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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계절

조회 9042 추천 0 댓글 0 작성 13.08.02

아담의 계절(1) 창작야설 
 
여자, 혹은 섹스에 관한 한 나처럼 지지리도 재주 없는 놈이 또 있을까? 나처럼 재수
에 옴붙은 놈이 또 있을까?
결론부터 말 하자면 나는 만 22살이 넘도록 아직 숫총각이다. 요즘 '나이 스물 넘은
숫총각은 천연기념물'이라고까지 말하는 세태인데 정말 창피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고자라거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허우
대는 멀쩡했고 남들로부터 "연장이 잘 생겼다"는 말도 가끔 들어 온 터다.
특별히 결벽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카톨릭 신부나 승려같은 성직자가 된다거나 독신
으로 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나는 주위 사람들이나 심지어 가족들에게서 조차 '변태'니 '섹스광'이니 하는
말을 들을 만큼 씹 한번 해보는 것을 간절히 열망해 왔고, 남달리 노력과 집착을 기울
여 왔다. 그러나 세상의 온갖 연놈들이 나름대로 씹을 해가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겄만 나만은 정말 재주가 없고 재수에 옴이 붙었는지, 항상 실패와 좌절만 경험했을
 뿐이다.
하기야 나의 잘못도 있다. 좀 더 과감히 밀어부쳤더라면, 좀 더 뻔뻔스러웠다면, 아니
 그 빌어먹을놈의 맹서같은 것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좀 더 일찍 총각딱지를 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어떻는 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한없이 치욕스럽고, 실패와 회한만 가
득한 내용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내가 처음 씹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빨리 왔다. 이미 초등학교 3학
년 때부터 이른바 빠구리를 시도했었으니까.
그해 여름방학 때 나는 같은 반의 상태, 원칠이와 저수지로 수영을 하러 갔다. 우리는
 거기서 오줌 멀리 나가기와 자지 크기 시합도 했다. 오줌은 내가 제일 멀리 나갔고,
자지는 포경수술도 안 한 원칠이의 것이 그중 길었다.
그 놀이도 끝나 잠시 심심했던 차에 상태가 불쑥 말을 꺼냈다.
"야, 너희들 빠구리 어떻게 하는지 알아?"
나도 웬만큼은 알고 있었지만 짜식이 또 무슨 공갈을 치려나 싶어 가만히 있는데 원칠
이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모양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빠구리가 뭔데...?"라고
물었다.
"여자 보지에 남자 자지를 박는 거야. 그래서 좆물이 들어가면 아이가 생기기도 하고
여지는 좋아서 흥야, 흥야 하지."
"네가 해 봤어?"
무식이 탄로난 원칠이는 반발심에서 이렇게 물었다.
"임마. 꼭 해봐야만 아니? 나는 못해 봤지만 우리 아빠 엄마가 하는 건 많이 봤단말야
. 아빠 엄마 모두 홀딱 벋고 서로 끌어 안은 채 자지를 박는데 심할 때는 엄마가 '아
이고, 나 죽어. 그만, 그만,,,'하며 막 울기도 하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더 해 달
라는거야. 그래서 아빠 좆물을 다 받고 나서도 한참동안은 좋아서 흥야, 흥야 하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그때까지 잠잫고 있던 나도 대화에 끼어 들었다.
"그런데 나도 아직 빠구리는 못해 봤는데 이 참에 우리 빠구리나 한번 할까?"
이렇게 빠구리의 제안은 내가 먼저 했다. 두 친구도 대뜸 찬성했으므로 우리는 곧 구
체적 계획과 역할분담을 짜기 시작했다.
우선 장소는 상태의 집으로 정했다. 상태 부모는 대로변에서 분식센터를 하고 있어 낮
에는 집에 상태와 2살 아래인 여동생 상미 뿐이라 우리의 비밀공작에는 더 할 나위 없
는 아지트였다.
빠구리의 상대로는 역시 같은 반인 영숙이를 찍었다. 사실 영숙이는 그리 마음에 드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때 키는 나보다 좀 컸지만 깡마르고 새까만 피부에다 쪼그만 눈
은 꼬리가 올라가 있어 예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계집애였다.
어머니는 일찍 가출을 했고,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계모와 함께 사는데 옷차림도 늘 후
졌고, 머리에 이가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같은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당하
는 좀 불쌍한 소녀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만만한 상대이기도 했다.
영숙이를 꼬여 오는 것은 상태가 맡기로 했다. 그래서 적당히 분위기가 잡히면 좋은
말도 빠구리를 제의한다. 영숙이가 거절하면 그때는 원칠이가 나서서 공갈을 친다. 여
학생한테 짓꿎기로 소문난 원칠이의 협박을 웬만해서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영숙이가 끝내 싫다고 버틴다면 힘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온몸을 꽁꽁 묶고 강제로
옷을 벗기는데 이때는 뚝심이 센 편인 내가 앞장 서기로 했다.
"뭐 밧줄이나 노끈 같은 것이라도 미리 마련 해야 되지 않을까?"
매사에 준비성 많은 내가 이렇게 말하자 상태는 "우리집 장농에 아빠 넥타이나 혁대가
 많으니까 그걸 쓰면 돼"라고 해서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이튿날 영숙이가 약속된 시각에 오자 우리는 상미를 내쫒고, 미리 준비한 과자와 쥬스
를 먹으며  만화책도 함께 보고 게임도 했다.
영숙이는 처음 '악동 삼총사'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아주 긴장한 듯 했으나 우리 모
두가 친절하게 대하자 나중에는 아주 감동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상태가 "우리 빠구리
나 한번 할까?"하고 말을 걸었을 때도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시작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밧줄이나 노끈을 준비했더라면 괜히 헛물만 켤 뻔 했다.
우선 일번타자로 상태와 영숙이가 아래를 벗었다. 정말 고추처럼 생긴 상태의 자지는
빳빳하게 성이 나 있었다.
영숙이의 보지는 밋밋했다. 그러나 애들 보지야 나도 익히 보아온 터이건만 막상 진짜
 빠구리를 한다고 생각하자 가슴도 약간 두근거리고 어느 새 내 자지도 빳빳해 졌다.

상태는 똑바로 누은 영숙의 허벅지 양 옆에 무릎을 꿇고 자지를 박으려 했다. 그러나
칼자국처럼 좁은 틈새로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몇번을 시도하다 안되자 상태는 "야,
좀 벌려 봐"라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영숙이가 무릎을 약간 세우고 양손을 대자 발그
레한 보지 속살이 들어났다. 그래도 상태의 자지는 쉽게 박아지지를 않았다.
"얘, 침을 좀 발라 봐."
영숙이의 말에 상태는 "네까짓게 뭘 알아"라며 화를 냈지만 다시 몇차례나 실패한 끝
에 결국 침을 바르고 진입할 수 있었다.
둘은 그렇게 살을 섞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기만 했다. 상태는 뒤꼭지만 보여 알 수가
 없었지만 천정을 향해 눈만 멀뚱하게 뜨고 있는 영숙이를 보면 흥야, 흥야 소리는 도
저히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야, 기분이 어떠냐?"
궁금하다 못해 내가 닥아가 묻자 상태는 "좆도, 별거 아니야"라고 약간은 투덜거리듯
하며 일어서더니 "자, 이제 민수 네 차례야"라고 했다.
아, 그때 내가 순서를 그대로 지켰더라면 보지 맛도 보고, 그토록 오랜 세월을 컴플렉
스에 빠져 살지 않을 수도 있었으련만. 그 때 부터 운명은 나를 비켜간 것이다.
나는 "원칠이, 너부터 해"라고 양보를 했다. 웬지 쑥스럽기도 하고 별 재미도 없어 보
여 좀 더 지켜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원칠이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한번 지켜 본 눈썰미 때문인지 원칠이 자지는 침을
안 바르고도 바로 들어갔다. 그러나 영숙이는 좀 화가 난 듯 했다.
"얘들이 아주 맹탕이네. 아, 자지를 뺐다 박았다 해야지."
원칠이는 그 말도 순순히 따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들썩거리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
지더니 원칠이는 "으 으, 이상해"라며 신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점차 둘다 가쁜 숨소리가 나왔다. 하기야 저렇게 쉴 새 없이 박아대는 자지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보지나 다 힘도 들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것이 진짜 빠구리 같았다. 구
경하는 나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에는 땀이 나고, 바지 속에서 자지가 끄떡거렸다.
하지만 그 격동의 움직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원칠이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동작을 멈추고 일어났다. 내가 원칠이에게도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원칠이 역시 "
이상해"라고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하는데 눈도 좀 이상하게 풀어져 있는 것 같았다.

