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3년생의 사랑 3부
PART-9
"그런데 그 여자가 정말 그렇게 예쁘냐? 얼굴이나 한번 봤으면 좋겠다"
"으...함부로 그 여자라고 하지마. 혼내줄테다"
민형은 계속하여 히죽 거리며 자신을 놀리고 있는 성우를 노려보며 주먹
을 불끈 쥐어 보였다. 감히 유지영 선생님을 그여자 따위로 부르다니 용
서할수 없어, 그런 민형을 어이 없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성우가
졌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너 정말 빠졌구나? 걱정된다..."
"시끄럽다 임마! 참견하지마"
혀를 차는 성우에게 이렇게 반박해 준후 민형은 토라진듯 뚜벅뚜벅 걸음
을 옮겼다. 휴일은 싫어. 토요일과 일요일은 학원을 가지 않는다. 결국
유지영 선생님의 얼굴을 볼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얼굴을 잊어 버릴
까봐 겁이난다... 하긴 잊고 싶어도 절대로 잊지 못하겠지만...
"야 민형아. 배 안고프니? 벌써 5시다. 우리 어디가서 점심이나 먹자."
문득 성우의 말에 정신을 차린 민형은 자신이 아침을 굶었다는 것을 깨
달았다. 그렇군 아침에 그다지 일찍 일어나지 못해 급히 나오느라고 식
사를 거른것이다. 그러고보니 벌써 점심시간... 어디서 점심을 해결하긴
해야 겠는데.
"햄버거 먹을까?"
이렇게 묻는 민형에게 성우는 한심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프리며 그런 민
형의 어깨를 후려 갈겼다.
"넌 맨날 햄버거만 먹고사냐? 시내까지 나왔는데 또 햄버거야? 그러지 말
고 오늘은 어디가서 칼질이라도..."
"돈 많다 너."
"하하 미팅에는 돈이 필수다."
한순간 아무 생각없이 성우를 바라보고 있던 민형의 두눈이 번쩍 뜨였다.
이자식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미팅이라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 그럼 오늘 나를 불러낸 이유
가..."
민형은 성우의 멱살을 붙잡고 설마 하는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팅...이냐?"
"하..하..응."
성우가 멋적은 듯이 민형의 두팔에 목깃을 잡힌체 고개를 끄덕 거렸고 민
형은 그대로 성우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성우가 엄살을 떨며 나죽어라
외쳐대는 사이에 민형은 정신없이 마음속을 정리했다.
'미..미팅이라니. 성우저놈. 항상 사람을 황당하게 만드는데는 소질있는
놈이라지만...도대체...'
"왜 말을 안한거야! 응!? 속은 기분이잖아!"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큰소리로 외치는 민형에게 성우가 진정하라는
듯이 민형의 어깨를 붙잡으며 자못 진지한듯이 이렇게 입을 열었다.
"형님의 깊은 뜻을 모르겠냐? 환상의 여인에게 빠져 괴로워 하는 친구에
게 보다 현실적인 여자를 소개 시켜 주려는 것 뿐이야. 내가 사실대로 나
왔으면 네가 나오지 않을게 분명하니까 할수 없었어."
"크윽, 너 이자식 잘도..."
민형은 약이 오른 나머지 휙 하고 성우에게서 등을 돌렸다.
"난 가겠어!"
"어? 잠깐!"
순간 뒤돌아 서는 민형을 붙잡으며 성우가 외쳤다.
"이봐! 이미 두명의 여자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네가 그냥 가면
그 아이들에게 결례를 범하는 거야 알아?"
"그건 네 사정이지! 난 간다고 말한적 없어!"
"어쨋건 그 애들은 너와 나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으..으윽..."
부당한 요구였지만 민형은 여자에 대해서라면 대책 불능. 제멋대로인 성
우 녀석의 계략이었지만 여자 아이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니 할말이 없
었다. 확 집에 돌아가 버리고 싶었지만...
"속인건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왕 여기 까지 왔잖아 .. 안그래?"
"으으... 너 계속 이렇게만 해라."
"하하 미안~"
애써 내숭 떨며 웃어 보이는 성우에게 민형은 약이 오르고 분하기는 했지
만 어쩔수 없었다. 여자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는데 바람 맞힐수는 없는
것이다. 대충 얼굴만 대면시키고 빠져 나오는 편이 좋겠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부터는 가만 놔두지 않을거야..."
"하핫! 너라면 이해해 줄거라고 생각했어!"
유쾌한듯이 자신의 어깨를 두두리는 성우를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며 민형
은 인상을 찌푸렸다.
'미팅이라고... 제길...'
민형은 속으로는 성우를 원망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성
우를 따라 약속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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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지영은 종소리를 울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두사람에 커플에게 꾸벅 고개
를 숙이고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이곳은 학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작은 레스토랑, 약간의 술과 음식을 함께 취급하는 혼합성이 짙은 가게
다. 지영은 학원에 강의가 없는 오후에 시간을 이용하여 이곳에서 서빙
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지금처럼 안내인의 역할을
부여 받기도 하지만 본래 지영이 이곳에 취직해서 얻은 직책은 가장 서
빙이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지영은 흘러내린 머리를 어깨위로 넘겨 올렸다.
슬쩍 시계를 쳐다보니 9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퇴근 시간은 10시반
아직 1시간이 조금 넘게 남아 있었다. 그때 입구문이 벌컥 열리고 땋은
머리를 한 귀여운 얼굴의 아가씨가 황급히 숨을 몰아쉬며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머 미안해 지영아! 지배인한테 전화했는데... 정말 미안해!"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두소을 모은체 지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지영은 그런 그녀에게 괜찮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두손을 흔들
었다.
"아니야, 뭐 다 같은 일인데 어때... 그럼 교대하자."
"정말 고마워. 너 때문에 살았다."
원래 지영의 일을 서빙이었지만 늦은 친구 대신 안내를 맡고 있었던 것
이다. 이제 친구가 돌아왔으니 지영은 서빙으로 돌아가야 했다. 주방쪽
으로 들어가며 앞치마를 푸르는 지영의 귓가에 항상 들어왔던 익숙한
친구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오세요~저쪽으로 앉으세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영은 속으로 살짝 웃음 지었다. 참 붙임성 있
게 잘 해나간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녀가 늦은 1시간 동안 긴장되어 굳
은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약간 무안하기도 했지만 처
음해본 일이라 어쩔수 없었다. 자신도 꽤 밝은 성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에...
"어서오세요~ 4분이시죠? 저쪽으로 앉으세요?"
문득 고개를 돌린 지영의 눈에 안내를 받으며 식당안으로 들어오는 4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순간 지영은 눈쌀을 찌푸렸다.
'아직 학생이잖아... 늦은시간에 이런곳에...'
약간 마음에 안들기는 하지만 요즘 신세대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 지영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유지영씨 가서 주문 받아요"
"아..네!"
지영은 잠시 망각하고 있던 자신의 일을 자각하고 황급히 메뉴판을 들고
종종 걸음으로 4명의 학생들이 앉아 이는 테이블로 향했다. 남자 둘 여
자둘 각자 사이좋게 짝을 맞추어 앉아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
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좋아 보이는 풍경은 아니었다. 지영은 얌전하게
메뉴판 두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문을 기다렸다.
'윽...뭐야 이거?'
메뉴판을 집어든 민형은 기가 죽어 침을 꿀꺽 삼켰다.
'정식이... 25000원 이라니... 이건...'
