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3년생의 사랑 4부
PART-15
- tuoooo
- tuoooo
긴장된 순간속에서 수화기속의 신호음은 규칙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민
형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에서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무어라고 핑계
를 대는 것이 좋을까...... 신호가 가는 그 순간에도 적당한 핑계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 딸깍
한순간 민형의 집쪽에서 수화기를 받았고 민형은 철렁 거리는 가슴으로 정
신을 집중했다.
<< 네~ 여보세요 >>
수화기 안에서 익숙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엄마?"
민형은 애써 긴장을 추스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여보세요? >>
"엄마 저예요"
<< 여보세요? 여보세요!? >>
갑자기 전화기 속의 어머니가 계속해서 여보세요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민형은 깜짝 놀라 외쳤다. 목소리가 잘 안들리나?
"엄마 저 민형이예요!?"
<< 호호호 놀라셨죠. 지금 정씨 부부는 외출 중입니다. 메모를 남기실 분
은 삑 소리가 난후 하실 말씀을 녹음해 주세요. >>
"......"
민형은 질린 표정으로 잠시동안 수화기를 든체로 잠자코 있었다. 이런 엄
청난 맨트를...... 그때 수화기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민형을 찾았
다.
<< 아참 나의 아들 민형아. 우리는 오후 2시부터 온천으로 떠난다. 내일
저녁이나 돌아올 예정이니까 집 잘지키고 너무 바깥으로 싸돌아 다니지
말아라. 이거 들으면 지우렴 삑---------! >>
삑 소리와 함께 수화기 속에 목소리는 끊기고 민형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한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온천을 떠나셨다고...... 두분이서만....
.. 민형은 속으로 약이 오르기도 했지만 하도 갑작스런 상황이라 화도 나
지 않았다.
"민형씨 문좀 열어 주세요."
"앗! 네네!"
그때 바깥에서 상을 든 유지영 선생님이 민형의 이름을 불렀고 민형은 황
급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재빨리 방문을 열었다. 유지영 선생님이 작은 상
위에 라면과 몇가지 찬거리를 올려 놓은 상을 민형의 앞에 내려 놓았다.
"방금 전화 하는것 같던데."
"아 예. 지금 막 끊었어요."
민형이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아요? 뭣하면 내가 얘기해 줄수도 있는데......"
"아, 아니에요 선생님. 우리집은 개방적이라 상관없어요. "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지영은 살짝 웃으며 민형에 앞에 발을 모은체로 비스듬히 앉았다. 수저통
에서 젓가락을 꺼내 민형에게 건네준 지영이 민형을 향해 싱긋 웃으며 입
을 열었다.
"자 어서 드세요. 라면 불어요."
"아, 네 네!"
민형은 이렇게 대답하며 젓가락으로 크게 라면을 집어 자신의 그릇에 옮겨
닮았다. 민형은 라면을 먹으며 방금 일어났던 상황을 천천히 정리했다.
'불행중 다행이라더니...... 좋은 타이밍으로 온천에 가셨지 뭐람. 이거라
면 변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생각해보니 전화를 해서 뭐라고 얘기할 변명 거리가 없는 것이다. 남자도
아닌 여 선생님의 집에서 자고 간다고 어떻게 부모님에게 말씀 드린단 말
인가. 필히 엄마가 노발대발 할것이 분명하다. 민형은 이렇게 생각하며 속
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민형씨 왜 한숨을 쉬어요?"
"아, 아니예요. 그보다 김치가 참 맛있군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민형에게 지영이 묻자 민형은 화들짝 고개를 들어
웃어 보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민형이 김치 맛을 칭찬하자 지영은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띄우며 신이난 듯 입을 열었다.
"맛있어요? 내가 담궜어요. 좀 짠것 같았는데."
"안짜요 안짜. 아주 맛있어요."
사실 민형은 음식을 좀 짜게 먹는 편인데다 김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식
성은 한식보다 외식에 가까워서 빵이나 토스트를 좋아하고 야채보다 고기
를 즐겼다. 김치가 맛있다고 한것은 어디까지나 반찬이 김치 뿐이었기 때
문에 인사로 한말인데 지영이 매우 기뻐하자 민형은 속이 찔끔하여 잠자코
웃으며 젓가락으로 라면을 휘저었다.
"아참! 물,물"
갑자기 깜빡 생각이 났는지 지영이 라면을 담은 그릇과 젓가락을 든체 방
문을 열고 나가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왔다.
"아차 컵!"
컵을 잊고 들어온 지영은 또 다시 주방으로 되 돌아가 싱크대 위에 컵을
두개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왠지 상당히 들뜬듯 했다.
"나는 식탁에 물을 가져다 놓는 것을 자꾸 잊어 먹어요. 칠칠치 못하죠?"
지영이 민형의 물잔에 물을 따라주며 쑥쓰러운듯 웃으며 말하자 민형은
억지로 웃으며 멋적은듯 얼굴을 붉혔다.
"뭐 그런걸 가지고...... 그럴수도 있지요."
"와 민형씨는 정말 자상해요."
지영이 활짝 웃으며 입을 열자 민형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쑥쓰러운듯 머리
를 긁적였다. 뭐 친절하다는 말은 그다지 들어보지 못했는데...... 유지영
선생님에겐 누구가 친절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학원에 다니는 동안
만나온 그녀의 성격은 꽤 낙천적인것 같았다.
"선생님은 항상 웃고 계셔서 보기가 좋아요."
한순간 민형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지영이 두눈을
깜빡이며 민형을 바라 보았고 민형은 속으로 뜨끔한 마음을 두근 거렸다.
무언가 부끄러운 대사를 해버리고 만건가. 민형의 등뒤에 식은땀이 후줄근
하게 맺혔다.
"그래요? 고마워요."
그러나 지영은 그런 민형의 앞에서 빙긋이 웃어 보였고 민형은 또다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시 굳어 있었던 얼굴을 풀어 보였다. 긴
장이 풀리자 이야기도 술술 풀릴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격이 낙천적인가 봐요"
"네,네"
"그래서 항상 예뻐보이나?"
"어머 정말?."
"조,조금 부끄러운 대사였던것......"
"후후 민형씨는 금세 얼굴이 빨개져요. 원래 민형씨는 무서운 사람인데."
몇 마디의 말이 오고 갔고 두 사람은 스스럼없이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 받
을 때까지 화제를 이끌어 나갔다. 민형은 처음 이곳에 왔을때에 불안감은
어느덧 사라지고 지금은 눈앞에 있는 유지영 선생님의 이야기 하는 것에
상당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대학은 어디 나오셨어요?"
"S대예요."
그순간 민형의 얼굴이 굳었다. S대라고? 민형은 쓴 웃음을 지으며 조심스
럽게 되물었다.
"아, 사,상명여대?"
"아뇨."
"그럼 세운대?"
"하하하 그런 대학이 있었나요?"
지영이 민형의 유머가 재미있다는 듯이 하하 웃었고 민형은 그런 유지영
선생님의 웃는 모습을 쳐다보며 억지로 웃고 있었다.
"서울대예요 서울대. 서울대 영문학과."
"서,서울대요?"
서울대, 서울대라니! 민형은 한순간 얼이 빠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럼 유지영 선생님의 말로만 듣던 서울대생? 제길, 서울대 여자들은 하나
같이 매주들 뿐이라더니 예쁜 여자도 있네. 민형은 그녀가 서울대를 나왔
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그런데 어떻게 일어를 가리키세요. 영문학과 라시면......"
"전공이지만 어쩌다 보니 일어를 가르치게 됐어요. 일어에도 흥미가 있었
고 소개 받을때 일어 강사로 소개 받았거든요."
"아......"
뭐 일어를 가르치던 영어를 가르치던 그것은 중요한것이 아니지만. 어쨋
든 민형은 조금 기가 죽은 기분이었다.
"일어는 어디서 배우셨어요?"
"고등학교 다닐때 제2외국어 였어요."
"아, 그것뿐."
대단하다. 제2외국어로 강사실력 까지 갖추려면 얼마나 수재 였을까?
"물론 대학때 따로 공부했어요 독학으로. 학교에서 가르쳐 준건 별로 회
화에 도움이 안되잖아요."
"아,그렇지요."
웃으며 대답은 했지만 민형은 확실히 기가 죽어 있었다. 자신은 석달에
30만원씩 돈을 내고 일어를 배우는데 눈앞의 유지영 선생님은 공짜로 학
교에서...... 그것도 독학으로 사람을 가리키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 것
이다. 확실히 사람은 많이 알고 봐야돼...... 라고 생각하며 민형은 공부
안하고 게으름 피던 자신의 존재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민형씨 공부는 잘돼요? 내 수업이 어때요."
