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들어가 하릴없이 헤매고 다니던 나는 문득,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나는 카마에게 내가 얼
마나 충실한가를 보여주 기 위해서 서둘러 카마의 홈페이지를 찾아갔다. 화가 났는지 홈페이지에 들어섰
는데도 카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불안했다. 예의 지도만이 덩거러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듬거리며 눈길을 옮기다가 중앙의 산 오른쪽 계곡에서 조그만 통나무집이 깜박거리는 걸 발견하고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 마가 나에게서 영영 등을 돌린 게 아니었다. 얼른 그걸 클릭하자 화면이 바뀌
었다. 작을 때는 몰랐는데 통나무집이 화면을 모두 차지할만큼 크게 확대되어 나타나자 금방이 라도 쓰
러질 듯 을씨년스러웠다. 통나무집 현관 위에는 한 귀퉁이만 아슬아슬하게 붙은 나무 조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나무 조각에는 인두로 지져 쓴 듯 네크로필리아라고 적혀 있었다.
[네크로필리아?]
어디서 들은 듯한 말이긴 한데 가물가물했다. 그 화면에서 마우스가 손 모양으로 바뀌는 곳은 유일하게
그 나무 조각밖에 없었 다. 내가 그곳을 클릭하자 그 나무 조각은 툭 떨어졌다. 그것이 땅에 닿자마자
귀를 찌르는 듯한 비명 소리와 함께 통나무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통나무집의 잔해 뒤로 뻥
뚫린 동굴이 나타났다. 어디선가 기분 나쁜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화면에 있던 모든 것들이 그
동굴로 쑥 빨려 들어갔다. 마치 내가 그곳으로 빨려드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히고 말았다.
화면은 동굴 속으로 바뀌었다. 동굴은 거기서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깊은 어둠을 간직한 오른쪽
동굴 입구 위에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글씨였다. 좀비, 분명히 그렇게 불꽃이 글씨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두워 보이기는 마찬가지인 왼쪽 동굴 위에는 철조망을 구부려 만든 리버 오브 페
인, 즉 고통의 강이라는 글자가 전기난로의 구리선처럼 벌겋게 달구어져 있었다.
[이건 실제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고통이니 좀비니 하는 어느 쪽도 꺼림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 는 온 길을 돌이킬 입장이 못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면서 내가 누른 건
좀비 쪽 동굴이었다.
[잘 왔도다. 이곳에서 당신의 어두운 꿈을 이루어지리라.]
화면이 바뀌면서 음산한 느낌을 주는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러나 정작 화면에는 공포
영화에나 나옴직한 흉칙 한 몰골의 흑인 여자의 사진이 나타났다. 나는 얼굴을 있는대로 찌푸렸다. 그
여자는 아스팔트 위에 누운 채였다. 약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는 그 여자의 왼쪽 눈동자는 거의
위쪽에 붙어 있어서 희멀건 눈자위가 전부이다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여자의 뒤
통수가 수박이 깨진 것처럼 터진 채 피로 얼룩져 있었다. 꼬불꼬불하고 짧은 머리카락이 찢어진 소파에
서 튀어나온 용수철처럼 흉칙했다. 나는 연신 눈을 찡그리며 사진 밑에서 깜박거리는 글자로 시선을 옮
겼다.
[베키 그린. 21세. 키 172cm. 미주리 주립대학생. 애인 빌로부터 버림을 받은 슬픔을 참지 못해 빌의 집
앞 도로에서 빌이 보는 앞에서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겨 목숨을 끊음. 사용 총기 데저트 이글
.44 버전, 길이 26cm, 무게 1.7kg.]
그 아래에는 은판에 검은 글씨로 NEXT라고 적힌 아이콘이 있었다. 나는 서둘러 마우스를 눌렀다. 이번에
는 반듯이 수술대에 누워 있는 남자의 사진이 화면을 채웠다. 기분 나쁘게 파르스름한 피부에는 털이 하
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슴 한복판에 마구 뒤엉킨 뱀 문신과 데드 마스크같이 굳은 얼굴의 그 남자에
게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사무엘 존슨. 45세. 키 182cm. 텍사스 출신. 성폭행 전과 5범. 네브라스카 형무소에서 심장마비로 사
망. 네브라스카 의대 시체 해부실에서 촬영. 지미 브라운 제공.]
그 아래에도 NEXT라고 적힌 아이콘이 있었지만 나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속이 메스껍
고 구역질이 나서 그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떤 미친 놈들이 이런 시체들을 보여주고 또 어떤 미친
놈들이 시체들을 보려고 하는지 정말 역겨웠다. 나는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진 동굴 앞에 섰다. 리버 오
브 페인을 건널 차례였다. 또 어떤 역겨운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좀 전에 좀비에서
봤던 것들보다야 낫지 않겠나 싶었다. 그렇다고 찡그리고 있던 내 얼굴이 펴진 건 아니었다.
