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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드모델과의 사랑 -2

조회 6596 추천 0 댓글 0 작성 17.06.03

 

 

 어느 누드 모델과의 사랑. 8편


     "의심이 갔는데 맞군요."
     다림씨는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뭐가요?"
     뭐가 의심이 간다는 말일까요. 북경장 녀석들이 간짜장을 삼선짜장으로 가져 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봅니다.
     "허술하죠?"
     "네?"
     "애써 배달 온거 맞죠?"
     "왜요?"
     뭔가 아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 봅니다. 그녀에게 내가 뭘 들켰을까요. 오늘 이 현관 앞에서 그 동안 많이도 보고 싶었던
     그녀의 얼굴 원 없이 쳐다 봅니다. 우리집에 저런 동생하나 있었으면 삭막하지 않았겠단 생각도 해보고 저 여자가 내
     옆에서 팔 장이라도 껴주며 걸어 준다면 제주도도 걸어서 갈 자신이 있겠습니다.
     "홍콩 반점이라고 그랬죠?"
     "네."
     "근데 젓가락은 북경반점이었어요. 단무지 그릇도 비우고 나니까 북경 반점이던데요. 보세요."
     정말 그랬습니다. 다림씨 그녀는 탐정이었나요. 그런 걸 왜 유심히 관찰 합니까? 북경 반점도 징하네요. 단무지
     그릇에다가 왜 저네 중국집 이름을 새겨 놓습니까? 자취 생들 그 자꾸 짱개 그릇이나 반찬 그릇 몰래 빼돌리지 마세요.
     숟가락도요. 인심이 야박 해지잖아요.
     "에..."
     "원장 언니 좋아해요?"
     "미쳤어요! 내가 40살까지 장가를 못가도 연상하고는 안해요. 한 두살도 아니고 다섯 살이나 많은데..."
     "언니 듣겠어요."
     내 소리가 너무 컸나요. 열 받았습니다. 들을 테면 들으라지.
     "에... 그래요. 오늘 우리 중국집 놀아요."
     "저 때문이에요?"
     "뭐가요?"
     "배달 나온 거."
     "에... 그렇다고 불 수 ..."
     "고마워요."
     다림 씨가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에게 자기를 좋아하는 맘을 들킨 게 상당히 쪽팔렸는데 그녀는 고맙다고
     말합니다.
     "내일도 놀아요?"
     "아마도 그럴겁니다."
     "저도 내일 시간이 많을 것 같은데..."
     다림씨가 내일은 할 일이 별로 없는가 봅니다. 그럼 내일은 학원에 나오지 않을 건가요. 아쉽네요. 오늘 미술학원은 왜
     나왔을까요. 다시 그림 그리려는 것 같기도 한데... 모레부터 시작하려나 봅니다.
     "그릇은 다음에 찾아 간다고 말해 주시겠어요?"
     그녀에게 들고 있던 그릇을 도로 주었습니다.
     "가시게요?"
     "그럼 볼 일 끝났으니까 가야죠."
     말은 잘 나오는데 내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 갑니다. 솔직히 좀 더 다림씨를 보고 싶습니다.
     "저..."
     "말씀하세요."
     "다시 아는 체 하면 안될까요?"
     "무엇을요?"
     "어... 그 술먹는 거 있잖습니까."
     "저하고 술한잔 하자구요?"
     "네."
     "언제요?"
     "내일 쯤...오늘도 괜찮구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잇다가 희망을 주는 그녀의 질문에 힘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림씨는 차가운 말을 합니다.
     "싫은데요."
     애써 침착하려 했으나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습니다.
     "제가 사...사 드릴께요. 싫으세요?"
     "네."
     "그럼. 훔 안녕히 계세요."
     나는 아픈 코를 한 번 훔치고는 힘없이 돌아 서려 했습니다.
     "내일 진짜 아르바이트 안 하세요?"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며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제가 식사 대접 한 번 하고 싶어요."
     "네?"
     "괜찮겠어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근데 왜 나한테 식사 대접을 할까요. 신기하네요.
     "네."
     "어디가 가까워요?"
     "뭐가요?"
     "만날 장소요."
     "그야 뭐 학교 앞도 괜찮고..."
     "그럼 학교 앞에서 보실래요?"
     "네. 근데 몇시에요?"
     "점심 드시고 싶으세요. 저녁 드시고 싶으세요?"
     둘 다면 안될까... 맘은 그렇게 대답하고 싶지만 깨질라. 고민이 되네요. 점심을 먹으면 일찍 만나지만 일찍
     헤어질것이고 음 좀 더 설레일 수 있는 저녁이 좋겠군요.
     "저녁이요."
     "그럼 한 다섯시쯤 볼래요? 학교 정문앞에서요."
     "네. 정말 사 주실려구요."
     "그럼요. 대접 받았으니까... 그리고 궁금한 것두 있구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뭘 대접 받았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기분이 날아 갈 것 같습니다. 역시 흥분 된 상태에서 빨리 달리면 안되는 군요.
     빠르게 내려오다 계단을 잘 못 짚어 구를 뻔 했습니다. 그녀가 안 봐 다행이군요. 굴러 넘어지지 않으려고 별 희한한
     포즈를 취했었습니다. 난간을 뱀이 나무 타고 올라가듯 붙잡으며 침을 흘렸거든요. 잘못하면 다림씨와의 약속을
     못지키고 주인 아줌마가 누웠던 침대로 바톤 터치 하러 갈 뻔 했습니다.
     짱개 가방이 없는 오또바이를 모는 것이 이렇게 어색할 줄이야. 등뒤가 허전합니다.

     내 방이 들뜬 내 마음을 가두기에는 너무나 좁습니다. 밤은 그 좁은 방안에서 너무나 오래 떠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생은 연애질 하느라 아직 안 들어 왔습니다. 화병에 꽃이 없는 걸루 봐서 오늘 꽃을 받으러 갔나 봅니다.
     재떨이가 크니까 참 좋네요. 물도 고인게... 방안에서 동생의 큰 화병을 재떨이 삼아 담배를 피고 있습니다. 다림씨같은
     미인과 내일 저녁 약속이 잡혔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지나 않나 헷갈립니다. 비록
     다림씨와 짱개 배달하면서 얼굴을 익힌 것은 사실이지만 철가방에게 관심을 두었을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되질
     않습니다.
     '역시 우리 세형제 중에서 내가 제일 잘났나벼.'
     초인종 벨이 울리고 부모님께 뭐라 뭐라 그러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금 있으면 저 방문이 열리고 동생이
     들어 오겠습니다.

