 길다가 만날 수는 있겠죠. 두
     여자가 일어 섰지만 현관까지는 원장아줌마만 나왔어요. 그녀는 원장실에 있구요. 터벅 터벅 내려오는 계단이 참
     길게도 느껴집니다. 함부로 설레이지 맙시다. 지나고 나면 진짜 쪽팔려요.

 

 

오늘로 칠월달이 시작되었습니다.
날씨가 참 덥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어둡고 어제부터 내린 비가 주룩주룩 계속 되고 있습니다.
내 마음처럼요. 오늘도 미술학원으로 배달을 나갔습니다.
그녀는 그림속의 모습으로만 나를 반겼고 한 그릇의 짜장면 실어 나르기가 짜증이 났습니다.
그 그림속 그녀마저 내일부터 보지 못할거에요.
짜장면 놓을때 원장아줌마가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문득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은 이미 잊혀졌다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아직은 내 기억속에 그녀가 뚜렷이 있지만 언젠가는 문득 생각이 나면서
미소짓는 것으로 그녀의 인연이 지워지겠군요.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구름뒤에 해가 어제처럼 있겠지만 벌써 중국집 실내는 많은 조명들이 켜졌습니다.

그래 빨리 내 마음에도 다른 불을 켜자.

비가 온 관계로 다른 날 보다 한시간 가량 빨리 일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집에 가지 않을 겁니다.
그냥 철가방 동지들과 월세방에서 자고 가렵니다.
옆에 칠구랑 동윤이가 참 많이도 재잘거리는 데 왜이리 멍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야. 비도 오는데 커피나 시켜 먹을까?"
"그 좋죠."
"이 밤에 무슨 커피를 시켜 먹어 임마."
동윤이는 음흉한 웃음을 짓더니 말했습니다.
"요 앞에 현철다방있잖아. 거기 박양하고 내가 잘 알아. 전화기 줘봐."
동윤이는 의기양양하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 가정집에 배달 안나가는 거는 아는데요. 박양한테 말하면 안다니까요. 커피 석 잔이요. 네 홍콩반점 뒤요. 꼭 박양보고 오라고 하세요."

이 녀석들이 나 없을때 많이 시켜 먹었나 봅니다.
기분도 그렇고 비 때문에 몸도 한기가 드는데 커피한 잔이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비가 많이 그쳤나 봅니다.
오또바이 소리가 난 뒤 들어온 그 박양은 별로 비를 맞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제법 예쁘네요.
보아 온 레지들과는 달리 조숙한 면도 다소 보입니다.
싸구려 진한 화장도 아니고 옷차림도 난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타 드려요?"
"잘 타봐."
동윤이는 박양에게 꺼림낌 없이 말했지만 칠구는 다소 의외였습니다.
"나는 좀 연하게 타주세요."

존댓말이네요. 참내 저게 저래 보여도. 레지들 거의 스무살에서 안팍임을 압니다.
손님들 보통 반말하죠. 칠구는 자기가 먹은 컵을 나가서 씻어 가지고 왔습니다.
아무래도 예전부터 그랬나 봅니다.
나는 그짓이 참 이상하게 보였는데 박양도 동윤이도 별로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윤이가 박양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잘 먹었다고 말하니까 칠구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습니다.
다시 오또바이 소리가 들리고 박양은 나갔습니다.
"이 녀석. 저 박양 좋아한다."
동윤이가 칠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뭐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괜찮잔아요."
"쟤가 보기에 저래 보여도 완전히 까진 애야. 다방레지가 다 그렇지. 쟤가 처녀 같냐?"
"뭐 그렇다고 좋아하면 안되나. 내 마음이 좋으면 되잖아요."
"이 새끼가. 니가 무슨 마지막 로멘티스트냐. 저런 애는 그냥 가지고 노는거야."
"레지치고는 참해 보이잖아요. 레지는 뭐 사람 아닌가. 그쵸 형."
"날 꺼집어 넣지 마 임마. 내 문제도 심난해 죽겠구만.
그래 좋아하는 맘은 아무한테나 가져도 돼."
"그렇죠. 윤이 형 너무 안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동윤이 녀석 머쩍어 하더니 지 애인한테 전화를 합니다.
이름이 윤경이라 그랬죠.
윤경씨가 담배 냄새 잘 맡는다고 뻔히 담배 피면서도 그녀를 만나기 하루 전에는
일절 담배를 피지 않는 동윤입니다.
아까 박양에게 보였던 꺼리낌 없는 행동은 어디로 갔는지 벌벌 기네요.

