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BOO
(마땅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TABOO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앞의 S 는
글의 초반 설정이 만화 SUPER TABOO와 흡사하여 붙인 것입니다. 하지만 설정만
약간 비슷할 뿐 내용은 다릅니다. )
1.
푸른 하늘, 하얀 구름조각들이 조용히 흘러가는 가을의 오후, LA 인근의 공원묘지
새로 만들어진 한 묘석 앞에 유진영은 서 있었다.
'유경호 이곳에 잠들다. -1954~1999-
고통과 슬픔이 없는 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기를...'
'아버지..'
유진영은 그저 망연히 묘석을 바라보기만 했다.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사업에
바빠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따듯하고 좋은 아버지였다. 가슴속이
텅 빈듯한 느낌..
하지만 그런 중에도 그의 마음속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유진영은 며칠전 병원에서의 일을 생각했다.
...........................
항상 자신의 사업에 혼신의 열정을 기울이던 아버지. 그가 사형선고를 받았다. 위암..
바로 위암 말기라는 의사의 진단이었다. 조금만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썼다면 말기가
되도록 병원한번 가지 않지는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살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일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할애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하여간
아버지의 상태는 급속히 나빠졌다. 그전에는 그래도 멀쩡해 보였던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어쩌면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어 절망했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고 유진영은
생각했다. 결국,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수술을 받고 난후 아버지는 산소
마스크를 떼고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의식도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기절? 하여간 의식이 없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이제는, 곧 다가올
죽음을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날도 유진영은 수업을 마친 후 아버지의 병실로 찾아갔다. 마침 아버지가 의식이
있었다. 유진영은 반가운 마음에 아버지의 침대곁에 다가가 앉으며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꺼칠해진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아버지의 손, 그리고 고통을 참는 것이
역력한 그의 얼굴, 유진영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이를 꽉 물었다.
아버지가 맞은 편의 간호원을 바라보며 산소 마스크를 가리켰다. 벗겨 달라는
것일까?
"않돼요, 아버지! 그냥 하고 계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완고히 자신의 산소 마스크를 벗겨 주기를 원했다. 간호원은 그와
유진영을 번갈아 보다가 아버지의 산소 마스크를 벗겨 주었다. 유진영도 더는 막을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말할 만한 힘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 이순간이
지나면 언제 또 의식을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이 유언의 순간 일지도 모른다.
들을 수 있을 때 들어야 했다.
마스크를 벗자 아버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몸짓을
했다. 유진영은 얼굴을 아버지의 얼굴 앞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아버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에게...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진영아.. 나는 여태껏.. 너에게..
거짓말을 해 왔다..."
유진영은 힘겹게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 아버지의 손을 꼭 쥐었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을 듣고 부터는
아니었다.
".... 네 어머니는.. 사실은 살아있..단다. 죽은게.. 아니야.. 내가 그동안.. 너에게...
거짓말을 해왔다..."
유진영은 가슴을 무언가가 쿵! 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어린시절 엄마있는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
아버지에게 물어 보았을 때 아버지는 엄마가 그가 아주 어릴 때 사고로 죽었다고
말했다. 그때 그는 엄마 없는 자신의 신세가 슬퍼서, 또 자신을 두고 그렇게 빨리
죽어버린 엄마가 미워서 침대에서 얼마나 울었던가? 그런데 지금 아버지가 죽은 줄
알았던 그 어머니가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유진영은 충격과 혼란스러움에
그저 망연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네게 좀더 일찍... 알려 주었어야..하는데.....죽기 직전에서야... 말하게
되는구나... 미안하다.."
아버지는 그저 미안하다고만 했다.
"...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 이유는 ....부끄러워서 말..할 수가 없..구나..하지만
모두가.. 다 내 잘못이다. 네 엄마... 그녀에게는... 잘못이 없어. 내가 그녀를...
버린거야.."
아버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유진영은 그것이 육체의 고통인지
마음의 고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마음의 고통이 아닐까? 아마 그럴 것이다.
"김 변호사에게 .... 네 엄마의 사진과 .... 물건을 맡겨... 놓았다... .. 받아 보거라..
그리고 네 엄마를 ...찾아 가거라... 네 엄마는 .... 한국에서 살고 있다... 한국... 어디에
사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김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면... 능력있는.. 사람이니..
찾아 줄 수.. 있을 거다.. 찾으면 .. 어떻게 살고 있을 지 모르지만.. .....세월이
많이..흘렀으니 어쩌면 재혼했을 지도...모르지...하지만... 같이 살 수 있다면.. 같이
살거라... 꼭 ... 찾아가거라... 그리고 내가 미안하다고.. 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 내
대신... 전해 주거라.. 꼭....."
아버지는 그말을 끝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았다. 간호사가 얼른 산소
마스크를 씌워 주었다. 아버지는 잠이 들었다. 어쩌면 그저 의식을 잃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유진영은 그저 망연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는
아버지가 다시 의식을 찾기를 바랬다.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침대 옆에서
아버지가 다시 한 번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지만 유진영은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의 침대를 지키며
그가 의식을 찾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애초의 불안한 예감대로 아버지는 다시 의식을
찾지 못한 채 그날 밤 결국 임종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차가운 묘지의 흙 속에 묻히고 만 것이다.
...............................
"진영군? "
유진영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 보았다. 하얀 백발의 노인.
아버지의 변호사였던 리처드 김이었다.
"무어라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 늙은이는 아직까지 살아있는데 한창
나이인 부친께서 먼저 가셔서 정말 안타깝고 죄스럽습니다."
"그런말씀 마세요. 김변호사님."
유진영은 씁슬한 미소를 지으며 김변호사를 바라보았다. 고국을 떠나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아버지가 신뢰했던 몇 안되는 사람중 하나. 그런데 이노인은 손자뻘밖에 안되는
자신에게 항상 말을 높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그가 만류해도 완고한 그의
고집을 꺽을 수는 없었다.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서 쉬시는게 좋겠습니다.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이 무척
피곤해 보이는 군요. 떠난 사람은 편히 보내주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진영군 건강이
상하기라도 한다면 부친께서 지하에서나마 걱정하실 겁니다."
유진영은 다시한번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서 김변호사와 함께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나마 걱정해줄 사람이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일까?
"괜찮으시다면 오늘 저의 집에 가셔서 식사라도 하는게 어떻습니까? 지금
집사람한테 전화해서 준비하라고 할까요? "
차를 출발시키며 김변호사가 물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저 그보다 김변호사님? 아버지가 제게 주라고 맡긴 물건이
있지요?"
"......아..예.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겠습니다. "
김변호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지금 받아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원하신다면."
김변호사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럼 지금 제 사무실로 가시겠습니까?"
"예.."
김변호사의 사무실로 가던 중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담배를 좀 피워도 되겠습니까? "
"물론이죠, 김변호사님. 그런걸 굳이 저한테 물어보실 필요 없어요. 그냥 김변호사님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되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진영군. 이젠 진영군이 저의 마스터입니다. 진영군이 저를
해고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김변호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사실 함께 있는 차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죠. 하지만 제가
골초이다 보니, 그리고 아버님께서도 저에게 그런 특권을 부여해 주셨고 해서 감히
진영군에게도 부탁한 것입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천만에요. "
김변호사는 담배연기를 길게 뿜은 후 말을 이었다. 담배연기가 열린 창 틈으로 쓸려
나갔다.
"사실 벌써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게 좀 그렇습니다만, 사람이란 슬픔을 있기 위해선
일에 몰두하는 게 제일이지요. 아버님 사업 말씀인데.."
유진영은 김변호사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저는 사업에는 흥미가 없어요. 나중에 성인이 된 후라도 아버지 사업을 맡을
생각은 없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부친의 사업은
부친의 노력 덕분에 이제 완전히 안전기에 이르렀습니다. 내버려 둬도 자연히 성장할
추세입니다. 뭐, 지금 처분한다해도 좋은 가격을 받을 수는 있지만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업얘기.. 솔직히 관심이 없다. 유진영은 이제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김변호사님께 맡길께요. 김변호사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김변호사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저 변호사일 뿐입니다. 경영자가 아닙니다. 사업에는 법적인 조언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죠. .... 일단 회사의 지분은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력있는 사람을 대리 경영자로 내세우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면 나중에 진영군이
다시 경영을 맡을 수도 있고, 가장 무난한 방법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유진영은 나중이라도 자신이 경영을 맡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
"음... 미스터 베이커가 적절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진영군도 본적이 있죠?
..예. 그 대머리에 뚱뚱한 흑인 부사장 말입니다. "
유진영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분명 본 적이 있다. 무척 인상좋은 중년
남자였었지 아마?
"능력도 있고, 무엇보다도 정직해서 믿을 수 있는 남자지요."
"예.... 김변호사님이 알아서 해 주세요."
유진영은 다시 그 말을 했다. 사실 조금, 아니 많이 지겨웠다. 김변호사가 그런
낌새를 눈치챘나보다.
"미안합니다, 진영군. 이 늙은이가 피로한 사람을 귀찮게 했군요. 그럼 얘기는 일단
이것으로 마치고 빠른 시간 내에 미스터 베이커에 대한 이력서와 회사에 관한 보고서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김변호사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유진영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가 본다고 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제 의무는 해야 합니다, 진영군. "
김변호사는 단호히 못을 밖았다. 유진영은 그저 한숨을 쉬었다.
"진영군? "
"..예? "
"감사합니다. "
"예? 뭐가요. "
"이 늙은이를 신뢰해 주셔서 말입니다. "
김변호사가 앞을 본 채로 노안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를 신뢰하나? 물론 신뢰하긴 한다. 친인으로써.. 하지만 그에게 사업에 관한 것을
일임한건 그저 귀찮아서인데.. 유진영은 약간 미안해 하며 역시 앞을 보며 말했다.
"...천만에요. "
..............................
"자 여기 있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한 김변호사는 자리를 권한 후 금고안에서 서류 묶음 하나와 작은
상자 하나, 그리고 작은 열쇠 하나를 꺼내어 유진영에게 내밀었다.
"부친의 유언장 사본과 맡겨놓으신 물건입니다. "
유진영은 유언장엔 관심없이 상자부터 서둘러 집어들었다. 자물쇠로 잠겨진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였다.
"여기에 제 어머님에 관한 것이 들어 있나요? "
김변호사는 약간 놀란 듯이 오히려 반문했다.
"그 상자에 진영군 어머님에 관한 것이 들어 있었습니까? 몰랐군요. 마스터께서
아무 말씀도 없으셔서.. 그렇다면 진영군 어머님의 유품..? "
"아니.. 아니요. 어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았어요. 살아 계시데요. "
"예? 마스터께서는 분명 돌아가셨다고.."
유진영은 세게 머리를 저으며 서둘러 자물쇠를 따고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하얀 봉투 하나와 빛바랜 사진 한 장, 그리고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유진영은 사진부터 집어들었다.
.....사진은 가족의 사진인 듯 했다. 공원처럼 보이는 곳을 배경으로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와 그들의 아기인 듯한 한 어린아기의 사진. 남자는 자신의 아내의 어깨를
감싼채, 그리고 여인은 아기를 가슴에 꼭 안은채 행복하게 미소짖고 있었다.
유진영은 사진 속의 남자의 모습이 비록 젊었을 때의, 많이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아버지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자신의 어머니이고...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는 자신인 것일까?
유진영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하지만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으며 결코 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을 보자 감격해서
일까? 아니면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괜히 서글퍼서? 아니면 사진 속에서는 이렇게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그 어떤 이유로 헤어진 부모가
원망스러워서?
김변호사는 유진영의 모습을 보며 손수건을 가만히 유진영의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커피포트에 있는 뜨거운 커피를 한잔 따라 유진영의 앞에 놓았다. 하지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섣부른 위로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오랜 연륜으로 아는
것이다.
유진영은 눈물 젖은 눈으로 그앞에 놓인 손수건도 커피도 거들떠보지 않은채
사진만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 속의 여인의 모습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청초한 모습의 젊은 여인, 아름다웠다. 누가 보아도 미인이라 할만한
여인의 모습이었지만 유진영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어머니이기 때문일까?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느껴졌다. 다시끔 눈물이
흘러나왔다.
'..마마....'
유진영은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기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웃고
있었다. 자신에게도 기억나진 않지만 이렇게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왜 지금 그녀는 내 곁에 없는 것일까? 왜?
유진영은 사진을 내려놓았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후 그는 상자 속의 봉투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 그만 성급한 마음에 커피잔을 건드려 커피를 쏟고 말았다. 황급히
사진을 들어올려 사진이 젖는 것은 면했지만 바지를 적시고 말았다. 다행히 커피가
이미 식어버려 데지는 않았지만.
"미안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잔을 너무 가까이 놓았군요. "
김변호사가 사과했다.
"천만에요. 제 실수에요, 김변호사님.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봐요. 저.. 다시 한잔 따라
주시겠어요?"
유진영은 손수건으로 젖은 부분을 닦은 후, 김변호사가 다시 따라준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흰 봉투를 집어들었다.
안에는 편지가 들어있었다. 아버지가 그에게 쓴 편지였다. 내용은 대략 병원에서의
유언과 비슷했다.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역시 자세한
얘기는 없어 유진영을 여전히 궁금하게 했다. 그러나 그대신 어머니에 관한 자세한
신상이 적혀있었다.
이름과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라는 숫자, 그리고 예전에 살았던 주소지 등..
'..정연희...정..연희..'
유진영은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보았다.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유진영은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변호사를 보았다.
"김변호사님? "
"예. 진영군."
김변호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 사람을 찾고 싶습니다. 한국에 있는.."
"..진영군 어머님이 한국에 계신 겁니까? "
"..예..."
"걱정말고 맡겨 주십시오. 꼭 찾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진영은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천만에요. 이것도 제 일입니다. "
김변호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진영은 어머니의 신상이 적혀있는 종이를 김변호사에게 건넸다.
"빠를수록 좋겠지요? "
김변호사는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저..잠깐만요.. "
김변호사는 유진영의 황급한 만류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어디 사시는지 찾기만 해 주세요. 만나거나 저에 관한 얘기같은 건 절대 하지
말고요. "
김변호사는 유진영을 잠시 바라보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원하시는대로 하지요. "
그리고 그는 한국의 자신이 아는 사람에게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2.
12월의 어느 오후,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유진영은 아까부터 서성이고 있었다.
고민하는 듯, 갈등을 느끼는 듯, 그는 좀처럼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후우'
한숨을 쉬는 그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쏟아져 나왔다.
유진영은 지금 한국에 있다. 그것도 그의 어머니와 아주 가까운 곳, 바로 그녀의 집
근처에... 몇걸음만 걸어가 대문을 두드리면 그녀와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왠지 망설여졌다.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아니 망설일만한 어떤 이유도 없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
김변호사가 유진영의 어머니 정연희의 소재를 파악해 그의 하교 시간에 맡추어
학교앞으로 찾아온 것은 부탁한지 불과 이틀 후였다. 무척 빨랐다. 하지만 유진영에게는
그 시간도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지만...
"어머님께서 그 주소지에서 계속 살고 계셔서 찾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파심에 이것저것 알아보다 보니 그만 조금 늦어졌군요. "
차 안에서 그에게 조사 내용을 기록한 종이를 건네고 차를 출발시키면서 김변호사가
흔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도 일이 잘 풀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어머님은 건강하시고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따님 한 분과 살고 계시더군요.
그 외의 가족은 없었습니다."
"..딸....요? "
유진영은 뜻밖의 사실에 약간 놀랐고 또 의아했다. 아버지는 유언에서도 유서에서도
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어머니의 딸... 누구일까? 내 형제일까?
"뜻밖입니까? 하긴 부친께선 그런 언급은 없으셨지요? 확실한 것은 본인들만이
아실테지만 제 생각엔 진영군 친동생이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그 아가씨의 나이가 지금
16세이니.. 부친께서 미국으로 오신 때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또.. 진영군 어머님도 재혼하셨던 기록은 없고.. 사실.. 부친과 이혼하지도
않은 상황이거든요. "
유진영은 생각에 잠겼다. 그럴까? 그 여자애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딸, 내 동생일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왠지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유진영이었다.