엄청나게 비싼 음식값에 민형을 질린 얼굴로 혀를 찼다. 그때 민형의 정
면에 앉아 있던 성우가 천연덕 스럽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아 이집은 티본을 잘해. 그걸로 하지?"
티본... 티본 이라...성우의 말을 들은 민형은 황급히 메뉴판을 뒤적 거렸
다.
'아! 여기있군 티본 스테이크 사... 삼만 오천원!"
그리고 너무나 민형은 너무나 기가막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학생의 신
분으로 이런데 올수가 있는거야 성우 임마!
"어머... 그거 맛있겠다. 나 그걸로 할래."
"나도~"
사정도 모르고 잘도 골라제끼는 자신고 성우의 파트너를 곁눈으로 바라
보며 민형은 혀를 찼다. 쯧쯧 골빈 기집애들... 돈까스나 시켜!
"그럼 티본으로... 4분...웰던으로 하시겠어요 아니면 미디엄.."
주문을 받고 메뉴판을 접으며 지영이 이렇게 물었을때 민형은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
"아... 난 웰던으로..."
라고 입을 열며 서빙 아가씨에게 고개를 든 민형은 한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놀란 것은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서... 선생님...?'
'민형씨...?'
한순간 성우들은 알수 없는 지영과 민형만의 어색한 시선이 맞 부딪치
고 두사람은 긴장한체 자리에 굳어 버린체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PART-10
"이봐요 아가씨, 뭘 그렇게 서서 보고 있는 겁니까? 주문 다 끝났잖아
요?"
멍한 표정으로 민형을 바라보는 지영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성우가
퉁명스럽게 물었다.주위에 있는 여자아이들의 시선도 지영에게 일제히 쏠
렸으나 지영은 아직 아무것도 실감나지 않는 얼굴로 우두커니 메뉴판을
들고 서 있었다.
"이봐요! 가서 음식을 가져와요!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야? 빤히 쳐다보고
있게!"
왠지 놀림받는 기분이 든 성우가 언짢은 얼굴로 조금 언성을 높혔다. 그
때였다.
- 쾅 -
"왓?"
탁자 위에 식기들이 공중으로 붕 떠오를 정도의 강력한 민형의 주먹이 성
우의 눈앞에서 내려쳐졌고 그 무시무시한 민형의 눈을 보며 성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왜...왜? 뭔가 잘못한건가?
"너 말이야..."
민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며 성우를 노려 보았다. 그러나 성우가 그런 민
형의 뜻을 이해할리없었다. 민형은 성우의 앞에서 메뉴판을 들고 있는 지
영을 슬쩍 쳐다보았다.
'핫'
민형의 시선을 느낀 지영도 황급히 메뉴판을 등뒤로 돌리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손님!"
"......"
어색한 분위기에 식탁 주위는 고요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영을 제외
한 세사람은 이유없이 흥분해 있는 민형을 바라보며 슛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민형은 유지영 선생님에게 버릇없이 구는 성우에게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난 것이지만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애써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민형은
헛기침을 한번하고 방금 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 비슷한 말을 늘어 놓
았다.
"그, 그러니까 아무리 서빙을 보는 아가씨라도 그렇게 말해면 안돼!"
지영의 얼굴이 빨개지고 성우는 여전히 이상한 다는 듯이 민형의 얼굴을
힐끗힐끗 살펴 보았다. 저게 돌았나? 갑자기 민형의 파트너가 민형의 팔
짱을 끼며 바짝 달라붙었다.
"멋져라. 민형씨는 참 상냥하구나."
"아, 아니 난."
민형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유지영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메뉴판으로 입을 가린체 놀라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
다. 이대로는 오해의 소지가 크잖아! 민형은 자신에게 달라붙은 미팅
파트너를 밀쳐내며 재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떠, 떨어져. 뭐하는 짓이야 이게!"
그 와중에도 눈은 유지영 선생님에게 향해 있었다. 자신의 애교가 실패
로 돌아가자 뾰루퉁해진 소녀가 가슴앞으로 팔을 빼 모으며 휙 돌아 앉
았다. 지영은 왠지 모르지만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저, 주문이......"
왠지 모르게 정신이 혼란스러워 지영은 이렇게 물었다. 한순간 날카로운
성우의 목소리가 지영의 귀를 때렸다.
"아까 시켰잖아요!"
"에... 엣?"
화들짝 놀란 지영은 재빨리 입가에 가져가 있던 메뉴판을 눈앞으로 가져
왔다. 그러나 긴장한 나머지 손에서 미끄러진 메뉴판이 지영의 손을 빠
져 나왔다.
"아, 이 이런!"
당황한 지영이 공중으로 떠오른 메뉴판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메뉴판
은 잘도 지영의 손을 이리저리 빠져나가 폴짝폴짝 도약했다.
"이봐요!"
참다못한 성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였다.
- ! -
빡, 소리와 함께 메뉴판의 모서리가 성우의 머리를 향해 내려 꽂혔고 성
우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모습을 본 지영은 놀란 강아지 마냥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두눈을 크게떴다.
"아, 아하하하 저 꼴좀봐!"
"어머, 호호호호!!"
메뉴판을 뒤집어 쓴 성우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두 여자아이들은 자지러
질듯이 웃어 재기기 시작했다. 성우의 입술이 일그러지고 얼굴 근육이 경
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정말 이 아가씨가!!!"
"이,이봐 성우!!??"
성우의 오른손이 머리위로 높게 치켜올려지고 깜짝놀란 민형이 황급이 자
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분노한 성우의 오른손이 놀란 토끼눈의 유지영
선생님을 향해 날아갔다.
- 짝 -
"......!!!???"
민형은 그것이 꿈이 아닌가 생각했다. 메뉴판이 땅바닥으로 떨구어지고
눈앞에 서있던 유지영 선생님의 머리카락이 펄럭였다.
"선생님-----!?"
미쳐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테이블이 엎어지며 두눈이 휘둥그래진 민
형이 지영을 향해 달려 나갔다. 모두들 그런 민형을 바라보며 숨을 죽
였다.
"서, 선생님...?"
성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이렇게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바닥에 부릅을 꿇은 지영을 부축하며 민형이 외쳤다. 그녀는 얻어맞은 오
른쪽 볼을 두손으로 꼬옥 감싼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민형의 손에 잡힌
그녀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심한 가슴의 요동소리가 느껴졌
다.
"서, 선생님....?"
민형은 민망하고 죄스러워 어쩔줄 모르며 지영의 앞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이런일이... 유지영 선생님이 이런곳에서 일하고 있을 줄
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 오지 않는건데. 미팅 따위 오지 않는건데! 민형
은 학생의 신분으로 이런곳에 오게 된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다그치는 민형에게 유지영 선생님이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꼬옥 쥐고 있
는 오른 쪽 볼이 부어있었다. 그리고... 순간 민형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
았다.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
이다.
' 아... 이런 '
주위가 온통 깜깜한 암흑으로 변하고 민형의 심장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선생님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 자신의 친구에게 따귀를 맞아서... 이것
은 폐륜이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거야! 민형은 자신이 직접 저
지른 일은 아니지만 너무나 큰 죄책감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성우 너 이
자식!! 여자를 이렇게 세게 때리는 놈이 어딨냐! 야만인!!
"아퍼라..."
한순간 지영이 조용히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민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아... 그녀를 쳐다볼수가 없다. 하지만 긴장하고 있는 민형과 달리 지영
은 성우의 발아래 떨어져 있는 메뉴판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제서야 테이블에서의 시끌벅적함을 눈치챈 가게 주인
이 달려왔다.
"아, 아니 무슨 일입니까 손님?"