"아, 물론 좋지요......"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에 민형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예습 복습
을 안해 내용이 헤깔리는 것은 영어나 일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PART-16
'아...... 확실히 공부하는 타잎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과목이라도 힘
든건 마찬가지야. 내가 게으른건데 뭐......'
공부를 싫어하는 것은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기가 원해
시도하는 일본어 회화까지도 결과가 시원치 않으니 민형의 마음은 답답하
기만 했다. 어쨋든 회화는 회화. 영어든 일어든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열
심히 예습 복습 하지 않으면 처지기 마련이다.
'후유......'
민형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라면가락을 후루룩 빨아 들였다. 문득
열심히 라면을 먹고 있는 유지영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젓가락
으로 집은 라면을 입으로 후후 불며 보기에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남자앞
이라고 해서 예쁘게 예의를 차린다거나 다소곳이 먹는다거나 이런 절처는
전혀 없었다. 민형은 라면을 먹다말고 물끄러미 그런 유지영 선생님을 바
라보았다.
'......'
머리를 손으로 넘겨가며 라면을 후후 부는 유지영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
보고 있자니 민형은 라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의 가는
팔,머리를 넘길때 마다 들어나는 새하얀 목덜미. 민형을 솔직히 참기 힘들
지경이었다. 만약 연애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좀더
대담하게 대처할수 있으련만 지영을 앞에 둔 민형은 거의 목석같은 몸을
이끌며 간신히 라면을 입에 집어 넣고 있었다. 우,한심한 놈.
"?"
그때 김치에 젓가락을 가져가던 지영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민형이 좀
저럼 라면을 먹지 않고 있는 것을 눈치챈 그녀가 민형에게 물었다.
"왜...... 안먹어요?"
"아, 아니요!"
깜짝 놀란 민형이 허겁지겁 라면을 집어 삼켰다. 순간 뜨거운 면발에 혀
를 댄 민형이 기겁을 하며 입에 비명을 질렀다.
"우웁! 뜨거!"
"어머!"
당황한 지영이 얼른 물컵에 물을 따라 민형에게 들이대자 민형은 황급이
물컵을 받아들고 벌컥 벌컥 삼켰다. 체 씹지도 않은 면발이 물과 함께 꿀
꺽꿀꺽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민형은 물컵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질린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푸하~!"
빨개진 혀를 내밀며 민형은 식은땀을 흘렸다. 지영이 그런 민형에게 물
었다.
"괜찮아요 민형씨? 혀 안 대었어요?"
"괘,괘안아요(괜찮아요). 혀 가은거(혀 같은건) 근강 나으니까요(금방
나으니까요.)"
부어오른 혀 때문에 시원치 않은 발음으로 민형이 이렇게 대답했다. 지
영은 못말린다는 듯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고 민형은 멋적은
김에 한손을 머리뒤로 올리며 바보처럼 벌쭉 웃었다.
'으 내 혓바닥......'
웃는 와중에도 화끈거리는 혀를 침에 굴리며 민형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
다.
......................................... . . . . . . . . . . .
밤이 되었다. 아니 아까부터 게속해서 밤 이었으나 민형의 밤은 지금부
터 시작 되었다. 이불을 깔고 벼게를 벤체 누운 민형의 얼굴은 온통 시뻘
겋게 달아 올라 있었고 온몸에 식은 땀이 가득했다. 지금 민형의 바로 옆
자리 30센티 전방에 다름아닌 유지영 선생님이 누워 있었던 것이다. 참으
로 건강한 18세 청소년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 지영은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정말 악독한 여자다. 아니 악마다 악마. 마녀.
"코오...... 코오......"
새끈 새끈 숨소리를 내며 지영은 잠들어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이 매우
피곤한 듯 정신 없이 잠들어 있는 지영을 민형은 차마 돌아볼수도 없었다.
태어나서 엄마가 아닌 여자와 한방에서 함께 잔 경험은 이번이 난생 처음
이었다. 아니 생각나는 걸로는 처음이지만. 민형은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정신이 아득하며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그야 말로 정신이 없었
다. 잠이 올리가 만무했다.
'으...... 이거 정말 심각하군.'
민형은 가까스로 얼굴을 천장으로 고정시킨 후 천천히 숨을 몰아 쉬었
다. 왜 이렇게 방이 좁은 건지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니 아니, 선생님의
집이 은 것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방이 좋은 것을 탓
할뿐, 하지만 이집은 선생님 집이니까...... 그게...... 뭐야 뭐야 모르겠
다!! 결론은 선생님이 너무 딱 달라 붙어 있다는 것이잖아!! 민형은 머리
속으로 복잡한 심정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어쩔줄 모른체 두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
지영의 머리 맡에서 상큼한 샴프향이 민형의 코를 찔렀다. 저절로 시선
이 지영의 얼굴을 향해 돌아 갔다. 안돼...... 견뎌야 해. 이 정도를 견디
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 가겠어!? 게다가 난 대학
도 못 가니까 고난을 견디는 훈련을 해야만 하잖아. 맞아! 이 정도 쯤이
야! 여자가 다 뭐야! 견딜수 있어! 하하하!!
"하......"
어느새 민형의 얼굴을 유지영 선생님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이 흘러내려 벼게 양 옆으로 이리저리 흘러 내려 있었다. 우오......! 여
자가 가장 섹시해 보일때는 바로 이럴때가 아닌가!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
스러워서 미칠것만 같았다. 만지고 싶다. 정말 만져보고 싶지만 그랬다가
는 큰일 날 것이다. 아마 다음날 스포츠 신문에 실리겠지. 학원강사를 희
롱한 고등학생. 대서 특필! 그럼 인생 끝장! 최악이자 마지막! 그런 것은
싫다! 안락한 스위트 홈과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아이들! 존경받는 만화가
의 꿈은 한 순간에 끝나고 만다. 민형은 이 지옥의 샴프향 지옥에서 벗어
날 방법을 모책하며 자기도 모르게 지영의 머리카락에 손을 대고 말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거 어째 이거 어째! 이건 경범죄! 아니 아니! 근친상간?이 아니고!!!
그러니까 유부녀 희롱!? 일리가 없지! 그럼 뭐야? 아까 생각이 났었는데?
뭐였더라...... 간통?! 아니야 선생님은 결혼 안했어......
'결국은......'
결국은 아무런 죄도 아니라는 것을 민형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구나.
처녀 총각이기 때문에 별다른 죄에 해당되지 않는 거구나...... 역시 우리
나라는 좋은 나라야. 라고 머리속으로 떠올리면서 민형은 조십스럽게 지영
의 머리카락을 쓰다 듬었다. 지영은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곤히 잠
들어 있었다.
'......'
갸녀린 얼굴로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도톰한 입술이 눈에 들어왔
다. 정말 여자란 동물은 남자를 미치게 만드는 최고의 무기다. 혈기왕성한
피가 끓어 오르는 민형은 그 패기(?)를 가까스로 참으며 자신을 진정시켰
다. 결국 민형은 지영의 얼굴에서 손을 때고 돌아누었다.
'이러면 안돼......'
비록 반년전에 정신 차림 수험생 깡패지만 양심과 도덕만은 지키는 것이
신조인 민형이 아닌가. 학원 강사를 상대로 허툰 수작 부릴 만큼 어리석은
수컷은 아니다. 아,아니 남자가 아니다!! 민형은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
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자자.'
민형은 이렇게 마음먹으며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
이면서도 민형은 결국 지영을 향해 돌아 눕지 않았다.
"....."
그리고 그런 민형의 등뒤에서 민형의 누운 뒷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한 여자의 눈길이 있었다. 지영은 가까스로 욕구를 참으며 뒤척거리는 민
형을 가만히 바라보며 다시금 눈을 감았다.
'잘자요 민형씨......'
지영은 인내심이 많은 여자...... 그것이 그녀의 장점이었다.
..................................................... . . . . . .
여러가지 잡념과 망상이 물컹물컹 솟아 오르던 그날밤. 본래 태평한 성
격 때문이었는지 신의 도우심인지 어쨋든 18세 소년 정민형은 제법 깊은
잠에 빠져 들수 있었다. 저녁에 다수의 불량배를 상대로 심하게 몸을 움직
였기 때문에 피로 했던데다 본래 잠자리를 잘 가리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잘자는 편한 성격 때문에 잡념을 커트한 그 순간 부터 민형은 쿨쿨 골아
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민형이 잠든 후로 부터 8시간이란 긴 시간이 지
나갔다.
"......"
