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기운때문인지 그녀의 몸은 뜨거웠다. 아니, 내 몸이 더 뜨거울지도 몰랐다. 그녀의 가슴 위에 얹혀진 내 손은 말 그대로 그냥 얹혀져있었다. 손가락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다만, 지금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듯한 내 손의 움직임은 내 의지가 아닌, 내 손 위에 포개어진 그녀의 손에 의한 것이였다.
"지우야... 오늘만... 내 애인... 되줄래...? 오늘만... 나... 네 여자가 되면 안될까...?"
그 말을 내뱉은 그녀의 입에선 뜨거운 입김이 내 뺨을 때리고 있었다. 뭔가를 갈구하는듯하는 그녀의 입술엔 이미 립스틱이 지워져있었지만 오늘따라 그녀의 입술은 유난히 빨갛게 보였다. 내가 봤던 그 어느 여자보다도...
애인... 애인이 되어달라는 그녀의 말... 그녀가 그에게 원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내 여자가 되겠다는말... 인신매매도 아니고 어떻게 내가 이 여자를 소유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내꺼, 너꺼 하는 것은 물건에게나 하는 말이다. 과거에 사람을 노예취급하던 시절에는 그들에게 소유의 개념이 적용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과는 다르다. 지금은 21세기,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고, 그렇기에 자유가 있다.
간혹 드라마나 아니면 친구들의 연애스토리를 보면 난 내꺼야~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드라마이기때문에,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줌마... 아니, 은주는 벌써 나이가 40에다가 명철이라는 아들까지 있는 여인이다. 그런 여자가 오늘 하루만 내 여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부적절해보였다. 하지만 이 부적절한 상황속에서 내 심장은 왜이렇게 두근거리는 것일까. 나는 도대체 이 상황속에서 뭘 상상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화끈거리는 그 감촉을 애써 이겨내며 그녀를 부축한채 그녀를 내 침대에 눕혔다. 눕히기 전까지 그녀의 가슴에 접착제가 발라진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던 내 손이 드디어 그녀의 속박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더욱 강력한 속박이 나를 구속하려고했다. 몸을 일으키려던 내 몸을 그녀가 끌어안은 것이였다. 도대체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그녀의 셔츠의 윗단추 4개는 풀린채 그녀의 브레지어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었다. 엄마처럼 우유빛깔이였지만 같은 색임에도 그녀의 유방은 왠지모르게 엄마와는 달랐다.
"하아... 하아... 지우야... 응...?"
나는 아무런 짓도 안했건만 그녀는 그녀 스스로 침대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리고 점점 더 깊어져가는 그녀의 뜨거운 한숨... 그녀는 나에게 도대체 뭘 원하는걸까. 아니, 그녀가 원하는게 뭔지 말하지 않아도 난 내가 뭘 해야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러기 싫었다. 난 그놈이 아니다. 다른 남자들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친놈들과 나는 다르다. 그들과는... 그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내 입술은 점점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까워질수록 그녀가 내뱉는 숨이 내 코를 간지럽혔다. 술냄새가 섞인 그 향기속에서 나는 술냄새가 아닌 강렬한 뭔가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순간 나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누나, 취했어요... 그만 주무세요. 알겠죠...?"
"으응... 치..."
앙탈을 부리는 그녀의 모습... 그녀의 모습은 40먹은 여자가 아닌, 마치 4살짜리 아이같았다. 어릴때 다른 친구의 집에 갔을때 귀여워서 머리카락을 만져주면 행복한 얼굴로 잠들곤 했던 그런 아이의 모습... 지금 그녀의 모습은 그때의 그 아이의 모습과 같았다. 나는 그래서 다른 행동을 하는 대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려주었다. 술기운때문인지 뭔가 인상을 찡그리곤했던 그녀의 얼굴엔 곧 평온함이 찾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안긴채 계속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져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내 품속에서 행복한 꿈나라로 떠난듯한 표정을 지었다.
'휴... 큰일날뻔했다...'