오늘 밤 다림씨 그녀가 잊혀 지지 않고 눈 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나는 그냥 아무한테 좋아하는 맘 가졌던 것으로 변명하자. 더 이상 초라해지지 않게.'

하루 하루 옅어 지는 그녀의 모습으로 짱개 배달을 했습니다.
보름정도 지나니까 이젠 문득 어쩌다 문득 가슴이 저릴 때만 그녀의 모습이 보입니다.
좋은 징조죠. 잊혀졌다는 말이니까요.
잊혀져서 좋긴 한데 삶이 무미건조 해지는 것 같습니다.
동윤이가 이번달이 끝나면 그만 둔다고 주인 아줌마께 말했습니다.
동윤이 녀석은 여자한테 잘 기는군요.
아줌마가 아쉽다며 사정을 하니까 팔월 달 한 달만 쉬고 복학할 때 까지는 계속 한다고 말합니다.
"언제 복학 할건데?"
"내년에. 뉴스에 안 좋다는 소리 막 들리는데 굳이 학교 다닐 이유가 있나 싶다. 그리고 코스모스 졸업도 싫고."
"그렇게 말하는 놈이 베낭여행은 갈 생각이냐?"
"그래 못 가겠다. 그냥 윤경이랑 울릉도나 갔다와서 집에서 좀 쉴려구. 집에 500만원 갖다 주고 내가 그래도 먹고 살 자신은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 '나 자신 있소.'이렇게 말하면 한 백만원 쯤 돌려 주지 않을까?"
"너 쫓겨 났던 때를 생각해 봐."
"안 맞아 죽으면 다행이지. 이런 씨... 넌 언제까지 할 거냐?"
"난 팔월달에 그만 둘거야. 내가 16일날 시작했으니까. 야, 광복절 날 즈음에 그만 두겠다. 주원이 독립만세다 야."
칠구는 영장이 나왔습니다. 칠월이 가면 이 녀석도 없겠군요.
요즘 철가방 구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죠. 노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칠구의 후속 주자는 이미 구해졌습니다.

칠월이 다가는 무렵에 중국집은 삼일간 문을 닫았습니다.
주인아줌마 내외는 피서를 떠났고 주방장 아찌는 고향을 찾아 갔습니다.
칠구는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 갔어요.
결국 몸값 협상은 타결짓지 못하고 말입니다.
생각보다 순수했던 놈이었죠. 정이 들었습니다.
영장 나온 놈인데 송별 파티 제대로 못해주고 보낸게 아쉽습니다.
"잘 가 칠구야."
"응."
"훈련소 가면 쌔가 빠지게 고생하거든. 이 더운 여름 날 안됐다."
"사내 자식이. 괜찮아. 근데 내가 훈련 받을 때가 여름이었거든 많이들 픽 픽 쓰러 지더라."