"자 이제 소재도 파악다으니 찾아가 보셔야지요? 언제쯤 찾아가시겠습니까? 말씀만
하신다면 제가 당장이라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
찾아가는 문제가 나오자 유진영은 갑자기 망설여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솔직히
어머니를 만나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알게되자 얼마나 설레였던가.. 하지만
그런 한편 왠지모르게 두렵고 떨리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 유진영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저... 일단 학기를 마친 다음에 ..방학때 찾아가겠어요. ...시간도 넉넉할 때.. "
김변호사는 그를 잠시 보더니 고개를 끄덕엿다.
"그러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쯤에 맞추어 준비를 하겠습니다. ...시기를
조정하고 싶으시다면 언제라도 말씀하십시오. "
말을 마치고 김변호사는 옆에있던 두툼한 가죽가방을 들어 유진영에게 건넸다.
"..이게 무어죠? "
"열어 보십시오. 일전에 말씀드렸던 미스터 베이커와 회사자산 및 실정에 관한
서류입니다. 팩스나 메일을 이용하면 편리하겠지만, 보안문제도 있고 해서 이렇게 직접
드리는 겁니다. "
가방을 열어보던 유진영은 서류의 내역을 듣고, 또 그 엄청난 양을 보자 인상을
구기며 가방을 다시 닫았다.
김변호사는 그런 유진영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저로서는 시간날 때 한 번이라도 보아주셨으면 좋겠군요. "
"하이스쿨 학생에게는 제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김변호사님. "
유진영 역시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
김변호사도 다시 한 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방학이 시작되자 마침내 유진영은 한국으로 향했고, 모든 수속은 김변호사가 처리해
주었다. 한국으로 떠날 때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유진영의 짐은 여권과 김변호사가
준비해준 카드 몇 장 뿐이었다. 각각 다른 신용카드 다섯 장과 역시 각각의 현금카드
세장.. 이것 역시 별로 탐탁지 않았지만 김변호사의 성의를 생각하여 그냥 받은 것이다.
그외에는 김변호사가 지금의 한국 날씨는 매우 춥다며 건네준 무스탕 하나. 그게
전부였다.
김변호사의 배웅을 받고, 설레이고 떨리고 두려운 복잡한 심정으로 비행기에 오른
유진영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의 집을 찾아갔다. 물론 그 귀찮아했던 무스탕을
건네준 김변호사에게 감사하면서..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은 무척 쉬웠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주소를 보여주자 기사는
그를 어머니의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정말 놀랍도록 혼잡한 교통체증에 한시간
이상을 차안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의 떨리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모든 것이 너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너무 수월하여 더 망설여지는
유진영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바로 어머니의 집 앞에서, 한국에 도착하면서부터 맞기
시작한 눈을 맞으며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
유진영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집을 바라보았다. 윗부분의 창살이 가시덩굴로
둘러싸인 높은 담으로 감싸고 있어 집의 이층만이 겨우 보이고 있었지만, 대충 아담한
규모의 단독주택으로 보였다. 주변의 집들도 비슷했다. 모두 높다란 담으로 집을 두르고
있어 유진영에게는 상당히 낯설었다. 약간의 압박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도 하고..
유진영은 심호흡을 하며 대문으로 다가갔다. 언제까지나 망설일 수는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부딛혀야 한다.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
유진영은 손을 뻗어 초인종을 눌렀다. 멜로디가 밑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이
그의 귀에 들렸다. .................................잠시, 더없이 조바심나는 시간이 흐른
후, 스피커를
통해 여자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
'누구? ........마마일까? '
유진영에게 그 목소리는 마치 머리속을 그대로 울리며 들려오는 듯 했다.
유진영은 떨리는 입술을 벌렸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말을 꺼내려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말은 나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
대문위에 달린 카메라로 그녀, 어머니(?)가 자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진영은
왠지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한 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고... 내가 이렇게 용기없는
놈이었을까?
스피커 저쪽의 여자는 한번 더 '여보세요? '하고 묻더니 대답이 없자 잠시후 인터폰을
내려놓는 듯 했다.
유진영은 갑작스레 절박한 심정에 고개를 들었다. 들어가 버린 것일까? 실없는
사람이나, 혹시 장난하는 것으로 생각해버린 것이 아닐까? 유진영은 다시 초인종을
눌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를 수가 없었다. 이미 사그라져버린 용기가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가 그렇게 한숨을 쉬며 자신을 질책하고 있을 때, 대문 안쪽에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유진영의 가슴에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한 소리였다.
그리고 가벼운 발자국 소리..점점 다가오는...
유진영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대문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흥분과 두려움이
섞인 복잡한 감정속에서 다음순간을 기다렸다.
대문이 금속성을 울리며 열리고....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견 가냘퍼 보이는,
갈색 계통의 긴 가정용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단추로 잠그는 스웨터를 걸친 초췌해
보이는, 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이었다.
'마마? '
유진영은 떨리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불렀다. 그녀였다. 그녀가 맞았다. 유진영은 알아볼 수 있었다. 사진속의 모습보다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사진속의 여인, 자신의 어머니가 확실했다.
"학생은 누구죠? "
여인, 정연희는 의아한 시선으로 자신의 앞에서 눈을 맞으며 서 있는 훤칠한 키의
소년을 보며 물었다.
유진영은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어떤 말도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아니,
머릿속에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의 눈 속에
비치는 여인의 영상이 흔들리며 흐릿해지는 가운데 추운 듯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소년의 모습에 어떤 느낌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모자의 피는 서로를 알아볼수 있게 하는 것일까? 어떤 예감에 여인의 몸이 점차
굳어지며 그녀의 눈에 설마? 하는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눈빛은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차 확신의 빛으로 변하며 떨리기 시작했고, 그 떨림은 이내
그녀의 전신으로 퍼져갔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눈에도 뿌연 습막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떨리는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역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진영이니? "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러나 유진영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유진영의 입에서도
마침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마마..? "
유진영이 그녀를 부를 때 이미 정연희는 그에게 뛰어들며 덮치듯 그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를 가슴에 끌어안고 그녀는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속에
얼마만큼의 설움과 아픔이 녹아 있을 지는 오직 그녀 자신만이 알고있을 것이다.
"....흑흑....진영......흑..진영아 ...흑..흐윽.........."
유진영은 그녀의 가냘픈 몸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뿌듯한 격동 외에는...
유진영은 흔들리는 시야 너머로 그녀의 머리를 내려다 보았다.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애처롭게 흐느끼는 여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는 결코 작아보이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 끌어안고 있으니 그의 코밑에 올 정도의 작은 몸이었다. 만약
이 모습을 옆에서 본다면, 아마 그녀가 유진영의 품에 안겨 있는 듯 보일 것이다.
하지만... 유진영이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유진영은 자신이 조그만해져 그녀의
품안에 감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보드랍고 포근한 감촉, 따듯한
체온, 그리고 좋은 냄새.. 유진영은 생각했다. 이것이 어머니의 느낌인 것일까? 그의
안에 있던 모든 슬픔과 원망이 그녀의 따스함에 녹아 내리고 있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서로 끌어안고 십여년만의 재회를 누리고 있는 모자의
머리 위로...
3.
두 모자가 한없이 끌어안고 있을 때, 대문 안쪽에서 다시 현관문이 열리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
연희는 아들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향해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함빡 미소를 띄우여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어서... 어서 들어가자. "
유진영은 그녀에게 끌려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눈에 현관앞에 서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긴 생머리, 북실한 흰색 털
스웨터에 집안이 따듯한 듯 아래에는 짧은 연노란색의 반바지를 입은 요정처럼 귀여운
소녀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머니를 그대로 닮은 모습... 유진영은 그녀가 바로
어머니의 딸임을 알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간 엄마가 한참동안 소식이 없자 걱정이 되어 나와본 듯한 소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엄마와 낮선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두 사람의 여전히
흥분해 있는 모습과 눈물젖은 얼굴을 발견하곤 더욱 의아한 표정을 띄었다.
"진아야... 오빠야. 오빠가 왔어... "
연희는 기쁨이 잔뜩 묻어있는 흥분된 목소리로 자신의 딸을 보며 말했다.
"오빠..? "
소녀는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 그대로 유진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희가 그녀를 유진영에게 소개했다.
"진아야. 네 동생이야.. "
".....안녕....? "
유진영은 어색하게 그 한마디를 했다.
소녀도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순간, 그녀의 눈에도 물끼가 고이는 듯 했다.
".....오빠........정말 오빠야...? "
그녀는 유진영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정말 오빤거야?....... 왜......왜 이제야 왔어?....... 엄마랑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
데.... "
소녀의 입끝이 삐죽이며 그녀의 얼굴에도 울음이 번지려 했다.
"자... 어서 들어가자. 오빠 춥겠다. "
연희는 딸이 투정끼를 보이자 유진영과 함께 그녀를 서둘러 안으로 이끌었다. 소녀는
코끝을 훌쩍이며 유진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엄마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따스했고 뭔가 아늑한 기분이 느껴졌다. 연희는 그가 입고 있는 무스탕을
받아 한쪽에 놓고 유진영을 소파로 이끌곤 그녀도 그의 옆에 붙어앉았다. 그리고 젖은
애잔한 눈으로 유진영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말은 나오지
않고 결국엔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는 다시끔 유진영을 끌어안고
흐느끼며 울렀다. 집안이라서일까? 그녀는 마음놓고 한참이나 우는 듯 했다. 진아도
엄마의 슬픔이 딸에게까지 전염된 듯 엄마옆으로 옮겨와 그녀를 끌어안고 같이
훌쩍였다. 유진영은 그저 그런 어머니를 끌어안고 다독일 뿐이었다. 이제 그는
약간이나마 안정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운 연희는 그제서야 실 컷 운 듯 눈물을 닦으며 몸을 추스르렸다. 그리고
다시금 유진영을 바라보았다. 눈물젖은 눈이 여전히 애처롭기 그지 없었지만 그녀도
이제 어느정도 진정된 것 같았다.
"왜... 이제서야 온거니? 엄마가 보고싶지 않았니? 엄마 있는 곳을 몰랐던 거야? 엄만
이사도 않하고 여기서 계속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알려주지 않았니? 아버지가 못
가게 한거야? 그런거야? "
연희는 일단 마음이 진정되자, 자신이 궁금한 것을 연달아 물어보았다. 유진영은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기분이 씁쓸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모른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유진영은 자신도 모르게 왼손 인지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어머니의 사진과 함께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상자 속에 들어있던 그 반지였다.
연희도 자신의 아들이 만지는 그 반지를 보았다.
"아버지 결혼반지를 네가 끼고 있구나... 아버지가 주신 거니? "
연희는 자신의 남편 유경호가 아들을 자기에게 보낼 때 정표로 준 것인가 생각했다.
반지를 보자 남편이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잘 계시니? 어떻게 지내시니? "
유진영은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몰랐다. 그래서 머뭇거렸다. 하지만 마침내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저... 어머니...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 미안해요. 어머니가 충격을 받으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하지만 연희는 이미 어떤 불길한 예감을 느낀 듯 굳어지고 있었다.
"아버진.... 돌아가셨어요... 병으로.... 위암이었어요. "
연희는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석상처럼 굳어진 그녀의 망연한 두 눈에서 다시끔
눈물이 흘러내렸다. 충격이 무척 큰 듯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진아도
마찮가지였다. 그녀도 자기 엄마만큼이나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유진영은 두 모녀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유진영은 그들을 끌어당겨 자신의 가슴에 안았다. 모녀가 힘없이
끌려왔다. 유진영이 그들을 품에 안고 다독이자 그녀들이 마침내 서러운 오열을
터트렸다. 유진영은 더욱 꼭 그녀들을 끌어안았다. 이미 눈물이 그쳐버린 그의 눈에도
다시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모녀를 가슴에 안은채 유진영은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해서 자신은 어머니가 살아계신 줄 몰랐다고, 돌아가시기 직전 사실을 말해줘서
그때서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찾아올 수 있었다고..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듣자
작아지던 연희의 울음소리가 다시 커졌다. 유진영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오빠... 아빠가 나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
진아가 코를 훌쩍이며 유진영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유진영은 난감해졌다. 아버지가
진아에 대해서는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으니 해줄 말이 없는 것이다.
"네 아버진 진아에 대해서는 아마 몰랐을 거야.. 그렇지? "
유진영의 표정을 눈치챈 연희가 눈물을 닦으며 그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유진영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유가 궁금하다는 시선으로 연희를 바라보았다.
진아도 묻는 듯 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연희는 유진영의 얼굴에서 시선을 떨구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어린 진영이를 데리고 엄마를 떠났을 때, 진아는 엄마 배속에 있었단다.
그때는 이개월도 채 않 된 때라서 엄마도 몰랐어. 그러니 아버지도 모르는 게
당연하잖니.. "
그 당시 연희는 심적으로 매우 힘든 때였다. 그래서 생리를 한 달 거른 것 정도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남편이 아들까지 데리고 어느날 갑자기 편지 하나만 달랑
남기고 떠나버리자 절망해 멍해 있던 연희는 한참이 지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해서야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던 연희는 뱃속의 아기를 생각하곤
마음을 바꿨다. 아기까지 죽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운을 내고 살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진아는 연희에게 소중한 자식이자 고마운 존재였다. 진아 덕분에 연희는
죽지 않고 여때까지 그녀를 의지하며 살아왔고, 마침내 이렇게 잃어버렸던 아들과도
다시 만난 것이다.
연희는 그때 만약 남편이 자신이 진아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래도 자신을
떠났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였다.
아쉬워하고 안타까와 해보았자 소용없는 일이다.
유진영은, 아마 그럴 것이라 짐작하곤 있었지만 어머니의 얘기로 진아가 자신의
친동생임을 확인하게 되자 새삼 친근함이 느껴져 진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한편으로 궁금함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부터 가져온 궁금증... 바로, 아버지가 왜
어머니를 떠났을까...? 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그것을 물을 수는 없었다.
혹시나 그녀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지금
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 있는데....
한데, 진아 역시 그것이 궁금했었나 보다. 그리고 아직 어린 그녀에게는 유진영과
같은 사려가 없었나보다. 진아가 연희에게 물었다.
"...엄마.... 그런데 왜 아빤 엄마와 나를 버린거야? "
그녀의 물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다소 묻어있었다.
연희는 고개를 숙인 채 망설이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늘이 그녀에게는 눈물의
날인 듯 했다. 여태까지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도 잠시의 침묵 후 연희가 입을
열었을 때, 그녀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어조에는 서글픔이 가득했다.
"......모든게.....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나빳어....."
연희는 말을 하고 작게 흐느꼈다. 유진영은 의아함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는데 이제 어머니는 또 자신의 잘못이라고 한다-을 느끼며 손을 가져가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런다음 다음 말을 기다리며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연희는 자신의 눈물을 닦아준 아들의 손을 끌어당겨 허벅지 위에서 꼭 쥐었다.
그리고 호흡을 고르며 얘기를 시작했다.
"..원래... 너희들 아버지는 엄마의 오빠... 그러니까 너희들의 외삼촌의 친구였단다... "
.................
연희는 오빠의 소개로 아이들의 아버지 유경호를 만났다. 그리고 잘생기고
패기만만한 그 젊은 사업가에게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것은 유경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이 아름답고 청초하기 그지없는 아가씨에게 첫눈에 마음을 빼았겨 버렸다.
그 날 이후 두사람은 유경호의 바쁜 사정에도 불구하고 시간 날 때마다 만났고
어느덧 깊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 집안에서 반대를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에 속하던 연희의
집안 식구들은 홀홀단신 고아인, 이제 막 사업에 뛰어들어 기반도 불안하고 장래성도
확실치 않은 유경호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경호가 연희의 배경을
노리고 그녀와 결혼하려 한다며 그녀를 단념시키려 했다. 오로지 연희의 오빠만이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 결국 연희는 오빠의 도움으로 유경호와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친정식구들과는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한채, 아담한 두사람만의 보금자리를
꾸몄다.