혹여라도 그녀가 깰까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며 나는 천천히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술기운과 함께 극도의 피곤함이 찾아오는것 같았지만 그냥 이대로 잠들 수 없었다. 그녀와 벌려놓은 술판을 정리해야만 했다. 나중에 엄마가 들어와서 나에게 술을 마셨냐며 추궁할 것이 두려웠던것은 아니였다.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 날 추궁한다는 말인가. 오히려 나는 은주... 아줌마를 보호하고 싶었다. 엄마가 돌아와서 그녀에게 왜 나와 술을 마셨냐고, 정리도 안하고 잔거냐고 따지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줌마를 보호할 나이는 아니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문득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내 여자가 되겠다... 오늘만 내 애인이 되겠다... 그 말들... 그게 남녀간의 관계에서, 연인들의 관계에서는 평범하게 내뱉는 그런 말들일까. 그렇다면... 엄마도 다른 남자에게, 아니... 명철이에게 그런 말들을 하고 있을까. 엄마는 명철이의 것일까? 그렇다면 왜 엄마는 하필이면 명철이의 여자가 되고 싶은걸까... 그게 바로 내가 모르는, 은주에게서 잠깐 봤던, 여자로써의 엄마의 모습인걸까...
얼추 뒷정리를 끝내고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불을 내팽겨치고 잠든 은주를 보며 나는 다시 그녀의 몸을 이불로 덮어주었다.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장롱에서 혹시나 해서 마련해뒀던 이불을 꺼내 바닥에 깔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녀의 옆에서 잘 수는 없었다. 어릴때는 몇번 그녀의 옆에서, 그리고 엄마의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잠들곤 했었던것 같지만 지금은 아니였다. 나는 더이상 아이가 아니였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녀들에게 나는 아직도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녀들보다 키가 커도, 아무리 밖에서 이제 다컸네~ 같은 소리를 들어도 나는 여전히 그녀들에게 아이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아이일것이 분명한 나에게 왜 은주는 자신의 애인이 되어달라고 했을까. 그녀에게만은 난 아이가 아닌 남자인걸까? 엄마에게는 아이지만 그녀에게는 남자인걸까? 그래서 아들인 나는 엄마에게는 아이이고, 내 친구인 명철이는 남자인걸까.
모든게 뒤바뀐것 같았다. 그녀에게 아이일것 같은 나는 남자가 된 것 같았고, 성인인 그녀는 내 앞에서 아이같은 모습을 보였다. 술때문인걸까? 외로워서? 아니면 세상 남자들의 말처럼 남자가 그리워서?
지금쯤 엄마는 명철이에게 엄마의 표정이 아닌, 아이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이같은 얼굴로 미소를 지은채 잠든 은주처럼, 명철이에게 아이같은 미소를 지으며 잠들어있을까...? 아니, 그건 인정할 수 없다. 엄마와 은주는 다르다. 적어도 은주아줌마가 내게 보였던 표정들은 진지했다. 짐승같은 욕망을 갈구하는것이 아닌... 그런 느낌이였다.
아니, 이것도 말이 안된다. 은주아줌마가 짓는 그런 표정은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을 갈구하는 것이고, 엄마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더러운 창녀들처럼 육체적인 쾌락을 갈구하는 그런 것이라는 논리는 마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의 마인드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은주는 순결하지만 엄마는 아니다.
모르겠다. 일단은 자고, 나머지는 그 다음 생각해야겠다. 조금 더 엄마에 대해 알아야겠다. 안다고 해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엄마를 알게 된 후에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지우야~~ 일어나. 학교가야지."
날 깨우는 소리에 나는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그 소리가 평소에 들리던 그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에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바라보고있던 나에게 은주아줌마가 문을 열고 윙크를 하더니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을 했다.
'아... 맞다... 어제 아줌마랑 술마셨지...'
전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건만 어제 술을 마셨던 것을 떠올리자 머리가 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머리도 헝클어진것 같았다. 바닥에서 자던 나는 몸을 일으키며 내가 누웠던 이불에 원래는 침대에 있어야 할 베개가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어이구... 정말 아줌마 잠버릇이 심하네. 자면서 베개까지 떨구고...'
베개를 침대 위로 올려놓은 나는 베개에 이미 깊게 배인 그녀의 향기가 신경쓰였다. 하지만 어차피 금방 날아갈 것이라 생각하며 대수롭게 생각하진 않았다.
언제 돌아왔는지 엄마는 아줌마와 함께 밥을 하고 있었다. 숙취라고는 전혀 느끼지 않는지 싱글벙글 웃고있었단 아줌마와 달리 엄마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제 명철이를 만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신경쓰이긴 했지만 어차피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화를 내야 하는건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아줌마도 있고 해서 욕실에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엄마와 단 둘이 살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볼 일도 없기에 이런 식으로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들어간채 샤워를 하는 것이 익숙치 않았다. 가족이기 때문에 알몸을 보여도 부끄러울것이 없었다. 내가 엄마의 알몸을 보고 흥분한다면, 그것은 아들이 아니라 그저 짐승에 불과하다. 반대로 엄마도 내 알몸을 보면서 이상한 상상을 한다면, 그건 엄마가 아니라 발정난 암캐에 불과하다. 아니, 암캐도 자기 아들과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암캐에 대한 모독이다.
