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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펨돔/멜섭)
2018.10.01 11:03

[펨돔-멜섭] 내게 전화해 줘 (2)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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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그래내가 이 세상에서 겪었던 중 가장 짧은 일주일이었지일요일 아침에 나는 생각했어차라리 죽어버릴까죽으면 편할 텐데하지만 죽음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어나는 살아서친구들에게 관심과 존경을 받고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어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꿈이었지바로 너 때문에나는 너를 증오해야 마땅했어내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고 덤벼드는 악당이었으니까내가 나로 살 수 없게 만드는 존재였으니까하지만......어떻게 미워할 수 있었겠어그래빅토르 위고의 말처럼나는 지옥의 짚 깔개 위에서 창녀와 뒹굴었던 거야문제는창녀는 네가 아니라 바로 나였고너는 지옥에서 가장 매혹적인 악마였다는 데 있었어나는 괴로웠지만 행복했어고통스러웠지만 희열로 가득 찼었지나는 언제나 갈구하기만 했지한 번도 달콤한 열매를 제대로 맛본 적이 없었어즙으로 가득한 포도송이 근처를 맴도는 초파리처럼 그 맛을 상상하기만 했던 거야나는 너에게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어그토록 나를 증오하고혐오하고무시하고괴롭게 했던 것에 대하여채찍은 달콤하고 플러그는 감미로웠지케인이 내 피부를 찢을 때 나는 그것이 키스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숯처럼 불타는 손가락을 가진 악마의 키스였던 거야로프 때문에 손목이 엉망이어서나는 긴팔 옷을 입은 채여름의 열기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어불지옥의 한가운데를 걷는 기분이었지예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어예배 초중반부터는 한기를 느꼈어예배당의 에어컨 바람 때문만은 아닐 거야나는 파멸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어다 끝이야더 이상은 여기서 살 수가 없겠지그래예정보다 빨리 캐나다로 떠나야 할 거야유학길이 아닌스캔들로 가득한 도피가 되겠지만그게 그나마 고통을 더는 길이 될 거야대표기도를 하러 올라갔을 때 나는 세상이 이리저리 기우는 것을 느꼈어비틀거렸던 게 분명하지만그때는 그렇게 느껴졌으니까.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친히 불러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은혜의 하나님.

 

 

내 목소리가 내 목소리 같지 않았어말라비틀어진 나무토막을 활줄로 문지르는 기분이었지.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 함께 영광을 올려드리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저는.......

 

 

청년 예배였기 때문에 예배당 안은 내 또래의 신자들로 가득 차 있었어예전에는 형제자매라고 부르던 사람들이었지이제는 모두 날 비난하게 될 거야목구멍으로 심장을 뽑아내서철철 피가 흐르는 채로 이리 차고 저리 차면서 마침내는 밟아서 터트려버리겠지더러운 말과 더러운 행동으로 성스러운 교단을 더럽힌 죄를 치르게 하겠지.

 

 

저는 죄인입니다여기 모여 있는 어떤 형제자매들에게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손가락질을 받고당장 교단 아래로 끌려 내려가도 할 말이 없는 죄인입니다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오늘 이 성스러운 하나님의 집에서 죄를 고백합니다주님저는 죄인입니다.

주여!

 

 

벼락같은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정신이 확 돌아왔어마치 찬물을 맞은 것 같았지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야모든 것을 고백하려고 했던 내 계획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흐느끼는 소리가 사람들 사이로 번지기 시작했어.

 

 

주여!

주님제가 죄인입니다.

주님.... 주님.......

 

 

그들이 자신의 죄를 앞 다투어 쏟아내게 하기는 어렵지 않았어통성기도라면 나도 몇 번이나 대표로 진행한 적이 있었으니까예배가 끝난 뒤사람들은 이렇게 감동적인 대표기도는 처음이었다면서대표기도가 통성기도가 되어버린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었겠냐고 했어선경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지.

 

 

자기 같은 사람도 스스로의 행동과 말 속에서 무서운 죄를 보는데...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보이겠어나도 앞으로는 신앙생활 더 열심히 할게자기가 정말 자랑스러워.