     동생은 꽃을 한아름 들고 들어 왔습니다. 제 예상이 맞군요. 그렇지만 그렇게 밝은 표정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꽃을
     바로 화병에 꽂느라 부산을 떨었는데 오늘은 그냥 책상에다 휙 던져 놓고는 옷갈아 입기에만 급급합니다.
     "너 싸웠냐?"
     "누구랑?"
     동생이 반바지 추리닝을 하나 걸치며 되 묻는군요.
     "니 애인이랑."
     "걔랑은 싸움이 안돼."
     "왜?"
     "걔가 일방적으로 날 좋아하는 거니까."
     "너 신문에 낸다."
     "뭘."
     "너 친엄마가 너 제발 좀 데려가라고."
     "형아야."
     "왜."
     "은정이 고년이 내 군대 있을 때 사귄애가 둘이나 되더라. 하나는 또 우리과야. 키스도 여러번 했을거야 아마."
     "그것 때문에 깨졌냐?"
     "아니. 걔는 나를 엄청 좋아한다니까."
     "그런데 왜?"
     "기분이 찜찜하잖아."
     "넌 걔가 좋냐?"
     "좋았으니까 만났지 임마."
     "너 죽을래 새꺄."
     "미안해 형."
     "뭣 때문에 기분이 찜찜한데?"
     "진짜 상담이 안되네. 이러니 쯧쯔."
     동생이 나를 비웃는 듯이 눈을 내리 깔더니 깔아 논 이불을 덮고 누워버렸습니다.
     "꽃은 꽂아야지."
     "형이 꽂아."
     "걔하고 싸웠냐?"
     "안싸웠다니까."
     "일어나 니가 꽂아 빨리."
     "왜."
     "걔가 지금 널 좋아하고 니가 걔를 좋아하면 됐지. 뭐 딴게 필요있냐?"
     "그렇게 간단한게 아냐. 형도 해봐. 가망이 없구나 참."
     "이게 진짜. 나도 내일 아가씨하고 약속 있어 임마."
     "그래 그래 내가 꽂을게."
     동생이 일어 났습니다. 내가 재 털었는지도 모르고 꽃을 꽂았습니다.
     "꽂았으니까 형 거짓말 하지마 알았어?"
     나를 못마땅한 듯 쳐다 보며 다시 자리로 가 눕는 동생이 어찌 보면 귀엽기도 합니다. 니가 믿건 안 믿건 난 내일
     다림씨를 만난다.
     화병에 꽂힌 장미(장미 말고 아는 꽃들 이름 좀 가르쳐 줘요.)가 오늘 내 마음처럼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활짝 피어 있습니다. 그 장미사이에 아까 피었던 담배의 꽁초를 살포시 버렸습니다.
 

 

    어느 누드모델과의 사랑. 9편


     짱개 배달도 안했고 그녀 생각도 나고 밤은 잠이 들지 못한 채 깊어만 갔습니다. 그녀에게 받은 돈이 오늘로 만원을
     넘었습니다. 팔 월달은 어쩌면 이 천원짜리들 처럼 빳빳한 추억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동생은 오늘 별로 표정이
     밝지 못하더니만 그래도 베개를 꼬옥 껴 안고 잠은 미소를 머금은 채 먹고 있습니다. 나는 새벽에 신문 배달하는
     오또바이 소리를 듣고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 났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화병의 꽃은 어제 동생이 자신들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못했는데도 여전히
     웃고 있습니다. 시간은 아침 먹어야 겠다,라는 소리가 어색한 11시였습니다. 그래도 아침을 먹어야죠. 주방의 한 켠에
     아침 밥상이 날 위해 차려져 있습니다. 동생도 늦게 일어 났나 보네요. 방금 먹고 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되도록
     적게 먹었지요. 약속이 있기 때문에... 동생도 밥을 남기고 나갔습니다. 아껴야 잘 살죠. 버릴 수가 없어 내가
     먹었습니다. 동생 밥 그릇은 비워져 있는데 제 그릇의 밥을 남길 수는 없었습니다. 마저 먹었습니다. 오늘 약속 때문에
     아주 조금만 먹었네요. 아직 약속 시간은 사분의 일나절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긴장이 됩니다.
     에이씨 심장이 빨라지면 시간도 빨리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심장 고동 소리만 빨라지고 시간은 그대로 인 듯 합니다.
     하늘은 또 장마가 시작 되려는지 시커먼 구름들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 마당 베란다에 앉았다가 빗줄기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나기였군요. 소리는 요란하게 컸지만 오래지 않아 해가 다시 나왔습니다. 저기 멀리 또 구름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우산을 가지고 나가야 겠습니다. 에... 그녀가 우산을 안가지고 나온다면 같이 쓸 수도 있지요.
     헤헤. 다림씨에게서 받은 돈을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습니다.

     참 오랫동안 기다린 것 같습니다. 오후 네시 정도부터 기다린 이곳은 햇살도 뜨거웠고 떨어졌던 비가 증발하면서 땅도
     뜨거웠습니다. 다리미 바닥 같습니다. 다리미 그러니까 다림씨가 생각이 나네요. 그녀는 지금 무얼할까요. 에... 생각해
     보니까 절 만나러 오고 있겠군요. 신납니다. 심장아 가만히 있어라. 자꾸 그렇게 발작하면 떼 내어 버린다.
     "오빠!"
     야릇한 여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습니다. 엉덩이가 오싹합니다.
     "엉! 누구신지..."
     다림씨는 아니었군요. 꼭 마징가 제트를 화장시켜 놓은 듯한 모습입니다.
     "나야. 전자과 퀸카."
     자세히 보니 그런거 같습니다. 우리과 퀸카였습니다. 뭐 여자라고 쟤 하나 뿐인데 퀸카 맞겠죠 뭐.
     "근데. 왜 오빠냐. 내가 너한테 형 아니었냐?"
     "나도 애인이 생겼걸랑. 좀 여자다와지기로 했지."
     "아임에프 때문이겠지."
     "갑자기 아임에프가 왜 나와?"
     "딱 보니까 니 애인이라는 사람 백수 같다."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임에프 때문에 취직 안된거지?"
     "응."
     "맞잖아. 백수 아니었으면 누가 너하고 사귀겠냐?"
     "내가 형이니까 참는다."
     다시 형소리가 바로 나오네요. 니가 그러면 그렇지 니 애인 엉덩이도 툭툭 치고 다니냐?
     "그래. 어디가는거야?"
     "그이 만나러."
     그이? 사랑은 설레이는 거군요. 그토록 남자같던 그녀라 부르기 어색한 우리과 그녀도 설레이면서 이제는 그녀라 해도
     예전만큼은 어색하지 않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화장이 영 어색한 게 떨칠수는 없군요.
     "나 좀 이뻐진것 같애?"
     "졸라 이뻐졌어. 근데 니 화장한 걸 보니까 불량감자가 생각이 난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너 그이 만나러 간다며? 약속시간 되지 않았냐?"
     "그렇구나. 그럼 복학하면 봐."
     우리과 퀸카는 칼 루이스가 뛰는 듯한 모습으로 휭하니 도서관쪽으로 사라졌습니다. 내 복학하면 넌 졸업할텐데... 재도
     문득 생각나면 웃음을 주겠군요. 잊혀지면서 말입니다.