칠월달도 몇 일 안남았습니다. 삼일간의 휴가를 틈 타 학교를 갔습니다.
학교는 더운 햇살에 타고 있었습니다.
타고 있는 학교에 사람들이 많을리가 만무하죠. 계절학기도 끝이 난 상태라 학교는 더 없이 한산했습니다.
늙고 취직에 지친 선배들만이 여전히 도서관 앞에서 답도 없는 열변만 토하고 있습니다.
"주원아."
"어. 정환이구나."
"내 오토바이는 아직 잘 타고 있냐."
"응."
"어쩐일이냐?"
"휴가 받았지. 넌 어쩐 일이냐?"
"자격증 따야 될 것 아냐. 학생이 학교에 공부하러 나오지 임마."
"잘됐다. 커피나 한잔 하러 가자."
"커피는 무슨. 여자 많은 데로 가자."
"자판기 커피 마실건데."
"그래 임마. 자판기 커피도 종류가 많잖아. 공대 커피. 상대 커피. 학생회관 커피. 등등."
"어디가 맛있냐?"
"야. 사대에는 요즘도 학생이 많더라. 거기 가자."
사대 앞은 좋은 그림자가 놓인 벤취가 있었습니다.
어쩌다 부는 시원한 바람이 벤취위에서 쉬었다 갑니다.
"학교는 왜 아이스커피 자판기가 없을까."
벤취에 정환이 녀석과 앉아 마시는 커피는 별로 맛이 없네요.
단지 물고 있는 담배의 니코틴을 입안에서 없애 줄 뿐이었습니다.
좀 앉아 있으니까 사대 건물에서 학생들이 나오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미술교육과 학생들인가 봅니다. 그림도구를 들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모습이 우리를 지나치고 난 다음 어디선가 본 듯한 옷차림의 아가씨가 교수로 보이는 사람과 나란히 사대 앞에 모습을 보였습니다.
약간의 대화가 오고 간 다음 아가씨는 고개를 숙였고 교수가 등을 다독거려 주는군요.
교수는 건물안으로 다시 모습을 감추었고 그 아가씨는 우리쪽으로 모습을 크게 하고 있습니다.
"앗!"
아가씨도 나를 보고 흠찟 놀랐습니다.
손에 끼워진 담배는 예전에 저 아가씨를 보았을 때처럼 긴 재를 머금고 있습니다.
이쪽을 쳐다 보다가 딴 쪽을 쳐다 보다가 다시 이쪽을 쳐다보는 아가씨의 발걸음이 어색합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다소 어둡던 그녀의 얼굴에 보조개가 맺히네요.
다림씨가 우리 학교에 있었습니다.
다림씨는 천천한 걸음으로 교문으로 난 길쪽이라기 보다는 내가 앉은 벤취쪽으로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고 있었습니다.
참 반가운 모습이었지만 고개를 숙여 버렸습니다.
또 착각하기는 싫기 때문이죠. 다림씨는 옆에 정환이가 보고 있습니다.

다림씨가 나를 지나쳐 갈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녀가 내가 앉은 벤취를 지나 쳤습니다.
"야 뒤돌아 봐. 갔냐?"
"금방 그 아가씨? 잠깐만."
"잘 가고 있냐?"
"아니. 이쪽을 보고 섰는데. 아니다 이제 다시 가기 시작한다. 아는 사이냐?"
"알긴. 단골이야 단골."
오늘 그녀를 보았지요. 몇 일은 그녀 때문에 잠 들때 마음이 아프겠군요.
문득 생각나기 시작하던 그녀가 다시 내 기억으로 선명하게 왔습니다.

오늘 저녁은 비가 억수 같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장난이 아니었죠.
빗줄기에 가려 앞이 안보일 정돕니다.
그 빗줄기에도 오늘 본 다림씨의 모습이 쓸려 가지 않네요.
진짜 좋아하긴 했었나 봅니다.

어제부터 내린 비로 뉴스에는 기사거리가 많아 졌습니다.
티비에서 아주 낯익은 아줌마를 보았습니다.
불어난 강물로 고립되어진 어느 유원지였습니다.
어깨가 떡 벌어진 게 꼭 우리 중국집 주인 아줌마 같습니다.

중국집은 몇 일간 문을 못 열것입니다.
주인 아줌마 내외는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링겔 꼽고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탈진 했어요.
그래도 목숨 부지하고 별 다친 곳 없이 그 물난리를 이겨내고 돌아온 게 다행입니다.