영숙이 보지는 좀 질퍽해 보였다. 영숙이는 그 물끼를 손가락으로 찍어 자세히 들여다
 보고 냄새도 맡아 보더니 "에개, 좆물도 안 나왔잖아"라고 했다.
그 말에 원칠이는 얼굴을 붉혔다. 나도 웬지 좀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날의
 영숙이는 여유가 있어 상대를 위로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기술은 괜찮았어. 처음 한 셈 치고는... 상태하고는 수준이 달라.'
졸지에 비교 대상이 된 상태는 "씨팔년아, 나도 잘 할 수 있단말야'라고 욕설을 하며
"너 빠구리 많이 해 봤구나. 그렇지?"라고 물었다. 상태가 질문하는 속셈은 뻔했다.
영숙이의 약점을 찔러 창피를 주자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이렇게 어울리지 않고 영
숙의 오늘같은 모습을 알았다면 우리는 영숙이를 '빠구리쟁이'라고 신나게 놀려 댔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의 영숙이는 여유가 있을뿐 아니라 당당하기까지 했다. 배시시 웃으며 "그
렇게 많이는 아니야. 그저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가끔 하지"라고 했다.
상태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아이쿠! 질렸다. 내가
졌다"라는 항복의 표시 같기도 했고. "나 혼자서는 상대가 안 되겠군. 네가 좀 도와
줘"라는 구원의 요청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이날의 영숙이에게 좀 주눅이 들어 있
어 상태의 힘겨운 싸움을 가로맡을 처지는 아니었다.

어쨌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이번에는 나도 기대에 부풀어 날쎄게 바지와 팬티를
벗고 영숙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영숙이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내 자지를 만
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머! 민수는 포경수술도 했네. 대가리가 참 예쁘게 생겼다. 이런 자지가 크면 나팔
좆이 된다더라."
나는 순간 이 애가 너무 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우리가 놀리거나 머리를
한대 쥐어 박으면 꼼짝도 못하고 눈물이나 질질 짜던 계집애가 오늘은 아예 남자 셋을
 갖고 노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셋은 누구도 그날까지 진짜 빠구리를 못해 봤으니 어
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더구나 못생겼어도 여자가 자지를 만지니 기분이 야릇했다
. 하지만 역시 보지 속에 들어가야 제 맛일 것이다.
나는 영숙이의 밋밋한 보지를 봤을 때부터 빳빳하게 서 있던 자지를 한 손 끝으로 잡
고 막 보지 속으로 진입하려 했다. 이때 누군가 방문을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아까 우리가 굳게 잠궈 놨으르모 열릴 턱이 없다. 그러나 곧 문이 깨어질 듯 쾅쾅거
리며 이어 앙칼진 고함이 들려 왔다.
"상태야, 이 새끼야! 냉큼 이 문 못 열어?"

상태 엄마였다.
우리는 모두 혼비백산하게 놀랐다. 상태 엄마는 우리 동네에서 거세기로 소문난 여자
다. 상태는 수시로 제 엄마한테 얻어 맞으며 살았고 수 틀리면 남펀도 팬다는 여자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는 나와 영숙이가 미처 옷을 챙겨 입을 틈도 주지 핞고 방문
을 열어 주었다.
방안을 휙 둘러 본 상태 엄마는 한 눈에 사태를 파악한 듯 했다. 옆구리 쪽으로 상미
가 얼굴을 내밀자 "너는 나가 있어"라며 거칠게 밀어 버리고는 방문을 콱 닫았다. 나
도 나름대로 사태를 파악 했다.
우리와 함께 놀겠다고 매달리던 상미를 내 쫓았더니 이 계집애가 앙심을 품고 제 엄마
한테 우리가 "못된 짓을 하고 있다"고 일러바쳐 저 마귀할멈 같은 여지를 끌고 온 것
이다.
"이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상태엄마는 곧바로 아들 쪽으로 가더니 상태의 면상에 펀치를 날렸다. 나는 여자가 주
먹으로 남을 때리는 장면을 그 날 처음 보았다.
그 펀치는 정식 어퍼커트가 아니고 약간 오픈성이 있는 훅이었지만 상태는 벌렁 나 자
빠졌다. 상태 엄마는 쓰러진 아들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더니 이번에는 왼 손으로
 배를, 오른 손으로는 턱을 가격했다. 상태는 또 벌렁 나 자빠졌다. 
"일어나, 이 새끼야. 엄살부린다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아? 너는 오늘 직코로 걸린 거야
."
상태 엄마는 이번에도 똑같은 컴비네이션의 펀치로 상태를 다운 시겼다. 내가 보기에
상태 엄마는 아들을 훈계한다기 보다 오랫만에 몸을 풀게 되어 즐겁다는 표정이었다.
다시 상태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을 때 상태는 필사적으로 제 엄마의 허리를 잡으며 절
규했다.
"엄마,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냥 구경만 한거야! 쟤네들이 하면서 그냥 보라고
해서 구경만 했어."

비겁한 배신자 자식. 상태는 고개를 우리 쪽으로 돌려 나와 영숙이를 지목했다. 상태
의 클린치 작전은 일단 성공했다. 상태 엄마는 막 내 지르려던 주먹을 내려 놓고 우리
쪽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그 웃음은 어린 아이들을 잡아 먹는다는 마귀할멈을 연상케
 해 화 난 얼굴보다 더욱 소름이 끼쳤다.
"꼴에 부끄럽냐? 그 손 치워 봐."
나와 영숙이는 그때까지 상태 엄마의 강 펀치에 놀라 미처 옷을 챙겨 입을 엄두도 못
내고 엉거주춤 서 있기만 했다. 그리고 정말 우습게도 둘 다 두손으로 아래 쪽을 가리
고 있었다. 그러나 상태 엄마의 첫마디는 부드럽게 들린 탓인지 우리는 아무 동작도
새로 취하지 않았다.
"그 손 치우라니까!"
앙칼진 고함에 나와 영숙이는 화들짝 놀라며 동시에 두 손을 뒤로 뺐다. 내 자지는 어
느 새 번데기처럼 줄어 들어 있었다.
"원, 녀석들. 이런 벌레 같은 것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상태 엄마는 그 번데기를 손으로 툭툭 치며 비웃었다. 나는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별나고 비장한 것인가를 그때 체험했다. 상태처럼,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죽을 지경으로 매를 맞더라도 이렇게 모욕을 받는다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이미
그때 하게 된 것이다.
"너도 아직 영글지도 않은 것이..."
상태 엄마는 영숙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이 계집애는 물까지 쌌잖아. 벌써 맛을 아는 모양이로군. 네가 꼬리 친거지?"
"아니예요, 아줌마. 저는 아니예요."
영숙이는 훌쩍거렸다. 조금 전까지 당당하고 여유롭던 모습은 간데 없고 어느새 늘 핍
박받는 가련한 소녀로 되돌아가 있었다.
"쟤가 시키는대로 안 하면 맨날 괴롭히고 학교에 나쁜 소문도 내겠다고 해서..."
비겁한 배신자 년. 이번에도 영숙이는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보니 민수 요녀석, 네가 주동자로구나. 나는 그래도 네가 공부도 잘하고 순진
한 아이로 알았는데...?"
아니, 이렇게 억울할 데가 있나. 여기 있는 4명중 빠구리를 못해본
사람은 나 하나 뿐인데 덤터기는 나 혼자 다 뒤집어 쓰다니... 진실규명의 차원에서라
도 이 누명은 벗어나야 한다.

