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람 중에 미성년자를 성폭행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얼마 전 단 둘이 술자리를 할 기회를 얻었는데 나에게 희한한 일이 하나 있고 성 노리개 노릇을 하고 있다는 심증은 가는데 확실한 물증이나 고백이 없다며 고민을 하였다.
그래서 난 호기심이 동하였기에 그 애의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란 것이었다.
그에게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하였고 그로부터 승낙을 받았다.
미성년자를 성폭행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운동을 하는 사람 그는 아니 그녀는 독신녀이기도하다.
그가 미성년자 성폭력 상담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원인이 바로 그도 어렸을 적에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경험을 가진 여자이다.
그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난 그 애의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처녀 선생님으로 미모도 뛰어 났고 화통한 선생님이었다.
내가 상담 선생님으로부터 조사를 해 줄 것을 의로 받았다고 하자 흔쾌히 그 애를 나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
담임선생님은 머리도 잘 돌아가 그 애에게 나를 조손 가정의 애들을 돕고 후원하는 단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였다.
일단 집을 알아봐야겠기에 차에 태우고 그 애 집으로 갔다.
그 애는 조손 가정이면서도 다른 조손 가정과는 경우가 다름을 차로 가면서 알게 되었다.
친할아버지가 아닌 작은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 애 말로 자기 작은 할아버지는 예전에 초등학교 선생님까지 하신 그런 분이라고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차로 가면서 참새처럼 쉬지 않고 조잘대면서도 손은 항상 중앙의 보지 위에 얹고 있었고 내 눈치를 살피며 간도 크게 누르기도 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가정 사정을 살피는 척 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 애와 섹스를 상습적으로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약방에서 손쉽게 피임약이나 콘돔을 구입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할아버지 박카스 하나 하고 알약 하나만 주세요. 간밤에 술을 많이 마셨더니”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노인에게 말하였다.
“술 좋지 그렇지만 젊어서 몸을 아껴야지 쯔~쯔~쯔”혀까지 차면서 노인은 나에게 간장약으로 보이는 것과 함께 박카스 병을 내밀었다.
“여기 다방에 물은 좋아요?”일을 저지르려면 확실하게 저질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흐흐흐 물이야 좋지 그런데 젊은이는 도시 물을 먹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런 시골 다방 계집은 왜 찾누?”노인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여 몇 칠전에 새로운 애가 왔다더군.”묻지도 않은 말까지 해 줬다.
“호~그래요? 콘돔 있죠?”하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묻자
“암 있고말고! 앞전에 00마을 김 성생이 다 가져가고 또 넣었지”하며 콘돔 한 상자를(3개 들이) 주기에
“그럼 그 김 선생 부름을 받고 다방 계집을 자주 집으로 가는 모양이야 그러니 그렇게 많이 사가고 자주 사 가지”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세하게 대답하였다.
00마을 김 선생이란 사람이 바로 그 애의 작은 할아버지였다.
그 애의 작은 할아버지가 교편을 잡았다는 곳은 그 곳에서 제법 많이 떨어진 곳의 중소 도시였다.
부락에서 조금 외딴 집이었기에 증거를 수집하는데 누가 보고 신고를 할 일도 없을 것이란 것을 알았다.
그날은 집안과 마당만 살폈지만 약방 노인 말처럼 한 달에 5 상자 이상 사 간다면 어디서든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기대감을 가진 것이다.
방안이고 부엌의 아궁이고 모조리 살폈지만 그 어디에도 흔적은 없었다.
태운 흔적의 제일 밑에서 라텍스가 녹아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다량이 녹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흔적이었다.
그 애 작은 할아버지가 교편을 잡았다는 곳으로 갔고 교육청으로 갔다.
나에게 협조를 구하였던 그 상담사 선생에게 미리 도움을 요청하였던 터라 교육청에서는 그 애 작은 할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애 작은 할아버지는 그 애가 사는 마을이나 면 소재지 사람들의 말과는 교단을 그만 둔 이유가 판이하게 달랐다.
하지만 그 애 입에서 확실한 진술이 나와야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정도는 난 알고 있었다.
“!”뭔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는 미리 준비한 아주 작은 녹음기가 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였던 신문사로 찾아가 그녀가 말하였던 신문 기사를 카피하였다.
“민영이 아저씨랑 이야기 좀 하겠니?”그 애 담임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여 그 애를 차에 태우고 조용한 곳으로 갔다.
