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블랙홀(gray black-hole)
- 글머리에 -
이 글을 이곳의 회색 회원들에게 바칩니다.
좀 서둘러 말씀 드리자면 요즘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중년 부부간의 '스왑(swap)'문제와 '원조교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난잡하게 다루지 않으려 힘썼으며, 우리(또는 우리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썼습니다.
또한 이 글은 상황도 상황이지만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고 써보려 했습니다.
특히 중년 하반기에 들어선 남녀들의 좌절감과 허망함에 대한 심리 및 우왕좌왕 방황하는 모습을 보다 적나라하게 묘사해보려 노력했습니다.
무겁게 짓누르는 체념 앞에 애처롭게 몸부림치는 회색 비둘기의 날개 짓을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cain-
- 차 례 -
(1) 송다방 미스 김
(2) 부활을 준비하는 날개
(3) 딸
(4) 아빠라는 城
(5) 여직원으로..
(6) 고백으로 물든 파티
(7) 명분 쌓기
(8) 그녀가 포로인가, 내가 포로인가?
(9) 피서지에서 생긴 일
(10) 아아! 불타는 밤
(11) 누가 섹스를 사랑의 그림자라 했던가?
(12) 갈증만이 새 우물을 파는 건 아니다.
(13) 잿빛 방황
(14) 나는 조석으로 풍향이 바뀌는 바람이어라!
(15) 갱년기의 여자
(16) 질투에 빠진 남자
(17) 딸에 대한 내성(耐性)
(18) 맑은 날에도 하늘은 잿빛이다.
(19) 찬란한 아침
(20) 재 날리는 날
(21) 갈증들이 터지는 소리
(22) 막차에 실린 섹스
(23) 돌 수 없는 풍차
- 나오는 사람들 -
나 : 진 윤수(49, 윤수산업 대표)
아내 : 성 희애(46, 음식점 운영)
큰아들 : 진 강우(21, 대2)
작은아들 : 진 강혁(19, 고3)
친구 : 김 충길(49, A사 구매차장), 아내 안 윤영(46), 아들 김 준호, 김 성호
선이 : 정 유선(17), 송다방 미스김, 윤수산업 미스 진
송 다방 : 송 마담, 미스 한
이 대리 : 이 수홍(29), 윤수산업 A사 담당
A사 : 윤수산업의 주 거래처, 나(윤수)의 전직 회사
B사 : 윤수산업의 신 거래처, 김 과장(구매부)
(1) 송다방 미스 김
회색은 검은색의 그림자가 아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무지개를 만들다가 엎질러져 버려진 색도 아니다.
다만, 그 화려함을 모두 품고 있지만 약간 빛이 바래어 있을 뿐이다.
열대야에 잠을 스치고 느지막이 일어나 출근을 서두르는데 마누라의 궁시렁대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당신! 회사생활 그만 두었기 천만 다행이지, 그대로 다녔다면 벌써 잘렸을 거야. 애구 게으름만 늘어 가지고..."
잘린 거나 그만 두고 제 발로 걸어나온 거나 뭐가 다를까?
IMF가 시작되고 정리해고 바람이 거셀 때 나는 별 뾰족한 방법도 마련치 못한 상태에서 마치 항거라도 하듯 사표를 던졌다.
거의 20년 이상 한 직장에만 몸 담아오면서 나는 꾀나 인정받는 편이어서 정리해고 대상에는 속하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있었고, 윗분들의 신임도 두터워서 내가 사표를 쓰리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나의 사표를 만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은 부러운 눈으로 또 반은 안도의 눈으로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들 있었다.
다만, 아내만이 길길이 뛰었다.
싸움도 잦아졌고, 마땅한 일거리를 못 찾아 빈둥대기도 뭣하여 팔자 좋게도 낚시만 반년 여 다녔다.
그러다 회사 친구놈의 권유로 조그마한 자재상을 차려 그 친구의 도움으로 거기에 자재 납품을 하며 근근히 버텨온 지 이제 8개월 째이다.
그 친구는 자기가 옷 벗어야 할 자리를 내가 옷을 벗음으로서 자신이 살아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였다.
나는 아직 직원 하나 못 둘 처지의 가난한 자재상을 꾸리고 있었다.
전화를 받아줄 여직원도 없었다.
회사 시절 타고 다니던 승용차는 팔아 넘기고 대신 자재 납품용 중고 승합차를 사서 그걸 타고 다녔다.
사무실 옆에 차를 대고 2층인 사무실로 막 올라서는 데 어떤 아가씨가 내 사무실 문틈에다 뭔가 집어넣으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아가씨 뭐예요?"
"아니...!"
그녀의 손에는 스티커가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한 장을 받아 쥐어보자 "송다방 XXX-XXXX"라 적혀 있었다.
"아저씨 여기 사장님이세요?"
"그런데..?"
아가씨는 거의 허벅지까지 올라온 숏바지에 브라자의 윤곽이 훤히 비치는 엷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탱글탱글한 몸매는 육감적이었으나 불룩하게 솟은 가슴은 아마도 위장품 같았다.
안에다 뭔가 넣은 듯이 보였다는 뜻이다.
"조 옆에 다방이 생겼거든요! '송다방'이라고. 커피를 시킬 일 있으면 애용해 주세요, 사장님!"
"커피만 있어요?"
"아뇨, 율무, 홍차, 칡차, 인삼차, 쌍화차.. 다 있어요!"
"그거 말고도 뭐든지....?"
내 말이 좀 짓궂었던지 생글 웃었다.
앳되어 보였다.
양 볼에 쏙 들어간 보조개가 귀여웠다.
"보조개가 예쁘네!"
"아!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녀는 엉덩이를 흔들며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나는 딸이 없다. 대2, 고3의 징그러운 아들 둘 뿐이다.
나는 정말 귀여운 딸을 갖고 싶었으나 둘째를 놓고 꿔매버린 아내 앞에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집안엔 딸이 귀하다.
형님은 아들 셋이고 동생도 아들 하나만 키우고 있다.
집안 내력인지도 모른다.
사무실 문을 열자 팩스가 한 무더기 쏟아져 있었다.
그러나 돈 되는 것은 없었다.
납품하는 회사(옛 다니던 회사)의 휴가일정 통보서와 모처럼 뚫은 한 회사의 입찰 불가 통보서, 친구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야! 넌 휴가 안 갈 거야? 난 이번 주말 지리산으로 떠나려 하는데 자네도 안 갈래?"
뭐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전화통을 들었다.
친구의 음성이 들려 왔다.
"예, 김 충길입니다."
"김차장! 나 윤수인데 날 약 올리려 팩스메일 보냈지?"
"야, 진 사장 같이 가자? 우리 둘만 가기 뭣해서..."
"왜 둘이니? 애들은...??"
"야! 걔들 대가리 굵었다고 늙은 우리와 갈 거 같아..?"
"하긴...! 그러나 알다시피 나 쪼들리는 거 너 알잖아?"
"비용은 걱정 말고...?"
"맨날 네 신세만 질 수 있냐..."
"얌마! 친구가 뭔데...! 같이 가는 걸로 알겠다!"
뚝 끊어버렸다.
그와는 입사 동기였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시내로 이사오기 전만 해도 그와 난 바로 한 통로 옆집에 살았었다.
한참 회사 앞 아파트 분양이 있을 때 그의 마누라와 내 마누라 둘이서 같은 동 같은 통로 바로 옆집을 계약하고 왔다.
그와 난 비슷한 게 너무 많았다.
그놈도 딸이 없이 아들만 둘이었고,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고만한 지방대학 출신에다 마누라의 나이 또한 같았다. 그의 마누라도 자식 둘 낳고 묶어버린 것까지 같았다.
그러니 그때는 두 집이 이웃이 아니라 한 가족처럼 지냈던 터였다.
내가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데 뒤에 웬 아가씨가 서 있었다.
아까 그 아가씨였다.
"왜, 안 갔어요?"
"갔다가 사장님을 확실히 고객으로 만들고 오라는 언니의 지시로 다시 왔어요!"
"다방도 요즘 영업은 그렇게 해야 할만큼이야?"
대뜸 말을 놓아버렸다.
아가씨는 보따리를 풀어 잔에다 커피를 부었다.
미리 잔 속에 든 얼음 조각들 위로 고동색 커피가 넘쳐흘렀다.
아가씨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너, 오늘 처음이구나?"
"미안해요. 사장님!"
멋쩍게 웃었다.
보조개는 생기지 않았다.
내가 의자를 내어주자 엉거주춤 앉았다.
"이름이 뭐니?"
"정... 아니, 미스 김이에요!"
"성은 정인데 미스 김이구만... 하하"
다시 겸연쩍게 웃었다.
이번에는 보조개가 생겼다.
"내가 앞으로 송다방에 커피 안 시키면 미스 김은 쫓겨나겠지?"
"저를 봐서라도...!!"
"약속하지!"
"고마워요, 사장님! 사실은 사장님이 제 첫 고객이걸랑요...!!"
아가씨가 환하게 웃었다.
볼을 파고 들어간 보조개를 깨물어주고 싶도록 풋풋했다.
그러나 그녀도 2∼3개월만 구르면 프로가 되어 있을 것이다.
"너! 내 딸 할래?"
"예에??"
눈이 똥그래졌다.
눈꺼풀에 그린 파르름한 아이 라인이 서툴러 보였지만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는 모습이었다.
"아아, 아냐. 그냥 해본 말이야!"
내가 커피잔을 비우자 보자기에다 주섬주섬 챙겨 샀다.
"사장님 약속?"
나는 그녀와 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까지 찍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녀의 엉덩이라도 토닥거려 주고 싶었다.
그러나 참았다.
뒤 돌아서서 나가는 그녀에게 만원 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사장님. 이건 서비스예요!"
"나도 알아! 이건 미스 김한테 주는 거야!"
"이런 거 받으면 언니한테 욕 얻어먹을 건데..."
"그런 거까지 일일이 언니한테 보고할 필요는 없는 거야!"
나는 그녀의 숏바지 호주머니에 돈을 쑤셔 넣었다.
워낙 조여서 잘 들어가려지 않았다.
이러다 충동적으로 안아버릴 것 같았다.
그녀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보자기를 내려놓고 돈을 받아 호주머니 속으로 찔러 넣고는 황급히 사라졌다.
갑자기 멍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분명히 그녀의 풋풋함에 눈이 찔린 게 확실했다.
할 일 없이 책상 위에 늘어놓은 팩스 서류들만 뒤적거렸다.
그때 팩스 벨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면 종일을 그런 기분에서 못 벗어났는지도 모른다.
팩스기에서 주룩주룩 종이가 이를 물고 쏟아져 내렸다.
맨 첫장을 들어보자 앞에 보낸 팩스가 잘못 간 거라며 입찰 자격 요건에 충족된다는 내용과 아울러 줄줄이 물고 내린 항목들의 입찰 가격을 오늘까지 보내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의 손을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회사는 오랜 정성을 들여 뚫은 회사로 친구 충길이의 도움이 컸다.
그의 회사와는 경쟁사임에도 충길이는 암암리에 모든 정보를 빼주며 그쪽을 뚫는데 결정적인 다리를 놓았던 터였다.
만약 회사에서 이 사실을 안다는 충길이는 당장 해고에다 고발까지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 일로 점심을 먹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바빴다.
겨우 시간에 맞추어 입찰가와 관련 부수 문서들을 모두 작성하여 팩스로 보내고 한숨을 돌리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충길이었다.
"너 일 끝났니? 오늘 좀 바빴을 거야!"
"혹시 네가...?"
"내 모가지는 네게 달렸으니까 잘해, 임마!!"
"어느 선까지 네 손이 닿았는데..?"
"그건 비밀이야! 나도 살아남자면 비밀이 있어야 할게 아냐? 다 알면 다쳐! 하하하..."
"자! 나가자 내가 한잔 사지.."
우린 일식 집에서 간단하게 식사 겸 술로 갈증을 풀었다.
그의 말로는 그쪽 회사의 구매이사가 그의 5촌 아저씨라 했다.
그러나 실무자의 비위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해주었다.
나도 그와 같이 구매부서에 있었으므로 그쯤은 안다.
거기서 나와 한잔 더 하자니까 내일 출장을 가야한다면서 술을 그만하고 커피나 한잔하자고 했다.
그래서 위를 올려보는데 "송다방"이란 간판이 보였다.
나는 그를 끌고 그리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사장니임?"
문간에서 우리를 맞은 건 아침의 그 미스 김이었다.
그토록 반갑게 맞는 건 우리만의 이유(별거도 아닌데..)가 있었건만 충길이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담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미스 김이 내 옆에 앉고 마담은 충길이 옆자리에 앉았다.
좀은 마른 체구의 그녀는 웃음 뒤에 히스테리적인 성깔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그저 첫 인상이 그랬다는 말이다.
나이는 30대 초반쯤으로 보였으나 화장을 지우면 어쩜 그 후반쯤일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뭘로 드릴까요?"
"숨이나 좀 삭이고..."
"호호 벌써 한잔씩들 하신 모양이야! 티로 드릴까요?"
"티?"
"칵테일 말예요.."
마담과 충길이가 주고받는 말에 나와 미스 김은 잠자코 앉아 있었다.
나는 옆으로 바싹 다가와 앉아 있는 미스 김의 손을 은근히 잡았다.
뿌리치진 않았지만 마담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충길이를 보고 물었다.
"칵테일 어때?"
"그래 좋아!"
마담이 일어섰다.
같이 일어서려는 미스 김을 잡았다.
"이럴 때 넌 일어서는 거 아냐!"
"촛자인 모양이구나?"
"그렇단다. 우리 사무실에 왔더군. 영업차.."
"허허.. 동병상련이 통했구나. 너 참 귀엽게 생겼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미스 김이 머리를 꾸벅 했다.
"이 친군 사장 아니야. 차장이지.. 스톱 오라이 알지?"
"에끼!"
"그래 맞아. 차장이지만 사장인 나보다 높지. 난 이 친구 앞에 벌벌 기야 하니까. 하하하..."
우린 그런 농담 따먹기를 한참이나 했다.
둘만 있을 때야 그런 농담할 리 없겠지만 미스 김이라는 앳띤 청춘을 사이에 뒀으니 가능한 말장난이었다.
소위 '티'라는 칵테일이 날라져 왔다.
그런데 촛자의 미스 김이 던진 말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어머, 언니 저 술 못 먹어요?"
그녀의 눈깔이 까집어졌다.
그리고 충길이의 눈도 까집어졌다.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수작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이거 한잔 얼만데..?"
"만원!"
"뭐?"
내가 나서야했다.
"다 그렇게 한다고... 이거 내가 먹으마!"
난처함에 빠진 미스 김은 얼굴도 못 들고 있고, 충길이는 마담과 눈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 배달 나갔다 들어온 다른 아가씨가 들어서자 마담은 일어서서 그 자리에 그 아가씨를 앉혔다.
"천하의 김 충길 차장이 왜 그러니! 물장사 다 그런 거 아냐?"
그는 담배를 뽑아 물었고 옆자리의 아가씨가 성냥을 켰으나 그는 호주머니에서 라이타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배달 주문이 들어왔는지 마담이 직접 보자기를 싸들고 나가버렸다.
연기를 뱉으며 충길이 말했다.
"너희들 저년 옆에 붙어있으려면 힘들겠다.."
"안 그런데.. 얘 김아 왜 저러지?"
"조금 전 나간 앞 손님과 싸웠거든요."
"그렇겠지. 저 미스 한이에요. 마음들 푸세요!"
그녀는 충길의 팔을 주물렀다.
처음 손을 떼어내던 그도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고 느낀 건지 허! 웃으며 가만 두었다.
"오빠들 여기 살아요?"
그녀(미스 한)의 그 물음이 낯선 건 아니었지만 자식 같은 애들에게 '오빠' 소리를 듣자 그도 마음을 삭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린 그곳에서 난데없는 일로 휴식은커녕 스트레스만 받고 밖으로 나왔다.
그 길로 충길은 돌아갔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 계속 >
(2) 부활을 준비하는 날개
다음 날 아침 내 사무실로 송 마담과 미스 김이 찾아왔다.
한 마디로 사죄하기 위해서라면서 나중 술 한잔 사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옹고집이 말을 들으려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들고 온 커피를 나눠 마시며 한동안 멋쩍게 앉아있다 돌아갔다.
오후에 다시 미스 김이 들렀다.
옆 건물에 배달 왔다 간다며 그냥 들렀다고 했다.
일반적인 다방 아가씨라면 그럴 수 없는 일이라 자꾸 그녀에게 마음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있다 다방으로 커피를 시킬 테니 그때 다시 오라고 하고 돌려보냈다.
오후 두 세 시간 동안 어제 보낸 입찰 가격의 최종 네고가(negotiation price)를 보내라는 서신을 답하고 난 뒤 커피를 시켰다.
그러나 마담은 방금 미스 김이 배달 나갔다며 기다리겠느냐기에 아무나 보내라고 했다.
내 속을 드러내어 보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미스 한이 왔다.
그녀는 수다쟁이였다.
사장님이 취급하는 품목이 무어며 어디 어디 거래하느냐는 둥 그녀와는 무관한 물음들을 수없이 늘어놓았다.
내가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자 눈치 빠르게 "우리 김, 참 귀엽죠?" 하고 물었다.
나는 무안하여 고개만 끄떡였다.
그녀는 컵을 챙기면서 "우리 언니 미워하지 않죠?" 하고 묻고는 내 표정도 안 보고 사라졌다.
오후 한적한 시간이 되자 미스 김의 쏙 들어간 보조개와 겁먹은 듯한 눈망울이 자꾸 떠올랐다.
그 모습은 퇴근하는 운전대 위에서도 계속 되었다.
자칫 빨간 신호등을 못 보고 지나칠 뻔도 했다.
정말 얼마만의 설레임인지 기억조차 아련했다.
아내와 연애 시절도 이렇지는 않았다.
내 나이 마흔 아홉, 때늦은 사춘기도 아닐 텐데 집으로 들어와서도 그녀에 대한 설레임은 계속되었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는데 나 어린 가수들이 노래를 부를 때나 극 속에 젊은 커플들만 나와도 얼굴이 붉어지지나 않았나 슬며시 얼굴을 돌리다가 끝내는 일어서서 내 서재로 들어와 버렸다.
아내가 읽지도 않는 책을 펴놓고 있는 내 앞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뭔가 들킨 듯이 커피잔을 입에 대었지만 금방 내려놓았다.
아내는 회사 일에 뭔가 꼬였냐고 묻다가 나가 버렸다.
내가 회사를 그만 둔 후 아내는 많이 변했다. 물론 나도 그렇다.
연애시절 깜찍하게 애교 떨던 모습을 잃은 건 오래 전이지만, 결혼 후 매사에 순종하고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던 모습은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수십 년간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살아왔는데 식구의 목구멍이 걸린 회사를 그만두는 중대사를 그녀와 논의 한번 없이 실행한 데에 대한 배신감이 컸는지도 모른다.
그후 거의 반년이나 집안 사정은 아량 곳 않고 낚시에만 빠져있던 내게 실망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 충길이의 권유로 시작한 사업도 변변치 못하여 가계에 보탬이 없자 처음 파출부를 하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식당 하나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학생과 고3을 둔 우리에겐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둘의 성생활마저도 변변치 못하였다.
어느 날부터 나의 발기부전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낚시로 부랑하던 시절엔 그 부분만은 원만한 편이었으나 사업을 시작하고부터는 조급함이 앞서 행위 중에 내 물건이 시들어 버리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그나마도 한 달에 한번 꼴 정도 밖의 시도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은근히 그 일을 벌이려 들 때면 불안해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오늘 사무실에서부터 아랫도리의 융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있었다.
마치 청년시절 그때의 융기를 되찾은 듯한...
나는 두고 간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아랫도리를 쥐어 보았다.
오후 내내 서 있던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보자 그 끝에 진득한 체액이 느껴졌다.
이건 분명 은밀한 부활의 기미였다.
그래 시험해보자!
오늘 밤 당장....
나는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빈 커피 잔을 들고 거실로 나가자 애들은 모두 제 방으로 들어가고 아내 혼자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다가가 뒤에서 아내를 안았다.
"이이가 왜 이래요. 철도 없이..."
철도 없이...
그게 어디 철이 있던가?
봉기하는 날이 철든 날이지...
나는 넌지시 아랫도리를 내 밀었다.
자신만만하게 철없다는 그걸 아내의 엉덩이에다 문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방금 까지만 해도 당당하던 그건 시들어 있었다.
난감했다.
슬며시 엉덩이를 뒤로 뺐다.
나는 다시 서재로 처박힌 뒤 고민에 빠졌다.
심한 좌절이 온몸을 감싸왔다.
그 자리에 앉아 몇 대의 줄담배를 피웠는지도 모른다.
다시 아내가 들어와 꽉 닫친 방문을 열어 젖히고 부채질을 해댔을 때야 담뱃불을 껐다.
"내가 좀 알면 안 되요?"
내 고민이 뭐냐고 묻는 물음이었다.
"늘 주던 물량이라도 잘렸어요?"
답답하던 아내는 뭔지 같이 고민하자고 대들었다.
"혹시 여자 문제라도 생겼어요?"
"이 여자가 점점... 먼저 건너가 잣!!"
여자 문제란 말에 내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튀어나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내는..
"난 솔직히 당신이 여자 문제로 고민에 빠졌음 차라리 좋겠어요! 그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못마땅해 하는 모습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요!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다른 일 하는 게 어때요? 더 이상 준호 아빠(김 충길)에게 도움 받는 게 보기 딱해서예요..."
"두고 봐! 이번엔 한 건 터뜨릴 거야. 틀림없이.."
"제발.. 그 한 건, 지겨운 한건타령...!!"
아내는 나가 버렸다.
얼마 후 내가 큰방으로 들어갔을 때 아내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
날이 더워서일까 창문과 방문을 모두 열어놓고 엷은 슈미즈만 달랑 걸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파트 앞이 강이기 망정이지 다른 건물이라도 있다면 죄다 보일 상황이었다.
거기에다 둘 다 방학중이라 낮에는 잠만 처잔 애들이 밤만 되면 야광충처럼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 수시로 거실을 어슬렁대는 상황인데 참으로 아내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또 했다.
그들이 맘만 먹으면 빤히 보일 내실인데...
나는 들어서며 문을 스르르 닫았다.
"더워요! 그대로 둬, 제발..."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옛날엔 적어도 이러지 않았다.
집안엔 단 한 사람뿐인 여자로서 아내 역할, 엄마 역할, 때론 딸 역할까지 집안의 꽃으로의 역할을 충실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요즘에 들어서 모든 게 다 허사라는 허무감에 빠진 건지 매사 짜증을 부리고 아무렇게나 살겠다는 식의 행동을 불쑥불쑥 하곤 했다.
아내 나이 마흔 여섯, 갱년기에 접어든 지도 모른다.
나는 닫으려던 문을 그대로 두었다.
나는 엉거주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창 밖을 내려다봤다.
중천에 뜬 달빛이 강물에 부서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저 강물처럼 엷은 달빛에도 여지없이 부서져 흘러가 버릴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류시화시인)는 시에서 '그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했지만 바로 옆에 두고도 그리움은커녕 짜증이 이는 이건 절망을 겪는 우리 부부의 고독이었다.
"뭐 해요? 청승스럽게..."
나는 그녀의 짜증이 무서워서라도 꾸역꾸역 침대 위로 기어올라야 했다.
그렇지만 아내 곁으로 몸을 돌릴 수는 없었다.
강 건너 저 먼 곳에서 밤을 싣고 달리는 불빛들이 보였다.
그들은 진정 그리움을 향해 달려갈까?
아니면 나처럼 어쩔 수 없이 짜증이 있는 무덤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는 걸까?
그때 뒷덜미까지 다가온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당신 병원에 한번 더 가 보자?"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안 지나서 나는 아내에게 이끌려 병원에 갔었다.
의사는 과중한 스트레스 탓이라 했다.
무엇보다 아내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주사도 있고 약도 좋은 게 많으니 한번 써보려느냐 묻기에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약물에 의존한다는 자체가 싫었다.
나를 환자로 취급하는 것부터가 정말 싫었다.
"당신 그러다 영영 회복 안 되면 어쩔려고요?"
"어쩌긴 어째! 이대로 살다 가는 거지..."
"정말 실망이에요. 당신은 당신 자존심만 생각하지 옆에서 지켜보는 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않는 것 같아요..."
"당신마저도 날 환자로 취급하는 게 정말 지겨워..."
"인정할 건 인정해요! 그래야 방법이 생길 게 아네요?"
"관둬! 정 필요하면 당신 애인 만들어! 나 암말 않을 테니까..."
"그래요! 관둡시다..."
아내가 몸을 홱 돌려 저쪽으로 가 누워 버렸다.
얼마나 지난 걸까?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 뒤척이다 저리 뒤척이다 곧 바로 누워 나지막이 내려앉은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종일 머리를 채웠던 미스 김의 모습도 기억 속에서 지워져 버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달빛에 드러난 천장의 무늬가 미로처럼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아내는 모로 누워 그렇게 잠이 든 것 같았다.
피곤하리..
몹시도 피곤하리라.
몸으로 때워야 하는 식당 일에다 정신적으로 막다른 지점에까지 와 닿은 나에 대한 실망이 그녀를 누르고 또 누를 게 뻔하다.
그때 거실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아마도 작은놈인 듯 했다.
냉장고를 열고 우유를 벌컥 벌컥 마시더니 우리가 누워 있는 내실을 흘깃 보더니 욕실로 들어갔다.
한동안 그 안에서 머무른 걸로 보아 자위행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 애 나이 열 아홉, 그 아니 그렇겠는가...?
수돗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애가 제 방으로 사라졌다.
"여보! 당신이 애인 만들 생각은 없어요? 되도록 젊은애로..."
자는 줄로만 알았던 아내는 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닌 밤중에 그게 무슨 말이야?"
"이건 진심이에요."
나는 푸-!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내는 일어나서 방문을 닫고 옆으로 바싹 다가 누운 뒤 내 가슴을 어루만졌다.
나는 그녀의 속마음을 읽을 수 없어서 가슴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 무게만큼 갑갑했다.
"당신 내년이면 벌써 쉰이세요. 이제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어요.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나 하나만 보아오신 당신 아니세요? 이제 그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껏 못 누린 세상도 느끼게 해 드리고 싶어요. 정말예요. 제 진심이라고요..."
그런 말을 한다고 바짝 붙어 누운 그녀를 덥석 안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러니까 내가 대2, 그녀가 고2일 때 같은 집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어 결혼까지 하여 여기까지 온 사이였었다.
장담하건데 둘 다 이때껏 옆 눈 한번 안 팔고 살아온 잉꼬 부부인 셈이었다.
부부싸움이야 어느 집인들 안 할까마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다고 하면 믿을까?
그런데 불과 일년만에 벌어진 둘 사이의 골은 낯설어서 더욱 깊어 보이기만 한 게 사실이다.
아내는 짜증으로 그 골의 깊이를 더욱 팠고, 나는 나대로 무관심으로 그 폭을 더욱 늘여 놓았다.
"아니면, 우리 딸이라도 하나 입양할까요?"
뜻밖의 제안이었다.
아니, 뜻밖이 아니었다.
내가 술이 취해 들어오면 딸 하나 안 낳아준다고 떼를 쓰곤 하던 나였다.
"미안해....!"
나의 최선의 답이었다.
아내의 손이 밑으로 내려왔다.
시무룩해져 있는 그걸 조몰락조물락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 젊어요. 내게만 오로지 지쳐있을 거예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사흘이면 질리는 데 당신은 여태 한 여자만을 삼십 년이나 접해 왔으니 질릴 수밖에..."
"미안해, 미안해...!!"
나는 와락 아내를 끌어안았다.
손끝에 와 닿는 허리 살집, 왠지 낯설었다.
그간 무심의 결과리라...
하지만 어쩐단 말인가?
아내의 손아귀에 쌓여 있는 그건 잠시 불끈해 있긴 하지만 언제 또 스르르 무너져버릴지 모를 좌절의 불씨가 아니던가?
나는 아내가 이쯤에서 손을 거두고 잠을 청하길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내 바램을 못 읽는 듯 했다.
아내의 손은 자신의 슈미즈를 벗어 내린 후 내 옷들도 벗어 내리고 있었다.
옆으로 발가벗겨진 몸을 겹쳐오며 두 손으로 내 물건을 움켜쥐고 속삭이듯 말하는 거였다.
"당신 이대로 쓰러지면 당신이 쓰러지는 게 아니라 내가 쓰러지는 거예요! 그러니 절대로, 절대로..."
아내의 혀가 가슴을 타고 내렸다.
내 아랫도리에 습습한 기운이 쏟아져 내렸을 때 나는 미스 김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나 볼록 들러간 보조개만 떠오를 뿐 얼굴 표정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숏바지 틈으로 잘 들어가려지 않던 호주머니가 보일 뿐 뇌살적이었던 히프 곡선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내의 혀가 밑으로 파고들며 주름 투성이를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내 다리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아마도 뒤쪽까지 파고들 요량이었다.
그때 그 광경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때쯤였으리라.
충길이네와 한 아파트에서 마주보고 살 때였다.
방학을 맞아 우리 애들과 그 집 애들이 함께 여름 캠핑을 떠나고 두 부부만이 있던 때였다.
우리가 살던 층이 15층으로 맨 위층이라 우린 서로의 문을 활짝 열고 지내던 터였다.
그날 아내와 나는 집안 일로 밤 늦게야 돌아왔는데 하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계단을 통해 15층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우린 서너 번을 쉬어가며 쉬엄쉬엄 올랐다.
오다가 갈증을 식히느라 아파트 앞에서 맥주까지 몇 잔 하고 왔으므로 땀이 흠뻑 젖었다.
그런데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오르는 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준호네 한 게임 벌이나 봐요! 호호.."
나는 아내의 입을 막고 살금살금 올라섰다.
정말이었다.
반쯤 열린 대문 안으로 뒤엉킨 그들이 보였다.
그놈의 물건이야 같이 목욕을 다니며 수시로 보던 일이라 색다를 게 없었지만 제수씨(그의 아내, 양가 서로가 제수씨라고 불렀음) 알몸은 처음인 셈이었다.
아내는 못 본체 밑으로 내려가 있자고 했지만 나는 아내를 잡았다.
제수씨의 알몸은 겉보기보다 풍만하고 매혹적이었다.
평소 옷 밖으로 보던 그녀의 몸매는 가늘기만 해 보였는데 늘어진 젖가슴과 엉덩이 곡선이 풍성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는 그걸 출렁거리며 그의 몸을 구석구석 핥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그의 다리를 들어올리며 그의 항문을 핥아주고 있었다.
아내는 "쟤가...?"하며 입을 막았다.
그러다 그녀가 그의 배를 올라타고 몸을 현란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칼이 흩어져 내리며 사방으로 출렁이는 그 모습은 모 여가수의 흉내를 내는 듯 했다.
우린 그쯤에서 밑으로 내려와 한참이나 앉아 있다가 그들이 조용해진 뒤 쿵쿵 계단을 밟으며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날 밤 나는 아내에게 그와 꼭 같은 봉사를 받았던 것이다.
나는 제수씨의 몸매와 얼굴을 떠올렸다.
아내는 나의 다리를 거의 가슴에 닿을 만큼 굽히기 한 뒤 구린내 나는 주름살을 혀로 핥아댔다.
내 입에서 "아아!" 하는 신음이 튀어 나갔다.
그 소리가 신호였을까, 아내는 다리를 밑으로 내려놓고 배 위로 올라왔다.
눈앞에서 아내의 젖가슴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또한 머리칼이 흩어져 내리며 사방으로 날렸다.
"흑! 흑! 거봐? 당신은 아직 젊다니까??"
자신감이 생긴 내가 아내를 밀어 내리고 그 위로 올라갔을 때 아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약간은 우수가 깃든 제수씨의 얼굴을 계속 떠올렸다.
그 심연의 늪 같은 우수가 희열에 떨며 술집 작부보다도 더 게걸스런 모습으로 변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아내와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제수씨...!!"
마지막 사정이 시작될 때 끝내 그 말이 터져 나가고 말았다.
아내는 그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장하다는 몸짓으로 내 등을 토닥이며 흡족한 표정이었다.
내가 몸을 내려 옆으로 쓰러지자 지체없이 내 그것에 묻은 분출물들을 샅샅이 핥아주었다.
마치 동물들이 새끼를 낳은 후 새끼에게 묻은 포낭을 낱낱이 핥아먹듯이...
"거봐요, 거봐요..."
".........................."
"제수씨가 누구죠?"
"..........................!"
"아뇨, 내가 괜한 걸...."
아내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수씨'가 내 동생의 아내를 뜻하는 게 아닌 준호엄마라는 사실을...
"참, 오늘 준호엄마가 우리 식당에 왔다 갔어요."
"아니, 왜?"
나는 속마음이 들킨 양 반사적으로 묻고 있었다.
"같이 지리산 가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신과 의논해 보겠다고 했어요. 당신은 어때요?"
"글쎄..."
"거기가 휴가면 당신도 별로 할 일이 없잖아요?"
"이번에 대형 물량 하나가 입찰 중이야. 그건 충길이네 회사 것이 아니거든...."
"그 말 진짜였어요? 날 안심시키려 한 말이 아니고...?"
"2∼3일 안에 결정날 거야. 그거만 딴다면 적어도 향후 5년은 나도 바쁠 거야. 직원도 나 혼자로선 어림없고..."
"그 만큼이에요??"
"기다려 보자고.. 이번에도 충길이 도움이 컷었어!"
"그럼 내가 준호 아빠 안아주러 매일 가야겠다, 그지...?"
그녀는 들떠 있었다.
내게서 안도와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서로를 안아준다는 말은 그저 예사로운 말일뿐이다.
충길이 마누라인 제수씨도 우리 앞에서 나를 안아주겠다는 말쯤은 늘 농담처럼 해오던 터였다.
그만큼 서로 허물없는 사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쭈욱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아무튼 추락을 거듭하던 나의 날개는 다시 죽지를 펴기 시작했다.
< 계속 >
(3) 딸
다음 날부터 아내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나 또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전화벨이 울었다.
저쪽 회사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일전에 면이 있는 구매 담당자였다.
"예, 김 과장님! 저 진 윤수입니다."
"오늘 한번 들러주실 수 있어요. 어제 최종 네고해 보내신 입찰 건으로요..."
나는 당장 사무실 문을 걸고 차를 몰았다.
나는 고속도로로 차를 올린 후 충길이와 통화를 했다.
자기도 출장 가는 길이라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놈 성질에 제 일인 양 나보다 앞서 알아본 게 분명했다.
그의 말로는 이미 결정 난 거 같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가라고 했다.
에어컨도 제대로 힘을 못 쓰는 따가운 햇살에 땀이 비오듯했으나 기분은 날아갈 듯 했다.
두 시간 여 달려 그곳에 도착하자 김 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들도 내일부터 휴가라며 오늘 모두 마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 도장부터 요구했다.
정말 결정 난 모양이었다.
그는 저쪽(충길의 회사) 납품가를 모두 공개하여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며 그보다 조금이라도 싸게 해주어서 자기로서도 명분이 선다고 했다.
모든 서류 처리가 끝나자 이사님 한번 뵙고 가라며 나를 이사실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그가 충길이의 5촌 아저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는 채 할 수는 없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이었는데 어찌 보면 충길이와 닮아 보였으나 근엄한 표정이었다.
김 과장이 인사를 꾸벅하고 사라지자 근엄한 표정을 풀며..
"우리 조카와 둘도 없는 친구라면서...?"
"아네! 20년 이상..."
"앞으로 자주 찾아와요! 직원들 눈에 거슬리지 않게만..."
"네,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그리고 참 이번에 처음이라고 너무 무리한 건 아니겠지?"
"그럼요!"
나는 아가씨가 날라준 차를 마시고 물러 나왔다.
김 과장에게 다가가자 최종 계약서는 휴가가 끝나야 될 거 같으니 우편으로 붙여주겠다고 했다.
나도 구매 부서에서 뼈가 굵은 몸이라 그들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안다.
모든 결정권은 구매 담당자에게 주어져 있다지만 최종 결재권과 그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해당 중역의 힘은 절대적이다.
특히 이번처럼 장기 계약권을 결정하는 일에는 담당자는 그저 서류처리 담당자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며 저녁이라도 대접하고싶다 말했으나 오늘 밤 당장 휴가지로 떠나게 되어 있다면서 휴가 갔다와서 기꺼운 마음으로 저녁을 얻어먹겠다는 말을 했다.
그는 이미 내가 경쟁 회사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한 사실을 알고 있어서 서로 숨기고 그러지 말자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충길이가 내게 해준 말로는 그 친구도 지금 자신을 구제해줄 원군을 찾고 있으리라는 말을 했다.
아직도 진행중인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으려면 뭔가 잡아야 한다는 뜻이며 직속 중역인 이사의 그늘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10년 이상 거래해온 업체를 밀어내고 연이 닫는 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냉혹한 게 이 세상의 일이다.
어쨌든 나는 충길이의 도움으로 탄탄한 납품처를 확보한 셈이다.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오후 4시가 넘어 있었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할 일은 그곳에 납품할 물량을 차질 없이 확보하고, 물량이 늘어났으니 만큼 그만큼 접수 가격도 떨어뜨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보다 나는 우선 온몸을 적신 땀부터 씻어야 했으므로 사우나부터 들러야 했다.
아무도 없는 탕 안에서 저절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무실로 오다가 보자기를 든 미스 김을 만났다.
나 못지 않게 그녀도 몹시 반가운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배달 왔다 가나 보네?"
"네, 그런데 사장님 몹시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그래, 그래요. 몹시... 있다 너네 집에서 젤 비싼 걸로 하나 들고 올래?"
"네! 그럴 게요. 그럼 있다 뵈어요!"
쪼르르 뛰어가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다 사무실로 올라왔다.
올라오자마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길이와는 돌아오면서 통화를 한 상태였다.
"여보세요, 아 당신이에요?"
"그래. 서방이다. 드디어 네 서방이 한 건 했다!"
"축하해요! 그러나 이미 알고 있었어요."
"이놈 충길이가 먼저 깠구나!"
"준호 엄마가 여기 점심 먹으러 나왔다가 준호 아빠와 통화하던 중에..."
"이구 맨날 뒷북이야! 그러나 기분 만땅이다.. 쪼옥!!"
"그래요. 저도 그래요. 사랑해요..."
수화기를 놓고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열렸다.
미스 김이었다.
보자기를 풀어놓으며 핀잔처럼 말했다.
"사장님도 이 선풍기 말고 에어컨 들여놓으세요?"
"그래 당장 들이마! 그리고 너네집에선 이 냉커피가 젤 비싼 거니?"
"비싼 거라고 다 좋은 가요? 이런 날은 냉커피가 제일이에요."
"맞는 말. 너 생각보다 똑똑하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톡 쳤다.
그만 일에 걔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마 나도 그랬으리라..
생각 같아서는 불쑥 안아보고 싶었다.
나는 걔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거의 단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에 오목조목 귀엽게도 생겼다.
그녀는 내가 빤히 쳐다보는 앞에서 민망해 하면서도 보조개를 지우지 않았다.
어째서 어젯밤은 그 얼굴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던가?
그리고 시선을 내려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 위에 다소곳이 앉은 모습을 힐끔 보았다.
까맣게 탄 다릿살이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청춘미를 과시하고 있었다.
내 눈길이 머무르는 곳을 확인한 그녀는 바지 깃을 끌어내리며 다리를 더욱 모았다.
"숙녀의 몸을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사장님이 엉큼해 보인다구요?"
"하하하.. 숙녀? 그래 숙녀지.. 그래 숙녀님 올해 몇 이세요?"
"스물 셋!"
"에끼!"
"진짜요. 주민증 까 드릴까요?"
다짜고짜 그는 뒷호주머니에서 주민증을 내어 밀었다.
790919-2xxxxxx 김 성희
자세히 보니 얼굴 모습은 비슷했으나 아니었다.
그녀의 성이 김이 아니란 걸 아는 내가 그걸 믿을 리 없었다.
그러나 나는 손을 꼽아보며 말했다.
"정말 스물 셋이네. 많이도 먹었다. 어디로 다 먹었니?"
배를 쿡 찔렀다.
그녀는 까르르 웃었다.
꼼짝없이 속여넘겼다는 뜻일까?
"그러나 조심해! 사회란 굶주린 늑대들 소굴이야!"
"사장님도 늑대?"
"나야 순한 양이지. 크크크..."
"사장님은 참 좋아요! 꼭 아빠 같이..."
"아빠? 올해 몇이신데..?"
그 말에 고개를 쿡 숙여 버렸다.
"왜, 돌아가셨어..?"
"아뇨!"
"그럼?"
"몰라요..."
"모르다니?"
"없어요!"
"혹시 유복녀? 그러니까 네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신..."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볼에 패였던 보조개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금방이라도 쏟아 내릴 것 같은 울음을 참고 있는 게 확실했다.
내가 그녀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게 확실했다.
나는 일어서서 그녀의 뒤로 다가가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내가 괜한 걸 물었나 보구나. 너의 아픈 곳인 줄 몰랐어. 다시는 그런 거 안 물을 게. 응?"
그때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녀의 까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어제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 아직도 유효하신가요?"
"무슨 말...?"
"사장님 딸 할래 하시던 말씀..!"
"내겐 딸이 없지. 하지만 너의 부모님 허락도 없이 어찌..?"
"저 고아예요! 올해 열 일곱이고요.. 아버지가 누군지.. 어머니가 누군지.. 아무 것도 몰라요...!"
정말 딸 하나가 있었으면 하고 늘 바래온 게 사실이었지만 막상 그런 제안을 받으니 난감했다.
어제는 우발적으로 흘린 말일뿐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얘처럼 풋풋한 연인 한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기어이 눈물 쏟고 있었다.
철모르고 처덕처덕 찍어 바른 화장이 지워지면서 보기가 가련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낙망한 그녀는 보자기에다 컵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토라진 듯 내 손을 뿌리쳤다.
고집을 꺾지 않는 그녀를 나는 완력으로 안아 버렸다.
발버둥쳤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그래! 널 내 딸로 만들 수 없어도 내가 너의 아빠가 되어 주마!"
그녀는 그 말뜻을 알아차리려 애쓰고 있었다.
"너의 그늘이 되어주마. 내가 널 보호해 주겠다고..."
나는 팔을 살짜기 풀었다.
아까처럼 도망가려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아직 책상 위에 놓여진 스티커를 보며 다이알을 돌렸다.
송 마담이 받았다.
"송다방입니다."
"나, 윤수산업 진사장인데.."
"왜요? 아직 도착 안 했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미스 김하고 저녁을 같이 하고 싶은데...?"
"그야 사장님 좋으실대로 하세요. 다만.."
"알아, 그쯤은... 그 돈도 함께 보낼 테니까. 알아서 보내 줘요!"
"아이고 안 그래도 사장님께 빗진 게 있는데.. 그렇게 하세요!"
나는 훌쩍이는 그녀를 거울 앞에 세우고 눈물 자국을 지우게 한 뒤 수표 한 장 쥐어 보냈다.
그녀가 떠난 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난데.. 나 저녁 먹고 늦게 들어갈 거 같애!"
"충길씨도 우리 집으로 축하파티 하러 오겠다기에 나도 지금 마치고 들어가려던 참인데요."
"파티는 내일 하자고.. 충길이에겐 내가 전화할게."
"그래요. 주인공은 당신이니까..."
나는 충길이에게도 핸드폰으로 통화를 했다.
나는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에 빠져야 했다.
우선 급한 건 다방을 그만두게 해야 하는 것이고, 다음은 그녀의 신변처리였다.
딸로 삼고 말고는 그 이후였다.
조금 있자 그녀가 나타났다.
나는 그녀를 끌고 조용한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사무실 가까이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차에다 그녀를 태우고 시내를 빠져야 했다.
야외로 나서자 기분이 한결 좋아진 그녀는 입을 열었다.
"언니가 오늘 안 들어와도 된다 했어요!"
"송 마담 못 쓰겠네..."
"왜요?"
"네가 미성년자인줄 알 거 아냐?"
"몰라요. 스물 둘로 믿던 걸요."
"그러니 엉큼하지. 알면서도 속는 척 하는 거야. 나중 문제가 생겨도 그렇게 알았다고 우길 테니까... 그건 그렇고 너 지금 어디서 자고 있니?"
"미스 한 언니와. 왜요?"
"그 언니 좋으니?"
"같은 고아원에 있었는 걸요."
"그 언니 꼬임에 왔겠구나?"
"그건 아니에요. 내가 직접 찾아온 거예요."
"학교는?"
"짤렸어요."
"왜?"
"결석이 너무 많아서.."
"그런다고 짜르는 학교도 있어?"
"속 시원해요."
"왜일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싫으니까요."
"부모가 없어서...?"
"그것도 있고....."
그때 저 앞으로 한적해 보이는 가든 하나가 보였다.
나는 그리로 차를 꺾어 넣었다.
요리는 별 다른 게 없었다.
오리 요리와 닭 요리뿐이었다.
걔에게 물은 후 삼계탕을 시켰다.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퇴학 얘기까지.."
"그래,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아무 거나요."
"그래도 꼭 하고 싶어 한 게 있을 거 아냐?"
"그보다 오늘부터 사장님을 아빠라 불러도 좋아요?"
"그게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네, 아빠!"
그건 그녀의 오랜 소원이었는지 모른다.
오랜 목마름이었을 것이다.
"꼭 말하라 하시면 조그마한 옷가게 같은 거.. 아니면 자그마한 핫도그 집.. 또, 꽃집 같은 거.. 장난감 가게........."
"뭐가 그리도 많아! 하긴 네 나이에 그런 꿈 없으면 안 되지."
"아빤 그 사무실 만족하세요?"
"난 이제 늙었잖아. 그러니 만족이고 말고가 어딨니..."
"아빠 아직 젊어요. 이제 제가 딸로서 젊게 해드리고 싶어요!"
정말 소녀다운 말이었다.
어쩜 딸들은 다 그런 말들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를 아빠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모양이었다.
"아빠! 아빠의 집에는 식구가 몇이에요?"
"모두 넷이지. 너보다 두 살, 네 살 많은 오빠가 둘 있고 나와 내 마누라..."
"사모님도 내가 엄마라 부를 수 있을까요?"
"글쎄? 네 하기에 달렸지 않겠어?"
"노력할게요. 하지만 아빠가 생긴 것만도 감지덕지인걸요."
나는 시킨 음식이 늦어지자 담배를 뽑아 물었다.
그녀가 얼른 성냥을 들고 와 불을 붙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막았다.
"이런 거부터 고쳐! 그건 친절이 아니라 성 비하적인 아양이야!"
"저는 아빠께 정말 그러고 싶은데..."
"알아. 아무한테나 그러지 말라는 거야! 자 붙여봐?"
그녀는 겸연쩍게 담뱃불을 붙였다.
딸?
정말 그녀는 나의 딸이 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만만한 모습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는 그릇이 날라져 왔다.
"많이 먹어!"
그녀의 그릇에 든 주먹만한 닭을 젓가락으로 뜯어주자 행복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서툰 젓가락질로 하나 하나 꺼내 먹었다.
조그만 입술을 오물락거리며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왜 뭐라도 묻었어요?" 하는 표정으로 입술 근처를 훔쳤다.
정말 아직 귀엽기만한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나도 젓가락을 들었지만 머리 속엔 앞으로 그녀를 어떻게 해야할까 온통 그 고민뿐이었다.
삼계탕에 곁들여 나온 인삼주 병을 들고 반잔만 따랐다.
홀짝 마시고나자 아쉬웠지만 참았다.
나는 내 그릇에 든 고기의 반을 넘겨주었다.
"저 살쩌요?"
"임마 괜찮아 먹어! 난 네 모습만 보아도 배부르니까..."
"정말...?"
"그럼.."
우린 그곳에서 나와 바로 앞의 강변을 걸었다.
어둠이 내린 강은 짙은 회색으로 벌써 잠든 모습이었다.
그녀는 돌을 주워 그곳에 던져 넣었다.