햇빛이 창틀 사이로 스며들어 잠들어 있는 민형의 얼굴 정면을 간지럽혔
다. 민형은 두눈을 게슴츠레 뜨며 이내 고개를 돌렸다. 민형은 수면에 있
어서는 게을렀기 때문에 늦게 잔만큼 반드시 더 자는 버릇이 있다. 보통
수면 시간은 10시간. 즉 어제 2시에 잠들었기 때문에 12시에 일어나야 정
상이었다. 누가 정했는지 원.......
"음......"
햇살이 자꾸만 민형의 시야를 따라 그를 괴롭혔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
런일이 없었는데. 커텐이 쳐져 있지 않나? 민형은 귀찬은 듯이 억지로 눈
을떴다.
"......"
그리고 민형은 눈을 뚠 그 시점부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찌된 일일
까. 옆으로 누운 자신의 눈앞에는 볼륨감 있는 하늘색 쉐타가 있었다. 얼
굴에 바짝 밀착되어 있는 하늘색 쉐타에서 향긋한 비누 냄세와 함께 보드라
운 털실의 감촉이 느껴졌다.
"......"
정신을...... 정신을 차려야 해. 민형은 현실의 냉혹함과 싸우며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민형은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천천히
고개를 위로 돌렸다.
"...!?@?#?$?"
한순간 민형은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 한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자신의 얼굴이 파묻혀 있던 것은 유지영 선생님의 가슴.
그,그,그 그것도 정면으로 아주 가깝게 밀착! 밀착! 숨이 널어갈 것 같았
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유지영 선생님이 민형 자신을 안
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민형의 머리를 두손으로 잡고 가슴으로 끌어 안은
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 우왁!!!
"......!"
이라고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했으나 민형의 이성은 훌륭했
다. 용케도 모든 것을 참아내며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두눈을 희번덕 거렸
다. 분명 유지영 선생님은 옆 자리에 있는 자신을 벼게 쯤으로 생각하고
끌어 않았을 것이다. 그래 평소 혼자 자는 것이 버릇 되었을 테니까 옆에
다른 남자가 누워 있을 것이라고는 잠결에 실감하지 못한 것이겠지. 민형
은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가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유지영 선생
님의집. 커텐이 있을리가 없다. 여기는 민형의 방이 아닌 것이다.
"으음...... 민형씨."
그순간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민형의 얼굴을 지영이 두손으로 꽉
끌어 당기며 가슴으로 더욱 더 세게 밀착 시켰다. 게다가 이번엔 무어라고
중얼 거리기 까지 했다.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눈치챈 민형은 얼
굴이 귀 밑까지 새 빨개졌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무슨꿈? 내꿈? 그
럼 꿈에서 나를 안고 있나? 우와앗! 너무 좋은 꿈! 아니 아니 이 상황을
벗어나야지! 선생님이 6살 연하의 남자아이를 끌어 않는 꿈 따위를 꿀리가
없지! 민형은 스스로 이렇게 합리화 시키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영의 손
에서 얼굴을 빼내어 뒤로 물러났다.
PART-17
"!"
그순간 지영이 두눈을 반짝 떴다. 갑자기 어색해진 민형은 그녀의 두손
에서 머리를 빼내다 말고 그대로 두눈을 깜빡 거리며 움직임을 정지했다.
지영과 민형의 사이에서 잠시동안 초연한 잠잠함이 흘러가던 때쯤. 머쓱한
표정으로 지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미,민형씨 잘 잤어요?"
"아, 아 예. 안녕히 주무셨어요 선생님."
두 사람은 이말을 마지막으로 휙 하고 서로 등을 돌린체 이불속으로 파
고 들었다. 지영은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고 얼굴에 홍조가 잃어 손바닥으
로 볼을 감싼체 두눈을 두리번 거렸다.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
는지 잘 판단이 가지 않았다. 민형씨의 꿈을 꾼것 같긴 했는데 눈을 뜨자
마자 그 당사자가 눈앞에 있으니 짐짓 당황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민형은 민형대로 쿵쾅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두눈을 희번덕
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초조함이 몰려왔
다. 자신이 하고 있던 자세가 유지영 선생님께 오해를 살 행동은 아니었는
지 걱정이었다.
한순간 서로를 향해 은근슬쩍 고개를 돌리던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
다.
"......"
잠시지만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
며 싱거운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저...... 우리 얼마나 잔거죠 민형씨?"
"여,열신데요. 이제 그만 일어나죠."
민형이 엉거주춤 시계를 보는체 하며 자리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지영
역시 머리를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헝클어진 것 같아 손거
울을 찾았으나 화장대위에 놓여 있는 손거울은 지영의 손에 닿지 않았다.
지영은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민형의 등뒤로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
다.
"무,물을 좀 데울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잠깐만요."
"아, 예에."
황급히 후다닥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나가버리는 지영의 뒷 모습을 물끄
러미 바라보며 민형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에 나간 지영은 재
빨리 찬물로 세수를 하고 벽에 걸려있는 거울앞 에서 머리를 빚었다. 그리
많이 헝클어진것 같진 않아 속으로 내심 안심하면서 지영은 칫솔에 치약을
묻혔다. 양치질을 하면서 지영은 전날밤 꾼 꿈을 상기했다. 그 꿈에는 민
형이 나타났다. 위험에 처해 있는 자신을 구해주는 왕자님의 모습으로 나
나난 민형이 지영은 너무나 멋잇어 보여 꿈에서 보이는 민형을 힘껏 껴안
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떴을때 현실의 민형이 그녀의 두팔에서
얼굴을 빼내고 있었다.
'아이참...... 설마, 난몰라......'
지영은 내심 자신이 한 행동을 짐작하며 새빨개진 얼굴로 묵묵히 양치질
을 계속했다. 지금 방안에는 민형이 와 있다. 자신과 함께 한방에서 같이
잔 것이다. 집에 가족이 아닌 남자를 데려와 본것은 민형이 처음이다. 학
교에 다닐때도 남자친구 하나 없었기 때문에 전혀 그럴 기회가 없었다. 지
영의 가슴이 왠지 모르게 두근두근 떨리고 알수 없는 기대감 같은 것이 스
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영은 사람을 좋아했다. 친구나 손님이 집에
있다는 것 만으로 가슴이 벅차고 즐거웠다. 게다가 오늘은 민형이 와 있는
것이다. 지영은 그가 자신보다 6살이나 연하라는 것은 전혀 의식하지 못
하고 좋아서 싱글벙글 웃으며 양치질을 끝 마쳤다. 솥에 물을 담아 가스레
인지 위에 올려 놓고 지영은 방문을 드르륵 열고 민형에게 활짝 웃어 보였
다.
"물이 금방 끓을 거예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 고맙습니다 선생님."
민형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지영에게 대답하자 지영은 한순간 자
신은 학원의 강사이고 민형은 일본어를 수강하러 온 자신의 학생이라는 것
이 실감났다. 게다가 동시에 자신보다 6살이나 연하라는 것도 상기했다.
지영은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뜨끔뜨끔 아파오기 시작했다. 민형이 씻으러
나간 사이에 지영은 이불을 걷으며 계속해서 생각에 잠기었다. 민형은 남
자답고 자상하며 또 자신과 잘 맞는 아이였다. 아니 남자였다. 게다가
몇개월이라는 시간을 지내오며 느낀것이지만 민형은 같은 타잎을 지영은
좋아했다. 지금까지 왜 느끼지 못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지만 어젯밤
민형이 자신을 도와준 이후부터 자꾸만 민형의 얼굴만 바라봐도 얼굴이 붉
어지고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간질간질 달아 올랐다. 지영은 그런 자신을 주
책맞은 철부지라고 스스로 꾸짖으며 이불을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 팡팡 소
리나게 털었다. 이불을 터는 통쾌한 소리가 지영의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
주었다.
"?"
이불을 털던 지영은 문득 자신의 셔츠에 밴 향긋한 냄새에 고개를 돌렸
다. 팔뚝에 밴 제취가 느껴지고 지영은 그것이 민형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
챘다. 민형의 몸에서는 비누냄세가 난다. 아직 어린 아이 같이 비누냄세
같은 것을 풍기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지영은 민형이 새삼 귀엽게 느껴졌
다. 하지만 어제나 예전에 그 무서운 모습을 생각하면 확실히 어른이었
다. 자기 보다는 확실히 몸을 지킬줄 아는 어른이다. 그리고 민형은 남자
인 것이다.
"저 선생님 제가 할까요?"
문득 이불을 터는 지영의 뒤로 다가온 민형이 팔뚝에 걸고 있던 지영의
이불을 슬쩍 뺏어 들었다. 괜찮다고 사양하려 했는데 어느새 뺏어 들어 한
손으로 펑펑 터는 민형의 모습이 보기 좋아 지영은 그대로 민형이 하고 싶
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
"......"