그래도 오개월 넘게 철가방 일이 몸에 익었는지 오일이상 연속으로 쉬니까 영 찜찜합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햇살이 나립니다.
낮에 중국집 월세방을 찾은 것은 진짜 오랜만이지요.
방에는 동윤이만 있습니다.
     "날씨도 좋은데 방안에서 뭐하냐?"
     "독서하잖아."
     "윤경씨 안 만나냐?"
     "걔는 직장인이잖아."
     "에고 심심타."
     "불쌍한 놈. 책 볼래?"
     "싫어."
     "요즘은 한국것도 상당히 야하다."
     "아줌마는 언제 쯤 퇴원하신대?"
     "오늘쯤 아니면 내일쯤?"
     "그만하길 다행이다."
     "그려. 우와 이 여자도 디게 가슴이 크네."
동윤이 녀석. 나하고 대화하면서도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네요.
     "삐리삐리비. 삐리삐리비."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내가 받으려 하자 동윤이 녀석이 말렸습니다.
     "받지마. 주문하는 전활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그 전화를 받고 싶었습니다.
     "여보세요?"
     "여기 미술학원인데요."
     "오늘 영업하지 않..."
     "다림아 넌 뭐? 삼선 짜장? 여보세요?"
미술학원에 그녀가 왔습니까? 전화기에서 다림씨의 이름이 똑똑하게 들렸습니다.
엊그제 그녀를 보았습니다. 잊혀지지가 않더군요.
그날 밤에 고개를 숙였던 나 자신을 많이 야단을 쳤었습니다.
그녀가 있는 미술학원에 짱개 배달했던 추억은 너무나 아름답고 가슴 떨렸었죠.
     "네."
     "짜장하나. 삼선짜장 하나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동윤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너 미쳤지?"
     "아니."
     "주문 받은거 아냐?"
     "맞어."
     "미친거 맞잖아 임마."
     "북경 반점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냐?"
     "허 참내. 내 구역이라서 알긴 안다만 어쩔려구?"
     "새꺄. 니가 요리해서 줄래? 배달해야 될 것 아냐."
     "미친새끼가 더 소리치네."
     "전화해서 짜장하나하고 삼선짜장하나하고 빨리 가져오라 그래. 가게 열쇠 줘봐."
     "왜?"
     "그릇 바꿔치기 해야 할 것 아냐."
     "비가 사람 여럿 잡았네. 여깄어 미친놈아."
그녀에게로 다가 가고픈 내 마음은 저렇게 삭막한 놈에게는 다소 미쳐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내 마음은 그런 것에는 신경쓰지 말라고 합니다.
     "중국집이죠? 홍콩 반점 알죠? 그 바로 뒤 자취방인데 짜장둘에 삼짜하나요."
주문하는 동윤이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중국집으로 들어 가 그릇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 왔습니다.
     "왜 둘이냐."
     "나는 인간 아니냐. 먹어야 살 것 아냐."

라이벌 짱개집의 철가방이 왔습니다.
우리 철가방은 옷을 자율적으로 입는데 저쪽은 하얀 색이고 가슴에 빨간 색 한자로 '북경'이라고 적혀 있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습니다.
동윤이가 그 철가방을 째려 봅니다.
저 쪽도 지지 않고 쳐다 보는군요. 살벌 합니다.
짱개를 꺼내는 북경 철가방이나 그것을 받는 동윤이나 서로 눈동자는 상대편 눈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북경 짱개가 돌아갔습니다. 쿠쿠. 북경 짱개의 유니폼 뒤에는 '이겨내자! IMF.'라고 적혀 있습니다. 맛만 좋아봐라. 그렇게 안쓰도 잘 팔리지.
되도록 짱개가 섞이지 않도록 우리 중국집 마크가 새긴 그릇에다 옮겨 담았습니다. 철가방의 감촉이 새롭습니다.

"가자. 나의 애마여. 부릉 부릉 부르르릉. 오늘따라 엔진 소리가 터프합니다. 빠라빠라빠라밤."