“민영이 너 사실대로 말 해 내가 다 알아 봤어. 어 작은 할아버지하고 이상한 짓 하지?”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뭔데 있지도 않은 말을 해요? 인권 몰라요? 또 인권 모독 몰라요?”난 놀랐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겨우 초등학교 5학년생의 입에서 인권이란 말이며 인권 모독이란 말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두말 할 필요가 없네요.”그 애가 벌떡 일어서며 뒤도 안 돌아보고 걸음을 때었다.
“너 너희 작은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붙잡지 않고 그 애를 향하여 소리쳤다.
“훌륭한 선생님 하시다가 그만 두신 분이예요”뒤돌아보고 쏘아대듯이 대답하기에
“이거 한 번 볼래”신문을 카피 한 것을 끄집어내어 내밀었다.
“흥 이게 우리 작은 할아버지란 것을 어떻게 믿어요.”그 애가 기사를 카피한 종이를 내 앞으로 던지더니 다시 뒤도 안 돌아보고 걷기에
“그럼 이건”하고는 주머니에 황급히 녹음기를 꺼내어 버튼을 눌렀다.
“아저씨 다시요”그 애 작은 할아버지의 전처가 한 말이 끝나자 뒤돌아 나에게 오더니 말하였다.
“.............”그 애는 휴지를 받더니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 아줌마에게 가서 자세하게 말 해 주겠니?”하고 말하자
경찰은 나는 입회를 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나 상담사와 뒤늦게 달려온 그 애의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입회를 허락하였는데 지금부터 그 애의 진술을 바탕으로 쓰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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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을 제법 큰 그릇 집을 아빠와 엄마가 하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아마 제가 유치원에 막 입학을 하였던 해였을 거예요.
남은 것은 단칸방에서 몸을 겨우 누일 수 있는 부엌도 없는 방 하나와 아빠 오빠 그리고 저가 전부였어요.
오빠는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학교 가는 날보다 땡땡이를 치는 날이 많았어요.
밑천이 없으니 장사는 못 하고 노가다 판에서 일을 했던 모양이었어요.
하지만 허약한 체력은 하루 이틀 일을 나가면 4~5일을 끙끙 앓고 누워 있어야 하였어요.
또 여름 장마철이면 그나마도 먹질 못 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하였죠.
그러다가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기 전에 우리들은 할아버지 손에 맡겨졌어요.
아빠와 있을 때보다는 훨씬 좋은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답니다.
할아버지 댁에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동생이신 작은 할아버지만 계셨지 두 분의 말에 따르면 일찍 죽었다고 했어요.
할아버지 동네나 인근 마을에서 할아버지 이름을 대면 겨우 몇 사람만 알았지만 작은 할아버지 이름은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죠.
그 때가 제가 초등학교 3학년에 오르기 직전의 겨울이었습니다.
물론 작은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쓰던 방에서 잤죠.
“꿈에서 본 것은 할아버지가 죽어가며 눈을 부릅뜨던 그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닫힌 작은 할아버지 방의 문고리도 잡질 못 하고 꽝꽝 치며 불렀습니다.
“민영아 왜? 꿈 꿨니?”작은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눈을 비비며 나왔어요.
“응 무서워 혼자서는 못 자겠어 흑흑흑”정말이지 너무나 무서웠어요.
“그래 그렇다며 이 할아버지하고 자자 꾸나”하며 저를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였어요.
“어디 이불을 하나 더 펼까?”하며 농을 열고 요와 이불 하나씩을 잡고 당기려하기에
“할아버지 싫어 할아버지 곁에서 잘레"하고 할아버지의 팔을 잡았어요.
“아니 왜?”할아버지가 의아스러운 눈으로 저를 보며 물었어요.
얼마 후 제가 할아버지에게 부탁하여 태웠지만 저는 그 이불만 봐도 무서웠어요.
“그래 그럼 할아버지 품에서 자라”하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갔고 저도 쪼르르 들어갔답니다.
전 혼자 자는 것이 무서운 나머지 아예 제 베개를 들고 잠옷을 아니 잠옷이라기보다는 긴 내복을 입고 작은 할아버지 방으로 갔어요.
할아버지는 TV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제가 나란히 앉자 저를 힐끗힐끗 보대요.
“자 우리 민영이 일어나 봐”TV를 보다 말고 저에게 말하였어요.
“왜? 이렇게?”벌떡 서서 다리를 벌리고 양손을 허리를 짚으며 마치 TV에서 본 모델 흉내를 내었더니
“흐흐흐 이제 다 컸구나.”하며 이해가 왼 드는 말을 하며 제 엉덩이를 당기더니 제 배에 얼굴을 대고 비볐어요.
“아이 할아버지도 간지러워”하고 말하며 떨어지려 하였으나 할아버지의 힘에는 감당하지 못 하고 그대로 있어야 하였어요.