상태 어머님. 귀하는 지금 큰 오해와 착각을 하고 계십니다. 진짜 빠구리를 한 것은
저 두놈과 저년입니다. 지금이라도 저 두놈의 아래를 벗겨 보시면 움직일 수 없는 증
거를 포착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빠구리를 시도했었다는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지 미수범일
뿐입니다. 명백한 현행범과 미수범은 그 죄질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듯 형량, 아니 그
징벌에서도 차별화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며 죄질이 가
장 경미한 저에게 관대한 처분을 요망하는 바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입을 빠져나간 말은 "아, 아, 아줌마.., 사실
은 그, 그, 그게 아니고..."라는 더듬거림 뿐이었다.
"아니, 요 녀석 봐라. 이렇게 아래를 홀랑 까고 있으면서 또 무슨 거짓말을 까겠다는
거냐? 안 되겠다. 너의 부모님하고 학교에 알려서 한 번 혼찌검이 나도록 해야지."
이 말에 나는 모든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정말 서럽게 울면서 "잘못 했어요. 다시
는 안 그럴테니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라고 빌었고 "제발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
아 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였다.같은 말을 백번은 더 한 끝에 겨우 용서한다는 언질을
받아 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컸다.
"그렇다고 우리 분식센터에 발을 끊으면 안 돼.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더 자주 와야
지."
상태 엄마는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 했지만 나는 그것이 조건부라는 것을 알았다. 이
제 용돈으로 햄버거를 사 먹거나 전자오락실에 가기는 다 틀렸다. 모두 다 분식센터에
 갔다 바쳐야 할 판이다.
사태는 일단 이렇게 수습되었지만 나의 억울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배신자들에게 저주 있으라.
그날 그 연놈들이 나를 마귀할멈에게 팔아 먹으면서 상태는 더 이상 제 엄마의 강펀치
를 맞지 않았다. 영숙이는 상태 엄마한테서 생리대까지 하나 얻어 차고 갔다. 특히 우
리 셋중 가장 실속있게 재미를 본 원칠이는 내가 울며 불며 용서를 비는 와중에서 옥
한마디 듣지 않고 넘어가 버렸다. 이렇게 재수 옴붙은 놈과 온 좋은 놈은 운명부터 다
른 것이다. 더욱 억울한 것은 이 일이 끝내 우리 가족에게까지 일려 졌다는 점이다.

하루는 집에 나와 민정이 누나, 누이동생 민정이등 셋만 있을 때였다. TV에서 프로야
구 중계를 하기에 채널을 돌렸더니 만화영화를 계속 보겠다던 민정이가 심통이 난 모
양이었다.
"언니, 오빠가 영숙이하고 빠구리 했다."
불쑥 튀어 나온 말에 나나 누나나 모두 깜짝 놀랐다.
"아니, 너는 어린애가 무슨 그런 소리를...? 너는 그게 무슨 말인줄이나 알고 하는 소
리냐?"
누나의 질책에 민정이는 당당하게 맞섰다.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봐. 여자 보지에다 남자 고추를 집어 넣는거지."
"어머,어머! 얘가 무슨 그런 상소리까지..."
누나는 자신이 제일 큰 잘못을 한 사람처럼 얼굴을 붉혔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나는 이
러한 누나의 변화에 무척 재미 있어 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민지 누나는 얼굴이 제법 예쁜 편이지만 또 지독한 공주병 환자다.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쁠 뿐 아니라 고결하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그래서 벌레나 조
금 더러운 것만 봐도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남들이 조숙하다고 할만큼 벌써 젖통은 간장종지 크기로 부풀어 있고 얼마 전부터 멘
스도 한다. 멘스가 정확히 뭘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와 누나의 말을 엿들은
후 나는 그것을 빌미로 자주 누나를 놀려 먹을 수 있었다.
6학년 형들이 여학생들을 놀리는 것을 흉내내어 괜히 그 앞에서 코를 킁킁 거리다 "어
휴, 냄새! 그 멘스 냄새 참 더럽다" 라고 하면 얼굴이 빨개 져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이 웬만한 장난보다 훨씬 재미 있었다.

그러나 이날 누나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공격적이었다. 나를 매섭게 째려 보며 "너, 민
정이 말이 정말이냐?"고 다그쳤다.
"무슨 소리야?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고 아무 짓도 안 했어."
이런 상황에서 시침을 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나는 강력히 부인했다.
"피, 거짓말. 그날 상미 엄마한테 현장을 들켜서 늘씬하게 얻어 맞았다는네..."
"이 쌍년아! 매 맞은 건 상태 새끼야. 나는 한대도 안 맞았단 말야."
나는 민정이가 얄밉기도 한 터에 틀린 말을 했으므로 거세게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누나는 노련한 형사처럼 내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역시 지나친 흥분은 일을 그르치
기 쉬운 것이다.
"아하, 그러니까 현장을 잡힌 것은 사실이로구나. 어쩌면 어린애들이 벌써부터 그런
짓을 하니? 너는 확실히 변태야."
"아, 오빠가 변태라서 그렇구나."
민정이가 거들었다. 변태가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강도나 도둑놈
보다 더 심한 욕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정말 화가 치밀어 만만한 민정이
를 향해 "이 쌍년이..."라며 주먹을 쳐들었다. 그러나 이날의 터미네이터인 누나가 가
로막고 나섰다.
"아니, 못된 짓을 한데다 상소리까지 해 대더니 이제는 동생한테 폭력까지... 안 되겠
다. 아빠 엄마한테 일러서 된통 혼이 나야지."
나는 그때부터 유달리 명예를 중시하는 타입이었을까. 남에게 이른다는 말만 나오면
온몸에 힘이 빠져 버리는 것이다. 상태 엄마한테 처럼 누나한테도 비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같은 말을 열번도 더 한 끝에 겨우 아빠 엄마한테 안 이른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
러나 역시 그 후유증은 컸다.
그 후부터 우리집 TV 채널권은 오랫동안 민정이가 장악했으며 다시는 누나를 놀릴 수
도 없었다. 딱 한번 하도 누나가 얄밉게 굴어 "어휴, 멘스 냄새..."하고 말을 꺼냈더
니 얼굴을 붉히기는 커녕 매섭게 나를 노려보며 "이 변태가..."라는 통에 꼼짝 없이
물러서야 했고 그 후로 다시는 그 말을 사용하지 못했다.
이렇게 나는 빠구리도 못해본 채 억울한 누명만 쓰고 그 후유증으로 한 없이 우울하고
 불행한 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아담의 계절(2) 미지정 
 
"자, 이 순간부터 우리는 수능지옥에서 해방되었음을 선포하노라."
나는 500cc 생맥주 잔을 높이 들고 연극대사조로 이렇게 말했다. 동석한 4명의 피 끓
는 젊은이들도 맥주잔을 함께 부딪히며 "브라보!" "위하여!"등을 외쳤다.
우리는 이렇게 해방의 감격과, 앞으로 전개될 흥미진진한 일들에 대한 기대감을 자축
했다.
해방이란 정말 좋은 것이다. 우선 기분이 날라갈 듯 가뿐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
지 얼마나 짓눌려 살아왔는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오늘 대입 수능시험
을 치루었다. 앞으로도 눈치지원과 논술고사, 면접 등의 관문이 남아 있지만 일단 '삼
각함수의 그래프 판별'이니 '구리의 비열 산출 방정식'등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필요없
는 시험문제들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한번이라도 대학을 지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정말 대한민국의 입시제도
는 못 돼 먹었다. 타고 난 천재이거나, 아버지 끗발이 짱짱해 특레입학이라도 한다든
지, 돈이 많아 일찍부터 외국유학을 떠나거나, 아니면 아예 대학입시 자체를 포기 했
다면 괜찮다.
하지만 나처럼 서민의 자식으로 성적은 상위권에 턱걸이 할 정도로 어정쩡한 처지가
되면 정말 대학입시 준비란 지옥생활의 연속이다. 나는 고 2 여름방학 때부터 입시준
비에 매달려 왔으므로 근 1년반을 지옥에서 보낸 것이다.
수험생의 지옥생활에는 가족들도 어느 정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우리집에는 내가
입시전쟁에 돌입한 이후 가족들의 여름휴가도 없어졌고, 집에는 손님도 찾아오지 못
했으며, 가족들은 내 공부에 방해될까봐, 혹은 내 기분을 거스를까봐 큰소리도 내지
못하며 살았다. 아빠 엄마는 섹스도 제대로 못했다. 이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당사
자들로부터 직접 들었으니까.