지영은 잠시동안 이불을 걸고 있는 민형의 팔뚝과 이불을 내려치는 주먹
을 보았다. 확실히 자신과는 스케일 자체가 틀린것이 한번 내려 칠때 마다
대포가 터지듯이 펑펑 소리가 났다. 게다가 그 곧고 굵은 팔뚝. 피부는 흰
것 같았지만 적당히 근육이 올라 단단하게 보였다. 지영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민형의 팔목을 멍하니 쳐다 보았다. 그때 문득 지영의 시선을 눈치챈
민형이 멋적은 얼굴로 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예? 아,아, 아니예요!"
당황한 지영이 번쩍 고개를 들며 자신은 절대 쳐다보지 않았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지영은 황급이 민형이 들고 있는 이불을
빼앗아 들며 다그치듯 외쳤다.
"드,드,드,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아침식사 준비해 가지고 들어갈테
니."
엄청나게 당황하는 지영을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민형이 머
리를 긁적이며 방으로 돌아가자 지영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주먹쥔 손
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 . . . . . . . .
두 사람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 메뉴는 수수했가. 지영이 준비한
간단한 음식 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것이다. 작은 밥상에 올라가 있는
찌개와 밑반찬이 민형이 먹어 주기만을 기다리며 보이지 않는 눈을 반짝이
고 있었다.
"선생님 음식 솜씨가 썩 좋으시군요."
하마터면 시집가도 되겠어요 라고 말할뻔 한 민형이 가까스쓰로 그말을
삼켰다. 덕분에 채 씹지 않은 밥알이 그대로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갔다. 민
형의 칭찬을 들은 지영은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한손으로 볼을 감싼체 기
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요...... 혼자 살다 보니까 밥하는건 도가 텄어요. 민형씨가 갑자
기 오게 될줄 몰라서 준비한게 없어서 미안해요."
"무슨 말씀을요. 이것도 충분히 맛있어요. 친구놈 집에 가면 아침도 점
심도 저녁도 손수 끓인 라면으로 때워야 하거든요. 이렇게 밥을 만들어 주
는 사람이 있으니까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
민형은 정말 기분 좋은 얼굴로 신나게 밥을 먹고 있었다. 지영은 음식을
씹으며 그런 민형의 얼굴을 흘끔흘끔 보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 민형의 모
습이 참 남자 답다고 느껴졌다. 건겅미가 넘쳐 흐르는 민형은 물론 여자들
에게 있기가 많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 고교생들은 이성교제 진전 팬턴이
매우 빠르다고 들었다.
"저 민형씨."
지영은 문득 밥을 먹고 있는 민형에게 물었다.
"여자친구 있어요?"
"흡!"
그순간 밥이 목에 걸린 민형이 기겁을 하며 시뻘개진 얼굴로 고개를 두
리번 거렸다. 깜짝놀란 지영히 서둘러 물컵에 물을 따라 주자 민형은 그것
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이내 살았다는 듯이 희번덕 거리는 눈으로 지영을
바라보았다. 그런 민형의 표정은 심히 긴장 되어 있었다.
"여,여자 친구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민형은 어쩔줄 모르며 지영의 앞에서 두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니까 자신이 여자 친구가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가
만히 생각해 보자...... 아, 그러고 보니 국민학생 때에 꽤 많았던 것 같
은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남녀 합반으로 짝이 모두 여자였었다. 하지만 그
런 일로 여자친구가 있다고 얘기하면 하하...... 얼간이지 그건.
"아,아직 없어요."
민형은 쑥쓰러운 듯이 한손으로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이렇게 중얼 거렸
다. 기왕이면 멋들어진 연애 경험이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러다 밑
천이라도 바닥나면 어쩌겠는가. 이럴때는 역시 단순함으로 밀고 나가는 것
이 최고다. 힘으로 안되는 여자가 상대니까 어쩌겠는가. 민형은 여자한테
약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힘이 안통하는 상대한테는 약했다. 남자한
테 힘이 안통하는 사례는 18년동안 거의 없었지만......
"정말? 의외네요......"
그말을 들은 지영의 얼굴에 화기가 돌았다. 그러나 민형은 고개를 숙인
체 머리를 긁적이느라 그런 지영의 표정으로 알아보지 못했다. 민형은 현
재 다음에 이을 대사를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여자친구가 없었지만
결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무엇가 멋들어지고 자신의 위치를
살릴수 있는 재미있는 그런 대사를......
"사실은 남자를 더 좋아했거든요 하하~!"
바로 이거다. 이거라면 남자들의 의리를 좋아하는 순수한 젊은이로 인
식 되어질 수 있다. 민형은 스스로 이런 멋진 대답을 생각해낸 자신이 놀
라워 활짝 웃었다. 그러나 민형의 그런 말을 들은 지영의 표정은 의외로
못 들을것을 들은 것처럼 창백했다.
"왜그러시죠 선생님?"
"아, 아니요 그냥......"
민형이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묻자 지영은 억지로 쓴 웃음을 지으며
밥그릇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지영도 민형 만큼 쑥맥이라는 칭호에 걸맞
는 여자였다.
PART-18
"왜 벌써 가요? 좀 더 놀다 가지."
돌아가는 민형을 바래다 주며 지영이 너무너무 서운한 표정으로 입을 내
밀었다. 그러나 민형은 그런 지영의 앞에서 머리를 긁적 거리며 언제나와
같은 어리숙한 모습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제 외박했으니 빨리 돌아가 봐야죠. 늦게 들어가면 눈치가 보이니까
요......"
"그런가요......"
자못 풀이죽은 듯한 지영을 힐끔 바라보며 민형이 그녀가 왜 풀이 죽었
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멋적은 듯 곁눈질을 계속 했다. 사실 일찍 들어가서
외박한 티를 지워야 하기 때문에 오전중에 돌아가는 것이다. 저녁에 미적
미적 기어 들어갔다간 외박한걸 들키고 그렇게 되면 시끄러워진다. 어디서
자고 왔는지를 추궁당한다면 정말 곤란해 지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에게 밝힐 수 없는 답답한 속 사정을 숨기며 고개를 내려와 도로변으
로 빠져 나왔다.
"자, 여기서 갈 테니까 선생님 그만 들어가세요."
"아, 아니예요. 버스타는 거 보고 들어갈께요."
으, 택시타고 들어갈려고 그랬는데. 자연스럽게 버스 탈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는 모양이지...... 민형은 할 수 없이 지영과 함께 버스 정류장 쪽
으로 걸어 갔다. 정류장 앞에서 지영이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민형
에게 물었다.
"토큰 줄까요?"
"아, 네? 고맙습니다."
마침 잔돈이 없었던지라 잘 됐다는 얼굴로 민형이 지영이 내미는 토큰을
받았다. 그때 두 사람의 손이 맞 닿았다. 하늘하늘한 지영의 팔목과 부드
러운 손끝이 스치고 민형은 자기도 모르게 꿀꺽 군침을 삼켰다. 뭐,뭐야!
그럴 수도 있지!
"호,혹시 모르니까 두개 줄께요."
"고,고맙습니다."
왜 이렇게 얼굴을 붉어지는 거야 민망하게. 지영은 도무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며 주머니에서 토큰을 꺼내 민형에게 건내 주었다. 이
대로라면 정말 민형씨를 보내고 싶지 않아 큰 일이 될 것이다. 어차피 가
야 되는 일이라면 빨리 빨리 보내 버리던지 해야지 민망해서 못 견딜 지경
이었다. 한편 민형은 민형대로 야릇한 기분에 얼굴을 붉혔다. 부끄러워 하
는 유지영 선생님은 참 귀여운 여자였다. 아니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녀는 정말 귀엽다. 귀찮아할때는 언제고 원...... 참 남자는 늑
대같은 동물이다. 그래, 인정한다.
"아 버스가 오네요."
마침 건너편 신호등에 자신이 타려는 버스 노선이 걸려있는 것을 본 민
형이 도로 밑으로 내려가며 버스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순간 지영의 얼
굴이 하얗게 사색이 되는 것을 민형을 알아채지 못했다. 왜냐? 버스 쪽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이내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어 서고 많은 사
람들이 버스에 오르 내렸다. 민형은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기 위해 지영을
돌아 보았다.
"저, 선생님 그럼 저는 이만......?"