     우리과 그녀가 사라진 쪽을 보고 있는데 또 등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어. 오...오셨군요."
     그냥 미소를 지었을 뿐 그렇게 반가워 하는 표정은 지을 수 없었습니다. 떨렸기 때문에요. 시간은 다섯시에서 이-삼분
     지났을 때였습니다. 다림씨는 여느 학생들의 모습같은 반팔 티에 청바지 차림이었습니다. 그래도 화려한 드레스의
     어느 공주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저 많이 기다렸어요?"
     "지금이 약속시간이잖아요."
     "그래도 누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으면 괜히 미안해서요."
     "금방 왔어요."
     그걸 부정하듯 내 이마에서는 땀이 연신 흐르고 있었고 내가 입고 있는 티도 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저녁이요."
     다림씨는 한번 보조개를 띠우고는 제 팔을 잡았습니다. 다소 어색합니다.
     "가요. 철판 볶음밥 좋아하세요? 전 그게 너무 맛있거든요."
     이렇게 더운날 철판 볶음밥이 왠 말이래요.
     "저도 너무 좋아해요. 그거 먹어요."
     서로 아무런 접촉이 없이 걷고 있지만은 저기 팔짱끼고 가는 연인이나 또 저기 완전히 껴 안고 가는 년놈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날씨가 더운데 철판 볶음밥 집은 제법 붐볐습니다. 자리에 앉았지요.
     그녀가 따라준 컵을 입에 대며 귀여운 눈빛으로 메뉴판을 봅니다.
     "전 양송이 볶음밥이요. 원이씨는요?"
     양송이 볶음밥은 무엇이래요.
     "저하고 입맛이 비슷하군요. 저도 그럼 그걸로."
     이렇게 자연스럴수가... 저에게 이런 잠재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잠재 능력은 별로 발휘 되지
     않았습니다.
     "인사동에 가면 칼국수 잘하는 데가 있거든요. 날씨가 싸늘해 질 때 가서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다림씨가 볶음밥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나요. 먹을 걸 시켜놓고 또 다른 먹는 얘기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제가
     멀뚱히 숟가락만 들고 있으니까 그녀가 또 말합니다.
     "가을이 끝나면 칼국수도 사드릴께요."
     그 말이었군요. 난 또... 철가방이라고 그런 것 못 사먹을까봐 그러나요? 나 부잔데... 한 여름에 가을얘기는 또 왜
     하는거죠? 그때는 철가방 안할텐데...
     "고맙습니다."
     밥은 철판위에서 볶아졌고 다림씨가 이리저리 숟가락질을 했습니다. 철판위의 밥이 다 없어 질 때까지 전 별 말을
     못했습니다. 그냥 가끔씩 묻는 질문에 예 또는 아니요 만 했을 뿐입니다. 저도 묻고 싶었지만 버릇처럼 입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원래 말이 별로 없으세요? 학원 언니랑 옥신각신 할때는 참 재밌는 분 같았는데..."
     "예? 조...좀 어색함이 가시면 그런데로 말을 하긴 하는데..."
     "흠. 다 먹었으면 일어 날까요?"
     다림씨가 일어 날 때의 표정은 익숙한 모습입니다. 미팅이다 소개팅이다 할 때 상대편 여자의 표정에서 많이도 본
     모습입니다. 말이 없어 심심했는지 저 표정 뒤에는 항상 집으로 그냥 가버리더군요. 수퍼맨 같은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고... 밤에 나이트 가는게 취미라던 아가씨가 갑자기 부모님이 아홉시까지 안들어오면 잡아 죽인다는 헛소리를
     해가며... 또는 뻔히 무남독녀라 그래놓고 자기 오빠가 오늘 군에서 휴가 나온다나요. 그렇게 나와 헤어지려
     했었습니다. 난 왜 이럴까.

     그녀가 계산하는 모습을 어색하게 쳐다 봤습니다. 저 계산이 끝나면 그녀도 집으로 간다는 소리가 나오겠죠. 슬픕니다.
     잡고 싶지만 싫어하는 모습 보일까봐. 그 모습이 무서워 말을 못 꺼내 겠습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이 소리가 분명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물끄러미 다림씨를 쳐다 봐야만 했습니다.
     "뭐 하실래요? 제가 밥 샀으니까 차라도 한 잔 대접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럼요."
     그녀의 말은 나를 편하게 했습니다. 어색함도 없어 지는 느낌이 듭니다.
     "아는데 있어요?"
     "없지만 뭐 커피숖이야 제가 낯이 익은 곳이죠. 겨울의 차가운 북적거림을 느끼고 싶으면 샤갈의 눈내리는 동네가
     좋구요. 이렇게 가게 이름 길게 만드는 사람들 이해가 안가요. 푹신한 소파를 원한다면 쌔가 좋아요. 조용한 음악을
     원하시면 여우사이. 간단히 차를 통해 휴식을 얻고 싶다면 셀프하는 곳도 괜찮지요. 진정한 커피의 향기를 원하시면
     현철다방이 좋구요. 아주 싸게 먹을려면 우리학교로 가서 자판기 커피도 있지요."
     제가 어색함만 없다면 이정도 말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아자!
     그녀의 웃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현철다방은 뭐에요?"
     "우리 철가방 단골 다방인데요. 커피가 참 맛있어요. 박양도 얼마나 예쁜데요. 다리미 보다는 못하지만..."
     "여우사이 가요. 여기서 가까운데서 봤어요."
     "네 기꺼이."

     다림씨가 옆에서 웃어주니 자신감이 생기네요. 웃음을 보이는 것은 남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는 건가 봅니다. 그렇다고
     비웃지는 맙시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켜진 실내는 은은한 조명과 같이 은은한 음도 울리고 있었습니다. 대화하기 좋은 곳이죠.
     밖이 보이는 창가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내가 담배피는 사람으로 보였습니까? 서빙 보는 아가씨가 메뉴판 보다
     재떨이를 먼저 갔다 줍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그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많이 편해졌단 증겁니다.
     "전 아이스커피요."
     "아가씨!"
     이런 곳에서는 부르는게 아니군요. 하지만 다림씨의 모습은 더움에 시달려 이제는 차운 음료수가 필요하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여기 아이스 커피 하나 냉커피 하나요."
     "네?"
     서빙 보는 아가씨가 초짜인가 보네요. 주문을 되 묻습니다.
     "아이스 커피가 안돼요? 냉커피가 안돼요?"
     "네? 둘다 되는데요."
     "하나씩 주세요."
     앞에 앉아 있는 다림씨가 웃습니다. 그리고 서빙 아가씨가 왔을 때 아주 듣기 좋은 웃음소리를 크게 내며 입을 활짝
     열었지요. 그 서빙 아가씨는 꼭 남자셋 여자셋의 선정씨 같았습니다.
     "냉커피 어느 분이세요?"
     "저요."
     "아이스 커피는요?"
     저에게 주었으면 남은 건 다림씬데 이 아가씨가 웃겼습니다. 다림씨 컵과 제 컵이 똑 같네요.