하루는 내일의 개교기념행사 때문에 오전수업만 하고 집에 갔더니 아줌마 7~8명이 모
여 있었다. 모두 엄마의 여고 동창생들로 한달에 한번씩 돌아가며 점심을 함께 먹고
수다도 떠는 일종의 친목계로 이번달은 엄마가 당번인 모양이다.
엄마와 아줌마들은 나를 보고 모두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나는 "곧 학
원에 가야 하니 마음놓고 즐겁게 놀다 가세요"라고 예의바르게 말했다. 그래서 아줌마
들은 안방으로 장소를 옮겨 숨을 죽이며 하던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그런데 내가 말린
 운동화를 가지러 베란다로 나갔더니 말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수다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아휴,저 상전들.대학입시가 빨리 끝나야지. 우리집에서는 민정이 그년 때문에 아예
밤일도 못하잖아."
민정이 엄마의 목소리였다. 민정이도 나와 같은 고3이다.
"그것 참 문제로구나. 유난히 밝히는 넌데..."
이 소리의 주인공은 입이 걸기로 소문난 배성숙 아줌마다.
"에이, 아무리 아이들 때문에 밤일을 못 할라고...? 그럼 세상의 부부들이 둘째 아기
도 못 만들겠네."
한 아줌마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건 남편의 애정이 식었거나 요즘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등으로 인한 발기불능 때문
일지도 몰라. 남자들은 그런 현상이 나타나도 다른 핑계를 댄다는 거야."
듣고 보니 홍복임 아줌마다. 엄마의 동창중 결혼은 제일 늦게 해서 아직 큰 아이가 초
등학생이란다.
"너는 아직 못 겪어봐서 그래. 우리 애들은 2년 전에 대학입시를 다 끝냈지만 지금 생
각해도 그 시절이 지긋지긋하다."
한 아줌마가 반박했다.
"우선 몸이 고단해서도 잘 못해. 새벽밥 먹여서 학교에 태워다 줘야지. 돌아 오면 다
시 잘 먹여서 학원에 싣고 갔다 밤늦게 데려 오지.그 애 늦도록 공부하는 동안 나는
또 기도해야지. 더구나 자식이 그토록 힘든 일을 하는데 그 시간에 부모라는 것이 옆
방에서 발가벗고 그 짓을 한다는게 염치가 없지. 집에 대학 입시생이 있으면 부모도
아예 생활이 수험생처럼 돼 버린다니까."

"너는 그래서 아들이 서울대학에 갔으니 보람이라도 있지. 우리 민정이 년은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 것이 지 에미 보지에 자물쇠를 채워놓은 격이라니까."
동조자가 생기자 민정 엄마는 푸념에 힘이 생겼나보다.
"우리 남편은 몇달 째 잠자리에서 아예 몸도 건드리지 않는 거야. 나도 더는 못 참겠
더라구. 그래서 하루는 정색을 하고 '한번 하자'고 했지."
"너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그래도 남편은 안 된다는거야. 아까 숙자 말처럼 민정이가 밤새워  공부하는데 부모
로서 그 짓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더구나 나는 소리를 질러 대니까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죽어도 소리는 안 지르겠다고 약속까지 했지."
"그래 하긴 했니?"
한 아줌마가 말 허리를 자르며 물었다. 모두 부부생활을 하면서도 엿보기 취미처럼 남
의 집 안방 일에 호기심이 더 하는 모양이다. 나도 섹스에 관한 이야기라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게 더 죽을 맛이었어. 몇달만에 좆맛을 보니 몸은 오죽 달아 오르니. 그런데 소리
를 안 질러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나기는 커녕 진땀만 바작 바작 흐르지. 그
래서 그 후 한번은 민정 아빠가 집적거리는데 내가 거절 했어. 진땀만 빼느니 민정이
대학입시 때까지는 아예 그 맛을 잊고 살자고 결심을 했다."
"감동적이면서도 지독한 모정이로구나. 혜숙이 너는 어떠냐?"
한 아줌마가 엄마를 대화에 끌어 들였다.

"우리도 잘 못하지, 뭐."
엄마는 그냥 얼버무리려 하는데 그 아줌마가 또 물었다.
"너는 그리 밝히는 편이 아니라도 민지 아빠가 대단한 정력가라며?"
"그렇긴 해. 하루는 퇴근 무렵에 나를 회사 쪽으로 나오라는 거야. 그래서 저녁을 같
이 먹고 어디로 간지 아니? 모텔이었어."
"어머! 느네 신랑은 정말 낭만적이다."
여기 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오며 한 아줌마가 물었다.
"그래, 몇번이나 했니?"
"얘는... 우리가 뭐 십대냐, 몇번씩 하게...하지만 결혼 후에는 처음 가 보는 모텔에
분위기도 야릇하고 해서 좀 요란하기는 했지."
"기집애, 좋았겠다. 요란했다면...너는 신랑 그것 빨아 먹고, 신랑은 네 그것 핥아 먹
고... 너 분명 펠라치오도 했지?"
"느네들은 안 하니, 뭐? 더구나 우리도 살을 섞은지 한달도 넘었는데다 방값이 아까워
서도 어떻게 조용히 그짓만 하고 나오겠니?"
엄마는 마치 죄를 짓다 발각된 사람처럼 변명조로 말 하는데 아마 얼굴도 붉혔을 것
같다. 여기 저기서 또 탄성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엿듣는 나도 어느 새 아래 쪽이 뻐
근해 왔다. 평소 그저 조용하고 정숙하게만 보였던 엄마가 어느날 모텔방에서 아빠와
서로 성기를 빨아 대며 딩굴었다니...아마 조금 후면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마스
터베이션을 하게 되겠지.
그런데 그날 나는 또 하나 감동을 받았다. 못난 아들의 장래를 위해 허가받은 섹스조
차 참고 사는 아빠 엄마의 희생정신에 대해서다. 그래서 나는 그날 중대한 결심을 했
다. 아빠 엄마의 정성에 대한 보답으로 나도 입시를 치룰 때까지는 절대 섹스를 안 하
겠다는...만약 이를 어긴다면, 삼국시대 김유신은 애마의 목을 잘랐다지만 나는 타고
다니는 말도 없으니 좆 대가리를 자르겠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그리고 그 맹서는 지금
까지 지켜져 왔다.

"아빠 엄마, 오늘은 부디 섹스를 마음껏 하소서. 펠라치오를 해도 좋고, 동네가 떠나
갈 듯 소리를 질러대도 좋사옵니다. 부디 마음껏 즐기소서."
나는 속으로 아빠 엄마에게 효심 가득한 축원을 보냈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한마디
덧 붙였다.
"아빠 엄마, 오늘은 소자도 몸을 풀겠나이다. 두분의 당당한 아들로서 소자도 이제 여
자의 몸에 깃발을 꼽겠나이다. 그래서 그 지겨웠던 총각딱지를 오늘은 기필코 떼어 버
리겠나이다."
오늘 우리들의 해방 자축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씹을 하는 것이다. 벌써 오래 전부
터 우리 피 끓는 청년 다섯명은 수능시험이 끝나는 날 미아리 텍사스로 원정을 떠나기
로 약속을 했다. 이렇게 초저녁부터 맥주집에 앉아 있는 것은 단지 워밍 업일 뿐이다.
 더구나 우리는 적당한 알코올이 조루방지에 좋다는 상식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절차상 약간 이견이 생겼다.
현우와 병준이는 어디 디스코 텍이나 나이트 클럽에 가서 몸을 더 풀고 가자고 했고,
상태와 경호는 이집에서 나가 바로 창녀촌으로 가자고 주장 했다.네명의 눈동자가 모
두 나한테 몰려 있었다. 내가 잠깐 사색에 잠겨있는 동안 그들은 나에게 작전권을 준
셈이었다.
"글쎄...어느 쪽을 먼저 가도 괜찮겠지. 하지만 지금 디스코 텍은 한창 붐빌 시간이고
, 이놈 저놈 많이 거쳐가기 전에 여자 쪽을 먼저 찾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표현은 이렇게 점잖았지만 나 역시 방귀를 붕붕 뀌어대며 화장실로 달려가는 놈처럼
한시라도 빨리 그곳에 가고 싶었다.

