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1655 추천 6 댓글 8 작성 25.10.16

​일상적인 사냥은 더 이상 그의 심장을 뛰게 하지 못했다

절박한 대표들의 눈물, 체념한 아내와 딸들과의 하룻밤은 이제 정해진 수순처럼 느껴졌다

그는 더 높은 곳, 더 견고한 유리벽을 무너뜨리고 그 안의 가장 화려한 보물을 손에 넣고 싶었다

그의 다음 감사업체가 선정되었고 '블러드 바이오' ​

블러드 바이오의 신 회장은 자수성가의 아이콘이자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의 곁에는 전성기 시절 국민 첫사랑으로 불렸던 여배우 출신의 아내, 그리고 이제 막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한 통통한 외동딸이 있었다

언론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완벽한 가정, 그 자체였다

‘지방소득세’는 신문 기사 속 세 사람의 사진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완벽함을 흠집내고, 가장 빛나는 것을 빼앗는 상상

그것만으로도 심장이 뜨거워졌다

​감사는 지독했다

블러드 바이오의 재무팀은 많은 노력을 했고, 장부는 흠잡을 곳 없이 깨끗했다

동료들은 혀를 내두르며 '적정의견'을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그는 포식자였다

완벽하게 위장한 사냥감일수록 피 냄새는 더 진하게 나는 법

며칠 밤을 새운 끝에, 그는 마침내 찾아냈다

합법을 가장한 교묘한 자산 빼돌리기

신 회장이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기 위해 파놓은 비밀스러운 통로였다

금액이 너무나 거대해서, 드러나는 순간 블러드 바이오는 공중분해 될 운명이었다

​마침내 신 회장과의 마지막 미팅

그는 회의실에 앉아 서류를 넘겼다

종이 스치는 소리만이 정적을 갈랐다

그가 찾아낸 숫자를 짚어주자, 강철 같던 신 회장의 얼굴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그의 이마를 적셨다

​"이... 이걸로 뭘 원하십니까? 원하시는 금액을 말씀하십시오 평생 만져보지 못할 돈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상징과도 같은, 싸늘한 한마디를 던졌다

"저는 돈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이 신 회장 너머, 사무실 한쪽에 놓인 가족사진으로 향했다환하게 웃고 있는 아내와 딸의 모습

절망이 신 회장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과 회사의 운명 사이에서 그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마침내, 그는 무너졌다

"제... 제 가족만은... 제발..."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남자의 입에서 나온 비굴한 애원이었다

가족 지키기 위해  살려달라는 그 모습

‘지방소득세’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다

그는 지금 한 남자의 영혼을 발아래 짓밟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큰 쾌락을 원했다

​"선택은 제가 합니다, 회장님."

그는 사진 속에서 눈부시게 웃고 있는 신 회장의 아내, 한때 모든 남자의 선망이었던 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자존심을 동시에 짓밟는 것

그것이 가장 완벽한 유린이었다

​그날 밤, 약속된 호텔 스위트룸의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섰다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에는 과거의 화려함 대신 깊은 굴욕감만이 새겨져 있었다

의무적인 절차를 마친 후, 그는 새벽의 어둠 속에서 홀로 담배를 태웠다

휴대폰을 켜 익숙하게 ‘섹밤’에 접속했다

수많은 이들이 지방소득세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 쓰던 ‘한숨 자고 왔습니다’라는 문장은 오늘 밤의 승리를 표현하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새로운 글을 타이핑했다

'​오늘은 한 시대의 막을 내리고 왔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그는 휴대폰을 껐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이 마치 그에게 엎드린 노예들처럼 느껴졌다

​돈도, 명예도 아닌, 타인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완전한 지배의 쾌감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이 숫자로 세상을 지배하는 자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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