한동안 연희에게 꿈과같이 행복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그녀는 유경호의 아이를
나았다. 사내아이였고 이름을 진영이라 지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아무런 걱정도 끼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다. 그리고 남편 유경호도 그동안 개발해오던 신기술이 이제 거의
성공에 다다라 얼마후면 그의 사업도 탄탄대로에 오를 것이 확실했다. 연희에게 그
때는 진정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아무런 걱정도 없고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는 한 때..
하지만 그 행복이 깨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행복을 깨뜨린 사람은 ............다름아닌
그녀의 오빠였다. 그녀가 믿었던 그리고 항상 고마워했던 바로 자신의 친오빠......
연희의 오빠는 그녀에게 이제 성공을 눈앞에 둔 유경호의 신기술 개발에 관한 서류를
빼내오라고 시켰다. 연희는 그런 오빠를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오빠가 자신에게
그런 짓을 시킬 수가 있을까? 연희는 배신감에 화를 냈고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거부했다. 하지만 그녀의 오빠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유경호의 생명까지도 장담할 수 없다고, 대신 자신의 말을 들으면 평생 먹고 살 돈을
주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래도 남편에게 이야기하려던 연희는 유경호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겁에질려 결국 오빠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연희의 오빠는 신기술을 빼앗은 후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농간으로 아직 특허를
취득하지 못한 유경호보다 먼저 특허를 따내 새롭게 사업을 확장했다. 연희는 이 일에
대해 친정 식구들에게 하소연했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딸의 처지를 가엽게 여겼다.
하지만 이미 모든 권한을 아들에게 넘긴 그들은 그녀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유경호의 부상은 다행히 심하지 않아 곧 회복되었다. 하지만 몸은 회복되었지만
그에게는 남은 것이 없었다. 사업은 결국 부도가 났고 그의 사업체마저도 결국은
처남에게 흡수되고 말았다. 다행이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손에는 한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처남이 선심쓰듯 던져준 십억 이외에는........
유경호는 당연히 그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배신감에 상처입은 그의 자존심이 그
돈을 받을 수 없게 했다. 그는 자신의 아내마저도 믿지 않았다. 절망이 너무 큰 나머지,
그런 의도를 가진 것은 연희의 오빠뿐이었지만 그는 연희마저도 애초부터 그녀의
오빠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업을 노리고 자신에게 접근한 것이라고 오해했다. 연희가
용서를 빌며 아니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날, 헤어지자는,
서로에 관한 것을 모두 잊자는 쪽지 하나만을 남긴채 그는 어린 아들만을 데리고
연희가 탈진해 잠든 틈에 떠나 버렸다.
남편이 떠나 버리자 연희는 반미치광이가 되어 남편과 아들을 찾아헤멨다. 하지만
어디로 잠적했는지 아무리 찾아헤메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만에야 겨우 미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기대를 안고 미국까지 쫑아간 그녀는 왠일인지
그곳에서도 남편과 아들의 찾을 수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흔적이 언제인가부터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유경호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미 죽은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이민 이세의 신분으로 자신의 이름 및 신분을 바꿔버렸다.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하게.. 자신의 과거를 영원히 버리기 위해서.....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라.. 그것이 미국인 것이다. 유진영에게도 물론
미국 이름이 있다. '질리언'이 그것이다. 성 또한 미국식 성인 파커였다. 나중에
유경호가 남의 성을 쓸 수는 없다며 차라리 미국식 성으로 바꿔버린 까닭이었다. 별로
의미없는 일일 수 있지만 한국인인 그에게는 충분히 이유있는 일이었다.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얘기를 듣기도 했다. 결국 연희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이후 진아를 낳고 기르느라 남편과 아들을 찾을 여유가 없게
되었다. 미국의 이민국에 계속 부탁을 해 놓기는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어떤 좋은
소식도 오지 않았다.
연희는 진아를 키우며 그저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살게 되었다. 오빠가 준 돈...
쳐다보기도 싫은 그 돈은 다시 돌려줘 버리고 싶었지만 그 돈 이외에는 한 푼도 없었던
연희는 갈등 끝에 결국 그 돈을 돌려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신의 대학때
전공을 살려 의상실을 차리고 여지껏 살아왔다.
...................
연희는 얘기를 끝내고 다시 흐느꼈다. 유진영은 한숨을 쉬며 어머니의 어깨를 꼭
안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진아도 울먹거리며 연희의 나머지 한쪽
볼을 함께 닦아주었다.
"..엄마... 그래서 엄마가 외삼촌을 그렇게 싫어한 거구나? 그런줄도 모르고......난
몰랐었어........ 외삼촌.... 정말 나쁜 사람이야! "
진아의 얼굴에 분개한 표정이 떠올랐다. 유진영도 마찮가지였다. 그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도 모르는 그 외삼촌이라는 사람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유진영은 연희가 가엽고 불쌍했다. 그녀도 피해자인 것이다. 아픈 상처를 안고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럽게 살아왔을까? 유진영은 가슴이 아팠다.
"마마? 그것은 마마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미 다 지난일이에요. 우리 다
잊어버려요. 그리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요. ...........아버지 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요...
아버지도 그걸 원할꺼에요. "
유진영은 자신의 품안에서 훌쩍이며 눈물을 그치지 않고 있는 어머니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이제 우리 같이 살아요 마마. 내가 아버지 몫까지 마마를 행복하게 해 줄께요. "
사실 이곳에 올 때까지도 유진영은 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지만 그에게 어떤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은 자연스럽게
나왔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연희는 슬픈 가운데에서도 함께 살자는 아들의 말을 듣자 -물론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기쁨으로 차오르고 든든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세월이란 그런 것인지 십여년이 흐르는 동안 남편에 대한 생각은 점차 드문해지고
이제는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스런 아들, 그 귀여운 아기에
대해서는 결코 잊을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문득문득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아들 때문에 흘린 눈물이 얼마인지 몰랐다.
혹시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녀를 더없이 고통스럽게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결코 그럴 리 없다며 자신의 아들은 반드시 살아있다고,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다짐하며 그 불길한 생각을 흩어버렸다. 최근까지도 그녀는 악몽을 꾸곤했다.
꿈속에서 자신의 어린 아들이 자신을 찾으며 울고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아들을
부르며 깨어났고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깨어난 그녀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울며 밤을 지새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그리워하던 아들이 이제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이다. 연희는 가슴가득 뿌듯함과 안도감을 느끼며 자신의 바로 눈 앞에
있는, 역시 유진영의 한쪽 어깨에 기대어 있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 진아의
눈에도 기쁨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마마? 그런데, 어떻게 한눈에 절 알아볼 수 있었어요? "
유진영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그리고 사실 조금 궁금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연희에게 물었다. 자신은 어릴 때 연희와 헤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커서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아니 많이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어릴때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자신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연희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내가 널.. 내 아들을 못 알아볼 수 있겠니...?
"....으응......엄마는...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어......"
연희의 이 말은 사실이었다. 연희는 항상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꿈꿔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뜰때마다 그녀는 오늘은 아들이 문을 열고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몰라 하고 소망해
왔었다. 그런데 그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비록 자신의 상상속의 아들은 아무리
커보았자 꼬마 어린아이였는데 실제로 온 아들은 이미 건장하게 성장한 소년이라는
것이 달랐지만... 그 외의 것으로는 남편과 무척이나 닮은 얼굴도 들 수 있었고.....
유진영은 믿기 힘들겠지만 어릴때의 모습도 찾아낼 수 있었고.... 또 여자의 육감도 한몫
했을 것이다. 아들을 느낄 수 있는.......
유진영은 잠시 어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떻게 알고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곧,
아마도 어머니가 매일같이 자신을 기다려 왔다는 의미인가 보다고 이해했다. 유진영은
기쁨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때 유진영의 배가 갑자기 '꼬르륵' 하는 소리를 냈다.
"어머!... 진영이 배고프니? "
연희는 약간 당황한 듯 유진영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벌써 다섯시를 넘기고 있었다.
"내 정신 좀 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데 진영이가 시장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네. 가만있자..."
연희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서둘러 부엌으로 향하다가 멈춰서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 했다. 허둥지둥. 그녀가 서두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엄마 시장에 좀 다녀올게. 금방 갔다와서 맛있는거 만들어 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마.. 어머니 저 별로 배고프지 않으니까 서두르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그냥 대충
만들어 주세요. "
유진영은 실제로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배에서 난 소리는 배가 고파 난 소리가
아니라 그냥 난 소리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렇게 서두르니 난처해졌다.
"아냐 아냐! 엄마가 맛있는거 만들어 줄게. 시장이 집에서 가까우니까 금방 갔다올 수
있어. ...진아야, 너는 오빠랑 얘기하고 있어? 오빠 과일도 좀 깍아주고? "
"응, 엄마.."
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지갑을 가지고 나와 서둘러 현관으로 향했다.
"엄마! 세수하고 가야지! 울보얼굴로 나갈꺼야? "
"어머! 내정신 좀 봐! "
진아의 만류에 연희는 얼굴을 만지며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데 세수하고 나온
연희를 진아가 또 붙잡았다.
"엄마! 밖에 추우니까 밑에 내복 입고가. "
"응 응, 그래.."
연희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유진영은 그저 멍하니 모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방을 나온 연희는 다시 현관으로 향했다.
"엄마 금방 갔다올게? "
진아가 그때 진영의 무스탕을 들고 쫓아갔다.
"엄마! 오빠꺼 이거 입고 갔다와. 따듯할 거 같애. "
"그럴까? "
"예, 어머니. 입고 갔다 오세요. "
연희는 무스탕을 받아 입었다. 무겁고 컸지만 연희는 그냥 입고 현관을 나섰다.
"그럼 엄마 갔다온다? "
"조심해서 갔다와, 엄마. "
연희는 대문을 나서며 시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연희는 무스탕에서 아들의 체온이 남아 느껴지는 듯했다. 따듯했다. 연희는
옷속에 고개를 묻고 숨을 들이쉬었다. 옷은 새것인 듯 가죽냄새와 약품냄새가 심하게
났지만 희미하게 아들의 체취도 느껴졌다.
'그래! 이제 기운을 내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
남편의 죽음은 그녀에겐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아들만 자신의 곁에 있어준다면
연희는 슬픔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용기를 내서 앞으로는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야지... 그동안의 상처를 서로 어루만져주고 아픔의 시간들을
보상해야지....
연희는 눈을 맞으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4.
둘만이 남게된 거실에서 유진영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과일을 깍고 있는 진아를 흘끔
바라보았다. 어쩐지 약간 어색했다. 연희에게는 이런 어색함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처음
본 순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안긴 순간 마치 빨려들어가는 듯한 강한 끌림을
느꼈었다. 그런 것이 어머니의 느낌인 것일까? 그녀에게 수용되어 그녀안에 녹아버리는
듯한 느낌.... 근데 눈앞의 이 소녀에게는, 무척이나 예쁘고 귀여운 아이이고 또 자신의
여동생이기에 친근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약간 어색한 것도 사실이었다.
유진영이 진아를 쳐다볼 때 마침 진아도 유진영을 힐끔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얼른
다시 시선을 내리며 계속 과일을 깍았다. 춥지도 않은데 그녀의 볼이 살짝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오빠.... 먹어. "
진아가 과일을 잘라 포크로 찍어 유진영에게 내밀었다.
"아... 고마워..."
유진영은 받아먹는다.
진아는 접시를 밀어놓고 무릎위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시선만 들어 유진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하더니 잠시 다시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오빠? ............아빠는 어떤 분이셨어...? "
어린 소녀에게 아버지에 대한 궁금함도 그리움도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진아의
애처로운 눈빛에 유진영은 가슴이 아렸다.
"...자상하고 ......좋은 분이셨어.... "
진아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점차 그녀의 어깨에 떨림이
일고 마침내 '흑' 하고 흐느끼며 손으로 눈을 훔쳤다.
"..힝.... 아빠는 내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을 꺼야. ....너무해..... "
유진영은 훌쩍거리는 진아가 가여웠다. 진아의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녀를 가슴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었다.
"아버지도 이제 하늘나라에서 진아가 있다는 걸 알았을꺼야. ...그리고...무척이나
진아에게 미안해 하고 계실 꺼야... "
진아는 유진영의 가슴에 기댄 채 훌쩍이며 말이 없다.
"....이제부터 오빠가 아버지 몫까지 진아를 많이 사랑해 줄게.. ..응?...그러니까 울지
마... "
"...(훌쩍).....정말....? "
"정말. "
"....흐응~....약속....."
진아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유진영도 새끼손가락 내밀어 진아의 손가락에 걸었다.
오른손가락 대 왼손가락이라 어째 좀 어색했지만 어쨌든 약속이 되었다. 진아의
훌쩍임이 점차 잦아들었다.
진아는 유진영에게 안긴 채로 이제는 자신의 등을 토닥이고 있는 유진영을 힐끔
올려다 보곤 또 얼른 시선을 내렸다. 진아는 내심 콩닥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아무리 오빠라지만 오늘 처음 본 남자의 가슴에 안겨 울고
달래지기까지 한 것이다. 그것도 아까와 지금 두 번씩이나.... 두근거리는 그녀의 작은
가슴은 쉽게 진정될 수 없었다.
진아는 다시 한 번 살며시 시선을 들어 유진영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잠시동안
바라보았다. .......멋있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진아는 오빠가 자신이 상상했던 것
만큼이나 멋진것에 기분이 좋았다. 시선이 마주치고 자신을 향한 유진영의 미소에
또다시 얼른 고개를 숙여 버리고 말았지만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감돌았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오빠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부터 오빠는 엄마에게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기다림의 대상이 되었다. 유난히 이쁘장한 게 죄라고, 진아는 어릴
적 도맡아서 남자아이들의 짖궂은 장난과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하루는 -물론
그날도 실컨 괴롭힘을 당하고 돌아와- 울며 엄마에게 나쁜 애들 혼내주게 나도 오빠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너도 사실은 오빠가 있어라고
말해 진아의 큰 눈을 더욱 둥그렇게 만들었다. 엄마는 진아가 말잘듣고 착하게
생활하면 오빠가 진아를 보러 올거라고 했고 진아는 그때부터 멋지고 힘센 오빠가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는 못된 애들을 혼내주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아무 소용도
없고 더 놀림당하기도 했지만 괴롭히는 애들에게, 자꾸 까불면 나중에 우리 오빠한테
혼날거라고 얼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진아에겐 오빠가 동화속의 왕자님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진아가 달콤함에 빠져 있을 때 유진영이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어머니는 혹시... 재혼 생각.. 있으시니? 만나는 사람... 그러니까
남자친구라든가 애인이라든가... "
순간 진아가 유진영의 품에서 발딱 떨어졌다. 유진영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진아가 그렇게 갑작스런 반응을 나타내는 바람에 그도 그만 감짝 놀라고 말았다.
"??? "
진아는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유진영을 쳐다보다가 이내
크게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얼굴에 분개한 빛을 띄었다.
"오빠!! 엄마를 도데체 어떻게 생각하는거야?! 어떻게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
"..저... ..아니... 난 그저..... "
유진영은 예상치 못한 진아의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영문을 모르겠어 의아해했다. 미국의 환경에 익숙해 있는 그로서는 한국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독점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혼은
다반사다. 그리고 재혼또한 다반사다. 재혼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보이프랜드 한두명
정도는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머니는 십여년이나 아버지와 헤어져 있었는데 그간에
새로운 애인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게 잘못인가?
"...저기.. 어머니는 미인이고 아직 젊으시니까....."
"우리 엄마는 고결해. ..남자따윈 필요없어. ..엄만 나만.... ..나하고 오빠만 있으면 돼.