강변을 따라 또 걸었다.
내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그 손을 꼭 쥐었다.
"참, 네 이름이 뭐니?"
"아직 말 안 했던가요? 정 유선이에요."
"유선이라..?"
"놀림을 많이 받는 이름이지만 난 그래도 좋아요. 내 이름이니까요."
"그럼, 그래야지! 네 스스로에게 애착을 느끼는 건 좋은 거야. 네 건 무엇이든 소중한 거니까..."
내 손을 꼭 쥔 반대편 손이 내 허리를 감아왔다.
내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아빠하고 이렇게 걸으니 참 좋다. 그죠?"
"아, 아 그래.."
"곧 달이 뜨겠어요!"
정말 동쪽 하늘 한 귀퉁이에 빛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너무 많이 걸어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그녀와 함께 앉았다.
산 능선 나무 사이로 노란빛을 쏘아대며 달이 얼굴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까만 어둠 속 그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선이도 그 모습에 취해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저 앞쪽 강변 둑 언저리에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분명히 사람 모습이었다.
달이 점점 솟구쳐 오르자 그들 모습도 정체를 드러냈다.
그들은 옷을 반쯤 내리고 뒹굴고 있었다.
이런 고즈넉한 강변에 그런 아베크가 어디 한 둘이랴...
나는 선이를 일으키고 이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손은 그녀의 어깨를 더욱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빠도 빌었어요?"
"어, 뭐- 뭘...?"
"소원 말예요? 오늘 처음이잖아요..."
"처음? 그래 처음 보는 달이지..."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아쉬운 모습였으나 그녀의 몸을 돌리고선 왔던 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선이는 뭘 빌었는데..?"
"아빠 건강 지켜주시고.. 아빠 사업 잘 되게 해주시고.. 이 딸 사랑해 달라고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우발적으로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 고압선에 감전된 후 튕겨져 나가듯 떨어져선 한 발짝 앞서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쪼르르 뛰어와 벌컥 허리를 껴안으며 쫄망쫄망 걸었다.
풋풋한 머리 내음이 봄 새순보다도 더 진한 향내를 뿜어대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머릿결에 턱을 비비고 있었다.
정말 걔의 아빠가 된다는 건 도저히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차라리 앞서 했던 약속들을 모두 취소하고 연인이 되면 안될까 하고 묻고 싶었다.
< 계속 >
(4) 아빠라는 城
그 길을 어떻게 걸어 올라왔는지 모른다.
선이가 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면 차가 대어져 있는 곳을 지나쳐 한없이 올라가고 말았을 것이다.
정말 그러고 싶은 밤이었다.
"아빠 이리로...!"
나는 발 밑까지 내려앉은 화사한 달빛에 맹인이 된 듯 그녀의 손에 이끌려 더듬더듬 둑을 내려와 차 옆에서 키의 구멍을 제대로 못 찾고 더듬거렸다.
보다못한 선이가 키를 뺏어 구멍에 꽂고 돌렸다.
문고리를 당기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마주서서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까만 눈망울에 떠 있는 달이 보였다.
"아빠 왜요?"
"아니, 아무 것도...."
문이 열리자 저쪽으로 또르르 뛰어가선 반대편 좌석에 올랐다.
그녀의 안전벨트를 끌어 내려주면서 내 팔이 그녀의 가슴에 닿았다.
몰캉한 감촉이 팔을 감전시켰다.
나는 얼른 손을 치웠으나 그 감각은 오래 남아 있었다.
처음 사무실에서 보았던 불룩한 그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아마도 안에 넣어 부풀린 것을 뺀 모양이었다.
왜 이제야 보았을까...?
별 시덥짢은 의문에 골몰하며 마음을 삭이려 했다.
시동을 걸려 키를 돌리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팔이 건너왔다.
"아빠는 참....!"
"응.....??"
나는 정말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선이가 팔을 길게 뻗어 내 안전벨트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몰캉한 감촉이 또 내 가슴을 스쳤다.
그건 여지없이 전신을 감전시켰다.
선이는 끌어내린 벨트를 훅에 끼려 했으나 잘 끼워지지 않아 끙끙댔다.
내 손이 그걸 받아 쥐며 그녀의 손을 덮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살며시 빠져나갔다.
"나는 아빠가 너무너무 좋아!"
한참 후였다.
거의 시내가 가까웠을 때 그녀의 손이 변속기어 훅 위에 올려진 내 손을 덮으며 해온 말이었다.
시내로 들어서서 첫 신호등에 걸려 한참이나 기다렸다가 파란 신호등이 켜지는 걸 보며 다시 출발하면서 말했다.
"나도..."
그녀는 잠시 놓았던 손을 다시 덮었다.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 왔다.
"어디로 데려다 줄까?"
"다방 앞.. 아니 아빠 사무실로..."
"집이 그 근처니?"
"아니에요. 기다렸다가 한(미스 한) 언니와 같이 들어 갈래요."
피서철이라 그런지 도로는 한산한 편이었다.
나는 신호등마다 다 섰다.
정지 신호 앞의 황색 신호에도 무조건 섰다.
그녀와 좀더 오래토록 있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어느 신호등 앞에서 내 손등을 덮은 그녀의 손을 위에서 잡았다.
"네 손 참 작다!"
그냥 민망해서 한 말이었다.
차가 오토이므로 사고가 날 우려는 없었다.
"아빠는 참 땀이 많은가 봐요?"
뭔가 들킨 기분이었다.
나는 창문을 올리고 에어컨을 틀었다.
"땀이 많으신 분은 정도 많다 하던데..."
"나도 그렇게 보이니?"
"당연하죠. 아빠만큼 정 많으신 분이 어디 있다고.. 전 첫눈에 알아 봤다고요."
사무실 옆 주차장에 차를 밀어 넣었다.
텅 비어 있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1층 출입문도 닫혀 있었다.
"다방으로 갈 거니?"
"아빠가 집에 늦어도 괜찮다면 사무실로..."
나는 문을 땄다.
2층으로 따라 올라오며 말했다.
"이제 아침마다 와서 아빠 책상 내가 닦아줄 거예요! 그래도 되죠?"
사무실 문을 열자 팩스의 LED 화면만이 반딧불처럼 파랗게 빛을 내고 있었다.
내가 불을 켜려 벽을 더듬거리는데 그녀가 뒤에서 안아 왔다.
나는 더듬거리던 손을 멈추었다.
"나 아빠의 귀여운 딸이 될 거예요!"
나는 몸을 돌리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반사해 내는 눈망울만 반짝이는 듯 했다.
내가 손을 내밀자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으며 안겨왔다.
"그래, 우리 좋은 부녀지간이 되어 보자꾸나...!"
"고마워요 아빠!"
나는 텅 빈 허공을 올려다보며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허공은 빈 것이 아니었다.
50년 가까이 산 인생의 나락 나락들이 분해되어 흩어진 것들을 고스란히 부여잡고 부활할 곳을 향해 아우성치며 매달려 있었다.
가득, 정말 이제 더 채울 곳이 없을 만큼 가득히 매달려 있었다.
작은 파열음에도 와르륵 쏟아질 것처럼 쌓여 있었다.
그 위에 그녀와 나는 위태위태 서 있는 것이었다.
그때 그녀의 엉덩이가 뒤로 빠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알아차렸다.
내 앞섶이 봉기를 획책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를 떼어내는 순간 불이 켜졌다.
화들짝 놀라는 그녀를 보았다.
본의 아니게 등에 밀린 스위치가 자동으로 불을 켜고 만 것이다.
아마도 내 모습도 그녀 못지 않게 놀란 표정였으리라.
나는 불룩한 앞섶을 감추기 위해 의자 위에 앉았다.
그리고 할 일 없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0시 반이었다.
"너네 몇 시에 마치니?"
"11시.."
"30분만 기다리면 되겠네."
나는 옆에 있는 의자를 내밀었다.
그녀는 다가와 다소곳이 앉았다.
발랄하던 모습은 다 어디 갔는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바지 끝만 밀어 내리고 있었다.
"그래, 그 바지부터 바꾸어야겠다. 이 아빠의 마음을 자꾸 혼란케 해.. 내일 당장 하나 사줄게!"
"난 이게 좋은데..."
"그래도 아빠에게 딴 맘만 생기게 한단 말야!"
나는 말을 내뱉고 속마음을 너무 드러냈다고 후회했다.
민망하여 실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어디다 걸까?
그러나 끝내 내려놓았다.
그때 그녀가 벌떡 일어서더니 내 무릎 위에 와 앉았다.
황망한 일이었다.
아직 식지 않은 그곳이 그녀의 엉덩이에 눌리고 있었다.
당황하는 표정의 나를 그녀는 앙증맞도록 내려다보았다.
난처하여 내가 먼저 눈을 돌려야 했다.
"아빠 부담 갖지 마세요. 저 아빠 애인 되어도 괜찮다고요! 정말 이건 제 진심이에요.."
"안돼! 그건 당치도 않아!"
"왜요? 왜 안 되는 거죠?"
"넌 너무 어려.."
그 말도 실언이었다.
적어도 "넌 내 딸이야!" 정도의 말을 했어야 했다.
"저 딸로서도 잘 할게요...?"
"그래, 그것만으로도 난 행복해. 그것만으로도 난 네게 고맙게 여기고 있다고... 그 이상은 생각지 말자, 우리..?"
"만약 제게 애인이 생기면..?"
뭐라 해야 할까?
'그럼 축하해 줘야지!' 하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 봐요? ...하지만 저 애인은 아빠 말고는 만들지 않을 거예요."
"좀더 지나면.. 자연 달라질 거야..."
"아잉....!!"
그녀의 도발적인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두 팔로 내 목을 껴안은 것이다.
나는 억지로 그 팔을 풀지는 않았다.
여타 부녀지간이라도 그 정도야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옆구리에서 찌릿한 진동이 느껴졌다.
내가 진통을 겪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 또 한번 그 진동이 느껴졌을 때에야 그게 핸드폰이라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옆구리에 든 핸드폰을 꺼내느라 그녀의 허벅지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또 진동이 이어졌다.
그때에야 그녀도 그걸 알아차리고 엉덩이를 돌려주었다.
"네, 진 윤수입니다."
"나야, 근데 너 어디야?"
"여기 사무실..."
"임마 거짓말 마 금방 거기를 둘러 왔는데..."
"금방 들어왔어. 근데 왜?"
"너? 옆에 누구 있니?"
"아니..."
"재밌는 거 있으면 같이 하자아?"
선이의 손이 눈썹을 매만지고 있었다.
하나 뽑아 보겠다는 시늉이기도 했다.
나는 눈짓으로 그만 하라고 시늉했다.
"결정했어?"
"뭐? 아, 그거 내일 하기로 했잖아!"
"그거 말고 지리산?"
"아 그거, 같이 가기로 하자!"
"고마워. 그럼 콘도 계약한다."
"콘도까지..?"
"오래 전에 예약해 둔 거거든..."
"하여튼..."
"그럼 내일 보자!"
그도 이쪽 분위기를 눈치챈 것 같았다.
통화하는 중에 그녀가 기어이 눈썹이 아닌 볼 옆에 난 털 하나를 뽑았으므로 순간 "아!"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기 때문이다.
"야! 너 전화 중인데...??"
그러나 나는 그녀를 와락 안고 말았다.
내 손끝에 그녀의 브레지어 끈이 느껴졌다.
그녀는 벌써 달뜬 숨소리를 내 뒷덜미에다 쏟아내고 있었다.
내 손이 그녀의 바지 끈까지 내려갔을 때 그녀의 음성이 귀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아빠! 오늘 처음인데 제가 아빠께 너무 많은 요구를 한 것 같아요. 미안해요 아빠!"
"아냐, 아냐 네 마음을 다 알아...."
나는 조용히 그녀를 떼어내며 일으켜 세우고 나도 일어섰다.
내려다 본 그녀의 눈가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나는 손으로 그걸 닦아주다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얼굴을 쳐든 채 눈을 감았다.
이슬 젖은 눈을 내려다보며 이마에다 입술을 맞췄다.
파리하게 떠는 몸 떨림이 느껴져 왔다.
나는 그녀를 돌려 세웠다.
그리고 살짝 밀었다.
문을 밀면서 돌아봤다.
아쉬움인가, 안타까움인가?
아니면 고마움의 표시인가 볼에 어색한 보조개를 지어 보이며 사라졌다.
< 계속 >
(5) 여직원으로..
아내의 육감은 놀라웠다.
샤워를 하고 내실로 들어서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하는 거였다.
"준호네와의 파티를 미룰 정도로 중요했나 보죠?"
"파티야 언제든 가능하잖아..."
"준호엄마는 여기까지 왔다 그냥 갔대요!"
"통화를 못 했어?"
"네, 그런데 당신 정말 생긴 거요?"
"뭘?"
"곡해하진 마세요! 전 당신이 하도 신기해서..."
여자의 마음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제발 애인이라도 가지라는 말을 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낌새를 채고 보니 질투가 생기는 건지...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녀의 추궁은 계속되었다.
"나처럼 나이든 여자는 아니겠지요?"
"............................."
"되도록 젊은 여자래야 당신께 이로울 텐데...."
뭘 바라는 걸까?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딸을 들였으면 어떻겠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비록 선이와 몇 번이나 약속했지만 아직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아내도 자신의 속내만 들추는 거 같다고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좀채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점심때가 가까워 송다방에 전화를 걸었다.
마담이 받더니 대뜸 미스 김을 바꿔주려 했다.
아마도 나와 선이가 무슨 섬씽이 안 있었겠느냐고 여기는 모양이다.
섬씽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다.
"마담과 점심이나 같이 했으면 하고...?"
"저와요? 웬일이세요, 고마워요! 미스 김도 데리고..."
"혼자만 나오세요!"
"예, 알겠어요. 어디로 갈까요?"
사무실 옆 골목 안쪽의 한식집에 우린 앉았다.
그녀도 할말이 많다는 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사실 다방은 처음이에요. 3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식당을 전전하다 물장사는 처음예요."
"애들은..?"
"딸 하나 있어요?"
"몇 살이나...?"
"올해 초등학교 들어갔어요."
"고생이 많겠군요..."
의외로 쉽게 얘기가 풀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시킨 술이 먼저 날라져 왔다.
나는 그녀의 잔을 먼저 채워줬다.
그녀도 내 잔을 채우고 술잔을 들며 말했다.
"여자가 술을 먹는다고 욕하진 마세요!"
"그럴리가요. 술도 음식인데 남녀가 따로 있나요."
"호호 고마워요."
잔을 부딪혔다.
무슨 뜻이 있어선 아닐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이혼하고 하도 괴로워서 한 두 잔 하다 보니까...."
"다름이 아니라..."
나는 본론을 꺼냈다.
"처음이시라니까 잘 몰랐겠군요."
그 말에 뭔가 하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미스 김, 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걔가요? 법적으로 따져도 만 21살을 넘었는데요...."
"그러니 처음이지요. 걔 주민등록증 가짜예요!"
"네?"
당장 일어나서 달려갈 기세였다.
나는 너무 흥분하지 말라며 그녀를 말렸다.
그녀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쇼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애들 가짜 주민증을 많이 가지고 다닌 데요. 미성년자는 써주질 않으니까... 그러다 애꿎게 단속에라도 걸리면 업주만 골탕 먹지요."
"미스 한이 보증한다기에... 못된 년들..!! 그런데 사장님은 어떻게..?"
"하도 어려 보여서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낼름 주민증을 보여주더군요. 자세히 보니 얼굴이 아니었어요. 나 군에서 그런 정보를 관리하는 보안대 출신이었거든요. 다그쳤더니 마담에겐 비밀로 해 달라며 털어놓더군요. 걔 이제 17이더라고요. 그냥 두었다간 애꿎게 송 마담만 당할 거 같아서..."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사장님!"
그녀는 그 고마움의 표시인 듯 그녀의 잔을 내게 주며 술을 따뤘다.
나는 그 잔을 단번에 비우고 그녀에게 밀었다.
그녀는 그 잔을 받으며 물었다.
"사장님 어떡해야 할까요?"
"그야 당장 내 보내야죠! 내게 들었다는 말은 말고 슬그머니 걔의 주민증을 다시 보자고 하고선..."
"아마 그래야겠지요?"
"당연히..."
주르르 음식이 나왔다.
그녀는 음식을 먹을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어찌 안 그러랴...
"미스 김이 나가면 미스 한도 나갈텐데..."
"그러니 쫓아서 보내지 말고 달래서 내 보내세요. 그래야 앙심을 안 가지죠. 요즘 애들 얼마나 막 나가는지는 마담도 알 거 아뇨?"
"그러나......?"
"아가씨요? 요즘 IMF라 넘쳐요. 정 안 구해지면 제게 말해요. 친구 중에 소개업 하는 친구도 있으니..."
나만 꾸역꾸역 배를 채웠다.
그녀는 마지막에 나온 전복 요리 몇 점만 먹었다.
기어이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우기기에 그렇게 하고 나중 김 차장과 함께 술 한잔 살 테니 그때 꼭 나오라고 하자 기꺼워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물을 글썽이며 선이가 들어섰다.
"아빠가 그런 거지요?"
"뭘..?"
"언니에게 날 내 쫓으라고...?"
"마담이 뭐라 하던데...?"
"언니 살려주는 셈치고 나가 달라고... 흑흑..."
"그래, 내가 그랬어. 널 내 곁에 두려고..."
"뭐라구요??"
뚝 눈물을 그쳤다.
나는 그녀를 안아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이곳에서 이 아빠를 좀 도와주렴! 그리고 난 널 절대로 안 버리마....!"
"고마워요. 고마워요, 아빠!!"
나는 그녀를 끌고 도심으로 나갔다.
그녀에게 입힐 옷을 사기 위해서였다.
나는 되도록 튀지 않고 얌전한 옷으로 골라 입혀 보았다.
점원은 따님이 아빠를 닮아 미인이라는 말을 해 놓고 실언했음을 느끼는지 어쩔 줄 몰라 했다.
"나 닮았으면 어디다 쓰게?"
"사모님을 닮아 미인이신가 봐요!"
그리고 돌아와선 그녀가 앉을 책상을 주문했다.
책상은 금방 왔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선 좋아서 어쩌지 못해 했다.
나의 기분도 그 만큼 좋았다.
그러나 뭔가 훈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미스 정, 앞으로 넌 미스 정이야! 그리고 사무실이나 남이 있는 앞에서 날 아빠로 부르면 안돼! 무엇으로 불러야 하는지 알겠지?"
"네, 사장님! 호호 미스정? 사장님...?"
"그리고 월급은 없어! 필요하면 용돈으로 타서 써! 대신 네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적금을 넣어 주겠어. 괜찮지?"
"사장님 지시라면 따라야죠. 호호호..."
막힌 아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 일이 남았다.
그가 도망쳐 왔다는 고아원(양육원)에서의 일이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었다.
충길이었다.
"설마 오늘 또 파토내는 거 아니겠지?"
"그럴 리가.. 나도 낯짝이 있지 지엄하신 거래처 차장님을 두 번이나 바람맞힐 수야..."
"알긴 하네. 그럼..."
"잠깐 충길아, 나 사실 여직원 한 사람 넣었어!"
"야-!, 땡보가 웬일이야? 핸폰 아가씨로선 도저히 안되겠다는 걸 이제사 안 모양일세. 하하하.. 암튼 축하해!"
"에끼 놀리긴..."
"다음부턴 이리로 전화 안 하고 사무실 전화로 해야겠다. 목소리 듣고 싶어서... 그런데 오늘 저녁 그 아가씨 뵈어 줄거니?"
"오늘 처음이라..."
"임마 너만 보고 말겠다고? 그건 안 될 걸..."
"야! 야?"
끊어버렸다.
당장 쫓아올 게 뻔했다.
성질도 급한 놈이었다.
회사를 마치자마자 집에도 안 들리고 줄곧 온 모양이었다.
허겁지겁 들어서던 그와 선이의 눈이 마주쳤다.
"야! 이 아가씨..?"
"그래 맞아.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하겠지만 그렇게 됐어!"
"갑자기 컴퓨터 램 카드가 용량이 넘었다고 검색을 중지하네!"
정말 충길이다운 위트였다.
나는 셋 앞에 냉장고에서 캔 음료를 꺼내 놓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 미스 정 송 마담에게서 뺏어왔어!"
"우리 미스 정...? 어느새... 그리고 나와 종씨인 김이 아니었나?"
"그래 얘 성이 정이야!"
"무슨 핑계로..?"
"얘 아직 미성년자거든..."
"나, 기본 메모리도 초과했다고 나온다... 어떡할까?"
선이는 뜻은 알 수 없으나 난처하다는 것은 느끼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때 충길이가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불쑥 내밀었다.
"하하하! 나 이놈 친구 김 충길이요. 미스 정 정말 축하해요!"
선이가 어색하게 손을 잡았다.
나는 괜찮다는 표현을 눈짓으로 보냈다.
"앞으로 우리 친구 많이 도와주소! 마음이 워낙 호인이라 근무하는 데 불편을 안 드릴 거요. 근데 진 사장! 노동법에 저촉되는 거 아냐?"
"아르바이트인데 뭘.."
"하여튼 아가씨 솜씨도 알아줘야겠구만... 이 땡보의 마음을 휘어잡다니..."
파티에는 선이를 데려가지 않기로 하고 그냥 돌려보냈다.
밖으로 나오자 충길이의 차가 없었다.
아침에 마누라에게 차를 뺏기고 이미 애들까지 우리 집에 가 있을 거라고 했다.
차에 올라 집으로 향하며 충길이가 물었다.
"앞으로 어쩔 요량이니?"
"나도 모르겠어. 솔직히 어제오늘 양일간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야..."
"미성년이란 게 마음에 걸린다...?"
"딸로 삼을까 생각중이야."
"그럼 고아야?"
"응..."
"제수씨와도 상의가 끝난 거야?"
"아직..."
"하여튼 넌 영원한 연구 대상이야! 일부터 저질러 놓고 보는 스타일이니까..."
(6) 고백으로 물든 파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부터 고소한 냄새가 났다.
그런 냄새를 온 아파트에다 풍기면서까지 자축 파티를 벌일 만한 일인지 반문했다.
하긴 그때도 그랬다.
충길이와 내가 나란히 차장으로 진급하던 날 그 아파트의 통로 전체가 축제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도 나도 때늦은 파티였다.
동 연배의 친구들은 부장이 되어 있는 마당에...
그럼에도 우린 뿌듯했다.
오랜 가뭄 끝의 단비여서 일까?
같이하는 친구가 있어서였을 거다.
국내에서 명문 그룹이다 보니 지방대학 출신들은 힘을 못 썼다.
그래서 과장 진급 시부터 제동이 걸리는 걸 못 견뎌서 대부분 옷 벗고 나가고 부서장인 부장급 이상은 내놓으라 하는 명문 대학 출신들이 거의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고진감래 끝에 문턱을 밟고 올라섰으니...
양손에다 튀김 재료를 쥐고 있던 제수씨가 나를 보고 인사 대신 눈을 찡긋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에도 뭔가 물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 인사에 왠지 내 몸이 달았다.
충길이는 내 아내에게 다가서며 짓궂은 농으로 인사를 건넸다.
"워이 우리 제수씨, 사장 사모님 되더니 몸매가 더 날씬해졌네!"
금방이라도 안을 듯 다가서자 아내는 들고 있던 행주를 팽개치고 달아나며 외쳤다.
"얘 윤영아, 네 서방 군기 빠졌나봐? 후훗.."
"어때 한번 안아줘라! 젖도 물려주고.. 호호호..."
애들은 모두 작은놈 방에 들어가 편을 나눠 게임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마간 못 봤던 충길이네 애들의 키가 정말 몰라보게 커 있었다.
아마도 이제 쟤들 아빠보다도 커 보였다.
좁은 방에 그런 놈 네 놈이 들어앉아 있어서 마치 시골의 곡식을 넣어두는 광처럼 느껴졌다.
창문틀엔 어느 놈이 피운 건지 꽁초도 얹혀 있었다.
설마 우리 애들 중에...
내가 그들 방에서 나왔을 때 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충길이가 나오고 있었다.
"준호(그네 마누라를 부르는 소리일 듯)야! 우리도 빨리 사장되어 이리로 나와야겠다!"
"왜요?"
"물이 너무 시원하다."
"지하수라잖아요. 거기에다 300미터 암반에서 뽑아내는 육각수라나 뭐라나..."
내가 끼여들었다.
"제수씨도 샤워 좀 하시죠? 요금은 반으로 할인해 드릴 테니..."
"안 그래도 강우아빠 오심 같이 하려고 기다리다 혼자 했어요. 강우아빠와 같이 들어가면 공짤 거 아니에요. 후훗.."
"그랬음 더 비싸게 쳤을 건데요. 때밀이 값까지 받아야 하니까.. 분하다, 분해!"
"지금이라도 당신 아르바이트 좀 해요! 준호 엄마 튀김 만든다고 온통 땀일 거예요."
아내도 뛰어들며 한 말이었다.
껄껄 웃으며 충길이가 거들었다.
"그래, 짐도 그렇게 생각하노라. 짐이 윤허하노라.. 껄껄껄.."
"어명을 거역하면 끽! 이겠지? 어쩐다?? 호호호......"
우린 모처럼 옛 시절도 돌아간 듯 찐한 농을 즐겼다.
문이 열린 애들의 귀엔들 왜 안 들어갔겠냐마는 워낙 오래 전부터 들어오던 어른들의 그런 농담이라 그들도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다른 집 사람들이 와 들어보면 도저히 납득이 안 될 그런 일이리라...
성질 급한 충길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어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욕실로 들어갔다.
서로의 집에선 주인과 객이 따로 없이 살아온 우리들이었으므로....
욕실로 들어가 옷을 모두 벗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왠지 내 물건은 벌떡 서 있었다.
욕실 안에서 그 모습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방금 그 농담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선이를 무사히 내 품안으로 끌어들인 탓일까?
밖에서도 그러했을지 생각하니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그걸 성큼 쥐고 쓰다듬어 본 뒤 낮 내내 땀에 저린 몸에다 물을 뿌렸다.
물은 정말 차가웠다.
등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건만 아랫것은 시들지 않았다.
제발 사그라들기를 주문하며 찬물을 몇 번이나 끼어 얹었다.
그럴수록 더욱 고개를 쳐드는 모습이 뭔가 항명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대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젊은 날의 그때를 회상하며 수음을 서둘렀다.
거울을 쳐다보자 끙끙대는 내 모습이 가관이었다.
이것이 안 되어 마누라 위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리던 게 불과 몇 일 전의 일이었는데 아까운 그걸 이렇게 허비해야 하다니...
허연 물이 허공을 갈랐다.
거울 위에도 그 방울이 튀어 주루룩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샤워 콕을 들고 그것들은 씻어 내렸다.
내 그것도 그때에야 슬며시 고개를 내리 깔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충길이 혼자 벌써 두 병을 비우고 있었다.
아내와 제수씨는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충길이가 술잔을 내게 밀며 말했다.
"야, 축하한다!"
"부끄럽네. 자네 도움이 없었으면 언감생심 꿈이나 꿀 일인가?"
"다 그렇게 사업하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 말게! 그리고 너와 내가 언제 니꺼 내꺼 따지며 살았나... 며칠 있다 지리산에서 그런 맘 다 묻고 옴세??"
그 말을 준호 엄마가 들은 모양이었다.
"같이 가기로 결정했어요? 강우(큰놈 이름 : 나의 아내)야! 같이 가기로 했단다!!"
"당신 정말 그러기로 했어요?"
"안 그랬다간 동네가 시끄러울 것 같아서...."
"겹 경사네!!"
아내는 겹 경사라 할만큼 좋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쪽에 살 땐 매 여름마다 그랬다.
그러다 지난해 내가 회사를 뛰쳐나와 실업자로 떠돌면서 휴가는커녕 마치 실심한 사람처럼 외톨이가 되어 있던 내게 감히 휴가 얘기도 못 꺼냈던 그녀였었다.
우르르 몰려나온 애들과 모처럼 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만찬이었다.
우리들에게 파티란 이런 것이었다.
남들처럼 풍선을 달고 케익을 끊고 그러한 것보다 훨씬 우리다운 것이었다.
역시 장성한 애들의 먹성 좋은 모습은 우리 어른들의 행복이었다.
아까 창틀에 놓여진 담배꽁초를 보긴 했지만 다들 착하기만 한 애들이었다.
그들이 숟갈을 놓고 우르르 물러가자 너른 거실에서 우린 마치 뼈만 남은 생선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충길이와 먹다만 맥주를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
조금 있자 작은 상에다 안주를 차려 온 제수씨가 충길이의 술잔을 뺐으며 말했다.
"당신 이제 고만 해요! 나 밤 운전 못한단 말예요. 대신 내가 대적할 테니까..."
"에고, 그 놈의 차로 또 족쇄를 채우려네! 차야 세워두고 내일 가져가면 되지 뭐?"
"내일 아침 일찍 또 출장가야 한다면서, 뭘!!"
"그래라. 자넨 벌써 취했어. 큰방에 가서 한숨 자!"
"정 그러면 난 제수씨 설거지나 거들어야겠다...!!"
"그래요. 강우 엄마더러 좀 재워 달래시구려... 자 한 잔 주쇼??"
나는 제수씨의 잔을 채워 주었다.
밖에서 아내가 "어맛!!"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충길이가 짓궂은 장난을 치는 모양이었다.
"하여튼 저 친구는....?"
"어맛! 강우 아빠 질투 느끼나 보네??"
"질투는.. 새삼.. 자 받아욧, 장군!!"
그녀는 단번에 비우고 밀었다.
"멍군이얏!!"
그때 아내가 뛰어들며 말했다.
"나도 한잔 줘욧! 한번 안겨준 대가로 설거지 벗.었.다. 네 서방 그냥 부려먹는 거 아니라는 거 너도 들었지?"
"잘 했어! '여자는 용감했다!'는 말도 있잖니. 후훗.."
"정말 차 몰고 갈거니?"
"저이 내일 일찍 출장이래."
"여기서 자고 아침에 바로 가면 되지 뭐? 애들도 방학인데..."
"그럴까?"
"그러세요! 고속도로 타는 출장지라면 여기가 훨씬 가깝지.."
제수씨가 나갔다 오더니 아침 회사에 들러 서류를 챙겨가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이었다.
아내도 일어서서 둘이 나가버리자 졸지에 홀로 되고 말았다.
술이 오르는지 이맛살에 땀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선이가 그 길로 나가서 혹시 다방에 들러지나 않았나 걱정되었다.
다시는 거길 가지 말라는 당부를 빼먹었다고 뉘우쳤다.
낮에 백화점에서 내가 골라준 옷을 갈아입은 모습으로 마치 패션 쇼라도 하듯 뱅글 돌아 보이며 행복해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옷을 받아들고 나오며 남들이 보든 말든 당돌하게 내 옆구리를 끼던 모습이 떠올랐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아내였다.
"낙찰 건으로 그래요? 그건 저도 그랬어요."
"아 그래! 너무나 꿈만 같아서..."
나는 그렇게 우물우물 넘겼다.
그러나 내 속내의 반 이상은 그녀에게 들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제수씨가 들어왔다.
"준호 아빠 잠 드셨니?"
"응! 우리 그 양반 베개만 고이면 잠드는 분 아니니.."
"난 네게도, 준호 아빠에게도 너무 고마워서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
"야, 그런 말 마! 울 그이 이번만큼 기뻐하는 거 처음이야. 내가 되려 고마워해야지..."
"아무튼..."
둘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한 일 없는 내가 되려 민망했다.
그걸 눈치챈 제수씨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명색이 오늘 강우 아빠의 낙찰 기념파티인데 여기서 이렇게 시간 죽일 수 있니? 내가 한방 쏘마, 나가자!"
"어디를...?"
"늙은이들이 갈 데가 어디 있겠니? 밤바람이나 쐬러..."
우리는 그녀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때때로 강바람이 불긴 했지만 여전히 더웠다.
이런 날 술을 더 먹는 건 무리였다.
그냥 그렇게 걸어서 시원한 강으로 갔으면 했다.
그러나 그녀는 택시를 세웠다.
앞자리에 탄 제수씨는 기사에게 어디로 가자고 속삭였다.
옆에서 손을 잡아오는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어디를 가는 건지 차는 강변을 한동안 달리더니 신호등에서 핸들을 90도로 꺾어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를 내려놓은 곳은 휘황찬란한 네온이 번쩍이는 나이트클럽 앞이었다.
"여기로 가자고 했니?"
"좋찮니? 이열치열 땀 좀 빼자고..!!"
오히려 대접해야 할 우리로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옆집에서 살던 그 집에서도 이런 곳에 같이 와본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말술이라도 마다 않는 충길이지만 몸을 서로 비비는 춤에는 젬병이었다.
제수씨는 본 적이 없지만 활달한 성격으로 보아 그 정도는 아닐 듯 했다.
대신 우리 집에선 반대인 셈이었다.
동적인 활동에는 거의 취미가 없는 아내에다, 나는 동적인 활동을 즐기는 편이었다.
하긴 요즘의 나는 많이 변하여 서서히 아내를 닮아가고 있는 상태였다.
모든 것에서 자신감을 잃고 만 탓이리라..
벅적대는 속에서 자리를 잡고 앉은 앞으로 술이 날라져 왔다.
벌써 제수씨는 어깨를 우쭐거리고 있었다.
한잔씩들을 비우자 그녀는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온통 젊은이들 투성이인줄 알았는데 앞엔 우리 나이 뻘들도 제법 보였다.
생각 해보니 젊은이들은 모두 산이나 바다로 떠나고 남은 늙은이들만 기껏 여기 와서 더위를 식히는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제수씨는 생각보다 춤을 잘 추었다.
기껏 엉덩이만 실룩대는 아내를 요리조리 가르치는 모습 같았다.
나는 그러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나름대로 땀을 뺐다.
요란한 음악이 멈추자 우리는 자리로 돌아왔다.
"강우 엄마 가두어만 두지 말고 이런 데도 좀 데리고 다니고 그러세요?"
"그런데 제수씨는 충길이가 춤에는 젬병인데 어떻게 그렇게...?"
"시에서 하는 문화 스케줄이 많아요. 맞아, 너도 그런데 한번 다녀봐?"
"내가 시간이 어딨니??"
"이봐 얜 이렇다니까..."
아내는 술만 꾸역꾸역 마셨다.
다음에 또 음악이 시끄러워지자 함께 나갔으나 아내는 도중에 포기하고 들어가 버렸다.
내가 아내를 잡으려 했으나 제수씨가 나를 말렸다.
"싫은 건 싫은 거예요. 우리끼리 땀이나 빼요!"
나는 그녀를 접대하는 입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몸놀림에 맞추어 나도 정신없이 흔들었다.
런닝 안이 젖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콧잔등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다시 음악 소리가 느려졌다.
자리로 돌아가려는 내 손을 그녀가 잡았다.
저쪽 자리를 보자 등을 돌린 아내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게 보였다.
몹시 피곤하리라...
내 어깨에 그녀의 손이 얹혀져 왔다.
그리고 맞잡은 손을 이끌었다.
나도 더 이상 수동적일 수만은 없었다.
그녀의 허리를 감아쥐었다.
낭창한 허리가 단번에 안겨져 왔다.
그녀는 그간 배웠다는 춤을 시험이라도 하듯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그러면서 가슴과 허벅지로 내 몸을 터치했다.
나는 그렇게 몸을 비비면서 틈이 생길 때마다 그녀의 목뒤로 아내가 있는 자리 쪽을 살폈다.
아내는 그 모습으로 잠이 든 건지 아예 나를 그녀에게 맡겨버렸다고 마음을 비워버린 건지 매번 그 자세로 기대어 있었다.
음악이 점점 늘어지면서 엿가락처럼 곧 끊어질 듯 애를 태울 때 그녀는 내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강우 아빠는 여전하시죠?"
나는 무슨 말을 묻는 건지 뜻을 몰라 "무슨 뜻..?" 하고 반문했다.
그때 그녀의 허벅지가 내 그곳을 건드렸다.
내 것이 불룩해 있다는 걸 나도 그제야 알아차리고 몸을 뒤로 뺐다.
"울 그인 맨날 술만 먹다보니.. 벌써... 서너 달이 지난 거 같아요!"
나로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오늘만 하더라도 내 사무실에서 선이에게 은근히 헛물을 켜든 그가 아니던가?
그럴 수가...?
"혹시 여자라도..?"
내가 할 말이 아니었으면서도 불쑥 그렇게 묻고 말았다.
어깨에 올려진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차라리..."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한 말과 비슷했다.
여자들의 속성이 정말 그러할까?
아냐, 아니야... 그건 아닐 거야!
나는 그녀의 허리를 두른 손으로 등을 쓸어 주었다.
순간 그녀의 몸이 갑자기 도전적으로 비벼왔다.
"어떡해요? 어떻게... 해요...........?"
"제수씨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일시적인 일일 겁니다...!"
"제발.. 제발 그랬으면...."
그녀의 허벅지가 앞섶을 눌러 왔을 때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나도 잠시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얼마 후 극복이 되더라구요..."
"강우 아빠도...?"
"네! 그런데... 그런데 제수씨 얼굴을 떠올리다 저절로 살아났어요."
"저를요?"
"네! 그러니..."
"아아!"
음악이 바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 자리로 끌고 들어왔다.
아내는 우리가 들어오자 눈을 떴다.
"너 몹시 피곤한 모양이구나?"
"네게 정말 미안해!"
"그래, 그럴 거야. 이제 우리 가요! 어지간히 땀도 뺐으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충길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우리 앞에 수박을 쓸어 놓은 아내는 거실 소파에 누워버렸다.
잠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제수씨를 본 나는 거실에 불을 끄고 서재로 들어가자고 했다.
아내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편히 잠들게 해 주고 싶어서였다.
재수씨도 내 마음을 읽고 내실을 뒤져 얇은 이불을 찾아나와 아내에게 덮어주고 와선 내 앞에 앉았다.
"술 한잔 더 하실까요?"
"그래요. 가볍게..."
나는 찬장 속에서 진을 꺼내고 냉장고 안의 사이다를 꺼내어 어색하게 칵테일을 만들었다.
어디서 들었거나 배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언젠가 그렇게 섞어 먹어보니 먹을 만 해서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걸 들고 그녀 앞에 내어 밀자 신기한 듯 컵 안을 살피며 물었다.
"이거 양주 아네요?"
"마셔 보세요? 먹을만 합니다."
"그래도 이건 꼭 애 오줌 같다아..? 호호호...!"
내 다리를 쿡 찔렀다.
농담이라는 뜻이었다.
한 모금을 마셔본 그녀가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방안에 든 선풍기가 돌면서 그녀의 치마를 걷어올렸다.
내 시선이 그곳을 스친 것을 그녀가 본 듯 했다.
"제수씨, 아까 그거 너무 상심 마세요! 그놈 그렇게 주저앉을 놈 절대로 아니니..."
내 시선이 들킨 데에 대한 시선 회피용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가망 없다는 뜻인 듯 했다.
아니면 포기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그랬는데요?"
"거의 1년 가까이..."
"저와 비슷하군요. 저의 경험으로 보면 당하는 나보다 강우 엄마가 더 놀라더군요. 그런데 그게 더 위축시킨다는 걸 병원 가서야 알았어요."
"강우 아빤 병원까지 가 봤군요. 그러나 우리 준호 아빤 거기 갔다 나오면 인생 끝나는 줄 알아요!"
"전들 제 자의로 갔겠어요. 강우 엄마 성화에 못 이겨서 갔지요. 그러나 가봐도 별 수가 없더군요. 의사가 하는 말이 기계도 50년을 쓰는 기계가 있냐며 이제부터 약물에 의존하라 하더군요. 빤히 보이는 장삿속만 느끼게 하더군요."
"그런데 어쩌다 다시...?"
그녀의 생각을 했다는 얘기를 다시 듣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치마를 슬쩍 내려봤으나 바람에 안 들리도록 손으로 앞을 누르고 있었다.
"글쎄요? 되도록 자극이 갈만한 것들을 떠올리려 하다보니..."
"강우 아빤 저의 알몸조차도 본 적이 없잖아요?"
"왜요? 꼭 알몸을 봐야 하나요?"
"하긴 한 통로 옆집에서 10년 이상 살았으니... 볼 거 못 볼 거 다 보였을 거예요."
"허허허..."
"솔직히 저도 보았지요. 우연히... 그리고 애 아빠와 그러면서도 강우 아빠를 떠올린 적도 있지요.."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그녀가 잔을 비우고 나자 두 잔 모두 비었다.
나는 다시 칵테일을 만들기 위하여 주방으로 나왔다.
가는 아내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불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진과 사이다와 얼음, 그리고 칵테일 할 병을 챙겨 들고 서재로 다시 돌아와 책상 위에다 그것들을 주르르 늘어 넣고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신기했던지 그녀도 일어나 뒤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병 속에 진과 사이다, 그리고 얼음을 채우고 바텐더의 그들처럼 병을 흔들기 시작했을 때 뒤에서 허리를 감아오는 손길이 느껴졌다.
불편했지만 그대로 하늘로 치켜올리기도 하고 바닥으로 내리기도 하며 그들처럼 폼을 내어보려 마구 흔들었다.
"제발.. 우리 준호 아빠 좀 살려 주세요?"
그 말은 말뜻처럼 충길이의 부전증을 살려달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의사도 아니고,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그녀가 믿는 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말은 그녀를 달래어 달라는 뜻인 듯 했다.
나는 흔들던 손을 멈추고 엉거주춤 돌아섰다.
그녀는 내 목에 팔을 두르며 얼굴을 목에 기댔다.
"너무 낙망하지 말아요. 나도 충길이도 제수씨나 우리 집사람을 같은 반려자로 여긴지 오래라 서로 채울 수 없는 게 있다면 누가 채워 주어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제수씨나 강우 엄마도 같은 생각이라 여겨요. 하지만 자칫 그러다 충길이를 버릴까 그게 두려운 거예요. 우리 힘을 모아 옛처럼 같이 젊어져야 하지 않겠어요?"
그녀의 손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몹시 부끄러워할 말을 내가 했구나 하고 느꼈다.
얼마나 무안하고 자신이 요구한 것이 또 얼마나 민망할까?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칵테일 병을 내려놓고 손을 내리며 돌아서는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의 가슴에 손을 두르고 그녀의 목에 입술을 갖다대자 와락 돌아섰다.
입술이 겹쳐졌다.
"윤수씨 미안해요! 미안해요...!"
"제수씨 사랑해요! 사랑해요! 꼭 같이 사랑해요...!"
"저도 꼭 같이...."
그녀의 손이 가슴 밑으로 내려 왔을 때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녀도 억지로 내 손을 뿌리치고 밑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오늘은 내가 준비가 미흡해요. 바로 어젯밤 쏟은 걸요. 이건 단지 물거품일 뿐일 거예요. 그러니.. 그러니.. 서로 만족할 날에......?"
"알았어요. 그러다 윤수씨마저 나락을 떨어지는 날은 우린 모든 희망을 잃게 되니까.. 알았어요.. 고마워요 윤수씨!"
그녀는 다시 다소곳이 앉았다.
나는 하다만 칵테일 춤을 다시 추기 시작했다.
그를 올려다보며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마음이 진정되었다는 뜻이었다.
서로 미안함이나 민망함 따위도 다 날려버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 계속 >
(7) 명분 쌓기
충길이네가 우리 집을 떠난 것은 새벽 세시가 넘어서였다.
다 떠난 뒤 나와 애들이 합쳐서 아내를 안방으로 옮기려 했을 때에야 아내는 눈을 뜨고 충길이네를 찾았다.
아내는 눈을 떴으면서도 내 목을 붙들고 그대로 안고 들어가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침대 위에 털썩 내려놓자 내 목을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이를 지켜보던 애들이 민망하여 물러갔다.
"아깐 정말 미안했어요?"
"당신이 너무 피곤해서 그런데 뭘...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그래도 오늘 당신이 주인공이잖아요!"
"덕분에 제수씨와 춤 한번 잘 추었잖아..."
"뚱보 나보단 낫죠?"
"질투인가?"
"질투는? 할망구가 다 된 나이에...."
"준호네도 걱정이 있더라.."
"나도 들었어요. 당신과 꼭 같은 거더만요."
"그래, 나는 충길이 놈은 괜찮으리라 여겼는데..."
"글쎄 말예요. 우리도 어지간히 산 모양이유.."
"좋은 방법이 없을까?"
"당신처럼요..?"
그녀는 알고 있는 듯 했다.
여자의 육감은 무서운 거다.
"내가 왜?"
"당신 준호 엄마와 하고 싶어하잖아요!"
"..................................!"
"준호 아빠도 그럴까요?"
"글쎄............?"
나는 충길이를 살리는 데 당신이 나서줄 수 없겠냐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우린 그 이야기를 끝으로 오랜 침묵 끝에 잠이 들었다.
작금 양가에 불어닥친 시련은 생각보다 침울한 위기의식을 안겨주고 있었다.
어쩌다 위기를 넘긴 듯한 나도 언제 침몰할 지 모를 함선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의식을 버릴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사무실로 나갔을 때 선이가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아뿔사 그녀에게 키를 주는 걸 잊었다는 생각에 언제서부터 기다렸냐고 물었더니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고 말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말자 내 서랍에 든 키 묶음에서 한 세트를 내어주자 호주머니에서 꺼낸 열쇠고리에 주렁주렁 달았다.
자랑스런 모양이었다.
집에서 들고 온 커피포트를 건네주며 한잔 끓여 보라 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시범을 보이는 셈치고 내가 끓여야 했다.
"아빠. 어제 파티 즐거우셨어요?"
"또?"
"아, 사장님!"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치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딸을 못 키워본 나로선 그녀의 모든 행동이 그저 귀엽고 깜찍할 뿐이었다.
더구나 누이동생조차도 없이 자란 나라서 더하리라...
"요건 요만큼, 요건 요만큼.."하며 끓인 물에 커피를 타는 법을 가르치는 데 팔꿈치에 와 닿은 그녀의 몰캉한 가슴살이 느껴졌다.
"자, 요거 미스 정 마셔 보고 내 잔도 한잔 타 봐?"
그녀는 마냥 즐거운 듯이 티스푼으로 내가 한 대로 커피를 타 와서 내 앞에다 밀었다.
나는 그걸 마시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녀도 자신의 잔을 마시다가 또 한번 머리를 쳤다.
사무실에 딸린 화장실로 쪼르르 뛰어 들어가더니 걸레를 짜들고 나와선 책상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밤새 날아온 전문을 뒤적이며 그 모습을 은근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거울을 닦다가 내 눈과 마주쳤다.
나는 무안하기도 하여 눈을 찡긋 했더니 그녀도 찡긋해 보이며 키득키득 웃었다.
이런 감정이 계속된다면 오래 못 버티고 내가 먼저 무너지고 말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불러 앉혀 놓고 전화가 올 때는 내 핸드폰 전화를 가르쳐 주고 어느 회사의 누구인지 적어놓아라 하고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혼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데에 난감해 하는 표정였으나 앞으로 그럴 시간이 더 많을 것이므로 미리 훈련시켜야 할 일이기도 했다.
막상 나오긴 했지만 갈 데라곤 막연했다.
충길이도 출장을 떠나고 없을 것이다.
나는 무작정 차에 올랐다.
꽁꽁 닫친 차안은 찜통이었다.
나는 창문을 모두 내리고 에어컨도 틀었다.
어디로 가야할까?
어디로 가서 시간을 보내어 볼까?
선이가 없을 땐 필요 없던 근심거리가 생긴 꼴이었다.
그녀를 들인 게 잘한 일일까 따지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시내 한복판의 젊은애들을 중심으로 한 스넥식 식당이었으므로 손님은 별로 없었다.
방학중이라 아무래도 비수기인 셈이다.
개업할 때 와 보곤 처음이라서인지 아내는 웬일이냐는 표정이었다.
"그냥 시간도 좀 있고 해서... 그런데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 인건비라도 빠지나?"
"사돈 남 말 하네요. 하긴 당신은 이제 날개를 달았으니..."
