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다방 안쪽 자리
1989년 여름, 낡은 동네 골목 끝에 작은 다방이 있었다.
노란 커튼과 흘러나오는 트로트 음악.
그리고 그 안쪽 구석 자리에는 매일 같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커피도 타고, 잔도 치우는, 흔한 레지.
하지만 그녀는 평범하지 않았다.
“학생, 커피 더 줄까?”
그녀는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살짝 웃었다.
짧은 원피스 자락 사이로 보이는 건 짙은 광택의 검정 팬티스타킹,
그 위에 걸린 건 얇은 스트랩의 샌들이었다.

샌들은 날렵하게 발등을 훑고, 얇은 발목 줄을 따라 그녀의 껑충한 굽으로 이어졌다.
구두보다 노골적이고, 맨발보다 위험한 그 조합.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
팬티스타킹 너머의 곡선.
그건 살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살보다 더 야했다.
은근한 비침과 짜임, 그리고 각선미의 흐름.
“어디가 그렇게 재밌어?”
그녀는 그의 시선을 눈으로 따라가며 천천히 다리를 다시 꼬았다.
스타킹이 겹쳐지며 내는 ‘사각’하는 소리.
그 안엔 자극이 있었다.
고의적인, 무심한, 그리고 노련한.
그녀의 이름은 ‘희숙’이었다.
남들보다 약간 더 나이 들었고,
화장도 짙었고, 눈매엔 지침과 여유가 동시에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피로한 낯빛 위로,
청년은 그만 첫사랑처럼 가슴이 뛰었다.
“학생, 혹시 여자랑 뭐 해본 적 있어?”
“…아뇨.”
“귀엽네.”
희숙은 입꼬리를 비틀며 손끝으로 자신의 스타킹을 만졌다.
“그럼… 팬티스타킹이 왜 좋은지, 아직 모르겠네.”
그녀는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의자에서 다리를 풀어내려 천천히,
청년의 무릎 옆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서 다시 다리를 꼬았다.
이번엔 아예, 그의 시야 속에 스타킹의 끝선이 걸쳐지게끔.
“좋은 건… 숨기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거야. 아주 살짝만.”
그날 이후, 청년은 매일 그 다방을 찾았다.
커피 맛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다리 라인, 스타킹의 감촉, 샌들 밑의 투명한 매끈함만은 잊히지 않았다.
그건 음란함이 아니라, 유혹이었다.
너무나 천천히 젖어드는, 고급스러운 파멸.
그날도 희숙은 안쪽 자리, 선풍기 바로 아래 앉아 있었다.
그녀의 다리는 의자에 반쯤 걸쳐 있었고, 원피스는 자연스럽게 허벅지 중간쯤에서 멈춰 있었다.
그 아래로는 광택이 은근히 비치는 팬티스타킹,
그리고 여전히 발끝을 예쁘게 모은 스트랩 샌들이 눈을 끌었다.
청년은 문 앞에 서서, 한참을 그녀를 바라만 봤다.
그녀의 몸짓은 여유로웠고,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 발끝을 들었다 놨다.
모든 게 천천히, 그러나 명확하게 계산된 동작이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말이 없어?”
희숙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 그냥요.”
“그냥?”
그녀는 웃었다.
“내 다리 또 쳐다봤지?”
청년은 당황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희숙은 조용히 그의 맞은편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아주 가까이 앉았다.
그녀의 무릎이 그의 허벅지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렸다.
“이거 한번 만져볼래?”
그녀가 자신의 허벅지를 가리켰다.
“스타킹 위로만.”
“……네?”
“겁나?”
“아뇨… 아니요.”
청년은 떨리는 손끝을 들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스타킹 너머의 감촉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끄러웠고,
섬유가 주는 얇은 마찰은 오히려 살보다도 더 자극적이었다.
희숙은 살짝 몸을 돌리며, 청년의 귀에 속삭였다.
“어때?”