"
진아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설마 ....머더컴플렉스인 것일까? 하고 유진영은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아이인데...?
유진영은 약간의 당혹을 느꼈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를 진정시키고 봐야 했다.
"그래....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사과할게. "
유진영은 얼굴에 힘들게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유진영의 사과에 진아의
씩식거림은 곧 가라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유진영을 째려보았다.
유진영은 그런 진아앞에서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한테도 사과해. "
진아가 갑자기 툭 내뱉었다.
"...응??....... 아......그..그래.. "
어머니 한테도 사과하라고? 유진영은 난감했지만 어쨌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유진영을 보던 진아가 다시 내뱉었다.
"그냥 사과만 해. 이유는 말하지 말고. "
"......응.... 그래...."
"좋아! 이번만 용서해 줄게. 하지만 한번만 더 그런 소리 했단 봐? 오빠라도 국물도
없을 줄 알아. "
"...알았어.... "
진아의 얼굴이 비로소 풀어졌다. 유진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진영은 자신은 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이라고
대답하지만 어쩌면 자신도 어머니가 애인 같은 것이 없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영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오빠.. ...그런데 있잖아 오빠~...? "
진아가 어느새 자신의 옆에 다시 붙어앉아 소매자락을 쥐고 살살 흔들어 유진영은
진아를 바라보았다. 이제 원래의 표정을 되찾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수줍은 미소와
함께 어떤 기대같은 것이 감돌고 있었다.
"..응? 왜? "
"..저기.. 오빠 힘 쎄? "
"??? "
유진영은 진아의 뜻밖의 물음에 의아해하며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그녀의
눈을 쳐다봤다.
"으응? 힘 쎄냐고...?
"..글세...? 나도 남자니까 어느정도는....... "
진아의 작은 손이 유진영의 이두박근으로 올라가 근육을 만졌다.
"와아! 딴딴하다! 오빠. 알통 한 번 해봐. .....으응?....알토옹~... "
진아가 코먹은 소리로 하는 애원에 유진영은 팔을 구부리며 근육에 힘을 주었다.
옷위로 이두근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진아가 양 손으로 둘레를 감싸 봤지만 그녀의
작은 손으로는 결코 다 감쌀 수 없었다.
"우와아!!!! 오빠 쌈 잘하겠다. 그치? "
"......... "
싸움이라... 싸움은 아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느정도 하긴 한다. 문득 유진영은
자신이 사부라고 부르던 과일가게 아저씨를 생각했다.
그는 유진영의 아버지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중년 남자로 유진영의 집이 있는
한인촌에서 유진영이 그곳에서 살기 시작한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안동 청과'라는
과일가게를 하면서 살아왔다. 미국으로 건너온 건 그의 아버지대였다는데 아저씨의
아버지는 당시 그 세계에서 알아주는 무술가였지만 무엇인가 아저씨도 아직 모르는
이유 때문에 고국을 등졌다고 했다. 아저씨의 아버지는 지금 로키산맥의 어느 깊은
곳에서 홀로 수도를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유진영은 그를 어렸을적에 딱 한 번 본
기억이 있었다. 한데, 아들인 그가 자신의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은 사랑에 빠졌었기
때문이란다. 자신의 아내가 된 여자는 결코 그런 생활을 할 수 없었고, 해서 할 수 없이
도회지에서 살게 되었다나? 무술도장을 차리지 않은 것은 함부로 제자를 기르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었고 배운건 무술밖에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무술밖에 없는
그로서는 장사가 그래도 제일 만만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과일가게를 차리고
여직껏 살아왔다는 것이다. 하여튼 아저씨의 실력은 대단해서 그의 가게가 있는
거리에는 갱들도 감히 얼씬거리지 못했다.
어쨌든 유진영과는 한 동네에 살다보니 친해지게 되었고, 어느날 그가 어린
유진영에게 재미삼아 한두가지 기본기를 가르쳤는데 유진영이 곧잘 따라했다. 그러자
그는 상당히 신나하며 유진영에게 자신을 사부라 부르게 하고는 본격적으로 유진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진영도 무술을 배우는 게 싫지 않아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유진영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점차 학년이 올라가게 되면서 시간부족으로
자연히 무술수련에 소홀해지게 되었다. (사실 소홀해졌다기보다는 그가 시키는 수련의
시간적 비중이 너무 커 학교를 다니면서는 도저히 다 해낸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자 사부는 안달하며 이제 비인부전의 비기를 수련할 차례인데 이래서 어떡하냐며
유진영에게 무술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가를 정말 밤새도록
이해시키려하고 유진영이 무술수련에 전념하도록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는
무술가에게 학교따위는 필요없다고, 자신과 함께 -어쩌면 그자신이 그동안의 자신의
인생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속으로 들어가자고까지 했다. 유진영은
사실 무술가의 인생을 살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무술을 수련해 온 건 그저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부의 간절한 애원에 마음이 흔들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앞으로의 생계가 걱정이라면 걱정말라.
무술을 다 배운 후 네가 다시 속세로 나와 살고 싶다면 내 '과일가게를 물려주겠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코.... 과일가게 주인은 그의 인생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 * 앞 문장에 대해 본인 혹은 가족 또는 친지께서 청과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게
죄송합니다. 하지만 청과업하시는 분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결단코!
절대로!! 정말로!!! 없습니다. 맹세합니다. 그저 작가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유진영이란
인물의 생각이 그렇다고 생각해 주시고 제발 폭탄같은 것은 던지지 말아주세요. 만약
윗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메일을 받게 되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
유진영은 사부에게 자신에게는 다른 꿈이 있다고, 무술만 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절망하는 듯한 사부의 모습에 내심 마음이 찔금했지만 유진영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단호한 표정을 고수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직 여가시간만을
이용하여 무술 수련을 했다. 항상 자신을 바라보는 사부의 애처로운 눈길에 속으로
씁슬한 미소를 지으면서....
만약 사부에게 이제 한국에서 살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정말로 충격받을 텐데... 유진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싸움은 왜? "
"오빠 이제부터 진아 보디가드 해야 할텐데 싸움 잘 해야 할것아냐. "
진아가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보디가드? 누구 널 위협하는 사람이라도 있니? "
유진영이 약간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남자애들 말야.... "
진아는 약간 수줍게 대답했다. ...남자애들... 그것들이 문제다. 남자애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녀를 괴롭힌다. 단지 예전에는 괴롭히며 못살게 굴던 것이 이제는
쫓아다니며 귀찮게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만.... 하지만 짜증나고 불쾌하기는
마찬가지다.
"남자애들이 뭐? "
"막 쫓아다니며 귀찮게 한단 말야. ......오빠가 그런애들 혼내서 쫓아버려야지.. "
뭘 그런 걸 갖고.... 유진영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남자친구들하고도 친하게 지내야지. 데이트도 많이 하고.... "
진아는 끔직한 소리라도 듣는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싫어!! 말도 않돼!! "
"............... "
"남자애들... 불결해! 난 싫어! ....데이트같은거.... 그런거 난 절대로 않해! ....오빠 빨랑
약속해. 진아 귀찮게 하는 애들 혼내준다고. "
이해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저 나이쯤 되면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에 열을 올리는데..
"빨랑 약속해애~ "
진아의 떼거지에 유진영은 별 수없이 손가락을 걸어야 했다.
머더 콤플렉스에 남성 혐오증까지.... 어쩌면 힘든 아이일지도..... 유진영은 내심 약간
불안해지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5.
유진영과 진아가 한참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사실은 진아가 쉴새 없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유진영은 그저 간간히 대답만 하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엄마 왔나봐!"
진아가 발딱 일어나서 인터폰으로 달려갔다.
"엄마야?.....으응~ "
진아는 곧바로 버튼을 누르고 현관 밖으로 포르르 달려나갔다. 현관 밖에서 모녀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유.. 무거워서 혼났네.. "
"엄마, 이렇게 많이 살거면 진아랑 같이가지. "
유진영도 현관까지 마중나갔다. 모녀가 하나씩 커다란 비닐봉투를 양손으로 들고
들어서고 있었다. ......뭘 저렇게 많이...... 유진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모녀는 현관에서 털썩 봉투를 내려놓았다.
"어휴... 엄마 이거 혼자서 어떻게 들고왔어? "
손이 아픈 듯 쥐었다 폈다하며 진아가 말했다.
"제가 들여 놓을께요. "
유진영이 비닐 봉투 두 개를 집어들었다.
"응. 저어기~ 부엌에다 부탁해. "
무게를 거의 느끼지 않는 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유진영을 보며 진아가 엄마에게
조잘댔다.
"엄마! 오빠 힘 정말 세다. 그지? "
"응. 그러네? "
연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모녀가 뒤따라 부엌으로 향했다.
유진영은 뒤따라온 모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연희의 뒤에서 진아가 유진영에게 새삼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눈짓을 했다. 아!... 유진영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결국
해야 돼나? 유진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지만 어쨋든 연희에게 사과했다.
"저.. 어머니? 죄송해요. "
"응? 뭐가? "
연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띈 채 유진영을 바라보았다. 유진영이
우물쭈물하자 진아가 얼른 끼어들었다.
"그런게 있어, 엄마. 그보다 얼른 요리만들자. 진아도 도와줄게. 우웅.. 진아도
배고파요. "
"그래... 진영인 그럼 준비하는 동안 목욕할래? 비행기 타고 오느라 피곤하지? "
"예.. 그럴께요"
"진아야. 우선 야채 좀 씻어놓고 있어? 엄만 오빠 목욕 준비 해 주고 올게. "
"응, 엄마. "
연희는 유진영의 손을 잡고 욕실로 안내했다. 탈의실에서 안으로 연결된 유리문을
열자 커다란 욕실이 나왔다. 적어도 두세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크기의 욕실......
개인 주택에 있는 욕실 치고는 무척 크다.... 유진영의 생각이었다.
(유진영이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집은 일본식의 꽤 오래된 집을 개조한 것이었는데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욕실이 큰 것이었다. )
연희가 한쪽모서리에 있는 커다란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유진영은 설마 그게
욕조라고는 생각치 못하고 연희의 행동에 의아해 했다. ...저렇게 큰 데다 물을 받아서
뭐하라는 걸까? 얼마 쓰지도 않을 거고 받아쓰는 것보다 그냥 샤워하는게 더 편한데.....
"저.. 어머니. 저 그냥 간단히 샤워만 할꺼예요. "
"아냐. 엄마가 물 받아줄 테니까 탕에 들어가서 제대로 해. "
앗! 저 안에 들어가라고? ..설마 저것이 욕조?.. 하지만 저렇게 큰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하면 물 낭비가 너무 심할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유진영은 그냥 연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자.. 다 다다. .........가만.. 진영이 목욕하고 난 다음에 뭘로 갈아입지? .......엄마가
아버지 옷 찾아서 가져다 줄테니까 씻고 있어?
연희가 욕조에 온도를 맞추며 더운물을 가득 받고 난 다음 유진영에게 말했다.
"예...."
연희가 밖으로 나가고 유진영은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목욕용품이 있는곳으로 다가가 이것저것 들어보다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없네.....'
유진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밖을 향해 연희를 불렀다.
"어머니!!......."
한 번 더 부를까 할 때 탈의실로 연희가 들어서며 진영에게 물었다.
"진영아. 왜? "
"...저 비누가 없어요. "
"응?.. 비누 거기 있잖아.. 찬장에도 새 비누 많이 있고... "
유진영은 한 쪽 벽에 붙어 있는 투명한 찬장을 쳐다보았다. 물론 세수비누가 여러개
있긴 했다. 하지만 유진영이 찾는 건 그게 아니었다.
"... 저기 그 비누 말고요, ....거품비누요. "
........거품비누???.... 연희는 순간 영화에서 보던 목욕장면이 생각났다. 맞아!
외국에서는 욕조에다 잔뜩 거품을 내서 목욕하지? 연희는 다음 순간 그만 참지 못하고
'쿡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유진영의 말에 옛날 일이 생각나서였다.
저녁을 먹고 꼬마였던 진아를 먼저 욕조에 담가놓고 설거지를 하고 욕실로 들어왔을
때 연희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진아가 욕조를 온통 거품투성이로 -그것도
세수비누를 사용하여-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TV에서 봤던 걸 저도 한 번
흉내내본 것인 듯 했다. 머리에 거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우스워서, 그리고
세수비누를 사용해 그렇게 만들어논 노력이 측은해서 결국 엉덩이 한 대의 가벼운
체벌로 끝났지만 어쨌든 연희는 두 번다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줬다. 하지만
한동안 그일이 떠올라 웃곤 했었는데 그것이 지금 다시 생각난 것이다. 그 후 진아가
좀더 커서 연희에게 다시 거품목욕 한번 해 보자고 졸라댄 적이 있었지만 물을 너무
낭비하게 된다고 연희는 허락하지 않았었다.
'왜 웃으시는 거지? '
유진영이 불안해 할 때 연희가 웃음을 멈추고말했다.
"저기.. 그 비누는 없어. 그냥 해. ......일단 비누칠 한 번 하고 씻은 다음에 탕안에
십오분쯤 들어가 있다가 나와서.. 거기 벽에 보면 빨간 수건 있지? 그걸로 깨끗이 닦아.
그다음 다시 한 번 비누칠 하고 ......그리고 다른사람도 써야 하니까 탕안에서 때밀면
않돼? "
연희는 친절히 목욕법을 가르쳐 주었다. 마지막에 다시 웃으며.....
연희가 나가고 나서 유진영은 시킨대로 우선 비누로 몸울 닦았다. 하지만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이었다.
'다른사람..... 결국 마마나 진아가 다시 저 물을 사용한다는 얘긴데... 찝찝하지
않을까? 어쨌든 최대한 깨끗하게 사용해야겠다. '
샤워를 마치고 유진영은 욕조 가득한 더운물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우..... 좋은데. '
조금 뜨겁다 싶을 정도의 더운물이 무척 기분 좋았다. 그리고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호사스럽게 느껴져 뿌듯했다.
'하긴 큰 집에 사는 사람들중엔 이렇게 커다란 욕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했지 아마... '
유진영은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좋게 수욕을 만끽했다. 그러다 그만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
...........진영아! 진영아? "
"예! 마마. "
유진영은 황급히 대답했다.
"..이거 아버지 잠옷인데 여기다 놓을게. 목욕 끝내고 갈아입어? "
"...예. "
"그래.. 빨리 하고 나와서 밥먹자. "
"예.. "
연희가 다시 나가고 유진영은 서둘러 욕조에서 나왔다.
빨간 수건!! 연희가 말한 빨간 수건을 만졌을 때 유진영은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사실 그 수건은 때수건 중에선 그래도 비교적 부드러운 것에 속했다)
'..마마도 참..농담을 하고.. 이런걸로 닦았다간 피부가 다 벗겨지겠다. ...가만 있자
스폰지가.... 아! 여기 있다. '
유진영은 스폰지에 비누를 묻혀 닦고 물로 씻은 다음 탈의실로 나왔다. 몸의 물기를
제거하며 보니 바구니 안에 연희가 가져다 놓은 옷이 보였다. 남자 잠옷이었다.
유진영은 그옷을 입고 탈의실을 나왔다.
집안에는 온통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다. 유진영은 식욕이 동하는 것을 느끼며
식당으로 향했다.
"진영아, 어서 와서 앉아. "
유진영을 식탁으로 부르고 연희는 다가오는 유진영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아버지 잠옷이 하나도 않 크네... "
새삼 아들의 성장을 다시한 번 느낀다. ....아직 어린데 얼마나큼 더 클까?.... 앞으로의
성장이 궁금하기도 하다.
유진영이 앉은 식탁 위에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그 양에 질릴
정도로........
유진영은 미국에 있을 때, 익숙해 있었기에 혼자서 하는 식사에 대해 쓸쓸하다던가
하는 느낌은 없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위해 어머니가 차려준 식탁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니 가슴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묘했다. ...낮선 감정....... 이런걸
행복이라고 하나..?
