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장 파국 의 시작 (1)
내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 리가 없는 처제는 고개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채
느릿느릿 언덕위로 걸어 올라갔다.
지난밤.
외박을 했던 처제가 왜 집이 아닌 저 곳을 걷고 있는지 영문을 알수 가 없었다.
물론 아직 자정도 넘지 않아 그렇게 까지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깊은 밤중에 젊은 여자 혼자서 겁도없이 다니기에는 너무 위태로운 길이었다.
나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처제를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뒤를 쫓았을까. 언덕의 거의 끝자락까지 나는 처제를 따라갔다.
예상대로 처제의 목적지는 팔각정이었다.
처제가 팔각정 안으로 들어가 한강이 보이는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지켜본 나는
나무 뒤에 숨어서 그녀를 말없이 지켜 보았다.
사위가 너무 어두워 처제의 어굴을 자세히 볼 수가 없었지만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리고
보아 마음이 몹시 심란한 듯 보였다.
한동안 숨을 죽이며 처제를 바로보던 나는 천천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제는 무슨 깊은 생각에 골몰해 있는지 내가 팔각정 근처에 다다를때까지도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내 낌새를 알아차린 듯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내가 먼저 입을뗐다.
“처제......,”
내목소리를 확인하기 전까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설마 하는 표정을 짓던 처제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나는 처제에게 다가갔다.
“혀,형부가 여길 어떻게......,”
“집에 들어가다가 마침 이쪽으로 올라가는 처제를 발견하고 걱정이 되어 그냥 지나칠수가 있어야지.
대체 이늦은 밤에 여기는 왜 혼자서 올라온거야?”
하루만에 마주한 처제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에 대새서 커다란 충격를 받은 것 같았다.
처제의 얼굴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 과 안쓰러움이 마음속에서 어지럽게 교차했다.
‘어,언니는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들어왔어.
아니. 집에 안들어왔을거야.
들어오든 말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건 그렇고 처제는 우리집에서 언제 나간거야?”
“........”
처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긴 내옆에서 펀안히 잠을 잘수는 없었을 거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대로 처제가 내 옆에 서 잠을 잤더라면 둘이서 자고 있는 모습을 마누라에게 고스란히 들킬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었지만 또 다시 찾아온 안도감에 나는 처제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당황한 처제가 재빨리 내손을 뿌리쳤다. 나는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
“처제......우리 내려가자. 할말이 있어.”
“혀.형부! 이손와요.
우리가 이러면 안 된다는 거 누구 보다도 형부가 더 잘 아시잖아요,
언니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지금 저는 죽고 싶은 심정이에요. 무섭단 말이에요.”
처제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미안해,
나 때문에 처제가 지금 느끼는 고통을 생각하면.....내가 죽일놈이야,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내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통제가 안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처제의 표정이 일순간 싸늘해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형부 때문에 제가 이동네로 이사온 것을 지금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줄 아시냐고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수 없었다.
마음이 찢겨질 듯 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처음에는 육체적인 호기심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미 내 가슴 속에는 처제가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형부, 이제 그만 내려가세요, 저한테 하실말씀이 있으시면 나중에 해요.”
처제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니 초조감이 가득했다.
“여기서 지금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대답을 하지않는 처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속에서 겁이 덜컥났다.
처제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혹시 마누라는 아닐까?
심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형부인 내가 자신에게 한 짓을 마누라에게 모두 까발리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지은죄가 있는 탓에 나는 나도 모르게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처, 처제 ......지금 언니 기다리고 있어?”
“........아니에요.”
처제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은 동시에 의구심이 들어 나는 재차 물었다.
“언니가 아니라면 지금 처제가 기다리는 사람이 헤리....그 친구야? 그렇구나.
헤리를 기다리고 있던거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처제의 대답을 촉구했지만 그녀는 입술을 앙다문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헤리가 처제 한테 했던 함부로 했던 짓거리가 떠오루자 화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처제도 참 어지간히 딱하다.
이런 말을 하기가 좀 그렇지만.....처제. 혹시 레즈비언이야?
레즈비언이냐고? 내가 봤을 때 헤리. 그친구는 말이야.
아직 육제척으로는 몰라도 정신적인 상태로는 거의 여자난 다름 없다고,
전에 얘기했지만 처제가 뭐가 아쉬워서 자꾸만 그딴 얘한테 목을 매는 지 내상식으로는 정말 이해가 안돼.”
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처제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째려보며 앙칼진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남이야 누굴 좋아하든 말든 형부가 무슨 상관이에요?
어서 내려가기나 하세요!”
이렇게 화가 난 처제의 모습을 여태껏 본적이 없었다.
그녀의 모습에 분노가 더 솟구쳤다.
“아니. 처제는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우리가 남이야?
걱정스러운 나머지 형부가 처제한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잖아.”
“남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 형부는 그래서 제몸을 건드린 거예요?”
그렇게 까지 말하는데 할말이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들 처체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 알았어 오늘은 그냥 내려갈게. 언제 시간되면 나하고 얘기 좀해 , 알았지?”
“알겠어요. 어서 내려가세요.”
내가 그 자리를 떠나겠다닌 조금은 잦아든 목소리로 처제가 대답했다.
“헤리. 걔랑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서 만나는 것은 모르겠지만 마무튼 밤이 너무 늦었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일찍 내려와.”
그말만 남겨두고 나는 발걸음을 뗐다. 마음이 복잡해서 내려가는 길이 한없이 더디었다.
그런데 한참을 내려가는 중에 반대편에서 올리오는 사람이 보였다. 어두웠지만 올라오는
그사람이 누구인지는 나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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