"허- 내가 괜히 왔네.."
"일로 앉아요. 당신 안 피곤하세요?"
그때에야 의자를 내어주며 앉아라 했다.
빙 둘러보니 구석구석 붙어 있는 장식품들이 꼭 아기들 방 같았다.
아니, 소녀들의 방이라는 게 맞을 것이다.
주로 중.고등 학생들이 들리는 곳이니 당연한 장식이리라..
갑자기 선이를 이곳에다 아르바이트시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전문학교 다니는 여학생을 타임으로 들였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안 보이네?"
"방학이라 보냈어요. 방학 끝나면 또 부를 거예요."
"우리 애들을 시키면..?"
"그 덜렁이들을.. 하루도 못 베길 걸요. 접시나 깨고..."
"당신 자식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냐?"
"저도 생각 안한 게 아네요. 하지만 왠지 싫었어요..."
아내가 그 말을 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집은 가난하여 장녀인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하여 자신의 학교는 물론 동생들의 학교도 마치게 했다.
그런 아픈 과거사를 자식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선이 이야기를 꺼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사무실에 여직원 들였어!"
"언제요?"
"어제 데려와 오늘부터 근무시켰어."
"그럴 때도 되었지요. 이때껏 혼자 버텨 왔는데 말벗도 되어주고.. 남자가 걸레 들고 설치는 일도 없을 테고...."
아무튼 다행이었다.
"당신에게도 한번 보여줄 게?"
"호호.. 그렇게까지야.. 암튼 축하해요!"
"별 걸로 다 축하 봤네, 그려. 하지만 당신도 좋아 할 거야! 애가 참해!"
"어련히 알아서 했을라고... 그런데 그만큼 참하다면 내가 질투내면 어쩔래요?"
"두 여자 속에 낀 행복이나 누리지 뭐.. 껄껄껄..."
나는 그쯤에서 일이 바쁘다며 그곳을 나왔다.
들어갈 때는 한가하다 했다가 바쁘다 하고 나왔으니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신경 쓰지 말자고 맘을 비웠다.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책방에 들러 책 몇 권을 샀다.
왜 이렇게 빨리 다녀오느냐는 표정의 그녀 앞에 책을 내밀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테니 그때마다 책이나 읽어!"
"사장님! 딱 한번만 아빠라 할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의자 옆으로 다가오며 "아빠 고마워요! 사랑해요!!" 하며 내 볼에다 입술을 콕 찌르고 물러갔다.
내 볼은 여지없이 감전되어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내 앞에서 등을 보인 상태로 그 책들을 뒤적이다 그 중 한 권을 읽는 모양이었다.
내가 골라온 책은 채근담의 글처럼 마음의 수양을 닦는 수필집 한 권과 그녀 같은 소녀들이 좋아할 만한 시집 한 권, 그리고 유머집. 그렇게 세 권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그중 유머집부터 보는 모양이었다.
책을 읽으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가지런한 까만 머리칼 밑으로 뽀얗게 드러난 목살이 침을 꼴깍 넘어가게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뒷문을 열고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거기는 사무실에 딸린 조그만 베란다였다.
전에 세 들었던 이들이 박았던 못 자국들이 여기저기 구멍을 내고 있었고 쓰지 않아 하얗게 먼지만 쓰고 있는 보일러도 있었다.
아마도 여기서 기거하며 가스통까지 설치하여 밥도 해 먹고 했던 모양이었다.
하기는 화장실 옆쪽에 방도 있었다.
나는 지금 그곳을 납품자재를 쌓아두는 창고로 쓰고 있었다.
입에 문 담배를 비벼 껐다.
안으로 들어온 나는 자재창고의 문을 열었다.
"미스 정 이리 와봐!"
"왜요?"
"너 여기서 살면 어떻겠니?"
"여기서요?"
자재가 꽉 들어찬 그곳을 보며 그녀는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여긴 원래 방이었어. 이런 것들 다 치우면 방이 되지. 보일러도 깔려 있다고...?"
"그렇지만..."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니야. 일단 휴가 다녀와서 이 자재들은 뒤쪽에 있는 창고를 얻어 모두 치우고 방으로 꾸며 놓을 테니까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아..."
"사장님이 그러시라면...."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까만 눈망울로 내가 좋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표정을 내보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내 가슴으로 콩닥콩닥 뛰는 그녀의 맥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나는 우리 선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줄 거야! 또 그러고 싶어!!"
"저도요...!"
우리가 포옹을 풀은 건 전화벨 소리 때문이었다.
그녀가 쪼르르 뛰어가 전화기를 들었다.
"네, 윤수산업입니다. / 계신데 누구시죠? / 아, 몰라 뵈었습니다, 사모님! 곧 바꿔드릴게요!"
아내인 모양이었다.
"난데, 왜?"
"여보 점심 사줘요! 나 문 닫았어요..."
"벌써..?"
"날도 더운데 파리만 날리고.. 몸도 피곤하고.. 그리고..."
"알았어! 내 곧 그리로 가마."
"여보, 내가 가면 안 될까요?"
"알았어! 알아서 데리고 갈 테니 거기서 기다려!"
아마도 새 아가씨가 궁금하여 못 견딜 지경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질투한다고 보진 않는다.
다만 우리만의 城에 해방꾼이 아닐지 보고싶을 것이다.
선이도 사태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미스 정 밥 먹으러 가자! 내 마누라 앞이니 실수해선 안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울 앞에서 머리를 다듬었다.
그녀를 태우고 아내에게 가면서 별 말은 해주지 않았다.
아직 철없다지만 자신의 앞가림쯤은 할 줄 아는 애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죄를 고해성사 받으러 가는 기분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무슨 죄가 있을까?
아내의 식당이 가까워지자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긴장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차가 서고 아내가 내 차를 알아보고 걸어 나오자 그녀는 차에서 내려 아내에게 꾸벅 절을 했다.
의외로 아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울 그이 많이 도와주세요!"하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자 안심이 된 듯이 뒷문을 열어주며 먼저 오르게 한 뒤 같이 뒷좌석에 앉았다.
"우리 냉면 먹으러 가지?"
"좋아요!"
나는 다시 차를 몰며 룸미러를 보자 둘은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곧 냉면 집 앞에 그들을 내리고 안에다 차를 대고 나도 합세했다.
둘이 미소까지 지은 모습을 보니 벌써 뭔가 통했나 보다 느꼈다.
둘을 맞은 편에 두고 마주 앉았다.
"시켜야지?"
"벌써 시켰어요. 당신 물냉면 할거죠?"
"응!"
"우린 비빔 시켰어요."
"벌써 따돌리네...!"
그러나 내 말은 안도의 소리였다.
아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유선이는 어떻게 알고...?"
"언니 집에 놀러 왔다가..."
말까지 놓는 걸 보면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물은 다음 말에 나는 긴장했다.
"부모님도 알아?"
"전 부모님이 안 계셔요."
"저런... 쯧쯧...!"
선이는 의외로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런 모습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올해 몇이지?"
"열 일곱이에요!"
"그럼 아직 학생이겠네?"
"그만 뒀어요. 제가 학교 다 다닐 처지도 못 되고.. 꼭 학교를 나와야 좋은 일 한다고 여기지 않기에 제 소신껏...."
"생각보다 너 어른스럽구나!"
아내는 내 얼굴을 쳐다봤다.
잘 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이런 철부지를 데려다 앉혔느냐고 핀잔하는 걸까?
곧 냉면이 나왔다.
냉면 그릇과 함께 놓여진 가위를 내가 들었다.
그녀가 그걸 들고 잘라주는 경박함을 아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냉면을 먹을 때 그 아무도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젓가락을 놓으며 아내가 물었다.
"너 이 땡보 아저씨한테 월급은 얼마나 받기로 했니?"
"주시는 대로 받기로 했어요. 전 아직 아르바이트생이니까요!"
"그래도 그건 그러는 게 아니다. 너 그러다 차비도 안 되는 돈을 주면 어쩌려고...?"
"설마... 그래도 한달 후 지켜봐야지요. 후후..."
"아무래도 당신 이 아가씨한테 백지수표 뺏길 거 같은데..? 호호호..."
"하하하.."
나는 허탈하게 웃긴 했지만 아내의 말속에 뼈가 있음을 느껴야 했다.
택시를 잡아 아내를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녀에게 잘 했다고 말했다.
사무실에 가까워질 무렵 그렇게 무덥히던 하늘에서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차 앞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의 거센 소낙비였다.
윈도우브러시를 최대로 올렸건만 10m 앞이 채 안 보였다.
나는 도로를 기다시피 하여 겨우 사무실 옆 주차장에 차를 밀어 넣었다.
둘은 내릴 용기를 못 내고 멍하니 차창을 타고 내리는 빗물만 보고 있었다.
어쨌든 그간의 무더웠던 체증이 다 씻겨 내리는 거 같아 속은 후련했다.
그런데 먼저 용기를 낸 건 당돌한 그녀였다.
문을 열자마자 비를 뚫고 철벅철벅 뛰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사무실을 향해 뛰었다.
그 짧은 거리임에도 내 와이셔츠는 온통 젖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의 서로를 보고 히죽 웃었다.
그녀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도 뒷 베란다로 나가 와이셔츠를 벗어 물기를 짰다.
넌닝도 벗어 짜야했다.
물기를 대충 턴 와이셔츠만 입고 돌아 왔을 때 전화벨이 울고 있었다.
송다방의 미스 한이었다.
"미스 정 전화 받아?"
"누구세요?"
"미스 한!"
"좀 있다 건다 해 주세요!"
나는 그렇게 전했다.
걔는 저 안에서 뭘 할까?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창 밖으론 아직도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또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아내였다.
집에 도착했다면서 비 안 맞았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말했다.
애는 참한데 아직 어린 게 마음에 걸린다며 자세한 얘기는 집에서 하자며 끊었다.
충길이도 하던 말이었다.
나의 시선은 자꾸 화장실 쪽으로 갔다.
안에서 우두둑 물소리까지 들리는 걸로 보아 그 안에서 아예 샤워를 하는 모양이었다.
내 아랫것이 서 있다는 건 안 만져봐도 느낄 수 있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긴 그것이 심한 갈수기에 단비를 만난 듯 요즘 들어 부쩍 시도 때도 없이 융기하는 모습이 생경했다.
어쩌면 마지막 불꽃을 예고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러다 다시는 떠오르지 못할 늪으로 모습을 감춰버릴 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긴 연기 너머로 정신없이 쏟아져 내리며 유리면을 핥고 있는 빗물이 보였다.
저처럼 우리도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몸부림치다 옆에 타고 내리는 빗물에 엎쳐지고 강물에 휩쓸려 결국 무심의 바다로 가고 마는 인생이리라..
그리고 더러는 까만 아스팔트 위에서 부풀어오르는 열기에 분해되어 증발하는 빗물처럼 미증유의 삶을 살다 증발하고 말리라...
그래서 50대 이후의 삶은 그간의 오랜 경륜에도 불구하고 조급해지고 쉬이 무기력과 타협해버리는 것이리..
"사장님! 여기선 금연이예욧!!"
나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나온 걸까?
뺏어든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는 모습을 나는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이 가리키는 쪽을 향해 눈을 돌려야 했다.
큼지막하게 쓴 『금연』이란 문구가 벽에 붙어 있었다.
아마도 내가 오전에 아내에게 갔을 때 써 붙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순간순간 놀라고 있었다.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과 순간 순간의 재치가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녀가 계속 내 곁에 머문다면 쉽잖은 복덩이가 되리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와 얼굴 그리고 옷매무새까지 말끔해져 있었다.
그때 담배를 뺏어 끈 것이 미안했던지 내 곁으로 다가서서 수건으로 비에 젖어 있는 머리를 털어 주고 그녀의 서랍에서 꺼내어 온 빗으로 머릿결을 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 와선 가르마를 왼쪽으로도 해 보고 오른쪽으로도 해 보고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는지 살피는 모습은 자못 진지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후다닥 껴안았다.
짐짓 놀랐으나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머릿결 내음이 콧속을 가득 채웠다.
"넌 참 나를 못 견디게 하는구나!"
"전 괜찮아요. 아빠가 조금이라도 젊어지신다면..."
"그래, 난 네 아빠야! 애인보다는 아빠가 되어야겠지...!"
나는 슬며시 그녀를 감았던 손을 풀었다.
그녀도 몸을 추스르며 일어섰다.
나는 그녀가 그대로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내 무릎 위로 사뿐히 앉는 것이었다.
"아빠! 저 진짜 아빠 딸처럼 안아줘요?"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그녀를 감았던 손을 풀 때 너무나 허전했다.
피가 섞이지도, 오랜 인연도 아니었으면서도 둘간에 우발적으로 설정한 윤리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던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두 다리를 벌린 사이로 그녀를 깊이 안아 들였다.
다행히 아래 그것도 껄떡댈 정도로 날뛰고 있지 않은 건 요행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뒤로 기대어 오며 내 어깨에 뉘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늘 아빠가 있다면 이렇게 안기어도 보고.. 투정도 부려보고.. 그러고 싶었어요!"
"그래 나도 딸이 있다면 이렇게 안아도 보고.. 투정도 받아주고.. 그러고 싶었어!"
"저 너무너무 행복해요! 꼭 꿈만 같아요!"
"나도 그래! 너 같은 귀엽고 총명한 딸을 얻었으니..."
나는 그녀의 가슴을 꼭 껴안았다.
그녀의 볼이 내 볼을 비비어 왔다.
그러다 까칠한 턱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배와 가슴을 쓸어주다 브레지어를 안 했다는 걸 느꼈다.
아마도 샤워를 하며 젖은 걸 안쪽 어디에다 감추어 뒀으리...
"너 이거 안 했구나?"
"온통 젖어서 벗어 버렸어요. 나중에 치울게요!"
내 손이 그녀의 작은 가슴을 슬쩍 스쳤는데도 내 그건 별다른 요동을 않았다.
다행인지도 모른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여기에 대입해도 될 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볼일일 것이다.
그런데 젊은이답게 도전적인 그녀는 그런 내 마음을 시험하려 들었다.
"아빠 키스해 드릴까요?"
"키스는 무슨 키스..?"
"딸의 키스 말예요!"
내 마음이 들킨 듯하여 민망했다.
내민 내 볼에다 얼굴을 돌리며 뾰옥! 하고 찍었다.
아무튼 황홀했다.
진짜 딸에게 이런 키스를 받아도 그렇게 황홀하리라 생각되었다.
"선아?"
"네?"
그녀가 얼굴을 돌려 나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 요 만큼의 선을 넘지 말자! 요 만큼만 즐기고, 요 만큼만으로 만족하며 살자! 어쩌다 아빠가 그 선을 넘으려 해도 네가 막아줘야 한다. 알겠지??"
"네- 아빠!"
"나는 내 딸 선이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10년은 젊어진 거 같애. 더 이상 젊어진다면 나도 감당이 안돼! 아빠 나이가 내년이면 쉰이잖니!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그럼 이제 일어서야지?"
"아이--, 이렇게 더 있고 싶은 데..??"
"앞으로 저기에다 네 방을 만들면 종일이라도 이럴 수 있을 텐데.. 뭘 그리 조급하니!"
"정말..??"
"그럼!!"
"빨리 일로 들어오게 해 줘요??"
"휴가는 다녀오고 나서.."
"안 되요. 그 전에 해줘요. 아빠 휴가가시는 동안 꾸며 놓을 거예요!"
"그럼 내일 당장부터 준비해 주지!"
"울 아빠 최고!!!"
볼에다 입술 세례를 퍼붓는 그녀를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소낙비가 멎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들뜬 기분으로 창문을 열어제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자재를 치울 창고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건물주가 전화를 받았다.
건물 뒤쪽 빈 창고를 내가 쓰면 안 되겠느냐 하니까 당장 월 30만원을 내라고 했다.
긴 실랑이 끝에 결국 25만으로 결정하고 내일 당장 쓰겠다고 하니까 그럼 지금 당장 기사를 통해 열쇠를 보내겠다고 했다.
오랫동안 비어 있었으니 모처럼 나타난 임자를 그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30분만에 그의 기사가 열쇠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임대차계약서도 보내어 왔다.
나는 도장을 찍어 한 장을 미스 정에게 보관하라 하고 한 장은 보냈다.
창고는 생각보다 컸다.
앞으로 저쪽 회사의 물량까지를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안을 둘러보았다.
안을 깨끗했다.
물건을 놓을 선반이야 창고 크기에 맞추어 다시 짜야 할 테지만 별로 손 볼 것은 없었다.
내친 김에 선반을 짜는 사람을 불렀다.
그는 내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사무실 안의 창고 선반을 짠 친구라 물건에 대한 별도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는 사무실로 올라와 견적을 뽑아 제시하며 요즘 경기 부진으로 휴가도 못 갈 처지라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네고(가격타협) 없이 그가 제시한 금액을 다 치를 테니 내일 당장 작업을 해달라고 하자 굽실하고 물러갔다.
그가 사라진 뒤 미스 정에게 커피 한잔을 타라고 시키자 그제야 생각난 듯 커피포트에 전원을 꼽자마자 전화기를 들었다.
미스 한에게 거는 전화리라..
둘이 주고받는 말로 보아 그녀도 그곳을 그만 두어야겠다는 말인 듯 했다.
전화를 끊고 타온 커피를 내 자리에 놓으며 그녀가 말했다.
"언니도 그만 두려나 봐요!"
"왜?"
"2차를 자꾸 강요한대요!"
"2차가 뭔데?"
"그거 있잖아요? 남자와 잠자리 나가는 거...!"
모르는 채 묻는 말에 그녀는 주저 없이 말했다.
"너도 그런 경험 있니?"
"아이, 아빠가 딸에게 그런 걸 다 묻다니...?"
"딸이니 묻는 거지!"
"그래도 그런 건..."
"알았다. 프라이버시다 이거지?"
"미워-잉!!"
그녀는 묘하게 빠져나갔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내가 요즘 그녀에게 너무 매달리고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을 했다.
그녀를 사무실에 앉힌 것도 무리수였고, 창고를 비워 방으로 만든다는 것도 분명 무리수였다.
하지만 모처럼 얻은 행복(?)의 조건을 놓쳐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일이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내 마음에 든다는 것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만약 그녀로 인하여 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잃었던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건 하늘에서 내린 은총일 것이고, 그로 인한 대가는 기꺼이 치러야 하는 게 또 마땅한 도리가 아니던가?
그렇다. 나는 그 도리를, 그 은혜에의 보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작금의 나의 행위에 대한 유일하면서도 확실한 명분이었다.
< 계속 >
(8) 그녀가 포로인가, 내가 포로인가?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벌써 휴가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애들 또한 충길이네 애들과 같이 캠핑을 가기로 했다며 들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휴가를 약속한 날이 이틀 후로 다가와 있었다.
아내는 내실의 장롱을 열어 놓고 이 옷 저 옷 입어 보이며 어떤 옷을 입고 가는 게 좋겠느냐고 물어 왔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들어와 그녀의 설렘에 아랑곳없이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낮에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가서인지 오늘밤엔 제대로 잠들 것 같았다.
제풀에 지친 아내도 방에다 불을 끄고 잠자리로 들어왔다.
시원해진 날씨 탓인지, 아니면 휴가에의 설렘 때문인지 내 팔을 베고 품에 안겨 왔다.
팔을 접어 아래로 내리자 아내의 물컹한 젖가슴이 손에 잡혀왔다.
사무실에서 다리 사이로 앙증맞은 엉덩이를 밀어 넣으며 안겨오던 선이의 감촉이 떠올랐다.
그리고 손끝을 스치며 브레지어도 안한 그녀의 나지막하던 젖가슴 감촉도 떠올랐다.
나는 아내의 젖꼭지를 쥐었다.
첫애 강우가 태어났을 때 젖꼭지가 튀어나오지 않아 내가 빨아내어 주었던 기억이 났다.
아내의 젖꼭지는 작았다.
그래서인지 젖도 많이 나오지 않아 애들은 거의 우유로 키운 꼴이었다.
오늘 느낀 선이는 그런 걱정은 없을 듯 했다.
작은 가슴에도 볼록 튀어나온 촉감은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애 어디가 맘에 들었어요?"
선이 이야기를 왜 안 물어오나 했다.
집에 와서 자세한 얘기를 하자는 말도 궁금한 터였다.
"당신은 마음에 안 들었어?"
"참하긴 참하데! 똑똑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학교를 그만 둔 것도 그렇고, 근본이 불확실한 것도 그렇고..."
"당신도 대학 다니다 중도에 하차했잖아?"
"그땐 학교가 사치이던 시절였으니까.. 특히 여자에게선... 그러나 요즘은 고등학교는 거의 의무교육 같은 거잖아요?"
"정 그러면 우리가 보내어 주면 되지 뭐!"
"그렇게도 맘에 들었어요?"
"맘에 들었다기보다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총명해서 그런 애라면..."
"그런 애라면?"
"딸로라도 삼고 싶었어!"
"뭐요? 딸로까지...??"
역시 아내는 그녀에 대한 은근히 질투를 느끼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물러 설 수 없었다.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고 판단했다.
비록 몇 일이었지만 선이에게 빼앗긴 마음이 너무 크고, 나름대로 기대도 크다는 반증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아내에게 내 의지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흥분하지마! 당신은 어제 한 말 틀리고, 오는 하는 말 다르잖아??"
"그야...!"
"그래! 이번 일은 내가 좀 오버했는지 몰라? 그러나 이때껏 나는 내 마음이 당신 마음이고, 당신 마음이 내 마음이라 여기고 살았어! 당신도 아직 그런 마음이리라 믿고 있어!"
"그야 저도 동감이에요. 당신 뜻을 거스를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아직 자신이 없어! 여직원으로 만족해야 할지? 딸로 들여 가족으로 맞아야 할지? 그리고..."
"그리고 또 있어요?"
"당신이 원하던 젊은 연인으로 맞아야 할지??"
"뭐요? 그 어린 것을...??"
생각한 대로 아내의 반응은 펄쩍 뛰었다.
"당신 짐승 아니에요?"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마지막 말은 당신이 나의 인격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한 말이야! 설마 내가 그 정도로 무 인격체인 줄 알아! 그랬다면 30년 가까이 성 희애(아내의 이름)라는 여자 하나에만 유일한 꽃으로 여겨 왔겠어?"
"그 점은 저도 고맙게 여기고 있어요! 또 당신의 인격을 믿고요! 그러나 딸로 들이는 것은 당신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논란 벌이는 거 아니겠어? 나는 사실 그 애를 좀더 지켜보고 확신이 섰을 때 당신과 의논하려했던 거야! 가족 문제는 당신과 내가 합의했다 하더라도 애들 의견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그건 또 그러네요..."
"하지만 나의 소원 중 유일하게 못 이룬 것이 있다면 바로 딸이라는 거야. 그건 알아줬으면 해!"
"그 점은 저도 당신에게 여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당신이 그토록 딸을 원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의논도 없이 그걸 묶어버렸으니.. 여보, 정말 미안해요!!"
"이미 지난 걸 어쩌겠어!"
나는 아내를 안아 주었다.
나름대로의 명분을 쌓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내의 손이 밑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 손이 내걸 움켜쥐자 금방 반응을 보였다.
그 손길은 섹스를 요구하는 손길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안아주자 습관적으로 내려간 손길이었을 것이고, 얼마 전과는 달리 바로 반응을 나타내자 신기해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아내의 마음속에선 이미 이런 현상은 선이라는 그녀 탓이라고 여기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내 보따리 내어놓아라 한다'는 말이 있다.
일전에 그녀는 좌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던 내게 위안 삼아, 방안 삼아 애처롭게 속삭인 말이 있어서 그녀가 투정을 부린다면 그런 말을 듣지 않을까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녀 스스로 판 함정에 그녀가 빠졌다고 여기며 진퇴양난을 느끼는 심정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나의 행복 조건에 아내를 함께 편승시켜야 그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되리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 과제를 푸는 한 열쇠이리라는 판단아래 창고 문제를 꺼냈다.
"아래층에 창고 하나 빌렸어!"
"저쪽 회사 물량 때문에...?"
"응, 건물 뒤 구석진 곳에 비어 있던 창고인데도 월 25만이나 달라하더군."
"건물주야 당연 많이 받으려 하지 뭐... 근데 저쪽 회사 물량이 얼마나 되는데요?"
"충길이네 납품물량보다 2배 정도쯤.."
"크긴 크군요! 그래서 준호 아빠가 앞으로 당신은 오줌 누고 그거 볼 시간도 없을 거라 했군요."
"휴가 다녀오면 남자 직원도 채용해야지!"
그 말을 하고 보니 사무실에다 그녀의 방을 마련하는 게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다.
내가 없는 시간에 그 남자 친구가 그녀를 건드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 혼자서 두 회사를 감당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아무튼 그녀와 약속한 방은 철회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우발적으로 결정하다보니 앞뒤를 못 따진 것이었다.
말 그대로 요즘 나는 연방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게 확실했다.
결국 모처럼의 선선했던 그 밤은 그 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되고 말았다.
아침 출근을 하자 벌써 문을 연 그녀와 창고 선반을 설치하러 온 후배가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후배는 내가 오늘까지 마감해 달라는 말에 철야를 하며 준비를 했다고 했다.
우발적으로 결정한 나의 무리수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만든 꼴이다.
그 친구가 아래 창고로 내려가는 걸 보고 미스 정을 불려다 앉혔다.
어제 했던 말을 취소하기 위해서였다.
"언니는 그만두기로 했데?"
"네.."
"떠난데?"
"네! 하지만 괜찮아요!"
"그 집 얼마로 있는데?"
"백에 10만원이래요. 근데 왜요?"
"미안하게 됐구나. 너를 여기서 살게 하려했는데 문제가 있구나."
"사모님이 반대하시죠?"
여자 고유의 육감적 발언이었다.
"그건 아냐. 허나 곧 남자 직원도 들여야하는데 네가 여기서 살다보면 여러 가지로 불편할 거야! 그래서...?"
"제가 그 남자 직원과 무슨 일을 벌일까봐서요?"
난감한 일이었다.
"이리 와봐!"하고 불러선 그녀를 끌어안았다.
다소곳이 안겨온 그녀는 내 뜻대로 따르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 했다.
"미안해. 다 내가 경솔해서야. 다음부턴 너를 실망시킬 일은 없을 거야!"
"괜찮아요. 저 땜에 괜히 아빠가 상심하는 게 되려 죄송해요..."
나는 그녀를 끌고 나왔다.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가보기 위해서였다.
우선 은행에 들러 돈을 뺐다.
나를 알아보는 창구 아가씨에게 우리 아가씨라며 미스 정을 소개했다.
그리고 미스 정이 오면 청구서대로 돈을 챙겨주라는 당부도 했다.
나는 빈 청구서를 한 움큼 그녀 손에 쥐어 주었다.
돈은 창고 선반대금에다 백만 원을 더 뺐다.
집은 깔끔한 듯 했지만 그들의 방은 작았다.
안에는 미스 한이 짐을 꾸리고 있었다.
둘이 함께 들어서자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영영 떠나는가 보죠?"
"네! 미련이 없어요."
"얘는 어쩌구요?"
"사장님이 어련히 봐 주실라구요. 잘 부탁해요! 예 정말 착한 애예요."
"여기서 얘 혼자 지내야겠군요."
"네? 사장님 사무실에서 지내기로 했다면서요??"
"아 그게.."
선이가 말을 막았다.
"언니 그게.. 내가 반대했어! 그 건물에 나 혼자 있는 게 무섭기도 하고..."
"그럼 어쩌나? 돈까지 받았는데..."
"그야 내가 다시 치러지요!"
"그래 주시면 고맙지요. 그러면 산림 도구들은 그대로 두고 갈게..?"
"언니 고마워!"
"어디로 가시는 거죠?"
"옛날 살던 데로 가야죠."
"자주 놀러 오세요?"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남기고 나와 주인을 만났다.
주인은 50대 아줌마로 좋아 보였다.
그 여자에게 100만원을 치르고 선불 달세를 10만원도 치르고 나왔다.
누구냐고 묻기에 딸이라 했다.
그녀를 싣고 사무실로 돌아오며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그녀를 사무실에 두면 쓸데없는 오해와 나의 욕구를 자제하기가 더욱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창고로 내려가자 벌써 일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었다.
자기가 서비스로 달아준다면서 시건 장치를 새로 달고 있었다.
끝나면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말하고 위로 올라왔다.
이제껏 창고로 쓴 그곳을 뭘로 쓸까 고민에 빠져야 했다.
문을 열었다.
바닥까지 둥개진 자재들로 보면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쪽 회사에 본격적으로 납품이 시작되면 남자 직원 한 사람의 충원으로 버거울 지도 모른다.
충길이 회사는 내가 있었던 회사이기도 하여 어지간한 문제가 발생하여도 그들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버리거나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다들 아는 안면 때문이다.
하지만 저쪽 회사는 다를 것이다.
이제껏 납품해오다 나로 인하여 물러나야 했던 쪽을 두둔하는 무리도 많을 것이다.
그래, 그러려면 이쪽 회사의 배로 뛰어야 하니까 불가피하게 직원이 늘어야 할거고, 그 때엔 내가 이 방으로 들어가면 돼!
직원 한 사람이라도 줄여야할 사장으로썬 가져선 안 될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다.
일을 끝냈다고 말한 그를 따라 내려가 보고 열쇠를 받아 다시 올라온 나는 그에게 대금을 치렀다.
"선배님, 점심은 제가 모실 게요! 아가씨도 가죠?"
짐짓 따라 나서려는 걔를 도로 앉혔다.
"미스 정은 여기서 점심 시켜 먹어! 전화 오면 꼭 받아 적어 놓고..."
돈을 쥐어주고 문을 열고 나서는 나를 보는 그녀의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아직 철이 덜 든 그녀에게 갑자기 너무 정을 많이 준 결과이리라.
그 수위 조절을 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또 하나의 내 고민이 되고 있었다.
점심을 얻어먹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렇게 내뱉고 있었다.
"사장님! 여기서 점심 해 드시면 안되겠어요? 가스통 달고 식기 몇만 준비하면 되겠던데....??"
"안돼! 여긴 신성한 사무실이야. 시킨 밥 먹기 싫으면 도시락 싸오도록 해!"
그 말에 금방 기가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간 살아온 자체가 서러움이었을 테고, 부딪치는 일마다 외로움을 느끼게 했을 그녀의 인생 역정이었을 것인데도 아직도 작은 파고에도 흔들릴 나약함이 남아 있다니..
아직 너무 어리다고 봐버리기엔 경솔한 판단일까?
"휴가동안 뭐 할 건데?"
"그냥..."
"어디 바닷가라도 가지?"
"누가 있어야 가죠?"
"언니하고...?"
"휴가비 주실 거예요?"
"이리 와봐!"
그녀는 쫄랑쫄랑 걸어와 몸을 비틀며 내 앞에 섰다.
"얼마면 되겠니?"
"주시는 대로.."
"둘이니 20만원이면 되겠지?"
그녀는 고개만 꾸벅했다.
많다는 건지, 적다는 건지..?
청구서를 가져오라 했다.
나는 청구서에다 70만원을 적고 도장을 찍었다.
그를 본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얌마! 나도 휴가 가야지!"
그녀는 그걸 들고 쪼르르 뛰어나갔다.
금새 돈을 찾아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유난히도 볼에 깊은 보조개를 지어 보이며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20만원을 새어 봉투에 넣어 내 밀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꾸벅했다.
이번에도 좋다 싫다 말이 없었다.
벌써 돈을 안 걸까?
근무 사흘만에 그만한 휴가비를 주는 회사도 드물 것이다.
그걸 그녀는 알 턱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급히 그런 마음들을 털었다.
돌아선 뒤에다 대고 불렀다.
"선아?"
짐짓 돌아섰다.
그리고 나의 뜻을 살피려는 듯이 뚫어져라 내 눈을 응시했다.
사무실에서 그런 말을 안 쓰기로 한 약속을 깬데 대한 반응은 아닐 것이다.
나는 서양인들 돈을 새듯이 만원권을 새며 10장을 쌓았다.
"이건 내 딸에게 주는 거야!"
"고마워요 아빠!!"
당장 매달려 왔다.
나의 볼살이 그녀의 입 속으로 흡인되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등을 향해 팔을 뻗으려는 순간 그녀는 퉁겨 나가듯이 제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전화기를 들고 허겁지겁 돌리고 있었다.
"아껴 써!!"
"네 아빠! 아니, 사장님!!"
나를 돌아보며 거듭 고맙다는 수인사를 했다.
"아, 언니! 가지 마! 나하고 휴가 갔다와서 가? / 응, 내일부터.. 휴가비도 주셨어! / 20만원 하고 또.. / 그건 비밀이야! / 그래 좀 있다 봐 언니!"
신이 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뿌듯했다.
사람들은 그래서 돈을 쓴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것이다.
"어디로 갈 거야?"
"언니하고 의논해서요..."
"물 조심해! 사람도 조심하고..."
"마치 아빠 같애? 호호 나의 실수..."
"너 만한 나이는 이 여름에 가장 사고가 많단다. 물론 당하는 건 네 같은 여자애들이지.."
"명심할게요. 근데 아빠는 어디로 가실 거예요?"
"지리산!"
"나는 바다가 좋던데..."
"너도 늙어봐라!"
"싫어요 그 소리..!!"
어느새 다가온 그녀가 뒤에서 내 얼굴을 감싸안고 이마에 난 주름을 펴보려 장난치고 있었다.
앞으로 사흘간은 얘를 못 볼 것이다.
산 속에 들어가서도 얘가 보고 싶을까?
어느새 마음 한 귀퉁이를 단단히 차지해버린 그녀.
집에 있는 애들도 아내도, 친구 충길이도 제수씨도 서로 마주치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 사람들인 뿐이다.
그런데 어쩌다 이 어린것을 마음에다 키우며 시도 때도 없이 보고파 안달하는 꼴이 되고 말았을까?
뒷머리로 전해져 오는 몰캉한 살 무덤이 느껴졌다.
그녀의 젖가슴이리라.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리로 그걸 비비고 있었다.
"아빠와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아빠의 사랑이 그립고 나는 딸의 재롱이 그리운 거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풋풋한 젊음이 그리운 것이다.
어쩌면 우린 서로의 바램을 충족할 수 있는 기막힌 궁합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손이 내려와 목을 끌어안았다.
머리를 눌렀던 가슴살이 어깨에 닿아왔다.
서로의 볼이 맞대이고 그녀의 손가락 하나가 까칠까칠한 턱을 매만졌다.
"아유~ 담배 냄새.. 끊으세요 이제! 그래야 오래오래 이 딸과 살 거 아네요!"
딸이란 이러한 귀여운 충고들만 할까?
그런데 같은 충고를 아내에게 받고선 왜 짜증밖에 안 날까?
그때 턱을 만져대던 그녀의 손가락이 와이셔츠 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아찔했다.
"아빠도 여기 털 났네요?"
도발이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모를 위험한 도발이었다.
그녀의 손은 탐험이라도 하듯 가슴의 털을 쓸고 다녔다.
슬며시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건 여지없이 바지를 쳐 올리고 있었다
"자 이제 가자? 휴가 준비도 해야지..."
"아이 이러고 더 있고 싶은데..."
그녀는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나도 떨어지는 게 싫어서 완강하진 못했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으니 그녀는 뒤에 매달린 꼴이었다.
등으로 그녀의 가슴이 더욱 짓눌러 왔다.
나는 다시 풀썩 앉았다.
"휴가동안 보고 싶어서 어쩌지요...?"
진심인지, 아양인지 모르지만 이심전심이란 생각을 했다.
창 밖으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그러나 풀썩 일어선 바지 앞을 가려주기엔 아직 일렀다.
나는 손 하나를 내려 슬며시 그걸 가렸다.
"아빠도 꿈 꿨어요?"
"뭘.....?"
"내 꿈..! 저는 매일 꿔요. 어젠 아빠와 물놀이 갔어요. 물이 너무 맑아서.. 고기도 잡고, 물장구도 치고.. 그리고 내가 물에 빠졌을 때 아빠가 건져줬어요."
"좋은 꿈이니..?"
"그냥 꿈이었으니까.. 그러나 좋았어요! 오늘 아빠에게 휴가비 타려고 물에 빠졌나봐요. 꿈은 반대라 하잖아요!"
그녀의 손은 빠져나갔다.
목을 감았던 손도 풀었다.
이제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그녀가 어깨를 누르며 앞으로 오는 거였다.
나는 당황했다.
철없는 얘가 또 불을 지르려나보다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빠 가만 있어봐요? 내가 아빠 주름을 모두 펴드릴 거예요!"
나는 꼼짝 못하고 앉아 있어야 했다.
이미 그녀의 노예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당돌하게도 내 얼굴에 주름이 있는 곳을 새어가며 입술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저도 들은 이야긴대요, 아빠처럼 나이 드신 분들에겐 나처럼 예쁜 처녀가 정기를 불어넣으면 젊어지신대요!"
"그래서 지금 네 정기를 내게 불어넣고 있는 거야?"
"그럼요! 소녀경인가 하는 책에도 나와 있대요? 그리고 저 완벽한 처녀걸랑요...!"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늘은 요기까지만... 앞으로 꼭 아빠를 10년은 젊어 보이게 만들어 놓을 거예요! 오늘 치료 끝!!"
그녀는 치료라 했다.
정말 나는 그녀에게 공들이는 이유가 그 치료를 위한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장시간 그녀의 행복한 포로에서 풀려나 아쉬운 작별을 준비해야 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사무실 문을 잠그고 그녀를 차에 태워 그녀 집 앞까지 내려주며 그녀에게 나는 작별 인사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냥 갈 거야? 선아...!"
"아, 작별인사..?"
얼굴을 밀고 눈을 감았다.
어쩌면 입술에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턱을 치켜올렸다.
"됐죠, 아빠??"
어디다 한 걸까?
감촉을 놓쳤다.
"다시..?"
이번에 눈을 뜨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두 개가 입술을 스쳐갔다.
"휴가 잘 보내세요! 그리고 아빠, 내 꿈 꿔요----!!"
팔을 휘둘리며 손살같이 달아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참 주책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 계속 >
(9) 피서지에서 생긴 일
시원하고 도로가 한산한 시간을 택하여 간다고 새벽에 일어나 출발했건만 지리산에 들었을 때는 이미 한낮이 되어 있었다.
내 차로 오려다 콘도에 머무르므로 별 짐이 필요 없어서 충길이 승용차를 교대로 운전하여 왔다.
섬진강이 보이고 양옆으로 빼곡이 쳐진 텐트가 보이자 우린 들뜨기 시작했다.
충길이가 계약했다는 콘도는 쌍계사 근처에 있었다.
양가 아녀자 모두 불교 신자들이라 우린 콘도에 들어가기 전 절에부터 들러야 했다.
충길이와 나는 그녀들을 따라 다니며 합장할 때 같이 흉내 낼 뿐이었다.
출길이는 짧은치마를 입고 온 그녀들이 절을 하려 엎드리다 비틀거리자 나를 쿡쿡 찌르며 키들거렸다.
두 여자는 간곡했다.
부처 앞에 엎드려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아내는 뭘 빌까?
그녀와 내가 하는 각자 사업들.. 우리 둘과 애들 건강.. 뭐 그런 것들이리라.
혹시 모른다. 선이와 내가 별 관계가 아니 되길 비는 지도 모른다.
아마도 제수씨는 충길이의 문제를 돌봐주기를 간곡하게 빌 것이다.
설마 그날 밤 흐트러져 보였던 그런 나와의 섬씽을 염원하진 않을 것이다.
둘이 일어서자 우린 곧바로 콘도로 향했다.
콘도는 정말 기막힌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양쪽으로 계곡이 흐르고 바위 위의 노송까지 자태가 마치 그림 같은 곳에 올려진 건물이었다.
명색이 나라에서 보호한다는 국립공원인데 그런 자리에까지 허가를 남발하여 수려한 산수를 독차지하게 만든다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쨌든 우린 어느 용감한 이에 의하여 저질러진 훼손의 城 안에 묵으러 들어온 같은 종류의 잡객이었다.
오전 내내 달았던 몸은 단번에 식혀진 기분이었다.
우린 거기서 가져온 점심을 먹었다.
저녁부터는 여기서 해 먹으면 된다.
충길이는 벌써 술을 들고 설쳤다.
그거 빼면 시체라는 그가 어찌 안 그러랴.
식사 상이 치워지고 술 몇 잔씩을 마신 우리는 아래 계곡으로 자리를 옮겼다.
계곡이며 비탈마다 사람들로 들끓었는데 거긴 한산했다.
알고 보니 거긴 콘도 손님들 전용으로 어느 놈이 금을 그어 놓고 일반인들 근접을 막고 있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차를 넣을 때 도와주던 그 놈이 호각을 물고 저 위에 서 있었다.
"야! 여기도 텃세가 있구나?"
"관둬. 그들도 다 벌어먹고 살자니 그러는 걸..."
충길이는 술병을 들고 그녀들과 장난을 쳐댔다.
두 여자는 뱃살을 가리려 길게 입은 상의 외엔 거의 반라상태였다.
우린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계곡 물에 풍덩거리기도 하고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술을 마시기도 하며 오후를 보냈다.
이런 곳에 왔으면 세상일은 다 잊어라 했지만 나는 이쪽 저쪽 회사의 일과 선이의 일로 골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이 술을 주고받으며 노닥대는 틈을 타 담배 하나를 물고 그늘이 진 바위 위에 앉아 공상에 빠졌다.
정말 직원이 넷이나 되어야 할까?
이때껏 혼자 버텨왔는데...
두고보자. 차차 두고 보자고.
그리고 선이..
어딘지 몰라도 그녀도 이미 바닷가로 나갔을 것이다.
못된 사내들이 추근대진 않을까?
그녀를 알아본다면 고 예쁜 것을 가만두진 않을텐데...?
그 예쁜 것을...
야한 옷은 입지 말아야 할텐데..
어제 얘기해 주어야 했어. 그러지 말라고...
그리고 이 아빤 너뿐이라고 말해 주어야 했어..
"뭘 그리 생각하슈?"
"아, 아무 것도..."
내 옆구리를 쿡 친 사람은 제수씨였다.
"회사에 있을 땐 일 벌레가 되고 산에 가면 산 사람이 되라 했어요!"
"그래서요?"
"산에 왔으니 산사람이 되어 산삼을 캐야죠!"
산삼?
그녀가 말한 산삼은 무얼까?
혹시 그날 밤의 연장선상은 아닐까? 두려움이 전해져 왔다.
그건 야릇함이기도 했다.
"충길이는 어디 갔어요?"
"저기!"
충길이는 벌써 골아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에 아내가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 안 하려 했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긴 인자함으로 치자면 따라갈 여자가 있을까?
"왜요?"
"또, 뭘?"
"질투나요?"
"질투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지!"
"질 투란 뜻인가요? 구멍 투(two)...!"
"하하하.. 제수씨도..! 그런 농담까지 알아요?"
"질 two 이꼴 레즈비언이란 말 아닌가요? 호호호..."
"거 市 사회교육과 못 쓰겠네! 나 다음 시장선거에 나가야겠구만.. 허허.."
"이제 우리 들어가요! 우리들의 아방궁으로... 키득키득.."
그녀는 분명 기대하는 게 있었다.
어둑어둑해오는 방으로 돌아온 우린 사흘간의 종노릇을 자처해야 했다.
이미 술이 챈 상태인 충길이를 식탁 의자에 앉혀 놓고 나는 앞치마를 둘렀다.
아내가 그런 그를 쿡 쥐어박으며 술 챈 척 요령 부린다며 조크를 던지고 갔다.
그리곤 아마도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이려 일부러 그러는 듯 제수씨는 소파에 내 아내는 바닥에 길게 누워선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다.
그것도 새빨간 걸로...
남자들 덕에 호강 한번 해보자는 시늉이리라...
내가 물장갑 낀 손으로 그들을 쳐다보자 아내가 손톱을 들어 후! 불어 보였다.
제수씨도 질세라 그 손톱으로 할퀴는 흉내를 내었다.
그러며 둘이 깔깔 웃었다.
뭔가 둘이서 우리 몰래 작당한 게 있다는 모습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은 각자 부부들보다 허심탄회할 것이다.
나와 충길이가 그렇듯이..
저녁상이 준비되고 수저를 각자 쥐어줄 때까지 그녀들은 손가락 하나 거들지 않았다.
좀더 심하면 밥까지 먹여달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제수씨는 매니큐어 발린 손가락만 펴 보이며 입을 벌리고 충길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가짢은 충길이는 금방이라도 숟갈을 집어던질 기세였다.
보다못한 내가 그녀의 입에 밥술을 떠 넣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 아내가 열중쉬어를 하고 충길이 앞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원참 살다보니..."
충길이의 손이 아내의 숟갈을 들었다.
아내의 입에 밥이 반은 들어가고 반은 흘렀다.
능청스런 충길이가 나처럼 고분고분할 리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평소 얌전하던 아내가 술기운인지 벌떡 일어서더니 흩어진 밥덩이를 짓밟을 기세였다.
제수씨는 잘 한다는 눈짓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내가 너무 살았나..? 으그..."
결국 충길이는 그 밥덩이를 모두 치워야 했다.
"하하하... 천하의 김 충길이 오늘 군기 잡히는 날이구나! 하하하하..."
충길이도 이제 두 여자가 뭔가 작당을 벌이고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내게 슬쩍 고개를 흔들어 보이는 것이 그거였다.
아무튼 우린 꼼짝없이 두 여자의 밥을 다 떠 먹여 주어야 했다.
물론 각자의 커플끼리가 아니었다.
이미 스왑(swap)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밥을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자기가 하겠다며 나선 충길이는 내가 그릇들을 날라주자 나를 슬쩍 붙들고는.. "이거 뭔가 함정이 있는 것 같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거 아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들의 마음을 간파했으므로 모르는 척 그를 다독거렸다.
"대책은 무슨 대책! 나는 재밌기만 한데... 흐흐..."
"너 혹시 그들과 한패거리 아냐?"
"여기가 뭐 전장이냐? 내가 보기엔 모두 아군들뿐인데..."
"아무래도 내가 스파이와 전투계획을 논하는 거 같애???"
"두고 보자고... 차차 꼬리를 들어내겠지...?"
그는 우당탕탕 설거지를 하면서 고개를 계속 갸우뚱거렸다.
그에게 맡겨 두었다간 그릇이 남아날 것 같지 않아 그를 밀어내고 내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뭔가 낌새라도 알아차리려고 그녀들이 어디로 살아졌는지 방문도 열어보고 현관문도 열어 보고 밖에 뛰어나갔다 오기도 했다.
"이 년들이 어디를 간 거야?"
나는 턱으로 가리켰다.
모두 욕실로 사라진 것이다.
그는 그 앞에서 손가락으로 "0"을 만들어 보였다.
그리 오라 했지만 나는 허허 웃으며 계속 설거지를 마무리했다.
그때 쿵! 문이 열리며 그가 나뒹굴어졌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남자들이라니....??"
나는 물장갑 낀 손으로 항의를 했다.
뒤로 나뒹굴어졌다 일어난 그는 입을 짝 벌리고 말았다.
두 여자 모두 긴 수건 하나로 몸을 가린 상태로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런 모습 처음 봐욧? 준호 아빠! 다 훔쳐봤다면서..."
아내가 수건을 걷었다 얼른 가렸다.
오늘 아내까지 왜 저럴까나....
안에다 팬티는 걸치고 있었다,
"그래! 강우 아빠도 날 다 봤다면서욧!!"
이번엔 제수씨가 같은 행동을 했다.
그리고 둘이 소파에 풀썩 나동그라지며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충길이는 거의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이고 나도 그 못지 않았다.
평소 서로간에 짓궂은 농담과 은근슬쩍 스킨십까지 주저 없이 즐기던 우리들이었지만 여자들이 저렇게 도발적인 행동을 하리라곤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설거지를 마친 나는 커피를 끓였다.
이왕 하는 서비스라면 풀(full)로 해야 때깔이 나는 법이다.
커피잔을 그녀들 앞에 내 밀었을 때 이번엔 먹여달라는 등의 투정은 부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먹여달라지 왜?"