주인은 피가 흐르는 지영과 쓰려져 있는 테이블, 결코 좋지 못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 있는 성우와 민형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주인의 목구
멍으로 삼켜 넘기는 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갑자기 주인이 지영을
향해 다그쳐 물었다.
"무슨일이야 지영양! 어떻게 된거야?"
"아 잠깐만요. 그게..."
민형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주인을 불러으나 그는 가게의 체통 때문인
지 운영상의 문제인지 민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영만을 향해 더욱 큰소리
로 다그쳤다.
"어떻게 된거냐니까!!"
"......"
고개를 숙인체 아무말도 못하던 지영이 잠시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불안해 어쩔줄 모르는 그녀의 얼굴, 문득 민형은 그것이 모두 자신 때문
이라는 생각이 들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PART-11
레스토랑을 나온 민형은 정신없이 복잡한 상황에서 화를내며 일행을 떠나
보냈다. 미팅도,친구도, 오늘에 모든 사건은 처음 부터 끝까지 전부 엉망
이 되어 버렸다. 친한 친구 성우는 물론이고 자신의 파트너에게 까지 반색
하며 화를 내어버린 민형은 자신의 행동이 당황스럽고 난처하기는 했지만
성우에게 따귀를 맞고 식당 주인에게 꾸중까지 들은 유지영 선생님을 생각
하니 온몸에 피가 바싹바싹 말라 붙었다. 그렇게 민형은 친구들이 모두 돌
아간 늦은 저녁까지 식당앞 입구에 몸을 기댄체 유지영 선생님의 퇴근 시
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오늘 무슨 짓을 한거야. 선생님이 내 친구에게 따귀를 맞고
아무말도 못하다니. 내가 그녀에게 무슨 못되먹은 짓을 한거냔 말이야.
아 인간 정민형. 넌 최저다. 남자도 아니고 엉멍진창이야. 도대체 뭐라고
사과를 하면 좋을까."
이렇게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와중에서도 민형은 불안하고 초조하여 미
칠것만 같았다. 도대체 유지영 선생님 그녀와의 만남은 계속되는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첫 인상의 조짐이 좋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녀가 트러블
메이커 이기 때문일까. 확실히 그런 여성따위 보기도 싫다고 생각하던 때
가 얼마전의 일이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그녀에게 대한 처사따위에 신경
을 쓰며 초조해 해야 하는 걸까. 최소한 스승과 제자의 도리라고 마음을
달래 며 민형은 자신을 위로했다.
"뭐라도 좋으니 빨리 나와라. 미치겠군 정말!"
기다리다 지친 민형은 홧김에 입구에 반쯤 닫힌 나무문을 주먹으로 내리쳤
다. 쾅 소리가 나고 우지끈 문이 부서져 나갔다. 당황한 민형이 깜짝놀라
며 얼른 주먹을 빼어 냈을때는 이미 그럴싸한 나무장식은 박살이 나고 판
자가 일그러진체 괴상한 모양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더 민형을 당황하게 한것은 그 부숴진 나무분 바로 옆에 놀란 눈을 커다랗
게 뜨고 우두커니 서있는 유지영 선생님 이었다. 한순간 민형은 화들짝 놀
라면서 안절부절 큰소리로 외쳤다.
"서, 서, 선생님!!"
퇴근후 2층계단을 내려오던 지영이 문을 열려는 순간 눈앞에서 문이 박살
나며 파편과 함께 커다란 주먹이 쑥 들어오고 만것이다. 그리고 반쯤 열린
입구가 천천히 개방되며 그앞에서 민형의 모습이 보였다. 안절부절하여 뻘
뻘 땀을 흘리고 서있는 민형은 매우 초조한듯 보였다.
"미,민형씨...?"
지영 역시 약간은 당황스럽고 뜻밖인지라 엉거주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
다. 그런 지영의 앞에서 민형은 더욱 당혹스런 표정으로 이마에 가득한 식
은땀을 닦아 내었다. 무언가 말을 꺼내야 겠는데 할말이 아무것도 생각나
지 않는 것이다. 그때였다. 쩔쩔매던 민형의 눈에 정면에 서있는 지영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 입가에 붙어 있는 살색의 밴드를 눈치챈 민
형의 얼굴색이 시커멓게 달아 올랐다. 저것은 성우에게 따귀를 맞아 생긴
상처. 그렇다. 그때의 유지영 선생님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갑자기 변한
민형의 표정을 느낀 지영이 재빨리 한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고개를 숙였
다. 그리고 두사람 사이에서 잠시지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 저기... 선생님......"
이대로 서 있을수 많은 없다고 생각한 민형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입
을 열려는 찰나였다.
"민형씨 미안."
갑자기 이 한마디만을 남기고 그녀가 민형이 앞에서 휙 스치고 사라졌다.
그 순간 민형은 멍한 표정으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데 그 자리에 우
두커니 서 있었다. 눈앞에서 사라진 유지영 선생님의 자취를 실감하며 정
신을 차린것은 수초후 민형이 황급히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달음질쳐
가는 유지영 선생님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서,선생님 잠깐!"
민형이 외쳤으나 지영은 못들은체 하고 종종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뒤에
남은 민형은 지영은 향해 무색하게 뻗어 있는 자신의 손을 힘없이 내리며
비참한 심정에 빠졌다. 지금까지 그녀가 자신에앞에서 미소를 보이지 않았
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렇다.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녀는 항상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민형이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여자의 자존심을 건
드리는 품위없는 대사를 내뱉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해도. 그녀
를 무시해도 그녀는 항상 민형 앞에서 미소 지으며 모든 것을 받아 주었
다. 그런 편한 지영을 민형은 좋아했고 또 지금 이상황에서도 그녀가 미소
지으며 이해해 줄것이라고 생각 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알수
없는 한마디를 뒤로하고 급하게 사라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민
형은 알수 없는 착찹함과 비참함을 느꼈다.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아아... 제길!'
민형은 힘없이 발치에 있는 돌맹이를 걷어 찼다.
'어차피 그녀는 교사지.'
학원 교사라도 교사는 교사다. 민형은 자신이 그녀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바보 같은 자기 자신을 뉘우쳤다. 그녀는 친절한
것 뿐이다. 수험생인 자신에게 누나같은 아량을 배풀어 주었던 것 뿐일게
다. 하지만 오늘의 사건을 다르다. 버릇없는 꼬마라고 따귀를 맞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민형은 힘없는 걸음을 옮겼다.
'내일 학원에 가면 그녀에게 뭐라고 해야할까.'
생각만 해도 거북한 상황이 머리속에 스크롤 되며 민형은 한손으로 자신의
머리채를 뒤집어 엎었다.
'미팅 따위를 하는게 아니었는데.'
결국은 애꿎은 미팅으로 원망의 화살이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미팅
이란것도 결국은 자기의 의사가 허락을 내려 행하여 진것이 아닌가. 민형
은 모든것을 흘려버리려는 듯이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주머니에 집
어 넣고 터벅 터벅 어두운 종로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
침침한 골목의 정면에는 거대한 차도가 곧은 대로를 자랑하고 있었고 요란
한 네온사인과 여러 사람들이 바빠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문득 민
형은 자신이 걷고 있는 어두운 골목에 멈춰서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
바로 눈앞에, 불과 수십미터 앞에 놓여져 있는 도시는 너무나 화려했고 또
아름다웠다. 수많은 커플과 여러 개성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본분을 다
하며 살아가는 도시는 아름다웠다. 민형은 자신이 서 있는 골목과 그 거대
한 도시의 도로를 비교하며 알수 없는 착찹한 심정에 빠져 들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눈앞에 닥친 현실의 차이와 비슷한 느낌으로 그에게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18살......'