헐떡이는 숨을 가다듬고 미술학원 현관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었습니다. 아무도 없군요. 원장실 문을 똑똑 노크를 했습니다.
     "누구세요?"
     "식사 왔는데요."
     "들어 와요. 새삼스럽게 뭘."
문을 열자 들어오는 다림씨의 모습이 내 마음을 잡아 당겼습니다.
     "삼선 짜장은?"
     "다림이 줘."
다림씨 앞에다 그릇을 내 놓으며 내 딴에는 용기를 내어 말을 붙였습니다.
     "오. 오랜만이네요."
그녀는 아무말 없이 그냥 그릇만 받습니다. 좀 무안합니다.
그릇을 다 꺼내 놓고 계산을 했습니다. 다림씨가 천원짜리 여덟장을 주었습니다.
참 설레이며 왔는데 금방 나가야 되는게 아쉽습니다. 현관을 나왔습니다.
어짜피 널널한 시간 현관앞에서 기다리죠 뭐. 철가방을 의자 삼아 앉아 담배를 물었습니다.
     "후. 오늘도 빳빳하네."
다림씨가 준 돈을 꺼내 세어 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렸습니다. 입에 문 담배는 떨어뜨리지 않았는데 철가방이 날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후딱 뒤집어 졌습니다.
그 와중에 돈도 흘려 버렸구요. 몸을 가다듬고 떨어진 돈을 주우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정말 있네."
     "네?"
     "다림이가 아마 여기 있을거라 그러더니 정말 안가고 있었네."
원장아줌마가 나온거 였습니다. 괜히 놀랐습니다.
     "들어와."
     "네?"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원장아줌마를 따라 다시 들어간 원장실에는 아까는 다소 차가웠던 다림씨가 웃고 있었습니다.
     "내말 맞지 언니."
     "그래."
     "녹차 있는데 마실래요?"
왜 또 친철합니까. 헷갈리게 말입니다.
다림씨가 직접 녹차 한잔을 따라 주었습니다. 먹던 것 그만 두고 말입니다.
녹차를 감사히 받아 들고는 그냥 침묵하는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여자들은 식사하면서 말이 많군요.
나를 앉혀 두고 그네들 끼리의 대화는 계속 되었습니다.
     "정말 김교수가 그랬어?"
     "응 언니."
     "포즈 모델은 이제 필요 없대?"
     "네."
     "그럼 그 쪽으로 나갈 생각이야?"
     "싫어."
     "너 잘하던데 왜."
     "학교에서 까지 그러기는 싫어."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군요.
원장아줌마가 계속 말을 하자 다림씨가 저를 가리키는 듯 눈동자와 입을 삐죽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중단되었습니다.
 

 