이제 타임 스케쥴도 확정됐다. 우리는 석잔 째인 마지막 생맥주 잔을 높이 들었고 나
는 또 연극대사를 읊었다.
"자, 우리는 이제 새로운 경지에 접어 드노라! 18년간 간직해 온 동정의 장송을 애도
하며..."
모두 잔을 부딪히려는데 현우가 손을 빼더니 초를 쳤다.
"동정의 장송이라니...? 너 아직 못 해 봤니?"
"그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렇게 초저녁부터 술집에 앉아 있다지만 우리는 아직
고등학생인데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좌중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다른 세명도 술잔
을 내려 놓고 깔깔대며 떠들기 시작했다.
"아니, 민수 이 자식이 아직 숫총각이래."
"와, 대단하다! 천연 기념물이 여기 또 하나 있구나."
'그 잘 생긴 좆을 아직 한번도 안 담그어 봤단 말이냐?"
"민수 너 혹 게이 아냐?"
"게이라면 똥치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 제가 똥빽을 대야지. 야, 누가 박아줄 놈 있어?
"

짜식들이 해도 너무 한다. 어찌나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지 옆좌석 손님들도 우리쪽으
로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그래,네놈들은 언제 딱지를 떼었는데 그리 야단이야?"
나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침착하게 응수했다.
"나는 중 3 때. 처음 보지 맛을 본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지만 그땐 좆물도 안 나왔고
, 본격적으로 한 것은 중3 때부터지."
상태가 마치 누가 물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톡 튀어 나오며 으스댔다. 나는
 상태의 그런 짓거리가 얄미워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의 말은 인정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동창인 상태의 내력은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태는 중 3 때 두살 아래인 친동생 상미와 씹을 했다는 사실을 내게 털어 놓았고, 그
 후로도 수시로 어제는 몇번을 했느니, 어떤 체위로 했느니 하는 것들을 들려 주었다.
 더구나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소위 '빠구리 사건'에는 나도 현장의 목격자였다.
사실은 인정하지만 녀석에게 면박을 주고 싶었다. 야 임마, 제 친동생 따 먹은 것도
자랑이냐? 더구나 처음 빠구리 할 때는 펌프질 하는 것도 몰라서 가만히 박고만 있었
던 놈이... 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는 못 했다. 나 역시 누나나 동생에
게 음심을 품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성공을 못 했지만. 또 초등학교 3학
년 때는 현장에 있으면서도 나만 빠구리를 못하지 않았던가.

"나는 고 2 때."
병준이가 말했다. 나는 병준이의 말도 인정한다. 녀석은 친한 친구들 사이에 꽤 알려
진 '캠코더 사건'의 장본인이다.
병준이는 작년에 학원에서 만난 이웃 여고생을 임신시켰다. 그래서 수술비를 마련한답
시고 제 아버지의 캠코더를 훔쳐 내다 팔았다. 원래 설치기 좋아하는 병준 엄마는 관
리사무소를 찾아 "경비를 어떻게 섯길래 이 모양이냐"며 법석을 떨었다.
공교롭게도 관리사무소장은 전직 형사 출신이었다. 경비로부터 "그날 특별히 드나든
사람은 모르겠고 아들이 검은 색 가방 하나를 들고 나갔다"는 말을 들은 관리소장은
쾌재를 불렀다. 옛날 부하에게 부탁을 했더니 채 몇시간도 안 되어 동네 전파상에서
장물을 찾아낸 것이다. 이 사건으로 병준이는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새우고 나왔고 그
후부터 병준 엄마는 시장을 갈 때나 집에 들어 올 때도 관리사무소가 안 보이는 후문
쪽으로 돌아 다녀야 했다.

"병준이도 보기보다 늦은 편이구나. 나는 고 1 때 딱지를 벗었는데..."
현우에 이어 경호도 말했다.
"나는 고 3 때. 그것도 친척 누나한테 내가 따 먹힌 것 같아. 여기선 내가 제일 늦동
이인데다 내용도 빈약하지. 씨팔, 컴플렉스 생기네."
"야, 여기 천연 기념물 박민수도 있는데 컴플렉스는 무슨 컴플렉스야."
녀석들은 또 다시 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웃으며 칼질을 해 댔다. 나는 그 놈들이
 모두 그렇게 일찍 총각딱지를 떼었다는데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계속 나를 놀려 대
는데 점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냉정한 이성과 판단력으로 분노를 자제할 수 있었다
.

오늘의 빅 이벤트, 수능시험의 결과로 본다면 이자리의 다섯명중에는 내가 단연 월계
관 감이다.
나는 서울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과만 잘 선택하면 서울의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어떤가. 여기 있는 네명중 경호가 서울의 3류 대학이나 지방 캠
퍼스에 정도에 가능성이 있다. 현우는 지방의 후진 대학이나 전문대에 겨우 턱걸이 할
 정도다. 상태는 그나마도 별로 가망이 없다. 어디 정원 미달의 전문대에 원서를 잘
내야 대학 뱃지를  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악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고 3에 올라와서 10번도 넘게 수능 모의고사를
 치룬 터라 서로의 수준을 빤히 알고 있다. 천지개벽 같은 이변이 없는 한 진학의 운
명은 평소의 실력대로 결정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녀석들은 내게 평소 품어 왔던 학업성적에서의 컴플렉스와 질투심을 마침 총각딱지가
화제가 되자 이렇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발산하고 있는 셈이다. 녀석들의 심리를 이
해하게 되자 나는 오히려 동정심조차 우러나고 마음이 느긋해 졌다.

그래서 텍사스를 향해 막 일어서려는네 이번에는 경호가 초를 쳤다.
"그런데 민수야. 너 천연 기념물이라는 말까지 들어 오며 지금껏 지켜 온 동정을 똥치
한데 내 던진다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니?"
"야 임마, 여자는 아무나 따 먹는지 알아? 우리 막내 외삼촌은 일류대 출신에 일류 기
업에 취직해 누가 보기에도 전도양양한 킹카인데 연애 한번 못해보고 숫총각인 채 34
살에 중매로 겨우 결혼을 했어. 섹스라는 것은 것보기와 달리 또 독특하고 천차만별인
 능력이 있는거야."
현우가 내세우는 이론에 나는 더 이상 자제하기가 어려웠다.
"이 새끼가 괜히 남 골 지르네. 그래, 내가 여자 하나 못 따 먹는 좀팽이란 말이냐?"
"너를 좀팽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여자, 혹은 섹스 문제로 보면 결과가 그
렇게 나와 있잖아."
"야 임마. 나도 손짓만 하면 지금이라도 발가벗고 달려 올 계집애들이 줄을 서 있어.
여태까지는 입시 공부하느라 어쩔 수 없었지만."
열이 올라 나도 모르게 좀 과장된 허세를 부리는데 현우는 여전히 "입시 공부는 너 혼
자 했구나"라고 이죽거렸고, 상태도 킥킥대며 "실제로 박아 봐야 아는거지" 라며 가세
했다.

"좋다! 이 새끼들아. 그럼 아주 내기를 하자. 술? 돈? 진 놈이 이긴 놈 앞에서 딸딸이
 치기...? 아무거나 좋아."
나는 선수를 쳤다. 학업성적은 제쳐 놓더라도 외모나 허우대, 운동 실력이나 유머 감
각 같은 것으로도 다 나에 비해 별 볼일 없는 놈들
앞에서 계속 이렇게 밀리며 놀림만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기? 어떤 조건으로 하는 건데...?"
"간단하잖아. 네가 부정하거나 의구심을 갖는 것을 내가 직접 몸으로 실천해 증명하면
 되지. 바로 내일이라도 내가 똥치 아닌 아마추어를 따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창녀하고 하고서도 아마추어하고 했다거나, 아예 하지도 못하고서 딱지를 뗐
다고 하면 어떡하니?"
현우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깐죽거렸다.
"야 이 새끼야.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거야? 이 박민수가 한번 맹서나 약속을 했다면 하
늘이 두쪽 나더라도 절대로 지켜."
계속 열이 치밭자 나도 모르게 행동이 과장 되었다. 나는 한 손을 치켜들어 선서하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이 박민수는 앞으로 절대 동정을 똥치에게 바치지 않겠으며 기필코 아마추어를 따 먹
겠습니다. 이 약속을 에수님, 부처님, 아니 우리 엄마까지 걸고서 맹서하는 바입니다.
...자, 됐냐?"
내 오버 액션에 경호와 병준이가 픽 웃는데 상태가 "민수가 약속이나 정직성만은 틀림
 없는 놈이야. 그건 내가 보증할께"라고 처음으로 나를 거들자 현우도 마지 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는 내기의 조건을 확정했다. 우리가 합의한 내용은 내가 한달 안에 아마추어
를 따 먹으면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처음 "일주일이면 족하다"고 주장했지만 "
지금껏 못 한 것이니 한달로 해 주겠다"고 대단한 인심 쓰듯 말했다. 나도 여유 있는
조건이 손해될 것 없다는 생각으로 받아 들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이날의 텍사스 원정대에서 혼자만 빠지게 되었다. 당장은 좀 씁쓸했
지만 기껏 똥치나 끌어 안는 저놈들보다 나는 품격과 가치가 있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은 특공대다 라는 자부심으로 심경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선택한 나의 새로운 임무가 그토록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게 될지
를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담의 계절(3) 창작야설 
 
네명의 친구가 의기양양하게 미아리 텍사스를 향하는 뒷모습을 혼자 쳐져 바라보게 된
 내 처지는 일단 처량하고 우울했다. 아직 오후 7시가 조금 넘었지만 늦가을이라 벌써
 주위는 완전히 어두어 졌고, 수능시험날이면 어김 없이 그렇듯 기온도 급강하 해 내
기분은 더욱 을씨년 스러웠다.
그러나 순간의 순간의 고통이 영광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있다.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녀석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말자 길거리에서 바로 휴
대폰의 다이얼을 눌렀다. 아까 내가 그 녀석들한테 "나도 손짓만 하면 발가 벗고 달려
올 여자가 줄을 서 있다"라고 한 말은 과장된 것이지만 나도 그리 맹탕은 아니다. 특
히 내게 다혜는 보증수표나 마찬가지다.