고교3년생이란 그런것이다. 그것이 한국이란 개발 도산국이 안고 있는 18
살 청소년들의 거대한 적. 이런 압박감과 초조함을 이곳의 18세는 누구라
도 가지고 있다. 한국이란 이런곳이다.
'제길......'
민형은 자포자기 한듯이 눈에 띄는 깡통을 걷어차며 걸음을 옮겼다. 애꿎
은 깡통을 걷어차며 어두운 골목을 걸어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민형은 문득
1년전 자신의 모습이 떠 올랐다. 1년전...... 민형은 흔히 사람들이 멀리
하는 그런 부류, 민형은 불량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아니라고"
과거를 변명하듯 혼자말로 되뇌이면서 민형은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
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음침한 골목은 어두 컴컴했다. 익숙한 느낌. 민
형은 이런 분위기에 꽤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보고 씁쓸한 생각에 잠기었
다. 유지영 선생님은 잘 돌아 가셨을까... 이런 골목을 지나 다니다니 여
자의 몸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얼마전 까지 이런곳에서
주로 어울렸던 민형 자신이 잘알고 있는 일인 것이다. 지나가는 여자들,
특히 젊고 여려 보이는 여성들은 좋은 표적이다. 간단한 협박만으로도 손
쉽게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내놓고 사라진다. 뒷감당 같은것도 필요없
다. 최고의 사냥감이란 바로 거리의 분위기와 여자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는 의례 여성의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들려오곤 했
던 것이다.
"꺄악!"
민형은 똑똑히 알고 있다.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을...... 비명을 지르는
것은 순간 뿐이다. 그 한번을 제외하고는 재빠른 동료들의 손에 입에 틀어
막힌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방을 크게 질러야......"
민형은 피식 웃으며 귓가에 들린 비명소리의 나약함에 혀를 찼다. 저렇게
짧은 비명은 거리에 울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비명을 지르면 따귀를 얻어
맞기 일수인 것이다. 비명을 지른 누군가가 분명 따귀를 얻어 맞았을 것이
라고 생각하며 민형은 걸었다.
"......"
잠시 걷던 민형은 멈추어 섰다.
"비명?"
방금 비명소리가 들렸다. 짧은 것이지만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 그 순간
민형은 이것이 자신의 상상이 아닌 현실의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
었다. 이것은 진짜다.
"설마!?"
조용한 골목을 가로 질렀던 여자는 딱 한명. 바로 유지영 선생님 뿐이다.
그렇다면 비명을 지를 여성은 한사람 뿐인 것이다.
"제길!? 선생님!!"
초조함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 민형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고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바로 앞이다. 짧은 비명
이 급하게 가로 막히긴 했지만 민형은 분명히 알수 있었다. 여성의 비명이
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들린 것이다. 이럴때 놈들이 붙잡은 여자를 끌
고가는 곳은 몇군데로 제한 되어 있다.
'이놈들!!'
민형은 이를 악물며 근처 식당가 은 골목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그런 것
은 의례 놈들의 패거리가 몰려 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버려진 공포속
에서 놈들이 사냥감을 처리하는 곳. 민형은 불안함과 초조함 속에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PART-12
"으읍! 읍!"
지영은 누군가가 자신의 허리를 깊숙히 찍어 내리는 순간 자리에 털썩 무
릅을 꿇었다. 그 익숙한 몸놀림이 유연하게 팔을 뻗어 한손으로 입을 막고
그녀를 쓰러트렸다. 점점 빛과 네온사인에서 멀어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지
영은 단발마의 두려움을 느꼈다.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려고 했으나 이미
강한 완력에 입을 틀어 막힌 후였다.
'강도?'
불현듯 공포감이 업습해 왔다. 이런 어두운 골목을 혼자 걸었다는데 깊은
절망감이 밀려왔다. 본래 지영은 이 골목길을 이용하지 않는다. 호프와 여
관이 줄비한 뒷 골목은 차도와의 거리가 짧은 지름길 이었지만 아르바이트
가 끝난후 이 길을 이용하길 꺼려하는 지영은 일부러 사거리 쪽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민형을 만난채 당황하여 자기도 이곳으로 도망
와 버리고 말았다.
'흡!'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사나이의 손바닥이 입을 누르다 못해 두볼까지 죄
어오자 지영은 아픔속에서 그게 숨을 헐떡 거렸다. 그러나 그 호흡이 부자
연 스러워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크게 요동쳤다. 그 순간 지영은 소스라치
게 놀라며 두눈을 크게 떴다.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정면에서 꽉
죄어 눌렀던 것이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것이 귀여운데......"
"으읍!?"
지영은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눈으로 눈앞에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
녀의 핸드백은 녀석들중 하나에 손에 걸려 모조리 공개되었다.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낸 한녀석이 싱겁다는 듯이 이렇게 중얼 거렸다.
"쳇 2만원이 다야? 하긴 귀티나게 생긴 계집은 아니군."
"거봐라. 이런애는 가난하다고 내가 말했잖냐"
낄낄거리면서 농담을 주고 받는 그들의 목소리가 지영의 귓가를 간지럽혔
다. 소년... 모두 소년들이었다. 10대. 기껏해야 17,18세는 되보이는 고등
학생들 같았다. 하지만 그눈은 어른의 것이었다. 무섭고... 매우 날카로워
지영을 떨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때 지영의 가슴을 움켜잡은 검은
모자를 쓴 한녀석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지영의 눈앞에 쪼그리고 앉아 두눈
을 나란히 했다.
"누나, 나 성교육좀 시켜줘"
갑자기 말을 맞친 녀석이 지영이 미쳐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셔츠를 목
까지 확 끌어 올렸다. 깜짝놀라 지영이 비명을 지르려고 했으나 목소리가
목안에서 맴돌뿐 침만 꿀꺽 넘어갔다. 게다가 몸을 누르고 있는 한 녀석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잡힌 두팔이 저려올 지경이었다.
"이야... 야들야들한데......"
브레지어를 위로 치켜올린체 가슴을 어루만지며 검은 모자의 녀석이 이렇
게 입을 열었다. 또래의 패거리는 3명인것 같았다. 핸드백을 뒤지는 녀석
과 지영을 붙잡고 있는 녀석. 머리에 금발로 염색까지 하고 있었다. 모두
들 지영의 가슴을 지켜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킬킬 거렸다. 지영의 두눈에
찡하고 눈물이 맺혔다.
"미치겠네 이 누나... 정말 섹시하다."
갑자기 검은모자를 쓴 녀석이 지영을 향해 찡긋이 윙크를 해보였다. 그와
함께 3녀석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물론 지영을 붙잡고 있는
금발머리의 소년은 지영을 붙잡은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누나 울지마. 불쌍하잖아"
검은 모자를 쓴 소년이 눈물을 흘리는 지영의 볼을 토닥거리며 가엾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리고 셋은 지영을 붙잡아 끌고 근처에 창고를 향하기
시작했다. 저안에 들어가면 끝이다.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
는다. 지영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려 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굉
장한 힘이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금발 소년의 완력은 여자인 자신으로서
는 감당할수 없을정도로 강력했다.
"우우......."
지영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울먹였다. 무섭고 두려웠다. 아무도 없는 이
런곳에서 불량배들에게 붙잡혔다는 것이 지독한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그
러나 아무런 힘도 없는 자신은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전혀없었
다.