문득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던 민형은 그대로 무언가 꺼름직
한 모습으로 멀뚱히 지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와..... 이 여자 표정이
왜이래 이거. 정말 그냥 두고 불안해서 못가겠군. 그도 그러것이 유지영
선생님이 사색이 된 얼굴로 민형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다. 그렇게 불안한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가다가 버스 사고 나버린
다구. 그녀의 섭섭 침울한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민형이 고개를 숙인후
버스로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
그때였다. 달아올란 뜨거워진 손이 그대로 버스로 오르려는 민형의 손
을 뒤쪽에서 부터 붙잡았다. 깜짝 놀란 민형이 고개를 돌리자 망설이듯 망
연자실한 지영과 두눈이 마주쳤다.
"서,선생님?"
"......"
지금 지영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
로 정신이 없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린지 오래였고 두눈을 크게 뜬체 민형
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보내기 싫다. 보내기 싫어. 조
금만 더 같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버스가 오는 순간부터 몇십초간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영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
사적으로 민형의 손을 덥썩 붙잡고 만것이다. 잠시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멍한 듯이 서 있었다.
-부웅
그리고 버스는 더 이상 민형을 기다려 주지 않고 매정하게 떠나 버리고
말았다. 민형은 버스를 돌아 볼 여유도 없이 착찹한 표정으로 지영을 내
려다 보았다. 왜 이러는거지 이 여자?
"가, 가......"
지영이 얼굴이 새빨갛게 질려 거의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지 말아요."
'......'
그말과 함께 민형도 다분히 쇼크를 먹었다. 가지 말라니? 설마 같이 살
자는 소리는 아닐테고...... 이봐요 선생님. 이성을 찾으세요. 그렇게 정
신없는 얼굴로 말하면 내가 오해한단 말이예요.
"조,조금만 더 같이 있어주세요......"
"......"
붉어진 얼굴로 가까스로 입을 여는 지영을 바라보며 민형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지영을 내려다 보고 있
었다. 무슨 뜻일까...... 왜 나를 못가게 하는 것일까. 민형은 자신의 손
을 붙잡고 있는 지영을 바라보며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었다. 그러나 하나
같이 확실히 결정나는 이유 따위는 없었다.
"......"
결국 민형은 멋적은 듯한 얼굴로 아무말도 못한체 버스를 놓치고 말았
다.
............................................. . . . . . . . .
근처 커피 늄에는 일요일이지만 사람이 얼마 없었다. 옷가게 2층에 위치
한 그리 크지않은 커피 늄 이었는데 유지영 선생님이 말하길 이곳은 팥빙수
를 시키면 우유를 많이 넣어주기 때문에 맛있다고 말했다. 지금 팥빙수 따
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민형은 얼떨결에 따라올 수 밖에 없었다. 왜냐
고? 붙잡힌 이유를 들어야 할거 아니야. 민형은 지영의 앞에 테이블을 끼
고 앉아 애꿎은 팥빙수를 휘휘 휘젓고 있었다.
"......"
그것은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팥빙수가 나온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두
사람은 아직도 서로 어색한 시선을 흘리며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팥
빙수의 얼음이 흥건이 녹아 이미 팥음료가 되어버린 지금. 지영은 붉어진
얼굴로 민형에게 꺼낼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뭐라고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자신의 감정을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민형이 돌
아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콱 막히고 섭섭해서 마치 세상이 끝장나는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붙잡고 말았던 것인데......
와, 만약에 대학 시절에도 이렇게 대담했으면 벌써 결혼했을꺼야. 라고 되
뇌이며 지영은 스스로의 변화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쩌지.
보내기가 싫어서 그랬어요 라고 대답한다면 엄청 무시당할거다. 게다가 시
시하고 재미없는 여자로 찍힐 것이다. 대학때도 그랬는데. 어떡해 앙~
"......"
예전의 자신을 생각하니 도저히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지영은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민형은 참 좋은 사람이다. 재미있고 자상해서 어느
여자라도 좋아할 타잎일 것이다. 지영은 이렇게 생각하며 살짝 고개를 들
었다. 마침 민형이 다 녹아버린 팥빙수를 후루룩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그
모습을 본 지영이 얼굴이 빨개져서 푹하고 고개를 숙였다. 와 큰일이다.
어떡하지 고개를 들수가 없어...... 정말 문제가 많은 성격이다.
"저,선생님? 저에게 할말이 있으신거 같은데......"
"예, 예? 그렇게 보여요?"
당연하지 그렇게 몸을 배배꼬고 있으니, 제발좀 물어봐 달라는 뜻이 아
니었나? 민형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지영도 민망한
듯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아 어떡해...... 죽고 싶어.
"저,저기......"
왜 이렇게 말은 더듬거리는지. 지영은 울고만 싶었다.
"그,그러니까......"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아니 더이상 말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 당
할텐데. 할말은 없고 붙잡은 그럴듯한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떡해
...... 어떡해...... 지영은 어쩔줄 모르다 이내 눈가에 글썽글썽 눈물을
맺었다.
"아...... 그, 그러니까...... 그게 흑흑......."
"에.......?"
갑자기 지영이 훌쩍 훌쩍 울기 시작하니 민형은 어이가 없고 당황하여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이거 왜우는거야? 내가 무슨 엄청난 실수라도 했
거나 여자를 울릴만한 에티켓을 위반했나? 정말 황당하게 해주는 아가씨
네이거? 민형은 당황한듯 어쩔줄 모르며 우는 지영을 잘래기 시작했다.
"서,선생님 왜 그러세요......? 왜 우시는 거예요?"
"나,나는 그냥......"
지영이 울기 시작하자 그나마 몇명 없는 손님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민
형과 지영쪽을 돌아보며 히죽 히죽 웃었다. 나참 뭘봐! 여자 우는 거 처
음보냐 녀석들아!! 민형은 열이 뻗쳐 당장 이라도 달려가 한방 먹여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럴여유가 없을 때. 당장 이걸 그쳐야 되지 않겠는가?
"선생님 울지 마세요! 남들이 보면 오해 하겠어요."
"미안해요 민형씨...... 흑흑"
와 이거 진짜 오해 하겠네. 남자는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여자는 씨자
를 붙히니 요상한 관계 아닌가? 불륜이라고 생각되어져도 할말 없다. 그런
데 도대체 왜 우는 거야 으아!!
"아...... 나 참...... 이거"
민형은 난처한 얼굴로 안절부절 못할뿐 근본적으로 지영을 달래지는 못
했다. 우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달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PART-21
"여,여,여, 열 여덟살!? 그럼 고등학생이란 말이야!?"
"으응......"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치는 지혜를 바라보며 지영이 멋적은
듯 히죽 웃음 지은채 얼굴을 붉혔다. 그런 지영을 쳐다보는 지혜의 두눈이
가늘게 떨리고 그 표정이 너무나 어이없다는 듯이 일그러졌다. 야......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 그럼 도대체 몇살 차이란 말이야 유지영?
"그럼 도대체 몇살이나 차이 나는거야!?"
"6살차이 밖에 않나."
"6살 씩이나겠지!!"
지영이 빙긋 웃으며 손가락 6개를 들어 보이자 지혜는 질려버린 얼굴로
쓴 웃음을 지은채 외쳤다. 나참 지영이가 순박하고 엉뚱한줄은 알고 있었
지만 이렇게나 어처구니 없는 애인줄은 몰랐다. 지혜는 지금 눈앞에서 생
글거리고 있는 지영의 머리를 한대 쥐어 박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6살이나 차이가 난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이거?
"너 도대체 어쩌려고 그래?"
"왜그래 지혜야? 너 눈이 무서워......"
지혜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지영을 바라보자 지영이 잠시 불안한 표정으
로 두눈을 깜빡 였다. 지혜는 답답하고 열이터져 손바닥으로 얼굴에 부채
질을 하며 다시금 지영의 앞에 바싹 다가 앉았다.
"뭐하는 놈이야!? 학생이야!?"
"응......"
휴, 그나마 다행이군. 난 또 왠 고교 중퇴의 백수 건달놈이 잘 구슬려서
꼬든 긴줄 알았네. 그나마 학생이라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군. 지혜는 지
영의 다소곳한 대답을 들으며 한손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 마음을 놓을 사건이 아니다. 이건 정말 문제가 있는 사건이다. 연
하도 좋지만 어디 한두살이라야 말이지.
"너,너...... 아니...... 진정 좀 하고. 너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니? 너의 남성상이라는게 알고보니 새파란 애송이 꼬마였단 말이야?"
"민형씨는 애송이 꼬마가 아냐."
지혜의 거친 말투에 지영이 볼을 부풀렸다. 얼씨구...... 가제는 개 편
이라더니 이거 정말 가관이군. 지혜는 볼을 부풀리며 꽁한 얼굴을 자아내
는 지영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무서운 표정으로 되 물었다.