"여보세요?"
부드러우면서도 정감있는 다혜의 목소리가 벌써 내 귀를 자극하며 자신감을 북돋아 주
는 듯 했다.
"아, 나 민수야. 우리 지금 좀 만날까?"
"지금 어디십니까?"
"나 지금 밖에 있어."
"그럼 제가 잠시 후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다혜는 이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마 지금 부모님과 같이 있거나 통화를
하기 어려운 입장인가 보다. 우리는 그 전에도 이런 식으로 통화를 할 때가 더러 있었
다.

채 5분도 안 되어 다혜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좀 만나자."
나는 곧바로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 했다. 오늘이라도 바로 해 치워서 그 자식들 콧대
를 납작하게 해 줘야지 하는 마음이 가득 해 말투도 조급해 졌다.
"오늘은 안 돼."
"시간이 늦어도 좋아. 네가 편리한 장소에서 기다릴께."
"나도 지금 밖에 나와 있어."
"누구하고 있는데...?"
휴대폰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통화가 끊겼나 싶어 "여보세요?"를 몇번
이나 거듭했다.
"그런 것 까지 너한테 말해야 하니?"
착 갈아 앉은 음성이었다. 계집애, 삐쳤구나. 마치 다혜가 앞에 있는 듯 나도 모르게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아까 내가 다혜에게 한 말에 대한 응보 같기도 했다. 내
일 다시 대화 하기로 하고 두번 째 통화도 아무 소득 없이 짤막하게 끝났다.

이제부터 무얼 한다지?...금방 나는 다시 처량하고 우울한 처지가 되었다. 후회와 자
책감도 밀려 왔다. 오늘 같은 날 다혜와 있었더라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지금쯤 얼
마나 오붓한 시간이었을까. 괜히 그 녀석들하고 어울리면서 비웃움만 당했고 마침내는
 이렇게 외톨이가 되어 버렸으니...
아까 나는 시험장에서 나와 제일 먼저 다헤와 통화를 했다. 서로의 시험 결과에 대해
서 이야기 하고 다혜가 "시험을 잡쳤다"고 했을 때는 "누구나 기대가 크니까 자기는
시험을 못 쳤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야. 중요한 것은 몇개 틀렸느냐가 아니고, 네가 전
체의 성적 분포에서 어떤 레벨이 있느냐 하는 것이니까 지금부터 기분 상해 하지 말고
 분석 결과를 기다려 봐"라고 띠뜻하게 위로도 해 주었다.

"이제 뭐 할 거니?"
다혜가 물었다.
"응, 어디 좀 볼 일이 있어. 너는 뭐 할 거야?"
"지금 집으로 가는 길이야. 별 계획이 없어. 너는 일이 언제 끝나는데...?'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늦을 거야."
"무슨 일인데...?'
"응, 그런 일이 있어."
나는 얼버무렸고 이런 대화는 빨리 끝내고 싶었다. 다혜에게 우리 학교 악동 녀석들과
 창녀촌에 가는 길이라고는 말 할 수 없지 않은가.
"다른 날로 미루면 안 되니? 나 오늘 슬프고도 심심하단 말야. 무슨 일인데...?"
"그런 일이 있다니까. 꼭 내용까지 말해야 되니?"
나는 이렇게 말하며 통화를 끝냈다. 다혜는 내가 짜증을 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다혜의 완곡한 표현은 절실히 만나고 싶다는 뜻
이다. 그렇지만 벌써 며칠 전부터 친구들과 미아리 텍사스로 원정갈 것을 약속해 놓고
 한껏 부풀어 있는 터에 지금 스케쥴을 바꿀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혜에게 추궁을 당
할수록 양심에도 찔려 왔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 왔더니 엄마가 "왜 이렇게 일찍 들어 오니? 오늘 같은 날 좀 더 즐겁게 놀
지 않고..."라고 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마음도 비뚤어 지기 쉽다. 나는 엄마가 오늘 아빠하고 섹스를 마음
껏 못하게 될까보아 이렇게 말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요."
나는 풀 죽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아침까지 방에서 꼼짝도 안 했다. 그것도 고역이
었다.

다음날 학교는 완전히 파장 분위기였다. 담임은 "마지막 내신에 반영되는 기말고사가
곧 있을테니 긴장을 풀지 밀고 계속 열심히 공부해라"라고 당부 했지만 아무도 그런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더구나 학생회 간부들이 교무실과 타협을 벌여 오늘은 오전 수업만 하고 토요일인 내
일은 완전히 휴강을 하기로 했다. 친구들이 "와!"하고 환호하듯 나도 기분이 좋았다.
2박3일간의 이 황금연휴는 그 녀석들과의 내기를 일찍 끝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
닌가.

나는 댜혜의 교실 주변을 몇차례나 기웃거린 끝에 단둘이 이야기 할 기회를 잡았다.
"수업 끝나고 좀 만나자. 피앙세에서..."
피앙세는 우리가 자주 이용해 온 커피숍이다.
"오늘은 안 돼."
"그럼 내일은 어때?"
"내일은 어디 갈꺼야."
다혜는 그 말만 하고 홱 고개를 돌리며 가 버렸다. 아직 나에 대한 서운함이 안 풀렸
을까. 하지만 내일. 모레 아직 이틀의 시간은 내 편이다.

그러나 다혜와의 일은 계속 어긋났다. 토요일에는 아예 통화조차 안 되었다. 답답하다
 못 해 나는 다혜 어머니에게 전화로 나를 밝히고 다혜를 바꿔 달라고 했다.
"다혜 지금 집에 없다. 오늘 경례네 부모님이 어디 가셔서 그 애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던데..."
경례는 나도 잘 아는 다혜의 단짝이다. 하지만 그 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내가 너무 설
치는 것 같아 더 이상의 행동은 포기했다. 앞으로 여유 있는 시간은 많지만 내기의 날
짜를 속절없이 허비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월요일, 학교에서는 수능시험 성적에 대한 1차 분석이 있었다. 나는 당초의 내 목표와
 비슷하게 전국의 1만명 내 상위권에 속할 것 같아 일단은 안도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그런 결과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교실 전체가 2박3일간
연휴 이야기로 들 떠 있었다.
가족 모두가 갈비집에서 회식을 했고, 누구는 큰 아버지한테 용돈을 두둑히 받았으며,
 여자애들은 나이트 클럽에서 꽤, 삼삼한 바지씨들과 어울렸고, 심지어 추석 때 못 갔
으므로 조상 산소에 성묘를 하고 왔다는 놈도 있었다.

그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병칠이가 제일 연휴를 알차게 보낸 셈이었다.
"나는 스포츠 카에 깔치 하나를 태우고 동해안으로 해돋이를 보러 같지. 하지만 태양
이야 매일 뜨는 것이고 진짜 재미는 처녀 따 먹는 맛이지. 일 치루고 나서 침대 시트
에 빨간 피 한방울 떨여져 있는 것이 참 멋진 해돋이였어."
"와!"하고 몆놈이 환성을 지르고 그중 하나가 "그 깔치가 누군데?"라고 물었다.
"그걸 어떻게 밝히니?"
병칠이는 으스대면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민수, 너는 뭐 했니?"
"나는 서해안으로 해 지는 것을 보러 갔다."
퉁명스럽게 말하고 그 자리를 떴다. 정말 나처럼 연휴를 썰렁하게 보낸 놈은 없을 것
이다.