- 덜컹
문이 닫히고 지영은 소년들에게 떠밀려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주위에
는 온통 지푸라기와 신문지 조각. 그리고 먹다남은 술병과 담배꽁초가 가
득했다. 군대군데 지저분해진 콘돔과 속옷들도 널려 있었다. 그순간 지영
은 덜컥 겁이났다.
"아아......"
지영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좁은 창
고안에서 부딪치는 것이라곤 벽뿐이었다. 그때 검은 모자를 쓴 소년이 주
머니에서 조그마한 각을 꺼내보였다. 그가 행동하기 전에 다른 녀석들이
행동하지 않는것을 보니 그가 리더인것 같았다.
"푸우--------!"
그는 주머니에서 꺼낸 각을 열어 고무로된 조그마한 물건을 하나 꺼내 입
으로 힘껏 불었다. 곧 거대하게 커진 그것이 풍선처럼 둥 떠올랐다. 불량
배의 리더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게걸스럽게 웃었다. 콘돔이었
다.
"하하 누님 기대하세요."
말을 맞치자 마자 놈은 손톱으로 부풀어 오른 콘돔을 터트려 버렸다. 펑
소리와 함께 짓이겨진 콘돔이 그의 손가락에서 늘어졌다.
"이렇게 해줄테니까."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영에게 달려 들었다. 그리고 반항하는 지영의
브레지어를 부욱 하고 뜯어 내었다.
"아악!"
지영은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 도움을 요청하려 하였으나 그 거다란 울림
은 창고안을 맴돌아 오히려 자신에게 돌아올 뿐이었다. 지영의 겁먹은 얼
굴을 즐기듯이 녀석이 지영의 얼굴을 때려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강한 충
격에 얻어맞은 지영은 머리에 멍할정도로 강한 아픔을 느꼈다. 남자에게
이렇게 세게 맞아본적은 처음이었다. 맞는것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만둬! 그만둬--------!!"
지영은 발버둥 치며 검은 모자의 소년을 자신의 위에서 때어내려고 애썼
다. 하지만 게걸스럽게 웃는 두 녀석의 얼굴과 바로 눈앞에서 흥분한체 덥
쳐드는 놈의 얼굴을 보면서 그만 바닥에 털썩 드러 돕고 말았다. 도저히
빠져 나갈수가 없었다.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더욱 강한 결박...... 지영은
절망감을 느끼며 흐느꼈다.
- 딱
또다시 강력한 충격이 지영의 볼을 강타했다. 입가에서 피가 흘러 내리고
지영은 쿵소리가 나도록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머리가 울리고 강한 고
통이 엄습해 왔다. 도저히... 도저히 빠져나갈 힘이 없는 것이다.
소년의 손이 자신의 몸을 급하게 더듬어 가는 것을 느끼며 지영은 결국 온
몸을 축 늘어뜨리고 말았다.
......................................... . . . . . . . . . . . . .
"헉! 헉!"
민형은 정신없이 근처 골목을 달렸다. 분명히 유지영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알수 있다. 그녀의 비명이었다는 것을 민형은 엄습해 오는
불안감 속에서 정신없이 골목을 내달았다.
"헉.. 헉... 응!?"
순간 민형은 골목 귀퉁이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우뚝 멈추어섰다. 기름
이 덕지덕지한 드럼통의 한 귀퉁이에 연두색의 핸드백이 버려져 있었다.
그 주위에는 흐트러진 지갑과 동전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지갑과
핸드백을 집어드는 민형의 몸이 떨렸다.
"이것은......?"
바로 유지영 선생님의 것이었던 것이다.
<< 그만둬---! >>
그순간 민형은 근처에서 희미한 여성의 비명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아주
희박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비명소리였던 것이다. 그만두라고 두번 외쳤
다. 위기에 빠져 있는 여성의 목소리.
"!!"
민형은 급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았다.
..................................................... . . . . . . .
소년은 지영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상의를 풀어 해치고 브래지어를 뜯
어낸 소년은 눈앞에 아무런 힘없는 여성이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자 마치
마치 자신의 승리인마냥 좋아하며 게걸스럽게 숨을 헐떠 꺼렸다. 소년의
손이 지영의 가슴을 짓누르고 팬티속으로까지 범위를 넓혔을때 지영은 움
찔하며 다리를 오므렸다.
"아......"
갑자기 주루룩 눈물이 흘러 내렸다. 소리를 지른다는 것은 쓸데없이 매
를 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니 그보다 그들이 어떠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비명소리를 삼켜 버렸다.
이런 외진 곳까지 사람이 올리도 없거니와 들릴리가 만무하다. 놈들은
지영의 움찔거리는 모습을 내려다 보며 즐기고 있었다. 그때 놈의 손가락
이 그녀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었다.
"아!"
지영은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소년을 떠밀었다. 자기도 모르게 행동
한 방어 본능이었다. 무방비 상태로 자리에 엉덩방아를 찍은 검은 모자의
소년은 꽤 약이 오른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날 놀렸겠다......"
그 모습을 올려다 보며 지영은 자신이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이 트집을 잡을만한 짓을 제공한 것이다. 갑자기 녀석의 구두발이 사
정없이 지영의 미간을 강타했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반대쪽으로 나가떨
어졌다.
"아악!"
"이 계집애...... 고분고분하기에 예뻐해 주려고 했더니만......"
놈이 희롱당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두 눈썹을 실룩 거렸다. 지영
은 욱신거리는 머리를 한손으로 어루만지며 다른 한손으로는 세어진 셔
츠로 가슴을 가렸다. 그때였다. 눈앞에 검은 모자 소년이 옆에 있는 각
목을 주워 들었던 것이다. 순간 지영의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TV에서
나 보아왔던 무서운 일들이 머리속에 영화처럼 스크롤 되었다.
"두 팔을 부러뜨려 주지......"
"요,용서해 주세요 제발......"
지영은 겁먹은 얼굴로 울먹이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무서웠다. 너무도
무섭고 떨렸다. 저 애들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공포심이
업습해 왔다. 충분히 그럴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가리키는
오후 크라스의 순박하고 학구적인 학원생들을 떠올렸다. 그들도 모두 저
불량배 들과 같은 나이일진데......
'민형씨......'
순간 지영은 민형을 떠올렸다. 고등학생이면서 유일하게 나이트 강의를 받
는 민형. 그 침착하고 다소 냉소적인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의 표정
은 지금 눈앞에 그들과는 달랐으나 그 풍겨나는 제취가 한순간 동일하게
느껴졌다.
"어디를 먼저 부러뜨려 줄까."
"그,그만둬요...그만둬 제발...... "
뒷걸음 치는 지영에게 서서히 다가가며 놈이 입을 열었다. 두려워......
너무도 두려워...... 지영은 벌벌 떨며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디찬 벽. 그리고 소년으 천천히 각목을 치
켜들었다.
'민형씨.....'
가슴이 떨려온다. 지영은 두려움 속에서 민형의 이름을 외쳤다.
'살려주세요... 아아'
두려움 속에서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단한사람. 단 한사람 민
형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그녀는 두눈을 질끈 감으면서 가슴속으로
빌었다.
<< 도와줘요 민형씨 >>
- 콰직
순간 큰소리와 함께 창고의 나무문이 푹 파였다. 놀란 세녀석과 지영의
시선이 한번에 나무문으로 모여지고 그 깨어져 나간 문이 계속해서 누군
가에 의해 안쪽으로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 콰직
- 콰지직!!
3녀석은 놀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부서져 나가는 나무문을 바라 보았다.
두께 5센티의 나무문을 깨부시고 있다는건가?