     "언제부터 철가방 하신거에요?"
     "육개월 다 되어 갑니다."
     "지하철에도 배달이 되요? 티비에서 보니까 전철안에도 배달을 하던데..."
     그 말을 하고 씩 웃는 다림씨의 모습이 귀엽습니다. 다림씨가 주문하면 그럴 수도 있죠. 지하철이 문제 겠습니까. 747
     뱅기 안에서 시켜봐요. 내가 못 갖다 주나. 그냥 웃어 주었을 뿐입니다.
     "모델이세요?"
     "네."
     "하긴 이쁘시니까."
     "정식 모델은 아니에요."
     "그건?"
     "협회에 가입은 하지 않았거든요."
     "네?"
     "좀 더 가까워 지면 말씀 드릴게요. 지금은 좀 그렇네요."
     그녀가 저와 좀 더 가까워 지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게 꿈일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철가방을 하셨어요?"
     그녀에 대해 더 질문하고 싶었지만 잠시 참죠. 그녀의 질문에만 충실히 답을 해야 겠습니다.
     "친구가 하던 거라서... 제법 돈이 된다길래."
     "돈은 많이 벌었어요?"
     "그럼요. 일년 등록금을 이제 제가 낼 수 있다니까요."
     "등록금이 얼만데요."
     "일년이면 오백만원이죠."
     "우와. 그렇게 비싸요?"
     "다림씨는 등록금 안 내 봤어요?"
     "전 전문대 나왔어요. 졸업한지도 삼년이 넘었구요."
     "아... 그래요."
     "아르바이트 계속 하실거에요?"
     "팔월달에 그만 둘 생각인데... 참 우리학교는 어떻게 온 거였어요?"
     "저도 아르바이트 비슷한 거 하러 간거에요. 그 날 짤렸지만..."
     "모델 서신거에요?"
     "네. 요즘은 절 찾는 사람이 별로 없네요. 다음에 만나면 얘기 해 드릴게요."
     "저 계속 만나 줄 수 있단 말인가요?"
     "네? 제가 그렇게 말한 게 되나요?"
     "제가 듣기는..."
     "참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어요. 아르바이트 인 줄은 몰랐는데..."
     "저 별로 열심히 못 살았는데."
     "그냥 철가방이라 소박해 보였어요."
     씨 철가방이 어때서...
     그녀가 날 보며 꼬마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입을 방긋했습니다.
     "팔 월달에 그만 두면 못보겠네요. 전 계속 할 줄 알았는데. 언니가 학원에 자주 놀러 오라고 했거든요."
     "원장 아줌마는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잘 아는 사이요 히."
     이 아가씨도 농담을 제법 하네요.
     "저야 다림씨가 시간만 내 준다면야 항상 만나고 싶죠."
     "그래요?"
     "그럼요."
     "저 물어 볼게 있다고 그랬죠?"
     "물어 보세요."
     "장미. 언니한테 준거에요 저 한테 준거에요?"
     "당연히 다림씨한테 준거죠."
     "쿠쿠. 원이씨가 갖다 놓은게 맞군요."
     다림씨는 자기 집에 아무래도 탐정소설책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내 대답을 듣고는 웃어주는 다림씨의 얼굴이 너무나
     천진난만하여 곱습니다.
 

 