그리고는 할아버지 품에 안겨 잠이 든 것 까진 기억이 났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에 제 내복 위의 가랑이 사이로 손이 들어왔어요.
직감적으로 할아버지 손이란 것을 알았지만 반항을 하며 할아버지 곁에서 잠을 재우지 않을 것만 같은 마음이 생겨 가만있었어요.
“!”잠이 막 들었는데 할아버지 손길이 전날 바처럼 제 거기에 또 닿았어요.
제가 미동을 안 하자 할아버지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이번에는 내복 안으로 손이 들어왔어요.
그리고는 부끄러운 부분에 손가락을 대고 상하로 움직였어요.
할아버지는 이미 자신이 제 잠지를 만질 때 제가 거칠게 숨을 쉬는 것을 듣고 이미 알았었던 모양이었어요.
“혼자 자겠니? 아님 할아버지하고 함께 자면서 우리 예쁜 민영이 잠지 할아버지에게 만지게 하겠니?”할아버지가 물었어요.
혼자 자면서 무서운 꿈을 꾸느니 할아버지에게 잠지 조금 만지기 하는 것이 저에겐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흐흐흐 그래 그럼 그렇게 하고 이일 절대 비밀이야 알겠니?”할아버지는 계속 제 잠지를(당시에는 할아버지는 보지란 말을 안 썼어요.)
그날 밤은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만짐을 당하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어요.
할아버지 방으로 설거지를 마치고 내복차람으로 갔더니 제를 TV를 보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더니 또 내복 안으로 손을 넣고 만지기 시작하였어요.
“이게 뭐야?!”엉덩이를 찌르는 물건의 정체가 궁금하여 손을 뒤로 하고 덥석 잡았죠.
“흐흐흐 우리 민영아 할아버지 좆 크지”그때서야 전 어른들의 고추를 좆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어요.
“계속 잡고 만져주겠니?”할아버지의 손 하나가 갑자기 저의 개복 속에서 빠져나오더니 제 손을 잡았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좆을 제 손으로 잡게 만들었어요.
“할아버지 봐”하며 자신의 좆을 쥐어주게 만들었던 손을 빼더니 제 볼을 돌렸어요.
그리고 할아버지 얼굴로 제 얼굴을 향하였더니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제 머리를 자신에게 당겨 입을 마주 닿게 만들더니 혀를 제 입안에 넣고 마구 빨고 핥았어요.
말로만 듣고 TV에서나 봤던 어른키스를 할아버지는 저에게 하였죠.
할아버지의 수염 때문에 좀 따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할아버지 맨 좆을 손에 잡게하여 생기게 한 무서움증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당돌한 저는 오히려 하나 남은 손으로 할아버지 목에 매달리며 저의 혀를 할아버지 입안으로 넣으려 들었으니 말이어요.
“어른키스 하니 우리 민영이 좋아?”긴 어른키스 끝에 할아버지가 입을 때며 물었어요.
“우리 민영이 어른키스 했으면 이제 여기로 어른 놀이도 해야겠지?”내복 속에 돈 손으로 제 잡지를 꼭 잡으며 물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이라면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대충은 짐작을 하거든요.
또 어떤 애들의 말에 다르면 누구하고 누가 했다든지 또 아무개 하고 아무개가 학교 뒷산에서 하다가 걸렸다는 소리도 들었거든요.
“자 일어서서 벗어야지”내복 속에서 손을 빼더니 제 겨드랑이 안으로 손을 넣었어요.
“어서 벗어”일어서서 머뭇거리자 할아버지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하였어요.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 한 그런 험악한 얼굴이었어요.
“으....응 알았어.”말을 더듬으며 서둘러 내복을 밑으로 내렸어요.
“예쁘다 우리 민영이 보지”처음으로 할아버지가 제 잠지를 보지라고 말하였어요.
전 아무 말도 안 하고 할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가랑이를 벌렸어요.
“아니다 누워서 벌려”할아버지가 고개를 땅바닥에 대고 제 보지를 올려다보다 말고 고개를 들더니 말하였어요.
“응”이번에는 대답을 하고 할아버지 앞에 누워 할아버지에게 보지가 잘 보이도록 가랑이를 벌리고 누웠어요.
“후후후 이게 얼마 만이냐? 걸레들만 상대하다”할아버지는 제 보지를 더 크게 벌리더니 안을 들여다보며 제가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을 하며 침을 흘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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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할아버지는 앉은 체 팬티와 파자마를 벗었는데 만지던 것보다 거무튀튀하게 생긴 색갈이며 굵고 긴 크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놀랐어요.
하지만 흉측하다는 생각은 들지 아니하고 어떻게 저렇게 굵고 긴 것이 들어올까 하는 호기심이 먼저였어요.