"그럼 남자들끼리 하세요! 그걸 보면서 우리끼리도 할 테니.. 호호호..."
"여왕마마들 이제 꼬리를 들어내시죠?"
"우리가 꼬리가 어디 있다고? 꼬리는 남자들이나 있는 거지! 그지?"
"맞아 맞아! 깔깔깔.."
그때 충길이가 어이가 없었던지 푸- 하며 커피를 엎질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내 아내가 커피 세례를 받았다.
아내는 후다닥 일어나며 수건을 던져 버렸다.
덜렁 젖가슴이 출렁였다.
급히 앞을 가리며 돌아섰다.
짓궂은 충길이가 그만한 일에 소침할 리 없었다.
"이걸 어쩌나? 우리 제수씨 다리가 바비큐 되었겠네!!"
더듬더듬 아내의 다리에 묻은 커피를 닦았다.
"나도 제수씨 무릎에 엎질러야겠네! 그래야 일대일이지..."하고 제수씨 다리로 손을 밀자 후다닥 그녀도 일어났다.
충길이는 반격에 성공했다는 듯 어흠! 하고 큰 기침소리를 냈다.
"야, 희애(아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대로 앉자!"
둘은 용감하게도 수건을 던져버리고 달랑 팬티만 걸친 알몸으로 털썩 앉았다.
우리는 서로 시선을 돌렸다.
너희들이 그래봤자 안 보아주겠다는 심보였다.
그녀들도 질 수가 없다는 듯이 우리 앞으로 다가앉으며 가슴을 흔들어댔다.
정말 굉장한 도전이었다.
결국 충길이와 나는 일어나(사실은 달아난 거다) 슬그머니 방에 들어가선 문을 걸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마치 철부지 어린애들 같은 이런 장난질이 서로 싫지는 않은 상태였다.
누가 말했던가?
섹스는 더러워야 재미있고, 장난은 유치해야 재미있다고...(사실은 필자가 말한 거다)
"야! 저년들 언제 저렇게 변했지?"
"난들 어찌 아나... 나이 들면 철이 없어진다 하더니...!"
"우리 도망 가버릴까? 저년들 허탈해지게..!"
"그래도 꼬리는 밟고 가야 할 거 아냐?"
"꼬리가 뭔지.. 나는 솔직히 겁나!"
그 말은 충길이 답지 않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충길이도 감을 잡은 듯 했다.
"남자들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남자들은 그거 떼서 우리에게 내놓아라!"
"내놓아라! 내놓아라!"
"남자들은 문을 열고 협상에 복귀하라!"
"복귀하라! 복귀하라!"
"안 열면 공권력 투입한다!"
"투입한다! 투입한다!"
그녀들은 신이 나있었다.
모처럼 그녀들의 합세에 쩔쩔매는 남자들을 보는 것이 무척이나 신명날 것이다.
어린애들도 그렇다,
계집애와 사내애가 싸워 사내애가 지는 모습을 보면 그 보다 즐거운 게 없어 한다.
그녀들은 그간 짓눌려 왔던 스트레스를 우리에게 모두 풀고 가려 하는지도 모른다.
줄담배만 꾸역꾸역 피워대는 충길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충길아 나가자! 지깟 것들이 날뛰어 봤자 우리들 밑에 깔릴 몸들 아니니?"
"너는 아직 괜찮아?"
"왜, 너도 그러니?"
"스트레스라는데..."
충길이도 제수씨 몰래 병원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 아니 그러겠는가?
남자들의 자존심이 깡그리 뭉개지는 현상인데...
"저 여자들이 오늘 밤 충격 요법을 가하려고 저렇게 날뛰는가봐?"
"너도 그런 생각을 했구나.. 그래도 안 되는 날엔 서로의 얼굴을 어찌 보려고..?"
그의 고민이 이해되었다.
나는 망설이다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의 경우는 그런 방법이 통했어!"
그의 눈길이 날카로워졌다.
나는 그 눈길이 나를 의심하거나 자기가 모르는 사이 뭔가 있었다고 단정하는 눈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자꾸 시무룩해지길래 다른 여자를 떠올렸어. 솔직히 말하자면 제수씨 얼굴을...!!"
"그랬더니 되었단 말야?"
"응! 미안해?"
"미안하긴! 다행이지.. 그럼 지금은 괜찮은 거야?"
"아마 그럴 것 같애. 자신이 생겼거든...."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그가 손을 불끈 쥐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모르는 척하자! 술을 먹이면 취한 척 하고.. 또 장난을 걸면 못 이긴 척 응하고..."
"그래 알았어!"
< 계속 >
(10) 아아! 불타는 밤
의기투합을 했다.
그녀들의 함정에 기꺼이 빠져주겠다는 의미였다.
우리가 나갔을 때 기다리다 지친 그녀들은 위에 가운 하나씩 걸치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슬렁어슬렁 우리가 다가서자 이때껏의 장난에 진이 빠져버린 양 흘깃 올려다봤다.
투정하듯 제수씨가 말을 날렸다.
"그 안에서 우리를 이길 기막힌 작전이라도 짰수?"
"짰지! 우리 아까처럼 그런 유치한 놀이 말고 건전한 놀이를 하자!"
"묵찌파나 수건돌리기 같은 거..?"
"아유! 사회적 체면과 경륜적 닦은 도가 있지 어찌 그런 걸 하나..? 동양화 감상 어때? 이 수려한 산수에 떤 매란국죽 달덩이..."
충길이의 화려한 구술이 통하는 자리였다.
"그걸로..?"
이번에는 내가 받았다.
"맥주 한잔씩 마시기!"
"꼴랑?"
"..앤드(and) 양파 벗기기!"
"앵!!"
그 놀람은 놀람이 아닐 것이다.
아내가 너무 심하다고 눈짓을 했지만 나는 묵살했다.
충길이는 잘 했다고 박수를 치며 덧붙였다.
"볼 것이 많은 우리가 훨씬 손해야!"
"우리는 그보다 큰 거 두 개나 위에 달고 있는데 우리가 손해지!"
"뭐, 아까 다 봤다 뭐!"
우리는 룰을 정했다.
각자 20.000원씩의 지참금으로 시작하고, 기본 3점에 2,000원, 1점당 1,000원씩 올라가고, 피는 5장부터 1점, 띠.멍.광은 3장부터 1점씩 하고, 피박 띠박 멍박 광박이 다 있는 네 명이 치는 고스톱으로 하고, 딴 돈은 무조건 소멸시킨다.
돈이 떨어진 순간마다 옷 한 점에 10,000원씩 출자하며, 옷은 3개씩 허용한다.
또한 이긴 사람 의외는 모두 맥주 한잔씩 마셔야 한다.
이건 누구도 안 해본 게임이라 어리둥절할 거고, 정신 똑 바로 안 차리면 한 방에 옷을 몽땅 벗어야 할 상황도 발생한다.
왜냐 하면 설사, 폭탄 등등.. 셋이 칠 때의 룰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술집을 좋아하는 충길이가 제시한 룰이었다.
그도 꼭 한번 해 보았다고 했다.
잔 수 계산에 밝다고 자부하는 여자들은 의외로 당당한 모습이었다.
여자들은 팬티에다 가운을 입었으니 가운의 끈의 풀어 던지는 걸 한번으로 치기로 했고, 남자들은 팬티에다 두 양말을 신기로 통일하고 화투가 돌기 시작했다.
두서너 판은 그럭저럭 지나가는가 했다.
지껏 돈이 조금 줄어든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회가 거듭될수록 가운을 열어제치고, 양말이 벗겨져 가고 제일 먼저 팬티를 벗어야 했던 이는 그 룰을 제안한 충길이었다.
충길이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앉아 한 손으로 앞을 가렸다.
그러나 화투를 치자면 손을 거두어 올려야 했다.
다음은 아내가 팬티를 벗고 다리를 꼬고 앉았다.
둘이 옆자리에서 흘깃흘깃 보며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을 파악할 겨를이 없이 다음 판에 당장 남은 둘도 한꺼번에 벗어야 했다.
이미 짜여진 각본이었다.
옷을 다 벗은 이는 은퇴가 아닌 한 마디로 모두 벗어야 끝나는 몰사(沒死) 게임이기 때문이었다.
게임이 끝났을 때 앞서 마신 술도 있어서 다들 흠뻑 취한 비몽사몽이었다.
충길이는 자신이 이겼을 때도 빠짐없이 마셔대더니 화투장을 놓자마자 그 자리에 꼬꾸라져 버렸다.
흔들어도 꼼짝 않았다.
아내는 같이 보조를 취하느라 무리하게 마셨는지 입을 털어 쥐고 후다닥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제수씨도 곧 뒤따라 들어가서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는 것 같았다.
방이 하나뿐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욕실에서 제수씨가 나왔다.
"먼저 방으로 들어가세요! 제가 이불 깔아 드릴 테니.."
"그럼 준호네는요?"
"우린 여기서 자죠 뭐!"
머뭇머뭇 말하는 표정이 낌새를 차릴 수 있었지만 모른 채 했다.
먼저 들어간 그녀가 이불을 깔아주고 밖에서 덮을 이불로 앞을 가리고 서둘러 나갔다.
자신의 알몸보다는 표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리라...
그녀가 총총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충길이가 약속처럼 일부러 취한 척 하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있자 욕실 벽을 통해 두 여자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미리 약 먹었는데도 너 그렇게 취하니? 한 봉지 더 먹어. 속이 편안해질 거야!"
이미 여기 오기 전부터 둘이 모의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약까지 준비했을 리 만무했다.
"그나저나 저이 너무 취하여 네게 미안해서 어쩌나?"
"신경쓰지 마! 나 잘해 볼게!"
"난 너만 믿는다!"
"너나 잘해? 피차 일반이잖아!"
"참, 울 그이 저렇게 술 취해도 그 일은 잘했다..!"
"우리 그이도...!"
"내일이면 탄로날 걸.. 참 우리도 짓궂다 그지?"
키득키득...
밤새 저렇게 수다만 떨려나??
"우리 주방에서 한 잔 더하자?"
"얘는...!!"
"그래 넌 콜라 마셔!"
그들이 나오고 있었다.
내 방문이 빼꼼 열렸다.
나는 눈을 감고 자는 채 했다.
다시 문이 닫혔다.
"울 그이도 잠들었네!"
아내가 빼꼼 들여다봤나 보았다.
주방에서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렸는지 모른다.
창 밖으로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보며 무슨 놈의 별이 저리도 많나..? 뭐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다 깜박 잠이 든 것 같았다.
아마도 서둘러 들어올 그녀가 왜 이리 미적대나 하는 생각을 접어 보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녀라면 당연히 아내가 아닌 제수씨였다.
몸에 질척한 느낌이 느껴졌다.
벌떡 눈을 떴다.
눈을 떤 게 아니라 누굴까 탐색하는 감각을 떴다는 얘기다.
정말 내 팔 위에 샴푸 냄새 폴폴 나는 머리가 얹혀져 있었다.
그리고 옆구리에 몰캉한 감촉이 눌러오며 촉촉한 손이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손은 금새 아래로 내려갔다.
그건 금방 반응하여 그녀의 손아귀를 가득 채웠다.
눈에 익은 감촉이었다.
샴푸 냄새도 낯선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제수씨가 아닌 아내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눈은 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손아귀가 자그마하게 변하고 있었다.
무겁게 누르고 있던 팔이 가벼워진 건 그때였다.
그녀의 몸이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어느새 죽어버린 그것에 촉촉한 재갈이 물려지는 게 느껴졌다.
그 느낌 그 행위의 몸짓으로 보아 아내가 분명했다.
어찌 된 걸까?
나는 실망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별스럽게 유난을 떨며 공모한 것이 그것이 아니었는가?
내가 헛물만 켰나?
나보다 충길이의 실망이 더 클 것이다.
그녀는 내 다리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내가 들떠하는 그곳을 핥아주기 위해서리라...
지금이라도 아내를 설득해볼까?
그녀는 낑낑대며 나를 돌려 눕히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잠든 채 하는 걸 포기하고 배를 깔고 돌아누웠다.
그녀의 혓바닥이 발가락 끝에서부터 핥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평소 조금은 얌전을 빼는 편이었던 아내라 전에는 이런 서비스를 해 주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나의 침몰을 보고 느끼며 달라지기 시작하여 그 이후는 평상적인 전희 단계로 자리잡고 말았다.
그녀의 혓바닥이 뒷덜미까지 왔을 때 나는 기어이 불만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런다고 썩은 고목에 꽃이 피나...!!"
내가 했어도 그건 심한 말이었다.
그녀의 성의를 봐서라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공동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부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 속뜻은 며칠 전 겨우 고비를 넘겼을 때 넌지시 언질은 줬음에도 그를 받아드리지 않은 당신에게 실망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어머 깨셨어요?"
뻔히 알면서도 능청떠는 말이었다.
분명히 내가 낑낑대는 게 안쓰러워 스스로 돌아 누워주지 않았단 말인가?
"저, 윤영이에요!"
머리에 번갯불이 튀었다.
'윤영'이라면 제수씨의 이름이었다.
나는 몸을 돌려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녀도 어쩔 줄 몰라하며 옆으로 돌아앉았다.
"윤수씨는 오늘 일을 눈치챈 걸로 알았어요? 그리고 이해도 해 주시리라고..."
"저, 이해합니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나는 그녀를 당겨다 안았다.
그리고 더 말을 못하게 입을 막았다.
그녀는 두 팔로 등을 끌어안으며 그녀의 젖가슴을 눌러왔다.
우린 그대로 이불 위로 쓸어졌다.
"사랑해 주세요. 윤수씨!"
그녀가 내 귀에다 그 말을 속삭였을 때 얼굴 위로 이불을 쳐 덮었다.
내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저 윤수씨 사랑해 왔어요!"등의 말을 할까봐였다.
나는 그녀의 몸을 핥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슴살이 내 입안을 가득 채웠을 때 그녀는 몸을 비틀며 "아아..!!"하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배를 타고 내려간 혀가 그녀의 덤불을 덮었을 때 그녀는 나의 다리를 당겨 올리고 있었다.
내건 벌떡 살아나 있었으므로 그녀 앞에 당당했다.
그녀가 내걸 입안으로 품는 걸 느끼며 나도 그녀의 계곡 속으로 코를 처박았다.
그녀는 이미 흥건히 젖어 있었다.
나는 개가 밥을 핥아먹듯 그녀의 속을 핥았다.
핥아도 핥아도 끝없이 나오는 샘이었다.
그녀도 내걸 뿌리까지 느끼려는 듯이 목젖까지 빨아들이고는 캑캑거리곤 했다.
나는 몸을 돌렸다.
그녀는 다리를 벌려 세우며 나를 맞았다.
내 것이 뿌리까지 파고들었다고 느꼈을 때 그녀의 귀에다 속삭였다.
"사랑해요 윤영씨!"
"천천히 천천히 부드럽게 해주세요! 또 다치시면 안 되니까요..."
나는 그녀가 "저두요!"란 말을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려 했다.
나의 몸놀림이 시작되자 그녀의 신음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이 맞닿은 살에서 땀이 고이는 게 느껴졌다.
"아아- 아아아---!!"
"흑! 흑흑--!"
답답함에 못 참은 그녀가 이불을 벗겨버렸다.
어쩌면 그녀는 우리들의 소리를 밖에다 들려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밖에선 아무 일도 없는지, 아니면 우리들 소리를 엿듣고 있는 건지 들려오는 기척이 없었다.
나는 몸을 비틀며 그녀를 위로 올렸다.
출렁이는 그녀의 가슴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처럼 충길이 위에서 사방으로 날리던 머리칼도 보고 싶었다.
그녀는 허리를 비틀어대며 엉덩이를 위아래로 흔들어 댔다.
나는 출렁이는 그녀의 젖통을 움켜쥐고 엉덩이를 좌우로 비틀었다.
그녀의 구석구석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아- 아아아--! 흑흑---!!"
내건 정말 옛날처럼 장하게 융기해 있었다.
검은 허공을 나는 그녀의 머리칼과 농익은 신음을 토해 내며 반쯤 벌어진 입술을 올려다보는 게 정말 황홀할 지경이었다.
나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두 손 가득히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벌려진 입술을 털어 막았다.
이미 달대로 단 그녀는 내 혀를 사정없이 빨아들였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어스러지게 끌어안으며 다시 말했다.
"정말 사랑해요 윤영씨!"
"저두요!"
기어이 그 말을 듣긴 했지만 믿을 수 없는 거였다.
"얼마만큼?"
"지금 만큼!!"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구나 느꼈다.
그때 내 것이 빠져 뒤로 퉁겨져 나갔으므로 그녀의 손이 뒤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그걸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거 내게만 자신이 생긴 거 아니겠지요?"
그녀는 밖의 아내를 생각하고 있었다.
둘간의 우정이야 의심하는 게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아내를 끌어들이는 것이 싫었다.
"윤영씨도 내게만 몸이 다는 게 아니겠지요?"
"호호.. 제가 쓸데없는 질문을 한 거 같네요. 그러나 윤수씨 이런 모습 너무 좋아요! 솔직히 우리 그이보다... 또 쓸데없는 말을.. 우리 즐겨요? 밤이 타도록...!!"
우리 그이보다..?
고개 숙인 충길이보다란 뜻일까?
충길이보다 내가 좋다는 뜻일까...?
"우리 이렇게 해요!"
그녀가 돌려 앉고 있었다.
그녀의 등이 가슴에 밀착되고 내 손을 끌어다 젖가슴을 쥐어주었다.
"희애 거보다 작죠?"
"아뇨!"
왜 자꾸 아내를 끌어들이는 걸까?
여자들 고유의 비교본능 때문일까?
내가 그녀의 젖가슴을 주무르는 사이 그녀의 손은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간 내걸 만지고 있었다.
"참 사람이란 동물은..?"
"................??"
"사랑 밖에서도 섹스는 이렇게 즐거우니.. 그죠?"
"사랑 밖이라뇨?"
"저 윤수씨를 사랑하지 않는단 말은 아니에요!"
그녀는 나를 헷갈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랑 밖'이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질 않은가?
"지켜야할 본분이 주어져 있다는 거죠! 그걸 부수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우리 부수면 되요! 이미 부순 거 아닌가요?"
"맞아요. 궁지에 몰려서야 어쩔 수 없이... 하긴 그 전에도 이미 우리들에겐 벽이 없었지요. 넘보기만 했지 뛰어넘지 않았을 뿐이지요..."
"전에도 그랬단 말로 이해해도 되나요?"
"그건 윤수씨가 더 잘 아시면서..."
그녀는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런 대화를 하다보니 내건 요동을 멈추고 있었다.
그러나 저번처럼 숙여버린 건 아니었다.
그녀도 더 이상의 요동을 요구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녀가 먼저 일어섰다.
그런데 덜컥 문을 여는 거였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밖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제껏 나만 괜히 간 조려했던 것이다.
"둘이 산보 나갔어요! 아마도 더 좋은 곳을 찾아 자고 들어올지도 몰라요!"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둘의 농간에 충길이와 나는 꼼짝없이 당하고 있었다.
또 어쩜 바라는 것이기도 했고...
나는 베란다로 나와 별이 쏟아져 내리는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계곡 비탈에 쳐진 텐트 안의 불빛만 몇 보일 뿐 둘러싼 산들은 먹물을 덮어쓴 듯 까맣게 내려앉아 있었다.
한 줄기 바람이 내 몸을 비볐다.
한여름이라지만 산 속의 밤바람은 써늘했다.
그걸 안 건지 뒤로 다가온 그녀가 내 몸에다 가운을 걸쳐 주었다.
내 뒤로 와 꼭 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나처럼 베란다 난간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콘도 앞 가로등이 주르르 늘어선 차들을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만 자야 할 거 같아요?"
"정말 차가 없네!"
뻥 뚫린 자리가 충길이 차가 빠져나간 자리가 확실했다.
어디로 갔을까?
"멀리 가진 않았겠죠?"
"왜요? 둘이 영영 가버릴까 봐서요?"
"술이 덜 깼을 텐데...!"
그녀의 근심이 이해되었다.
나는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너무 걱정 마세요! 충길이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는 이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우리 집사람이 그냥 둘 사람도 아니고요..."
그 말에도 그녀의 근심이 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주차장 안쪽 으슥한 곳에 세워놓은 차가 그의 차 같기도 했다.
나는 가운 끈을 동여매었다.
그녀의 근심을 없애주기 위하여 내려가서 확인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가운을 여미면서 따라 나왔다.
나는 입구로 내려와 그 차 쪽으로 다가갔다.
맞았다. 분명히 그의 차가 확실했다.
바싹 다가서서 확인하려는 그녀를 막았다.
그러며 슬며시 고개를 돌려 안을 흘깃 보곤 그녀를 밀고 돌아왔다.
"안에 있던가요?"
"아뇨!"
"다른데 갔나봐요!"
"휴!"
다행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내 품을 파고들었다.
그 만큼 걱정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흘깃 본 차 속을 떠올렸다.
둘은 의자를 눕히고 나란히 누워선 잠들어 있었다.
그의 가슴에 아내의 손이 올려가 있었던 걸로 보면 그들도 그냥 보내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제수씨에게 없더라고 한 건 그들을 깨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냉장고로 달려가 맥주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소파에 앉은 내게도 하나 가져와 내밀었다.
내가 다리를 벌려 보이며 이리로 와 앉으라는 시늉을 하자 더 이상 머뭇대지 않고 다리 사이로 엉덩이를 깔며 앉았다.
그녀의 엉덩이를 찌른 그걸 은근히 밀어붙이며 말했다.
"오늘 밤 내내 서 있을 기세네요?"
"밤 내내 태우자면서요?"
"그래요 우리!!"
도발적으로 내 빰에다 입술을 찍고 일어난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는 거였다.
그리곤 가운을 열어 젖히고선 벌렁 고개 쳐든 그걸 입에 물었다.
정말 그 모습은 요염했다.
그녀는 그때(충길이와의..)처럼 남자의 항문을 핥는 걸 즐기는 모양이었다.
내 다리를 들어올리다 잘 안 되자 소파에서 내려와 엎드리게 하고선 뒤에서 게걸스럽게 핥아댔다.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가운을 훌렁 열어제친 그녀의 엉덩이도 빨아달라 내밀었다.
혀끝에 와 닿는 얄궂은 맛, 그 맛은 어김없이 성감에 불을 질렀다.
손으로 양쪽 엉덩이 살을 잡아 벌리며 혀끝을 세워 밀어 넣었다.
속살이 떨리며 혀를 빨아들이는 듯도 했다.
"아아- 여보! 이제 넣어줘요!!"
분명히 여보!라 했다.
나를 충길이로 착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만큼 벽을 넘어섰다는 표현일까?
아무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어디다? 당신의 어느 구멍에..?"
"아아- 거기! 거기.. 빨리 여보?"
나는 그 곳을 핥아대면서 손가락으로 앞쪽 구멍을 후벼팠다.
그곳은 벌써 흥건히 젖어 꾹꾹 물어댔다.
"어디라고..? 여기? 아니면 여기??"
"윤수씨이---!!"
참다 못한 그녀가 벌떡 일어서더니 내 가운을 벗겨 던지고 풀썩 내걸 물고 침을 잔뜩 묻힌 뒤 자신의 엉덩이를 들이댔다.
섹스는 개 같이 하라 했던가?
그녀는 그런 속설을 따르는 여자이리라.
그기에 비하면 내 아내는 너무 요조숙녀인 척 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나는 아내와 항문 성교를 가진 적이 없었다.
늘 동경해 오던 그걸 친구의 아내인 제수씨와 하게 되다니...
그녀의 성화에 떼밀려 하게 되긴 했지만..
내가 너무 조심스럽게 밀어 넣자 그녀가 엉덩이를 뒤로 밀었다.
"아아!"
내 입에서 외마디 신음소리가 터져 나갔다.
"윤수씨 처음인가봐?"
"그러는 자기는..?"
"저야.. 저야 그이가 거길 좋아했으니까... 아아--!!"
"왜?"
"넓대나?? 애 놓은 여자가 다 그렇지 뭐! 수술 받아 봤지만 그때뿐이고.. 남자들은 자기들만 좁은 걸 좋아하는 줄 알지만 여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느낌이야 여자들이 더 예민하니까..."
그 말은 그녀 또한 많이 밝혀왔다는 간증이었다.
나는 서서히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칼이 풀풀 늘어져 바닥을 쓸고 있었다.
시선은 아마도 벌어진 다리 사이에서 철썩철썩 때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는 나의 불알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앞뒤로 움직이던 율동을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아아.. 아아아---!!"
뿌직뿌직...
그녀의 신음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아 좋아! 아- 좋아-! 아아- 너무 좋아!"
희열이 온몸을 휘감는지 다리와 허리를 비틀어대더니 엉거주춤 상체를 세웠다.
"자기, 나 젖 만져 줘! 만져 줘-- 빨리!!"
말랑말랑하던 그녀의 젖이 마치 남자의 그것 마냥 발기해 있었다.
젖꼭지도 터질 듯이 커져 있었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아내는 왜 이러지 않았을까?
그걸 양손에다 한 움큼씩 거머쥐자 그녀는 몸을 경직시키며 내 턱에다 그녀의 볼을 비벼댔다.
"저 되요! 되고 있어요!"
되다니..?
흔히 말하는 오르가즘이라는 절정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그런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아.. 아.. 아.. 아아.. 아-----!"
그녀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음성만이 아니었다.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돌렸다.
갑자기.. 갑자기 돌린 몸으로 가슴을 밀착시키며 두 팔로 목을 감아쥐고 정신없이 입술을 빨기 시작했다.
"아아.. 고마워요! 고마워요!! 또 해줘요! 밤새 해줘요!!"
그러나 그녀의 손이 밑으로 내려가 내걸 쥐고 그녀의 덤불에 비비는 순간 터지고 말았다.
내건 그 사이에서 몇 번 꿈틀꿈틀 했다.
길게.. 초저녁부터 너무나 길게 달구어진 그것임에도 용출은 짧았다.
늘 그렇듯이 허망한 끝은 그렇게 와 버렸다.
맞대인 허벅지 사이를 타고 내려가는 그것이 느껴졌다.
아마 바닥까지 떨어졌으리라.
내 것이 이미 시들해져 맞닿은 살 사이에서 납작했을 때까지도 그녀는 그러고 있고 싶어했다.
그때까지도 몸 떨림은 계속되고 있었다.
밤새도록 떨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매단 채 뒤로 벌렁 넘어졌다.
풀썩 하며 소파의 쿠션이 엉덩이를 쳤다.
그녀가 내 가슴에 난 털을 매만지고 있었다.
마치 가물어 말라비틀어진 오이만큼이나 작아진 그게 그녀의 흐트러진 덤불과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두 곳 다 허연 욕정의 잿물이 묻혀진 채 말라가고 있었다.
그녀도 그걸 본 모양이었다.
"자기 일어나요! 내가 씻겨줄 게!!"
그녀의 욕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 듯 했다.
왜 이리도 타버리고자 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고, 그 이후도 얼마든지 남은 게 날뿐인데도...
그녀가 나의 팔을 잡고 일으켰을 때 나는 털썩털썩 따라 걸었다.
그러나 나의 몸은 그 걸음만큼이나 지쳐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의 가녀린 손이 내걸 받쳐들고 그 위에다 물을 뿌렸을 때 그건 다시 융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것의 물을 탈탈 털고는 나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고는 입안 깊숙이 품었다.
혀 놀림은 없었다.
눈 아래 보이는 그녀의 엉덩이가 참으로 뽀얗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마치 어린애처럼 나를 다독여 방에 눕히고는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처럼만 하시면 늘 건강하실 거예요! 이 윤영이도 희애도 그것만 바랄 뿐이에요..."
그녀와 나의 관계는 한계가 거기까지란 뜻이리라.
그리고 그것만이 그날 밤을 있게 한 근거라는 말이리라.....
(11) 누가 섹스를 사랑의 그림자라 했던가?
날이 밝았다.
눈뜨지 않을 수 없는 날이 밝고 말았다.
이미 열 시도 넘었을 시간에 눈이 뜨였을 때 이제 눈들을 어찌 볼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의 눈도, 충길이의 눈도..
제수씨의 눈이라 하여 똑바로 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눈을 떴다.
둥근 형광등이 납작하게 매달린 천장이 보였다.
옆으로 눈을 돌리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아직도 옆자리에 제수씨가 누워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아내가...?
슬며시 눈동자를 돌렸다.
누군가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보니 충길이인 듯 했다.
충길이가 맞았다.
훌렁 까집힌 가운 밑으로 그의 팬티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나의 아래도 보았다.
내게도 팬티가 입혀져 있었다.
밖에서 깔깔대는 그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들은 어쩜 저렇게도 태연할 수 있는 걸까?
남자들이 떼지어 창녀촌을 들어갔다 나와서 서로 털어놓는 그런 것들과 같을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여자들의 마음이었다.
"이제 깨우자!"
"좀더 주무시게 버려 둬!"
"안돼! 오늘은 등산하기로 했잖아?"
"그래! 그럼..."
나는 얼른 누워 자는 척 했다.
"이제 일어들 나세요?"
아내의 목소리였다.
충길이가 먼저 눈을 뜬 모양이었다.
톡톡!
볼을 두드리는지 엉덩이를 두드리는지..
아니면 충길이의 손이 아내의 다리통을 토닥이는 건지..
충길이가 허리를 세우는 소리가 들렸다.
곧 아내는 내 쪽으로 와 코를 비틀었다.
나는 그제야 잠을 깬 것처럼 기지개를 켜며 아내의 다리를 잡았다.
"이이가 왜 이래요! 이틀간은 이 몸 당신 게 아니라구요.. 호호호..."
아내는 그러고 나가버렸다.
어떻게 저렇게 쓱싹 가면을 바꿔 쓸 수 있을까?
충길이가 씨익 웃었다.
나는 머리맡의 담배를 꺼내 그에게 한 개피 물려주고 나도 한 개피 물었다.
"어젠 너무 마셨나봐!"
"자다 나가보니 너 없더라?"
"제수씨에게 끌려나갔으나 막상 갈 데가 있어야지!"
"그래서...?"
"차에서 자다 새벽에 들어왔어. 망할.. 빈방도 없더라! 허허.. 제수씨가 몹시 서운했을 거야?"
"너 내 마누라 굶겼구나?"
"넌?"
"몰라 물어봐? 껄껄걸..."
"그래 잘 했어. 나도 원수 갚아야 할텐데..."
우린 담배를 비벼 끄고 나란히 밖으로 나왔다.
제수씨가 나를 보고 윙크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못 본 채 욕실로 숨어들었다.
가운을 벌리고 변기 앞에 섰지만 오줌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터진 그것은 쉼 없이 쏟아졌다.
마지막 몇 방울 묻은 오줌을 털며 내려다보자 그건 벌겋게 붉혀져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면기 앞에 섰다.
거울 속으로 꾀죄죄한 내 모습이 보였다.
너도 태연해야해....!!
푸푸- 얼굴에 물을 껴 얹었다.
씻긴 꾀죄죄함만큼이나 너는 태연할 수 있을까?
식탁 앞에 모두 앉았을 때 아침은 딸랑 쓸어둔 오이 몇 조각이 고작이었다.
그녀들의 말인 즉 주부들이 늦잠을 잤으니 밥상이 절로 차려지느냐는 말이었다.
이미 그녀들은 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들과 눈 맞추기가 민망하여 내가 싱크대를 향해 일어서자 충길이가 나를 잡았다.
"야! 있다가 절밥으로 때우면 돼. 우리라고 요령이 없는 줄 알아!!"
"저 빈대들! 저들을 믿고 여기까지 따라 왔으니...?"
제수씨가 일어서서 숨겨둔 음식들을 꺼내 놓았다.
그녀가 밥을 퍼면서 나에겐 한 공기를, 그것도 고봉으로.. 충길이에겐 반만 떠서 내밀었다.
"우리 자기, 많이 먹어! 너머 자기는 잠만 잤으니 고거만 먹고!! 키득키득..."
"얘, 그러지 마! 높은 산은 골도 깊은 법이야. 그죠, 자기??"
아내가 숟갈로 내 밥을 떠서 그의 공기를 채웠다.
우리는 피식 웃었다.
그녀들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런 유치한 장난.. 그건 게걸스런 섹스의 연장이었다.
또 그 전주곡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런 장난 속에서 긴장되었던 내 시선이 무뎌진 건 사실이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우린 옷을 갈아입고 산으로 향했다.
비라도 오려는지 찌푸린 날씨는 등산하기엔 좋았지만 흐르는 땀은 어쩔 수 없었다.
뉘엿뉘엿 두어 시간 올라갔을까 조그마한 암자가 나오자 발길을 멈췄다.
애초 스케줄을 짠 그녀들도 정상까지 계획은 하지 않은 듯 그 옆에다 짐을 풀었다.
그늘 밑에 백들을 내려놓고 두 여자는 암자로 가 버렸다.
그녀들의 불심을 시험하러 간 걸까?
"불가에서도 간음하지 마라는 말이 나오나?"
"글쎄??"
"우리 마누라 꾀나 밝히지?"
나는 피식 웃었다.
그는 모든 계획이 제수씨에게서 나왔을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너는 싫어?"
"아, 아냐!! 너와 나 사이인데 뭐...!"
나는 백 속에서 캔맥주를 꺼내 그에게 하나 밀고 나도 하나 들었다.
그는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 우린 살아온 반 이상을 너와 내가 따로 없이 살아 왔어. 그녀들도 그래! 우리 문제가 너희 문제이고, 너희 문제가 우리 문제야. 그녀들의 공감대에 너도 기꺼이 올라타길 바래!"
"자넨 쓸데없는 걸 말하는 거 같네. 나는 이미 그러고 있어. 다만..."
"다만 두렵다는 거겠지. 실망시킬까봐?"
"응! 말하자면 그런 비슷한 거지.."
"자신감을 가져! 제수씨와 그녀가 비슷한 거 같지만 달라! 제수씨가 톡톡 튀는 맛이 있다하면 우리 그녀는 포근한 맛이 있지. 네겐 지금 그 포근함이 필요할 거야!"
"나도 모르겠어. 내가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는지?"
그는 털썩 누워버렸다.
나도 누웠다.
살랑대는 나뭇잎 사이로 급히 몰려가는 구름이 보였다.
"구름은 다들 왜 잿빛일까?"
"힘 빠져 떨어질 날을 기다려서겠지.. 우리처럼..."
"야! 너 허무를 많이 느끼나 보네?"
"그 나이도 되지 않았나..."
"너도 사랑을 해봐?"
"걔..?"
"너 줄까?"
"짜아식 인심도 좋네.. 너나 젊어져!"
"나 원조교제라는 거 이해가 돼! 서로의 이해(利害)가 기막히게 맞아떨어지거든..."
"기회가 생기면 나도 하나 만들어 줘봐?"
"짜식 싫다고는 않구나!!"
그녀들은 뭘 하는 건지 좀채 나타나질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찾아가 보려 주섬주섬 챙겨들었다.
그러나 암자에 그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간 걸까?
터덜터덜 걸어나오다 아래로 난 샛길을 발견하고 그리로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길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과연 그기에 있었다.
그녀들의 두런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들은 우리를 향해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짜증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어찌 된 거야?"
"좋은 장소를 봐 두고 당신들을 데리러 올라오는 길이야!"
우리는 그녀들을 따라갔다.
거긴 계곡이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바위 틈 구석구석 초들이 박혀 있었다.
아마도 무당이나 아낙들이 공을 들이는 곳인 듯 했다.
봐 뒀다는 자리는 그 보다 좀 더 위인 자그마한 웅덩이가 자리한 바위틈이었다.
물은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으나 수정처럼 맑았다.
내 어깨에 매달려 거기까지 무겁게 매고 온 수박을 웅덩이에 담궈두고 바위틈에 자리를 깔았다.
충길이는 신발을 벗고 웅덩이에 발을 담궜다.
그러다 미끌려 풍덩 가슴까지 빠지고 말았다.
"어- 차!"
그러나 나오려 하지 않았다.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다들 들어와??"
아무도 들어가려지 앉자 충길이가 물을 퍼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바위 뒤로 잽싸게 숨었지만 여자 둘이 흠뻑 젖고 말았다.
가만히 있을 여자들이 아니었다.
후닥닥 뛰어든 두 여자에게 충길이는 까뭉개져 머리가 물 속에 잠겼다.
"하하하..!!"
그녀들을 나까지 끌어들이려 뛰어왔다.
결국 바위틈에 포위 당한 나도 그녀들의 신발에 떠온 술 세례를 맞아야 했다.
나는 자청하여 첨벙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마 40년 전에나 이렇게 놀았을까?
한바탕 물장난을 치고 나자 배가 고팠다.
산의 날씨 알 수 없다 하더니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파랗게 개어 있었다.
밥 먹기 전 각자 호주머니에 든 것을 꺼내어 바위 위에 말렸다.
돈도 나왔고 손수건도 나왔고 물먹은 담배도 나왔다.
담배는 모두 버려야 했다.
나와 충길이는 팬티만 걸치고 나머지 옷들도 짜서 바위 위에 걸쳐둔 뒤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여자들은 아직도 숨길 게 있는지 물이 뚝뚝 흐르는 옷을 그대로 처입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뒤 물에 담가 둔 수박을 꺼내 쪼개어 먹고, 빽에 넣어온 맥주를 마시고, 산바람의 선선함 속에 우린 한 잠 늘어지게 잤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때 우린 산을 내려왔다.
콘도를 돌아온 우린 피 튀기는 가위 바위 보로 샤워 순서를 정하는 등.. 철저하게 유치(가장 공명정대)를 떨었다.
아내, 충길이, 나, 제수씨 순이었다.
맨 먼저인 아내가 들어갔다 나와 옷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가고, 충길이가 욕실로 사라지자 제수씨가 내 귀에다 속삭였다.
"우리 샤워 끝내고 바람 쐬러 나간다며 슬며시 나가요?"
"저녁도 안 먹고..?"
"나가서 사먹으면 되잖아요!"
나는 그러자고 했다.
충길이 다음에 샤워를 끝낸 나는 담배를 피는 척하며 슬며시 밖으로 나왔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조금 있자 그녀가 뛰어나왔다.
저 위에 텐트 빌려준다는 데가 있더라며 냉큼 팔을 꼈다.
조금 올라가자 정말 "텐트 빌려 줌, 설치도 책임 짐"하는 팻말이 보였다.
우린 거기서 텐트 하나를 부탁하고 그 집에서 민물 매운탕을 시켰다.
굳이 자기들이 쳐주겠다고 하기에 우린 편했다.
매운탕이 날라져 오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녀 눈동자의 광채를 보아 텐트 안에서의 질펀한 섹스를 눈 속에 담고 있는 듯 했다.
안주가 좋아서일까 소주 한 병이 금방 비었다.
또 한 병을 시켰다.
밥도 모두 비우고 배를 두드리며 계산을 하자 텐트 자리를 안내하러 나섰다.
그리 멀지 않는 바로 그 집 뒤였다.
텐트는 그들의 밭인 듯한 곳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부부가 아닌 걸 눈치챈 건지 맨 구석에 설치 된 텐트로 안내했다.
텐트 안엔 자리가 깔려 있고 위에 등만 달려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그에게 덮을 이불을 부탁하자 5,000원이라 했다.
그쯤이야.. 이왕 술도 한 상 갖다달라 했다.
술은 뭐로 드릴까 하기에 맥주와 과일 안주를 달라고 했다.
그가 사라지자 나는 덥석 그녀를 안았다.
"아이 서두르긴...!"
내가 슬며시 엉덩이를 거머쥐자 손을 뿌리쳤다.
그러나 입술을 덮쳤을 때 돌연 모습이 바뀌어 목에 매달려 왔다.
술을 든 발걸음이 다가오지 않았다면 지체없이 내 바지 앞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그는 민망하게도 텐트에 불을 밝히고 술을 내려놓고 갔다.
상에는 수박 및 파인애플 몇 토막과 깍지 않은 복숭아, 그리고 바나나 반 줄이 얹혀져 있었다.
맥주를 따뤄 내미는 그녀에게 나는 바나나 하나를 따서 장난을 쳤다.
그녀는 그걸 뺏어 등뒤로 숨기곤 술을 마셨다.
천장에 매달린 하얀 불빛 아래 그녀의 볼은 발갛게 상기되어 갔다.
아내만큼이나 늙은 얼굴이었지만 아직도 소녀 같은 감수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 정말 탐나는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슬며시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두르자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등뒤에 숨긴 바나나를 찾아 쥐고 그녀의 치마 밑으로 집어넣자 슬며시 다리를 벌렸다.
뜻밖에도 그녀는 팬티를 입고 있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나는 슬쩍 그걸 밀어 넣었다.
그녀는 고개를 내 어깨에 기댄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어지간히 젖어 있어서 쑥 들어가는 것 같았다.
술을 한 잔 마시고 그걸 꺼내 빨았다.
그때 그녀는 눈을 떠 그 모습을 은근히 바라보다가 내 잔을 채워 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은근한 시선 앞에서 바나나 껍질을 깠다.
그녀도 그걸 왜 까는지 아는 것 같았다.
내가 그걸 아래로 내리자 그녀는 다리를 다시 벌리며 팔로 뒤를 짚고 반쯤 누웠다.
그건 서서히 밀려들어갔다.
그 속으로 모두 감추어진 뒤에야 그녀는 허리를 세웠다.
그녀와 나는 잔을 부딪혔다.
그녀는 잔을 비우며 내걸 핥아먹는 시늉을 하듯 컵을 핥았다.
나는 수박 한 토막을 덥석 물어 그녀의 입에 넘겼다.
그녀는 내 입술까지 받아 씹었다.
그녀도 파인애플을 입에 넣고 잘게 씹어서 내 입안으로 넘겼다.
또 한잔씩 부어 서로 먹여주며 마셨다.
이번엔 안주를 그녀의 가랑이에 든 바나나로 했다.
그건 부러지고 부서져 있었다.
처음 꺼내어 그녀에게 먹인 건 그나마 살이 안 터졌지만, 손가락으로 후벼가며 다음에 꺼낸 것은 곤죽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먹듯이 손가락을 핥아가며 먹었다.
"아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의 입에서 벌써 신음이 터지고 있었다.
그녀는 바나나 하나를 더 끊어 까고 있었다.
내가 그걸 받아 들자 이번엔 아예 다리를 벌리고 누워 버렸다.
"불.....?"
불을 꺼 달라는 말이었다.
천장에 매달린 불을 껐다.
텐트 밖을 에워싼 별들로 안은 훤했다.
윗도리와 치마를 벗어 던진 그녀는 내 옷들도 모조리 벗겨냈다.
내가 그녀의 가랑이 속으로 바나나를 끼우자 내걸 덥석 물었다.
"아아--!"
나는 그녀의 젖통을 두 손으로 잡고 주물렀다.
그 꼭지가 벌써 빳빳이 서 있었다.
"예술이야!"
"아아--! 빨아 줘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걸 입안 가득히 빨아 들였다.
유두에서 젖이라도 나오는 듯이 달콤했다.
그녀는 저쯤 멀어진 내걸 손을 뻗어 감아쥐고선 위아래로 쓰다듬고 있었다.
"아아- 꾹꾹 씹어 줘!!
나는 이빨로 자국이 남을 만큼 꾹 물었건만 그녀는 몸을 비틀어대기만 했다.
"아- 이제.. 이제.. 밑을 씹어 줘!!!"
나는 술잔과 상을 구석으로 밀어내고 그녀의 허벅지를 향해 몸을 굽혔다.
벌써 질펀해진 덤불을 핥아대다가 삐죽 고개를 내민 바나나 꽁지를 베어먹었다.
그녀는 내 다리를 그녀의 얼굴 위로 끌어올리고 내걸 물고 들어가 혀로 농락해댔다.
또 조금 삐어져 나온 바나나를 꺾어 삼켰다.
그러나 나머지를 안으로 물고 들어간 그녀는 더 이상 내어놓지 않았다.
나는 그걸 내어놓으라는 듯이 입구를 게걸스럽게 핥았다.
옆으로 벌린 날개를 꾹꾹 씹기도 했다.
"아아- 자기! 이제 넣어 줘? 자기 걸...!!"
그 말에 내가 그녀의 구멍 속에든 바나나를 꺼내려 손을 넣으려 하자 다리를 오므리며 말했다.
"안돼! 그대로....!!"
나는 그대로 그녀 위로 엎어졌다.
그녀가 손으로 내걸 잡고 꾸욱 밀어 넣었다.
차가운 촉감의 바나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감촉이 좋았다.
"어때? 자기도 시원하지? 그리고 꽉 끼고....??"
"응-! 흑---!!"
내가 왕복운동을 시작하자 그녀는 다리를 옹그리며 더욱 조여왔다.
안에서 내 것에 밀린 바나나가 이겨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들이 금새 죽이 되고 말았는지 벅적벅적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아-! 아아아--!!
흑흑-! 흑흑흑--!!
북적북적..
그 소리 속에 내가 더욱 피치를 올리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갑자기 나를 밀어내는 거였다.
"왜 그래?"
"자기, 그러면 금방 끝나 버리잖아? 어제처럼 끝나버리는 건 싫어! 밤 내내 한번 참아봐요! 그러는 게 자기에게도 좋대!!"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중국 어느 고서 방중술에 나와 있더라!"
나는 김이 빠졌다.
"우리 마누라 꾀나 밝히지?"하던 충길이의 말이 생각났다.
그가 진이 빠진 이유가 이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남자들은 색녀를 바란다.
그러나 그런 여자를 끼고 평생 살아온 남자는 질리기 마련이다.
몸이 빠져버린 내가 옆으로 내려와 누워버리자 가슴에 기대어오며 이렇게 속삭이는 거였다.
"윤수씨 미안해! 내가 너무 밝히지요?"
"아, 아뇨! 충길이가 걱정이 되어서...."
안 해야 할 말을 덧붙이고 말았다.
"그이와는 안 그래요. 다만 너무 간절하여.. 참아온 게 너무 억울하여....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수씨는 취미 활동을 열심히 즐기잖아요?"
"단지 반항일 뿐이에요. 나에 대한.. 인생에 대한.. 도피일 뿐이죠."
나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녀는 어쩜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술로 그녀의 눈을 닦아주었다.
정말 짭짤한 맛이 느껴져 왔다.
그게 나만의 착각였을까?
그녀의 입술이 불쑥 올라왔다.
한 바탕 회오리가 지나갔다.
"누워 계세요. 저 좀 씻고 와야겠어요!"
그녀는 손바닥으로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텐트 뒷문을 열고 나갔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물이 그리 멀지는 않아 보였다.
그러나 저러고 나가면...?
나는 그녀의 윗도리를 내어 주었다.
그걸 위에 두르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까지 와 버렸단 말인가?
이미 서로의 묵계와 은연의 공감 속에서 오지 말아야 했을지도 모를 강 건너에 와 있었다.
강줄기를 바꾸지 않는 이상 강을 건너 돌아가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분명한 것은 후회는 없다는 일이다.
그건 넷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고, 확신이었다.
콘도에 남아 있는 그들은 잘 있을까?
아내가 그를 어떻게 요리하고 있을까?
그때 그녀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텐트로 들어서며 발을 털었다.
내가 미처 신발도 챙겨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게 아주 귀한 손님이다라는 생각도 했다.
몸을 닦을 수건도 챙겨주지 않았다.
그녀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는 사이 나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대충 닦아내고 이불을 깔았다.
나란히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녀를 당겨 품에다 안았을 때 그녀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누구 보는 사람은 없던가요?"
"한밤중인데 뭘요..."
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한 것 같았다.
"저 사랑하나요?"
더욱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안 그렇다고 제가 말한다면..."
"........................!"
"없었던 일로 하자 하실 건가요?"
나는 민망하여 그녀의 입술을 덮쳐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우리 끼우고 자요? 밤새도록 꺼지지 않고 타게...........!!"
< 계속 >
(12) 갈증만이 새 우물을 파는 건 아니다.
콘도로 돌아 왔을 때 둘의 모습은 밝아 보였다.