 

 

나는 그냥 빙긋 웃을 수밖에 없었지나에게 악수를 청하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 뒤에서네 얼굴이 보였어팔짱을 끼고기둥에 비스듬하게 기대 서 있었지네 입술이 소리 없이 말했어.

 

 

비겁자.

 

 

그래맞아나는 가장 간교한 회개자였어마치 암을 떼어낸다고 개복을 해 놓고서멀쩡한 다른 조직에만 칼질을 하고 정작 암덩어리는 그대로 두는 사이비 의사 같았지하지만 수술은 이미 끝났어나는 의기양양해질 지경이었지사람들은 날 믿고 있었고내 여자 친구는 날 존경하고 있어솔직히 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신용 받는 타입은 아니었지누구도 네 신앙심을 칭찬하지 않으니까나는 자신이 있었어네가 무슨 말을 해도, ‘요새 많이 힘든가 봐.’ 혹은 왜 그래내가 너에게 뭐 잘못했니?’ 라고 말하면서 무마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그렇게 두려워했던 증거마저 하찮게 느껴질 지경이었어네가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예배당을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승리감에 차올랐지.

 

 

03.

 

 

내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몸이 달아올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거야지난 일주일간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거지몸의 성분이 바뀌고영혼이 교체되어버린 느낌이었어채찍을 맞지 않으면목이 졸리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으니까달아오른 몸을 주체하지 못해 내가 내 목을 스스로 조르는 지경까지 이르렀어겁이 났지나는 결국 너에게 전화를 했어물론 너는 받지 않았지음성 녹음으로카톡으로문자로 나는 애원했어내가 잘못했으니제발 연락을 받아달라고.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오랜 시간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에게 갑자기 많은 양의 물을 주면그리고 그 물을 다 마셔버리면 그대로 숨이 끊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지왜 이 순간에 그런 이야기를 떠올렸을까나는 늘 목이 말랐고너를 통해 쏟아지는 폭포수를 마셨으며이제는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오래 억누른 만큼 나는 빨리 죽게 될 거야대표기도 후 느꼈던 승리감은 완전히 잘못된 감정이었어자동차 안에서너의 하이힐에 짓밟힐 때 이미 나는 지고 말았던 거야애초에 승산 없는 싸움이었어며칠 뒤 너에게서 전화가 왔고 나는 너에게 허겁지겁 달려갔어그리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어협박이 무서워서가 아니었지이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어나는 너를 원했고...... 너의 자비를잔혹함을경멸을희롱을지배를 갈망하게 되었던 거야네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어너의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너는 나에게 고백을 강요했지모두에게 할 수 없다면 한 사람에게라도 솔직해지라고 했어나는 선경에게 내가 행한 모든 죄악을 고백했어선경은 끝까지 믿지 않았지나에게 왜 이러는 거냐며 우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어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또 마음 아파하는 것 역시 내 죄에 대한 과보일 거야그렇게 고통 받고도선경은 내 사정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진정한 신앙인은 바로 그 애였을지 몰라하지만 교회 사람들은 우리가 헤어진 것에 대해 깊은 충격을 받았지나를 칭찬하는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어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거야나는 에드먼턴으로 가는 비행기에 혼자 올랐지선경도사람들의 신뢰도 모두 잃은 채로하지만 후회하지 않아비겁한 나로서는 그정도의 고백이 최선이었을 거야.

 

 

다시 눈 오는 소리가 들려서울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생각해네가 나와 같은 소리를 듣기 바라지만서울에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지설령 정말로 눈이 내리더라도.

나는 아직도 생각하곤 해너는 어떻게 나의 타락을 눈치 챘을까내 위선의 갑옷을 뚫어버린 창은 어디서 어떻게 손에 넣었던 걸까어쩌면 너도 처음에는 나에게 관심을 가졌던 게 아닐까나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야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은 모두 소용없겠지.

 

 

시간을 확인해애드먼턴에서는 모두 잠들어있는 시간이야하지만 서울에서 너는 깨어있겠지전화벨이 울리고너의 목소리가 들리고다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내게 전화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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