하지만 한편.........
'굉장하다..... 그새 이 많은 요리를 만들다니.... 하지만 다 먹을 수 있을까? '
.........내심 두려움도 느껴졌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정성껏 만든 음식을 남기기도
그렇고.......
"자.. 어서 먹어. "
유진영의 앞에 밥과 국을 놓아주며 연희가 말했다.
"어서 먹어봐, 오빠. 맛있을 꺼야. 우리 엄마 요리 되~게 잘한다? "
유진영은 미소지으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유진영이 불고기를 집어먹을 때 연희가
물었다.
"고기를 미처 재놓지 못했었는데 먹을만 하니? "
"....네..... 아주 맛있어요. "
"그래? 다행이네.. "
"오빠, 오빠, 이것도 먹어봐. 이것 진아가 만든 거다? "
유진영은 그것 -무슨 볶음인 것 같다. 확실히는 모르겠고-을 집어먼었다.
"어때? 맛있어? 맛있어? "
진아가 칭찬에 대한 기대에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물었다.
"..아!... 아주 맛있는데? "
"정말!? "
사실은 조금(?) 짰다.
"자.. 많이 먹어. 오빠 위해서 만든 거니까 오빠 다 먹어도 돼. "
진아는 아예 접시를 유진영의 바로 앞으로 옮겨 버렸다.
...........하하........... 이런.....T_T.....
"아.... 고마워........ 저 어머니.... "
"응? 물줄까? "
연희가 다 안다는 얼굴로 미소지으며 유진영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유진영은 물컵을
비우고 전투에 임하는 심정으로 우선 진아의 요리부터 달려들었다. 그런 유진영의
모습을 진아는 얼굴가득 기쁜 미소를 띄우고 바라보았다.
마침내 진아의 요리를 다 처리하고 유진영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진아의
요리는 하나가 더 남아있었다. ....찌게도 아닌 것이 조림도 아닌 것이... 보기에도 두려워
보이는 시뻘건 음식이었다. 유진영은 애처로운 눈길로 연희를 바라보았다. 연희도
안타까운 눈길로 유진영에게 미소지었다.
'미안해.. 내가 옷 가져다 주러 갔다 온 새 벌써 고추장을 부어 버렸지 뭐야... '
연희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 유진영은 물을 정말 많이 마셔야 했다.
"오빠 물 엄청 마신다. 목욕해서 갈증 많이 나나봐. "
진아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 식사는 어떻게 했니? 밥차려주고 집안일 해주는 사람 있었니? "
유진영의 밥먹는 모습을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다 연희가 물었다.
"........아뇨...... 에러멘터리 스쿨에 다닐 때까지는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주니어
하이부터는 제가 직접 만들어 먹었어요. "
유진영이 밥을 먹으며 대답했다.
"네가!? 네가 직접 밥을 했단 말야? "
"...밥은 않하고요.... 시리얼이나 빵을 먹었어요. 가끔 스테이크도 먹고요. 포장되서
나오는게 있거든요. 조리해 먹기 쉽게.... "
"세상에............."
연희는 차마 말을 있지 못햇다. .........내 아이가.... 따듯한 밥 한끼 제대로 못 먹고
겨우 그런거나 먹으면서 커왔다니..... 서럽고 가슴이 아렸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자라준 아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연희는 메이는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빨래나 집안 청소는? "
"그것도요. 집도 작은 편이고 빨래도 저 혼자것만 하면 되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저도 그편이 편하고요. "
".......네 아버지는 집안일 않했니?....... "
"아버지야 어쩌다가 들어오시는 걸요. ... 아버지가 오실땐 외식하고 그랬어요. "
".........어쩌다가 들어오셔? ............왜?..... "
물어보는 연희의 표정은 의심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혹시 그이에게 미국에서
새로운 여자가 생겼던 것일까?........ 유진영은 그런 연희에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쁘셔서 거의 회사에서 먹고자고 하셨거든요. "
".....그래....? "
연희의 표정에 안도의 기색이 나타났다.
'........하지만... 너무했어....... 내게서 뺏어가 놓고선...... 무책임하게... 어린 아이를
그렇게 혼자 방치해 두다니...... 내가 길렀으면 정말 잘 돌보아 주었을 텐데..... 당신
그일만큼은 나에게 원망을 들어도 할말 없어요.. '
연희는 내심 남편의 무책임함을 원망했다.
"아버지가 생활비하고 용돈은 충분히 주셨니? "
"..마켓 카드가 있으니 생활비는 필요 없고요. 용돈이야 스스로 벌어서 써야죠. "
"??네가 벌어서 써? 네가 벌써 ...'일'..을 했단 말야? "
연희가 놀라며 물었다. .....이 아이가 벌써 일을 해? 아직 어린데? 도데체 무슨
일을?... 연희는 놀랍고 혼란스런 심정이었다. ...이사람.. 아무리 바빴어도 그렇지...
도데체 아이에게 관심이 있기나 했던거야?
"오빠, 오빠, 무슨일 했는데? "
진아가 먼저 선수쳐 물었다.
"그래, 무슨일 했는데? "
연희도 물었다.
"잘 아는 아저씨 과일가게를 가끔 도와드렸어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어요. "
체력단련. 훈련의 일환이란 명목하에 유진영은 사부의 가게에서 창고정리 및 힘쓰는
일을 간혹 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니 만큼 당연히 유진영은 노동의 대가를
요구했고, 사부는 '너 자신의 단련을 위해 하는 훈련인데 무슨 돈을 달라고 하느냐'며
펄쩍 뛰었지만 결국 유진영의 강력한 요구에 져 일당을 지불해 주었다. 용돈으로
쓰기엔 충분한 액수였다. 유경호는 그 일을 유진영에게 듣고 바람직한 일이라며
칭찬했고 유진영도 용돈을 스스로 벌어 쓰는 것이 좋았다. 그 이후 유진영은 유경호와
합의하에 용돈받는 것을 중단했다. 하지만 돈에 쪼들리는 일은 없었다. 유진영이
이용하는 대형 마켓에는 필요한 모든 물건이 있었고 그 카드 사용대금 결재는 아버지가
했다. 일하고 받는 돈도 충분한 액수이고..... 유경호 사후에 김변호사가 유진영에게
신용카드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의했을 때도 유진영은 그렇듯 금전적으로 아쉬움이
없었기에 필요치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올 때 그만 김변호사의
강력한 주장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온 것이다. 그것도 한두개도 아니고 다섯
개씩이나... 그중 두 개는 유진영으로선 처음보는 금박을 입힌 번쩍번쩍 빛나는
것이었다.
"멋지다, 오빠! 으응~... 진아도 아르바이트 하고 싶어.."
연희가 그런 진아를 째려본 후 다시 유진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
자신의 보살핌 없이 자라온 아들이 불쌍하고 애틋한 마음에 연희는 아이가 마치
앵벌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유진영은 그런 연희에게 미소를 지었다.
"제 또래들 대부분 그렇게 일해서 용돈벌어요, 어머니. "
".....그래도... 이제부터는 일같은거 않해도 돼. 엄마가 용돈 많이 줄게. ...학생일때는
무엇보다도 공부에 전념해야지. "
유진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자신을 염려해서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진아 너도... 아르바이트는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그때까지
하고싶어도 참아. " '쪼그만게 무슨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아앙~.......... 대학 갈때까진 삼년이나 더 있어야 하쟎아.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싫어어~ "
진아가 몸을 흔들며 떼를 썼다. 하지만 연희가 엄한 얼굴로 한번 째려보자 입술을
삐죽거리며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유진영은 그런 진아를 미소를 지으며 보곤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기 끝났을 때 유진영의 배는 올챙이 배처럼 뿔룩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차마 남길 수가 없어서 다 해치운 것이다. 식사중 연희는 자신의 식사는 잊어버린 채로
유진영의 먹는 모습만을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며 '많이 먹어'하며 기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유진영은 더욱 더 열심히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난 지금 숨쉬기도 힘들었으나 기분만은 뿌듯했다.
식후, 연희와 그녀의 아들딸은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연희가 유진영에게 묻고 들었다. 그녀는 때론 웃음짖고 때론 안타까와
하며 유진영의 이야기에 몰두했다. 세 가족 모두가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벽시계가 열시를 알렸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다네........진영이 피곤하지?....... 이제 그만 자러갈까? "
연희가 .....하지만 어쩐지 약간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앙~ 싫어~ 나 오빠랑 좀더 얘기할래~ "
"오빠 먼데서 오느라 피곤하단 말야. 쉬게 해줘야지. 그리고 내일 계속 얘기해도
되쟎아. "
"그래도...... "
하지만 진아는 연희의 엄한 눈길에 시무룩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오빠 방에 데려다 주고 올테니까 너 먼저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고 있어........
....어서!...... "
연희가 아쉬운지 꿈지럭거리는 진아의 엉덩이를 치며 내몰았다. 진아는 연희의 손에
쫑기듯 달아나다 돌아서 엄마를 보며 투정을 부렸다.
"엄마 미워! 엄마만 오빠랑 얘기하고... 진아는 별로 얘기도 못했는데..... 내일은
나혼자만 오빠랑 얘기할 거야! "
그리곤 다시 후다닥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저게....... "
연희가 진아의 뒷모습을 째려보다 유진영을 바라보며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 ...오냐오냐하면서 키웠더니 버릇이 없어. "
"뭘요. 귀여운데요 뭐. "
연희는 유진영을 보며 '후후' 미소짓곤 유진영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자.. 가자. 엄마가 네 방 안내해줄게... "
'...내방...? '
유진영은 연희에게 손을 잡혀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는 방이 세게 있었는데
연희는 그중 하나의 방 앞으로 유진영을 데리고 갔다.
"자... 열어봐. "
방문앞에서 연희가 유진영에게 말했다. 유진영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연희가 얼른 스위치를 켜자 형광등이 켜지며 곧 방안 풍경이 드러났다.
방안은 심플하고 갈끔했다. 한쪽엔 침대, 한쪽엔 옷장, 그리고 다른 한쪽엔 책상과
책이 가득한 책장이 있었다. 벽에 그림과 달력도 걸려있고.... 방치해 두고 있던 방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방안은 마치 현재 누군가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깨끗했다.
'혹시... 진아 방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 방인가? '
"네방이야.. 마음에 드니? "
"....제방요? "
"응. 네방. 엄마가 나름대로 꾸민다고 꾸미긴 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맘에
안드는 거 있으면 말만 해. 엄마가 바꿔줄게. ....아니.. 진영이는 직접 꾸미는 걸 더
좋아하겠구나. 참! 그러고 보니 침대가 작겠네... 바꿔야 되겠다... ...후후... 엄마는
진영이가 이렇게 많이 컷을 줄 몰랐지. 내일 쇼핑하러 나갈까? 침대도 보고 진영이
옷도 사고...... "
.....설마 마마는 쭉 나를 생각하며 이렇게 내방도 만들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유진영은 가슴에 뜨거운 것이 차오는 것을 느꼈다. 먼지 하나 없는 방....
매일같이 청소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될 수 없다....
"어머니... 방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정말로요..... "
유진영은 뜨거운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연희를 보며 말했다.
"정말? 다행이네. "
연희는 기쁜 듯 미소지었다.
"자... 피곤할텐데 어서 누워. "
연희가 유진영을 침대로 이끌었다. 유진영은 침대에 누웠다. 연희는 두터운 솜이불을
유진영의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연후 연희는 창가로 가서 커튼을 친 후 다시
침대로 다가왔다. 유진영은 침대에 누운채 연희를 올려다 보았다. 연희는 허리를 굽혀
유진영의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매만져 주곤 말했다.
"잘자 진영아... "
"예... 어머니도 안녕히 주무세요.. "
연희는 유진영을 내려다보며 미소짖곤 침대 머리맡의 취침등을 켠후 방문으로
걸어갔다. 방문 손잡이를 쥐고 연희는 유진영을 다시 잠시동안 돌아보다 문옆의
스위치를 내려 불을 껐다. 그리곤 다시 유진영을 향해 말했다.
"잘자 진영아... "
"....예...... "
연희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유진영은 침대에 누운채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편안하다............. 낮선 땅, 낮선 집,
낮선 침대.... 조금 낮선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유진영은 편안했다. 아마도 나의 마마의
집이기에, 나의 마마가 지금 같은 집 안에 함께 있기에 그러하리라..........
유진영은 눈을 감았다. 미처 느끼지 못했던 피로가 밀려오면서 유진영은 금새 잠이
들었다. ...아늑함 속에서........
하지만 휴식의 시간은 길지 못했다. 깊은 잠에 빠져든지 얼마 되지 않아 유진영을
다시 잠에서 끌어내는 귀여운 방해꾼이 있었다.
"........................오빠..............오빠아~............ "
'....누구..?.......... '
힘겹게 눈을 뜬 유진영의 눈앞에 진아의 얼굴이 있었다.
".....진아?......... 왜...? "
"치이.... 오빠 벌써 자는거야? "
진아가 유진영을 새초롬히 쳐다보며 말했다.
"잠자기전에 오빠한테 잘자라고 인사하려고 왔어....... 진아방... 오빠방 바로
옆방이걸랑.... 진아 착하지? "
"....응........ "
유진영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방금 목욕을 한 듯 진아에게선 비누향내와 함께 소녀의 향긋한 살냄새가 나 유진영의
후각을 자극했다. 소녀들이 쓰는 로숀냄새도.... ..........좋은 냄새...... 유진영은 생각했
다.
취침등의 아스름한 불빛에 보이는 진아의 모습은 그것이 잠자는 복장인 듯 기다란 면티
한 장만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봉긋 솟은 가슴..... 허벅지 아래로는 맨살이었다.
조명탓인지 소녀의 향긋한 체향과 함께 그것이 유진영에게 야릇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바보같이...... 친동생인데....... 유진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진아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오빠... 나 잠깐 놀다가도 돼? "
진아가 애교스런 미소를 띄우며 유진영에게 물었다.
"...응.....물론..... "
.......아 졸린데...... 하지만 유진영은 내색치 않은 채 허락했다.
유진영이 허락하자 진아는 기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장난스런 미소로
바뀌더니 진아는 '히히' 웃으며 침대위 유진영의 배위로 책상다리를 하며 털썩
올라탔다. 그바람에 다리가 벌어지며 무심코 유진영의 눈에 진아의 면티속 벌어진 다리
사이가 보였다. .......... 이런... 팬티가 보이잖아............ 유진영 얼른 시선을 이동해
진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장난스런 미소를 지은 채 유진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배가 아파.... 진아 엄청 무거운데.... "
유진영은 장난삼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진아는 즉각 반응했다.
"거짓말!! 진아 날씬하단 말야. 하나도 않무거워! 오빠 취소해!! "
진아는 화난 원망어린 눈으로 유진영을 내려다봤다.
"정말인데? "
유진영은 미소지은 채 말했다.
"오빠 거짓말쟁이!! 진아 하나도 않무거워!! 빨랑 취소해!! "
진아가 엉덩이로 유진영의 배를 세게 구르며 다그쳤다.
....이....이런.....
침대가 삐걱거릴 정도로 그 세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취소해!! 빨랑 취소해애~!! "
진아는 계속해서 엉덩이를 힘차게 구르며 떼쓰듯 유진영을 다그쳤다.
"앗! 취소.. 취소.. 진아는 하나도 않무거워.... 정말이야...... 진아는..... 날씬하고 정말
가벼워."
유진영의 애원조의 굴복에 진아는 엉덩이를 멈췄지만 화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듯
여전히 씩씩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아의 얼굴에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진아는 새삼 유진영을 째려보며 말했다.