나를 피하는 듯한 아내의 시선, 그리고 싱글벙글하는 충길이의 눈에서 상황을 느끼고도 남았다.
우리들처럼 그들도 꾀나 즐겼으리라...
그녀들은 할 말이 많은지 방에 들어가버렸다.
나는 그와 아침 준비를 하면서 슬쩍 물었다.
"어땠어?"
"괜찮았어!"
"되었단 말이구나?"
"그럼 내가 병신이 된 줄 알았어?"
"축하한다 야!!"
"제수씨 테크닉이 좋더군! 허허..."
"그녀가 테크닉까지나?"
"왜 질투나?"
"나도 좋았어! 네가 시샘할 만큼... 크크..."
"우리 아예 바꿀까?"
"그러지 뭐!"
"그럴 게 아니라 이후 공동 소유로 하면 어떨까?"
"그래 좋아!"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는 몹시 들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 식탁 앞에 모두 앉았을 때 그 문제가 튀어 나왔다.
밥술을 떠든 제수씨가 꺼낸 말이 시발이었다.
"고개 숙인 남자들을 모두 살려 놓은 우리들에게 당신들은 뭘 줄 건가요?"
"뭐? 고개 숙인...?"
충길이가 대뜸 말을 받았다.
"그럼 고개 숙인 게 아니고 잠시 묵념 중이었나요?"
"호호호.. 묵념? 깔깔깔..."
"요구 사항을 먼저 제시해요! 데모부터 벌이려 말고..."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건 인정하시죠?"
"인정한다면...?"
"부실기업 합병!!"
그녀는 자기네들은 합의했다는 듯 아내와 시선을 교환하며 히죽거렸다.
나는 충길이와 내가 한 말과 같다고 느끼며 그를 쳐다보았다.
"뭐 부실기업..?"
"부도기업이었던가? 깔깔깔..."
"와- 이거! 자존심 상해서 협상 못하겠네...!!"
"충길씨 우량기업이에요! 그건 제가 보증할게요! 얘 넌...??"
"갑자기 시장이 요동을 치니 아군이 적군이 되고, 적군이 아군이 되고.. 복잡다! 하하하!!!"
"그럼 합의한 거예요! 나중 배신하는 자는 알죠??"
"우와-! 안 윤영! 언제 조폭 되었나? 칼 맞기 전에 입 다물어야지!!"
"자꾸 그럴 거야!!!"
제수씨가 숟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쿡 찔렀다.
"야, 윤수야! 나 칼 맞았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호호호 깔깔깔...
푸하하하.....
그 웃음들은 합의였고 묵언의 공감이었다.
우린 이미 20년 이상 한 가족처럼 살아왔다.
단지 따로 따로 이었던 것은 부부간의 섹스뿐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그거마저 공유하자고 뜻을 모은 것이다.
그런 홀가분한(어쩜 어색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기분으로 거실에서 오전 내내 노닥대다 점심을 먹자마자 우린 아쉬운 거기를 떠나야 했다.
비록 이틀 밤이었지만 우리에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걸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충길이는 먼저 내가 운전하라며 뒷자리로 가선 그녀들을 끼고 앉아선 "호- 좋다!!"며 탄성을 질렀다.
"밤새 만졌으면서 아직도 만질 게 남았나?"
"기사는 운전이나 하는 거야! 손님 색 쓰는 소리를 듣는다고 사고내기 없기다!!"
"이이 완전히 뻔대죠, 여보?"
그 말을 제수씨가 했기에 나는 룸미러로 뒤를 보았다.
그녀가 눈을 찡긋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뒤가 조용하여 다시 룸미러를 보았을 때 그는 두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잠들어 있었다.
제수씨도 잠들어 있었고 아내만 창문 밖에 시선을 돌린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어느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차 한잔하고 가자며 그들을 깨웠다.
제수씨는 그대로 자겠다고 하여 셋이서 커피를 뽑아 마셨다.
충길이가 화장실 간 사이 둘만 남게되자 아내가 말했다.
"당신 우리들 모습에 놀란 거 아니겠죠?"
"놀라긴..."
"충길씨도..?"
"그건 당신이 더 많이 느꼈을 거 아냐?"
"이인..?? 질투 났어요?"
"아니! 당신은?"
"저도 아뇨!"
"그럼 되었어. 된 거야!"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쥐어주었다.
충길이가 나오다 그 모습을 보고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이거 질투 나네! 이래도 되는 거야?"
우린 껄껄 웃으며 차에 올랐다.
내가 조수석에 앉자 "왜 뒤에 타지! 나처럼.."하는 그를 쥐어박자 시동을 걸었다.
우리 집에 도착하자 날이 저물어 있었다.
그는 곧바로 자기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는 텅 비어 있었다.
아직 애들은 돌아오지 않은 듯 했다.
아내가 꼭꼭 잠가둔 문을 모두 열어 젖히고 환기를 시키는 동안 나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그건 시무룩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이게 무어관데 그토록 애태워들 하는 건가?
그걸로 싸움도 벌어지고, 살인도 일삼고, 그걸 위해 모든 걸 거는 이도 있다.
그리고 거의 허물이라곤 없었던 충길이와 나 사이에도 여태 무거운 철벽이 쳐져 있었다.
깨어 부수고 보니 그 아무 것도 아닌 걸...
그러나 분명한 건 아직도 그걸 위해 살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나는 소름이 돋을 만큼 찬물로 이틀 밤 동안의 열기를 식히고 욕실을 나왔다.
문 앞에는 갈아입을 옷을 든 아내가 서 있었다.
아내는 아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건 너무나 작아져 있었다.
그렇게 작은 걸 아내에게 보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지만 없는 듯 했다.
욕실로 들어가는 아내에게 히죽 웃어 보였다.
내가 거실에 앉아 대문간에 늘려 있던 신문들을 가져와 훑어보고 있을 때 아내가 욕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애들도 없지만 옛날처럼 몸을 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뒤로 와선 목을 껴안으며 "여보 나도 춤 좀 배워 줘!" 했다.
"난들 춤출 줄 아니? 그저 남들보고 흉내낸 거지!"
"그래도..."
그녀의 재촉에 나는 일어서야 했다.
거실의 등을 낮췄다.
음악도 틀었다.
그녀는 품에 다소곳이 안겨왔다.
"그냥 몸을 흔드는 거야. 너무 요란스럽지 않게.. 그리고 몸을 상대방에게 살짝살짝 터치하면서 자극을 즐기는 거야! 이렇게... ....그럼, 그렇게!"
"이것도 작은 섹스이네요?"
"뭐 그런 거지! 전희쯤..."
아내는 황홀한 표정이었다.
어젯밤의 연장선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길이 잘해주지?"
"아..? 네!"
아내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괜한 걸 물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꼭 껴안으며 말해줬다.
"나도 제수씨에게 잘해줬어! 당신에게보다 더.. 앞으로 당신에게도 잘 할게!"
솔직한 고백이었는지도 모른다.
"저도요!"하며 그녀가 입술을 겹쳐왔다.
나는 그대로 아내를 안아들었다.
풀썩 침대 위에 내리고 그녀의 옷들을 벗겼다.
아내도 내 옷을 벗기고 있었다.
아내와 난 단번에 69 자세를 취하고 서로를 핥았다.
그녀의 그곳에선 한없이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충길이가 그녀의 관정을 뚫어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질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감사함도 아니었다.
다만 묘한 발정을 돋우는 성감대 같은 거였다.
그녀의 입 속에 든 나의 그것도 전에 없이 강직해져 있다는 걸 느꼈다.
아내도 그것이 제수씨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몸을 돌려 내 걸로 그녀의 계곡을 메웠을 때 아내는 "너무 좋아!" 하는 말을 했다.
그건 말이 아니라 신음소리였다.
그녀는 금방 달아올라 거친 숨소리를 거침없이 뱉어냈다.
"아아-! 좀 더! 좀 더! 아-- 깊이! 깊이!"
전에는 전혀 안 쓰던 말이었다.
"아---! 여보 되요! 되요!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아아아아----!!!"
"흑흑! 흑흑흑!! 허----억!!!!!!"
마지막 뜨거운 물줄기가 터지는 순간 그녀는 어찌할 줄을 몰라하며 허리를 비틀고, 다리를 꼬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나 되었어요!! 윤영이가 그렇게도 좋다 하더니.... 그 기분을....! 고마워요! 고마워요!!"
나는 몸을 빼지 않고 아내가 그 여운을 더 즐기게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몸을 비벼 주었다.
아내의 근육이 풀리고 축 늘어졌을 때 나도 옆자리로 내려와 숨을 골랐다.
"하느님도 참 짓궂은 사람이야!"
"왜?"
"이런 보석을 못 찾게 꼭꼭 숨겨 놓았으니..."
"그렇게도 좋았어?"
"네!"
우리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는 내 마음은 또 설레기 시작했다.
사흘 동안 거의 잊고 지냈던 선이 생각 때문이었다.
바다로 간다 했으니 피부를 까맣게 태워 왔을 것이다.
사무실에 가까워지자 그간 무슨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어쩜 못 돌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차를 대자마자 뛰어내려 후다닥 계단을 밟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문이 잠겨 있었다.
"아--!"
이를 어쩌나?
선이를 잃어버렸어!!
나의 선이를 어디서 찾나...??
손이 떨려 문에다 제대로 키도 못 꽂고 버둥대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선이였다.
"아빠!"
"아- 선아....!"
와락 그녀를 안았다.
나는 그녀가 선이가 분명한가 가슴에 파묻힌 그녀의 얼굴을 들어 확인, 또 확인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왜 울었어?"
"반가워서요! 그간 보고 싶어서요!"
"아-! 나도 그랬단다!"
"왜 이제 왔어요! 그만큼 보고 싶으셨다면..."
예감이 이상했다.
그녀를 떼어놓고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뭔가 일이 있었구나. 그렇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그녀의 몸을 살피며 캐물었다.
"어디 다른 덴 다친 데 없니?"
"응!"
"자세히 얘기해봐?"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 그 앞에 구부리고 앉아 그녀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입에서 나올 말 한마디에 나의 실망감이 극에 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그날.."
"그날..? 휴가 첫날?"
"응! 언니와 바닷가에 갔다가.."
"갔다가..?"
"잘 놀고 돌아와.."
휴-! 일단 안심했다.
"돌아와서..?"
"언니와 게임방에 가서 게임을 하다가.."
나의 두려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게임방에서 치한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 한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재촉했다.
"하다가..?"
"언니와 내가 스타를 했거든요!"
"스타라니?"
"스타크레프트라는 게임이에요."
"그래서?"
"내가 졌어요! 그래서 한 게임 더 하자니까.. 안 된다 우기는 거예요!"
나는 속이 타는데 그녀의 말은 자꾸 꼬리를 물었다.
성질이 나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의 톤이 올라갔다.
"그래서 어찌 되었다는 거야??"
"싸워서 가버렸다고요."
일이라던 게 그거였던가?
나는 그 앞에서 일어나 내 자리로 왔다.
"그거뿐이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속이 타기 시작했다.
"또 뭣이 있었는데?"
"언니가 세간들을 모두 챙겨 가버렸다고요!"
"그래서..?"
"하루는 거기서 지내다가, 어제는 사무실에서 종일 있었다고요. 앙.....!!"
혹시나 내가 올까 기다렸나보다 하고 생각되었다.
우는 모습이 가련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로 가서 조용히 끌어안았다.
내 팔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철부지, 어린아이.. 그만 일로 울다니..
"그래서 무서웠구나! 그래서 나를 기다렸구나!"
"저 배고파요!"
"뭐? 밥을 안 먹었다고?"
"밥할 냄비도 그릇도 하나도 없어요... 잉!"
"뭐라? 그럼 내내 굶었어?"
"어제까지 언니가 남기고 간 라면으로.."
"생 라면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가 찼다.
이렇게 철없는 애라니...
"이 덩신! 이 바보야! 넌 밥 사먹을 줄도 모르니? 내가 너에게 준 돈은 폼으로 준 줄 알았어??"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돈 다발을 꺼내어 밀었다.
새어보니 단 3만원이 빠진 27만원이었다.
기가 막혔다.
나는 그녀를 끌고 차에다 태웠다.
차가 텅 빈 도시를 뚫고 들어가 아내의 가게 옆에 세웠을 때 아내는 막 문을 연 듯 식탁을 닦고 있었다.
"아니 당신?"
"안녕하세요, 사모님?"
"어 아가씨도 왔구나!"
"자! 이 만큼 요리를 내와봐!"
나는 선이에게 받은 돈을 그대로 내밀자 아내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이게 무슨 돈이에요?"
"얘 휴가비로 준 돈인데.. 당신 음식이 먹고 싶어 이틀을 굶었단다. 그러니 그 만큼 요리를 해와 얘에게 먹여봐!"
"아니, 무슨 영문인지 알아야지? 돈은 27만원이나 되는 데...? 그리고 이 아가씨가 내 음식이나 먹어봤나??"
나는 아내에게 돈을 뺏어 선이에게 돌려주며 뭘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무거나.." 했다.
내가 담배를 뽑아 물자 아내는 그녀를 주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무슨 영문이냐고 묻을 듯 했다.
한참 후 그녀가 들고 나온 것은 핫도그였다.
달랑 그걸로...?
그러나 곧 따라 나온 아내의 손에는 계란후라이가 얹힌 밥이 들려 나왔다.
아내는 허겁지겁 퍼먹는 그녀를 애처로이 바라보다가 나를 집적이며 밖으로 끌어냈다.
"쯧쯧... 그 언니가 친언니도 아니라면서요?"
"그래, 걔가 고아라구나!"
"그럼 혼자 버려 둘 거예요?"
"그럼 어쩌나? 내보낼 수도 없고..."
의외로 관심을 갖는 그녀에게 나는 은근히 집으로 데려다 돌보자는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그런 면에서 아내는 마음이 여린 여자라 어쩜 그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도 모르겠어요. 당신이 데려다 앉힌 아이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구려! 내 보내든지 말든지..."
"당신이 좀 데리고 있으면 안 되겠어? 아르바이트생을 쓰느니...?"
"잠은 어디서 재우고...?"
"방은 있어! 그 언니와 살던 방.."
"생각해 볼게요!"
"그 보다 걔 끓여 먹을 식기들이나 좀 사줘! 그 못된 언니가 죄다 들고 가버린 모양이야..."
"그거야 어려울 게 없지만..."
나는 선이를 거기다 맡겨두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팩스로 날아와 있는 납품 일정표를 보고 물건들을 주문하려 이곳저곳 전화를 돌렸지만 거의가 휴가 중이라 일은 되지 않았다.
충길이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그도 회의에 들어가고 없다고 했다.
사무실을 서성이며 이곳 저곳 기웃대는 데 그녀의 휴지통에 구겨진 종이가 있어 꺼내 보았다.
"아빠 빨리 돌아오세요! 이 딸 선아가 몹시 외로워요. 보고싶어요. 무서워요. 빨리 돌아오실 거죠 아빠? 아빠! 아빠!!"
눈에 선했다.
불도 안 켠 사무실에서 혼자 종일을 기다렸을 그녀가..
어쩜 밤에도 여기서 기다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시간 나는 제수씨와 밀회를 즐기며 질탕한 섹스에 취하여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다.
그때 전화벨이 울었다.
"예, 윤수산업입니다."
"여보세요? 저예요!"
제수씨였다.
"어쩐 일로..?"
"자기에게 점심이나 얻어먹으려 나갈까 하고...?"
"오늘은 좀 곤란한데.. 휴가 동안 쉬어놔서... 미안해서 어쩌나?"
"꼭 그러려고 한 건 아니니 미안할 건 없어요. 자기 목소리 들었으니 되었어요. 밤엔 내 꿈도 꿔야 해요!"
그리고 끊었다.
우리 셋 모두 그녀의 꼬임에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모두 합의 한 거야! 묵언의 공감으로 자연스럽게 도출된 일이야...
그녀가 전화기에다 대고 끈끈한 목소리로 마지막 남긴 말이 걸렸다.
"내 꿈도 꿔야 해요!"
그 말은 휴가를 떠나기 전 선이도 하던 말이었다.
"휴가 잘 보내세요! 그리고 아빠, 내 꿈 꿔요----!!"
그 말을 남기고 팔을 휘둘리며 손살같이 달아나는 그녀였다.
그럼에도 나는 사흘 동안 그녀의 꿈은커녕 질펀한 섹스에만 몰입하며 밤을 뜨거운 눈으로 밝혔다.
나는 휴지통에서 꺼낸 선이의 낙서를 고이 접어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얼마 후 또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아내였다.
"여보! 살림 도구는 대충 샀어요. 시간이 있으면 이리로 나와 점심도 먹고 애와 함께 살림들도 실어주면 좋겠어요!"
나는 금방 차를 몰고 나갔다.
그녀는 아내와 전보다 더 많이 친해져 있는 것 같아 무척 다행스러웠다.
우린 거기서 점심을 먹고 그녀의 살림 도구들과 걔를 싣고 우선 걔의 집에다 짐을 내려둔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는 다음부터는 절대로 굶지 마라고 주의를 줬다.
그리고 아내가 뭐라더냐고 물었다.
사장님이 잘해 주냐고 묻길래 잘 해주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말못할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오라고도 했다고 한다.
그만하면 아내도 걔에게 정을 느낀다고 나는 판단했다.
오후엔 그간 내가 하던 장부 일 일부를 그녀에게 넘기고 그걸 정리하는 법을 가르쳤다.
생각보다 애는 총명하여 잘 알아들었다.
하긴 기초적인 수적 계산 능력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어서 걱정되는 바는 아니었다.
내일은 사무실내 창고 물건을 내리자고 한 뒤 일찍 퇴근했다.
오는 길에 그녀를 내려놓으며 나도 따라 내렸다.
그녀의 새 짐을 정리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들떠 있었다.
새 식기구들은 명실 상부한 그녀의 것이기 때문이리라.
나머지는 모두 그녀의 돈으로 샀고, 그것만은 기어코 사모님이 사주셨다며 이불을 풀어놓으며 언니가 그냥 두고 간 이불을 둘둘 말아 다락에다 처박아 버렸다.
내가 버려버리지 하자 꼭 그녀에게 돌려보내겠다며 오기를 보였다.
대충 짐 정리가 끝나자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서늘한 캔 두 개를 사와 내게 하나 밀었다.
그녀의 이마와 목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자 와락 안겨왔다.
"얘가 갑자기 어리광부리기는...!"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근히 바라고 있던 터였다.
"얘 더워! 그런데 너 샤워는 어디서 하니?"
"왜요? 샤워하시게요? 부엌에서 문 닫고 하면 되요. 앞집에 막혀 아무도 못 봐요!"
꼭 여기서 하라는 투 같았다.
그때 아직도 내 허리를 놓지 않고 있던 그녀의 팔꿈치가 내 불룩한 앞섶에 닿았으므로 나는 그녀를 억지로 떼어내고 일어섰다,
그녀는 내가 그 길로 샤워를 할 걸로 알았던지 같이 일어서서 수건을 내밀었다.
나는 마음에 혼란을 일으켰다.
못 이긴 채 샤워를 할까?
그러다 터질지도 모를 책임은 누가 지나?
그런데 나의 입에선 엉뚱한 말이 튀어나가고 말았다.
"너부터 하렴!"
"앵! 훔쳐보려고요?"
"아빠가 본들 어쩌니.. 왜 무섭니?"
"무섭긴요. 누가 뭐래도 내 아빠인데...."
그녀는 내게 주려던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며 나갔다.
그걸 철없다고 보아야 하나..?
아니면 나를 유혹하려 한다고 느껴야 하나...?
곧 우두둑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뜯은 포장지 쌓아둔 것 중 하나를 빼내 재떨이를 만들고 담배를 물었다.
푸! 연기를 내 뿜었지만 내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다.
앞으로 그녀와의 선을 어디까지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은근한 스킨십은 즐기되 그녀의 몸은 지켜주자는 쪽으로 정리했다.
"아빠?"
"왜?"
"서랍장 맨 아래에서 팬티 하나만 내어 주세요?"
"네가 내어 가!"
"아빠 정말 그러실 거예요?"
"알았어!"
그 서랍장은 언니와 있을 때 자신이 산 거라 했다.
그건 간이용으로 단을 쌓아 올리면 되는 플라스틱 제품이었다.
나는 위에서부터 열어 보았다.
모두 다섯 칸인데 위 세 칸은 비어 있었다.
네 번째 칸에는 그녀의 블라우스와 치마 등이 들어 있었다.
"뭐 해요, 아빠?"
"찾고 있어! 어느 게 좋을 지?"
그녀가 덜컥 문을 열었다.
반사적으로 나는 서랍 문을 닫았다.
그녀는 덜렁덜렁 걸어 들어왔다.
그러나 나갈 때의 그 모습이었다.
아마도 팬티는 밖에다 벗어두었겠지...?
"숙녀의 서랍을 함부로 보는 거 아니라고요!!"
"그렇게 들어올 수 있는 걸? 너야말로 늙은 아빠를 부려먹지 마!!"
"아빠 물 받아 뒀어요! ...?"
그녀는 돌아서서 치마 밑으로 팬티를 껴 올리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나 그냥 갈 거야!"
"그럼 등목이라도 하고 가세요? 받아둔 물이 아깝잖아요..."
더 이상 도망 갈 길은 없었다.
아니, 도망치고싶지 않았다.
"그래 그럼.."
내가 웃통을 벗자 받아들고 옷걸이에 걸었다.
부엌으로 나가 바닥을 짚고 엎드리자 등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물은 그리 차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이 몸에 닿자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등에다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다.
매끈한 그녀의 손바닥이 등판을 쓸고 다니다 가슴 앞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마치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얼굴에도 비누거품을 문질렀다.
다시 물이 뿌려지자 나는 푸푸거리며 "아이 시원타!"하는 말을 토해냈다.
그녀의 머리에 매었던 수건을 풀어 등을 닦아준 뒤 나를 일으키며 가슴과 얼굴을 닦아주려 했을 때 나는 수건을 뺐었다.
그녀는 내 가슴에 난 털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왜, 신기해?"
"어디까지 이어졌나 싶어서.... 호호"
그녀의 초롱한 눈이 뚝 끊겼다 다시 이어져 내려가는 배꼽 선까지 내려왔다가 올라갔다.
"원숭이 같애?"
"아, 아뇨! 멋있잖아요! 남자들.. 터프해 보이고..."
"하하.. 터프? 나 얌전이야!"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슬며시 내려다보았다.
순간 나는 몸을 돌려 그녀를 밀치며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앞섶이 불룩하게 솟아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럴까? 주책스럽게...
금방 물을 닦아낸 가슴에 땀이 맺혀왔다.
그녀가 부엌을 치우는 소리를 들으며 윗도리를 껴입었다.
"아빠, 참 땀이 많으신가 봐?"
안으로 들어오며 어느새 내 이마에 맺힌 땀을 본 모양이었다.
다락문을 열더니 손바닥만한 선풍기를 내어다 이마 앞에다 털었다.
소녀다운 앙증맞은 장난감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이제야 나가야 할 명분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시는데요?"
"따라와!"
드나들며 골목 입구에 있던 전자제품점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밖은 의외로 선선했다.
비라도 오려는지 바람도 불고 있었다.
쫄랑거리며 따라온 그녀와 함께 선풍기를 사들고 다시 올라와 집 앞에서 그녀는 들여보내고 차에 올랐다.
그녀는 나에게 손으로 키스를 보내고 있었지만 못 본 채 붕- 하고 악셀을 밟았다.
< 계속 >
(13) 잿빛 방황
그때까지도 아내는 들어와 있지 않았다.
저녁 생각도 없고 하여 냉장고를 뒤져 과일 몇 조각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데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어이 비를 내리는 모양이었다.
애들이 간 캠핑장에도 비가 오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집에 혼자 있자니 괜히 쓸쓸해졌다.
나는 우산 하나를 꺼내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그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입구의 주차장에서 차에서 내리자 말자 냅다 달리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나는 우산을 펴들고 빗속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슬리퍼 위로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아파트 입구 경비실에 이르자 나를 알아본 경비가 꾸벅 절을 했다.
그가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라 했지만 나는 그 앞에 서 있었다.
여분의 우산을 안 들고 나온 걸 후회했다.
택시 몇이 아파트 안으로 파고들고, 버스 몇도 지나가고 내 바지가 거의 젖어 축축해 왔을 때에야 버스에서 내리는 아내가 보였다.
아내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왜 택시 타고 오지 않고..?"
"갑자기 비올 줄 알았나요!"
"왜 이렇게 늦었어?"
"백화점에 들렀다 온다고... 당신 저녁 못 먹었지요?"
"그건 뭔데?"
"유선이에게 입혀 보려고...!"
그녀도 걔에게 정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입혀 보려고...
그 말은 어린애를 키울 때의 마음이 그렇듯 장난감에게 옷을 입혀 보려고 하는.. 그런 말일 것이다.
아내는 그 옷을 안 젖게 가슴에 안고 걸었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간단하게 차린 밥상 앞에 내가 앉자 "걔 정말 날 주어도 괜찮겠어요?"하고 물었다.
내가 낮에 부탁한 말에 대한 답으로 선이를 식당에다 아르바이트생으로 쓰겠다는 말이었다.
"걔가 뭐 장난감인가!!"
나는 더 이상 말을 않았다.
그녀도 캠핑 간 애들이 걱정이다라는 말로 말꼬리를 접었다.
내 마음은 남 주기는 아깝고 데리고 있자니 두렵고.. 그런 마음이었다.
그녀는 마치 핀 뽑힌 시한폭탄과 같이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한 어린 것 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 시한은 그녀로부터가 아닌 나로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즉발 가능의 뇌관이었다.
아내는 내 말에 새침해진 건지 잠자리에서도 말문을 닫은 채 돌아누워 있었다.
사람의 감정이란 참으로 조변석개한 것이다.
아내가 그녀에게 입힐 옷을 산다며 백화점까지 들렀다는 말에 금방 감동했는데..
그리고 아침에는 그녀를 데리고 있어달라 부탁까지 해놓고, 그녀의 옷을 사들고 온 아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비추자 금방 마음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적어도 전에는 이렇게 우유부단한 방황은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방황하고 있었던 거 같다.
다음날 선이와 나는 비가 뿌리는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재를 아래로 옮겼다.
종일 내릴 줄 알았던 비는 위 창고를 거의 비웠을 때 서서히 그쳐가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비 그친 뒤 할걸..!!"
"아이 사장님도.. 그랬음 더워서도 못해요??"
딴은 그랬다.
우린 사무실 전화를 내 핸드폰으로 돌려놓고 아래 창고의 내린 짐 옆에서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그녀는 자재들이 늘린 속에서 짜장면 먹는 게 좋은 모양이었다.
대충 짐 정리가 마무리되자 그녀를 먼저 위로 올려보내고 마지막 일로 자재들의 네임플레이트를 만들어 붙이고 나도 올라왔다.
사무실이 조용했다.
그녀가 밖에라도 나갔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책상 앞에 않는데 화장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사장님이세요?"
"응! 그런데 너 뭐하는 거야?"
"땀을 너무 흘려서..."
이런 철없는 것을 어쩌나...?
혹시 손님이라도 들어오면 어쩌려고...
화장실 문은 잠겨 있지도 않았다.
와락 문을 열고 소리쳤다.
"야 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여긴 사무실이야! 여기가 너네 안방인줄 알아!!"
쾅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분이 풀리지 않았다.
책상을 쾅 내려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와 계단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뽑아 물었다.
정말 힘 버거운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 전데.. 아침에 가져간 애 옷 입혀봤어요? 안 맞으면 오늘 바꾸어야 하거든요..?"
"알았어!"
나는 터덜터덜 차에 가서 뒷좌석에서 빽을 꺼냈다.
흘깃 안을 보자 가을 옷인 듯 했다.
그걸 들고 다시 털썩털썩 올라오며 "내가 요즘 왜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변했지?" 하고 반문했다.
답은 없었다.
무기력 뒤에 찾아온 행복의 여신 앞에 발가벗겨져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확인할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필시 울고 있으리라...
내가 너무 심했나보다 하고 금방 그녀로 향한 연민이 나를 에워쌌다.
"얘 이거 한번 입어봐? 우리 집사람이 너 준다고 샀다 하더구나!"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는 정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
"미안해! 내가 심했어!! 자 이거 입어봐? 안 맞으면 오늘 바꾸어야 한데..."
"여기서요?"
"아니 저기 빈 창고로 들어가서..."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그녀의 표정은 금새 맑아져 있었다.
매혹의 그 보조개도 볼을 폭 패였고 눈망울도 똘망똘망 풋풋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옷은 잘 맞았다.
"마음에 들어?"
"네! 꼭...!!"
그녀가 내 앞에서 뱅글 도는 모습을 보며 전화기를 들었다.
"아 난데.. 잘 맞네!"
"다행이네요! 걔도 마음에 들어 해요?"
"응!"
"오늘 저녁은 사 드시고 들어오세요."
"왜 또?"
"오늘 자원봉사 가는 날이잖아요!"
"알았어. 잠깐...!"
선이가 전화를 바꿔달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화에다 대고 고맙다고 절을 몇 번이나 했다.
조잘조잘 지껄여대는 말이 참 수다스럽다고 생각했다.
조것도 여자가 아니랄까봐....
비가 갠 오후는 참으로 더웠다.
밖엔 아마도 거의 살인적인 더위가 계속되리라 여겨져 지리산 산자락이 그리웠다.
그런 와중에 선풍기 한 대로 그녀와 나의 두 열기를 식히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그녀처럼 저 안으로 들어가 시원한 물로 샤워나 했으면..
하지만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나온 그녀도 흐르는 땀을 식히느라 책받침으로 부채질을 해댔다.
따분하고 숨막히는 오후였다.
어제 못했던 자재들 주문에 시간을 때우려 했지만 반은 휴가였다.
이 불경기에 무슨 재주들이 좋아서 다들 늘어지게 긴 휴가들을 보내는지 원....
짜증만 부채질했다.
충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 그도 밖에서 저녁을 해결해야 할 신세이기에...
아내와 제수씨는 벌써 10여년째 같은 단체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내가 충길이와 같은 회사에 다닐 때 사원 부인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였다.
아내도 그때의 정이 있어서인지 내가 회사를 그만 뒀음에도 그 단체에 계속 머물러 왔다.
"야, 오늘 저녁 같이 할래?"
"모친상을 당한 직원이 있어서 오늘 모두 거기로 가기로 했어."
"내가 아는 사람이야?"
영업상 관계가 있다면 나도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럴 일이 생기면 먼저 내게 알려오던 충길이었다.
"신경 안 써도 되는 사람이야."
"알았어!"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때 선이가 뒤로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그녀와 같이 먹자는 뜻인 듯 했다.
공과 사에 구분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그녀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너와 먹자!"
"사장님! 제가 집에서 저녁 해드릴게요! 예쁜 옷도 선물 받았는데..."
"네가? 밥이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거야?"
"그럼요!"
"차라리 내가 사주마!"
그러나 긴 오후를 보낸 내가 그녀를 태우고 가서 차를 세운 곳은 그녀의 집 앞이었다.
그녀는 자랑스러운 듯 옷이 든 빽을 흔들며 앞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집 앞 슈퍼에 들러 광주리에 복숭아 한 봉지를 담고 술들이 가지런히 세워진 냉장고 앞에서 서성거렸다.
결국 나는 큰 음료수 한 병을 담았다.
술은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내가 봉지에 그걸 싸들고 나왔을 때 그녀가 대문간에 나와 있었다.
"왜 내가 도망간 줄 알았어!"
그녀는 내 팔을 끼고 끌고 들어갔다.
방에는 어제 사보낸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 앞에 나를 앉혀 둔 그녀는 부엌으로 나가 수선스럽게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내가 첫 신접살림을 시작 할 때도 이만한 방이었다.
우린 결혼도 하기 전 살림부터 차린 축에 속했다.
나는 군을 제대하여 대학에 복학 중이었고, 아내는 대학을 다니다 집안 사정으로 중도에 포기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아내와 난 그녀가 고등학생시절부터 사귀어 온 터였으므로 안지가 5년도 넘어 있었다.
내가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 우린 장래를 약속하고 몸을 섞었고, 제대하여 복학하자마자 그녀의 자췻방이 우리들의 살림집이 되고 만 것이다.
그땐 정말 행복했다.
연탄불이 꺼져 설익은 밥을 먹으면서도, 너무 태워 온통 누룽지가 된 밥을 먹으면서도...
선이도 어쩜 서툰 솜씨로 설익은 밥이나 탄 밥을 들고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보글보글 된장 끓는 냄새와 함께 밥 익는 소리가 스며들어 입에는 벌써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그녀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을 때 내 배에선 꼬르륵 소리를 냈다.
"어머, 아빠 시장하셨나 봐요!"
내게 수저를 쥐어주며 빤히 쳐다보았다.
그때 아내도 그러했던 것 같다.
첫날 밥상을 내 앞에다 내밀어 놓고 내 입을 주시했었다.
맛을 보고 평해 달라는 뜻이었었다.
맛을 본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심한 듯 환하게 웃어 보이던 아내였었다.
서로의 입맛을 처음 맞추던 시기이기 때문이어서 이리라..
나는 숟갈을 된장찌개 윗물을 떠 맛을 보았다.
조금 짠 듯 했지만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그녀의 볼에 보조개가 어디까지 들어가며 방긋 웃었다.
밥은 잘 익어 있었다.
된장찌개에는 조개도 들어 있었다.
어린것이 제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된장찌개 하는 법은 어디서 배웠어? 제법인데..."
"언니한테요. 언니는 요리학원도 다녔걸랑요."
"너 아줌마한테 자랑하지마!"
"왜요?"
"아줌마 식당하잖니.. 자존심 상해한다고??"
속 좁게도 이 솜씨를 보고 데려 갈까봐 한 말이었다.
나는 밥을 뚝딱 비웠다.
밥을 더 드릴까 하기에 차라리 소주 한 병 사 오라 했다.
그녀가 쪼르르 사라진 뒤에야 내 머리를 쳤다.
이런 빌어먹을...!!
도무지 브레이크가 안 듣는 요즘의 내 감정이었다.
일회용 컵까지 얻어 뛰어들어온 그녀가 소주병을 따서 한잔을 따러 밀었을 때 "너도 한 잔 할래!"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저기 봉지 안에 음료수 들어 있어!"
그녀는 컵을 갖고 들어와 음료수를 채우고 "건배!" 했다.
뭘 건배하려는 걸까?
그녀가 밥상 위에 된장찌개만 남기고 모두 거두어 나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소주를 한잔 한잔 마셨다.
쟁반에다 복숭아의 씨를 모두 파내고 쟁반에 가지런히 쓸어 들어왔을 때 소주병은 비어 있었다.
"한 병 더 사올까요?" 했을 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 주량으로 보면 그 한 병으론 많이 취하지는 않으리..
그러나 얼굴이 온통 붉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등으로 흐르는 땀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가자면 이 술을 깨야 한다.
대책도 없이 순간적인 기분에 벌컥 술을 마시다니...
나의 자제력을 통제하는 브레이크 라이닝도 어지간히 닳은 모양이야. 허허.....
이제 어떡한다...?
시원한 샤워라도 한다면 조금 나을까...?
에라이 모르겠다. 잠이나 한 숨 자고 가자..
나는 벌렁 누웠다,
방바닥이 시원했다.
내 목을 들고 베개를 밀어 넣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직 공장의 기름 냄새가 나는 새 베개였다.
어제 아내가 사준 그거리라.
선풍기 바람이 다리에서부터 얼굴까지 회전하고 있었다.
방안에 불이 꺼졌다.
그녀가 부엌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편히 쉬게 해주고 싶어서이리.. 여성 본래의 모성본능 같은 거리라..
낮에 사무실에서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을 때 그녀는 발가벗고 있었다.
깜짝 놀라 돌아섰지만 도톰한 젖가슴과 까만 털이 소복이 난 둔덕을 보고 난 뒤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상태라 욕정은 일지 않았지만 앙증맞은 엉덩이로 어찌할 줄 몰라하던 모습은 오래 남았다.
또 다시 내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을 하며 선풍기 쪽으로 등을 돌려 누웠다.
등에 적신 땀이 식으며 몸의 열기를 삭여갔다.
그녀가 나를 부엌으로 끌고 나갔다.
나는 마치 목욕을 안 하려는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그녀는 내 옷을 모조리 벗겨내고 세워둔 뒤 물을 뿌렸다.
그 물은 내 몸을 타고 우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밑을 보자 그게 발랑 서 있었다.
나는 손으로 그걸 가렸다.
그녀는 손에다 비누를 쥐고 몸 구석구석을 비볐다.
또 물이 뿌려지고..
그녀의 손에 쥔 물바가지를 내 손에다 쥐어 주고 그녀도 옷을 벗었다.
낮에 본 도톰한 젖가슴과 까만 털이 소복이 난 둔덕, 그리고 앙증맞은 엉덩이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 몸에다 물을 뿌렸다.
그리고 그녀가 했던 것처럼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비누칠을 했다.
그리고 물을 뿌리며 비누 거품을 씻겨 내렸다.
그런데 그녀의 등에 비누거품을 씻겨 내리는데 슬며시 그녀가 기대어 왔다.
내 몸 끝에 그녀의 엉덩이가 닿았다.
"이러면 안돼! 우리는 부녀간이야!!"
"아니에요. 그건 우리가 가까워지기 위하여 일부러 정한 것일 뿐이에요!"
"그래도 이건 안돼! 넌 아직 어린 미성년이야!!"
"그게 어떻다고요? 미성년은 사랑도 못해요??"
그녀는 엉덩이를 비벼오며 내 손을 끌고 가서 그녀의 젖가슴을 덮었다.
몰캉한 감촉이 몸이 아리도록 상큼하다.
그 손은 이내 밑으로 끌어내렸다.
부슬부슬 난 털 감촉이 이번에도 몸을 아리게 했다.
"아아--!!"
"꼭 껴안아주세요!!"
"넌 나의 보석이야! 함부로 다치게 할 수는 없어!!"
"저는 다치는 게 아니에요! 꽃이 몽우리를 틔우듯이 피는 거예요!!"
"이제 안 돼! 더 이상은 안 돼!! 안--돼--!!!"
"아빠! 왜 그래요??"
나는 눈을 떴다.
그녀가 불을 켜고 와서 수건으로 나의 이마를 닦아주고 있었다.
아- 꿈이었구나!
그녀가 내 팔을 베고 누운 듯 팔이 아렸다.
그러나 거기 아픈 표정을 할 수는 없었다.
"지금 몇 시야?"
"1시 반..."
"뭐라고? 왜 일찍 안 깨웠어??"
"하도 곤히 주무시길래...."
나는 옷을 여미며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차에까지 따라나온 그녀를 봤을 때 황급히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엷은 잠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라도 본다면 뭐라 할까?
그리고 저 모습을 보는 남자라도 있다면 가만히 버려 둘까?
나는 그녀가 대문 안으로 사라진 뒤에야 시동을 걸었다.
< 계속 >
(14) 나는 조석으로 풍향이 바뀌는 바람이어라!
아직 술이 덜 깬 건지, 혼란한 생각 때문인지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아파트 안에 차를 댔을 때 뭐라 변명해야 할까 난감했다.
나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키로 문을 열었다.
다행히 안에 고리는 걸려있지 않았다.
애들의 신발이 늘려 있는 걸로 보아 걔들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문소리를 듣고 나온 작은놈이 꾸벅 인사를 했다.
"잘 놀았어?"
"예!"
"강우(큰애)는?"
"자요!"
"너도 들어가서 자!"
"네!"
나는 큰방 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 아내가 누워 있었다.
나는 옷을 벗어 걸고 슬며시 침대로 올라갔다.
"샤워도 안 하고 올라와요?"
깜짝 놀랐다.
아직 잠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엉거주춤 걸어나와 욕실로 들어갔다.
아내가 눈치챈 게 확실했다.
여자들의 육감은 상상을 초월할 때가 많다.
아내는 그런 면에서 아주 예민한 부분이 있었다.
어쩐다..........?
아무 일이 없었다 한들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휴가지에서의 일이 있었긴 했지만 그건 충분한 교감 위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이거와는 달랐다.
더구나 50대를 바라보고 있는 제수씨에 비해 선이는 한참 물이 오를 아직 10대에 불과하므로 비교본능으로 볼 때도 시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 일 이후 아내가 성적으로 해방되었거나 초월했다고 믿기에는 도저히 힘든 일이었다.
칫솔로 입안을 마구 쑤셨지만 잇사이에 낀 오물이 빠져나가는 기분은 없었다.
샤워 콕을 최대로 틀어 고정시켜 놓고 그 아래에 섰지만 역시 몸에 낀 땀 찌꺼기가 다 씻겨내려 간다는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마냥 거기서 미적댈 수만도 없는 일이라 몸에 묻은 물을 대충 털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당신 술을 다 깨서 오신 거예요?"
어찌 알았을까?
그새 내 입에서 술내를 맡은 걸까?
언젠가 술에 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다 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깜박 졸다가 차가 길에 미끄러지며 전봇대를 박고 멈춰 섰다.
다행히도 그때가 설렁하던 겨울 새벽이라 지나가는 차가 없어서 큰 사고는 면했지만 나는 갈비뼈에 금이 가고 다리가 부러지는 등 몇 달간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두 집이 나란히 살고 있을 때여서 아내는 나를 수발하느라 병원에서 같이 살았고 집안 일은 제수씨가 도맡아 했다.
내가 퇴원하자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어 있었고 한동안 면허시험조차 자격을 상실한 상태가 되었다.
그 이후 두 여자는 음주운전이라면 진저리를 내게 된 것이다.
어쩜 오늘의 일도 그걸 이용하면 아내의 화를 덮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밖에 안 마셨는데 날씨가 더워선지 왜 그리도 취하든지...!"
"소주 한 병이 작아요? 핸들을 잡아야 할 시간에..."
"어찌 알았어? 당신 탐정 아냐?"
나의 좀 오버하는 비약적 발언이었다.
죄 지은 놈이 제 발 저린다고...
"그 애 너무 싸고도는 게 아니에요, 당신??"
"미스 정...?"
"그래요! 걔가 전화 왔습디다. 당신 술 취해서 주무신다고... 그 전화를 내가 받았기 망정이지 애들이 받았으면 무슨 망신예요?"
"미안해 여보! 밥을 먹다 술 생각이 나서..."
"술 생각이 아니라 설마 걔를 어쩌려고 그런 건 아니겠죠?"
따가운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버럭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나는 걔를 귀여운 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믿어 줘, 여보?"
"아무튼 신문에 당신 신상이 모두 공개되고 파렴치한으로 몰리는 일은 나는 못 봐요! 그게 어디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불쌍하기 만한 어린것들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난 정말 걔를 어린 딸 정도로만 생각한다니까...?"
"주무세요! 나도 저녁 내내 애들 씻겨주고 안아주고 했더니 피곤해요..."
아내는 돌아누워 버렸다.
나는 거기서 자고 와서 그런지 밤새 뒤척여야 했다.
내 뒤척임에 아내도 잠을 설치는 거 같아 나는 살며시 빠져 나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담배를 뽑아 무는데 책상 위에 몹시 구겨진 종이 한 장이 얹혀 있었다.
그건 아마도 세탁기에 들어가 물을 먹고 뒤늦게 꺼내어 말려 놓은 듯 했다.
펴 보았다.
"아빠 빨리 돌아오세요! 이 딸 선아가 몹시 외로워요. 보고싶어요. 무서워요. 빨리 돌아오실 거죠 아빠? 아빠! 아빠!!"
사무실 선이의 휴지통에서 주어 호주머니에 접어 넣었던 그 쪽지였다.
잉크 물이 번져 있었지만 볼펜 침이 지나갔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내도 빨래를 꺼내어 말리다 이걸 봤으리...
아내는 이걸 보며 뭘 생각했을까?
거침없이 '아빠'란 말을 몇 번이나 쓴 그 말에서 그녀는 뭘 느꼈을까?
분명한 것은 아내가 이 글을 보며 딸을 못 놓아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뒤늦게라도 양딸이라도 들여야겠다는 결심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필시 심한 질투심에 빠졌을 것이고, 이 글을 팍팍 찢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녀는 이걸 펴고 말려서 여기다 얹어 놓은 것일까?
그건 자기가 찢어버리는 거보다 더 효과적으로 분노와 경고를 보낼 수 있다도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등이 오싹해왔다.
여자들의 독기는 오뉴월 찬 서리를 내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리..
나는 그걸 찢어 휴지통에 버렸다.
그걸 완벽하게 없애려면 변기 속에 넣어 내려버리면 될 테지만 내가 찢었다는 걸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한계가 온 듯 했다.
길게는 2주일 여, 짧게는 1주일 그녀와 벌여온 은근한 밀회(스킨십 정도가 고작였지만..)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주방으로 나와 전에 제수씨와 즐기다 남은 진(국산양주)과 얼음 물 한 컵을 들고 다시 서재로 왔다.
따가운 술이 목을 파고들었다.
무슨 일이든 끝을 본다는 것은 성취감보다는 허무를 느끼게 하는 법이다.
더구나 이번처럼 중도에서 포기해야 할 그 끝은 좌절을 느끼게 한다.
아직도 익숙치 않는 그 좌절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술병이 비고 왠지 모를 허기를 얼음물로 채웠다.
그리고 퍽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내 위에는 이불이 덮어져 있었다.
날이 밝아져 있었지만 시간은 6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바깥에서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아내가 일어나 밥을 짓는 모양이었다.
애들도 방학인데 왜 저리도 설치는지...
그녀도 잠을 설쳤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이때껏 살아오면서 각방을 쓴 일은 없었다.
아무리 격한 감정 싸움을 했어도 방밖으로 나가는 것은 부부간의 정도가 아니라고 외쳐온 나였다.
그런데 어쩌다 각 방에 자게 되어버린 꼴이다.
내게 이불을 덮어준 이는 분명히 아내였을 테지만 그녀는 내게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밤 나를 용서(이해가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했다고 믿었던 나는 다시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나는 일어나기를 주저하며 미적거렸다.
그때 문이 열렸다.
"이제 저쪽 방에 가서 주무세요.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떼밀려 이불을 들고 큰방으로 건너왔다.
생각보다 아내가 화난 음성이 아니라는 데에 일단 안심을 했다.
다시 작은애가 나를 깨워 세수를 하고 식탁 앞에 앉았을 때 아내가 애들 앞에서 한 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얘들아! 너희 동생 하나 생겼으면 좋겠지? 그것도 여동생이...??"
작은애인 강혁이는 대뜸 제 엄마의 배부터 내려다 봤다.
큰애 강우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전 대 환영이에요! 엄마 언제쯤이야?"
강혁이가 좋아라 날뛰었다.
"넌 이 늙은 엄마가 꼭 배 아파하며 놓아야겠니?"
"그럼 벌써 아빠가 몰래 만들어 두었단 말이에요?"
가슴 뜨끔한 말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무사히 아이들을 설득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때 뜻밖에도 강우는 맏이다운 의젓한 말을 했다.
"자식은 엄마 아빠의 고유권한이 아닌가요? 전 두 분을 믿어요!"
쟤 엄마가 오래 전부터 양육원(고아원)에 자원봉사 다니는 걸 아는 그로선 거기서 한 아이를 데려올 것이라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아이인데요? 혹시 전에 데려온 그 애..?"
강혁이의 그 말은 그 아이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언젠가 아내가 양육원의 가정체험이라는 테마를 통해 한 애를 집으로 데려왔는데 워낙 고집도 세고 심술이 심하여 같이 놀아 주라 했던 혁이가 학을 떼던 아이가 있었다.
그는 걔를 떠올리며 한 말이었다.
"걔는 어린 아이였잖아. 얜 다 큰 애야! 너(강혁)보다 두 살 아래..."
"저는 두 분이 좀더 겪어보고 결정했으면 해요! 더구나 그 만큼 큰 애라면..."
"강우가 올바른 말을 하구나! 그래 그리 급한 문제는 아니니 너희들도 겪어보고 우리 다같이 결정하자구나!"