- 콰과가가가각!!
그와함께 나무문이 통채로 박살나며 창고안으로 날아 들었다.
"이,이건!?"
그리고 경계채세를 갖추는 불량배들의 눈앞에 그가 보였다. 하얀 입김과
함께 가로수를 받으며 서있는 그의 모습. 그것은 사신 그자체였다.
"이...... 놈들. "
천천히 입을 여는 정민형의 목소리는 침착하지만 떨리고 있었다. 하얀
임깁과 함께 입구앞에 서있는 남자. 정민형..... 지영은 너무도 놀란 표
정으로 혼자말로 이렇게 되뇌었다.
"민형...... 씨?"
그는 바로 정민형 이었다.
PART-13
그가 나타났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소년. 5센티 두께의
나무문을 박살내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살기어린 얼굴의 소년. 그는 바
로 정민형이었다. 자신의 제자 정민형. 고교 3학년 나이 18세. 이강실업
계 고교 3학년. 그밖에 사항은 자세히 모른다. 지영은 오늘 오후 그의 친
구에게 결례를 범했고 그때문에 그의 얼굴을 볼수 없어 자기도 모르게 도
망쳐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찾아왔다. 바로 자신의 앞에......
그렇게 미안했는데...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견딜수 없었는데... 그러나
너무나 반가웠다.
"민형씨......"
갑자기 지영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았다. 민형의 등장과 함께
조금이나마 희망과 안도감을 찾은 순간 가슴이 붇받쳐 오르고 견딜수 없
게 되어버린 지영이 눈물을 터트리고 만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공포감은
가시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앞에는 3명의 학생이 서있다. 모두 민형과 비
슷한 덩치. 아니 두명은 민형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민형까지 당하고 말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혀듯 지영의 머리속을 스쳤다.
"선생님!"
민형은 황급히 울고 있는 지영에게 가기 위해 3명의 건달들을 무시하며
그들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그순간 민형위 뒤통수가 번쩍 튀겼다.
"꺄악!!"
지영은 두손으로 입을 막고 비명을 질렀다. 눈앞에서 두터운 각목을 든
금발머리의 소년이 그대로 각목으로 민형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던 것이
다. 앞으로 꼬꾸라지는 민형을 향해 그는 검은 모자를 뒤로 돌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건방진게... 어디서 원맨쇼야."
"민형씨!! 민형씨----!!"
지영은 놀라고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면서 민형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민형씨가 죽는다. 민형
씨가 죽을것 같아.
"그만둬요! 그 사람은 내 제자예요!"
"시끄러! 얌전히 있어!"
지영이 사정하듯 외쳤으나 금발의 소년은 냉소를 띄어보이며 지영을 무
시했다. 거기다 지영은 커다란 다른 녀석에게 두팔을 붙잡혀 꼼짝도 할수
없었다.
"제자면 제자답게 공부나 할일이지 어딜 어른들 하는일에 끼어들어. 안
그래?"
"하핫"
검은 모자를 쓴 불량배의 리더와 다른 한명이 낄낄 거리며 민형을 비웃었
다.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 이 자식들!! 날 건드렸겠다------------!!!!"
"뭐야!?"
그 순간 쓰러진줄 알았던 민형이 엄청난 기합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민형의 주먹이 엄청난 속도로 금발머리를 한 리더의 얼
굴을 날려버렸다.
"끄아악!!"
그순간 다른 두명과 유지영은 그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몇초간 움직임을
정지했다. 어마어마한 위력... 민형에게 얻어맞은 금발머리 리더는 그대로
공중으로 붕떠서 창고 바깥으로 나가 떨어 Ф던 것이다. 그리고 민형이 피
가 흐르는 머리를 왼손으로 집어보이며 다른 한녀석을 향해 매서운 눈매
를 번쩍였다.
"이, 이 짜식이!!"
다급해진 다른 한명이 그대로 민형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민형은
그 주먹에 그대로 머리를 들이 박았다.
"악!!"
주먹이 깨지는 소리가 울리고 놈이 한손으로 주먹을 움켜쥐며 지명을 질
렀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또다시 민형의 펀치가 놈의 복부를 강타했다.
"우웩!!!"
엄청난 파워에 얻어맞은 놈이 배를 움켜 잡고 배속에 있는 것을 모조리
토해내었다. 지영은 너무 놀란 나머지 민형이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
지도 실감하지 못한체 얼이 나간 표정으로 덜덜덜 떨고 있었다. 그때 두
녀석을 순식간에 해치워 버린 민형이 지영을 붙잡고 있는 덩치큰 녀석에
게 다가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놔."
민형이 명령했으나 놈은 주춤거리며 ㉫불리 지영의 팔을 놓지 못했다.
"놔! 이 개새끼야!!"
엄청난 주먹. 한순간 지영의 머리가 휭 하고 바람에 날렸다. 그리고...
지영의 팔을 붙잡고 있는 덩치큰 녀석이 벽에 부딪치며 나가 떨어져 정
신을 잃었다. 무시무시한 파워... 지영은 민형이 약간 세다는 것을 알
고는 있었지만 이정도로 강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정민형은 순신간에 건달 3명을 해치우고 바닥에 침을 뱉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민형이 순식간에 걱정스런 표정으로 돌아와 주저 앉아 있는 지영의 어
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지영은 잠시동안 멍해있던 얼굴로 민형을 바라
보다가 천천히 눈동자를 민형의 눈에 고정시켰다. 민형의 피가 흐르는
얼굴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이 자신을 향해 비추어지고 있었다.
"민형씨......"
지영은 그제서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 민형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무
서웠다. 너무도 무서워서 꼼짝도 할수 없었다. 지영은 그대로 민형의 옷
깃을 있는 힘을 다해 꽉 쥐었다.
"선생님 이제 다 끝났어요. 놀라셨죠? 이놈들 다 경찰서에 넘겨버릴께
요."
민형이 지영을 향해 멋적은 듯이 이렇게 입을 열었다. 민형은 자신이 지
영을 구해준것 보다 조금전 지영이 자신에게서 도망치듯 떠나가 버린것이
더 신경 쓰였던 것이다.
"민형씨!"
그순간 지영이 민형에 가슴에 확 안기며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의 긴장이 모두 풀리고 자신이 민형에 품에 안겨 있다는 안도감에 온몸이
저릴 정도로 떨리고 저렸다.
"엉엉엉"
"서,선생님 진정하세요."
지영이 마구 소리를 내어 울음을 터트리자 민형은 놀라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며 지영의 등을 다독가렸다.
"고,고마워요 민형씨. 고마워요."
지영은 정신없이 울며 민형에 셔츠에 얼굴을 세게 묻었다. 민형의 셔츠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고 축축하게 젖어 올랐으나 민형은 멋적은 듯이 한
숨을 쉬며 유지영 선생님을 가볍게 다독거려 주었다.
"선생님 이제 다 끝났어요."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유지영 선생님의 몸은 따듯하고 생각보다 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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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은 지영이 완전히 진정할때 까지 같이 있어 주었다. 근처 파출소에
정신을 잃은 3명을 넘기고 지영과 민형은 잠시 진술조사를 받은후 경찰
서에서 나왔다. 바깥은 이미 11시가 넘은 늦은 밤이었다. 지영이 거리를
혼자 걷는것을 무서워 했기 때문에 민형은 지영을 집까지 바래다 주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그녀는 민형의 옷깃을 잡고 겁먹은 강아지 처럼 졸
졸 따라 다녔다. 그녀가 너무 큰 충격을 받은것 같아 민형은 심히 안쓰러
웠으나 자신이 어찌해줄 도리는 없었다. 기껏해야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
주는 수밖에는......