[그래요. 어서 날 찔려줘요. 내 몸에 구멍을 만들어 주세요. 제발...]
리버 오브 페인을 클릭하자마자 들려오는 애원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내 머리카락은 쭈볐 일어섰다. 온갖
연장들의 사진이 가득 한 화면 왼쪽 위에 동영상을 보여주는 조그만 화면에 바닥에 꿇어 앉은 금발 여자
가 두 팔을 벌린 채 신들린 듯한 눈으로 누군가 를 바라보며 한 말이었다. 그러자 화면에 쫙 벌린 채 버
티고 선 그 누군가의 두 다리가 나타났다. 벌거벗은 금발은 그 다리 사이로 애처롭게 보였다.
[헬무트, 제발...]
화면이 손바닥만해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 차리기 힘들었다. 헬무트라고 불린 그
남자의 뒷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헬무트는 번들거리는 고무 삼각 팬티를 입은 채 오른손에 얼음 송
곳을 들고 있었다. 카메라의 방향은 두 사람의 옆 모습을 보여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수염이 꺼칠꺼칠한
헬무트의 피곤에 쩔은 얼굴과 금방이라도 자지러질듯한 금발의 얼굴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카메라는 금발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가며 보여주었다. 금발의 귀에는 귀고리 대신 엄지 손가락만한
볼트와 너트가 죄어져 귓볼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코에는 작은 동전만한 금으로 된 링이 끼워져
있고, 입술에도 비슷한 크기의 은색 링이 걸려 있었다. 카메라는 목선을 따라 내려와 금발의 젖꼭지에서
멈췄다. 아래로 축 늘어진 젖꼭지를 뚫은 가는 링은 은 목걸이같이 가는 체인 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체인의 중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체인이 달려 있었다.
카메라가 그 체인을 따라 움직이다 멈춘 곳에는 밤송이만한 스테인레스 추가 달려 있었다. 그런데도 금
발은 고통을 느끼는 표정이 아니었다. 카메라는 거기서 갑자기 헬무트가 들고 있는 얼음 송곳에 앵글을
맞추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그 얼음 송곳의 용도가 금발의 몸 어딘가에 구멍을 뚫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온 몸이 오싹했다. 설마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어떤 책에선가 이런 비슷한 경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귀나 젖꼭지에 구멍을 뚫기에 얼음 송곳은 너무 굵었다. 어느새 화면은 금발
의 볼을 비추고 있었다. 점점 볼은 확대되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볼에 귀고리
를 하려고 귓볼에 뚫은 구멍처럼 푹 들어간 자국이 있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어느 포
르노에선가 크리토리스에 구멍을 뚫어 링을 끼고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실처럼
아주 얇은 링이 어서 끼고 있어도 아플 거라는 생각은 별로 해 보지 못했다. 생살을 싹뚝 잘라내는 포경
수술에 비하면 사실 그건 아무 것도 아 니었다. 그렇지만 볼에 구멍을 뚫는 건 문제가 틀렸다. 당장 느
끼는 고통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질 때의 수치가 더 클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금발은 그런 걱정은 전혀
없는 건지 마약에 취한 건지 계속 헬무트에게 더 큰 구멍을 뚫어 달라고 애원하였다.
헬무트의 얼음 송곳이 클로우즈 업 되는 순간, 나는 화면을 뒤로 돌려 갈라지는 동굴이 나오는 화면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다시 화면을 뒤로 돌리자 네크로필리아라고 적힌 나무 조각이 흔들거리는 통나무집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타났다. 그러나 내 가 좀전에 다녀온 곳을 잊으려 해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
을 것만 같았다. 나는 현실과 다른 세계, 가상의 그 세계가 가상에서 끝나지 않고 내 현실 속에서 꿈틀
거리다 언젠가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 안이 나를 엄습했다.
잠시후 카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카마는 화를 내고 있었다.
[제가 그럼, 어떻게 대답해야 만족하겠습니까?]
[네가 네크로필리아를 다 돌아보지 않았단 걸 알아. 당장 네크로필리아로 돌아가. 그래서 고통이 뭔지
제대로 알아둬! 네가 그 꼴이 될 수 있다는 거, 잊지마. 알겠어!]
역겹지만 그 정도라면 못할 게 없었다. 나는 얼른 대답했다.
[네.]
[흥, 그 정도로 끝날 줄 알았니?]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럼요?]
카마는 일부러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오늘 당장 미장원에 가서 왼쪽 귀만 뚫어. 대신 구멍은 두 개로 해.]
귓볼에 구멍을 뚫는 건 따끔거릴 정도라고 듣긴 했지만 리버 오브 페인에서 본 금발의 귀가 기억 밖으로
불쑥 튀어나와 몸서리 가 쳐졌다. 게다가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