 어느 누드모델과의 사랑. 10편

     많은 대화를 하고 가까워진 다림씨와 나를 커피숖 밖에서 맞은 것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는 비였습니다. 창밖으로
     볼때는 참 시원하게 보이더니만 실제로 보니 장난이 아닙니다. 두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비가 하염없이
     내립니다. 내 기대대로 다림씨는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쉬운 것은 지하철 역이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원이씨는 지하철 타고 가세요?"
     "네."
     "전 버스타고 가요."
     버스 정류장은 더 가깝군요. 그녀를 바래다 주어야 하는데 이 아가씨가 저를 바래다 준답니다. 우산도 없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요. 할 수 없이 우산을 같이 쓰고 지하철 역까지 왔습니다.
     패스를 끊어 개찰구를 들어 가려 합니다. 그녀가 그 앞에서 웃어 줍니다.
     "내일은 배달하세요?"
     "내일은 아마 할거에요."
     "잘 들어 가시고 다음에 봐요."
     "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네요. 다림씨 티의 팔에 비가 묻어 있습니다.
     "다림씨 잠깐만 이리 와봐요."
     개찰구를 이미 통과했지요. 칸막이만 있는 곳으로 그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던 우산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쓰고 가세요. 저야 역 나오면 바로 집이에요."
     그녀가 도로 주려고 하길래 그냥 손을 흔들고 가버렸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뒤돌아 봤습니다. 그녀의 모습이 아직
     저를 쳐다 보고 있습니다.
     "내일 미술 학원 오세요. 제가 탕수육 또 서비스로 드릴께요."
     "그래요. 잘가세요."
     난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그녀는 뭐가 웃긴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아주 밝은 모습입니다. 그녀가 이제 돌아 섭니다.
     가방에서 그녀가 작은 우산을 꺼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삼단 접이식 우산이었습니다. 헨드백에도 들어가는 작은
     우산말입니다. 그럼 내 우산은 돌려 줘야 되지 않습니까. 돌리도. 그러나 그녀는 이미 말소리가 들리려면 상당히
     쪽팔리게 소리질러야 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그냥 플래폼이 있는 곳으로 내려 와야 했습니다.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크지만 그것이 제 웃음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왜 이리 히죽거릴까요. 지하철 안에서도 계속
     히죽거렸습니다. 그 히죽거림은 역을 나왔을때 멈추었습니다. 비가 졸라 많이 옵니다. 우리집은 역에서 졸라 걸어가야
     되지요. 시간은 열시를 넘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뛰었습니다. 예전에 호기심 천국에서 뛰는게 비를 덜
     맞을까? 걷는게 덜 맞을까? 실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없습니까? 없다면 한 번 물어 보세요. 하여간 비를 졸라
     맞았습니다. 내 기억에는 분명 뛰면 덜 맞는다고 했는데 졸라 맞았습니다. 여름인데 춥습니다.
     다림씨 그녀 때문에 히죽거림이 또 생겼습니다. 그래 비야 내려라. 그녀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내 모습이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웃습니다. 우산을 쓰고 비옷까지 입은 어떤 여인이 날 보고 놀라 도망치 듯 멀어집니다. 좀 씌워
     주면 될텐데... 인심 진짜 야박하군요.
     물에 빠진 개모양으로 집으로 들어 섰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놀라는군요.
     "다녀왔습니다."
     "너마저?"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대충 옷을 벗으니 빗물은 안떨어 집니다. 욕실의 세탁기에다 옷을 갖다 놓았는데 이미 젖은
     옷들이 있습니다.
     방으로 왔습니다. 이불을 둘러쓰고 벌벌 떨고 있는 동생을 보았습니다. 난 팬티바람으로 들어 갔었죠. 동생도 이불속에
     팬티바람으로 있었습니다.
     "동생아."
     "응 형아야."
     혈육의 정을 느꼈습니다.
     "너도 쫄딱 맞았냐?"
     "응."
     "너는 왜 맞았냐?"
     "우산이 없어서."
     당연한 것을 물어 보았군요.
     "난 맞아도 기쁘다."
     "난 졸라 화난다."
     "왜?"
     "두고 보자 조은정. 내 복수하고 말거다."
     "뭔 일 있었냐?"
     "아무래도 꺼림찍 해서 물어 봤지. 너 그 놈들이랑 키스했지? 내가 몇 번째야?"
     "그걸 물어 봤어?"
     "당연히 물어봤지. 키스했지? 키스했지? 이랬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물벼락이 떨어지더라."
     "무슨 말인데."
     "내가 찻집에서부터 물어본 걸 밖에 나와서도 계속 물어봤지. 같이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 고년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냥 횡하니 지 혼자 가버리더라. 우산도 따라가데. 하 따라가서 우산을 뺏을수도 없고 불러도 오지를 않고 쫄딱 맞았지
     뭐."
     "그래서 그냥 온거야?"
     "그럼 내가 존심이 있지 가서 우산 뺏어 오냐?"
     "너 멀었구나."
     "뭘"
     "여자가 대답을 꺼려 하는 것은 묻는게 아냐. 그냥 자기 입에서 그 말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거야 알겠어?"
     "제법 아는 척 하는데? 진짜 오늘 아가씨 만난 거 아녀."
     "이 형이 언제 거짓말 하던? 같이 덮어 새꺄. 나도 추워."
     내 화병의 꽃은 이제 모두 시들어 한잎 한잎 떨어 지려 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그 꽃을 사준 사람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본 주인 아줌마는 여전히 어깨는 떡 벌어져 있었지만 얼굴은 헬쓱해 있었습니다. 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나
     봅니다. 그 고생을 안겼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습니다. 많이 오네요. 배달하기가 벅찹니다. 길은 실개천이 되어
     어디론가 급히 가고 있습니다.
     "오늘 배달은 힘들겠다."
     아줌마가 우리를 걱정하시며 오늘은 배달을 하지 말자고 합니다. 오늘 신참이 왔습니다. 내 오또바이 타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 줄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비 때문에 직접 찾는 손님도 거의 없습니다. 오늘 그냥 놀면서 돈 벌이겠네요. 신참 녀석도 대학생입니다. 그도 졸업을
     앞두고 휴학한 학생이었습니다. 저보다 한 살이 적습니다. 홀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아줌마는 간혹 오는
     배달 주문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신참 녀석은 이름이 배용준이었습니다. 생긴것은 배삼용인데요. 하는 태도는 착해
     보였습니다. 그냥 자기도 경기 풀리는 것을 기다리며 학비나 벌어 보자고 시작한 아르바이트라고 합니다. 아픈 사연이
     있다면 군대가서도 고무신 거꾸로 안 신었던 지 여자친구가 철가방 한다니까 바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는 군요.
     험한 세상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점심때가 지났습니다. 공짜로 제공되는 짱개 한 그릇 씩을 비우고 동윤이 녀석이랑
     떨어지는 비를 감상하고 있는데 주인 아줌마가 절 찾습니다.
     "강군아 전화 받아라."
     "네."
     전화에서 아주 반가운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림씨였습니다.
     "오늘은 문을 열었나봐요?"
     "네."
     "비 때문에 배달이 어렵겠죠? 배달 안된다고 하네요."
     "학원이에요?"
     "네."
     "식사 안하셨어요?"
     "마땅히 먹을데가 없네요. 언니가 굶어 죽으면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다림씨는 배 안고파요?"
     "저야 뭐. 별로 생각 없어요."
     "배달해 드릴게요."
     "진짜에요? 안되다고 그러던데..."
     "안되는게 어딨어요."
     주인 아줌마가 제 뒤통수를 쳤지만 참았습니다.
     "뭘 드릴까요."
     "삼선 짜장 둘 주세요."
     "네 곧 갖다 드릴께요."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제 그만 둔다고 막 나가니?"
     "짱개 단골을 삼짜 단골로 바꿀수 있는 기회란 말이에요."
     참 맑은 눈동자로 시위를 했습니다. 그 눈빛을 보더니 아줌마가 피식 웃으며 뭐냐고 물어보는군요.
      "삼짜 두개에 탕수육 작은거 하나 주세요."
     동윤이가 절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봅니다.
     "저녀석이 비 때문인지 몰라도 요즘들어 미친 짓 많이해요."
     "나둬라. 뭔가 좋은 일이 있나보지. 전화 한 아가씨와 잘 아는 사인가 보지 뭐."
     "아가씨가 전화 했어요?"
     "응."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습니다.
     "저 사장님."
     "그래 놀다와. 뭐 할일도 없는데..."
     그 말 물어 볼 것을 우리 주인 아줌마 어떻게 알았을까요. 생기신 것과는 다르게 자상함이 많은 중년의 아줌마입니다.
     야단칠때는 좀 무식해 보이시지만...
     도저히 오또바이는 못 타겠습니다. 그만큼 비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노란 우주복 사이로 비가 내 속으로 들어 옵니다.
     신발은 다 젖었어요. 하지만 철가방을 들고 난 즐겁게 뛰고 있습니다.