머리맡에 미리 밀크로션을 준비해 두었었고 그 밀크로션을 제 보지에도 바르고 자신의 좆에도 발랐으니 말이죠.
“아~~할아버지 아파”할아버지 가슴을 밀며 얼굴을 찌푸렸어요.
“조금만 참아 처음에만 아프지 괜찮아”말을 하며 힘을 더 주었어요.
정말이지 그대 아랫도리는 할아버지의 좆이 아니라 굵고 긴 야구방망이로 쑤시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아~악! 아파! 흑흑흑”제 입에서는 비명과 울음만 나왔어요.
“조금만 더 참아 잘 들어가고 있어”제가 아파하는 것이나 우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은 것 같았어요.
“흐흐흐 터졌군. 터졌어. 흐흐흐 이게 얼마만이냐?”밑을 내려다보며 웃었습니다.
“민영아 볼래? 처녀막 찢고 들어갔어. 흐흐흐”할아버지는 저의 아픔은 아랑곳 하지 아니하고 저의 고개를 받치더니 일으켰고 저는 밑을 보려고 눈물을 닦았어요.
계속 흐르는 눈물 때문에 정확하게는 보이질 아니하였지만 할아버지 말처럼 처녀막이 찢어졌던지 보지 주변에는 피가 묻어있었고 할아버지의 좆을 2/3이상 자취를 감춘 후였습니다.
“이거 절대로 누구에게 말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어 알지?”할아버지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입막음을 하였습니다.
처음 몇 칠은 밤중에 하더니 나중에는 초저녁부터 잠을 자게하고는 제가 잠이 들면 저를 저의 방으로 옮겼어요.
아는 사람들을 일부러 불러서 술도 마시고 노름도 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는 그들이 다 가고 잠을 좀 자다가는 새벽이면 저의 방으로 와서 빠구리를 하였어요.
그건 지금 생각하면 자기는 조카딸에게 아무 짓도 안 하고 잘 키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작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 점점 할아버지에게 쇠뇌 되어가고 있었으며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저 자신만 몰랐었어요.
할아버지는 제 보지에만 좆을 박은 것이 아니라 입에도 박았으며 심지어는 일주일에 한두 씩은 똥구멍에게다 박기도 하였어요.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새벽이면 날이면 날마나 빠구리를 전 하면 좋다고 하더라는 애들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거의 매일 아니 매일 새벽이면 적어도 두 번 이상을 계속 하였지만 좋다는 느낌이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었거든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저에게 이제 맛을 알기 시작하였다면서 좋아하였고 그 맛에 길들여진 저는 제 스스로가 똥구멍빠구리를 해 달라고 할아버지를 조르기에 이르렀죠.
그건 지금 생각하면 할아버지가 제 보지며 입에 뿌린 좆 물이 남성호르몬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한 탓으로 봐요.
4학년 여름부터 젖에 젖꼭지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가슴이 크기 시작하였고 얼마 안 가서 생리를 시작하였어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한 달이면 한 번 이상은 00시로 갔고 올 때에는 저의 먹을 것도 물론 사왔지만 좆 마개를 왕창 사왔어요.
손녀가 임신을 하였다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누굴 의심하겠어요.
선생님까지 하였던 할아버지는 아주 치밀하였던 것 같아요.
저 아저씨의 말처럼 면사무소 부근에 있던 다방들의 아가씨들을 수시로 집으로 불러들였던 것이 바로 그거예요.
그것도 할아버지는 저와의 관계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때를 택해서 불러들었으니 얼마나 치밀해요.
우리 할아버지가 죽은 후에 작은 할아버지에게 매달 보내준다던 생활비를 아빠는 한 번도 안 보냈고 또 연락도 없었거든요.
그러니 제가 믿고 의지 할 곳이라곤 작은할아버지 말고 누가 있겠어요.
작은 할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란 것을 알고 나니 더 무서워요.
저보다 훨씬 앞에 저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당한 언니들이 불쌍해요.
경찰 언니 상담소 선생님 우리 선생님 그리고 아저씨 절 고아원에 가게 만들지만 말아주세요.
우리 아빠 오빠 언젠가는 돈 벌어서 우리 할아버지가 남겨준 집으로 올 거예요.
작은 논도 있고 밭도 있지만 어려서 논농사는 짓지 못 해요.
집에 살게만 해 주면 제가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밭농사 지어서 돈 벌어 저축하여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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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즉시 상담소의 도움으로 정신과 병원이 입원을 하여 종합 진단을 받게 하고 또 미친 인피만 쓴 그 미친 노인은 경찰에 의하여 구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