"고등학생이니 보나마다 차도 없을테고. 고정 수입은 용돈이고. 게다가
젖내가 풀풀나지. 무엇보다 아직 장래도 확실하지 않은 미지수의 애송이
아냐 그거, 야 거 정말 밑지잖아----!!"
"아니야 민형씨는 아주 잘하는게 있다구!"
"'씨'자 붙히지마 기분나뻐!"
꽉막한 지영의 대답에 분통이 터진 지혜가 버럭 소리치자 지영은 찔끔
놀라 어 ㎖를 움추리며 지헤를 가만히 바라 보았다. 잠시 흥분했던 지혜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 앉힌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
다.
"그래...... 뭘 잘하지?"
그래도 한가지 특출난게 있으니까 마음에 들었겠지. 가망 없는 남자들이
지혜는 딱 질색이었다. 지영이 아무리 착하고 성격이 서글서글해도 장래성
없는 남자를 골랐을리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어리지만 무언가 강한 필
링이 느껴졌을 것이다. 지혜가 묻자 지영은 신이 난 얼굴로 대뜸 외쳤다.
"민형씨는 싸움을 굉장히 잘해!"
"......!!"
와...... 하하, 정말 질린다 이거. 지혜는 라이타로 담배에 불을 붙히다
말고 그만 불에 세기를 확 크게 해버리고 말았다.
"어머 지혜야 머리가 타!"
"너 때문이야 너!"
깜짝 놀란 지영이 호들갑스럽게 입을 열었고 지혜는 질린 듯이 쓴웃음
지은 얼굴로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와앙, 정말 미치겠다. 그나마 대학때
부터 지금까지 사귀어온 절친한 친구가 싸움 잘하는 것에 반해 자기보다
6살이나 어린 연하의 초 꼬맹이랑 눈이 맞았다니. 지혜는 분통이 터지고
속은 것도 없이 약이 올랐다.
"도대체 그애의 뭐가 좋아?"
지혜는 담배를 빨아 들이며 한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귀여운 지영
일 빼앗아간 빌어먹을 꼬마놈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민형씨는 아주 좋은 사람이야......"
지영은 두손을 꼭 맞잡은채 행복한 얼굴로 속삭였다. 문득 그 모습을 본
지혜가 머리카락에 가린 시선을 들었다.
"그 사람은 정직하고 또 아주 용감하고...... 또 나한테 매우 잘해줘.
난 그런 사람이 예전부터 좋았단 말이야......"
"어휴, 지영아......."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순한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도 쑥맥일거라고
는 생각지 못했던 지혜였다. 행복한 듯이 속삭이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
니 정말 반해도 단단히 반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지영은 단순하고 왜골수
이기 때문에 한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보는 성격이다. 예전 대학축제가 끝나
고 모두 청소가 귀찮아 도망갔을때 지영 혼자 다음날까지 남아 강당을 모
조리 청소한 적도 있었다. 아, 끈기 귀신...... 그 점이 이 불완전한 연애
에서도 발휘되면 곤란한데...... 지혜는 지영의 말을 들으며 한쪽 눈썹을
찡그린체 담배를 한모금 빨았다.
"아무리 용감하고 착해도 그렇지...... 고등학생이 학원강사한테 사귀
어 달라고 했다고 냉큼 승낙하는 바보가 어디있어 이것아."
"아니야,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는데?"
할말 없음. 전의 상실. 지혜는 그대로 매우매우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줄담배를 뻐끔뻐끔 빨았다. 지영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지혜의 행동을 지
켜보며 숨을 죽였다. 지혜는 화가 났을 때 말이 없다. 자신이 무언가 실수
라도 한 것이 아닌가, 지영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혜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그때 지혜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나! 그애를 만나봐야 겠어!"
"까,깜짝이야!"
지혜가 번쩍 고개를 들며 외치자 지영이 놀란 얼굴로 가슴을 쓰다 듬었
다. 그런 지영의 앞에서 지혜가 의기충천한 표정으로 이렇게 입을 열었
다.
"오늘 학원 끝날때 쯤 학원 앞에서 기다릴께. 그애랑 같이 나와."
"너 오늘 회사 안나가니......?"
"괜찮아 안나가도!"
지혜가 엄청난 얼굴로 협박하자 지영은 한손을 입에 가져간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런 지영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지혜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
다. 어디 어떤 놈인지 허우대 좀 보자......
'시시한 녀석이면 하이힐로 밟아 버려야지.'
그렇게 결심하고 눈을 번뜩이는 안지혜였다.
..................................................... . . . . . .
민형은 지금 매우 기분이 좋았다. 칠판 앞에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수
업을 진행하고 있는 유지영 선생님이 자신과 사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마다 몸이 붕 떠오르는 것만 같은 기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것이 혹시
오르가즘이라게 아닐까? 여자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서도......
"그럼 내일부터는 동사를 배우겠어요. 동사는 꽤 복잡하니까 미리 페이
지 96,97을 읽고 예습해 오도록 하세요."
이말을 마지막으로 그날의 수업이 끝났다. 수업이 끝난 시간은 8시가 조
금 넘은 8시 5분. 학생들이 저마다 책을 챙겨들고 유지영 선생님에게 인사
를 한뒤 교실을 나갔다. 민형도 예전과 다름없이 책을 챙겨들고 의자를 집
어 넣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유지영 선생님에게 꽤 친밀한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저녁이라도 함께 먹자고 할 생각이었다. 뭐 어제
고백 받았지만 실제로 만난 것은 꽤 오래 되었으니 말이다.
"저,민형씨?"
"네?"
그때 등을 돌리는 민형에게 지영이 먼저 말을 건넸다. 그녀는 꽤 긴장한
듯이 야릇한 표정으로 볼을 붉히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본 민형이
화끈 달아 올랐다. 귀엽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선생님?"
식사라도 함께하자고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으나 타이밍을 놓쳐 버렸기에
민형은 지영의 의견을 먼저 듣기로 하고 자신의 권유를 보류했다. 지영이
책을 가슴 앞으로 껴안은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기요, 오늘 요 앞에서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을거예요. 괜찮으시다면
민형씨도 함께가요. 친구도 허락했거든요. 괜찮죠? 그럴거죠?"
"아,네....."
뭐야, 그런 거였어? 그런 거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사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은데 잘됐지 뭐겠어. 민형은 마침 자신도 저녁을 권유하려
던 참이라 흔쾌히 승낙했다. 친구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것도 좋은 기회
다. 유지영 선생님의 친구라면 분명히 착하고 귀여울 것이다. 이 기회에
친구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 주어야지.
"물론 좋아요 선생님. 그렇게 하죠."
"와, 그럼 어서 가요 민형씨."
민형이 화끈하게 대답하자 지영이 밝은 얼굴로 민형의 손을 잡아 끌었
다. 그녀의 손에 끌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민형은 얼굴에 한아름 담긴 행
복한 웃음을 그녀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만 했다. 아 정민형...... 넌
정말 행복한 놈이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자각시키면서 민형은 지영과 함께
학원을 빠져 나왔다.
PART-22
'왜,이렇게 안내려 오는거지......'
지혜는 손목시계를 재차 들여다 보며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8시까지 나
온다고 한 지영이 10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
던 것이다.
"흐음...... 참아야지. 지영이가 남자를 데리고 나오는 이 중요한 자리
에서......"
흥분하면 안된다. 비록 형편없는 녀석을 데려온다고 해도 절대로 흥분하
지 않겠다고 지혜는 마음먹었다. 잘 설득해서 떨어지게 만들어야지. 그 방
법이 야말로 제일 적당하다고 지혜는 생각했다. 벌써 떨어뜨리려는 것으로
마음이 정해졌지만서도......
"아,지혜야 기다렸니? 미안해 수업이 5분 늦게 끝났어."
"지영아."
그때 입구쪽에서 지영이 모습을 들어내었고 지혜는 긴장한 얼굴로 지영
을 따라 나왔어야 할 고교생을 찾아 보았다. 그러나 입구에서 걸어나온 것
은 지영 뿐이었다. 지혜는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그 남자는?"
"으응, 손 씻으러 갔어. 금방 나올꺼야."
"왠 이럴때 손을 씻는대니 별꼴이야."
잔뜩 속이 뒤틀려 있었기 때문에 지혜의 입에서 고운말은 나오지 않았
다. 지영은 지혜가 꽤 언짢아 있는것 같아서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민형을
만나면 그런 기분이 모두 풀릴것이라 생각하고 웃어보였다. 그때 입구쪽에
서 훤칠한 용모의 남자 하나가 지영을 향해 작은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아 민형씨! 여기에요~"
지영히 대뜸 손을 흔들었고 지혜는 멍한 얼굴로 입구쪽에서 자신들에게
걸어오는 민형을 향해 시선을 고정 시켰다. 민형은 처음 본 지혜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지영이 지혜에게 민
형을 소개 시켰다.