     원장실에서 내가 사랑하고픈 사람의 식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록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그 음식에 대한 대가를
     받았지만 그래도 내가 가져 온 것입니다.
     "주원 총각. 맛이 좀 다르다."
     별로 시야에 들어 오지 않는 원장 아줌마가 내 관심을 자기에게로 돌립니다. 참 여러 가지로 부르네요.
     "비가 와서 그래요."
     성의 없이 답을 하고 그녀가 식사하는 모습을 다시 보았습니다. 그 원장아줌마가 또 다시 자기에게로 고개를 돌리라
     하네요.
     "비가 온 것 하고 맛이 다른거 하고 무슨 상관이야?"
     "이번 비에 돼지 떠 내려 가는 것 봤죠?"
     "응."
     "홍콩이 중국에 반환 된 것은 알아요?"
     "그래."
     "중국도 비가 많이 왔죠?"
     "응."
     "짜장면에 돼지 고기 들어가죠? 우리 중국집이 홍콩 반점인 것도 알것이고."
     "그래 알아."
     "그래서 비 때문에 맛이 틀려요."
     원장 아줌마 머리에서 그것들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무척 고민하는 모습입니다. 원장 아줌마에게 처럼 이렇게
     다림씨에게도 말이 술술 나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제 학교 갔었죠?"
     "예?"
     원장아줌마는 아직도 머리를 굴리는 모습입니다. 젓가락을 그릇에 고정시킨 채 골똘이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그런
     원장아줌마 옆에서 다림씨가 이제 막 그릇을 비우고 젓가락을 놓더니 물었습니다.
     "콩국 대학에 그제 가시지 않았어요?"
     "우리 학굔데요."
     "그건 아는데 가셨냐구요."
     "그...그제요?"
     "네."
     "갔었던 것 같은데요."
     "사람 모른척 하는 취미가 있나 봐요."
     "네?"
     요즘 여자들 약간은 무섭군요. 순전히 자기 위주에요. 짱개 배달하면서 낯 익은 손님에게는 꼭 아는 체 해야 합니까.
     물론 내가 다림씨를 좋아하고 내 기억에 그대의 모습을 단단히 고정시켜 놓았다고 해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죠.
     다림씨는 왜 학원을 떠나면서 잘있어,인사 한마디 없었습니까? 인사는 바라지도 않았어요. 그냥 아쉬운 표정이라도
     지어 주었더라면 그때 너무나 반가와 뛰어 갔을 겁니다. 손님은 나를 아무렇게나 대하여도 되고 나는 꼬박 아는 체
     해주어야 합니까.
     "그래도 단골이었는데 내가 학원 떠난다 할 때도 아무말 없더니, 그때도 모른 체 하더군요."
     제 마음속을 읽었나요.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요. 그래도 다림씨는 자기 위줍니다.
     "그날 기분이 울적해 술생각이 났었는데, 아는 사람 만나 반가웠는데 참 매정하게 고개 숙이더군요."
     자기 위주 맞죠? 다림씨 기분이 울적하다고 제가 뭐 같이 술 마실 사람으로 보였단 말입니까. 단골이면 답니까. 그녀는
     시선을 저에게 주지 않고 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상합니다. 뭔가 내가 감을 못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연관이 없는 것 같애."
     바보같이 날 쳐다보는 원장아줌마를 마주보며 머리를 굴렸습니다. 한참만에 필(feel)이 왔습니다.
     "그럼 저하고 술 마실 생각을 했었단 말입니까?"
     놀랬습니다. 가슴이 확 터이는 기분이 들더니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다림씨는 무표정으로 한쪽 볼에만 보조개를 띠우는 '그래 임마. 그래 새꺄. 그래 바보야.' 할때 짓는 표정 있잖습니까?
     그 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거렸습니다.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아무런 상관 없어요. 그게 뭐 중요합니까."
     원장 아줌마가 자기한테 답을 안해주니까 소리가 다소 커졌습니다. 그 소리보다 더 크게 답을 해 주었습니다.
     "주원이 총각. 터프하다."
     기분이 묘합니다. 새근새근 웃고 있는 원장아줌마의 모습 옆으로 다림씨가 저를 쳐다 보고 있습니다.
     "그날 제가 아는 체 했다면 저하고 술한잔 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네."
     "철가방인데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뭐 주원씨 아르바이트 하는 거라면서요."
     이 새끼 참 바보네요. 다림씨 앞에 앉아 있는 철가방 말입니다.
     "자...잠깐만요."
     터였던 가슴이 다시 답답하여 밖으로 나왔습니다. 현관 앞에 놓여 있는 철가방이 꼭 저를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옆으로
     뒤비져 있습니다. '바보야. 배째라.' 이런 식으로 훌라당 뒤비져 있습니다. 이 놈이 아까 나를 넘어지게 했던 놈이죠. 이
     놈 때문에 다림씨와 술도 못 마셨습니다.
     "쾅!."
     요즘 철가방은 참 튼튼하게 만드는 군요. 철가방은 조금 찌그러 졌지만 내 발은 졸라 아픕니다. 내 발의 아픔은 가시고
     있지만 철가방의 상처는 그대로 있습니다. 좀 가여운 생각이 듭니다. 철가방앞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몸뚱이가 쇠라서 슬픈 가방이여.
      언제나 쪽팔린 듯 말이 없구나.
      관이 짱개냄새 나는 너는
      무척 튼튼한 족속이었나 보다.