"오빠 한번만 더 진아한테 거짓말치고 놀려봐. 가만 않둘 줄 알어. ...막 괴롭혀
줄거야... "
"알았어. 조심할게.. "
유진영이 부드럽게 비위를 맞추어 주자 진아는 기분이 좋아진 듯 하다. 미소를
지으며 유진영을 바라보던 진아는 한순간 허리를 숙이며 유진영의 머리 옆에 두 팔을
받혔다. 그리고 유진영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진아의 긴 머리가 흘러내려 유진영의
볼을 살랑살랑 간지럽혔다. 입가에 수줍은 미소를 띈 진아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이....이봐.... 이거 기분이 이상해지잖아...... 유진영이 내심 식은땀을 흘릴
때
진아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오빠가 와줘서 정말 좋아. "
진아는 말을 하고 부끄러운 듯
"잘자 오빠. "
하고 재빨리 말하고는 유진영의 볼에 '쪽'하고 뽀뽀를 하곤 뛰듯이 침대에서 내려가
쿵쿵거리며 방문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재빨리 방문을 열고 사라져 버렸다.
유진영은 그런 진아를 바라보다 진아가 나가버리자 다시 눈을 감았다. 자신의 볼에
남아있는 진아의 보드라운 입술의 감촉을 음미하며 유진영은 미소를 지은 채 다시금
기분좋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손님이 아직 한명 더 남아있었다.
유진영이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가만히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살며시 들어왔다.
'마마.. '
유진영은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직감적으로 연희임을 알았다.
연희는 가만히 문을 닫고는 유진영을 바라보았다. 유진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연희는 미안한 듯 미소를 지으며 유진영의 침대로 다가왔다. 연희는 잠을 자기위한
복장인 듯 얇은 슬립 위에 실크로 만들어진 듯한 부드러워 보이는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미안.. 엄마때문에 깼니? "
연희는 말을 하며 유진영의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리곤 다시 머리를
매만져 주었다.
"아녜요, 어머니. 진아가 방금전까지 있다 갔어요. "
"고것이.... 오빠 자는 거 방해하지 말라고 말했는데도.... 쿡쿡... 하지만 나도 진아한테
뭐라고 말할 입장이 못되네... "
연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녜요.. 저는 괜챦아요. "
유진영도 미소를 지었다.
연희는 유진영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유진영도 연희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목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어깨 넘어로 흘러내린 머릿결은
아직도 촉촉했고 몸에서는 비누 냄새, 어른 여성이 사용하는 화장품 냄새가 섞인
향긋한 체향이 느껴졌다. ......정말 좋은 냄새라고 유진영은 생각했다. 진아에게서도 좋은
냄새가 났었지만 어머니에게서 나는 냄새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리운
.......성숙한 내음이었다. 품에 안겨 한껏 흡입하고 싶은.......
빨려들 듯 유진영은 연희를 바라보았다. 미인이라 생각하곤 있었지만, 연희를
바라보고 있던 유진영은 새삼 어머니가 정말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곱다.... 아름답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자신을 보고 미소를 짖고 있어 더 기뻤다. 한편으론
어머니의 차림새가.. 얇은 옷을 통해 드러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굴곡이 야릇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괜시리 부끄럽고 가슴이 콩닥거린다.
연희의 불룩한 가슴부분을 몰입하여 바라보고 있던 유진영은 문득 자신의 실태에
부끄러움이 느껴져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 바보같이...........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의 가슴에 자꾸만 끌리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진영이 졸리니? ....자, 어서 자... "
유진영이 눈을 감자 연희가 이불을 다듬어주며 유진영에게 말했다. 유진영은 다시
눈을 뜨고 연희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이제 주무세요. "
"엄마는 진영이 잠드는 것 보고 잘게.... 자 어서 자.... "
연희가 유진영의 가슴에 손을 올려 가만히 토닥여 주기 시작했다. 그 좋은 느낌에
유진영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기분 좋다...... 어머니가 재워주고......... 말할 수
없이 좋은 기분...... 유진영은 이대로 좀더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고 싶기도 하고
어머니의 기분좋은 손 아래서 잠들고 싶기도 한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막 잠속으로 빠져들려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뜨고 연희를
바라보았다. 손으로 유진영을 다독이며 내려다보는 연희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글썽글썽 고여있었다.
".....어머니..... "
유진영은 놀랍고 안타까워 연희를 불렀다.
"...응.... 엄마 안울게.... "
연희는 얼른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삼키며 미소를 짖고 유진영의 얼굴을 만져주었다.
유진영은 그런 연희의 손을 꼭 쥐며 안타까운 눈길로 연희를 바라보았다.
"..엄마.. 진영이를 보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
걱정하지마... 이제 엄마 안울게, 어서 자.. "
"........약속해요... "
"응... 약속할게. 어서 자... "
연희는 자신의 손을 쥐고 있는 아들의 손을 마주 꼭 쥐며 말했다. 유진영은 연희의
말에 안도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엄마의 손을 꼭 쥔채 유진영은 이내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얼마나 잤을까?... 잠결에 몸을 뒤척이던 유진영은 문득 볼을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머릿결의 감촉에 잠에서 깨어났다. 유진영의 눈에 바닦에 무릎을 꿇은 채
침대, 자신의 머리맡에 상체를 엎드리고 자고 있는 연희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어머니가 아직까지 자신의 방에 있는 것에 놀라며 유진영은 부시시한 눈을 비비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새벽 세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데.......
유진영은 상체를 일으키고 가만희 손을 어깨로 가져가 살짝 흔들며 연희를 깨웠다.
"....마마....... 어머니.... 어머니?...... "
연희가 부시시 상체를 일으키며 깨어났다.
".....아....... 엄마 깜빡 잠들었나 보네..... "
연희가 잠이 설깬 눈으로 유진영을 보며 미소했다. 유진영은 안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연희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제 방에 가서 편하게 주무세요. "
"........응....... "
연희는 대답했지만 아쉬운 듯 머뭇거렸다. 그러다 유진영에게 말했다.
"......진영아....... 오늘밤 엄마랑 같이 잘까?....... "
.......엄마랑 같이.......? 연희의 제의에 유진영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난 이제 아이가
아닌데........ 괜시리 부끄럽다...... 하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다. 아니 기쁘다...
".........예, 어머니......... "
연희는 기쁜 듯 미소지었다. 일어서며 유진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 엄마방에 가자.. 진영이 침대는 둘이 자기엔 작쟎아? 엄마 침대는 크니까 엄마
침대에 가서 자자..... "
유진영은 얌전히 연희의 손에 이끌려 일어났다. 방의 불을 완전히 끄고 연희는 손을
잡고 아래층 자신의 방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다.
.....마마의 방...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연희의 방 안에 들어서 유진영은
생각했다. ....마마와 관계된 것은 모두다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자... 어서 누워... "
자신의 방 더블침대로 유진영을 이끌고 연희는 이불을 들쳐주며 아들을 침대에
뉘였다. .... 그런데 베게가 하나밖에 없었다.
"....어머니 베게가 하나밖에 없네요? "
"...응... 농에 하나 더 있긴 한데... 꺼내기가 귀찮아. 그냥 엄마랑 진영이랑 같이 베고
자자. "
연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도 침대로 올라왔다. 벽의 전등 스위치를 내려 불을 끄고
머리맡 스탠드를 켠 다음 연희는 이불속으로 완전히 몸을 뉘이며 유진영이 내어준 베게
한쪽에 머리를 놓았다. 모로 누운채로 연희는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진영의
눈을 바라보았다. 모자의 얼굴은 거의 붙을 듯 마주하고 있었다. 서로의 눈 앞에 서로의
눈이 있었다. 연희는 빨아들일 듯 아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녀의 눈 속에는
아들의 얼굴과 함께 행복함이 서려 있었다.
푹신한 침대 위에서 유진영은 말할 수 없이 안락했다. 하지만 그것이 침대의 쿠션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의 곁에.... 어머니와 함께 누워 있기 때문이이라. 후각 가득
느껴지는 어머니의 체향..... 감미롭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말할 수 없이 기분좋다.
유진영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연희에게 문득 수줍음이 느껴져 어머니의 목
밑으로 고개를 묻었다. .......유진영의 눈 아래에 연희의 가슴이 들어왔다. 갑자기 심장이
뛰고 숨결이 가빠온다. ....달콤한 내음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그곳...... 가장 그리움이
느껴지는 그곳.........
목덜미 밑에 아들의 숨결을 간지럽게 느끼며 연희는 아들의 마음이 마음이 가 있는
곳을 알았다. 엄마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쯤은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진영이 젖 먹고 싶니? "
연희가 미소지으며 물었다. 유진영은 귀가 솔깃했다. 가슴은 더욱 심하게 두근거린다.
하지만 얼굴만 붉어질 뿐 부끄러움에 아무런 댓꾸도 하지 못한다.
연희는 그런 유진영을 보며 '후후' 미소짓곤 몸을 일으켰다. 유진영은 어머니의 몸이
떨어지자 한편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기대섞인 눈으로 연희를 올려다 보았다.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맘마줄게... "
연희는 미소를 지은 채 마치 옛날 아기때의 아들에게 하듯이 말하며 가운을 벗었다.
슬립의 어깨끈을 내리자 브라에 절반쯤 가려진 탐스러운 가슴이 드러났다. 유진영은
벌써부터 목이 말라오는 것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연희가 브라마저 가슴에서 제거했다.
그러자 탐스럽고 예쁜 유방이 브릉하며 튕기듯 나와 가볍게 흔들렸다. ........아!....
유진영은 가볍게 탄성을 터트렸다. ....마마의 가슴.... 보통 크기이지만 -한국 여성
사이에선 절대로 보통 크기가 아니다- 정말로 아름답다.... 풍만함을 강조하듯 아주
살짝 쳐져 그 모양을 더욱 완벽히 하고있는 한쌍의 탐스런 융기..... 그 위에 자리한
자그마한 예쁘게 생긴 젖꼭지..... 유진영은 어머니의 가슴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곳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두근거리는 가슴은 점점더 심해져만 간다.
연희는 유방을 드러낸채 침대에 몸을 눠혔다.
".....자아..... "
그리고 가만히 유진영의 머리를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유진영은 수줍음에 빼는 듯
하면서도, 어머니의 손길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처럼 얼굴이 연희의 가슴으로 당겨졌다.
얼굴이 젖가슴에 닿은 유진영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살짝 코밑의 젖꼭지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곤 입을 벌려 살며시 물고는 이내 힘껏 빨기 시작했다. 약간
조그맣게 느껴지던 말랑한 적꼭지가 유진영의 입안에서 이내 딱 빨기 좋은 크기로 부풀며 단단
해졌다.
"아!...... "
연희는 탄성을 발했다......... .....이아이.... 그때랑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젖먹기 전에
먼저 젖꼭지 젖내를 맡는 거나... 온힘을 다해 이렇게 힘껏 빨아대는 거나.... 코로 숨을
쌔근쌔근 몰아쉬는 거나.......
젖꼭지가 세게 빨려 아팠으나 그런거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연희는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아니 아프도록 세게 빨리는 이 느낌이 기분 좋았다. 젖꼭지 위의 부드러운 유방의
살을 아들의 쌔근거리는 콧김이 간지럽히는 것도 기분 좋고.......
"......맛있어?........."
".....으응~........"
아들은 대답대신 어리광섞인 콧소리를 낸다. ....맛있다는 뜻이겠지?...
'......내 아기........... '
연희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유진영의 이마를 매만졌다. 그리고 아들의 허리에 손을
가져가 자신의 몸으로 더욱 밀착하게 끌어당겼다. 그러다 그만 손톱으로 옆구리 살을
찔렀나 보다.....
"으응........ "
유진영이 젖꼭지를 입에 문 채 고개를 뒤로 당기며 투정섞인 콧소리를 냈다.
"응, 미안, 미안. "
연희는 젖꼭지가 당겨지는 아픔도 신경쓰지 않고 엉덩이를 다독이며 아들을 달랬다.
유진영은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연희의 포근한 품속으로 더욱더
파고들었다. ........정말로 부드럽고 한없이 안락한 마마의 품.........
.........손톱 .....깍아버려야지....
연희는 자신의 길게 길러 관리해온 손톱을 후회한다. 그때 유진영이 손을 뻗어 연희의 나머지
한쪽 젖가슴을 만지작거리다가 젖꼭지를 쥐고 조물락거렸다.
...... 후후 네가 그럴 줄 알았어....
어련하려고...... 연희는 또하나 나타난 아들의 어릴적 모습에 미소지었다. ......팔다리를
제법 꼼지락거릴 수 있게 되고부턴 넌 나머지 젖꼭지도 결코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지... 뺏어갈 사람 아무도 없는데도 제거라고 주장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정말 감미롭다........ 연희는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띄운 채로 손으로 가만가만 아들의 몸을 쓸고 만져보았다.
......단단하다.... 탄력있고.... 정말 많이 컸어..... 예전에는 품안에 쏘옥 들어오게 작
고....
또 아주 말랑말랑하고 보들거렸는데..... 아들의 예전 모습을 더듬어 보며 연희는 왠지
서글퍼진다. 현재의 성장한 모습이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다만 그동안의 성장을 직접 눈으로 보아오지 못한 것이... 자신이 빼았긴 시간이 너무나
아쉽다.
연희는 지치지도 안는지 힘차게 젖을 빨아대는 아들을 보며 미소짖고 흘러내린
머리칼을 만져준다. .......넌 정말 많이 먹는 아기였어........ 한쪽으론 양이 안차서 두쪽다
텅텅 빌때까지 빨아먹고....... 그런 후에야 배가 뽈록해가지고는 잠들었었지.......
연희의 아들은 무척 많이 먹었지만 연희의 유방은 텅 비었다가도 다음 젖먹일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가득 차곤 해서 연희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연희는 그런 자신의 젖가슴을 무척 다행스럽게 그리고 고맙게 생각했었다.
연희는 아이에게 오로지 모유만을 먹였었다. ....내 아기에게 내젖을 먹여야지 어떻게
소젖을 먹일 수 있을까? 젖을 먹이면 가슴이 늘어진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연희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다행스럽게도 좀 커지기만 했지 늘어지지는
않았지만......... 연희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으면 행복했다.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며
열심히 젖을 빠는 모습이 말할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내 몸에서 내 아기를
먹일 젖이 나와 아기를 기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연희는 아이가
어느정도 커 이유식을 먹게 되어서도 젖을 떼지 못하고 함께 먼였었다. 유방에 차있는
젖을 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젖을 물리고픈 욕구를 참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젖이 묽어져 더 이상 먹일 수 없게 될 때까지 먹였었다.
연희가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을 때 젖을 빠는 유진영의 입이 점차 멈추었다.
젖꼭지를 조물락거리던 손장난도 어느새 멈추고 숨결도 새근새근 부드럽게 가라앉아
있었다. 엄마품의 포근함과 안락함을 견디지 못하고 잠들어버린 것이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 연희의 유방과 유진영의 입가를 적시며 흘렀다. 연희는 슬립의
가슴자락으로 유진영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닦는 바람에 빠진 젖꼭지를 재차
유진영의 입속으로 넣어주었다. 유진영의 입술이 무의식중에 한두번 오물거렸다. 연희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후후' 미소지었다. 그리곤 자신의 사랑스런 아들을 품에 꼬옥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그동안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말할 수 없는 안도감 속에서
연희도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7.
대문과 차고 앞의 눈을 치운 다음 유진영이 다시 대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깔깔거리는 즐거운 웃음소리와 함께 연희와 진아가 서로 앞서거니 하며 현관을 나오고
있었다. 둘다 어느새 두툼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연희는 입고있던 원피스 위에 두툼한
파카를 걸치고 있었고 언뜻 보인 원피스 밑에는 .....내의는 아니고..... 여자들이 입는
달라붙는 신축성있는 바지를 껴입고 있는 듯 했다. 진아는 털실로 짠 빨간색 쫄바지에
위에는 가장자리에 하얀 털이 북실하게 달린 모자가 붙어있는 분홍색 오버코트를 입고
있었다. ...꼭 산토끼처럼 귀여운 모습이다.
....도와주러 나온 걸까? 밀대를 들고 멈춰선 채 유진영은 모녀를 바라보았다.