결국 내가 나서서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출근을 서두르는 내게 와이셔츠를 내어주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보니 강우가 어른이 다 된 거 같애? 당신 닮아서...?"
그녀는 히죽 웃었다.
칭찬이라 꺼낸 그 말은 아부라는 걸 아내도 알았으리라..
그래서 그렇게 멋쩍게 히죽 웃었을 것이다.
출근을 하는 내 마음은 생각만큼 그리 가볍지는 못했다.
"사장님,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닥에 걸레질을 하고 있던 그녀가 허리를 꾸벅하며 물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저쪽 회사(앞으로 B사라 하겠음, 충길 회사는 A사)에서 날아온 팩스가 놓여 있었다.
'계약체결서'였다.
회사 직인까지 찍힌 정식 계약서인 것이다.
나는 그 종이에다 입을 맞추었다.
"야! 이제 이 아빠도 정식으로 날개가 달린 거야!!"
나는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녀는 갑작스런 내 행동에 품안에서 파닥거렸다.
큰 맹조(猛鳥)에게 잡힌 작은 새 마냥...
그녀의 이마에다 쪽! 하고 내려놓았다.
"저 안은 뭘로 쓰실 건가요?"
"글쎄? 넌 뭐로 썼으면 좋겠어?"
"휴게실..? 아니면 응접실..?"
"그런 말도 다 알아?"
"그럼요. 양육원에도 다 그런 건 있는 걸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 정말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와도 마땅히 앉힐 곳이 없던 게 사실이었다.
나는 그 문을 열어 보았다.
지저분했던 그곳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창문도 활짝 열려 있는 걸로 보아 아마도 그녀가 아침 일찍 나와 이곳을 치우고 매캐한 자재들 냄새들도 빼내려 했던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계약서로 기분이 날아간 것 같은데 이런 귀여운 모습까지 보고 나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얘, 이리로 들어와 봐!"
그녀는 내게 칭찬 받을 줄 미리 아는 표정이었다.
나는 다시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너 어쩜 이리 귀여운 짓만 하니??"
"사장님이 몹시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그녀의 이마와 볼에다 입술을 꾹꾹 눌렀다.
"이제 사장님이라 안 해도 돼!"
무슨 말인가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내 모습이 들어가 있었다.
언제까지 저 눈망울에 빠져 있을 수 있을까?
내 모습은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은 아니었다.
당당한.. 아니, 당당하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넌 곧 정식으로 내 딸이 될 수 있을 것 같애! 오늘 아침 아줌마가 널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였으면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어.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사모님께서..?"
"그래!"
"아이 아빠!!"
그녀가 품으로 파고들었다.
퍽퍽 울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가슴이 느껴지면서 혹여 내 앞섶이 닿을까봐 조용히 떼어냈다.
"그러나 아직이야! 모두 너를 지켜 볼 거야! 같은 가족으로서 손색이 없을지? 너는 총명하고 모난 데가 없어서 잘 하리라 믿어..!"
"저 잘할 게요? 아빠를 위해서라도..."
"그래 그래!!"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커피를 끓여 내 앞으로 미는 손이 떨고 있었다.
아마도 감동이 잘 사라지질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정보지에 사원 모집 광고를 내라고 그녀에게 시켰다.
그녀는 암담해 했다.
하긴 아직 그녀에겐 무리한 요구였다.
나는 잘 지켜보라며 전화를 들어 회사이름, 연락전화, 인원수 남 1명, 직책은 업무직이라 말하고 끊었다.
그녀는 다음에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내일부턴 아마 바쁠 것 같았다.
휴가들이 거의 끝나는 데다, 직원 채용, 그리고 납품 준비 등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아마도 오늘 B사로 들어가 계약서 원본도 받아오고 인사도 하고 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어딜 가냐고 물었다.
출장 간다며 아마 저녁에나 돌아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따라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왜 무서워서..?"
"네! 옆 사무실이 아직 휴가 중이라서..."
딴엔 그랬다.
같은 층에 사무실이 셋인데.. 맨 첫 사무실이 우리 사무실이고, 옆 사무실은 휴가 중이라 비어 있고, 저 안쪽 사무실엔 사람들이 있지만 복덕방이라 사람이 뜸한데다 낯선 이들이 드나드는 지라 그녀 혼자 두고 가기엔 안심이 안 되었다.
우린 더위에 맥을 못 추는 에어컨을 아예 끄고 창문을 내리고 달렸다.
푹푹 찌는 아스팔트에서 내뿜는 열기로 등이 젖었지만 그녀는 머리를 폴폴 날리며 마냥 신나 있었다.
B사가 자리한 곳은 바닷가라 그 앞에서 그녀에게 싱싱한 생선회나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난들 얼마나 신이 났을까?
한참 신나게 달리는 저 앞에 오토바이가 서 있어서 순간적으로 속도를 늦췄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스팔트만큼이나 검은 선글라스 앞에 섰을 때 그가 내민 스피드건에는 112Km/m라는 수치가 찍혀 있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선생님! 그렇게 달리시면 어쩌시나..??"
내가 내민 면허증을 본 그는 다시 물었다.
"어디 피서라도 가시나 보죠?"
"아저씨! 한번만 봐 주세요? 우리 아빠 과속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바쁘다 보니..."
"따님과 데이트하실 리도 없고.. 뭔 급하신 일이라도..?"
그가 창문 안으로 스티커 뭉치를 통째로 내미는 걸로 커피 값이라도 주고 가라는 뜻인 듯 했다.
당찬 선이가 문을 열고 사정하려 나가는 사이 나는 잽싸게 그 밑으로 만원 짜리 하나를 꽂았다.
선이는 그의 팔을 붙들고 사정하고 있었다.
"아저씨! 다음부턴 과속 안 하실 거예요. 제발.."
"따님을 보아서 봐드립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그가 거수 경례를 하고 물러나자 그녀가 의기양양하게 올라탔다.
"고맙다 얘야..!"
"저들은 피서도 안 가나봐요!"
"다 피서 가면 여긴 누가 지키나. 고맙게 생각해야지!"
"하긴요..."
"그리고 참, 너 앞으로 남 앞에서 너를 소개할 때는 '미스 정'이 아니라 '미스 진'으로 소개해야 한다?"
"알았어요!"
B사에 도착했을 때 11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차를 그늘 옆에 세워 그녀를 차에다 앉혀 두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김 과장은 마침 잘 왔다며 계약서 원본이 든 봉투를 내어주었다.
우편으로 붙이려 했다고 했다.
안을 기웃대는 내게 그는 이사님은 출장중이라 했다.
오늘 점심 어떻느냐고 묻자 대뜸 그러자고 나가서 기다리고 했다.
나는 차로 돌아와 선이를 뒤에다 앉히고 기다리다 그가 나와 옆자리에 앉자 곧 바로 해변을 달렸다.
나는 차에서 뒤의 아가씨는 내 딸로서 사무실에서 사무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뜸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며 딸이 참 예쁘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 수 더 떠서 "엄마를 닮았걸랑요!"라 했다.
지금 그녀는 '엄마'란 그 말을 '아빠'만큼이나 불러보고 싶어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회가 나오기 전 찌개다시들이 나오고 술은 피차 할 수 없는 지라 음료수로 목을 축이는 데 그가 물었다.
"우리 이사님 사장님 친구의 5촌 당숙이라 했던가요?"
"아 예! 제 절친한 친구의.. 참, 김 과장님도 아시잖아요? A사의 김충길 차장..?"
"그럼요. 제 중학교 선배님이시죠."
그는 선배라는 말을 강조했다.
충길이에게 듣기로는 그는 과장 6년째로 이번에 차장 진급을 못하면 자동적으로 옷을 벗게 되리라 했다.
그래서 그 '선배'라는 걸 강조하고 인사권자의 후의를 은근히 기대하여 이번 일도 자신이 나서서 성사시켰으리라 여겨졌다.
"언제 우리 사무실로 놀러 한번 오세요? 그 때는 김 차장도 부를 테니 선후배간에 한잔합시다!"
"그럴게요!"
그는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곧 회가 나왔다.
분위기로 보아 나중 회값도 자기가 치르겠다 할 것 같아 중간에 화장실 가는 척하며 나와 미리 계산을 했다.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나는 분명 그를 접대하려 불러낸 것인데 그가 날 접대해야 할 이유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선이에게도 과분할 정도로 친절했다.
자신의 명함까지 건네며 아빠를 많이 도와 드리라고..
그의 오후 시업 시간도 가까워 제가 너무 시간을 많이 뺏은 것 같다며 일어서자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를 회사 앞에다 내려주고 우린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오늘 회 어떻더냐고 묻자 그런 집에서 처음 먹어봐서 맛도 모르고 먹었다고 했다.
솔직한 답이리라...
그녀와 나 둘만도 아닌 어려운 사람 앞이었으니 당연했을 것이다.
다음엔 일을 떠나 먹으러 오자고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5시가 넘어 있었다.
급한 것도 없고, 또 검은 선글라스를 볼지도 모를 일이고, 선이와의 오붓한 데이트를 좀 더 즐기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선이는 내내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고, 내가 부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나는 사무실에 들어서며 물었다.
"너,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아뇨!"
"아닌데 뭘?"
"사실은 아줌마하고 오빠들에게 어쩌면 잘 보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평소대로 하면 돼! 아빠도 도와줄 테니..."
나는 곧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돌렸다.
"오늘 저녁에 애를 데려가 볼까?"
"당신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에요? 아직 작은애는 마음의 준비가 덜 된 듯 하던데...?"
"정이란 자꾸 부대껴야 생기는 거 아니겠어? 말 나온 김에 서둘렀으면 해!"
"그러다 일이라도 그르치면...?"
"우리 애들 그렇게도 못 믿어?"
"아무튼 알았어요. 내가 애들과 좀더 대화해 보고 전화 드릴게요!"
정말 내가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마음 한켠에는 그 서두름이 스스로 내 발목을 묶는 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저녁 내내 초조하게 아내의 전화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선이도 못내 기다렸는지 어둑해져오는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장님 그만 가요?"
아빠라 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서며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빠! 저 아빠만으로도 행복해요. 더 많은 걸 주시려 노력하지 마세요! 저 사실은 두려워요!"
그 마음은 나도 공감하는 바였다.
정말 가족이 된다면 그녀를 뺏기는 꼴이 아닐까 나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노리는 게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래로 꺾이는 계단의 중간에서 그녀를 돌려 세웠다.
그녀는 두려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쩜 간절한 표정 같기도 했다.
서서히 몸을 에워싸는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 속 심연은 한없이 깊어져 있었다.
그 속에 빠지고 싶었다.
그녀는 그걸 감추려는 듯이 시선을 내리깔고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나는 와락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손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느새 그 심연의 늪에서 너울이 일고 있는 게 보였다.
아아- 가련한 것...
이를 어쩌나?
어찌 한단 말인가...?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고 계단을 밟아 내렸다.
그녀를 차에 태운 나는 그녀 몰래 바싹 마른 입술을 적시고 있었다.
그녀의 집 앞에 올 때까지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하며 사라질 때에도 나는 손만 들어 보였다.
집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두 놈이 식탁 앞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네들 엄마는 아직 안 왔니?"
"예! 병원에 들렀다 온댔어요!"
"병원에는 왜?"
"양육원 한 꼬마가 차에 치어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어요."
"그래서 너희들도 거기 앉아 빌기라도 하는 거야?"
"우리 집에 왔던 그 녀석이 그랬다 하기에...."
나는 그 놈들의 심정을 이해할만 했다.
샤워를 하고 안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으며 그건 불길한 징조일지 모른다는 예감을 했다.
작은놈의 동정에 불을 붙일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큰놈이 들어와 저녁을 차려 놓았다는 말을 했다.
식탁 앞에서 나는 작은놈의 심정을 슬쩍 떠보았다.
"혁이 너, 공부 열심히 하니? 이제 기껏 4,5개월 뿐이야!"
"예!"
"대답이 시무룩한 걸 보니 요즘도 게임에만 빠져 있구나?"
"아니에요, 아버지! 얘 오늘도 코피 흘렸다고요!"
큰애가 싸고돌았다.
"그런 상황인데 아침 네 엄마는 쓸데없는 얘길 꺼냈나 보구나!"
"아빠 저도 반대는 안 해요! 다만 귀엽고 예쁜 동생이었으면 해요!"
"그래요 아버지, 우린 어른들 뜻에 무조건 따르기로 했어요!"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아침 이 자리에서는 얘들의 반대가 심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저녁 돌아온 자리에선 제발 반대 좀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다니.. 요즘 나의 마음은 조석으로 풍향이 바뀌는 바람이었다.
나는 몇 수저를 떠다 숟갈을 놓고 서재로 들어가 담배만 피워댔다.
아내는 열두 시가 가까워 들어왔다.
아내의 표정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어찌 되었어?"
"간신히 고비는 넘겼지만 났어도 다리는 못 쓸 거 같아요!"
"심하게 다친 거 갔구나!"
"차라리 그 불쌍한 앨 데려오면 어때요?"
하도 뜻밖이라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그 말은 취소할게요. 당신뿐만 아니라 애들을 설득하기는 더 힘들 테니까요!"
아내가 너무 빨리 말을 거두어 버리자 그런 아내를 넘어 선이를 내게 묶어두려는 건 허망한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걔의 치료비는 내가 부담하고 싶어요! 당신 도와주실 거죠?"
"얼마나 드는 데...?"
"다 도와줄 수는 없어요! 우리 형편도 있으니.."
걔를 향한 아내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표현인 듯했다.
자원봉사를 다니면서 아내가 얻은 게 있다면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아내는 단번에 안겨왔다.
그러나 내 손이 밑으로 파고들자 손을 막았다.
"오늘 그날이에요! 입으로 해드릴까요?"
"됐어! 이렇게 자자!"
"내일 윤영이와 저녁이나 하세요? 오늘 첫날이니까 아마 사흘은 힘들 거예요.."
정말 아내는 그날 이후 性의 벽을 넘어선 걸까?
나는 아내의 젖꼭지만 만지작거렸다.
그녀도 아쉬운 지 손을 밑으로 내렸다.
"오늘 윤영이도 왔더군요. 충길씨 아직도 완전하질 못한가봐요. 그때 내게는 안 그랬거든요."
"제수씨 바램이 너무 커서가 아닐까?"
"그럴 지도 모르죠. 아무튼 윤영이 실망이 큰 모양이었어요. 당신이 좀 달래주세요?"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내의 젖꼭지를 놓았다.
그녀도 손을 거두어 갔다.
부부간에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디까지이며, 서로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놓을 수 있는 범위 또한 어디까지인지 가름하기 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내는 비교적 많은 부분을 드러내어 보인 꼴이고, 나는 숨기는 게 더 많은 편이라 해야 할 것이다.
< 계속 >
(15) 갱년기의 여자
다음 날 아침부터 전화가 빗발 칠 거라 여겼던 전화기는 종일 조용했다.
점심을 먹고서도 마찬가지여서 정보지를 가져 오라 하여 살펴보자 모집 공고란에 우리가 요청한 것이 없기에 전화를 걸어보니 내일부터 게재된다는 말이었다.
아침부터 서둘러 들여온 책상과 응접실 가구들을 들여다보며 허탈에 빠졌다.
하루를 공친 꼴이었다.
다음 주부터 새 식구가 들어오면 그에게 맡기려 했던 잡무들을 챙기고 있는데 검은 선글라스 낀 한 여인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꽃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안경을 벗었을 때에야 제수씨라는 걸 알아 차렸다.
"이 아가씨가 희애가 얘기하던 그 아가씨로구나! 참 총기 있고 예쁘게도 생겼네!!"
그녀는 선이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선이는 엉겁결에 그녀의 가슴에 안겨준 꽃을 받고 어리둥절해했다.
"내 친구인 A사 김 충길차장의 사모님이야! 제수씨 어서 오세요?"
선이는 그제야 꾸벅 인사를 했다.
나는 그녀를 응접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여기 물건들은 어디다 치우고..?"
"밑에 창고를 하나 얻었어요. 근데 어찌 이 먼 길을..?"
"하도 머니까 시간이 남는 제가 찾아뵈올 수밖에..!"
뼈 있는 농에 뼈 세운 화답이었다.
"애가 참 예쁘네요? 윤수씨 눈이 뒤집힐만 하네요.."
"집사람이 그러던가요?"
"걔야 그런 말 해라해도 못할 애 아니에요. 제 생각일 뿐이에요."
"참하죠?"
"너무 참해서 질투나네요!"
"그럼 제수씨도 딸 하나 삼으세요?"
"당채 그이가 능력이 없어서..."
그때 선이가 커피를 들여다 놓고 나갔다.
언제 얼음까지 만들었는지 냉커피였다.
"쟤가 이런 애예요! 시키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그래도 너무 끼고 돌면 여자의 마음엔 질투가 생긴다는 걸 왜 모를까나...?"
"제수씨 앞이니까 이러지, 집사람 앞에서야 고양이 앞의 쥐인 걸요. 허허허..."
나는 선이를 먼저 들어가라 하고선 그녀와 좀더 얘기를 나누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자의든 타의든 오늘은 그녀의 성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녀에게 어디 가서 뭘 먹고 싶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가까운 데서 아무 거나 먹자고 했다.
나는 전에 가본 적이 있는 한식집에 데리고 갔다.
음식을 시키면서 맥주를 시키자 그녀가 "집에 들어가 봐야지 않느냐?"고 물었다.
"차를 놓고 가면 되지 뭐!"하고 답하자 자기도 곧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맥주가 나오자 벌컥벌컥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음식이 나오고 술도 더 날라 오고 그녀는 푸념을 해대기 시작했다.
"자기가 좀 도와주세요? 우리 부부를...??"
"곧 좋아질 거예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면 자꾸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그러나 너무 실망이 커요! 희애하고는 되는 데 왜 나하고는 안 되는지....?"
"우리 서로 같이 하기로 했잖아요? 반쪽이 안 되도 또 반쪽이 있다고 위안하세요. 그러다 보면 차차 정상을 되찾을 거라 믿으세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지만 자꾸 윤수씨에게 미안해서..."
사람들 앞에서 더한 말이 나올 듯 하여 그녀를 끌고 나왔다.
어디 조용한 강가에라도 나가 위안해주고 싶어서 택시를 잡으려는 데 그녀는 내 손을 막았다.
사무실로 가자는 말이었다.
아마도 그 응접실로 꾸민 방이 마음에 들었는가 보다.
나는 벌써 비틀거리는 그녀를 사무실로 끌어넣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여 안에서 문을 걸었다.
그녀는 응접실로 들어가자마자 내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저 배고팠어요! 지리산 갔다오고 나서 그 허기가 더 심해진 거 같아요. 이게 병은 아닐까요?"
"활력이 생긴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제 만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 나이들이 아닌가요...?"
"그런 여유가 우리 그이에겐 왜 안 생기는 걸까요?"
그녀의 손이 옷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런 여유는 제수씨가 더 가져야 할 거 같은데요?"
"제가요? 그럴 거예요. 그러나 그게 잘 안 돼요! 자꾸 조급해지기만 하는 걸요."
그녀는 벌써 내 바지를 풀어놓고 입에다 꺽 물었다.
그녀의 블라우스를 벗겨내긴 했는데 브레지어의 끈을 못 풀고 끙끙대자 그녀가 손을 뒤로 돌려 그걸 풀어내고 치마와 팬티도 한꺼번에 벗어 내렸다.
그녀의 젖가슴은 어지간히 탱탱해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그 젖가슴을 입에 물었다.
금방이라도 젖을 뿜어낼 듯한 젖꼭지에서 단맛이 났다.
"아아아--!!"
그녀의 입에선 달뜬 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나 윤수씨라도 없었음 바람났을 거 같아요!!"
바람?
이건 공인된 살 바람이지...!
그녀가 회의용 테이블 위에 벌렁 누웠다.
"빨아 줘 제발..??"
그녀는 다리를 발랑 벌리고 빨간 속살을 내 앞으로 다 드러냈다.
저, 거부할 수 없는 몸짓! 충길이는 저 몸짓에 질린 걸 거야?
그럼에도 나에겐 왜 이리도 자극적이기만 할까?
아내가 이런 몸짓을 해 보이지 않아서일까?
만약 아내도 저런 모습을 내 앞에 해 보인다면 질리고 말까?
"뭐 해요, 여보? 빨리 달구어줘요?"
나는 그 속으로 얼굴을 밀었다.
향수 냄새가 났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내 혀가 속으로 파고들자 그녀는 허리를 꼬며 쿵쿵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그녀의 신음 소리와 함께 홀 안을 돌며 야릇한 에코 음을 냈다.
"아아-- 아아아-- 좋아 좋아--!!"
내 물건이 그곳을 채우자 그녀는 "헉--!!"하며 허리를 세우고선 내 머리를 그녀의 가슴에 파묻으며 달뜬 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거였다.
"자기! 우린 버리더라도 날 버리진 마!!"
그 말은 그녀가 할 말이 아니었다.
속없이 뱉은 말이라 치더라도 그 말은 우리들 관계의 순수성을 부정하는 말이었고, 또한 나를 옭아매는 말이기도 했다.
"빈말이라도 그런 말은 마세요! 말이 씨가 된단 말이 있잖아요?"
"저도 모르겠어요! 저가 요즘 왜 이러는지??"
"만사를 조급하게 생각하니 그런 거 아니겠어요?"
"글쎄요?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아 비만증이 되고 만다더니 저도 그런 거 같아요. 채워도 채워도 차지 않아요...!!"
나는 요동을 멈추고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지금 필요한 것은 몸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아직 한참 때인데 벌써 갱년기증상을 보이는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몸을 빼고 그녀를 번쩍 들어 소파에다 앉혔다.
그리고 달랑거리며 나가 커피포트에 전원을 넣었다.
잔에다 커피와 설탕을 타고 있는데 뒤에서 안아오는 감촉이 있었다.
"윤수씨 미안해요! 나 그냥 갈래요?"
"왜요? 커피 한잔하시고 마음이라도 진정하시고 가세요!"
"애 아빠와 애들이 기다릴 거예요!"
"집에는 제가 전화 드릴게요?"
전화기를 들려하자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주섬주섬 옷을 껴입는 거였다.
아무리 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끝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그렇게 서둘러 갈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속내를 다 드러내 보인 것이 민망하여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 정도였다.
꾸역꾸역 옷을 껴입으며 나와 포트의 전원을 뺐다.
담배를 빼물었다.
그녀가 저렇게 간 이상 집에 가서도 몹시 신경질적이 되리라는 생각에 전화기를 들었다.
마침 충길이가 받았다.
"난데 제수씨 나와 같이 있다가 방금 갔거든.."
"그랬어? 같이 술이나 한잔하며 좀 다독여 보내주지? 너 말은 잘 듣잖아!"
"안 그래도 같이 저녁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사무실에서 커피한잔 마시게 한 뒤 보내려 했더니 뭔 일로 새침해진 건지 불쑥 가버리셨어!"
"말 마라! 나도 요즘 손발 다 들 지경이야!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내가 보기엔 우울증 같은데.."
"우울증?"
"그래! 갱년기우울증.. 암튼 그런 기분으로 갔으니 알아서 기라고 전화한 거야!"
"하하.. 나 기는 덴 자신 있잖니? 고마워!"
내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나는 담배를 비벼 끄고 샤워나 하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자 위에다 주섬주섬 옷을 벗어 놓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선이의 손길인 듯 화장실 안은 말끔했다.
까맣게 녹 쓸어 있던 샤워 콕도 뭐로 닦았는지 반들반들해 있었다.
원래 사람이 살던 곳이라 욕조만 없을 뿐 샤워 정도 하기엔 훌륭한 화장실이다.
우선 번들번들 타액이 묻은 앞부터 씻었다.
등에다 물을 뿌리자 확 술이 깨는 것 같았다.
그때 밖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갔던 제수씨가 다시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녀인들 그런 마음으로 나갔으면 편했을까?
아무래도 다시 마음을 열어 보이고 하다만 정분이라도 풀고 나서 가고 싶었을 것이다.
시들해졌던 내 것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옷을 벗고 이리로 들어 오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껏 달뜬 기분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거긴 제수씨가 아닌 선이가 서 있었다.
나는 앞을 가릴 생각도 못한 채 물었다.
"아니, 너 어쩐 일이니? 이 야밤에.."
"사모님이 주신 꽃 가져가려고요...!"
그녀의 시선이 어디 둘지를 몰라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그제야 나는 앞을 가리고 황급히 문을 닫았다.
"아빠, 저 갈게요?"
"잠깐..! 내 옷 좀 줄래?"
삐죽 문을 열고 옷을 내 밀었다.
옷을 추스르며 나왔을 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미안해! 내가 네게 안 보일 모습을 보이고 말았구나!"
"......................!"
"하도 더워서..."
"아빠! 커피 한잔 타 드릴까요?"
내 책상 위에 올려진 커피 잔을 보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커피포트를 꼽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는 등 부산을 떨었다.
"따스한 걸로 하자!"
그 말에 꺼낸 얼음을 다시 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의자를 돌려 앉아선 턱을 고고선 날 올려다보았다.
그것도 매혹의 그 보조개를 한껏 지어 보이며 생글거리는 거였다.
민망했다.
필시 내 몸을 모두 보았다는 놀림 같은 거리라..
"아빠와 난 비겼어요!"
"왜?"
"나도 다 보고 말았으니까요!"
"뭐? 요 맹꽁이!!"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쪼르르 일어난 그녀가 재떨이를 갖고 와 밀었다.
나는 '금연'이라 써 붙여진 벽을 슬쩍 올려다보고 히죽 웃었다.
"저 용서할게요! 이번만..."
그녀가 라이터를 뺏어 불을 켜 붙였다.
후- 내 뿜는 연기에 그녀의 얼굴을 디밀었다.
뭘 맡으려는 걸까?
담배 연기? 나의 숨결?
뒤에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자 몸이 달았다.
"이리 와봐?"
그녀는 수줍은 듯 내 앞에 섰다.
내가 의자를 돌려 무릎을 내주자 다소곳이 앉아 왔다.
"좀더 일찍 너를 만나야 했는데...?"
"왜요?"
"너무 커버려서 어색하잖아!"
"전 괜찮아요!"
"그래! 아빠만 자꾸 땀 맘 품는 거 같아..."
"제가 아빠 끝까지 지켜드릴게요! 그러나 아빠 사랑이 식으면 저 안 참을 거예요?"
당돌한 말이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돌려 눈망울을 들여다보며 지껄이고 있었다.
"난 너의 이 눈만 보면 연못 속에 빠지고 싶단다!"
나는 어린 그녀를 앞에 두고 고백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잘못 알아들은 듯 했다.
"왜요? 제가 철부지라서요?"
"아니, 너무 귀엽고 예뻐서..."
그녀가 목을 안아왔다.
폴폴 콧속으로 파고드는 풋풋한 체향이 전신을 마비시킬 듯 했다.
볼로서 그녀의 볼을 비볐다.
"아빠 몹시 힘드신가 봐요?"
"아니 왜?"
그녀는 무릎에서 일어서며 턱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그녀의 턱을 따라 내려가자 불룩 솟은 앞섶이 나왔다.
더 이상 숨기거나 감추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네가 오늘 너무 예뻐 보여서 그런가 보다. 아빠를 이해할 수 있지?"
"그럼요! 앞으로 그런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꽃다발을 품에다 안았다.
내려오는 계단 중간에서 그녀가 돌아섰지만 나는 그대로 그녀를 밀고 아래로 내려왔다.
택시를 기다리며 팔짱을 껴 오며 물었다.
"아빠 저녁 드셨어요?"
"응! 넌?"
"저도 먹었어요!"
"그런데 왜? 뭐 먹고 싶어서..?"
"아뇨!"
택시 안에서 다시 물었다.
"저희 집에 들렀다 가실 거예요?"
"그냥 가야지. 너무 늦었잖아."
"그러세요!"
택시에서 내리며 말했다.
"아빠 밥 채려 놓았는데..."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손살같이 뛰어들어가 버렸다.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그녀는 아직 밥을 안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아파 왔다.
잠자리에 누운 아내는 내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제수씨가 대마를 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충격적인 말이라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건 아내와 그녀만이 안다고 했다.
6개월쯤 전이라 했다.
그녀의 친구 중에 한 미망인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녀와 함께 담배로 말아 피웠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성적 불만이 고조에 달한 때라 쉬이 말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후 그 미망인 친구도 이사 가버리고 중독된 상태도 아니라 별다른 일은 안 생겼다 한다.
나는 오늘 일어난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 주었다.
아내도 별다른 방안을 내 놓지는 못 했다.
어쨌든 그대로 뒀다간 큰 일을 만들고 말리라는 공감을 했다.
그날 밤은 여러 가지로 심란한 밤이 되고 말았다.
(16) 질투에 빠진 남자
다음 날은 아침부터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I.M.F 시대임을 실감나게 했다.
열 시경부터 몰려오기 시작한 사람들과 면접을 하느라 점심도 응접실에서 시켜먹어야 할 지경이었다.
오후 네 시경 면접을 마감하고 그중 한 명을 낙점시키고 정보지에 공고를 빼달라 하라고 시켰다.
마칠 시간이 가까워 선이가 내 앞으로 손을 꼬며 다가왔다.
"왜 그래?"
"저 오늘 집에 데려가 주면 안 돼요?"
"어느 집?"
"아빠 집이죠!"
"글쎄? 집사람이...??"
곧바로 전화를 드는 거였다.
벌써 전화번호도 외워둔 모양이었다.
"사모님, 저 유선예요! 오늘 집에 놀러 가려고요? / 그건 제가 할 수 있어요! / 호호.. 그럼요! / 네, 네! / 그럴 게요!"
"거봐? 안 된다지! 다음에 오라지?"
"아뇨! 사모님은 좀 늦을 거 같다며 먼저 들어가서 오빠들과 인사도 하고, 저녁도 챙겨 먹으랬어요! 히힛!!"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래선 안 되는데...
갈피가 안 잡히는 마음속에 팔짱을 끼고 나선 그녀를 차에다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걔들 엄마가 이미 통보한 듯이 두 놈이 엘리베이터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젊은 걔들은 벌써 통한 듯 집에 들어서자마자 서로 제 방을 구경하라며 끌고 다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선이를 아내에게 뺏기기도 전에 애들에게 먼저 뺏길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
내가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있자 슬며시 다가온 큰놈이 동생이 정말 마음에 든다는 말을 했다.
아마도 진심인 듯 했다.
선이와 작은놈은 주방에 나란히 서서 저녁을 준비하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선이를 그들 동생으로 이미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넷이 식사를 하며 작은놈과 선이가 나란히 앉은 모습이 내 눈을 거슬리게 했다.
나는 몇 술 떠다가 수저를 놓고 바람 쇤다며 나와 버렸다.
질투였을까?
아파트 안 공원벤치에 앉아 애꿎은 담배만 연달아 피워댔다.
저 앞에서 아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당신? 걔는요?"
"안에 있어!"
"왜요? 걔들끼리 친해지라고..?"
"응!"
아내가 옆자리에 앉았다.
"방학 끝나면 저 다시 매일 늦을 텐데.. 아예 걔를 집으로 들여놓을까요?"
"식모에다 파출부 삼으려는 거야?"
"그건 오해예요! 제 말은.."
"알아 알아! 가족이란 서로 돕는 게 가족이 아니냐는 말일 테지..."
"그럼 당신 생각은 뭐예요? 그걸 얘기해 주셔야 제가 거기 맞출 거 아니에요?"
"나는 단지 우리 애들이 그 애를 동생으로 느끼기 전에 이성으로 느낄까봐 걱정이야!"
궁색한 변명이었다.
어쩜 그 말은 애들에게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반문하는 변명이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직 사춘기인 혁이에겐 그렇게 느껴질지도.. 더구나 걘 고3이니까..."
"조금 기다리자고! 그 놈도 대학생이 되고 나면 눈이 무뎌질 테지.."
"알았어요! 그럼 올라가요?"
우리가 올라 왔을 때 큰놈은 TV 앞에 앉아 있었고, 둘은 그놈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들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떨어져서 앉지 않아!!"
한 의자에 엉덩이를 맞대고 앉아 작은놈의 손이 선이의 어깨를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선이가 버럭 지른 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아내는 둘을 세워두고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오늘 처음이야! 처음부터 그렇게 가까워진 모습 보기 좋지만 옛말에 '남녀유별'이라 하여 남녀간엔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 그러니 서로의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 오누이간도 형제 이상의 정을 느끼면 안 돼! 알았지??"
큰놈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작은놈의 머리를 툭 쳤다.
그 방에서 나온 선이가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모습을 보자 이제 걔를 집에다 데려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오늘 인사들을 했으니 이제 돌아가자! 또 놀러 오면 되니까.."
"그래! 모레가 일요일이니 종일 놀다 가!"
"알았어요 사모님!"
"이제 엄마라 불러도 돼!"
아내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인정해도 당신 불만 없지요? 하는 표정 같았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밀고 나왔다.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엄마란 말은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선이의 표정은 설레임에 함빡 젖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나와 차로 다가서는데 위에서 소리치는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차 열쇠!!"
덤벙대고 나오느라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였다.
조금 있자 큰놈이 차 키와 면허증이 든 지갑을 들고 내려왔다.
큰놈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요일날 꼭 놀러 오라고 말했다.
집에까지 오는 동안 우린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 가까워지자 집 앞에 내려주고 바로 돌아가야지 마음을 다그쳤다.
아니,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면 돌아서리라 마음을 바꿨다.
그러나 차에서 내린 그녀가 촐랑촐랑 들어가질 않고 운전석 옆에 서 있는 모습을 보자 "그래, 안에다 데려다 주고 가자!"고 또 마음을 바꾸고 있었다.
그새를 못 참고 그녀는 팔짱을 끼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열쇠로 문을 열고 다시 팔짱을 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와락 안겨왔다.
"아빠! 이대로 지내면 안 될까요?"
"왜? 겁나니?"
"응!!"
"이 아빠도 그래! 너의 자유를 깰 것 같아서..."
나의 속심을 감추려는 얄팍한 변명이었다.
얇은 옷 너머로 그녀의 굴곡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내건 이미 부풀어 그녀의 배를 찌르고 있었다.
마냥 이렇게 있고 싶지만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
"응?"
"저 끝까지 지켜주실 거지요?"
"응!"
"그럼 뽀뽀해 주세요?"
당돌한 도전이었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턱 밑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불도 켜지지 않은 방에서 그런 당돌한 도전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나는 살며시 그녀의 뒷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그녀의 눈꺼풀이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조용히 입술을 내렸다.
그녀의 손이 내 허리를 휘감고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받으려 까치발로 서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다 쪽! 소리를 내고는 그녀를 살며시 떼어냈다.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며 방에다 불을 켜주고 빠져 나왔다.
"아빠도 너만큼 내 딸을 사랑한단다! 예쁜 꿈꾸며 자!!"
돌아오는 나는 자신을 칭찬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든 아내는 내가 했던 말이 현명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노골적으로 나타낼 수는 없었다.
대신 선이에게 자주 왕래시키며 한 가족이라는 소속감을 심어주자고 말했다.
아내는 그보다 걔를 이때껏 키워준 양육원에 들러 이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
그건 나도 잊고 있었던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었다.
그녀는 아마도 그곳에서 가출 소녀로 신고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주쯤 선이를 데리고 아내와 내가 함께 가서 해결하자고 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에 선이만 앉혀 두고 A사로 들어갔다.
납품 대금을 수금하는 문제도 있었고, 휴가를 끝낸 이들에게 인사도 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을 돌며 대충 인사를 끝내고 구매부로 올라갔다.
휴게실에 기다리고 있는 데 충길이가 결재 어음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커피를 뽑아 들고 그를 구석자리로 끌어다 앉히고 제수씨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그도 그녀를 그대로 두어선 안 되겠다며 병원에라도 데려가 봐야겠다며 위기감을 토로했다.
나는 그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까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나 나와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병원은 어디로 데려가 볼 거냐 하니까 '신경정신과'로 가봐야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가려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 마음은 무거웠다.
그들 부부의 위기를 바라보는 내 심정은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였다.
아내처럼 소심하지도 않고, 매사 당당하기만 했던 제수씨가 충길이의 성 침몰로부터 시발한 좌절이 그녀를 그리 쉽게 무너뜨리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마냥 포근하기만 하고 순종적인 아내는 충격이 가해져 왔을 때 그녀보다 더 빨리 침몰하고 말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그 뇌관은 선이가 될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내가 지금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은 양가의 문제를 너무 확대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걸로 위안을 하며 마음을 일단 털었다.
나는 사무실 앞에 놓인 정보지 몇을 걷어들고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그녀가 싱글벙글하며 나를 맞았다.
"미스 진! 뭐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
"네, 사장님! 저 데이트 신청 허락 받았걸랑요!"
"신청이 아니고 허락을?"
"네!!"
"뭘까?"
"오늘 토요일이니까 분명히 오전근무 맞죠?"
책상 앞을 주섬주섬 챙기며 곧 일어설 태세였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쥐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나 좀 알자? 이 아빠에게 못할 이야기도 있냐??"
"아유, 아빠 질투하시네! 누구긴 누구겠어요? 사모님, 아니 엄마예요! 거기 일 도와주러 가기로 했다고요!!"
'허락'이란 그녀가 먼저 전화하여 그래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허락 받았다는 말인 것 같았다.
어제 밤엔 분명히 "아빠! 이대로 지내면 안 될까요?"라 묻던 그녀였다.
나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먼저 퇴근한다며 나서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토요일인 오늘 오후 그녀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가리라 결심한 나여서 볼만한 영화를 알아볼 요량으로 정보지를 걷어온 것이었다.
나는 손에 든 걸 사정없이 쓰레기통에 쑤셔 박았다.
혼란한 마음을 추스려보려 납품서류들을 뒤적대다 해가 기우는 걸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냉장고와 찬장을 뒤져봤지만 술은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 생각하고 콜라를 한 잔 부어들고 서재로 들어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젊은 시절 거의 책벌레라 할만큼 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가 아파트를 사 나오면서 방 4개를 고집하여 그 중 하나를 내 서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거의 한 시간 여 책을 읽었을까?
아니, 읽는 척 했을까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9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밖에 나가 초밥 하나 시켜놓고 술이나 한잔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방을 빠져 나왔다.
아직 휴가철이라 그런지 아파트 앞 초밥집은 설렁했다.
먼저 술부터 날라져 왔다.
단 몇 잔에 취기가 올랐다.
곧 초밥이 말아져 날라 왔다.
접시 옆에 놓아든 와사비를 더 찍어 바르고 몰캉 집어넣고 꾹 씹었다.
매운 기운이 확! 하고 입안을 쏘았다.
입천장은 물론 다리 끌까지 찔끔 아려왔다.
그건 영락없는 내 인생이었다.
나는 와사비보다도 더 매울지도 모를 어린 소녀를 탐내며 몸을 달구고 있는 것이다.
다시 술을 털어 넣었다.
그때 주인이 "어서 오세요!"했다.
여자 둘이었다.
모녀인 듯 팔짱을 끼고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들은 다름 아닌 아내와 선이였다.
"아니 여보?"
"당신이야말로..?"
"우린 당신에게 미안하여 초밥이나 사들고 가려고 왔죠!"
"앉아!"
"우린 저녁 먹었어요! 너 콜라 한잔할래?"
아내는 자리에 앉으며 선이를 챙겼다.
얄밉게도 선이는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다.
"딸과 데이트하니 좋지?"
"얘 오늘 욕봤어요!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서..."
아내가 그녀의 손을 꼭 쥐는 게 보였다.
콜라 한 병과 술잔이 날라져 왔다.
나는 아내의 잔을 채워줬다.
회 한 접시와 술을 더 시켰다.
"내일도 데리고 나갈 거야?"
"왜요? 얘 뺏길까봐 겁나요?"
"그건 노동학대야! 내일은 법정 공휴일이라고...?"
나는 찔끔하여 내뱉은 말이지만 궁색하기만 했다.
"걱정 말아요! 내일은 애들과 약속했으니..."
아내의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철저한 듯 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할 것이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나는 그녀들을 떠보려 선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아빠가 취해서 못 바래다 줄 거 같애! 너 혼자 갈 수 있겠어?"
"아니 당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 야밤에 어딜 보내려고..? 내일 아침에 오느니 집에서 재우면 되죠?"
"어디다?"
"당신 서재에.. 아니, 당신이 서재에 주무시고, 얘는 나와 큰방에 자는 게 낫겠어요!"
아파트로 걸어 들어오는 내 발걸음은 풀려 있었다.
딸 하나 주어다 그녀에게 바친 기분이었다.
현관을 들어서자 두 놈이 나와 그녀를 맞았다.
나에겐 꾸벅 인사만 하는 것 같았다.
소파에 벌렁 누워버린 내 앞에 세 놈이 앉아 조잘거렸다.
아내가 서재에다 내 이불을 까는 모습이 보이자 눈을 감아 버렸다.
서서히 몸을 나약하게 만드는 취기와 함께 허탈감이 온 몸을 에워쌌다.
잠시 잠이 든 걸까?
내 몸을 들어 옮기는 감촉이 느껴졌다.
눈을 떴을 때 큰놈의 얼굴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우구나!"
"아버지 보약 좀 드세요?"
"왜 그러니?"
"아버지가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요!"
"그건 내가 컸으니 그렇겠지! 그리고 너도 걔가 그렇게도 좋으니?"
"두 분이 좋아하시니까요!"
"그랬구나... 이제 가서 자거라!"
"네!"
큰놈이 물러가고 나는 다시 잠에 빠졌다.
아침이 된 듯했다.
누군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아빠! 이제 일어나세요?"
선이의 목소리 같았다.
눈을 뜨자 내 손을 꼭 잡은 한 소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녀의 작은 손이 내 눈곱을 떼어주었다.
생글 웃는 모습이 선이가 맞았다.
어지러운 꿈을 생각하며 혹시 그녀의 집이 아닐까 둘러보자 분명히 내 방이었다.
나는 벌컥 그녀를 안으려던 마음을 지우며 허리를 일으켰다.
그녀가 물 사발을 내 밀었다.
"잘 잤니?"
"네! 아빠도?"
"응! .... 엄마는..?"
"아침 준비하세요!"
그녀의 머리칼이 젖어 있었다.
까만 머리칼이 더 까매져 보였다.
"머리 감았구나!"
"새벽에 엄마와 목욕 갔다 왔어요! 헤헤.."
그녀는 뽀얘진 목살을 들어 보였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딸애들만 키우는 남자들이 아들 손잡고 목욕탕 가는 게 그렇게 부럽다고 하더니 아들만 키워온 아내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이와 같이 자고 난 첫날 새벽에 그녀와 목욕을 갔을까?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엄마가 아빠 깨워서 물 떠 오랬어요!"
그녀를 함께 공유하자는 아내의 메시지라 짐작했다.
밖을 보자 훤했으나 아직 해가 뜬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애들 방은 조용했다.
아내가 싱긋 웃으며 건네준 물통을 들고 우린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길 기다리면서부터 낀 팔짱을 오솔길을 걸으면서는 두 팔로 감싸 안고 걸었다.
"지난밤 엄마가 널 안고 잤니?"
"손잡고서..!"
"행복했겠구나 너?"
"네!"
"이 아빠와도 그러고 싶어?"
"응!"
거침없이 말했다.
팔에 대인 가슴살이 느껴졌다.
아마도 맨살 같았다.
"너 맨살이구나?"
뭔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 큰 애가...?"
"아! 그거? 엄마가 새 걸로 준댔어요!"
"엄마 걸?"
"그건 몰라요?"
약수터에 가까워지자 여기저기 앉아서 쉬거나 운동을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녀는 내가 저번에 사준 그 옷차림이어서 보기가 어색하여 말했다.
"아빠가 추리닝을 하나 사주어야겠구나?"
그녀가 생글 웃었다.
우린 물을 받아 두고 나무벤치에 앉았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발갛게 모습을 들어올리자마자 그건 뜨거운 화살을 쏘아댔다.
내려오는 길에서 그녀는 이런 날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못 꾸었다는 말을 했다.
그건 오로지 아빠 덕이라는 말도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애들도 일어나 있었다.
작은놈이 자기도 안 데려갔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놈 저번엔 따라가자 했더니 안 간다 했던 놈이었다.
고얀 놈...
아침 식사가 끝나자 아내는 출근을 하고 선이를 둘러싼 남자들만 남았다.
혹시나 하고 선이의 뒷모습을 보자 어깨 아래로 그 끈인 듯 볼록 드러난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작은놈이 선이의 학업 문제를 제기했다.
"얘 아직 학생인데 아빠 회사에서 일 시킬 수 있어요?"
"그냥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그리고 곧 학교도 다시 다닐 거니 너는 네 걱정이나 해!"
"아버지! 혁이 말도 일리가 있어요! 학업도 때가 있는 거니 서둘러야 할 거 같아요?"
"알았다 알았어! 나 숨 좀 쉬자!"
첩첩산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무실에나 나가봐야겠다 생각하고 주섬주섬 옷을 바꿔 입으면서 큰애를 불러 어둡기 전에 선이를 보내라는 말을 하고 나왔다.
사무실로 들어와 막상 책상 앞에 앉았지만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일의 성격상 거의가 전화로 이루어지는 일이라 한 여름 휴일날 나처럼 사무실에 나올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처럼 미친 이가 있어서 일 처리를 몇 건 했다.
두 시쯤 짜장면을 배달시키며 술 한 병도 시켰다.
술 한잔 먹고 낮잠이나 자기 위해서였다.
나는 응접실 소파 위에 누웠다.
갖가지 상념에 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사무실에 불이 켜지고 발소리가 응접실 쪽으로 걸어왔다.
선이였다.
"저 이러실 줄 알았다니까?"
마치 아내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에다 물을 껴 얹었다.
펴 내미는 수건을 받으며 말했다.
"오늘 잘 놀았어?"
"네!"
"뭐 하고 놀았어?"
"게임도 하고.. 퀴즈도 하고.. 그 보다 아빠! 우리 집으로 가요? 거기서 저녁 드시고 가세요?"
선이의 '우리'라는 말에 야릇함을 느꼈다.
사무실 앞에는 짜장면 그릇과 빈 술병이 그대로 있었다.
그녀가 그걸 들고 나와 1층 밖에다 내어놓고 문을 잠궜다.
차에 오르며 그녀가 말했다.
"아빠 술 너무 자주 드시는 거 같아? 담배도 많이 피시고..!!"
"차차 줄이마!"
"정말? 약속!!"
정말 나의 술버릇이 변했다.
일을 현명하게 처리하려는 냉철함은 사라지고, 만사 쉬이 포기하고, 짜증도 내고, 여자처럼 질투도 생기고.. 그러다 귀찮아지면 술 생각부터 나는 것이다.
요즘은 모든 걸 술로 잊으려 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녀 집으로 가는 중에 백화점에 들러 아침에 약속한 그녀의 추리닝을 한 벌 샀다.
방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냉큼 내 앞에서 그걸 갈아입어 보였다.
나는 민망하여 시선을 돌렸다.
그때 "아빠 이거!"하며 등을 쿡 찔렀다.
추리닝 아래는 끌어올리고 위를 껴입다 말고 가슴을 드러내 보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앙증맞은 브레지어였다.
아내가 그녀에게 주겠다 했던 것이 그거였던 모양이었다.
"참 예쁘구나!"
"이것만이 아니고 팬티도 주셨는데 그건..."
"벌써 돌아왔어?"
"아침에 주셨어요. 미리 사두신 거래요. 호호.."
내 마음에 다시 너울이 일기 시작했다.
아내가 나보다도 더 딸을 원했던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어쨌든 아내의 유별난 그 행위들은 나의 가슴에 질투심을 유발시켰다.
< 계속 >
(17) 딸에 대한 내성(耐性)
밥을 한다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자니 갑갑했다.
좁은 방안에 그 흔한 TV도 한 대 없다니...
그런데 이불이 쌓여진 구석에 손바닥만한 라디오를 발견하고 그걸 틀었다.
중부지방에 집중 폭우가 쏟아져 막대한 피해를 냈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상을 내 앞에다 사뿐히 놓고 수줍게 수저를 건네는 모습이 마치 새색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아-
마냥 이렇게 살수는 없을까?
