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이와 다시 재회했지만, 나에겐 그동안 나를 봐준 수진이가 있어서, 감정과는 별개로 정연이에게 그리고 수진이에게도 미안한 상황이 될 것은 자명한 현실이였다.
나에겐 선택을 해야 하는 어려운 결정이 남아있는 상황이였다.
그렇지만, 다시 만난 정연이를 놓치기 싫어 수진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정연이와의 만남을 지속했다.
왜? 그건 정연이가 뉴욕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으니.. 가능하다.
언젠가 둘 중 한명에겐 정말 이별을 고해야 할 것이기에 지금 이순간 내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회사에선 일중독자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과 함께 최고성과자라는 타이틀도 갖게 되어, 보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해외에 나가는게 크게 경력에 도움은 안되지만, 정리할 일이 있어 한국으로 1년만 갔다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근무지 이동전 한달간 휴가를 얻어 정연이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로 2주간 여행을 갔다.
나는 로마와 피렌체를 보고 싶어했고, 정연이는 디자인을 하고 있어서 가본적이 있지만, 밀라노와 피렌체를 가보 싶어했다.
그렇게 로마와 밀라노를 본 후 마지막 3일을 보내기 위해 피렌체로 왔다.
피렌체의 유명한 티본스테이크도 맛보고, 페라가모본사에도 들러보고, 저녁야경이 멋진 벡키오 다리에서 둘이 걷고 있는데, 앞쪽에 멋진 한국인 남녀가 보였다.
정연이와 나도 꽤나 사람들 시선을 끄는 스타일이지만, 앞쪽의 두명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아무리 외국이라해도 한국인으로써는 낯선 길거리 스킨쉽이 남다르다.
숫기없는 난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앞쪽의 남자는 말을 걸어 온다.
"저 혹시 한국인 아니신가요? 좀전에 한국말 하신거 같아서요?" 남자가 물었다.
머라 대답을 하려는데.. 이남자 또 묻는다.
"지금은 한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은 시기인데, 이런곳에서 보니 반갑네요. 두 분이 너무 멋지고 잘 어울려서.. 관심표현입니다. 하하"
성격이 참좋네..
"네 한국사람은 맞는데, 뉴욕에서 왔어요. 휴가차.. 그런데 그쪽 두분도 멋지세요. 특히 여성분은 미모가 남다르시네요."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 앞에 레플리카 광장에서 커피한잔 같이 할래요. 그집이 아주 유명한 집이예요. 초콜릿도 맛있고.. 제가 쏠께요. 아 참.. 전 김필립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넷이서 커피 한잔과 디저트를 즐기다가 중앙시장의 야시장에서 맥주 한잔하러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김필립이라는 사람이 우리학교 선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와.. 후배님을 여기서 보네.. 거기에 아주 잘 나가는 회사를 다니는 멋진 후배님을. 하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질 때 필립선배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했다.
"창민이하고 정연씨! 나도 아직 세상을 많이 알진 못하지만, 옆에 있는 우리 아름이 덕에 조금 알게 된걸 말해주고 싶어요.
남자도 여자도 꼭 지키고 싶은 걸 놓치진 말아요. 지금 두사람 보기 좋은 만큼 위험해 보여..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나중에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요. 특히 창민이 너.. 선배가 후배님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말입니다. 하하 그럼 잘가요. 언제 인연되면 밀라노에서 봅시다. 밀라노 오면 꼭 연락해요."
그렇게 그 둘과 헤어지고 우린 남은 일정을 끝내고, 뉴욕으로 와서 난 한국지사 근무준비로 이동하기 전에 정연이에게 드디어 수진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정연아 실은 너랑 헤어지고 난 후 이런 일들이 생겼지만, 거의 8년을 수진이가 내옆에 있어줬어. 내 첫사랑은 너고 나 지금도 너를 애타게 원하지만, 수진이가 맘에 걸려.. 한국으로 1년 근무 신청한 건 수진이 때문이야. 이 부분까진 알아두었으면 해서.."
"그동안 말안하고 있길래.. 나두 궁굼하지만, 못 물어봤어. 또 상처받을 까봐.. 너가 어떤 결정과 선택을 내릴지는 모르지만, 이번엔 내가 널 놓치지 않을꺼야. 니가 그동안 나하고 잠자리 안할 때 대충 눈치채고 있었어. 아직 니가 마음의 결정을 못했나 보다라고.. 갔다와. 한국.. 나 여기서 너 기다릴께.. 안온다고 해도 기다릴꺼야..
나 이제야 알았어. 널 정말 사랑한다는 걸.."
내가 한국에가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아직 모른다. 수진이 얼굴을 보면 또 달라질 수 있기에.. 하지먀, 나도 하나는 확실하다.
"정연아. 필립선배가 한 말.기억나? 후회할 일은 안하는거라고.. 있잖아. 나도 너 정말 사랑해. 이건 평생 후회하지 않을 일이야. 절대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사랑한 사람도 내가 앞으로도 사랑할 유일한 사람은 너라는 걸 믿어줘..그리고, 꼭 다시 올께."
그렇게 한국으로 가기 전 마지막 뉴욕에서의 밤을 정연이와 보냈다.
8년 전 서툴렀던 우리의 몸짓이 많이 능숙해졌지만, 그 때보다 더 우리는 서로에게 서투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난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필립선배처럼 당당한 모습이 될까?
지금까지 처럼 서툰 행동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만 주게 될까?
어느 쪽이든.. 난 지금 한국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