     현관 앞에 섰습니다. 내 몸에서 김이 나고 밑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식사 왔습니다."
     내 모습이 좀 어색합니까? 두 여자가 나를 안 됐다는 눈으로 쳐다 봅니다.
     "비 너무 맞았다."
     "정말. 괜히 시켰네요. 미안해서 어쩌나..."
     "괜찮습니다. 이 정도야 뭐."
     "좀 닦아요."
     원장아줌마가 수건을 던져 주었습니다. 무식한 원장 아줌마. 내가 비옷을 입고 철가방까지 들었는데 그렇게 민첩한 줄
     아십니까? 원장 아줌마가 던진 수건은 바람을 타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 2미터 가량 옆 쪽에 떨어 졌습니다. 그렇지요.
     이래야죠. 다림씨가 그것을 주워 저에게 직접 갖다 줍니다. 배우세요. 원장샘.
     "원장실에 갖다 놓을까요?"
     "그래요."
     학원 본실에 있던 원장아줌마와 다림씨는 저를 따라 원장실로 들어 왔습니다.
     "맞네. 삼선짜장 시키니까 탕수육 서비스로 나오는거."
     "언니 그런게 어딨어. 고마워요."
     다림씨는 내가 탕수육을 꺼내 놓자 볼에 보조개를 크게 하고 미소를 지어 줍니다.
     "맛있게 드세요."
     "돌아 가실 거에요?"
     "기다려야죠."
     "그럼 같이 먹어요."
     "전 점심 먹었는데..."
     "그래도 같이 들어요."
     "얼마야?"
     "만원이요."
     "만원치고는 상당히 푸짐하다."
     다림씨에게 받았으면 했는데 오늘은 원장아줌마가 돈을 주었습니다. 비 옷을 벗어 밖에다 내다 놓고  들어 왔습니다. 이
     여자들 식성 좋네요. 아무리 작은거지만 세명이서 먹으면 양이 딱 맞는 것을 짜장까지 먹으며 탕수육을 비워 가고
     있습니다. 전 별로 먹지 않았어요.
     다림씨 그녀도 그렇고 원장아줌마도 그렇고 입가에 짜장과 탕수육 소스를 보기 좋게 묻히고는 저를 보고 웃습니다.
     "별로 생각 없다면서요?"
     "네?"
     "다림씨 점심 생각 별로 없다고 그랬잖아요."
     "먹어야 잘 살죠."
     처음엔 참 정숙한 모습이었는데 점점 아기같아 보입니다.
     "차한잔 끓여 주까?"
     "네."
     "예전에 장미 원이씨가 갖다 놓은거라며?"
     "네."
     "야. 센스 있네. 한 복에 장미가 그렇게 언매치되면서 잘 어울릴줄을 몰랐어. 모두들 좋다고 그래. 고마워."
     내가 뭐 그런거 알고 줬나요. 그냥 다림씨가 좋아서 준 것이지. 그래도 이왕 밝혀진 것 칭찬 받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원래는 나줄려고 갖다 놓은거지?"
     칭찬하지 마세요. 그냥 제가 갖다 놓은걸 부정하겠습니다. 원장아줌마가 음흉한 미소를 짓습니다.
     "알어. 좋을때지.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 언제인가 싶다."
     음흉한 미소는 그리운 미소로 바뀌어 원장 아줌마의 모습을 곱게 했습니다.
     "어제 비 많이 안 맞았어요? 많이 맞았죠?"
     "네."
     원장 아줌마는 차를 대접하기 위해 물을 끓이러 갔습니다.
     "왜 우산을 줬어요. 저한테도 있었는데..."
     "처음엔 없었잖아요."
     그녀 볼에 약간 노을이 맺히더니 정답게 웃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우산도 없이 역까지 따라 갔겠어요."
     "어제 즐거웠습니다."
     "저도 재밌었어요. 배달은 언제 까지 하세요."
     "한 열흘 남았어요. 그 뒤는 아주 한가해요."
     "호호 그래요? 그럼 한가하면 연락주세요. 어쩜 헤어지면서 연락처도 안 물어요? 여자들은 전화 할 맘이 없어도 물어
     보면 좋아해요."
     그녀는 삐삐 번호를 적어 저에게 주었습니다. **6 272 0865(특정 업체를 홍보하면 아니되겠기에 현철이 피시에스
     번호로 대처했습니다. 다 적으면 속 보일까봐 숫자 두개는 삐리리 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연락할 마음 없는 거에요 그럼."
     적은 종이를 쳐다 보며 그렇게 말했더니 또 웃습니다.
     "꼭 연락할게요. 원이씨는 뭐 없어요?"
     "전 집전화 번호 밖에는 없는데... 746-****(이것도 제 번호지요. 제 방 전화 번호요. 번호는 차마 밝히지 못하겠습니다.
     단지 피시에스 번호와 같다는 것만 말할게요. 아무도 모를거야 아마. 딴게 있거든요.)"
     그 걸 자기 수첩에다가 적는 다림씨의 모습이 꼭 제 여자친구 같아요.

     원장실에 비소리를 들으며 이제 사랑하고픈 여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와 마시는 커피 맛은 너무나 내 가슴을 뛰게
     합니다. 가을이 되면 뭐 할까?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지금 너무나 달콤하게 밑그림 되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로 와서 씨앗이 되었고 난 그 씨앗을 아름답게 키우고 싶다. 사랑이란 열매가 맺을 때 까지 말이다.
 


원장아줌마가 전화번호 주고 받는 다림씨와 나를 물끄러미 쳐다 봅니다.
들고 있는 컵이 얼굴을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말입니다.
"둘이 지금 뭐하는 거야?"
보면 몰라요? 이게 바로 사귈려는 징조 아닙니까.
"나도 적어주까? 나 이래뵈도 아직 젊어."
원장샘이 젊으면 난 이팔청춘이겠다. 그래 난 아직 늙지 않았습니다.
"전 학교에서 늙은이 취급 받는데요."
"나는 우리집에서 아주 애 취급 받는데? 늙은이하고 애하고 사귀어 볼래? 내가 손해보는 셈치고."
원장아줌마가 아무래도 저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웃고 있는 다림씨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아줌마의 구애 공작은 계속 되었습니다.

"언니 좋은 분이에요. 사귀어 보면 맘이 달라 질 걸요."
원장아줌마가 다림씨의 말을 듣고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방긋합니다.
"그래 나랑 사귀면 얼마나 귀여움 받겠어?"
"싫은데요. 둘 다 사귈 자신은 없어요."
생각없이 뱉은 말인데 상대편은 그게 아닌가 보네요. 그래서 착각하면 힘들어 지죠.
"오호! 둘이 사귈려고? 철가방이 다림이 같은 미인을 넘본다?"
"예? 철가방도 사람인데요."
"철가방이 어떻게 사람이야. 가방이지."
"네?"
"그만 놀려요. 저러다 언니가 진짜 맘 있는 줄 알겠어요."
다림씨가 제 표정을 보더니 웃으면서 원장 아줌마의 말을 막았습니다.
그래 그만 놀려요. 원장 아줌마가 저한테 맘이 있는 줄은 알겠는데
난 원장아줌마 옆에 있는 분이 더 좋단 말입니다.