"지영아. 정민형씨야. 민형씨 내 친구 지혜예요. 안지혜."
지영의 소개와 함께 지혜와 민형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
다.
"처음뵙겠어요. 정민형 입니다."
"아.안녕하세요 안지혜예요."
민형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자 지혜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
져 고개를 숙였다. 와...... 미남이다. 지혜가 본 민형은 객관적 미남이었
다. 고교생이라고는 했지만 사복을 입어서 그런지 전혀 티가 나지 않는데
다가 적당한 체구와 키. 게다가 또렷한 눈매와 짙은 눈썹이 강렬한 미남자
였던 것이다. 지혜는 갑자기 쑥쓰러운 생각이 들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
다. 일단 허우대는 꽤 괜찮은데......
'......'
한편 민형쪽에서도 꽤 놀라고 있었다. 유지영 선생님의 친구라고 해서
비슷한 취향일줄 알았더니 이쪽은 동양인이라고 생각되기 어색할 정도로
대단한 글래머 였다. 그리고 검은 원피스와 섹시한 입술화장. 분위기를 한
껏 자아낸 요염한 자태가 곳곳에서 흘러 나오는 미녀였던 것이다.
"저기, 처음 만나서 서먹서먹하니까 일단 뭐라도 먹으러 가죠. 이 근처
에 잘하는데 알고 있어요."
"그럴까요?"
지영이 민형의 손을 잡아 끌자 민형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
혜는 그런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꽤 어울리는듯......'
아냐 아냐! 방심은 금물! 남자는 얼굴 가지고 먹고 사는게 아니니까! 조
금더 샅샅히 이 남자에 대해 파해쳐 주리라...... 또다시 전의를 가다듬는
안지혜양 이었다.
..................................... . . . . . . . . . . .
세 사람은 일단 대화의 장을 나누기에 가장 화기애애한 호프로 향했다.
원칙적으로 민형은 미성년자 였으나 한 원숙한 아가씨의 능숙한 리더로 쉽
게 가게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평일에는 단속도 뜸한데다 뭐 여차하
면 보호자 동반이라 하지 뭐. 지혜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요. 맥주 3병하고요, 음...... 안주는 뭘로할까......"
"지혜야 나는 돈까스가 좋아. 배고프거든. 어머 여기는 6천원이나 하
네?"
촌티를 내는 지영을 흘끔 바라보며 지혜가 서빙에게 모른체 해달라는 듯
쓴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민형에게 메뉴를 건네며 은근한 표정으로
물었다.
"민형씨도 시키세요. 돈 걱정은 마시고 먹고 싶은걸로."
고등학생이 잘 와보지 못한 호프에서 기를 죽일 생각이었다. 이럴때 성
숙한 여자와 학생의 레벨차이를 확실히 보여줘야지. 그것이 지혜의 생각이
었다.
"네, 그러죠."
엥? 태연한 민형에 대답에 지혜는 불안함을 느꼈다. 꽤, 꽤 능숙한 척
하는군 그래...... 조마조마한 지혜의 앞에서 민형은 메뉴를 덮어 서빙에
게 건네주며 주문했다.
"섬씽 작은걸로. 석수도 가져오고 안주는 일단 감자튀김으로 주세요. 나
머지는 조금 있다 더 시킬테니까."
"맥주 3병 섬씽 작은거 하나. 돈까스와 감자튀김 맞습니까?"
"네."
가볍게 대답하는 민형을 바라보며 지혜는 질린듯이 멍하니 잠자코 있었
다. 서빙을 보던 종업원이 테이블로 돌아가고 지영이 궁금한듯 민형에게
물었다.
"민형씨 썸씽이 뭐예요?"
"양주에요."
"아, 그렇구나. 양주도 마셔요?"
"아버지랑 가끔......"
민형이 대답하자 지영은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 끄덕 거렸다. 한
편 지혜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우....
.. 고교생 주제에 꽤 세게 나오는데. 썸씽 스페셜이라. 흔한 양주이긴 하
지만 석수까지 시킨걸 보면 아주 능숙하다. 지혜는 이 남자를 우습게 보
면 안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전투 의욕을 재 충전 했다. 잠시후 술
과 안주가 테이블에 놓여지고 제일 기뻐한 것은 지영이었다. 그녀는 포크
를 집어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외쳤다.
"와~ 맛있겠다. 여긴 비싼 만큼 예쁘구나."
"지영아. 많이 먹어."
"고마워 지혜야. 넌 역시 돈을 많이 버니까 다니는 곳도 틀리다 얘."
지영이 행복한 표정으로 돈까스를 먹기 시작하자 지혜는 맥주를 따고
민형의 잔에 따라주며 여전히 은근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일단 이걸로 목이라도 축이죠."
"고맙습니다."
민형은 자신의 잔에 하나 가득 맥주를 받고 두손으로 지혜의 잔에도 따
라 주었다. 지영의 잔은 지혜가 매꿔 주었다.
"자, 그럼 우리의 만남을 위해 건배할까요."
지혜가 찡긋 윙크하며 잔을 들어 올리자 민형과 지영이 일제히 잔을 들
어 세 술잔이 맞 부닥쳤다. 이내 꿀꺽 꿀꺽 맥주를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지영이 잔을 내려놓으며 숨을 내쉬었다.
"하앗~ 시원하다."
지영은 반밖에 마시지 못했지만 지혜와 민형은 완샷으로 들이켜 버렸
다.
"민형씨 무리하지 마시고 원샷(원하는 대로 마시는것)하세요."
"맥주는 완샷으로 해야죠(완전히 한번에 마시는것)"
은근히 떠 보았지만 역시 실패. 이 남자 생각보다 무지무지 강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지혜는 웃음띈 얼굴 속으로 이를 갈았다. 민형은 병을 들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더니 맥주 한병을 냉큼 비우고 양주잔에 보리빛 썸
씽을 따랐다. 얼음을 두개 띄우더니 그가 지혜에게 권했다.
"어떠세요?"
"아, 저는 마티니를 즐겨요. 하지만 오늘은 양주는 사양하고 싶군요."
"유감이군요."
민형이 빙긋 웃어 보이더니 썸씽을 한모금 마셨다. 벌써 빠른속도로 맥
주를 비웠는데 아직도 민형의 얼굴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색깔도 그대
로 였다. 술로 죽이려는 작전은 실패인가. 생각보다 술자리 경험이 많은
녀석일지로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지혜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삭였다. 하지만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지혜는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민형에게 물었다.
"참 의외네요. 민형씨는 아직 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술을 꽤 잘하는데
요."
"칭찬이시죠?"
저런 자식 봐라. 천연덕스럽기도 하네. 참 비위도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
하면서 지혜는 애써 호호 웃어 보였다. 속으로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
었지만......
"두사람 이야기를 듣고 적지않게 놀랐어요. 남자라면 다른 나라 인종으
로 생각하던 지영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다니 의외였거든요. 하지만 만
나보니 역시 이유를 알만하네요."
지혜가 억지로 웃으며 대화를 이끌었다. 좀더 많이 이야기를 걸어서 이
놈의 실수를 그집어 내야 한다. 아니면 술을 왕창 먹여서 본성이나 술버릇
으로 지영에게 충격을 줄 수고 있다. 지혜의 계획은 대강 이정도 였다. 하
편 민형은 지혜의 이야기를 듣고 꽤 흐믓했다. 역시 유지영 선생님은 대학
때도 순진했구나...... 자신이 첫 남자라고 생각하니 매우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직 실감이 가지 않기도 해요. 고등학생과 지영이가 만난다는
것이......"
은근히 나이가 어림을 강조시키면서 지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민형을 주
시했다. 민형은 아무런 변함이 없는 얼굴로 지혜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PART-23
민형의 태연한 시선에 그를 무안주려던 지혜가 오히려 얼굴을 붉히고 말
았다. 무슨 애가 윗 사람이 쳐다보는데 한발짝도 안 지고 같이 쳐다본다냐
...... 정말 기질이 강한 녀석이군. 지혜는 속으로 야무진 각오를 하며 맥
주를 입술에 적셨다.
"민형씨 돈까스 먹어요."
"예."
지혜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지영이 민형을 챙겨주자 지혜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질투심에 이를 갈았다. 지영이 민형에게 잘해주는
모습이 너무너무 배가 아팠다. 이건 동성애가 아니라구. 어디까지나 그런
거 있지? 딸을 시집 보낼때의 기분 같은거.