“…따뜻해요.”
“응, 지금은 따뜻하지. 근데 있잖아…”
그녀는 자신의 샌들을 벗더니, 맨발 위로 청년의 다리를 슬쩍 스쳤다.
그리고 다시 샌들을 신으며 말했다.
“하이힐은 보여주기 위한 신발이고,
스트랩 샌들은… 벗겨지기 위한 신발이야.”
청년은 숨이 막혔다.
희숙은 웃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천천히, 당연한 듯,
그의 손을 스타킹 위에서 자신의 무릎 뒤쪽으로 이끌었다.
그 부드러운 곡선.
진짜 살과 직물의 경계.
그곳을 스치는 감각이,
청년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넌,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
“근데 그게 너무 좋아.”
“난 너한테 모든 걸 하나씩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날 밤, 청년은 처음으로
스타킹이 왜 위험한지,
왜 벗기고 싶어지는 건지,
그리고 왜 희숙이라는 여자가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는지를
몸이 먼저 알아버렸다.
스타킹을 벗겨도 되는 밤
희숙은 다방 안쪽, 좁은 창고 문을 열었다.
“이 안, 손님은 절대 못 들어와. 알지?”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뒤를 따르자 오래된 커튼 하나가 공간을 가렸다.
형광등 하나, 그마저도 반쯤 꺼진 채 희미하게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여기선 좀 더… 자유로워도 되지.”
희숙은 조용히 구두를 벗었다.
샌들이 바닥에 닿는 소리, 그리고 그녀의 팬티스타킹이 다시 한 번 조명을 받았다.
그건 남자의 시야를 삼켜버릴 만큼 눈부시고, 또 야했다.
그녀는 등을 돌리고 벽에 기대더니,
원피스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허벅지 위까지 팬티스타킹이 쫀쫀하게 감싸고 있었고,
그 위로 검은 레이스의 속옷 밑단이 살짝 드러났다.
“벗겨봐.”
그녀는 말했다.
“오늘은 네가 해.”
청년은 손끝을 뻗었다.
처음에는 스타킹이 너무 미끄러워 손이 잘 안 잡혔다.
그녀는 살짝 웃었다.
“더 아래. 허벅지 안쪽부터.”
그는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스타킹을 말아내렸다.
사각거리는 섬유, 팬티와 스타킹 사이의 짧은 틈,
거기서 퍼지는 체온과 은은한 비누 냄새.
스타킹이 무릎 아래로 내려가자, 그녀는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그에게 살짝 걸쳤다.
다리선은 탄탄하고 매끄러웠고, 청년의 손이 닿은 순간 살짝 긴장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 다리, 좋아했잖아.”
“네… 너무 좋아요.”
“그럼 이제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해봐.
내 다리에 입을 맞추고 싶은 건지, 아니면— 더 위인지.”
청년은 말없이 그녀의 허벅지에 키스했다.
스타킹이 벗겨진 맨살이 따뜻하게 달아올랐고,
그녀는 그 숨결을 느끼며 살짝 허리를 떨었다.
“이제… 안 참아도 돼.”
그녀는 청년의 손을 잡고,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했다.
그 공간 안에서,
스타킹은 벗겨졌고,
샌들은 먼지 낀 바닥에 굴러다녔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몸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깊이 서로에게 침투해 들어갔다.
희숙은 그에게 몸을 열었고,
청년은 생전 처음 누군가의 체온에 녹아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기억보다 먼저 새겨지는 감각이었다.
“너한텐 내 다리가 여자 그 자체였지?”
“…그게 전부였어요. 근데 지금은…”
“지금은?”
“이제…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더 알고 싶어요.”
팬티스타킹은 바닥에, 감정은 공중에
다음날 아침, 청년은 다방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고, 희숙도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엔 전날 밤, 창고 안의 희미한 불빛 아래
자신이 벗겼던 스타킹,
그녀의 허벅지를 쓸던 입술,
팬티와 스타킹 사이의 얇고 은밀했던 틈만이 맴돌았다.