비는 계속 쏟아 졌습니다.
그릇은 비워졌고 제가 할 일은 이제 중국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겠군요.
"학생. 그만두면 우리 미술학원하고는 끝이겠네?"
이제는 학생으로 부르네요. 어디까지 가나 봐야 겠군요.
그릇을 챙기는데 원장아줌마가 물었습니다.
"네. 그만두면 뭐..."
"아쉽네. 그래도 정이 들었는데... 탕수육도 주고 말이야. 물론 나한테 준건 아니겠지만."
"아직 열흘정도 남았는데요. 많이 시켜 드세요."
"열흘이면... 가만있자. 한 16-7일 쯤 되겠다."
"네."
"그때부터 진짜 한가해?"
아줌마가 뭘 부탁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원장아줌마의 말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다림이 한테 부탁해봐야 겠네."
궁금한 듯한 표정으로 둘을 살폈지만 웃을 뿐 다림씨도 원장아줌마도 아무말이 없습니다.
더 있고 싶었지만 계속 있으라는 말이 없었기에 그냥 나와야 했습니다.
비는 여전히 억수 같이 퍼 붓습니다.
올때는 몰랐는데 돌아가는 길은 멀었습니다. 신발이 무겁습니다.
철가방도 더 무거운 것 같습니다.

오늘도 비가 왔습니다. 하지만 빗줄기는 많이 약해 졌습니다.
11시가 지나자 비는 그쳤습니다. 예전으로 돌아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루만에 주인 아줌마는 원기를 회복하신 듯 얼굴이 헬쓱하지 않습니다.
주문이 시작되었고 중국집은 예전의 활기를 찾았습니다.
신참은 가까운 곳으로 배달을 하고 동윤이와 나는 칠구의 영역까지 배달을 나갔습니다.

미술학원에서 주문한 삼선짜장 두개는 바쁜 한 시 경에 있었습니다.
오늘은 거기서 오래 있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학원에서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내려 옵니다.
학원이 맞긴 맞나 봅니다.
"식사 왔습니다."
다림씨도 그림을 좀 그리나 보네요.
아직 화실을 나가지 않은 한 꼬마의 그림을 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와 데이트 했을 때의 옷차림입니다. 사랑스럽네요.
원장아줌마는 전화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내일 봐. 오늘은 그만하자."
다림씨가 자기 먹을 것을 빼기긴 싫었나 봅니다.
다림씨와 같이 있던 꼬마는 나에게 우스운 눈빛을 주고는 그림도구를 챙겨 나갔습니다.
수채화군요. 나보다 쫌 잘 그린것 같습니다.
"너 몇학년이냐?"
"사학년이요."
요즘 아이들 무섭군요. 나가면서 철가방을 툭치고 나갔습니다.
철가방이 무슨 죄라고...
원장실에다 식사를 갖다 놓았습니다.
다림씨만 저를 따라 원장실에 들어 왔습니다.
원장 아줌마의 전화는 길어 질 듯한 느낌입니다.
"잠깐만. 다림아 책상 안을 찾아 봐. 돈 있을 거야. 그러고도 가만히 있었어?"
다림씨가 날 보며 웃어 주고는 책상서랍을 열어 돈을 찾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것만 있을 뿐 돈은 보이지 않습니다.
"언니 없는데?"
"다시 잠깐만. 책상안에 없어? 그럼 걸어 논 옷 주머니에 봐."
"거기도 없어."
"그럼 니가 좀 계산 해. 나중에 내가 줄테니까.  엎어버리지 그걸 참았냐. 나 같으면 불 질렀다."
원장 아줌마의 목소리가 참 과격한 어조로 울려 퍼졌습니다.
누구하고 전화를 하길래 저럴까요.
"호호. 얼마에요?"
원장아줌마의 울렁찬 목소리가 저에게 미안했는지 다림씨는 머쩍은 웃음을 웃고는 가격을 물어 보았습니다.
"만원이요."
다림씨 그녀에게서 처음 만원짜리 지폐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하얀손에는 물감이 묻어 있네요.
만원짜리 지폐에 그녀의 지문이 찍혔습니다.
그녀와 데이트도 했었지만 오늘은 철가방의 신분으로 음식 값을 받고는 그냥 나왔습니다.
원장아줌마는 여전히 전화기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저 전화기가 오늘 원장 아줌마에게 시비를 걸었나 봅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무리 전화를 받고는 있지만 인사는 하고 가야 겠기에 현관 문을 열려다 인사를 했습니다.
원장 아줌마가 저에게 눈웃음을 쳐주며 잘 가라,는 말을 대신해 줍니다.
입으로는 이런 말을 하고 말입니다.
"확 그 자식 나한테 데려와. 철가방으로 찍어 버리게."
에구. 철가방을 감쌌습니다. 새로 산 철가방인데...
내 후계자에게 물려 줘야 한단 말이에요.

한 동안 문을 안 열었다고 짱개 찾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오후 세시가 넘어가도 배달주문은 뜸해 지지 않았습니다.
학원의 그릇은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 찾으러 가야 겠습니다.
그 쪽 방향으로 배달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네 시가 가까이 오는 무렵부터 한가해 집니다.
이제 찾으러 가도 되겠군요.

학원에는 다림씨만 있었습니다.
그림 그린 흔적은 찾을 수 없었구요.
"원장샘은 어디 갔어요?"
그릇을 들고 그냥 내려 가려다 아쉬워 물었지요.
"어디 갔어요. 동생이 남편하고 싸웠나 봐요."
"네. 혼자 안 심심해 해요?"
"호호. 왜 놀아주시게요? 안 바빠요?"
"조금 한가 할때죠."
"언제 일 마쳐요?"
"딱 정해진 건 아니지만 대충 여덟시 정도."
"네."
"그림 안 그려요?"
"저요? 무슨 그림?"
"그림 때문에 온 것 아닌가?"
"아니에요. 요즘은 할 일이 없어 그냥 놀러 오는 거에요."
"예. 저 가봐야 겠네요. 안녕히."
"저기요. 원이씨."
"네."
"안 바쁘면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지."
"그렇게 시간 낼 수는 없어요. 담에 마시죠. 뭐."
하. 멋있지 않습니까?
그녀의 차한잔 하고 가라는 그 천사의 유혹을 멋있는 웃음과 함께 거절을 했습니다.
중국집에서 많이도 후회했습니다.
신참 때문에 일이 밀릴 것 같아 일찍 돌아왔는데 그냥 멀뚱히 문 앞에 앉아 담배만 폈어요.
"배용준씨 안 힘들어요?"
"힘 듭니다."

동생은 녀석의 여자친구와 뭐가 잘 안돼나 봅니다.
첨엔 참 당당한 표정이더니 요즘은 당황하는 표정으로 근심이 있어 보입니다.
애들인데 뭐 싸우면서 커겠죠.
"저 꽃 시들면 다시 받아 올 수 있냐?"
"작전 구상중이야. 강하게 그냥 밀고 나갈까. 지는 척 싹싹 빌까. 형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얼굴을 보니까 싹싹 비는게 낫겠다."
"그럴까?"