"민형씨는 고3이라고 했죠?"
그래 이거다. 학벌로 밀고 나가자. 대하 민국 남성은 학벌에는 기가 죽
는 법이다. 조금 치사하긴 하지만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네."
민형이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지혜가 히죽 웃으며 되물었다.
"어느 학교예요?"
"'이강실고'요."
"어머, 들어본적이 없는 학교네~?"
일부러 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지혜가 노골적으로 이렇게 입을 열었
다. 그러자 민형의 표정이 조금 멋적은 듯이 변했다가 이내 대수롭지 않다
는 듯이 손이 술잔으로 다가갔다. 민형이 양주를 한모금 마실때 옆에 있던
지영이 지혜를 나무라듯 말했다.
"지혜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어머 무슨 소리야 지영아? 난 그저 국내 최고의 서울대를 나온 너와 잘
어울리는 학벌을 갖췄는지 알고 싶었을 뿐인데. 호호"
지혜는 이렇게 말하며 은근한 눈초리로 술을 마시는 민형을 응시했다. 어
떠냐 고교생. 이 정도면 나의 승리다. 네 주제를 알고 이 정도에서 물러나
면 용서해 주마 호호호. 지혜는 야릇한 표정으로 승리의 도취를 만긱하며
민형의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하지만 난 학벌같은건 상관없어."
엥? 갑자기 왠 산통깨지는 불길한 예감. 지혜는 다 만들어 놓은 자신의
아성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으며 지영을 돌아 보았다. 갑자기 지영이 고개
를 수그린체로 얼굴이 빨개져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내가 서울대를 나와도 민형씨의 여자니까 민형씨를 존중하고 따
라야 돼."
그말과 함께 지혜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민형은 마시던 양주를 그대로 양
주잔에 주루룩 흘려 뱉어내 버렸다. 우와 쇼크 쇼크. 이런 대담한 대사.
민형은 가슴이 짜릿할 정도로 감동 받아 고개를 들었다. 반대로 지혜의 심
정은 욹그락 붉으란 분노 일발.
"얘 지영아!"
어처구니 없는 얼구로 지혜가 지영을 다그쳤다. 물론 자신의 의도를 완
벽하게 나타내선 안됐기에 부드럽게 쓴웃음 지은 표정이었다.
"너 무슨 말을 그렇게 구식으로 하니. 민형씨의 여자라니 우습다 얘."
그래, 그거야 말로 역겨운 대사다 이것아. 지혜는 속으로 폭발할 것만
같은 화를 삭이며 억지 웃음을 지은체 지영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정말
5년이 넘게 사귀었는데 이다지도 장단이 안 맞다니 지혜는 한편으로 슬펐
다.
"게다가 남자는 경제력이 있어야 되잖아. 나는 학벌이 좋은 남자가 안정
적으로 너를 보살펴 줄수 있기를 바라는 거야."
"괜찮아. 내가 벌면 되잖아?"
으으으으으!! 유지영 너 가만히 좀 못 있을래! 자꾸만 지혜 자신의 의도
와 틀린 대사를 내뱉는 지영을 노려보며 지혜가 겉으로는 웃음을 속으로는
지옥을 품은체로 입을 열었다.
"호호, 하지만 그게 쉽지많은 않지. 현대 사회에서 여자가 남자를 벌여
먹여 살리면 꼴이 뭐가 되겠니......."
"아니야 민형씨는 하고 싶은거 하면 돼. 별로 이상하지 않아."
"얘...... 나는 무능력하고 장래성 없는 남자는 불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민형씨의 장래성은 아직 아무도 모르잖아?"
"고정수입도 차도 없는 고교생의 장래성이 그렇게 대단하냐!?"
두 여성의 대화를 들으면서 민형은 골치아픈 표정으로 홀짝홀짝 양주잔
을 비웠다. 이런 완전히 나를 무능력자로 만들고 있잖아 이거. 안지혜의
처음 생각과 달리 이제 그녀의 의도가 완벽히 들어나 버리고 말았던 것이
다. 역시 사람은 흥분하면 안되다니까......
"어쨋든 참으로 불안한 커플이구나...... 호호"
이미 다 들어난 음모를 억지로 감추려는 듯이 지혜가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마에 맺힌 핏발을 가라 앉혔다. 민형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안주를
집어 먹고 있었고 지영은 그런 민형을 조심스럽게 바라 보았다.
"민형씨 화났어요......?"
누구라도 화날 상황이지만 민형은 화내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보면 저
안지혜라는 여성의 말이 그리 틀린것도 없거니와 민형은 사실 유지영 선생
님과의 만남이 주제 넘은 짓은 아닐까 생각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왠지 납득하고 싶지 않은 말...... 장래성이나 경제력 같은 것은
모두 뒷전으로 미루고라고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
신은......
"저 화 안났어요."
민형이 빙그레 웃어주자 그제서야 지영은 마음이 놓였는지 활짝 웃었
다.
"지혜씨는 걱정하고 있는건데요. 제가 화낼리 없죠."
이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씨익 웃어보이는 민형을 보며 지혜는 오싹함을
느꼈다. 그때 민형이 지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뚜렷한 눈
매...... 그것은 지혜가 걱정하는 장래성 따위와는 관계었지만 그녀는 그
눈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그것은 민형의 자신감. 민형은 그것을 믿고 있었다.
"그 일이 작은 것이라 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장래성
같은 것은 상관이 없거든요."
그 강렬하지만 순박한 표정. 지혜는 민형의 눈을 바라보며 고교생이 아
닌 남자로서의 민형을 보았다. 아니 아주 잠깐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지영이 반한 민형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을 해낼겁니다."
고교생의 철학치곤 꽤 현실적인 민형의 말.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매우
훌륭한 장래성. 이 사회에 똑같은 길을 걸어가는 모르모트 같은 학벌노예
들의 장래성보다는 신선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모험이 필요하다 해도......'
어쨋든 지영이 민형에게 빠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 . . . . . .
"그럼 나는 이만 가볼께. 민형씨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자신의 자가용 앞에서 지혜는 민형에게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저 역시 오늘 잘 얻어 먹었습니다 지혜씨. 나중에 또 뵈요."
"호호, 누나라고 부르라니까요~"
"아, 그래도......"
친근하게 호호호 웃는 지혜에게 민형이 멋적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자 지
혜는 그런 민형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지영에게 귓속말로 속삭였
다.
'태워다 주고 싶지만 이만 빠질께. 그게 더 좋지?'
'몰라 얘.'
히죽 웃으며 말을 거는 지혜에게 지영이 얼굴이 빨개진체 눈쌀을 찌푸렸
다. 지혜는 킥킥 웃으면서 차안으로 들어가 핸들을 붙잡았다.
"벌써 10시 반인데 차 끊기기 전에 빨리빨리 들어가라구요. 뭐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둘이 사이좋게 외박하던지."
"지혜야!"
창밖으로 이렇게 외치는 지혜를 향해 지영이 홍당무가 된 얼굴로 어쩔줄
모르며 외쳤다. 그것참...... 민형은 멋적은 듯이 얼굴을 붉힌체 멍청히
서 있었다.
"그럼 민형씨. 지영이를 잘 부탁해요."
"......"
한순간 진지한 지혜의 눈매가 민형의 시선과 마주쳤다. 잠시지만 두 사
람은 대답이 필요 없는 무언의 약속을 주고 받았다. 민형이 고개를 끄덕
거리자 지혜는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빙긋이 웃으며 창문 밖으로 내밀고
있던 고개를 집어 넣었다.
"좋았어! 그럼 잘가요!"
"얘! 운전 조심해!"
"OK~!"
화끈하게 OK 소리를 크게 외치며 지혜의 소나타 쓰리가 도로로 사라졌
다. 지영과 민형은 잠시동안 멍하니 서서 그런 지혜의 자가용이 도로 저쪽
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 시원시원하신 분이군요."
"네, 너무 시원시원해서 탈이예요."
웃으며 입을 여는 민형에게 지영이 쑥쓰러운 듯이 홍조띈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
다.
PART-24
| 분류 | 제목 | 글쓴이 | 조회수 |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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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담 | 섹밤 | 177683 |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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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6056 | 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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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5869 | 0 | |
|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5786 | 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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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6158 | 0 | |
|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5608 | 0 | |
|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5427 | 0 | |
|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6729 | 0 | |
|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7526 | 0 | |
|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7411 | 0 | |
|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8913 | 0 | |
| 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 노선생χ | 16319 | 0 | |
| 직업물 (여직원/오피스) | 노선생χ | 12476 | 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