더욱 썰렁한 것은 다혜가 여전히 내게 쌀쌀 맞았다는 점이다. 내가 여러번 주위를 어
른거려도 나만 보면 얼른 외면해 버려 도대체 말을 부칠 수 조차 없었다. 나는 하교
길의 길목을 지키고서야 겨우 다혜를 대면했다.
경례등 두명의 여학생과 재잘거리며 오던 다혜를 막으며 "이야기 좀 하자"라고 하자
우리 관계를 하는 두 여학생은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런데 경례가 다시 닥아와 "그럼
 우리는 먼저 가 있을께. 그 만화책은 우릴 줘"라고 했다. 그리고 다혜가 책가방에서
무엇을 꺼내는 중 경례가 속삭이는 말을 나는 알아 들었다.
"너 해돋이 여행도 민수하고 같구나!"

나는 다혜의 손목을 나꿔 채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온 몸의 피가 꺼꾸로 흐르는 듯
했다. 나도 눈치 하나는 빠싹이다. 일이 그렇게 된 것이로구나.
"너 똥칠이하고 동해안 갔다 왔지?"
다혜는 그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당황하더니 외면하면서 말했다.
"말 안 할래."
"나쁜 기집애!"
내 손이 날라 갔다. 어찌나 세개 쳤는지 다혜는 자빠질 듯 휘청거리다 그대로 주저앉
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나는 그 때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여자를, 그것도 연약하기 그지
없는 다혜를 때렸다는 자책감으로 빨리 다혜를 일으키고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
다. 한편으로는 배신감에 치가 떨려 더 때려 줘야 한다는 충동도 강했다. 결국 나는
그 중간을 택한 셈이다. 동작은 없이 계속 욕만 해 댔다.

"나쁜 계집애. 더러운 년. 어쩌면 네가 그럴 수가 있니? 너는 창녀보다 더 못한 년이
야. 아니, 창녀보다 더 더러운 년이야."
"왜 때려 이 자식아! 내가 네 노예냐? 네가 내 주인이냐?"
다혜는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 눈에는 독기가 철철 넘쳤다.
"언제 너를 내 노예랬니? 하지만 네가 똥칠이 자식하고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다. 너
 정말 똥칠이하고 했지?"
나중의 질문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유치했다.
그러나 그 때의 내 심경은 정말 절박했다. 절대 그런 일이 없다든지, 같이 갔지만 함
께 자지는 않았다든지, 함께 잤지만 선을 넘지는 않았다든지, 나는 그런 대답을 간절
히 원하고 있었다. 또 다혜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 다혜
는 가혹했다.

"그래, 순결을 바쳤다! 아니, 병칠이와 사랑을 했다. 그게 왜 더럽단 말이냐?"
내 손이 또 날아가려 했다.그러나 오히려 나는 카운터 펀치를 맞고 휘청거리는 꼴이
되었다.
"그런 너는 시험이 끝나자 말자 갈보한테 달려 가니? 이 더러운 자식아!"
나는 다혜가 창녀나 매춘부라는 말 대신 갈보라는, 고풍스런 단어를 쓰는 것이 신기했
다. 하지만 지금은 그따위 어휘를 따질 계재가 아니고 우선 내 결백을 밝히는 것이 급
했다.

"무슨 소리야? 난 그런데 간 적 없어."
"흥, 이제는 거짓말까지...치사한 자식."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거짓말이지."
"야, 우리 학교 여학생 전체가 그 다섯놈 명단까지 다 외우고 있어. 사내 자식들은 그
런 것도 무슨 자랑이라고 떠 벌이고 다니지. 더럽고 치사한 자식들."
나는 그 때야 다혜가 내 지른 카운터 펀치의 위력을 실감했다.
아, 어쩌면 나에게는 이렇게 일이 뒤틀리기만 할까. 나를 빼고 그 네놈중 어떤 정말
치사한 바보가 자랑이랍시고 떠 벌인 것이 분명했다. 그 유탄이 하필이면 그날 보지맛
도 못 본 나에게 날아 와 이렇게 치명상을 입힌단 말인가.

어차피 이제 다혜와는 깨어진 거울이다. 다시는 다혜 앞에 어른거리지 않으리라. 하지
만 떠나더라도 더러운 놈이라는 누명만은 벗어야 했다. 결백을 주장하자니 어느 새 나
는 수세의 입장이었다.
"정말 나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 그날 그 자식들하고 술은 함께 마셨지만 네 말대로
갈보 집을 갈때 나는 빠졌어. 더구나 나한테 여자란 너 하나 뿐이었어."
감정이 격해 지며 마지막 말은 떨려 나왔다.
"누구는...?"
다혜의 눈에 독기는 좀 가셨지만 여전히 쌀쌀하고 도전적이었다.
"하지만 너는 여전히 시시하고 별 볼 일 없는 놈이야. 지금도 너 자신은 불쌍하게도
네가 잘 나고 대단한 줄 착각하고 있겠지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면, 배신하고 몸을 내 던진 것은
저인데 그러면 자신이 미안해 하고 부끄러워 해야지, 왜 내게 계속 포악을 떠는 것일
까.

"여자가 수치심도 자존심도 버리고 세번 씩이나 편지를 보냈으면 아무리 잘 난 사내
자식이라고 무슨 반응이 있어야 할 꺼 아냐? 흥, 그런 내가 미친 년이지."
"무슨 편지를...?"
"써서 책갈피에 넣어 줬으면 됐지, 피켓처럼 들고 서 있어야 하니?"
"책갈피..."
그 말을 속으로 되뇌이면서 그 때야 비로소 나도 감 잡히는 게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말 없이 몸을 돌려 좀 비틀거리는 느낌으로 그 골목을 빠져 나왔다. 내 뒷모습을 향해
 다혜는 "시시한 자식, 치사한 자식..."이라고 쫑알거렸지만 이제 그런 것이 큰 문제
는 아니었다.

나는 내 방의 책꽂이 앞에 섰다. 다혜가 최근 내게 빌려 갔다가 되돌려 준 세권의 책
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공통수학 ABC' '국어문제의 함정 비켜 가기'
'수능정복 수리탐구'라는 세권의 책을 뽑아 냈다. 그중 한권을 펼치니 4각으로 접은
핑크빛 종이가 떨어져 나왔다.

            지금은 새벽 2시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기도 싫증이 나서
            베란다로 나와 창문을 열고
            직접 하늘의 별을 보았지

            지금쯤 민수는 무얼 하고 있을까
            혹 나처럼 별을 세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 언젠가 민수가 말한
            우리들의 별은 어디쯤 있을까

            나는 참 바보지
            별을 바라 보면서도
            민수 생각만을 하고 있다니
            하지만 나는 이 감정의 질곡을 벗어날 수가 없어

            차라리 내 몸을 내 던져
            모든 것을 잊고 싶어
            아니, 온 몸을 다 바쳐
            완벅한 사랑을 하고 싶어

            나는 이제 나 자신을
            더 이상 기만하고 싶지 않아
            이제 나는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 있어
            오늘 밤도 네 꿈 꿀께. 안녕     
              
                       from 별을 보며 꿈꾸는 소녀가

다른 두권의 책갈피에서도 곱게 접힌 종이가 튀어 나왔으나 나는 더 읽지 않았다. 나
도 베란다로 나와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날씨가 흐려 별은 하나도 보
이지 않았다. 그 깜깜한 하늘을 향한 내 얼굴에는 어느 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 못난 자식. 지지리도 운이 없는 자식. 아니, 진짜 병신. 나쁜 놈. 천벌을 받아도
마땅할 놈...내 마음도 칠흑 같은 어둠으로 바낀 속에서 나는 끊임 없이 자책하고 자
학하며 괴로워 했다. 그 와중에도 새록 새록 솟아나는 다혜와의 추억은 상처 난 곳에
다시 채찍질을 해대는 것 같은 더 큰 아픔이었다.

아, 그 날짜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첫 키스를 한 날은 4월 5일이었다. 식목일이
공휴일에서는 빠졌지만 그날 우리 학교는 오전 수업만 하고 학교 뒷산에 묘목 심는 행
사를 가졌다.
그날 다헤와 나는 모처럼 땡땡이를 쳐서 서울대공원에 갔다가 압구정동에서 피자를 먹
고 다헤네 아파트 뒷켠의 어둠 속에서 첫 키스를 나누었다. 나는 뒤에도 종종 다혜에
게 "그날 너는 내 가슴에 사랑의 나무를 심어 주었어"라고 말하곤 했다.
첫 키스의 느낌은 단지 향기롭다는 것 뿐이었다. 우리의 입술은 스쳐가듯 잠시 마주
대기만 했는데 그 때 나는 진한 쟈스민의 향기를 맡았다. 뒷날 나는 그것이 다혜 머릿
결에 남아 있는 린스 냄새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도 그 추억이 되살아 날만큼 내게는
 가장 황홀한 향기로 각인되어 있다.