"선생님. 다음역이 홍제예요"
민형이 아직도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지영을 제촉하여 홍제역에서 내렸
다. 그녀는 옷이 모두 쓺기고 여기저기 지저분해져 있었기 때문에 경찰서
에서 가운을 하나 주었다. 가운을 걸치고 초최한 표정으로 민형의 뒤를
따르는 그녀의 얼굴을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저, 여기서 그만 돌아갈까요."
그녀의 집이 가까워지자 민형은 자리에 멈추어서 지영에게 물었다. 왠지
집에까지 따라가게 되면 실례가 될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영은 민
형의 옷깃을 꽉 붙잡은체 놓지 않고 고개를 흔들었다.
"우, 우리집... 아직 멀어요."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같은 표정으로 민형에게 입을 열었
다. 민형은 그런 지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
"그,그럼 가죠! 제가 바래다 드릴께요"
민형이 기운내서 앞장서자 지영은 또다시 그런 민형을 졸졸 따라 갔다.
"이쪽으로 갈까요?"
지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길 맞아요?"
지영은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게속해서 높은 도로
를 걸어 올라왔다. 슬슬 가로등도 사라지고 근처에는 헐어버린 판자촌이
나 기울어지는 저택등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민형은 왠지 기분이 이
상해져 지영에게 물었다.
"아직 더 올라가나요?"
민형이 제촉하듯 묻자 지영은 조용히 대답했다.
"저 위인데요."
지영이 손가락으로 전신주 앞에 있는 조그마한 가옥을 가리켰다. 그녀는
전신주에 다다르자 민형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파란문이 우리 집이예요. 고마워요 민형씨 바래다 줘서."
"아... 예"
민형은 이렇게 말하며 눈앞에 놓여 있는 조그마한 가옥을 바라 보았다.
기껏해야 금방이라도 허물어질것 같은 낡은 집이었다.
"나 여기서 세 살아요. 오빠하고"
"아,네... 네!?"
민형은 건성으로 대답하다가 깜짝놀로 큰소리로 물었다. 민형은 얼른 손
으로 입을 막으며 붉어진 얼굴을 가다듬었다. 유지영 선생님이 이런곳에
서 살고 있었다니 의외였다. 게다가 오빠하고라니...
"다,단둘이 사신다는 말인가요?"
"그러니까 내가 대학생때부터 이곳에서 살았어요. 저기... 지금 돌아갈
건가요?"
지영이 발그래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물었다. 한순간 민형
에 얼굴로 피가 한꺼번에 치솟았다.
"아! 네! 아, 아니요! 그게!? 그럴생각이긴 한데? 아,아니 아니!!저!"
지영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민형이 헐레벌떡 횡설수설을 시작했다. 지
영은 멋적은 듯이 민형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방이... 좀 좁은데. 2개예요. 벌써 12시가 넘어서 차가 다 끊겼을텐데
자고 가세요."
"아,아뇨!자고갈수있는게아니라!그러니까그것이!그래도되요!?"
여전히 횡성수설 어쩔줄 모르는 민형을 향해 지영이 풋 하고 가볍게 웃으
며 한손으로 입을 가렸나.
"집이 경기도잖아요. 내일은 일요일이니까요."
"네."
민형은 그대로 웃으며 '네' 라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피가 머리위로
쏠리고 엄청나게 어지러웠으나 꿈참으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여기서 잔다
고? 유지영 선생님 댁에서......? 민형은 이것이 꿈이 아닌가 생각했
다.
PART-14
"들어오세요."
약간 새침한 표정으로 집안으로 안내하는 유지영 선생님을 따라 민형은 마
치 금방이라고 허물어져 버릴것 같은 회색의 담벼락을 건너들어 갔다. 대
문이라고 해봐야 고장나 있었기 때문에 잠글수도 없게 되어있어 기껏해야
벽의 역할을 해줄 뿐이었다. 간신히 사람 몇명이 들어설수 있는 마당 같지
도 않은 마당에 들어선 유지영 선생님은 지갑에서 열쇠를 꺼내 잠겨있는
방문에 자물쇠를 열었다.
'에고......'
집안을 들여다본 정민형은 심히 쇼크아닌 쇼크를 받았다. 설마 선생님이
이런 곳에서 살고 있을 줄은 산상도 하지 못햇다. 정말 기껏해야 2명정
도 누울수 있는 좁은 방에다 옆 칸막이를 지나면 정망 정말 너무 아 다
리를 오무리고 간신히 옆으로 한명 누울수 있을 정도의 공간. 이렇게 두
개의 공간이 존재했다. 게다가 부엌은 방문 바로 앞에 연결되어 있었다.
화장실은 물론 바깥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분명 구세대적 유물로...
...
'샤워실도 없고. 화장실도 바깥에 있는데다가 부엌은 어두침침해서 전구
로 밝혀 놓았잖아. 참혹하군......'
민형는 태어나서 이런 분위기의 집을 처음 봤다. 갑자기 민형은 유지영 선
생님이 너무너무 기특하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럴 군번은 아니지만...
...
"자 어서 들어오세요 민형씨. 물을 데울테니 일단 씻으실래요?"
"아, 네 네."
민형이 고개를 끄덕이고 약간 낮아 머리가 닿을락 말락 하는 부엌을 지나
방안으로 들어갔다. 지영이 보일러를 틀고 물을 데우는 동안 민형은 멍
하니 좁은 방안에 앉아서 방의 모양새를 둘러보고 있었다. 프라스틱으로
만든 장이하나. 옷걸이에 몇가지의 옷과 이불이 쌓여 있었고 구석에 화장
대 비슷한 작은 가구 하나와 TV가 올려져 있었다. TV는 14인치의 최하급
인걸로 생각 되었다. 흑백이 아니라서 다행...... 아니 설마 흑백 일지
도!
'이곳에서 오빠랑 단둘이 산다는건가... 잠은 어디서 자지?'
민형은 아무리 생각해도 잠잘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민형이 앉아 있
는 방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장정 어른 한명이
누우면 꽉찰 정도의 크기였다. 게다가 또 하나의 방이라고 하는 벽저쪽의
공간은 솔직히 방이라기 보다는 옷장에 가까웠다. 사람 한명이 쭈그리고
누으면 간신히 들어갈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방이 2개란 건가......'
민형은 흘끔 건너편에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안에는 상 하나와 꽤 많은
양의 책들이 높게 쌓여있었고 얇은 이불과 배게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가
그 공간에서 자는 것은 확실한것 같았다.
'방은 방이군. 하지만 정말 좁구나. 이거야 하나의 공간을 둘로 나누었다
는게 맞지. 방 두개라고 할수 있냐.'
민형은 사방이 꽉막힌 감옥같은 생각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추렸
다. 그 ㎖ 부엌에서 민형을 부르는 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형씨 물을 다 데웠으니 나와서 쓿으세요~!"
"아, 네!"
민형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자 지영은 물통에 가득 더운
물을 담아놓고 민형을 기다리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어느새 머리
를 고무줄로 땋아 머리위에 틀어 매놓고 있었다.
"여기 수도를 틀면 찬물이 나오니까 더운물과 섞어서 쓰세요. 그럼 전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올께요."
"아, 예예......"
민형은 얼떨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틀어올린 유지영 선생님
의 모습이 너무나 어른스럽고 차분하게 느껴져 조금 놀랬던 것이다. 지금
까지는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 였는데 머리를 틀어올린 것만으로 대단
히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왠지 청순하고... 자극적으로 말하면 섹시한...