"TV 한 대 사다줄까?"
"전 라디오가 좋아요! TV는 상상력을 없애 버리잖아요."
"너 생각보다 센티하구나!"
"아직 소녀인 걸요. 꿈 많은..."
"꿈이 뭔데..?"
언젠가 한번 물은 질문 같았다.
"꿈요? 아빠와 이렇게 사는 거!"
나는 숟갈을 놓칠 뻔했다.
또 술 생각이 나는 거였다.
그러나 참았다.
"학교도 다니고.. 나중 좋은 남자도 만나고.. 귀여운 애도 낳고.. 그래야지?"
"에이 망측해요! 전 시집을 가더라도 애는 안 낳을 거예요!"
"왜?"
"그냥요!"
"그래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불쌍해서..."
그녀 자신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숟갈을 놓고 밖으로 나갔다.
괜한 걸 캐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후 그녀는 숭늉을 만들어 들고 들어왔다.
그녀의 볼에 보조개는 보이지 않았다.
숟갈을 놓고 숭늉을 받아 마셨다.
그녀는 이슬 맺힌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밥상을 옆으로 밀어 놓고 팔을 벌렸다.
그녀는 당장 안겨 왔다.
"아빠가 네 아픈 곳을 건드렸구나?"
"아니에요!"
우린 그렇게 얼마나 껴안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쩜 그대로 그녀가 잠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9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떼 내려 했다.
그러나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나는 옆에 놓인 밥상을 보고는 "밥상을 치워야지!"했다.
그 소리에 달랑 일어났다.
그녀가 그렇게 일어나면 나도 일어서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밥상을 치우고 들어오면 그녀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가리라 마음을 고쳐먹고 있었다.
그저께 밤 내가 했던 말의 여운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이 말이었다.
"아빠도 너만큼 내 딸을 사랑한단다! 예쁜 꿈꾸며 자!!"
설거지가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등에 괴고 벌렁 누웠다.
라디오에서는 TV와 동시방송이라며 계속 폭우 소식만 토해내고 있었다.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 왔다가 또 금방 나갔다.
다시 물소리가 들렸다.
라디오 소리에 위쪽에는 저토록 난리를 치면서 왜 여긴 땡볕만 퍼붓는지 하늘도 참 무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물소리가 그녀가 샤워하는 소리라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정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다시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잠든 척 하기 위해서 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어느새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쩌자는 걸까?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벌렁 일어나 나가든지, 그제처럼 그녀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아쉬운 듯 물러나든지, 안고 뒹굴든지...?
그러나 처음과 마지막은 아니었다.
두 번째로 방향을 잡았다.
아빠로서의 의젓함과 그녀에 대한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고 마음을 정리한 것이다.
눈을 떴다.
간절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한쪽 팔을 폈다.
그녀를 재워주고 가리라는 생각으로...
그녀는 내 뜻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그 위에 머리를 뉘어왔다.
"아빠는 늦었으니까 빨리 잠을 청해! 설마 이러며 밤새 나를 잡아둘 생각은 아니겠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가슴에다 안았다.
나는 손끝에 느껴져 오는 촉감을 대수롭지 않은 걸로 여기려 애썼다.
"아빠! 이거 아빠가 사주면 아빠 거로 할게요?"
"엄마가 사준 건 내가 사준 거나 같애!"
"아빠가 서운해하시는 거 같아서..."
"아냐! 그런 거 없어...!"
나는 내 마음을 들킨 거 같아 그녀의 머리에 볼을 비볐다.
그때 그녀가 와락 몸을 돌리고 정면으로 안겨왔다.
아찔했다.
그러나 의연해야 했다.
"너 이러다 아빠 오늘 밤 못 들어가겠다! 불 끄고 와!"
그녀는 잽싸게 일어나 불을 껐다.
나는 등에 고였던 이불을 펴 그 위로 몸을 옮기고 그녀의 자릴 만들었다.
그녀가 다시 안겨왔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도 정말 잠들려 노력하려는지 나를 껴안았던 팔을 풀고 편하게 누웠다.
내 손이 그녀의 배를 토닥였다.
위로도 아래로도 갈 수 없는 단 한 뼘의 간격이었다.
손 윗 부분이 브레지어에 간혹 닿기도 했다.
팔이 아파 왔다.
나는 토닥임을 멈추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살며시 팔을 빼내려 했을 때 그녀는 다시 품속으로 파고들고 말았다.
나는 다시 등을 토닥이다 팔이 아파 손바닥으로 쓸쓸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손끝에 닿는 브레지어 끈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래 팬티 매듭도 넘어섰다.
가슴 못지 않게 그녀의 엉덩이도 참으로 앙증맞다고 생각했다.
쓰다듬다가 손아귀에 몰캉 쥐어보고 있었다.
그때 내 가슴에 "아아-!"하고 쏟아지는 숨소리가 들렸다.
더운 입김이 확! 하고 가슴에 번졌다.
그 탓일까 내 아랫것이 어느새 일어서서 그녀의 허벅지를 누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그녀의 머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섰다.
그때도 잠든 척 꼼짝하지 않았다.
부엌문 도어를 안에서 누르고 밖으로 나와 문을 살며시 닫았다.
밖에 나온 나는 숨을 고르기 위하여 벽에 등을 기대고 한동안 서 있었다.
등에 닿아오는 감촉은 내 몸을 식히기는커녕 눅진한 땀만 나게 만들었다.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아빠!"하며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차에 올라 시동을 걸때까지도 그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그녀의 창문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악셀을 밟았다.
다음날부터 나는 바빴다.
약속대로 출근한 새 친구에게 '대리' 직함을 주었다.
그의 이름은 이 수홍이고 나이는 29에 딸 하나를 둔 유부남이었다.
그는 A사의 한 납품업체에 스카웃 당하여 나왔다가 그 회사가 망하자 6개월 여 놀았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를 전적으로 A사의 영업 및 납품을 전담시킬 계획이다.
근무 경험도 있고 납품 경험도 있으니 적격이라 여기고 뽑은 것이다.
미스 진과도 인사를 끝낸 이 대리에게 우리가 취급하는 물건을 익혀주기 위하여 아래 창고로 데리고 내려가 내가 써 붙여둔 제품들의 이름을 외우고 재고량을 조사하라 시키고 올라왔다.
그런데 그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장부를 들고 올라 왔다.
제품들은 거의 아는 물건들이라 제품 수량만 체크하면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예 납품 관련 서류들과 챙겨야 할 것들을 적어 그에게 인계했다.
너무 자신만만해 하는 모습이 혹시 실수하지나 않을까 두렵긴 했지만 A사의 모든 업무를 맡기니 B사의 초두납품 건에 매달릴 수 있어 어깨 하나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미스 진에게 주문하라 시킨 명함도 내일 아침이면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차가 문제였다.
그의 승용차가 있긴 했지만 납품과 A/S를 다니자면 승합 또는 포터 정도가 있어야 했다.
나는 이 문제 저 문제 생각 끝에 내가 타고 다니던 승합차는 납품 전용으로 회사에다 두고 새 승용차를 뽑기로 결정했다.
내가 주로 다녀야 할 B사는 거리도 멀거니와 납품 물량이 만만치 않아 그 때에는 용차를 써야할 판이다. 그래도 힘이 부치면 또 한 사람의 직원과 포터도 있어야 할 것이다.
오후 나는 승용차 한 대를 계약했다.
갑자기 늘어난 직원들에다 승용차까지 금방 부자가 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늘어나는 부대 비용을 감안하면 이제부터 사업가로 변신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눌러 왔다.
사실 이제까지는 혼자서 살짝살짝 소꿉살림처럼 꾸려나왔던 나였으므로 마음에 큰 부담 없이 지내온 게 사실이었다.
저녁 마칠 때가 가까워 나는 둘을 모아 놓고 내일 당장 A사의 납품이 있으므로 이대로 나가 간단한 환영 식사라도 하자고 말했다.
우리가 간 곳은 회사 옆 그 한식집이었다.
선이와는 달리 그는 아직 나를 어려워했다.
나이로 봐도 거의 삼촌뻘이니 당연할 것이다.
나는 그의 딱딱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하여 술부터 시켰다.
선이가 일어나 내게 술을 따르며 "아빠!"라 하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술병을 받아 그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몰랐나 본데 얜 내 딸이야! 아직 학생인데 아빠를 돕는다고 휴학까지 하고 이렇게 붙어서 촐랑대고 있어!"
"아! 정말 몰랐습니다. 미스 진은 대학생인가 보죠?"
"아니, 고등학생! 말썽꾸러기 막내라고... 골치 아파!"
"피이--!"
선이에겐 콜라 잔으로 우린 건배를 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술잔을 비웠다.
"야 이 대리! 그러지 마? 나 슬퍼! 기껏 둘째 형뻘인데 자꾸 그러면 늙는 게 서러워져?"
그래도 이 대리는 끝끝내 마주 보고 술을 마시지 못했다.
거기서 배도 채우고 술도 채우고 나온 우린 노래방으로 향했다.
정말 세대 차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흘러간 옛노래나 부르는 나와 톡톡 튀는 신세대 노래를 불러대는 그들...
내일이면 나이 서른이 되는 그도 선이의 노래를 거의 따라 부르고 있었다.
선이는 마이크를 한번 잡자 대 여섯 곡을 연달아 불러댔다.
그에 박자를 맞추느라 이 대리도 일어서서 탬버린을 두드리고...
나는 책을 뒤지고 뒤져 겨우 그들과 가깝다고 찾아낸 곡이 김현식의 '사랑했어요'였다.
음악이 나오고 내가 일어서자 그들도 일어섰다.
술기운일까?
분위기 탓일까?
나는 이 대리가 있다는 걸 망각하고 내 손은 선이의 허리를 감고 있었다.
방안 가득히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이제와 생각하면 당신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찾아와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인 것을
나에게 심어 주었죠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정말 나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는 거 같았다.
다소곳이 얼굴을 파묻고 있던 선이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다시 내 간절한 목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선이는 내 손에다 허리를 맡기고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내 입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
노래가 끝났을 때 이 대리가 부러운 듯 말했다.
"두 분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난 언제 딸을 키워서 사장님처럼 해 보지요?"
"올해 몇이라 했더라?"
"세 살이요!"
"열심히 키워 봐!!"
다음 선이가 부른 노래는 '오빠'라는 노래였다.
나는 그 박자를 맞출 수 없어서 자리에 앉았다.
대신 이 대리가 일어서서 열심히 탬버린을 두드렸다.
그냥 편한 느낌이 좋았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이게 뭐야
점점 남자로 느껴져
아마 사랑하고 있었나봐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제 나를 가져봐
이제 나를 가져봐
왜 날 여자로 안 보는 거니
자꾸 안 된다고 하는 거니
다른 연인들을 봐봐
처음엔 오빠로 다 시작해
결국 사랑하며 잘 살아가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제 나를 가져봐
이제 나를 가져봐
Rap)
this is the time to rock I see the your future now
are you feel me are you feel me
break your brain crack your mind
only for the crazy my time follow wax follow wax
everybody come on baby wax
아무 것도 아니라 해도
나는 상처받아 (나는 상처받아)
이런 내가 싫다해도
지쳐버릴 내가 아냐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제 나를 가져봐
이제 나를 이제 나를
이제 나를 가져봐
나는 노래는 따라 부를 수 없었지만 화면에 뜨는 글자들을 읽었다.
그런데 분명히 '오빠'인데 그녀는 '아빠'로 부르는 거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 액센트가 들어가는 부분은 정말 자극적이었다.
젊은이들 노래 중에는 저런 당돌한 노래도 있구나 낯이 화끈거렸다.
그 후에도 그녀는 많은 노래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분위기가 뜬 나는 한 잔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대리는 "집사람이 아파서.."하고 사라졌다.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그가 모셔야 할 사장인 내가 부담스러워서 일 것이다.
나는 선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올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얼굴이 발개져 있었다.
노래를 그토록 불러대더니 열 꾀나 난 모양이었다.
"우리 우동이나 한 그릇 하고 갈까?"
길모퉁이에 쳐진 포장 마차로 들어갔다.
우동이 금방 나왔다.
"아줌마 소주 한 병도 주세요?"
"안돼요, 아빠!"
"또 왜 그러니? 오늘 이 아빠 기분 좋은데..."
"그럼 맥주로 하세요!"
"그럼 그래라!"
맥주와 잔 두 개가 날라져 왔다.
내 잔을 채워주며 자기 잔에도 채우는 거였다.
"넌 안돼! 콜라 해!"
"나도 할거야! 안에서 아빠 잔 내가 슬쩍한 거 몰랐지?"
그래서 얼굴이 발갰구나..
"딱 한 잔이다?"
한 잔을 그녀가 뺏어가 버리자 두 잔밖에 안 나왔다.
한 병을 더 시켜 마시고 일어섰다.
내 걸음이 비틀했다.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나를 부축하여 걷는 그녀 앞에 실없는 푸념을 하고 있었다.
얼마 안 멀리라 여겼던 그녀의 집에까지 오는 데엔 꾀나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아침마다 이 길을 걸어서 출근한다 했다.
하긴 그리로 다니는 버스도 없다.
집에 거의 가까웠을 때 그녀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아빠! 자꾸 그런 말하면 아빠 미워할 거야?"
"뭔 말?"
"늙었다니..?"
"사실이 그렇지 않아?"
"싫어! 그딴 말 싫다고...!"
"알았어 알았어! 딸 무서워서 늙지도 못하겠네!"
제발 그랬으면.. 제발 그래줬으면... 속으로 내뱉었다.
"아빠 집에 들어가 커피라도 한잔하시고 가?"
그녀가 그러지 않아도 나도 그럴 요량이었다.
술도 취하는 데다 걷느라 다리도 아파 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이불을 깔고 그 위에 나를 눕혔다.
"아빠 다리 아프지?"
조그마한 손이 다리를 주물러댔다.
그러다 금방 일어나 밖으로 나가선 커피를 끓여 들고 들어왔다.
커피믹스였다.
프림을 안 타먹는 나로선 맛이 밍밍했지만 속이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그녀의 손이 다리를 주물렀다.
"너도 다리 아플 텐데 그만 해!"
"잠시 눈 부치실래요?"
"그러자꾸나.. 피곤해.."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보며 스르르 눈이 감겼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른다.
와중에도 집에 가야지! 하고 눈을 번쩍 떴다.
밖은 캄캄했다.
흐릿하던 눈이 밝아오자 방안으로 달빛이 새어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이 도심에서 달빛이라니...
그 센티멘털한 감정은 눈을 뜬 목적을 망각하게 했다.
팔이 무거웠다.
팔을 벤 그녀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를 보듬어 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아아--!
이 야릇한 행복감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얇은 꺼풀 안으로 금방이라도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여린 살덩이가 잠들어 있었다.
그 살덩이는 이미 내게 모든 걸 맡기고 있는 철없는 욕망 덩어리이기도 했다.
그건 내가 지켜줘야 할 금제의 덩어리였다.
그렇게 설정해 놓고 서로 약속한 땅이기에 가능한 행복이리라..
톡톡 엉덩이를 토닥였다.
팔이 내려가는 최대한 먼 곳까지 주물러 주었다.
내 다리가 아팠듯이 그녀도 아팠으리라.
그녀의 몸을 덮었던 화사한 달빛이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달이 구름 속에 파고든 듯 잠시 엄습한 어둠이 방안을 채워올 때 나는 그녀의 머리 밑에서 팔을 살며시 빼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베개를 넣어 주고 내가 덮었던 이불을 그녀 품에 안겨 주었다.
옷을 여미며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을 때 어느새 다시 들어온 빛이 그녀 위를 뽀얗게 덮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내 품속인 듯 이불을 감싸안은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 행복한 모습은 내가 그녀를 지켜줄 때만 가능하리라.
다리 하나가 이불을 감고 올라서서 허연 다리통이 눈을 부시게 했지만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며 앞섶을 더듬어 봐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나도 이제 그녀에 대한 내성이 쌓여 가는 모양이라 생각하며 거길 빠져 나와 터덜터덜 내려가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구름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달은 초라하기만 했다.
< 계속 >
(18) 맑은 날에도 하늘은 잿빛이다.
거기까지 올라오는 택시가 거의 없어서 대로까지 내려와 택시를 잡아 집에 도착했을 때엔 3시가 가까워 있었다.
잠에 빠진 아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이불을 들고 나오려는 데 아내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만 여기서 주무세요?"
"깨고 말았구나! 당신 안 깨우려 서재에 가 자려 했는데..."
"애들도 좀 생각하세요! 요즘 당신 너무 과음하시는 거 같아요?"
"오늘은 새 친구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어."
"내일 모레면 당신 쉰이세요? 어제의 당신이 아니라고요..."
그런 말로 대충 묻어주긴 했지만 그녀는 정작 하고픈 말을 속으로 삭이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게 선이와의 일이라는 건 두말 할 나위 없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의 방에도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은 선이의 방에서와는 달리 창백한 빛이었다.
그런 센티멘털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우리들 나이만큼이나 닳고 헤어져 너덜너덜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선이의 방에서의 빛이 건드리면 톡! 터질 듯한 빛이었다면, 이 방에서의 빛은 옅은 숨소리에도 허공으로 흩어질 빛이었다.
그래서 돌아누운 아내가 몰래 내쉬는 한숨에 허물어져 나뒹구는 빛의 포말들을 나는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도 그걸 알리라.
자신이 내 뱉을 말 한 마디에 이때껏 지켜온 신뢰의 벽에 구멍을 내고 스스로를 그 구멍 안에 가두고 말리라는 사실을..
그래서 차마 두려워 스스로 삭이려 안간힘 쓰고 있으리.
나는 등 돌린 아내에게서 항거보다 더 무서운 체념을 느껴야 했다.
며칠 후 우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다.
제수씨가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집에 들어간 나를 술 취한 충길이가 불러내면서 알려졌다.
충길이가 불러낸 곳은 시내 술집이었고 그는 몹시 취해 있었다.
집 나간지 사흘이나 지났다고 했다.
집 나가기 전날 병원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가 몹시 싸웠다고 한다.
그렇게 집까지 나가 버릴 줄은 자기도 몰랐다며 그녀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녀가 갈만한 곳을 다 알아봤느냐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 아내조차 모른다면 모진 결심을 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를 그의 집 안방에까지 끌어다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어찌 되었냐고 물었다.
그녀가 갈 만한 곳이 없느냐 물어도 아내도 집히는 게 없다고 말하다가 혹시 같이 대마를 했다는 그 미망인을 찾아간 게 아닐까 하며 내일 수소문해 보겠다 했다.
나는 다가온 B사의 초도 납품 일로 그 일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이미 납품자재의 선이 확보된 A사와는 달리 B사의 제품 사양을 충족하는 자재를 수급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납품일이 다가올수록 내가 너무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자재 선을 알아냈으나 나와의 거래가격(그 이상의 숨은 뜻이 있었다)으로는 안 하겠다 버티는 데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결국 난감해진 나는 B사로 들어가 김 과장을 끌고 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히 기꺼이 몸을 던진 김 과장이 내 사무실에 종일을 머물며 반은 협조, 반은 협박으로 자재 선을 확보해 주므로 숨통이 트였다.
그는 저녁 술자리에 들러 노골적으로 자신의 속심을 드러냈다.
이사님을 만날 일이 있으면 자신의 신상 처리를 부탁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예상한 바여서 나의 옛일을 말해주며 동병상련의 이심전심이 아니겠느냐고 말해 주었다.
그는 충길이도 한번 뵙고 가야겠다 했으나 집에 일이 생겨 촌에 가고 없다고 둘러댔다.
내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충길이지만 지금 충길이는 그와 노닥댈 심정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술이 된 그를 여관에다 집어넣고 내일 새벽에 실어드리겠다 하고는 물러 나와선 카운트에서 아가씨 차-지까지 지불하고 나왔다.
한숨 돌린 나는 그 마음을 먼저 선이에게 전하고 싶어 안달하고 있었다.
택시에 내려 그녀가 있는 골목을 뛰어 오르며 숨이 차는 줄도 몰랐다.
그녀의 창은 캄캄했다.
시계를 들어다보니 2시가 가까워 있었다.
부엌문을 몇 번이나 두드렸을 때 창에 불빛이 비치며 누구냐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야!"
후닥닥 문이 열렸다.
들어서자마자 그녀가 나를 껴안았다.
"아빠 여기서 눈 좀 붙이고 새벽에 또 나가봐야 해!"
"몇 시에..?"
"다섯 시쯤!"
"그럼 빨리 들어오세요!"
그녀가 누웠던 이불 위로 풀썩 누웠을 때 그녀가 물었다.
"엄마에게는..?"
"여관에서 손님과 잔다고 했어!"
잘 했다는 듯 곧 바로 불을 끄고 내 품으로 파고들어 왔다.
그러나 내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드는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이렇게 자면 푹 자지 못해요? 제가 벗겨드릴게요!"
내 와이셔츠와 바지를 벗겨 옷걸이에다 걸고 다시 들어왔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나만의 생각일 테지만) 손을 그녀 가슴에 모두고 포근히 안겨 있었지만 나로선 정말 참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목석처럼 잠들 수 있는 남자가 있기나 할까?
나도 모르게 "헉-!"하고 힘겨운 숨소리가 터져 나갔다.
"빨리 잠드셔야 하는데.. 기껏 세 시간 뿐인데... 아빠 내가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불을 젖힌 그녀가 내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는 배를 깔고 누어 버렸다.
그러는 편이 그녀나 나나 서로 편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속에서 심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넘길 것인가? 에라 모르겠다! 몸이 요구하는 데로 버려 둘 것인가...?
만약 후자를 택할 경우 모든 게 무너질 건 너무나 뻔하고, 그녀도 잃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기에 힘든 싸움이었다.
전자를 취하려면 당장 그녀의 손을 치우라 해야 할 것이지만 나는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달랑 팬티뿐인 내 몸에 닿인 그녀의 손은 심한 자극이었다.
그 손이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다시 내려가고 이번에는 허리와 엉덩이도 주무르고 있었다.
"이제 바로 누우시고 편히 잠드세요!"
나는 그 말이 이제 그만하겠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누운 나의 다리를 타고 내려가 발가락에서부터 다시 주물러 올라왔다.
꾹꾹 누르는 그녀의 손이 정강이를 지나 허벅지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반사적으로 그녀는 손은 떨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이미 터질 듯이 불룩 선 그 위에다 덮어 눌렀다.
"아빠가 너무 힘들구나?"
"알아요 아빠! 그러나 절 지켜주실 거죠?"
"그래! 넌 내 딸이잖니....!"
그건 마지막 변명이었다.
그녀의 손을 팬티 속으로 밀어 넣자 부끄럽게 거머쥐었다.
나는 숨마저 멈추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가슴에 품어 안았다.
"이대로 잠들 수만 있다면...?"
속으로 내 깔인 말이 새어나가고 말았다.
"아빠! 이 다음엔 어떻게 해드려야 해요?"
"그냥 쓰다듬어 줘! 아빠가 하듯이..."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 손이 그녀의 허리까지 내려가자 몸을 끌어올리며 엉덩이에 내 손이 닿게 했다.
나는 그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손아귀에 꽉 잡았다.
그녀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자극적인 그녀의 손은 금방 나를 폭발시킬 것 같았다.
한껏 달아오른 내 손이 그녀의 옷 속으로 파고들며 엉덩이 맨살을 쥐었다.
그 조금 더 아래 아무도 찾지 못한 그녀의 보물섬이 있을 것이다.
순간 내 것이 벌떡거리며 터지고 있었다.
그녀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간신히 손으로 덮고 있었다.
아마도 비산한 욕정의 덩어리가 그녀의 옷이랑 이불 위에도 튀었으리라.
나는 머리 위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손바닥부터 닦아주었다.
다시 뽑은 휴지로 내걸 닦았다.
"불 켜봐!"
그녀는 문가 스위치 옆에 서서 내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불 위에 흐른 걸 대충 닦아 휴지통에 집어넣자 불을 끄고 내게 안겨오며 말했다.
"아빠! 이제 시원하세요?"
"네게 미안하구나!"
"미안하긴요? 오히려 고마워요!"
"널 지켜줘서..?"
"그게 아니라 솔직한 모습 보여주셔서...!"
"솔직하다..? 해선 안된 짓인 걸..."
"그런 말 하시면 저 싫어요!"
그녀는 어느새 시든 그걸 꼭 쥐었다.
이제 그 손을 거두어낼 이유도 명분도 잃었다.
아니, 오랜 바램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녀가 나를 흔들어 깨웠을 때 정확히 다섯 시였다.
괘종소리조차 안 들린 걸로 보아 그녀는 한숨도 안 자고 날을 샜는지도 모른다.
나는 세수만 간단하게 하고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그(김 과장)도 비슷했으리라.
돈을 챙기고 들어간 아가씨가 돈 값을 하지 않았을 리도 없고, 그 또한 모처럼의 기회를 팽개쳤을 리 만무할 일이다.
그를 태우고 달리는 새벽 도로는 상쾌하여 잠은 오지 않았다.
그의 회사 앞에 차를 댔을 때 그는 잠들어 있었다.
그를 회사로 들여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잠시 차를 세우고 눈을 붙였다.
사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곤한 내 모습을 직원에게 보일 수는 없다는 내 판단 때문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점심 시간이 가까워 있었다.
혼자 앉아 있던 미스 진이 책을 보다 후닥닥 숨겼다.
아마도 내가 사다준 책이 아닌 여성지 같았다.
나는 모르는 채 내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들고 온 걔의 표정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지난밤의 일 때문일 것이다.
"너 양육원 문제와 학업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데 갑자기 아줌마(제수씨) 일이 생겨서...."
"전 이대로가 좋아요!"
"영원히 도망자로 살래? 그럴 순 없잖니?"
"아마 양육원에서도 알 걸요. 언니가 얘기 안 했을 거 같아요..?"
"좋게 얘기하진 않았겠지?"
"그 언니 안 그래요. 싸우고 가긴 했어도 의리는 있어요."
"의리? 하하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당신 어디예요?"
"사무실인데 왜?"
"윤영이 있는 델 알아내긴 했는데..."
"어딘데?"
"그건 만나서 얘기하고 제가 바로 사무실로 갈게요!"
"충길이에겐 알렸어?"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
"알았어! 내가 그리로 갈게!"
아내는 가게문을 철시하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오른 아내는 XX寺로 가자고 했다.
제수씨가 머리를 깎았다는 이야기였다.
집 나간 지 벌써 보름이나 지났으니 그럴 만도 했을 지 모른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그녀가 마지막 선택을 한 지도 모른다.
저녁마다 술 취한 충길이를 보는 것도 이제 지쳐 갈 지경이었다.
기껏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게 술이 떡이 된 그를 끌고 그의 집에다 끌어넣고 오는 거 외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아내 또한 그 집 빨래며 애들 뒷바라지 챙겨주는 일 외 더 할 일이 막막하던 처지였다.
충길이를 위로하려 은근히 안아 보아도 미안하다며 뿌리치기만 했다고 한다.
XX寺는 비구니만이 사는 절이다.
차를 입구에다 세우고 한참이 걸어 들어가야 하는 이 길은 벌써 여러 번 와 보아서 익숙했지만 꼭 처음 가보는 길 같았다.
아직도 휴가를 즐기는 텐트들이 절 아래까지 쳐져 있었다.
절이 여러 채라 어느 절에 들어 있는지 우선 물어야 했다.
아내도 그녀와 함께 여기 여러 번 다녔는지라 아내를 알아 본 어느 스님이 우리를 안내했다.
스님의 말로는 그녀는 아직 입산한 상태가 아니며, 그저 마음을 다스리느라 암자에 머물러 있다 하였다.
정말 다행스런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그녀 앞에 섰을 때 그녀는 담담해 보였다.
의외로 그녀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아내가 옆 사람들 보기에 민망했다.
그녀의 얼굴은 조금 수척해 있었으나 마음은 맑아져 있는 것 같았다.
돌아가자는 말에 그녀는 이내 짐을 챙겨들고 따라 나섰다.
긴 길을 걸어 나와 차 문을 열어주자 새로 뺀 차가 좋다는 여유까지 보였다.
정말 그간 우울했던 마음을 모두 가라앉힌 걸까?
뒷좌석에 앉은 그녀가 아내에게 그이를 어떻게 볼까하고 말하는 거 같았다.
그녀를 우선 우리 집에 데리고 들어갔다.
영문도 모르는 작은놈은 이모가 왔다며 좋아 날뛰었다.
나는 충길이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망설여야 했다.
"제수씨 오늘 집에 들어가실 거죠?"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갈래요! 이왕 버린 몸 아니에요..."
"그럼 집에는...?"
"알아서 하세요! 강우 아빠 생각대로..."
난감한 일이었다.
충길이가 술로 인사불성이 되어 지낸다는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하여튼 나는 사무실로 나가봐야 한다는 핑계로 사무실에 나와 충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외로 충길이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오늘 저녁부턴 술 먹지마!"하자 "그러면 난 무슨 재미로 사냐?"고 오히려 반문을 했다.
막상 제수씨를 데려오긴 했지만 풀릴 길 없는 매듭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금방 다가온 퇴근 시간이 찜찜해오기 시작했다.
출장 나갔던 이 대리가 내 앞으로 와 오늘 있었던 사항들을 보고하고, 앞으로 자신의 승용차는 집에 두고 승합차로 출퇴근도 하고 회사 일도 보면 안 되겠냐고 물어 왔다.
나는 제수씨 일로 찜찜한 머리 속이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다시 말해 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곧바로 회사로 들어가 봐야할 일이 많을 것 같으니 승합차를 끌고 출퇴근했으면 어떠냐 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이 대리가 퇴근하자 선이도 퇴근할까 하고 물어왔다.
나는 저녁 얻어먹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장 팔짱을 껴오며 나를 끌어냈다.
왠지 오늘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도 선이 방에서 잤다.
제수씨가 애들도 있고 아내도 있는 우리 집에서 대담하게 몸을 요구해 오진 않을 거지만 그들 부부가 위기에 빠진 요즘 그 장본인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그런 착잡한 마음으로 선이의 방에 웅크리고 있는 데 핸드폰이 울렸다.
하도 안 받자 저녁을 짓는다고 수선을 떨던 선이가 들여다보며 전화 왔다고 일러주었다.
핸드폰을 열었다.
"당신 어디예요?"
"왜?"
"준호 아빠에게 알렸냐 물어보려고요?"
"알리긴 했는데.. 혹시 옆에 제수씨 있어?"
"애들과 바람 쐬러 나갔어요!"
"오늘 나 안 들어가면 안 될까?"
"준호 아빠 만나 보려고요?"
"아니, 제수씨가 민망스러워 할 거 같아서.."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어디서 주무시려고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술 많이 드시진 마세요?"
"알았어!"
나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거까지 보고 나간 선이의 손이 더욱 수선스러워졌다.
급기야 쟁그랑! 하고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안 다쳤냐?" 내려다보는 내게 생글 웃었다.
그녀가 차려온 저녁을 먹으며 나는 불쑥 "우리 영화 보러갈까?"하고 물었다.
그녀가 거절할 리 없었다.
영화관들은 괴기 영화 일색이었다.
그 중 한 영화관에 들어간 시간은 9시 반이었다.
시간이 애매했다.
영화는 한참 상영 중이었고 다음 상영 시간은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망설임 끝에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캄캄한 미로 속을 더듬으며 자리에 앉았을 때 의외로 썰렁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선이는 팔에 소름이 돋는지 손으로 비비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포근히 둘러 안았다.
조용하던 장내에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사람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 듯한 모습이었다.
다시 화면이 밝아져 얼굴을 들었을 때 정말 그녀의 얼굴엔 눈물이 번져 있었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
상영 막바지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음산한 음악과 함께 엽기적인 장면이 수시로 나타났다.
괴물이 사람을 찢어 먹는 장면이 나오자 비명이 또 터졌고 엉엉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그녀도 얼굴을 내 가슴에 묻고 아예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는 그녀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얼마 후 괴물이 불타 죽는 장면이 나오며 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장내 불이 켜지자 나는 그녀를 데리고 나와 그녀의 손에 크다란 팝콘을 사 쥐어주고 나도 담배 한 대를 피운 뒤 다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긴 기다림 끝에 장내 불이 꺼지고 화면이 나타났다.
처음은 그저 평화롭기만 했다.
나는 다리를 쭉 뻗고 의자를 젖혀 느긋하게 누었다.
그녀는 뒷 장면을 봐서인지 간을 조리며 화면 속에 빠져 있었다.
가끔 그녀의 손이 팝콘을 쥐어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긴장해서 그런지 찬 에어컨 바람 앞에서도 땀이 젖어 있었다.
그 손을 두 손으로 쥐고 손등을 쓰다듬자 내게 기대어 왔다.
나는 의자를 바로 했다.
그녀의 모습이 몹시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의 등에 팔을 두르자 그 손을 잡아다 그녀의 가슴 위에다 꼭 눌렀다.
쓰다듬어 주세요! 하는 몸짓이었다.
그녀는 더욱 내 가슴으로 안겨왔다.
그래도 내가 그 위에 손으로 덮고만 있자 내 턱밑에서 흐릿해진 눈으로 올려다보며 "아빠!"하고 자신의 간절함을 호소했다.
나는 손을 서서히 쓰다듬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이 어젯밤처럼 내 다리통을 주물러왔다.
그러나 위에까지는 올라오지 못했다.
내 건 이미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어젯밤처럼 일부러 그녀의 손을 끌어다 그곳을 덮고 싶지는 않았다.
잔잔하던 화면이 갑자기 소용돌이치기 시작하자 장내에는 숨소리가 멎었고 언제 터질지 모를 비명을 준비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드디어 오랜 긴장감이 폭발하자 준비한 비명들을 한꺼번에 터트리기 시작했다.
순간 그녀의 팔이 내 무릎 위로 숨어들면서 성난 막대를 건드렸다.
반사적으로 금방 물러나긴 했지만 조금 지나자 다시 은근히 기대어오고 있었다.
어젯밤 그 뜨거운 촉감을 또 한번 느끼고 싶다는 의도적 행동이었다.
나는 모르는 채 그녀가 즐기는 은근한 관능의 몸짓을 버려 두었다.
아니,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놀고 있는 반대쪽 손을 끌어다 그녀의 다리 위로 끌어가고자 했을 때 그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느 곳을 만져달라는지 너무나 뻔한 일이라 그것만은 지켜주고 싶어서였다.
얼마 후 우리가 보았던 장면이 다시 나오자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아쉬운 눈치로 끌려 나왔다.
글 읽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 아! 으악새 슬피 우니.. ☆
글쓴이 : cain [ 다음글 | 이전글 | 수정 | 답장 | 삭제 | 목록 | 쓰기 ] 조회 : 807
2001-08-07 17:57 그레이 블랙홀(gray black-hole) 5/5 애 정
(19) 찬란한 아침
우리가 그녀의 방으로 되돌아왔을 때 방안엔 온통 달빛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들끼리 그 안에서 게임이라도 벌인 듯 넓적한 나뭇잎들이 어지럽게 늘려있었다.
누군들 그 그리운 광경을 쓸어버리려 할까?
"아빠! 방에 불을 안 켜도 되겠다, 그지?"
"왠지 피곤하구나!"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또 그런 늙은 말을 한다고 채근할까봐 말을 접었다.
사실 피곤했다.
초저녁부터 그녀와 단둘이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캥키는 거 같아 우발적으로 영화 보러가자고 했지만 그 안에서도 밀려오는 피곤을 간신히 견뎌야 했던 게 사실이다.
관능을 자극하는 그녀의 철없는 몸짓이 은근히 즐겁긴 했지만 그건 나의 피로도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젯밤(사실은 오늘 새벽) 그녀와의 불장난도 있었고, 두세 시간 눈을 붙인 후 왕복 댓 시간의 운전을 해야 했던 데다, 다시 제수씨를 데리고 오느라 또 운전을 했으니 피곤이 겹칠 수밖에...
그녀가 자리를 깔아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덜렁 누웠다.
그녀는 내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옷을 벗어 던지고 달랑 팬티만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저 철없는 것..!"
그 말을 속으로 내 깔이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쉬이 잠이 오지는 않았다.
부엌으로 나간 그녀가 몸에 물을 뿌리는 소리.. 몸을 타고 내려간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그 물이 흘러 하수구로 파고드는 소리.. 그리고 앙증맞은 그녀가 웅크리고 앉아 조작조작 몸을 씻는 소리.. 그 소리 소리의 낱알들이 낱낱이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소리가 멎었다.
어떤 모습으로 들어올지 궁금했지만 몸을 돌려 누웠다.
오늘은 못 견딜 거야!
내가 무너지는 모습은 비참하리..
내 쪽으로 밟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제발 오늘은 참아 줘?
"아빠-아--??"
투정 섞인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씻지도 않고.. 옷도 안 벗고.. 이불 다 버린단 말야??"
내 양말을 벗기고 있었다.
그녀가 "발이라도 씻고 와!"했을 때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의 그녀는 잠옷을 걸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마치 술에라도 취한 듯 비틀거리며 나가 발을 대충 씻고 들어왔다.
"발! 했다고 발만 씻고 와요?"
어린 게 벌써 바가지를 긁는 건지, 나는 다시 벌렁 누워 버렸다.
그녀가 끙끙대며 내 바지를 벗겨내며 "아이 미워! 게으름뱅이...!!"하고 투덜거렸다.
와이셔츠는 내가 몸을 꿈틀대며 스스로 벗어 던졌다.
그녀는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틀이나 입었으니 목에 새까맣게 때가 묻어 있으리.
제대로 씻을 줄이나 알까?
빨래를 하는 제법 앙팡진 소리가 들리고, 곧 물기를 터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들어서서 다가오는 발소리..
내 가슴이 아찔했다.
눈을 뜨자 그건 물수건이었다.
"끈질긴 년!" 속으로 그 말을 뱉으며 눈을 감았다.
그 물 수건으로 가슴을 닦고, 팔을 닦고, 돌려 눕히고 등까지 닦았다.
"질긴 년.....!"
"미운 게으름뱅이!!"
팬티를 반쯤 내리고 엉덩이를 닦다가 그녀가 일어섰다.
부엌에서 다시 물에 씻어 짜온 수건으로 허벅지부터 닦아 내리기 시작했다.
발은 씻어서일까 발목까지 내려 갔다간 나를 돌려 눕혔다.
다시 발목에서 정강이를 거쳐 허벅지로 올라오고 있을 때 긴장했다.
거기서 멈추게 해야하나, 버려 두나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손은 팬티를 들어올리며 안까지 닦고 있었다.
그리고 대뜸 위에서 팬티를 들치는 데는 아연했다.
"새벽 그러고 난 뒤 안 씻었죠?"
가타부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물수건이 그걸 꾹꾹 눌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건 많이 서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걸 덮어두고 다시 부엌으로 나갔다.
이제 끝내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물수건이 쥐어져 있었고 이번엔 팬티를 허벅지까지 내린 뒤 그 것의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새삼 멈추게 할 수도 없는 일, 난감했다.
그게 되살아나 벌떡거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제야 정말 끝난 걸까?
손으로 톡톡 두드리고는 팬티를 끌어올려 주었다.
그 몸짓은 엄마가 어린애에게나 하는 짓이었다.
그녀가 내 몸에 안겨오며 말했다.
"아빠 시원해 지셨죠?"
"그래, 시-원하다 요 녀석! 너 팔 아프겠다?"
"그러니 아빠가 씻고 왔으면 금방 끝났을 거 아니에요?"
"알았다. 다음부턴 네게 신세 안 지마!"
"아, 아뇨? 다음에도 제가 해드릴 거예요!!"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그녀의 손이 단번에 밑으로 파고들었다.
날이 바뀌었다 하여 그 손을 막을 명분은 없었다.
이미 방금도 속속들이 물수건으로 닦아준 손이 아니던가.
"어제처럼 성나게 하진 마라! 아빠 오늘 힘들었든 거 알지?"
"네! 꼭 쥐고만 있을 게요!"
그렇게 서로 잠들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콧속으로 말려 들어오는 상큼한 체향을 되도록 많이 빨아들여 원기를 축적하고 싶었다.
젊음에 대한 욕망! 그건 누구나 다 가지고자 하는 원초적 욕망이 아니던가?
나도 근래에 들어 늙음을 체감하면서 그 욕망이 요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휴가를 다녀오던 날 밤 딱 한번. 휴가의 연장선상에서 가진 정사 외에 거의 한 달이 가까웠는데도 아내 앞에 그 젊음을 다시 폭발시킨 적이 없었다.
제수씨와도 불발에 거쳤다.
기껏 있다면 어젯밤 선이의 손아귀 안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3일도 멀어했던 나였다.
어쩌다.. 어쩌다 식은 젊음을 바라보면서 인생무상이란 어휘의 뜻을 몸에 칭칭 감고 사는 내가 되어버린 것일까?
"아빠! 나도 만져 줘?"
"아빠로서 쓰다듬어줄 수 있는 건 다 쓰다듬어 줬는데 또 뭘 만져달란 말인가?"
그건 실없는 질문이었다.
"나만 만지고 아빠는 안 만져주는 건 불공평해!!"
"그럼 여기까지만 이다!"
나는 그녀의 배꼽까지를 금을 그었다.
"아빠 건 이미 네 손안에 허물어졌지만 너의 그곳은 지키자? 우리 그래야 그나마 우리의 관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거야!"
"정 그러면..."
그녀는 발랑 윗도리를 걷어 올렸다.
아까 본 대로 그녀의 브레지어는 채워져 있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도톰한 젖가슴을 보듬어 쥐었다.
"아빠! 작지?"
"아니, 적당해! 내 나이에..."
"엄마 건 크더라!"
"넌 그것만 봤니?"
"다 봤지! 엄마도 내걸 다 봤는걸..."
"요 맹꽁이..."
"쓰다듬어 줘! 사랑하는 만큼..."
"이대로 자자!"
내 손이 그녀의 젖가슴을 쓰다듬자 그녀는 가랑이에다 내 다리를 끼우고 허벅지를 비벼왔다.
그거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호기심인지 나에 대한 사랑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런 와중에서도 잠이 들었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모처럼 포근한 잠을 잔 느낌이었다.
내 품에는 그녀가 안겨 있었다.
그녀의 손은 밖으로 나와 내 가슴에 얹혀 있었고, 내 손도 그녀의 가슴을 벗어나 방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팔 위의 그녀를 들어 내리고 상체를 세우고 앉아 팔을 주물렀다.
그녀도 눈을 떴다.
"잘 잤니?"
"네 아빠도?"
"그럼!"
"코를 왜 그리 고시는지..!"
"그랬을 거야! 정말 피곤했거든..."
"팔 아프시죠?"
그녀가 품속으로 다가서며 내가 만지고 있던 팔을 주물렀다.
그러다 그녀의 팔이 내 앞섶을 눌렀다.
벌떡 서 있었다.
"화났나봐?"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침에 융기한 모습을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정말 기분 좋은 징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팬티 위로 그걸 쥐었는데도 버려 두었다.
"아빠 이러다 출근 못하면 어떡해요?"
"금방 화 풀릴 거야!"
대신 그녀를 버럭 끌어안았다.
그녀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고마워! 너 때문에 아빠가 젊어지려나 봐!"
"정말?"
"그럼! 너도 봤잖니!!"
"아빠! 내가 매일매일 아빠 꺼 닦아줄 게!!"
그녀는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후닥닥 뛰어나간 그녀가 물수건을 들고 들어왔다.
"일어서 보세요?"
나는 이미 그녀의 포로가 되어 자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가 팬티를 내리는 모습을 멀뚱히 내려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금방 벽이라도 뚫을 듯이 융기한 그걸 그녀는 겁도 없이 거머잡고 물수건을 갖다댔다.
"아아--!"
내 입에선 감탄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자그마한 손으로 그걸 움켜쥐고 밑 부분의 늘어진 주름살을 낱낱이 닦아내고 있었다.
창안으로 스며드는 햇빛 아래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은 정말 참지 못할 자극이었다.
내가 그녀의 뒷덜미를 움켜잡은 건 그 때였다.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침착하던 얼굴에 갑자기 두려움이 깔리는 게 보였다.
그러나 곧 빙긋 웃어 보였다.
한쪽 볼이 깊이 패여 들어갔다.
한쪽만의 보조개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손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그녀의 보조개에 내 솟구친 그것이 비벼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뒷덜미에서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벽에다 등을 붙이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노란 햇살이 올망졸망 고개 쳐든 주택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느 집 옥상에 밤새 걷지 않은 빨래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찬란한 아침을 데리고 온 바람에...
저 아침처럼 황홀한 체온이 아랫도리를 휩싸왔을 때 나는 퍽! 하고 쓰러지고 싶었다.
불룩해진 그녀의 입 모양이 보였다.
볼을 패이게 했던 보조개도 그 불룩함에 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도 손에든 물수건으로 아래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감은 건지, 어떤 표정인지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할 일이 없어진 한 손을 방바닥에 내려 뭔가 쓰고 있었다.
글자는 아닐 것이다.
글자로선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뭔가일 것이다.
그녀의 마음일는지 모른다.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닐는지도 모른다.
어떡해야 할지를 몰라 그렇게 입에다 물고만 있다는 걸 내가 알았을 때 나는 슬며시 그녀의 얼굴을 밀어냈다.
그녀는 침이 흐른 입술을 안 보이려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그걸 훔치고 있었다.
나는 팬티를 끌어올리고 부엌으로 나갔다.
푸푸! 얼굴에 물을 껴 얹으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꾸짖었다.
그러나 곧 이미 벌어진 일, 다시 되돌아설 수 없는 강 건너에 와 있다고 체념했다.
머리 위에 걸린 와이셔츠를 걷어 껴입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 그거 다려 드릴게요?"
"이건 안 다려 입어도 되는 거야! 빨리 서두르자 늦겠다."
그녀의 손길이 수선스러워졌다.
조반을 준비할 듯 하기에 출근하는 길에 사먹고 가자고 했다.
바지까지 입고 선 내 앞에 그녀는 잠옷을 벗으며 한번 보아달라는 듯 내 앞으로 돌아섰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가 사 줬다는 팬티, 도톰한 앞부분에 레이스 장식이 있었다.
그녀의 몸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는 맨몸이었다.
브레지어 자리가 확연한 가슴의 젖살이 뽀얗게 솟아 있었다.
나는 거기에다 키스하고 싶었지만, 아니 그녀가 더 그러길 원하는 표정이었지만 다가가 품에 안고 엉덩이를 토닥여 주며 말했다.
"너의 몸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귀한 몸이야! 그러니 함부로 보여주지 마?"
"아빠에게만.. 아빠에게만 보여줄 거예요!"
그 말에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려다 참고 "이러다 진짜 늦겠다!"하며 그녀의 몸을 밀었다.
나는 밖으로 먼저 나와 기다렸다.
여자를 기다리는 건 아내나 그녀나 같은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차의 문을 내려 공기를 환기시키고, 그래도 안 나와서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출근하는 걸음들을 쳐다보며 어슬렁거리기를 수십 분 뒤에야 깡충깡충 뛰어 나왔다.
이유를 묻는 건 바보다.
기다릴 줄 알아야 남자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믿는 건 여자들의 속성이리라.
< 계속 >
(20) 재 날리는 날
그날 저녁, 이틀간의 외도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아내는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개학한 지 며칠 지난지라 작은애는 아직 학교에 잡혀 있는지 큰애만 들어와 TV를 보고 있었다.
"이모는 가셨니?"
"아마 그런가 봐요!"
"어젯밤 엄마와 이모가 밤새 얘기하는 거 같았어?"
"그건 몰라도 이모의 기분은 좋아 보이던데요!"
큰놈은 대충 눈치채고 있는 거 같았다.
식탁에다 상을 차리는 그놈에게 혁이(작은애) 대입 준비를 네가 좀 챙겨 주라 하자 알았다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하고 샤워도 하고 잠옷을 걸치고 서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아내가 들어왔다.
제수씨를 묻자 아침에 같이 나갔다고 했다.