     몸 속의 삼선짜장을 들여다 보고
     착각했던 그녀를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에
     슬픈 몸뚱이를 하고
     앞에 앉은 나를 바라본다.'

     "아프냐?"
     저기 나자빠져 있는 철가방에게 물었습니다. 아픈지 말이 없네요.
     다시 들어가기가 그랬습니다. 고개만 숙이지 않았더라도 다림씨와 술 한잔 할 수 있었던 그 기회를 놓쳐버린게 너무나
     안타가웠습니다.
     내가 착각했던 것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다림씨는 나에게 쌀쌀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밝은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죠. 다소 차가운 표정 때문에 심각했었던 것은 내 마음이었을까요. 그것 때문에 착각했다고 생각했었죠. 내
     자신이 철가방이라 미리 겁을 먹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동전을 하나하나 세어 줄 정도로 세심하고
     항상 천원짜리를 가지고 다니는 배려도 있습니다. 내 엉뚱한 질문도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 주었고 당황한 내 표정에
     웃음도 보였지요. 그리고 삼선짜장. 분명 내가 권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랑스런 다리미를 아니 다림씨를 이 철가방
     때문에 전 착각이라 변명하고 잊으려 했습니다. 포기 할 수 없습니다. 인연입니다. 내가 인연이라 생각한 장미는 분명
     그녀의 품에 안겼습니다. 용기를 내겠습니다. 이제 들어 가겠습니다. 그리고 말하겠습니다. '오늘은 아는 체 할테니 술
     한잔 합시다.' 마음은 그렇게 다짐했는데 현관문을 열기가 머뭇거려 집니다. 다시 용기를 내겠습니다. 안에 원장실 문도
     있는데 현관문 앞에서부터 머뭇거리면 안되겠지요.
     "아야!"

     용기 내려고 소리친게 아니에요.
     "어머 미안. 문 앞에 서 있는 줄은 몰랐어요. 괜찮아요?"
     "안 아파요.."
     문이 세개 날아와 패 버린 내 코를 만진 채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다림씨가 그릇을 들고 나와 있습니다.
     "왜 밖에 있었어요?"
     "예? 에... 철가방이 걱정이 되서요."
     저기 오층으로 가는 계단 앞에 철가방이 후떡 디비져 나에게 맞은 게 아팠는지 움푹 파인 상처를 이쪽으로 보이고는
     입을 헤 벌리고 나자빠져 있었습니다.
     "누가 저랬어요?"
     "모... 모르겠는데요. 제가 안그랬어요."
     다림씨는 그릇을 나에게 주고는 철가방쪽으로 갔습니다. 나를 지나쳐 말입니다. 그녀의 머리칼이 향기를 주고 갑니다.
     그녀는 철가방을 들어 봅니다. 철가방 녀석이 아직 입을 다물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가볍네요. 그런데 못 쓰겠어요."
     다림씨는 반쯤 열려 걸려 있는 철가방의 문을 닫으려고 하다가 빼려고도 해 보았지만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나를 쳐다
     봅니다.
     "버리지요 뭐."
     "네?"
     "부숴졌잖아요."
     맞아요. 부숴졌어요. 내가 맞은 상처가 가방문을 이제는 다시 끼우지도 빼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럼 그릇은 어떻게 가져 가실려구요?"
     "뭐 그럼. 이것도 버리지요."
     그릇을 현관 옆에 설치된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는데 그녀가 말렸습니다.
     "아껴야 잘 살죠. 그걸 왜 버려요."
     "그럼 원장아줌마 한테 맡기고 가죠 뭐."
     "언니 아줌마 아네요."
     "알아요."
     "사장님한테 야단 안 맞아요?"
     "우리 주인 아줌마요? 짱개 그릇 한 두개 없어지는 건 표도 안나요."
     "그래도 빈 몸으로 가면..."
     "괜찮아요. 오늘 뭐 우리 중국집 문도 안열었는데요. 뭘."
     "네?"
     내가 뭐 실수 했나요? 다림씨 그녀가 날 아주 이상하게 쳐다 보며 입을 야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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