... 요, 요염까지는 아니고...
'역시 나보다 6살이나 많은 것인가......'
민형은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더운물을 대야에 옮겨 담았다. 더운물에
손을 담그니 따스한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들어 기분이 매우 좋았다. 민형
은 오늘 저녁 심하게 몸을 놀렸기 때문에 사실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세
수를 한 민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수건을 찾았으나 수건은 보이지 않았
다.
"저, 선생님 수건이...?"
민형이 두리번 거리며 수건을 찾을 때였다. 방문이 드르륵 열리고 가벼운
셔츠로 갈아입은 지영이 한손에 든 수건을 민형에게 쓱 내밀며 웃었다.
"민형씨 여기 수건."
"아, 예, 고맙습니다."
민형은 수건을 받아들어 얼굴을 닦으며 붉어진 자신의 표정을 감추었다.
그녀가 몸에 걸친 통큰 흰 셔츠는 정말 그녀의 이미지에 잘 어울렸다. 항
상 푸르고 있던 머리를 틀어 올려서 그런지 보통 때보다 훨씬 성숙하고 어
른스럽게 느껴져 민형은 갑자기 지영을 대하는데 매우 부담이 가기 시작했
다. 그가 발까지 마저 씻고 문지방에 오르려고 할때 지영이 막 방문을 열
고 부엌으로 나왔다. 그녀는 씻는 것을 마친 민형을 알아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잠깐 들어가 앉아 계세요. 저 목욕 금방하고 저녁만들어 드릴께요."
"아,네."
민형은 얼떨결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드르
륵 닫았다. 목욕이라니... 민형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목욕이라면
분명히 부엌에서 하게 되는 것일텐데 샤워기도 없고 욕탕도 없으니 춥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후 좌악 좌악 물을 끼얹는 소리가 나고
문밖에서 모락 모락 김이 솟아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민형은 자신의 얼
굴을 한손으로 꽈악 움켜 잡으며 가까스로 숨을 몰아 쉬었다.
'무,무슨 생각하는 거야 정민형! 무슨......!!'
자꾸만 유지영 선생님의 목욕하는 모습이 떠오르고 그녀의 나신이 머리속
에 비추어져 민형은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오늘 심하게 당했기 때문에 온
몸이 지저분해졌을 것이다. 목욕을 하지 않고는 잠자리에 들기 거북했을것
이 틀림없다. 하지만 목욕을 하고 있는 유지영 선생님과 민형의 거리는 불
과 1M안팍. 신체 건강한 18세 사내 아이의 정신이 견뎌내기는 힘든 것이었
다. 하지만 민형은 불굴의 의지로 꿎꿎하게 견뎌내었다. 장하다.
"아 시원하다. 민형씨 잠깐만 기다려요 편한 옷을 가져다 줄께요."
갑자기 목욕을 끝마친 유지영 선생님이 방문을 드르륵 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순간 민형은 깜짝놀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그녀는 수
건만으로 나신을 가린체 방안을 들어왔던 것이다. 어쩔줄 모르며 해메이는
정민형을 지나 그녀가 아직 물기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새하얀 다리로 총
총히 건너편 방(공간?)으로 건너갔다. 민형은 멍한 표정으로 뒤에남은 유
지영 선생님의 잔상을 으며 시뻘개진 얼굴로 연신 숨을 몰아 쉬었다.
'겨,견디기가 매우 힘들군......'
건너 편 공간에서 부스럭 부스럭 옷을 갈아 입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후
긴 치마와 얇은 셔츠로 갈아입은 지영이 손에 비슷한 셔츠와 츄리닝 바지
하나를 들고 민형의 앞에 나타났다. 속이 깊게 파인 얇은 흰색의 셔츠..
.... 민형은 그녀의 매끄러운 목과 가슴 라인을 힐끔보고 온몸이 터질
듯이 달아 올랐다.
"저, 이것은 오빠 바지와 셔츠인데요. 맞을지 모르겠어요. 아쉬운 대로 입
고 있으세요. 미안해요."
그녀가 미안한듯이 한손을 살짝 들어 손바닥을 편체로 코에 가져가 대었
다.
"고,고맙습니다."
민형은 여전히 횡설수설하는 표정으로 옷을 받아들고 그 자리에서 지저분
해진 자신의 셔츠를 벗으려고 했다. 그순간 유지영이 정민형의 어깨를 툭
툭 치며 웃었다.
"민형씨. 여기서 갈아 입을 꺼예요? 내가 다 볼텐데?"
"아,아, 앗!?!? 네!? 아, 아니요!!"
갑자기 멍해있던 민형이 화들작 놀라며 빨개진 얼굴로 건너방으로 뛰어 들
어갔다. 그런 민형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지영은 풋 하고 가볍게 웃음 지
었다.
" 은방에 둘이만 있으려니까 좀 불편하겠지만 익숙해지면 아늑하고 나쁘
지 않을거예요. 누추한곳에 데려와서 미안하네요."
지영은 내심 쑥쓰러운듯 건너칸으로 넘어간 민형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
다. 이내 벽 뒤에서 민형의 다급한 듯한 목소리가 급히 대꾸했다.
"아,아니예요! 집이 참 좋은데요! 저야 말로 한밤중에 들르게 되어서 죄
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생각은 마세요"
민형의 안절부절 못하는 대답을 들으며 지영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정민
형이란 학생을 처음 봤을때는 매우 직선적이고 항상 긴장하고 있었기 때
문에 무서운 사람인줄 알았지만 그와 가깝게 지내면서 부터 민형의 상냥
한 마음을 느낄수 있었던 지영이었다.
"민형씨......"
문득 지영은 얼굴을 붉히며 건너칸에 민형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민형은
막 바지를 입고 허리춤에 끊을 매며 지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절대 잊지 못할거예요... 사실 난 너무 너무 무서
워서 죽는줄만 알았어요. 민형씨 정말 고마워요."
"......"
민형은 벽뒤에서 들려오는 유지영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붉어진
얼굴로 아무말도 않고 있다가 이내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선생님. 저야말로 제 친구녀석의 무례한 행동을 사과 드려야 하
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지영은 건너칸에서 들려오는 민형의 대답을 들으며 두손으로 가슴을 살며
시 움켜 잡았다. 상냥한 민형씨... 지영은 그대로 잠시동안 무릅을 꿇고
앉아 있다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참 민형씨. 배고프지 않아요? 지금 밥을 할수는 없지만 라면이 있어요.
라면 어때요?"
"아 좋지요!"
지영의 의견에 동조하며 민형이 벽뒤에서 불쑥 튀어 나왔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자신이 쑥쓰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는 민형 앞에서 지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라면 끓일테니까 민형씨는 집에 전화하세요. 부모님이 걱정하
고 계실테니까요."
"아, 네."
민형은 주방으로 나가는 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부러 알았다는 듯이
히죽히죽 웃어 보였다. 주방으로 나간 지영이 가스 레인지를 켜고 남비에
물을 데우는 동안 민형은 정신을 차리고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갑작스럽게 찾아오게 된 유지영 선생님 댁... 민형은 단 몇분이 시간이 수
십시간이 흘러간것 처럼 느껴졌다.
"아!?"
그순간 긴장이 풀리고 정신이 번 샬 뜬 민형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
다. 지금껏 당황하여 너무나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다 전화를 해서......!?"
민형은 화장대 위에 놓여있는 검은색의 전화기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식은
땀을 흘렸다.
"뭐라고 설명을 한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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