첫키스를 나눈 후 우리는 급속도로 가깝고 뜨거워 졌다.
바로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우리는 혀를 서로 주고 받으며 한시간도 넘게 키스를 해
댔고 교복 위로 그녀의 젖가슴을 어루만지고 눌러 보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열광적으로 다혜의 몸 이곳 저곳을 헤집고 더듬었다. 티셔츠를 걷어 올리
고 브래지어를 헤치고 젖무덤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연분홍 젖꼭지를 입에 물자 차
차 커지며 딱딱해지는 그 촉감도 너무나 황홀했다. 그럴 때마다 다혜는 "아이, 싫어"
"안 돼" "이제 그만"이라며 거부의 뜻을 보였지만 나는 신천지를 계속 정복하며 영토
를 넓혀 갔다.

마침내 내 손은 다혜의 보지 속까지 쳐들어 갔다. 단둘이만 있던 다혜네 집 쇼파에서
였다. 역시 다혜는 처음에 거부 했지만 결국은 내 손이 드나들기 좋도록 몸을 비스듬
히 뉘어 주었다. 수북한 털을 헤치고 들어간 그 입구는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잠시 손을 빼서 내 바지의 쟈크를 내리고 이 집에 왔을 때부터 성이 나 있어 이
제는 아프기까지 한 내 자지를 꺼냈다. 스프링처럼 튀어 나온 자지를 보자 다혜는 "어
머!" 소리를 지르며 외면했다.
나는 내 자지를 그녀 얼굴에 들이대며 "입 맞춰 줘"라고 했다.
"아이, 그건 못 해."
그녀는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렸으나 나는 짖꿎게 계속 자지를 얼굴에 들이댔다. 결국
다혜는 귀두에 입술을 살짝 대며 쪽 소리를 내고는 "이제 됐지?"라고 했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참기로 했다.

대신 그녀의 한손으로 내 자지를 잡게 하고는 다시 보지로 쳐들어 가서 클리토리스를
집증적으로 애무했다. 보지 속은 옴찔옴찔하며 반응했고 다헤의 손은 내가 하고 있는
자극의 답례처럼 자지를 쥐었다 폈다 하다가 마침내 아래 위로 흔들어 주었다.
"아! 아!"
다혜가 한손으로 내 어깨를 잡으며 신음소리를 낼 때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정
하기 시작했다. 첫 액체는 총알처럼 튀어 나가 반쯤 풀어 헤친 다혜의 앞가슴에 명중
했다.
"어머나!"
깜짝 놀란 다혜는 손을 떼며 급히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러나 시선은 손을 놓았어도
여전히 쿨럭거리며 정액이 품어 나오는 자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저 다 나오게 해 줘. 안 그러면 병이 생긴대."
사정이 중단 된 자지를 나는 다시 그녀 얼굴에 들이 댔다.
댜혜는 아까보다 훨씬 능숙한 손놀림으로 펌프질을 했고 정액은 정말 꾸역꾸역 많이도
 나왔다. 그래서 다헤의 손도 온통 정액 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
다,
"다 나온거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혜는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시선은 자지에 고정된 채 "야,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우리는 그렇게 갈데까지 간 사이였다.
그후 우리의 패팅은 더욱 빈번하고 진하게 이어져 왔다. 다만 진짜 성교만은 대학입시
를 치룬 후 하기로 손가락까지 걸고 맹서했기에 참아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말
다니...

참담하고 허망한 결말을 맞고서야 나는 얽힌 실타래 같은 사태의 전말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 수록 자신의 불운과 무감각을 탓하는 자책과 자학감도 더 깊게 들었
지만.
다혜는 고 3 때 우리 옆반인데 인기투표를 하면 전교에서도 5위 안에 들만큼 돋보이는
 아가씨였다. 남들도 그녀의 착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을 나 정도 안다면 단연 1위일 것
이다.
그런 다헤를 내가 찜했고 그녀 역시 나를 받아 주었다는데서 나는 친구들의 시샘과 부
러움도 많이 받아 왔다. 그런데 그 보석같은 다혜를 하필이면 똥칠이 같은 놈이 채어
가다니....

똥칠이는 정병칠이의 별명이다. 등하교도 기사 딸린 외제 승용차로 할 정도로 아버지
가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 회장이라 더러 그 놈을 선망의 눈으로 보는 친구들도 있지만
, 사실은 경멸거리가 더 많았다.
이마는 벌써 벗겨지고 북어 대가리 처럼 생긴 얼굴에 눈은 지독한 근시며 과목마다 고
액 과외를 해도 성적은 항상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똥칠이라는 별명도 바로 그
런 특성 때문에 나온 것이다.
똥칠이는 나와 다헤가 짝꿍인 것을 알고서도 다혜에게 접근해 왔지만 나는 한번도 그
놈을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혜도 그 놈을 잔득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자라는 나무가 끈질기게 찍는 도끼에 결국 넘어간다는 것은
몰랐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여자의 심리 자체를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우선 책갈피에 있는 편지
만 제 때 볼 수 있었더라도 이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혜의 몸에 그토록 집착하고 탐닉하면서도 항상 미안하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 다헤의 몸이 나의 자극에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아이 싫어" "안
돼" "이제 그만"이라는 말들을 되풀이 했다. 나는 그것이 그녀의 진심인줄만 알았고
사랑하는 사이기 때문에 어짤 수 없이 내 요구에 응해 주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 자신이 야수, 혹은 약탈자 같다는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으며 진
정 사랑하는 다혜를 위해서 내 욕구를 자제해야 한다는 반성까지 많이 했던 터였다.
다혜도 나처럼 뜨겁고 주체할 수 없는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았다면 엄마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엿듣다 했던 맹서 쯤은 언제나 파기할 수 있었다.

뒤늦게 발견한 편지는 다시 볼수록 더욱 가슴이 저려 왔다.
세상의 남자중에 이토록 뜨겁고 절실한 러브레터를 받아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더
구나 그녀의 말처럼 유난히 자존심 강하고 부끄러움 잘 타는 다혜가 이런 편지를 쓸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망설임이 있었을까, 그런데도 아우 반응이 없었을 때는 또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나는 그 행운을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보석은 잃고 발신자의 원망만 듣는 꼴이 된 것이
다.

나는 그 무렵 심한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성적이 조금 오르거나 문제가 잘 풀리
면 신이 났다가도, 그 반대현상에서는 금방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에 빠지기 일쑤였다.
 
다혜가 내게 빌린 책을 돌려 줄 때도 내 심리상태가 하강곡선에 있을 때였다. 다혜는
책을 돌려주며 "여기 로그 함수 문제는 꽤 까다로운 함정이 있더라. 너도 한번 풀어
봐"라거나 "내가 말했던 그 문제 풀어 봤니?"라고 물었던 일도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건성으로 "응, 응"하고 대답만 하며 지나쳤던 것이다. 그 책들은 이미 독
파한 것이기에 다시 들춰 볼 필요가 없었고, 컨디션이 하강일 때는 다혜와 대화하기조
차 부끄럽고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시험이 끝난 다음날, 다혜는 내가 창녀촌을 찾았다는 소문을 듣고
는 정말 "홧김에 서방질 한다"는 말처럼 똥칠이에게 안긴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알
았을 때의 감정을 생각하면 다혜가 받았을 충격과 배신감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날 나는 왜 다혜와 어울리지 않고 그곳을 찾으려 했을까. 역시 나의 불운을
탓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날 창녀를 안았더라도 다혜를 떠 올리며 사정할 때도 속으
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굳이 변명처럼 말하자면 실전경험이 없는 것이 일종의 공포심처럼 작용해서, 한번 체
험을 해보고 다혜에게 멋지게 해 줘야지 하는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분석하고 되돌아 본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부질없는 짓이고 마음
만 더 아플 뿐이다.
어떻든 나는 이렇게 진정한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다혜를 허무하게 잃어버리고 다
시 험난하고 머나 먼 여정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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