별일이야 있겠냐는 표정이었다.
아내가 샤워를 마치고 작은놈 돌아오는 건 내가 봐달라며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12시가 넘어서야 혁이는 돌아왔다.
나는 그놈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종일 서 있다시피 한 그놈을 생각하면 당장 아내 옆으로 다가가고 싶었으나 외도한 남자가 과분한 봉사를 자처하다가 꼬리가 잡힌다는 말이 있어 참았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애들은 먼저 나가고 우리들도 출근을 준비하다 아내를 뒤에서 껴안았다.
나는 그녀가 해야 할 말을 먼저 선수쳤다.
"당신 나 언제까지 내버려 둘 거야?"
"당신 못지 않게 나도 요즘 피곤해요! 윤영이 문제로 신경을 얼마나 썼는지... 하긴 너무 오래 되었다 그죠?"
그녀의 손이 내걸 쥐다 깜짝 놀랐다.
"정말 너무 버려 뒀나봐? 당신은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충길씨가 걱정이야...."
아내는 식탁 앞에 몸을 굽히고 팬티를 내렸다.
전에는 없던 정숙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만큼 귀찮다는 표현인 것도 같고, 시간이 없다는 의미 같기도 했다.
나는 출근하려 입었던 옷을 풀고 그대로 박아 넣었다.
그러나 막상 내 것이 그녀 안에서 요동치기 시작하자 빨리 끝낼까봐 안달하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십여 분의 실랑이 끝에 나는 폭발했고, 그녀는 나머지 여운을 더 즐기려는 듯 식탁 위에 엎어져 그대로 한동안 엎드려있었다.
내가 옷을 여미며 먼저 나간다고 했을 때에야 팬티를 껴 올리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의무방어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출근하는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마음은 개운했다.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랄까?
마음이 느긋해진 나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준호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의도적으로 피한 그제 밤의 일을 변명하기 위해서였는데 그건 내 실수였던 거 같다.
제수씨의 목소리는 힘이 없어 보였다.
"어디 아프세요?"
"윤수씨 저 그만 살고 싶어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당장 전화를 끊고 충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선 출장 나갔다 하고 그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아내는 이미 집을 나선 듯 했고, 가게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 같았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집은 꽁꽁 닫쳐 있었다.
늘 문을 열어놓고 살던 그때를 생각하여 그렇게 느껴졌다는 느낌이다.
조급하게 초인종을 누르고 있던 내게 벌컥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나를 끌어넣자마자 와락 안아왔다.
그녀가 별일 없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안도의 한숨이 뱉어져 나왔다.
"혹시나 했어요!"
"왜요, 죽기라도 할까봐?"
"몹시 아픈 것 같아서..."
"자기가 있는데 뭘..."
그때에야 그녀가 발가벗고 있다는 걸 눈치챌 정도로 내 마음은 경황이 없었던 거 같다.
그녀가 내 옷을 벗기고 있었다.
암담한 상황이었다.
아침 아내와의 일을 알리 없는 그녀이기도 할 테이지만 그녀의 손을 뿌리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나를 곤혹하게 만들었다.
"그제 밤엔 왜 날 피했어요?"
"바쁜 일이 생겨서..."
궁색한 답변이었다.
이미 그녀는 의도적으로 내가 피했다는 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지와 팬티가 한꺼번에 내려가고 물건이 드러났지만 그건 시무룩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대뜸 입안에다 빨아들였지만 곧 끄집어내며 말했다.
"사무실에 애인이라도 뒀어요?"
그녀의 예민성이 아침의 잔여물이 묻어 있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차라리 나는 다행이라 여겼다.
"사실은 아침에 집사람과..."
"나는 어디서 풀지....?"
그녀는 옷을 끌어올렸다.
막상 암담한 상황은 벗어났지만 곤혹스럽기는 매 한가지였다.
그녀가 남자라면 끌고 나가 창녀라도 붙여줄 수 있겠으나 그녀 같은 여자를 상대하는 남창이 없다는 게 한스러웠다.
소파로 가 앉는 내 옆에 기대어오며 말하는 거였다.
"자기! 나 아까부터 뭐 하고 있었는지 알아?"
"글쎄?"
"혼자라도 풀어보려 하고 있었어!"
그녀가 애처로웠다.
섹스에 굶주리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자꾸 그 방향으로만 집착하는 모습이 못마땅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나무랄 수는 없는 거였다.
충길이가 그 문제를 논하다 집을 뛰쳐나가게 한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건가?
시들은 몸이라도 다시 시도해 볼까?
그때 그녀가 엉뚱한 제의를 했다.
"자기 내가 하는 거 지켜봐 줄래?"
거절할 수 없는 요구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 침실로 이끌려 갔다.
침대 아래엔 그녀의 옷들이 어지럽게 늘려 있었다.
아마 사무실에서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그곳에서 전화를 받았을 것 같았다.
그녀는 침대 밑에서 요상한 것을 꺼냈다.
남자 성기 모양의 흔히 여자들 자위기구라 하는 거였다.
스위치를 넣자 그건 떨면서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그녀는 그걸 그녀의 음부에 갖다대고 입구를 문질렀다.
내게 더 자세히 보여주려 내 앞으로 다리를 벌리고 눈은 내 눈을 주시했다.
그 강렬한 시선이 내 눈이 딴전을 못 피우게 묶어두려는 의도적 몸짓 같았다.
그녀는 벌려진 속살 안으로 그걸 집어넣었다.
그것은 안에서도 꿈틀꿈틀 하리라.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내게도 그건 자극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달구면서 내가 충혈되어 가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아아--!"
"그렇게 혼자 즐긴 게 오래 되었겠다?"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자기도 해봐?"
그 말도 거부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여몄던 바지를 풀었다.
그러나 내건 좀처럼 고개를 쳐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빨리 여기서 벗어나 내일로 다가온 납품준비를 해야 한다는 데에 온 정신이 쏠려 있었으니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이제 자기가 해줘?"
나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 그 기계를 잡았다.
안에든 바테리가 다 되었는지 움직임이 둔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내걸 쥐고 주무르고 있었다.
드디어 기계의 움직임이 멎어버렸다.
그걸 뽑아내고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빨리 해, 자기? 나도 사무실로 들어가 봐야 해!"
"안 해! 종일 이렇게 해줘!!"
철딱서니 없는 그녀의 투정에 나는 암담했다.
그녀가 내 몸을 당기며 내걸 입에다 물었다.
멀어진 손이 그녀 몸에서 빠져 나와 버리자 그녀의 손이 멈춘 기계를 다시 꽂아 넣고 있었다.
어떻게 여길 벗어날까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의 입안에 든 내 성기가 조금씩 부풀어오르는 게 느껴지자 단박 나를 끌어올렸다.
그녀의 젖가슴이 내 와이셔츠에 눌리는 속에 그녀의 손이 내걸 그녀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대로 있자! 종일...?"
그러나 나는 그녀의 청을 들어줄 수도 그럴 능력도 없는 상태라 급히 왕복 운동을 시작했다.
준비가 덜 된 그것은 이내 빠지고 그녀가 다시 그걸 집어넣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그 봐? 자기의 힘만 빠지잖아!"
"그럼 어째?"
"이대로 있자.. 응?"
답답한 노릇이었다.
충길이의 고민이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다시 내 몸이 움직이다 또 빠져버리자 나는 일어나 버렸다.
내가 옷을 껴 올리며 씨익씨익 물러 나오는 뒤로 그녀의 애절한 음성이 뒤를 때렸다.
"자기? 여보? 윤수씨? 이대로 가면 어떡해..?"
급히 시동을 거는 호주머니로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자기마저 그냥 가버리면 나 정말 안 살 거야!"
나는 핸드폰을 닫자마자 바테리를 빼내 던져버렸다.
왜 저런 여자가 되어버렸을까?
그토록 활달하고 의지적이었던 그녀가...
그리고 왜 性에만 강한 집착을 보이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무실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녀에 대한 분통과 연민이 온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 놓았다.
내가 가리라 계획했던 납품을 이 대리를 불러 맡겼다.
리스트와 서류들을 넘겨주며 꼼꼼히 챙겨 실수가 없도록 하라고 한 뒤 응접실로 들어가 소파에 누워버렸다.
모든 게 귀찮아져버린 것이다.
당장 내일 새벽이면 떠나야 할 발등의 불을 넘겨받은 그가 군말 않고 받아주는 데도 그의 어깨를 두드려줄 여유도 생기기 않았다.
점심때가 가까워 식사 안 하실 거라며 들어온 선이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내겐 너밖에 없는 거 같아!"
"잠시 집에 가셔서 누워 있다 오실래요?"
"이 대리는?"
"식사하러 가셨어요?"
"이리로 와봐?"
다리 위로 살며시 앉아왔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가슴을 만져보자 브레지어가 채워져 있었다.
"이거 끌러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대신 그녀의 머릿결을 매만졌다.
"오늘 아빠 기분 엉망인 거 같아?"
"그래! 좀 그렇구나.."
"어떡하나? 내가 이거 만져드릴까? 아니면 입으로...?"
"괜찮아! 너 밥 먹고 와?"
"안 할래...."
그녀의 손이 바지를 풀려 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아내와 제수씨의 음부가 대인 그걸 그녀에게 내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도 그 냄새를 용케 알아차릴 거라는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아직 순수를 가진 그녀에게 닳고닳은 여자들의 냄새를 섞고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 손을 잡고 있던 내 손을 돌려 잡더니 그 손을 그녀의 치마 밑으로 끌어넣는 것이었다.
그곳은 우리 관계의 마지노 선이라 설정하고 서로 끝까지 그곳만은 지키자고 약속한 신성금기의 땅이었다.
그때 밖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 대리가 점심을 먹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선이가 몸을 추스르며 급히 나갔다.
"벌써 점심 드시고 오셨어요?"
"예, 사장님은..?"
"점심 드실 기분이 아니신가 봐요!"
둘이 뭐라뭐라 하는 거 같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서로 묻지 않았나 한다.
차라리 다행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들까말까할 때 또 문이 열렸다.
"아빠 일어나 봐?"
"왜 또?"
"이거라도 드셔요?"
그녀는 접시에다 뭔가 담아왔다.
그건 바나나를 까서 쓸어온 것이었다.
"사무실 밑에 과일 차가 서 있길래 한 줄 샀어요!"
하나를 포크에 찍어 집어 넣어주는 걸 받아먹는데 휴가지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오늘 나의 마음을 할퀸 그녀의 음부에 집어넣었던 바로 그 바나나였다.
우발적이었다.
나는 그녀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있었다.
하얗게 가린 팬티 앞에 얼굴을 비볐다.
"이 대리는...?"
"납품 준비한다고 창고로 내려갔어요!"
나는 팬티를 끌어내렸다.
아직 무성하지 못한 까만 올들이 다소곳이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은 황홀할 만큼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내게 신비감에 가까운 거룩함도 주었다.
그래서 입안에 굴리던 바나나를 거기 쏟아내려다 꿀꺽 삼켰다.
그녀의 표정은 두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간절함에 몸부림치는 표정도 아니었다.
차라리 나를 가여워하는 듯한, 애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를 녹여 내리게 하던 보조개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은 분명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리라 여겨지게 했다.
정강이에 걸린 팬티를 걷어 올렸다.
치마를 내리고 그 위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손이 내 머리칼을 매만지고 있었다.
"미안해! 아빠가 잠시 약해진 거 같애!"
"괜찮아요. 전 아빠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어요!"
"넌 나의 신이야! 내가 그 신을 지키지 못하면 나는 무너지는 거야. 하지만 방금 신의 거룩함을 봤기에 나는 일어설 수 있어! 일어설 거야!"
그건 자기최면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를 돌려세우고 나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이 대리에게 맡긴 일을 다시 돌려 받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B사로 향했다.
용차하여 어젯밤에 실었던 납품자재들도 이미 출발하였을 것이었다.
B사 정문에서 만난 차를 끌고 정하여 보낸 창고들을 돌며 자재들을 하차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였다.
"강우 아빠! 지금 어디예요?"
"지금 납품 중인데 왜 그래?"
"돌아오시면 말씀 드릴게요! 조심해서 돌아오세요!"
그리고 끊겨버렸다.
직감적으로 뭔가 일이 터졌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의 식당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집에도 그랬다.
필시 제수씨네 일이라는 생각으로 제수씨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충길이 회사에선 출장 갔다고 했다.
충길이의 핸드폰도 닫혀 있었다.
별일 아니길 빌며 납품절차가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왔다.
사무실에서도 아내의 전화가 있었다는 내용만을 전해 주었다.
"자기마저 그냥 가버리면 나 정말 안 살 거야!"하던 제수씨의 말이 생각 나 곧바로 제수씨 댁을 찾았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다시 내려와 아파트를 나서려는데 나를 알아본 경비원이 차를 세웠다.
그의 말인즉 제수씨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말이었다.
아침 9시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다행히 나무에 걸렸지만 어찌 되었는지는 모른다며 병원을 알려주었다.
정말 그가 가리킨 곳을 보자 정원수가 처참하게 부러져 있었다.
나는 곧바로 병원을 향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내가 응급실 앞 의자에 앉아 울고 있었다.
심한 타격을 입었지만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까지 눈도 끔벅였으나 외상이 너무 심하여 방금 숨을 거두었다 했다.
충길이에겐 회사로 알렸으니 출장을 멈추고 돌아올 거라 했다.
조금 있자 애들이 먼저 도착했고 충길이도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빈소가 마련되고 우린 곧 지하로 내려왔다.
입관하는 광경을 충길이와 같이한 나는 너무 처참한 모습에 아연했다.
그녀의 마음이 모질었다기보다 삶에 대한 갈구가 그만큼 크지 않았겠느냐 생각되었다.
허탈에 빠진 충길이를 뭐라 위로해야 할지 나는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단지 "우리 넷 중 한 사람 먼저 간 거라 생각하자!"고 말했을 뿐이었다.
실의에 빠져있던 애들은 그래도 우리 애들이 오자 그래도 위안이 되는 듯한 모습들이었다.
46년 긴 인생을 살아온 한 여자의 마지막은 단 사흘만에 끝났다.
그녀를 그의 고향 선산에 묻고 돌아오면서 아내는 충길이네를 우리 아파트 근처로 이사시키자고 했다.
나도 그 말에 수긍하고 충길이 집에 돌아와 그에게 말했더니 자기도 이제 거길 떠나는 게 애들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가서 그와 술이라도 한잔 나누고 싶었으나 몹시 지쳐있는 그를 조용히 쉬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서 옷을 벗자마자 아내는 그들의 집을 알아본다고 나갔다.
나도 며칠 비운 사무실 일이 궁금하여 전화를 잡았다.
별 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밤늦게 돌아온 아내는 건너 편 동에 빈집이 있더라며 내일 충길이와 상의하여 결정하자고 말했다.
잠자리에 든 아내는 제수씨가 마지막 남긴 말이 "울 그이 너에게 맡긴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그 말 뜻 소화해 줄 거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도 당신 내 마음 모르겠느냐는 말로 답했다.
제수씨만큼 섹스를 밝히지 않는 아내의 진심을 왜곡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충길이에게 말했듯 먼저 간 제수씨는 넷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그 일로 선이와의 로망스를 합리화시킬 구실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선이의 일은 그 일과는 별개의 거라는 내 생각이었다.
< 계속 >
(21) 갈증들이 터지는 소리
충길이네는 곧바로 아내가 알아본 그 앞 동으로 이사를 왔다.
아내는 두 집 살림에다 식당 일까지 눈코 뜰 새 없었지만 피곤한 몸을 내게 안 보이려 노력하는 눈치였고, 충길이 또한 별 말이 없었으나 내게 부담감을 느끼는 거 같았다.
그가 내 사업을 도와준 거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련만 내가 홀가분해진 반면 그는 또 그만큼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애들만 서로의 집에 몰려다니며 옛날 옆집에서 살 때의 기분을 다시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후 식욕을 잃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선이가 삼계탕을 먹으러 가자고 졸랐다.
언젠가 그녀와 갔던 집을 상상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조용한 야외로 나가 바람이라도 쇠어야겠다는 바램이 있었으므로 퇴근하는 길에 그녀를 태우고 시내를 빠져 나왔다.
벌써 가을로 접어드는 들판에는 황금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조금 마음이 트인 기분에 젖어 있는 데 그녀의 집에 미스 한 언니가 다녀갔다는 얘기를 했다.
양육원에서 그녀를 찾고 있다는 거였다.
연달아 터진 사건으로 차일피일 미뤄온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게 미안했다.
이제 눈코 뜰 새 없는 아내를 대동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에 나 혼자라도 그녀를 끌고 내일 당장이라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처럼 한가한 분위기를 만나 식욕을 돋구어보려 나온 길이었지만 마음이 조급해지자 식욕이 다시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전에 갔던 그 가든으로 들어가 시킨 삼계탕이 나오자 선이는 내가 먹기 좋게 살을 찢어 내 접시에다 담아 놓았으나 몇 점 들어가자 속에서 거부하고 있었다.
나중 디저트로 나온 가을 수박 몇 토막으로 배를 채웠다.
돌아가서 충길이와 술이라도 한잔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곳을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끌고 둑길로 올라갔다.
그때의 정취를 즐기려는 눈치였으나 달도 없고 별도 모두 숨어버린 잿빛 하늘이라 마음만 우울하게 만들었다.
걷다 그녀도 지친 모양인지, 아니면 기분이 안 나는 건지 발걸음을 멈춘 그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아빠 요즘 왜 그러세요? 밥도 제대로 안 드시고, 제 집에 놀러 오시지도 않고, 절 안아주시지도 않으시고.. 제가 귀찮아진 거예요?"
"그, 그건 알다시피.. 네 이모님이 좋지 않은 일로 돌아가시고.. 그간 일이 많았잖아.."
"저보다 그 이모님을 사랑하셨는가 보죠?"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린 벌써 20년 가까이 한 집안처럼 살아온 사람들이야...!"
"20년이니 달랑 두 달인 저와는 비교도 안 된단 말이네요?"
"얘야, 넌 내 딸이야! 비교할 게 따로 있지?"
나는 그녀를 품어 안았다.
그녀는 앙탈을 부렸다.
"저 안 할래요! 딸도 그만 두고, 사무실도 그만 두고 가버릴 거예요!"
"그건 안돼! 난 너 없이는 못 살 거야! 그건 너도 알잖니?"
"그럼 절 사랑해주세요!"
"그래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내게 가장 귀한 보석이니까..."
"딸로서가 아니라 애인으로서...?"
이미 그런 상태나 다름없었지만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녀가 얼굴을 쳐들고 있었다.
이제 그녀 이마에 뽀뽀를 해준다 하여 만족할 그녀가 아니었다.
입술에의 뽀뽀로서 만족할지도 의문이었다.
나는 망설였다.
"아빠! 아빠가 절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시해 주세요?"
나는 입술을 내렸다.
두 입술이 맞닿는 순간 그녀의 팔이 목에 매달렸다.
내 혀가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가자 꾹 품고만 있다 이내 몸부림을 치며 핥아대기 시작했다.
달콤한 내음이 서로의 입안을 오고갔다.
"아아-! 사랑해요! 아빠!!"
그녀가 내 가슴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혓바닥이 가슴을 쓸며 내려가고 그녀의 손이 바지를 풀 때도 막지를 못했다.
막아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아니라, 막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 지배하고 있었다.
바지를 풀어 내린 그녀가 내 성기를 덥석 물었을 때 "아아- 나도 널 사랑해!"하고 본능적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입안에 물었던 내 성기를 꺼내어 그녀의 볼에 비비며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아빠!!"할 때 내 의지의 한계점을 훌쩍 뛰어넘는 본능의 몸짓을 어찌 할 수 없었다.
나는 엉거주춤 바지를 껴 올리며 그녀를 번쩍 안아들고 둑 아래 풀밭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달아오른 그녀의 몸짓이 그새를 못 참고 내 목을 핥아댔다.
그녀를 내려놓자마자 그녀의 블라우스를 젖히고 봉긋 드러난 젖가슴을 마구 핥아먹었다.
"아아--! 사랑해요!!"
치마도 벗겨 내렸다.
어둠 속에 하얀 부분만이 보였다.
그 위에도 컹컹 코를 들이대며 닥치는 대로 씹어먹듯이 이빨로 물어댔다.
아마도 그녀의 팬티는 내 이빨 자국을 냈으리라..
그간 내 식욕을 막고 있었던 건 그거였는지도 모른다.
허기가 쌓인 만큼 나는 난폭해지고 있었다.
급기야 내 이빨이 그녀의 팬티를 찢고 있었다.
찢어진 안으로 코와 이빨과 혀가 한꺼번에 들어갔다.
나는 배를 채울 듯이 안에서 솟구치는 냄새와 습기와 질척함을 모두 빨아들였다.
평소 그녀의 풋풋함과 청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동물적 암 비린내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죄의식을 잃고 내 바지를 끌어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덜렁 드러난 그걸 거머쥐고 그녀 위로 올라갔을 때 그녀가 말했다.
"정말 저 처음이에요! 믿어주실 거죠?"
안 아프게 다루어 달라는 건지, 그녀의 처녀를 바쳤음을 인정해 달라는 건지..
하였든 그런 말은 이미 늦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뿐더러,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내 성기 끝이 그녀의 속살을 파고 들어가자 벌렸던 다리를 옹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가슴을 밀어내며 발버둥쳤다.
"너무 아파! 너무 아파!!"
그 소리는 내 행동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단지 흥분을 고조시키는 역할에 불과했다.
그녀가 다리를 옹그릴수록 나는 더욱 힘을 가했고, 조금 후 그녀가 풀썩 다리에 힘을 풀자 왕복운동을 시작했다.
"네가 아빠를 못살게 조른 게 이 아픔이야, 이 등신아!!"
"그래도 좋아요! 내가 아픈 만큼 아빠가 좋을 거 아네요?"
"그래 이 등신아! 아빠는 좋아! 좋아서 미치겠어!!"
"저도 좋아요! 아빠보다 갑절로..."
요동이 심해지자 그녀는 깨물었던 입술을 내 입에다 말아 넣고 그 안에다 고통과 야릇함을 함께 토해 넣었다.
"흑! 흑! 흑!!"
"아아--! 아아아---!!!"
고통만이 있다면 누가 그런 짓을 하려할까?
그녀의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아- 사랑해요, 아빠! 꼭 안아 주세요! 더! 더!!"
"넌 후회할 거야! 날 미워할 거야! 그리고 떠나고 말 거야!"
"아니에요!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에요!"
하체를 꽉 조는 밀착감과 앳띤 숨소리는 나의 절정감에 불을 붙여 폭발을 앞당겼다.
"흑! 흑! 흑! 허--억!!!!"
"아아아--! 아아--! 아----!!"
나는 그녀 위에 퍽 엎어졌다.
그대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른다.
쭈그러든 내 것이 빠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옆으로 내려와 하늘을 보고 누웠다.
구름 사이로 별 몇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빠 힘드셨죠?"
"너야말로....!"
그녀는 내 머리칼을 매만지다가 내 입술에 살짝 키스를 했다.
그리고 내 손을 가져가 자신의 젖가슴을 덮은 후 말했다.
"제 몸은 이제 모두 아빠 거예요! 누가 뭐라 해도..."
"그래서 행복하니?"
"말이라고 하세요?"
"그럼 나는 뭐를 주니?"
"아무 것도.. 곁에만 있어주세요! 평소처럼..."
"만약 내가 널 버리면..?"
"그러지 못할 걸요? 내가 아빠를 버린다면 몰라도...."
그녀는 강가로 내려가 아랫도리를 씻고 올라왔다.
그녀의 찢어진 팬티로 내걸 닦아줄 때 하얀 팬티가 유색으로 물들어 있는 걸 보았다.
그녀는 그걸 돌돌 말아 강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내일 당장 그녀의 팬티를 사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섰다.
차에 돌아 왔을 때 옆에 또 한 대의 차가 대어져 있었다.
어딘지 낯익은 차 같아서 넘버를 보니 충길이 차였다.
나는 재빨리 그녀를 차에 태워두고 안을 기웃거렸다.
안엔 충길이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야 너 여기 웬일이야?"
"출장 갔다 오다 네 차가 대어져 있길래 하도 안 나타나서 식사하고 있어! 그런데 걔는?"
아마 주인에게 물어봐서 안 모양이었다.
"차에 있어!"
"너희들은 식사했다며.. 나도 다 했어!"
차로 오자 선이가 내려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하세요?"
"그래 아빠와 데이트 하니 좋아?"
"호호.. 좋아요!"
"짓궂긴...!"
나는 그를 그의 차에 밀어 넣으며 집에 가서 보자고 했다.
선이를 그녀 집 앞에 내려주고 집으로 오자 애들만 북적북적 했다.
아내를 묻자 저쪽 집에 갔다며 나도 그리로 오라 했다고 한다.
애들은 모두 여기서 자랬다고도 했다.
지리산 콘도의 재판을 벌이려는 건 아닐까?
내가 그의 집에 들어섰을 때 충길이는 이미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도 저녁을 먹었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차려둔 음식들을 치우고 있었다.
그가 나오자 나도 샤워를 하기 위하여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는 데 와이셔츠 밑자락에 피가 묻어 있었다.
뒤를 보니 풀물도 묻어 있었다.
우선 핏물부터 빼고 빨래 광주리에 넣어 버렸다.
그걸 아내가 빨 건 뻔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 충길이의 와이셔츠를 빌려 입을 요량을 한 것이다.
대충 몸을 씻고 문을 열며 소파에 앉아 있던 충길이를 불렀다.
"야! 집사람은..?"
"남은 음식 챙겨 애들 갖다 준다고 네 집으로 갔어!"
"와이셔츠 하나 줘?"
"왜? 너 오늘 사고 쳤구나?"
"얌마 빨리 주기나 해!"
나는 그의 와이셔츠를 입고 광주리에 넣었던 그걸 돌돌 말아 쓰레기 봉지에 쑤셔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가 놀려오기 시작했다.
"너 꼬리가 너무 길면 잡힌다! 대충 청산해? 네가 딸 들인다 할 때부터 알아봤어..."
"넌 내 마누라나 잘 챙겨! 제수씨처럼 보내지 않으려면..."
"네 마누라 내게 맡겨 놓고 수양딸과 놀겠다?"
"야 그런 소리 말고 우리 술이나 한잔하자!"
"나가서?"
"그럼 여기서 기분이 나겠어?"
우린 그 길로 아파트 앞 술집으로 향했다.
날이 선선해져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술이 적당히 오른 나는 제수씨는 내가 죽게 만들었다는 고백을 했다.
그는 자신이 원인이라며 술만 벌컥벌컥 마셨다.
술 취한 그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그의 이유인즉 나의 파트너를 자신이 죽이고 말았다는 논리였다.
거기서 나온 나는 바로 윗층의 노래방으로 그를 끌고 들어갔다.
속에 든 것을 다 토해버리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나를 붙잡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무 데서나 보여선 안 될 남자의 눈물이었다.
그때 아내가 나타났다.
아마도 많이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우린 그를 부축하여 그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를 침실에다 누인 아내는 어디서 잘 거냐고 물었다.
셋이 같이 잘까 하고 그녀의 속을 떠보았다.
"왜 보고 싶어요?"하고 되물었다.
그와 자는 걸 기정사실화 하는 말이었다.
"못할 거 없지!"하자 "그럼 그렇게 하세요!"고 당장 말하는 거였다.
그들 둘은 침대 위에 눕고 나는 침대 아래에 자리가 깔렸다.
서로에게 자극을 주려는 그녀의 속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이래도 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선이와의 일과 술기운이 온 몸을 휩쌌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누구나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관음증적 본능이 잠의 머리채를 잡고 있어서일 것이다.
어쩌다 잠이 들었다.
그러나 침대가 삐걱대기만 해도 잠은 달아났다.
그런 반복 속에 서너 시가 되었을 시간이었다.
위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목소리가 충길이 소리라 아마도 아내가 그의 몸을 더듬거나 빨고 있을 듯 했다.
초저녁부터 컴컴하던 날은 아직도 칠흑이었다.
부스럭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아아-!"하고 아내의 소리도 들렸다.
"자기 이제 올라와 봐!"
그가 그녀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몸을 비비는 소리.. 철퍽철퍽 살 때리는 소리.. 빠는 소리.. 그때마다 침대가 요동쳤다.
"아아- 좋아! 좀더! 좀더! 자기도 좋아?"
"응! 흑! 흑! 흑!"
"자기 너무 힘들지? 내가 올라갈게!"
다시 부스럭대고 침대가 출렁거리고 그녀의 신음 소리가 방안을 메웠다.
내게도 저랬던가?
까마득하기만 하여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다시 몸이 뒤바뀌고 그녀의 신음소리가 잦아지는 속에 그의 거친 숨소리가 커져가더니 뚝 끊겼다.
"잘 했어, 자기! 윤영이한테도 이래만 줬으면 그렇게 갔겠어?"
"모르는 소리! 그녀는 밤새 이러자고 하던 여자였어! 아마 윤수도 꾀나 혼났을 걸?"
"조용히.. 침대 밑에서 주무시고 계셔!"
"뭐라... 크크.. 별난 놈!"
아내가 몸을 씻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충길이가 침대 가로 기어오더니 내 볼을 꼬집었다.
"얌마 생 비디오 값 내놔?"
나는 끝까지 잠든 채 할 수는 없었다.
"조용히 좀 해! 내 마누라 맛이 괜찮지?"
"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 따스한 여자..!!"
아내가 돌아오고 있었으므로 그는 저쪽을 굴러갔다.
그녀는 그의 아랫도리를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다시 눕고 나도 잠을 다시 청하며 다음엔 셋이 같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계속 >
(22) 막차에 실린 섹스
다음 날 처리하기로 작심했던 선이의 일을 또 미루고 있었다.
제대로 잠을 못 잔 이유도 있지만 제수씨 사건 당일 납품했던 일이 착오가 있었다는 전갈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그리 큰 일은 아니지만 B사에서 처음 걸어온 클레임이라 즉시 처리해 주겠다고 말했다. 창고에 제고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B사로 간다니까 선이도 데려가 달라고 투정을 부렸다.
이 대리도 덩달아 종일 사무실을 지키는 그녀에게 바닷바람이라도 쐬어 주라고 거들었다.
나도 잠을 설친 아침이라 그녀를 데려가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같이 사무실을 나섰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면서 "어젯밤 아팠지?"하고 물었다.
"아니 별로.."라 했지만 몹시 고통이 심했을 거라는 생각에 그녀의 다리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 손을 당장 안으로 밀어 넣는데 맨살이었다.
"이렇게 다니면 더 아플 텐데..?"
"아빠가 사줄 때까지 이러고 다닐 거예요!"
어이없고 맹랑한 말이었다.
내가 그 손을 거두려 하자 더욱 밀착시키며 놓아주지 않는 거였다.
"알았어, 알았어! 당장 하나 사주고 호호도 해줄 게!"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나는 클레임을 건 부서로 가서 제품을 바꿔주고, 구매부로 와 김 과장을 만나자 결재가 되었다며 결재 어음을 쥐어 주었다.
그는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는 눈치였으나 또 다른 데 가봐야 한다며 뿌리치고 나왔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그늘 밑에 앉아 있었다.
저러다 바람이라도 불면.. 하는 생각에 그녀의 팬티부터 사러 나섰다.
내가 그중 하나를 찍자 무조건 좋다며 헤헤거렸다.
나는 아예 한 세트를 싸서 그녀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녀를 태우고 천천히 해변을 달렸다.
그녀는 그 중 하나를 차안에서 껴입었다.
입은 모습을 확인시켜 주려 내 손을 끌고 갔다.
도톰한 아래 내 것이 무너뜨렸던 계곡이 만져졌다.
나는 은근히 그 감촉을 즐겼다.
고개를 쳐드는 내 앞섶을 느끼며 해변가에 차를 세웠다.
해변엔 아직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가 운전석으로 와 내 손을 잡았지만 "너나 한번 뛰어보고 와!"했다.
결국 그녀 혼자 사장으로 뛰어내려갔다.
치맛자락을 팔랑거리며 어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모습이 마치 예닐곱 소녀 같았다.
나는 마냥 그렇게 기다릴 수만 없어서 빤히 보이는 화장실을 갔다.
불룩해진 내 모습을 보는 이가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소변을 보는데 그 옆에 콘돔 자동판매기가 보였다.
혹시 어젯밤에..? 갑자기 불안한 기운이 돌았다.
차에 오자 그녀가 돌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물었다.
"너 멘스일이 언제니?"
"아이 아빠도.. 숙녀에게 그런 걸 다 물어?"
"하여튼 말해봐?"
"혹시 임신할까봐 그렇죠? 제가 어린애인줄 알아요! 중학 때부터 다 배운다고요. 제가 안 된다 할 때만 아빠가 협조해주시면 되요!"
"어떻게?"
"질외사정, 그런 거..."
한숨을 돌렸다.
갑자기 일기 시작한 식욕이 자극했다.
해변 끄트머리에 있는 횟집으로 들어갔다.
돔 회 한 접시와 전복죽을 시켰다.
피곤을 풀려면 맥주도 한잔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회가 맛있다며 쪽쪽 씹어먹었다.
내가 먹으려 따뤄 놓은 잔을 슬쩍슬쩍 훔쳐먹기도 했다.
술이 두 병 더 들어왔다.
아예 근처 여관에서 잠이나 자고 저녁에나 돌아갈 결심을 한 것이다.
우리가 거기에서 일어선 시간은 두 시경이었다.
횟집 뒷집이 바로 여관이었다.
우리가 나란히 들어설 때 아줌마는 별 표정 없이 방 열쇠를 내 밀었다.
아마도 피서 온 가족들이 많이 드나들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방을 꾀나 컸다.
벽에 걸린 요금표를 보니 내게 요구한 금액은 4인 이하 가족 요금이었다.
방안에는 이불이 세 채나 개어져 있었다.
그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어깨에 매달렸다.
"아빠 사랑해요! 사랑해줘요!"
내가 문을 걸고 들어서자 그녀는 벌써 모두 벗고 있었다.
훔쳐 마신 술로 볼에서부터 가슴까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샤워부터 해야지!"
그 말에 당장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나도 옷을 벗었다.
내건 벌써 위아래로 춤을 추었다.
이미 볼 거 못 볼 거 다 본 그녀였지만 그 앞에 이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야 한다는 게 왠지 쑥스러워 한 동안 망설였다.
"아빠 뭐해요? 빨리 와요. 제가 씻겨드리게...!"
나는 엉거주춤 앞을 가리고 들어섰다.
등을 돌리고 선 내 몸에다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서늘한 기운이 몸을 식히면서 그것도 조금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 몸을 돌려세웠을 때 또 그건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비누칠을 하며 그녀의 손이 기어이 그걸 쥐었다.
"아빠! 아무 앞에서나 이러면 안 되요?"
조크인가, 경고인가?
그녀는 그걸 쥐고 구석구석 알뜰히도 씻었다.
다시 물이 뿌려지고 비누거품이 씻겨 내려가자 그녀는 비누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도 그녀의 등에서부터 비누거품을 내며 문질렀다.
내 손은 그녀의 몸에 묻은 땀을 씻어주는 게 아니라 애무를 하고 있었다.
당연하리라.
그녀가 돌아서고 봉긋한 가슴을 돌아 밑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는 아프다는 말을 했다.
하기야 어젯밤의 상처가 벌써 아물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녀는 내 손을 떼 내려 하지 않았다.
나는 손바닥으로 덮고 주위를 문질러 주었다.
물로서 그녀의 몸에 묻은 거품을 모두 씻겨 내린 나는 수건으로 대충 물을 턴 뒤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들어왔다.
이불 하나를 펴고 그 위에 눕히고 방금 아프다했던 그녀의 음부를 호호! 불었다.
호호 불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달아오르기 시작한 그녀는 다리를 벌렸다.
어젯밤 찢어냈던 처녀막과 터진 속살에 핏기가 서려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곳에다 혀를 내밀었다.
"아-- 아파--!"
말은 아프다고 했지만 그녀의 손은 내 머리를 잡고 더욱 밀어붙이고 있었다.
나는 속살에서 혀를 빼내어 앞부분의 덤불과 주위 두덩들을 핥았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가 발끝에서부터 핥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손바닥보다도 작은 그녀의 발을 통째로 입에 집어넣었을 때 그녀는 간지럽다며 발을 뺐다.
허벅지를 돌아 배꼽을 핥다가 젖가슴을 베어 물자 "아아--!"하는 신음소리를 연달아 내 뱉었다.
목을 돌아 귓밥을 씹다가 그녀의 입술을 덮자 그녀 몸을 핥던 혀를 정신없이 빨기 시작했다.
"넌 내 보물이야! 난 널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저도요!!"
서로 믿을 수 없는 약속들을 철석같이 하고 있었다.
이번에 그녀가 나를 핥아주겠다고 위로 올라왔다.
내가 했던 걸 똑 같이 하려는지 내 발목을 입에 넣으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녀의 혀가 내 허벅지에 닿았을 때 그녀의 다리를 끌어올렸다.
그녀도 내 의도를 금방 알아차리고 자기의 둔덕을 내 턱에다 비벼댔다.
나는 그녀의 음부 곳곳을 핥다가 고개를 들어 그녀의 항문을 핥았다.
그 기분이 좋은지 배를 들어올리며 엉덩이를 비틀어댔다.
이윽고 나는 그녀를 밀어내려 밑에다 눕혔다.
그녀는 다리를 양쪽을 벌리고 내 것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보려는 듯 고개를 세웠다.
나는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비되었지?"
"응!"
"아파도 참을 거지?"
"어제도 참았잖아!"
"신기하잖아? 이 큰 게 너 조그마한 곳에 들어가는 게...?"
"응! 아빠 빨리 넣어 줘!! 느끼고 싶어?"
입구에다 맞추고 서서히 문질렀다.
찢어진 살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흠칫흠칫 했다.
그러다 와락 밀어 넣고 그녀 위로 엎어졌다.
"정말 아파요! 어제보다 더 쓰라려!!"
"그럼 뺄까?"
"안돼! 해줘! 어제처럼!!"
나는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아파서인지, 좋아서인지 "아아-!!"하는 신음소리를 계속했다.
아파서든 좋아서든 그 소리는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본디 쾌감은 고통과 동반하는 게 쾌감이다.
비록 사디스트(sadist:가학성 변태 성욕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그런 가학성 또는 피학성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샌드백을 친다거나 망치로 두더지를 두드리며 쾌감을 얻는 인간의 속성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나는 왕복운동을 멈추고 곧 쓰러질 팽이처럼 좌우로 빙글빙글 돌리며 물었다.
"너도 이렇게 종일 했음 좋겠지?"
"응!"
제수씨의 말이 생각나서 물은 말인데 의외로 그녀는 "응!"이라 대답했다.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아빠 왜? 힘들어?"
"좀 쉬자! 종일 하자면..."
"앙! 해줘??"
그녀가 밑에서 엉덩이를 비틀어댔다.
벌써 섹스의 맛을 아는 걸까?
그 맛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아휴! 숨막혀!"
결국 그녀도 지쳐 날 밀어냈다.
나는 그녀 위에서 내려오며 뒤로 벌렁 누웠다.
노란 천장이 이불처럼 덮였다.
"사랑은 슬픔을 주고, 섹스는 허무를 준다면서요?"
"별 걸 다 아네?"
"책에서 봤어요!"
어린 게 맹랑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반대가 맞는 거 아네요?"
"그래야겠지..."
그녀는 내게 붙어 있던 게 불편했던지 이불 하나를 더 깔고 누웠다.
스르르 눈이 감겨왔다.
내가 눈을 떴을 때 해가 기울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게 등을 보인 채 잠들어 있었다.
잘록한 허리에 비해 엉덩이가 제법 크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욕정이 일었다.
아까 하다 중지한 탓일까, 잠시 눈을 붙여 피로를 푼 탓일까? 거대하게 발기하여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이불을 밀고가 그녀 뒤에 붙였다.
머리 밑으로 팔을 밀어 넣으며 젖가슴을 움켜쥐자 깜짝 놀라 눈을 떴다가 나라는 걸 알아보고는 "놀랬잖아!"하며 내 팔을 살짝 깨물었다.
나는 잔뜩 발기된 그걸 그녀의 엉덩이 사이에 비볐다.
"아빠 또 하고 싶어?"
"아까 안 했잖아!"
"안 하다니? 그럼 아깐 다른 남자였어?"
"남자는 사정을 해야 끝나는 거야..!"
"아이-, 나는 이렇게 안겨있고 싶은데...?"
더 이상 내 욕심만 낼 수는 없었다.
등을 밀착해오는 감촉을 즐기며 몰캉한 젖가슴을 즐기는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이처럼 그녀의 외적 감촉과 관능만 즐겼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호기심에 잔뜩 달아오른 그녀가 더 깊은 것을 요구하는 앙증맞은 그 투정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즐거움을 만끽했을 것이다.
그녀도 꿈 많은 한 소녀인 이상 사랑과 섹스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이 컸을 건 뻔하다.
그런데 금기의 城으로 설정해둔 섹스의 문을 넘어서자 그녀는 그 섹스도 별 것이 아니라는 당돌한 판단을 해 버린지도 모른다.
섹스 이후의 사랑을 생각하기엔 그녀는 너무 어리지 않을까?
그녀 수준(나의 오판일지도 모르지만)의 생각으로 보면 섹스를 사랑의 종결로 판단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녀가 말한 "사랑은 슬픔을 주고, 섹스는 허무를 준다면서요?" 이 말은 그녀도 이미 우리 관계의 종말을 예감하고 있다는 발언이 아니었을까 느껴진 것이다.
내 몸이 조금씩 식어가고 있을 때 그녀의 손이 내 손을 끌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만져 줘! 안 아프게..."라 했지만 결국 그녀는 내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가 아픈 속살을 건드려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빠! 날 사랑하지? 날 버리지 않을 거지?"
내가 대답이 없자 몸을 돌려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다시 물었다.
"내가 아빠 없이는 못 산다는 거 아빠도 알지?"
"내가 하던 말이구나! 그 말은..."
그녀는 내 성기를 거머쥐고 그녀의 음부에 비볐다.
그리고 수염이 까칠까칠 돋은 턱에다 그녀의 볼을 문질러댔다.
"내 건 모두 아빠 거야!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나를 밀어 눕힌 그녀가 위로 올라왔다.
얼굴을 찡그리며 내걸 집어넣은 그녀는 그대로 엎어져 서툰 솜씨지만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자신의 젖가슴을 털이 듬성듬성 난 내 가슴에 비벼댔다.
"아빠, 좋아?"
"응!"
"정말 좋아?"
"흑!"
나는 손을 내려 그녀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고 찍어 올렸다.
그녀의 속은 얕았다.
그래서 찌를 때마다 대여서 그녀의 인상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그녀가 "아-! 아-!"하고 내 지르는 소리는 쾌감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힐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를 밀어 내렸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빠가 위에 올라오려고..?"
"아니, 네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나 실은 점점 더 아파져! 왜 이렇죠?"
"상처가 점점 커져서겠지... 그러나 며칠 후면 나을 거야!"
"아빠 미안해! 내가 손으로 해줄게?"
그녀의 손이 내걸 쥐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좀채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녀도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입으로 해 드릴 테니 그 안에다 해요! 책에 보니까 먹어도 괜찮데요.."
많이도 안다.
입에다 물고 우물우물 빨다가 꾹꾹 눌렀다.
허나 결국은 내가 그녀의 벌린 입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손으로 손수 해야 했다.
"아아- 터진다!!"
순간 그녀는 크게 벌린 입으로 그걸 품었다.
껄떡껄떡..
그녀는 눈을 감고 꿀꺽 삼키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화장실로 뛰어갔다.
몇 번이나 토한 건지 그녀가 걸어나올 때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줄줄 흘러 있었다.
"미안하구나!"
"괜찮아요. 제가 원한 걸요!"
나는 그녀의 팬티를 껴 올려주며 두덩에다 뽀뽀를 해 주었다.
그녀의 모습은 팬티로 가려진 모습이 더 예뻐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나머지 옷들을 입는 동안 나도 옷을 껴입었다.
옷을 다 챙겨 입었을 때도 앞섶은 불룩해져 있었다.
"아빠 정력이 센가 봐!"
알고 하는 말일까, 흔히들 그런 말을 해대니까 철없이 하는 말일까...
< 계속 >
(23) 돌 수 없는 풍차
우리가 그곳을 나섰을 때 어둑해져 있었다.
약방 앞에 차를 세운 나는 박카스 두 병을 사고 연고 하나도 사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박카스를 홀짝홀짝 마시며 말했다.
"아빠 나 더 크면 책방 하나 차려주실래요?"
"그새 꿈이 바뀌었니? 전에는 옷가게, 핫도그 집, 꽃집..이더니만..?"
"방도 하나 딸린 걸로 했으면 좋겠어요?"
"방은 또 왜?"
"아빠가 거기서 책 읽으시게! 그리고 저도 안아주시고..."
그러마 하고 약속할 수도 없고, 안 된다 할 수도 없고....
"빨리 너 학교부터 다닐 수 있게 하자?"
"학교는 정말 싫어요! 지금이 좋아요.."
"그래도 그게 아니다. 학교 다닐 나이엔 학교 다니는 게 좋아! 시기라는 말은 그래도 있는 거야?"
그녀는 말문을 닫아버렸다.
중간쯤 휴게소에서 우린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때도 그녀의 종알대던 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집에 다다랐을 때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차에서 내린 그녀는 그냥 들어갈 기세였다.
나는 "집에 들러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라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홱 돌아섰다.
"그래! 오늘은 너도 피곤할 거야! 이거 바르고 자?"
나는 호주머니에서 연고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정 그러면 아빠가 발라주고 가면 될 거 아냐??"
당황스러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그녀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왜 밖에서는 못 봤을까?
직감적으로 따라 들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언니라 부르는 미스 한이 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에 우르르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아내의 모습도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먼저 도망치려던 선이를 잡았다.
"아빠! 날 보내 줘? 저들은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야!!"
"얘가 누굴 보고 아빠야? 유선이 너 빨리 안 들어와??"
안에 있던 남자 하나가 뛰어나와 머리채를 잡고 그녀를 끌어넣었다.
저 남자는 누구이고, 또 저 여자는 누구인가?
구석에 얼굴을 못 들고 있는 미스 한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대체 어찌 된 일이지 아내에게 물었다.
이들은 선이의 부모들이며 그녀는 가출 소녀였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당신 왜 종일 핸드폰을 꺼놓고 있었냐고 따졌다.
하늘이 노래져 왔다.
변명은 어떻게 하며 저들은 또 어떻게 볼 것인가?
어느 정도 자리가 진정 되자 그가 말했다.
"나 얘 친부고 이 사람은 얘 친모요! 그간 사장님과 사모님께서 철없는 애를 잘 보살펴주신 건 제가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났을 때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마디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아내의 치마폭에도 들어갈 구멍이 없었다.
어린 그녀에게 농락 당했다는 생각도 상황적으로 사치스런 변명거리일 뿐이었다.
한 마디로 좆이 되었다.
다 잃었다.
그 이후의 일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 끝 >
- 글 끝에 -
유감스럽게도 이 글은 실화입니다.
물론 이름들과 장소 설정은 필자 임의로 한 것입니다.
내용 중 일부는 필자의 펜에 의하여 과장되거나 픽션화되기는 했어도 스토리는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는 지금 청소년보호법에 의하여 구금된 상태이며, 그의 친구(글중 충길)가 나서서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법의 결정이 어떻게 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가 운영하던 사업체는 부도가 났으며, 그의 아내였던 성 희애(글중)는 아이들을 데리고 잠적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변호 진술을 거부하기 위하여라는 말도 들립니다.
자그마한 불장난으로 그에게 가해진 벌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으로 글을 접으며.
필자 또한 그 나이에 가까웠고, 삶에 대한 허무를 많이 느끼고 있는지라 그의 행동에 많은 연민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며 펜을 놓을까 합니다.
휴가를 끝내고 알찬 가을을 준비하시는 님들께 우울한 메시지를 남기는 거 같아 송구합니다.
-- 필자 c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