그녀는 말없이 받아들였다.
가르쳤고, 이끌었고, 열어줬다.
그러나 그 안에 감정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점심 무렵, 다방 문이 열렸다.
희숙은 어제와 똑같은 미소를 지은 채, 머리끈만 다른 색으로 바꿨다.
오늘도 짧은 원피스 아래, 광택 있는 스킨톤 팬티스타킹.
그리고 이번엔 뒤꿈치가 뚫린 슬링백 힐을 신었다.
청년은 자리에 앉자마자 속삭이듯 물었다.
“어제… 기억하시죠?”
희숙은 커피를 따르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무슨 일 있었나?”
농담 같았지만, 진심이었다.
희숙은 담담했다.
손끝은 여전히 능숙하게 설탕을 저었고,
다리는 의자 아래에서 부드럽게 흔들렸다.
“난 이런 일에 감정 묻히지 않아.”
“왜요?”
“묻히면 무너지니까.”
그녀는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뻗어,
청년의 정강이를 샌들 끝으로 살짝 건드렸다.
스타킹을 신은 채, 그의 발을 쓰다듬었다.
“넌 아직 여기에 머무를 거야.
하지만 난 다음 손님한테로 가야 하거든.”
청년은 숨을 삼켰다.
이건 사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그저 스치는 감각이었고,
그가 느낀 모든 전율은
다방이라는 공간 안에만 존재하는 환상이었다.
희숙은 커피잔을 그의 쪽으로 밀며 말했다.
“이 커피, 어제보다 덜 미지근할 거야.
하지만 내 온도는 항상 똑같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지.”
“그녀가 남긴 건 한 짝의 스타킹과,
샌들 벗는 소리, 그리고 내가 아직도 쫓고 있는 다리 라인뿐이다.”
“그녀의 다리는 내 첫 연애였고,
그 다리 위에 앉은 무심함이… 내 첫 이별이었다.”
5년이 지났다.
다방은 문을 닫았다.
노란 커튼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카페가 들어섰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라떼가 커피를 대신했고,
레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 건물 앞,
청년—이제는 제법 사회인이 된 그는
습관처럼 같은 자리 벤치에 앉아 있었다.
습하고 느릿한 바람이 불었다.
여름이었다.
그리고 다리가 떠올랐다.
짙은 광택의 팬티스타킹,
그걸 감싼 가느다란 샌들 스트랩,
그리고 그 너머로 흐르던 낯설지만 따뜻했던 체온.
그녀는 다방과 함께 사라졌지만,
청년은 단 한 번도
그날 벗겨낸 스타킹의 감각을 잊은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꿈에서 그녀가 나왔다.
그날 입었던 짧은 원피스 차림 그대로,
그는 희숙에게 다시 스타킹을 벗겨달라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이젠 네가 더 어른이잖아.
내가 아니라 네가 누군가에게 가르쳐줘야지.”
그 말이 너무 현실 같아서,
깨어나고 나서도 가슴이 멍해졌다.
그는 문득 가방에서 오래된 종이상자를 꺼냈다.
거기엔 그날, 희숙이 직접 건넸던
한 짝의 검정 스타킹이 아직도 있었다.
당시엔 아무 의미 없는 잔재일 줄 알았지만,
이제 그는 안다.
그건 살의 온도보다 오래 남는,
기억의 직물이었다.
그 위엔 그녀의 이름도, 향기도 없지만
그는 여전히 그 스타킹을 만질 때마다
자신이 처음 어른이 되었던 밤을 떠올린다.
“그녀는 사라졌지만,
그 다리의 각도, 샌들의 끈, 스타킹의 온도는
내 첫 연애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만난 어떤 여자도—
그 다리처럼 날 흔들진 못했다.”
 
														 
				 스타킹 너머의 그녀 1
							스타킹 너머의 그녀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