"오빠 뭐해!! 꾀부리지 말고 열심히 하란말야! "
진아가 허리에 양손을 척 걸친 채 말했다.
이런..... 내가 뭐, 머슴이라도 된단 말야? 왠지 배신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유진영의 기분은 상관없는 듯 하다. 연희가 진아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닥거리자
진아역시 고개를 끄덕이곤 둘이서 뭐가 그렇게 재미나는지 호호 깔깔거리며 집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 버렸다. 왠지 소외되 기분.... 유진영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절래절래 젓곤 저만치 놓여있던 싸리비를 들고 블록 위에 있던 남은 눈을
깨끗이 쓸기 시작했다.
거진 반쯤 쓸었을까?
"얏! 받아, 오빠! "
갑자기 진아가 모퉁이에서 나타나더니 눈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새 만들어
놨는지 바구니처럼 해 놓은 오버코트 자락에 눈덩이가 잔뜩 쌓여 있었다. 진아뿐만이
아니다. 연희도 진아와 함께 유진영에게 눈덩이를 던져댄다. .....마마까지.......이잇! 좋아!!
유진영은 배신감에 휩싸여 날아오는 눈덩이를 잡아 다시 모녀에게 던져댔다. .....하지만
차마 연희에게는 세게 던질 수가 없어 살살 던진다. 뭐.... 그래도 피하지 못하고
있지만...... 모녀대 유진영의 양팔... 이대 이지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연희와 진아가
눈덩이에 맞아 꺅꺅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꺅!! 엄마! 작전 변경!! "
진아가 안되겠는지 눈덩이를 던지는 것을 그만두고 유진영에게 달려들었다. 연희도
진아를 따라 유진영에게 달려든다. 모녀가 이번에는 눈을 집어 유진영에게 뿌려대기
시작했다. 옷속에도 집어넣고...... 이것만은 유진영도 어쩔 수 없었다. 여자들이랑
힘겨루기를 할 수도 없고.... 으앗!! 차거!!... 등에 들어온 눈이 장난이 아니다.
견디다 못한 유진영이 연희에게 애원했다.
".......엄마,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앗!!........ 내편 안들어 줄 꺼예요? "
아들의 애원에 연희가 멈칫했다. 잠깐 망설이던 연희는 곧 이후의 행동을 결정했다.
"좋아! 엄마, 이제부터 오빠편이야! "
전세가 돌변했다. 연희와 유진영이 한 편이 되어 진아를 공격했다.
"꺅!!! 엄마 배신자!! "
진아가 두사람을 당해내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유진영이 봐줄 리가 없다.
좀전에 당한 것을 복수하려는 듯이 진아의 등에 눈을 한큼 집어넣었다.
"꺄악!! 싫어!! "
진아가 꼬꾸라지듯 주저앉았다. 연희가 깔깔 웃으며 눈을 집어 진아의 목덜미에
문지른다. ...하하...^_^;.. 엄마한테 이런 잔인한 면이 있을 줄은.......
내심 쓴웃음을 짓던 유진영은 흠칫했다. 당하고 있던 진아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며
얼굴이 일글어진 것을 본 것이다. ...앗!... 울겠다..... 유진영은 얼른 소리쳤다.
"좋아!.. 이제부터 진아랑 나랑 한편이야. "
유진영은 말하고는 당황하는 연희를 얼른 마주 끌어안았다.
"앗! 안돼! "
하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진아가 그 말을 들을 리 만무하다. 진아는 훌쩍이며 일어나
연희의 등에 눈을 마구 집어 넣었다.
" 꺄악~~ 너희들 엄마한테 이럴 수 있어? "
하지만 진아는 들은 체 만체다. 쪼그려 앉더니 이번엔 눈을 연희의 엉덩이에다 집어
넣었다. 밑으로 떨어지는 게 별반 없는 것을 보니 아마도 옷 속에다 집어 넣는 것 같다.
....이런 그렇게 까지....... 유진영은 식은땀이 흐르며 진아의 복수가 지신에게까지 미치지
않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아우~삥..... "
진아의 악랄한 보복에 몸을 떨던 유진영은 문득 품안의 연희를 보곤 눈물이 글썽이며
맺혀있는 연희의 애처로운 얼굴에 깜짝 놀라 연희를 놓아주었다. 그리곤 얼른 진아를
붙잡아 더 이상의 행동을 못하게 했다.
아들에게서 풀려난 연희는 얼른 옷안의 눈을 털어냈다. 그리고 아직도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유진영과 진아를 째려보았다.
"....너희들...... 엄마한테 그랬지?....."
진아도 이제 복수심에서 벗어난 듯 눈에 두려운 빛이 떠오른다.
"무릎꿇어! "
진아가 얼른 무릎을 꿇었다. 유진영도 진아를 따라서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손들어! "
남매가 번쩍 양 손을 든다.
"너희들 감히 엄마한테 그랬지? "
유진영과 진아는 갑자기 추위가 느껴져 달달 떨었다.
연희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눈뭉치 두 개를 뭉쳤다. 그리고 그것을 각각 하나씩
아들의 등에 그리고 딸의 바지 엉덩이에다 집어 넣었다.
"깍!! 엄마!! "
"우웃! "
"손 내리지마! "
연희가 몸부림치려는 유진영과 진아에게 다그친다. 어머니의 명령에 남매는 참을
수밖에 없다.
"너희들, 잘못했어? 않했어? "
유진영과 진아는 얼른 대답한다.
"잘못했어, 엄마! "
"잘못했어요. "
"엄마한테 또 그럴꺼야? "
또 즉각 대답이 나온다.
"아뇨! "
"아니요. "
"좋아. 일어서. "
연희가 그제야 누그러진 듯 대답했다. 벌떡 일어나서 유진영은 옷을 흔들어 눈덩이를
털어냈다. 진아도 울상을 지으며 엉덩이에서 그새 반쯤 녹아버린 눈덩이를 끄집어냈다.
연희가 그 모습을 보며 후후 미소짓곤 말한다.
"우리 이제 뭐하고 놀까? "
진아가 언제 삐지고 언제 혼났나는 듯 얼른 말한다.
"눈사람 만들자 엄마. "
"그럴까? "
유진영은 슬그머니 싸리를 집어든다.
"...저는..... "
"오빠도 도와줘. ...오빠는 몸통 만들어. "
.......눈은 언제 치우냔 말야......
.......유진영은 몸통을 굴리고 모녀는 머리를 만들었다. 몸통을 만드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진아야, 됐니? "
"아니, 좀더 커야지 오빠. "
...........
"이제 됐니. "
"아니 좀더. "
............
".........됐니? "
"좀더. "
이런 식이었다. .....뭔 욕심이 그렇게 많은지.... 결국 만들어진 눈사람은 코끼리
몸통에........ 개미 머리었다.
"....몸이 좀 큰가? "
진아가 한 말은 고작 그것뿐이었고....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연희와 함께 나뭇잎과 가지로 얼굴을 꾸민 진아는
유진영에게 잔인한 요구를 해왔다.
"오빠. 모자좀 벗어봐. "
유진영은 멋모르고 모자를 벗어줬다. 그랬더니 그 모자를 냉큼 눈사람에게 씌우는게
아닌가!
"장갑도 좀 줘봐. "
주기 싫었지만.... 제거 내놓으란 듯이 -물론 제거가 맞기는 하지만- 당당하게
요구하는 진아에게 유진영은 결국 장갑마저 벗어 줄 수밖에 없었다. 진아는 장갑을
눈사람에게 붙이고는 허리에 손을 얹고 바라보며 흡족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오빠보다 눈사람이 더 소중하냐?
"잘 만들어졌지, 엄마? "
"그래. 정말 잘 만들어졌네? "
어머니 마저 눈사람만 쳐다보고....... 아.. 손시렵다...
추위에 떨고있는 아들은 본체만체 딸과 함께 눈사람을 감상하던 연희가 문득 팔을
가슴에 모으며 어깨를 쓸었다.
"좀 춥네.. "
진아도 그런 엄마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도 추워 엄마. "
아마도 이제 움직이느라 났던 땀도 식고, 또 눈 녹은 물 때문에 체온이 내려가
추위가 느껴지는가 보다.
"들어가자. 잘못하다 감기걸리겠다. "
"응. .....얼른 들어가 엄마. "
둘이서 유진영을 돌아본다.
"진영이도 얼른 끝내고 들어와. "
...하하.... 머슴이 별 수 있겠어? 일을 마쳐야 쉴 수 있지. ....하지만 나도 이제
추운데....
"저기 보일러실 하고... 저기 건조대 가는 길만 치우면 돼 나머지는 내버려 둬. "
연희가 말한다.
유진영도 대답했다.
"예. 걱정 마세요 어머니. "
"그럼 부탁해. "
"수고해 오빠. "
그말을 남기고 연희와 진아는 몸을 떨면서 이내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마당에는 유진영만이 홀로 쓸쓸히 남게 되었다. 유진영은 작게 한숨을 쉬고 싸리비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현관에서 대문까지의 블록에 남아있는 눈을 깨끗이 쓸기 시작했다.
유진영이 보일러실로 가는 길의 눈을 치우고 있을 때 보일러실 옆쪽에 있는 키보다
조금 높은 창으로부터 하얀 수증기가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저기는.......목욕탕인데......
유진영이 보이러실 앞을 싸리비로 쓸고 있을 때 안에서 연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진영아? "
유진영은 약간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예. 어머니. "
"지금 엄마, 진아랑 목욕하려고 물받고 있거든? 진영이도 얼른 끝내고 들어와서
뜨건물로 목욕해. 그래야 감기 않걸려. "
"예. 어머니. "
"그럼 빨리 하고 들어와. "
"예. "
유진영은 대답하곤 보일러 앞을 마저 쓸고 건조대 쪽으로 향했다.
건조대쪽의 눈을 치우면서 유진영은 왠지 마음이 심란했다. 깊은곳에서 자꾸만
사악한(?) 호기심이 머리를 든다.
..........잠깐만......아냐 않돼.......그래도 조금만......아냐 역시 않돼..... 그래도.....
한참동안 갈등하던 유진영은 결국 악한 마음이 승리하고 말았다. 유진영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목욕탕 쪽으로 걸어가 살금살금 창밑으로
다가갔다.
빼꼼히 열려있는 창틈으로 하얀 수증기가 뭉클뭉클 흘러나와 차가운 공기중으로
흩어지고 있다.
유진영은 살그머니 한쪽 손을 창틀에 걸었다. 그리고 벽 밑부분 약간 튀어나온 곳에
발끝을 올리곤 가만히 조심스럽게 머리를 창틈으로 올렸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다. 가만히 머리를 올려 창 틈에 눈을 대고 안을 쳐다본 유진영은
얼른 다시 머리를 내려 버렸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새빨개진다. ......보고 만
것이다..... 한동안 가빠진 숨을 소르던 유진영은 다시 갈등하기 시작했다. .........한번만
더 볼까....... 아냐 그만 가는게........ 하지만 사실 제대로 못봤는데......... 그렇지만 진
아도
있잖아.....
왠지 여동생을 훔쳐본다는 것에는 약간 죄책감이 느껴지는 유진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사악한 마음이 승리했다. 유진영은 다시 살며시 머리를 올려 창틈에
눈을 가져다 댔다. 유진영의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금새 머리를
내리진 않았다.
욕실에서는 알몸의 연희가 역시 알몸인 진아의 등을 스폰지로 닦아주고 있었다. 둘다
방금 전까지 욕탕안에 들어가 있다 나왔는지 전신이 복숭아 빛으로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유진영은 지금 엄마와 여동생의 누드에 정신이 없었다. 닮음꼴이면서도
대조적인 두 여체가 유진영의 가슴을 사정없이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
연희와 진아는 긴 머리를 거치장거리지 않게 똑같은 모양으로 틀어올려 핀으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진아가 엄마에게 배웠을 터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왠지 묘한
느낌이 든다.
두 여자의 살결은 똑같의 물방울을 튕겨낼 듯 팽팽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연희의 몸은 성숙한 만큼 포근하고 보드라워 보이는 반면 진아는 누르면
튕길 듯 탱탱하고 야들해 보인다.
엄마와 여동생의 몸은 모든 부분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연희의 몸이 풍만하면서
굴곡이 탐스럽게 뚜렸한 반면 진아의 몸은 미끈하고 싱그럽기 그지없다. 진아의
엉덩이는 동글한게 영락없는 여자의 엉덩이이긴 하지만 연희의 탐스러운 둔부에 비하면
그저 귀엽기만 하다. 허리는 둘다 잘록하지만 연희의 복부가 보드랍고 푸근해 보이는
반면 진아는 가운데의 선이 뚜렸하다. 그리고 유방 역시 연희의 크고 탐스러운 가슴에
비해 진아의 젖가슴은 제법 불룩하게 솟아있고 탱글하지만 역시 자그마한 것이
예쁘장했다. 작은만큼 탱탱한게 조금도 쳐짐없이 솟아있고 빨간색 조그만 젖꼭지는
꽃판속에 파뭍혀 있었다.
부끄러운 사타구니의 음모역시 무성한 연희에 비해 진아는 그저 갈라진 음렬 위
치구에만 약간 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듯 모든 부분이 대조적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딸의 몸은 마치 얼굴이
닮은 것처럼 묘하게 닮아 있다. .........진아가 크면 어머니같은 몸이 될까?.......... 유진영
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욕실 안의 두사람은 유진영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른 채
자신들의 몸을 비교하며 감상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목욕에만 여념이 없었다.
유진영은 좨책감을 느끼면서도 진아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만하게 벌어진
진아의 사타구니다. 연희가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채 진아의 등을 닦아주고 있는 반면
진아는 욕실용 의자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가랑이를 활짝 벌린 채 양 손으로 발목을
쥐고 있었다. .........아직 어려서 부끄러움을 모르나? ......하긴 어머니와 단 둘분이고 보는
사람도 없는데..... 아니...... 음흉한 오빠가 훔쳐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궂이
몸가짐에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진아의 사타구니는 유진영의 눈아래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유진영은 필사적으로 죄책감과 싸우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달아오른 얼굴로 진아의 음부를 훔쳐보았다. 진아의 음부는 제법 통통한 양
입술이 입을 꼭 다물고 있어 오직 가운데 갈라진 선 하나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직
미성숙한 소녀의 음부..... 치구에 약간이나마 돋아난 음모마저 없다면 어린아이의
음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
유진영은 문득 발기한 자신의 음경을 느끼고 당황했다. 알몸의 여체를 보고 발기되는
건 남자로선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여동생이라면 ......그것은 아무래로 심히
갈등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죄스런 마음이 더 커진다. ........어떡하나..... 이제 그만
볼까?....... 하지만.......... 또 그럴 수는 없다. 유진영은 자신의 시커먼 속마음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돌아서. "
그때 연희가 진아의 등에 물을 끼얹으며 말했고 진아가 돌아서는 겨를에 유진영은
얼른 창밑으로 숨었다가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연희와 진아는 마주보고 앉아있다.
"머리 감게 머리 풀러. "
하지만 진아는 왠지 뚱하니 연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어서 풀러. "
연희가 재촉했다. 그러자 진아는 머리는 풀르지 않고 갑자기 얼굴을 연희의
젖가슴으로 가져가 젖꼭지를 물려고 했다. 연희는 당황하며 진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얘! 뭐하는 거니? "
진아가 희쭉 웃으며 말했다.
"나 젖먹고 싶어 엄마. "
그리곤 다시 입을 연희의 젖꼭지로 가져갔다.
"...왜 안하던 짖을 하고 그래. "
연희는 여전히 당혹해 하며 진아를 막았다.