하지만 엄마는 왜 자신의 아들 또래인 명철의 품에 안기는 것일까.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나와 동갑이다. 엄마가 느끼기에 명철은 아들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들과 동갑이지만 아들은 아니라는, 제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엄마가 인식하고 있는 나와 명철의 존재의 차이는 그런 것일까. 나와 명철이의 차이는 몸을 섞을 수 있냐 없냐로 드러나는 것일까...
대충 머리를 말리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평소처럼 엄마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아줌마가 내 옆에 앉았다. 엄마는 고개를 들고 있지 않았다. 분명 어제 무슨 일이 생긴것이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내 옆에 앉아 다정하게 나에게 반찬을 챙겨주는 아줌마의 행동을 나무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시당초에 지는...
"언니! 어제 술을 얼마나 마신거야? 그리고... 지우랑 같이 마신거야?"
"응~~ 술친구도 없고 해서. 호호호..."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이 언니... 지우 아직 미성년자라구."
"뭐 어때~~ 그리고 어제 보니까 지우 다 컸던데~ 장가보내도 되겠다. 얘~"
"무... 뭐...?"
"으휴... 농담이야 농담. 풋... 아들데리고 술 한번 마신거기지고 엄청 뭐라그러네. 누가보면 내가 니 아들 잡아먹은줄 알겠다?"
"..... 그리고 그... 아침에 그 꼴이 뭐야 그게..."
"응? 뭐오~? 어떤꼴?"
"왜 언니가 다 큰 남자애 옆에서 옷을 다 벗구 자구있냐고!"
엄마는 식탁에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줌마는 살짝 당황한듯한 눈치였다. 어이가 없었다. 애시당초애 아줌마가 나와 술을 마시게 된 것이 누구탓인데...
"엄마! 왜 아줌마한테 그래요?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걸 아줌마한테 화풀이해도 되는거에요?"
"뭐...?"
"아... 진짜... 짜증나..."
나는 밥공기에 남아있던 밥알 몇개를 급하게 쑤셔넣고 양치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엄마는 울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마에게 화를 낸 것은 저번에 핸드폰가게에서가 처음이였고, 남들 앞에서 이렇게 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아줌마가 보고 있는 앞에서 내가 화를 낸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엄마는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그 눈물때문에 나는 더 화가 났다. 엄마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지우야. 아무리 그래도 엄마한테 그렇게 화를 내면 안되지..."
"후... 몰라요..."
"호호... 엄마 많이 속상하겠다."
"....."
학교를 가기 위해 나는 집에서 나왔고, 아줌마도 더이상 집에 있기 불편했는지 내가 나가는 시간에 맞춰서 함께 문 밖으로 나왔다.
분명 아줌마와 내 관계는 친구의 엄마, 아들의 친구의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건만 아줌마는 마치 나를 아들인것처럼 내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다. 오늘의 아줌마의 얼굴은 어제 술에 취해 나에게 애인이 되달라고 했었던 그 얼굴이 아닌, 엄마같은 얼굴이였다. 나는 어쩌면 지금의 아줌마의 얼굴이 진짜 엄마다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 안녕하세요."
"응... 안녕... 근데 거긴 누구...?"
"누구니 지우야?"
학교를 가던중 앞에 서있었던 도덕선생, 지윤을 발견한 나는 인사를 했다. 지윤은 무뚝뚝하게 내 인사를 받아주며 나와 팔짱을 끼고 있던 은주아줌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우리는 엄마와 아들처럼 보이겠지만, 그녀는 아줌마가 내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옆집사람이니까.
그녀들은 한동안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 침묵에 서서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때쯤, 지윤은 쌀쌀맞게 몸을 돌리고 평소 학교에서처럼 불만이 있다는듯한 발걸음으로 우리에게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지우야, 저분 진짜 선생님 맞아?"
"네. 도덕선생님이에요."
"푸훗... 뭐어~? 도덕선생님~?"
"네... 별로 웃긴 말은 아닌거같은데..."
"푸하하... 맞아맞아. 웃긴 말은 아니지. 호호호... 그런데 나는 왜이렇게 웃긴지 모르겠다 얘."
그녀가 왜 내 말이 웃긴지 모르겠는것처럼, 나 또한 아줌나가 왜 계속 웃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야, 너 뭐 화난일 있어??"
"몰라... 지우야. 나 오늘 좀 생각할게 있으니까 가만히 점 내버려둬. 나중에 얘기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