진아가 새초롬히 연희를 올려다 보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엄마 자식이란 말예요. 엄마 젖은 내것도 되잖아. "
아마도 연희가 유진영에게 젖을 물렸던 것을 빗대면서 하는 말인 듯 하다. 어쩔 수
없이 연희는 진아가 젖꼭지를 무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진아는 연희의 젖꼭지를 살며시 물더니 가볍게 쪽쪽 빨았다. 하지만 별 재미가
없는지 이내 멈추더니 이번에는 입속에서 혀로 도르르 굴렸다. 야릇한 느낌에 연희는
얼른 진아를 떼어내곤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장난 그만쳐, 얘. "
진아는 히히 웃고는 이제 호기심이 사라졌는지 순순이 머리를 풀었다. 긴 생머리가
흘러 내렸다. 연희는 샤워기를 끌어다가 진아의 머리에 물을 적시곤 가만히 감겨주기
시작했다. 긴 머리는 아무래도 스스로 감기엔 불편해서 연희는 예전부터 함께 목욕할
때는 자신이 감겨주곤 했었다. 진아의 머리를 감겨주면서 연희는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젖을 빨리는 느낌부터 틀리다.... 왜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났는 지 모른다. 그 말에 곶이곧대로 그 의미만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쨋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아이 진아는 첫째아이 진영이와 여러모로 틀렸다. 더 작았고 더 약했다. 아무래도
여아이니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된 건 사실이었다. 그
뿐아니라 젖을 먹는 양도 많지 않았다. 유진영이 유방 두 쪽을 다 비우 던 것에 비해
진아는 한쪽도 겨우 비울 정도였다. 더 좀 먹어보라고 억지로 물려 보아도 한두번
빨다가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유진영을 기를 때 보다 한번정도 젖을 먹는 횟수가
많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먹는 양이 너무 적었다. 빠는 힘도 어째 시원치 않고..... 듣기에
젖을 않 빠는 아기도 있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분유를 먹여 봤지만 분유 역시 조금
먹고 말 뿐이었다. 연희는 걱정이 되서 병원에 데리고 가 보기도 했다. 의사 말은
다행스럽게도 '아무 이상 없다', '건강하다', 였다. 연희가 ...그래도... 하는 생각에
유진영을 키울때와 비교해서 이야기를 하자 의사는 웃으며 아기도 저마다 다 다르다고
'첫애가 무척 건강했었나 보네요' 하고 말할 분이었다. 어쨋든 아무 이상 없다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연희는 진아를 데리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괜시리 아들이
생각나 억지로 눈물을 참아야 했다. 진아는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예 젖을
떼버렸다. 물려도 서운하게스리 고개를 돌려버렸다. 유진영때와 같은 젖탐같은 건 아예
없었다. 진아에 반해 유진영은 젖탐이 무척 많았었다. 젖을 물리지 않으면 잠도 자지
않았었다. 항상 가슴으로 파고들고 손을 뻗어 가지고 놀았다. 뭐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심통이 나 뗑강을 부리는데 그것을 젖을 달라는 표현이었다. 젖을
물리면 또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생글생글해진다. 진아는 젖탐도 없고 유진영에 비해
뗑강부리는 것 도 없는 아주 얌전한 아기여서 기르는 데는 더 편했지만 연희로서는
왠지 서운했다. 기구로 젖을 짜내면서 얼마나 섭섭해 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젖가슴에
그렇게 매달리던 아들 생각만 자꾸 나 서글퍼졌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품이 아니면
잠도 못자던 그 아이가 자신 없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걱정되어 자꾸 눈물만 나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 걱정 없다. 얼마든지 안고 재워줄 수 있고 얼마든지 젖도 물려줄
수 있다. 이제는 함께 있으니까.....
연희는 진아의 머리를 손으로 쥐어짜 물기를 짜주었다.
"자, 이제 다다. "
"엄마도 머리 풀러. 감겨줄게. "
진아가 머리를 추스르며 말했다. 연희가 머리를 풀고 진아에게 맡겼다. 진아가 연희의
머리를 감겨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유진영은 왠지 질투가 느껴졌다. 물론 진아에게다. 자신은 아무래도
어머니와 함께 목욕같은 건 할 수 없을 것이다. 한데 진아는 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아무 거리낌 없이 같이 목욕할 수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둘다 같은
자식인데..... 진아가 부럽기 그지없다. 자신도 어머니와 목욕하고 싶다. 저렇게 어머니
머리도 감겨주고 싶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과 함께 목욕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마음속에 섭섭함이 일었다.
진아가 머리를 다 감겨주어 머리를 추스르고 있던 연희는 문득 진아가 다시금 자신의
젓가슴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 왜?... "
"으응..... 아냐 아무것도.. "
진아는 그러면서 자신의 자그마한 젖가슴을 한번 내려다 보곤 다시 연희의 젖가슴을
힐끔 쳐다 보았다.
.....설마 딸이 엄마의 큰 가슴을 부러워 하는 것일까? 연희는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얘. 엄만 너만할 때 그만도 않했어...... 그러니 딸이 벌써부터 자신의
가슴이 작다고 고민하거나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연희는 아들을 키우면서 가슴이 더 커졌고 진아를 키우면서 조금 더 커졌다. 그래서
지금의 풍만하고 탐스런 가슴이 된 것이다. 자신이 보아도 스스로의 가슴이 탐스럽다고
느낀다. 연희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유방이다. 신기한건.... 아니 그녀의
친구들이 신기해 하는 건 두명의 아이에게 수유를 했으면서도 모양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전 연희가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온천에 갔을 때
그녀의 친구들은 연희에 가슴에 감탄하며 부러워했다. 크기나 모양, 탄력에서 연희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연희보다 더 큰 가슴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있었지만 그녀는
몸무게가 거의 70키로그람에 육박하니 비교할 대상은 아니었다. 친구들은 연희의
가슴을 부러움 반 시기 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푸념을 해 댔다. 가슴이 무너질까봐
애한테 젖한번 안물렸는데도 이렇다느니, 나도 그렇다느니, 기구같은 것도 사용해
봤지만 세월엔 어쩔 수 없다느니 이런 얘기였다. 그때 연희는 친구들에게 '젖을 물려야
가슴이 예뻐지지' 하고 말했다가 '네 가슴이 특이해서 그렇다'고 빈축만 샀었다. 어쨌든
연희의 가슴이 크고 아름답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었다.
"자, 이제 물한번 끼얹고 나가자. "
연희가 바가지를 들고 일어서며 진아에게 말했다. 그리고 욕탕쪽으로 몸을 돌렸다.
유진영은 얼른 또 머리를 내렸다. 하지만 연희는 몸을 돌리는 순간 욕실 벽에 있는
창 아래로 검은 머리칼이 쑥 내려가는 것을 보고 말았다.
......누구?....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세사람밖에 없는 집에서 두사람이 지금
여기 있으니 범인은 나머지 한 사람밖에 없다. .....진영이가 우리 목욕하는 걸 훔쳐 봤단
말야?....... 연희는 진아를 쳐다 봤다. 진아는 아무겄도 모르는 듯 바가지로 몸에 물을
끼얹고 있었다. 연희도 물을 퍼 몸에 끼얹었다. 그러다가 '훗' 하고 웃고 말았다.
.......남자 아이와 함께 사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연희는 소년의 엉큼함에 화가 나기보다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왜웃어? "
물을 끼얹던 진아가 갑자기 연희가 혼자 웃자 의아한 듯 물어보았다.
"응?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자, 다 했으면 이제 나가자. "
"응. 엄마. "
연희는 진아와 함께 탈의실로 나가면서 문득 생각했다.
'그 아이 나를 훔쳐 본 걸까? 아니면 진아를 훔쳐본 걸까? '
.....만약 진아를 훔쳐본거라면 용서할 수 없어....라고 연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엉큼하게 자신의 여동생을 훔쳐보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을 훔쳐본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는 오직 연희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마음일 것이다.
다시 슬쩍 창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연희와 진아가 탈의실로 사라지는 것을 본
유진영은 창에서 내려와 건조대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허겁지겁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나오기 전에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한다. 딴짓 않하고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었다는..... 유진영은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움직였다. 추위 따위는 느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꼭 노동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열심히 팔을 움직이는 중에도
유진영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어머니와 여동생의 영상이 남아있었고 아직도 흥분으로
얼굴은 발갛게 상기된채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 흥분은 아마도 금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유진영이 막 눈치우는 것을 끝내고 밀대와 싸리비를 들고 현관앞으로 돌아올 때
현관문이 열리며 연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진영아 다 끝냈니? "
현관문이 열리고 연희의 모습이 보이자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란 유진영은 그만 약간
큰, 그리고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고 말았다.
"예? 예, 어머니.... "
연희는 아들의 그런 어색한 모습에 그저 태연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럼 얼른 들어와서 목욕해. ...춥지? "
"아.... 아뇨.... "
"자, 어서 그것들 집어 넣고 들어와. "
연희가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유진영은 허겁지겁 밀대와 싸리비를 보관창고에다
집어넣고 현관으로 뛰듯이 들어갔다. 신을 벗자 연희가 유진영의 겉옷을 받아 준다.
쇼파에 앉아있던 진아가 유진영에게 말했다.
"춥지 오빠. 얼른 들어가서 목욕해. "
"...으응....... "
진아는 몸에 두툼한 커보이는 실내용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아마 연희의 것인 듯
하다. 어쨋든 유진영은 대답을 하면서도 찔리는 게 있는지라 진아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자 얼른 욕실로 들어가. "
"...예. "
연희가 유진영을 욕실로 이끌었다.
"물이 좀 식었을 테니까, 더운 물좀 터 탄다음에 푹 담그고 있어. 감기 걸리지 않게
알았지? "
"....예.. "
"그리고 엄마가 속옷하고 새로 같다 줄 테니까 젖은 옷 입지 말고. "
"....예... "
"..후후... 그럼 어서 목욕해. "
탈의실 앞에서 연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유진영에게 미소지어 보이곤
문을 닫아주었다.
유진영은 옷을 벗고 욕실안으로 들어갔다. 욕탕안의 물을 만져보니 약간 식어있었다.
유진영은 수도꼭지에서 더운물을 더 틀곤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문득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자신의 음경은 아직도 약간 흥분상태다. 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의 몸을 다시
떠올리니 이내 완전히 발기가 되어버렸다.
......이런..... 유진영은 씁쓸함을 느낀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떠올리며 발기되어 버리는
것....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성은 그렇게 생각해도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유진영의 음경은 변함없이 발기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진영은 자신의 음경을 잡아보았다. 음경 가득 힘이 충만해 있다. 꺼덕이는 맥박이
손에 느껴진다. .......할까?...... 유진영은 문득 자위욕구를 느꼈다. 사실 유진영은 자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욕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쯤은 충분히 참아낼 수
있고 참는 쪽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때문에 그 나이
또래들과는 달리 자위를 거의 하지 않았었다. 처음 호기심에 몇 번 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척 하고 싶었다. 참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어머니와 동생의 알몸을
보고 흥분해서 자위까지 한다는 것은 역시 잘못이라는 생각이 유진영을 가로막는다.
유진영은 음경을 잡은 채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한동안 갈등했다. 그러다
결국 유진영은 슬슬 음경을 움켜쥔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욕망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진영은 마지막 양심에 필사적으로 어머니와
진아의 모습은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진영아? "
그때 탈의실로 통하는 문이 '드륵' 소리와 함께 열리면서 연희의 목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유진영은 그만 기겁을 하며 욕탕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첨벙!!-
"...어푸....우풋... 앗뜨..... "
머리부터 쳐밖힌 바람에 물을 들이킨 유진영은 다음순간 뜨거운 물의 온도에
기겁하며 일어나려다가 연희가 보는 앞에 알몸인 채로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다시 푹
주저앉고 말았다.
"어머!... 진영아 뎃니!? 얼른 나와! "
연희가 깜짝 놀라며 얼른 욕탕앞까지 달려왔다.
"....괜....괜찮아요... "
유진영이 수도꼭지를 잠그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사실 갑자기 뛰어드는 바람에 놀란
것 뿐이지 욕탕안의 물은 델정도로 뜨겁지는 않았다.
"정말 괜찮아? "
연희는 유진영이 나오려 하지 않자 손을 넣어 물의 온도를 재 보곤 그제서야 안도를
했다. 그리고는 곧 재밌는 듯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어머니..... "
유진영은 물속에 턱밑까지 담그고는 손으로 아랫도리를 꼭 가린 채 울상을 지으며
웃고 있는 연희를 올려다 보았다.
"호호.... 아유.... 진영이 너 ....갑자기 그렇게 탕에 뛰어들면 어떻하니?... 호호호... "
"...어머니야 말로 그렇게 갑자기 문을 열면 어떻게요? 목욕하고 있는데..... "
"호호... 왜? 엄마가 아들 벗고 있는 것 좀 보면 어때서? 엄만데 어때? 안그래? "
......어머니가 이렇게 당당하게 나온다면 할 말이 없다........ 유진영은 빨개진 얼굴로
연희를 보다 토라진 듯 고개를 숙였다. 연희는 그런 유진영을 보며 미소지으며 말했다.
"엄마가 탈의실에다 속옷이랑 옷이랑 가져다 놨어. 목욕 끝내고 갈아입어. 알았지? "
".....예.... "
유진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희는 그런 아들에게 후후 미소지었다.
"그럼 엄마 나갈게, 목욕해. "
연희는 돌아서 욕실을 나갔다.
유진영은 연희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원망섞인 시선을 보내다가 한숨을 쉬며
욕조안에 편안하게 몸을 뉘었다. 기분좋은 따듯함이 이제사 비로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왠지 욕조의 물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듯 하다. .....어머니와 진아가 몸으
담갔던 물이라서 그런가?.........
탈의실에서 아들이 벗어놓은 옷을 정리해 세탁기에 넣으며 연희는 그래도 재미있는지
다시끔 호호 웃음지었다. .....복수는 확실하게 했어.....
'그런데 그 아이 뭐 하고 있던 걸까? '
문득 연희는 궁금함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혹시 고추 만지고 있던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약간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뭐 어때. 엄마가 아들의 일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거잖아?...... 연희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당위성을 부여했다.
.......그런데 정말로 고추 만지고 있던 걸까?.....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이 문쪽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어서 확실히 보지는 못했었다. 왠지 조금 아쉽다.
.......근데 왜 만지고 있었을까? ...어떻게 생겼을까? ....그때는 조그만하고 이뻤었는데
지금은 고추도 많이 컷겠지? ....몸이 커졌으니까 아마도...... 갑자기 모든 것이
궁금해지는 연희였다. 그러다 문득 연희는 왠지모르게 상기된 자신의 볼을 느끼곤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 후 탈의실을 나왔다.
"엄마, 목욕탕에서 무슨 일 있었어? "
쇼파로 다가오는 연희에게 진아가 물었다.
"응? 아니 별거 아냐. "
"흐응? "
왠지 웃음기가 남아있는 얼굴로 대답하는 연희에게 진아가 탐색하는 눈길을
던져봤지만 연희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거실 테이블 밑에서 손톱 소재함을 꺼내곤
소파에 편안히 기댔다. 목욕 후 손톱 소재는 연희가 평소에 하던 일이기에 진아는 더
이상의 관심을 끊고 보고있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잠시후 들려온 소리가
이상했다.
-또각.. 또각-
"엄마 뭐해? "
진아가 손톱을 짧게 깍고 있는 연희를 보곤 깜짝 놀라서 물었다. 진아는 연희가 제법
길게 기른 손톱을 평소 신경써 관리 해 온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손이 예쁜 연희는
긴 손톱도 예쁘게 잘 어울렸었다.
"보면 모르니? 손톱깍고 있잖아? "
"....그러니까... 왜 깍냐구.... "
"...그냥.... 귀찮아서... "
진아는 다시금 더욱 탐색하는 눈길로 이해할 수 없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여태까지
쭉 애지중지 관리해오던 손톱을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저렇게 깍아 버리다니...
아무래도 이상해.....
연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톱을 깍는다. 가볍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다.
'잘못하다가 손톱에 긁히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아이 있는 여자에게 긴 손톱같은
건 사치야. '
연희의 생각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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