오늘은 오후가 한참이 지났는데도 학원에서 배달 주문이 없었습니다.
삐삐나 쳐볼까 생각을 했지만 뭐 할 말이 별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녁 배달이 끝나는 무렵까지 학원에서 주문은 없었습니다.
"오늘도 수고 했다."
"네."
"동윤이는 내일부터 안 나오지?"
"뭐. 한 이십일만 쉬었다가 다시 나올게요."
내 마음이 너무 들떠 있었는지 동윤이가 그만 둔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네요.
'다림씨가 오늘은 학원에 나오지 않았나?'
"여름엔 배달이 그렇게 많지가 않으니까 당분간 원이하고 용준이하고 둘이서 하자. 알았지?"
옆을 쳐다보니 코쿠멍을 후비고 아줌마 말씀을 들으며 티비에 눈이 가있는 배용준이를 보았습니다.
이런 신참 녀석하고 그 넓은 구역을 책임져야 하다니 앞날이 깜깜합니다.
하지만 저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요 뭐.
"용준씨 잘해 봅시다."
"예. 드림 테크날라지..."

월세방에서 동윤이와 조촐하게 만찬을 즐겼습니다.
아줌마가 탕수육을 주었습니다.
이별의 만찬은 푸짐했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이 책들을 잘 부탁한다. 한장이라도 찢어지면 내 가만 안 있을기다."
동윤이는 그말을 남기며 그 야한 책들을 보자기에 싸서 방 한구석에
고이 모셔 놓고는 자기 짐인 옷 몇가지를 챙겨 방을 나갔습니다.
"용준씨만 오늘 방에 있겠네요. 하다보면 별로 힘들지 않을 거에요."
동윤이는 떠났습니다. 하 친해졌었는데...
그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겠군요.
문득 생각이 나다가 어느 날이면 나는 생각에서 그를 지운채 일상을 살아 가겠지요.

오늘은 무척이나 바쁩니다. 전 먼 곳만 배달을 했거든요.
용준씨가 아직 지리를 잘 몰라 가까운 곳은 용준씨 차지였습니다.
미술학원도요. 오늘 미술학원에서 주문이 있었습니다.
삼선짜장 두개요.
아쉽지만 전 다른 곳으로 배달을 나가야 했습니다.
허전한 오후가 흘러 갔습니다.
"저기요. 주원씨."
"예."
배달이 한가해 지는 무렵에 용준씨가 저를 부릅니다.
"미술학원에 예쁜 아가씨가 주원씨 찾던데요."
"네?"
낯선 놈이 오니까 허전하겠지요.
제가 그렇게 잘 생겼는지는 의문이 가지만 그래도 저 놈보다는 확실히 잘생겼습니다.
당연히 절 찾을 만 하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그만두면 계속 삐삐 칠 게요.
 

 


이틀을 다림씨를 못 본채 마감을 합니다.
많이 허전합니다.
삐삐를 치고 싶은 맘은 간절하지만 전화기에 손이 잘 가질 않습니다.
중국집 일은 지금 마무리되어 지고 있습니다.
"빼래래. 빼래래."
가리 늦가 주문을 하는 사람이 꼭 있지요.
적당히 거절을 하지만 참 사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마누라가 임신 중인데 꼭 짱개가 먹고 싶다느니...
칠순 노모가 생명이 위독하신데 좋아하는 짱개나 먹여 보내드리고 싶다는...
그렇지만 공과 사는 구별해야죠.
홀에 전화 받을 사람이 없었기에 제가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오늘 배달은 끝났는데요."
"거기 주원씨 있으면 부탁 드릴게요."
고운 음성이군요. 들어 본 것 같기도 한 여자의 고운 음성입니다.
"전데요."
"아직 집에 안 가셨구나. 저에요 다리미."
"아. 다림씨구나. 왠 일이에요?"
"마치고 잠시 볼까 해서요."
"저를요?"
"네."
거 참 기쁘군요.
나에게도 여자가 먼저 전화를 해서 찾아 주는 경우가 생깁니다.
신기합니다.
"그때 봤던 여우사이. 별로 안 멀죠?"
"네."
"그럼 마치고 거기서 볼래요?"
"그래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귀가는 늘 즐거웠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습니다.
두근거리고 설레이고 기쁩니다.
그냥 월세방으로 사라져야 하는 저 배용준이가 불쌍해 보입니다.
거울을 보았습니다.
오늘 옷차림이 그다지 깨끗하지 못합니다. 땀냄새도 나구요.
내일부터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를 좀 해야겠습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 뛰어 갔지요.
생각해 보니 버스를 타도 되는 군요. 하지만 뛰어 갔습니다.
차들이 장난이 아니게 막히고 있었으므로...
숨을 헐떡이며 커피숖을 들어 갔지만 그녀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보네요. 그럼 뭐 앉아서 기다리면 되지요.
서빙보는 처녀가 또 재떨이를 먼저 가져다 주는군요.
옆에 이쁜 아가씨랑 앉은 놈이 날 한 번 쳐다 봅니다.
눈싸움 해주었지요.
예전 같으면 그냥 눈을 돌려 버렸겠지만,
대부분 커피숖도 남자들과 왔었기에 상대편과 같이 앉아 있는
아가씨 때문에 기가 많이 죽었었지요.
이제는 나도 기가 죽을 필요가 없지요.
힐끗 힐끗 구경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 자넨 그 아가씨하고 재밌게 이야기 해.
뭐 나도 조금 있으면 올거라네.' 이렇게 생각하며 쳐다 봐 주었지요.
하하. 저기 다림씨가 문을 열고 나타납니다.
뭔가 재밌는 일이 있는지 입을 가리고 웃습니다. 안 가려도 되는데...

다림씨가 제 앞에 앉았습니다.
"진짜 잘 뛰시던대요?"
"네?"
"버스 타고 오면서 봤어요. 엄청 열심히 뛰시대요.
이제는 쉬겠지 했는데 보이지가 않더라구요."
"학원에서 오는 길이에요?"
"네."
좀 쪽팔립니다. 제가 뛰는 폼이 좀 그렇거든요.
버스 탔으면 다림씨를 버스에서 볼 수도 있었겠군요.
아깝다. 메뉴판이 왔습니다.

"뭐 드실래요? 뛰어 와 덥겠어요."
"네. 냉커피 마실게요."
다림씨가 또 웃습니다. 아가씨가 와 주문을 받습니다.
"냉커피 하나 아이스 커피 하나요."
다림씨도 저런 식으로 주문을 하는군요.
서빙보는 아가씨는 못마땅한 듯 우리를 째려 보며 갔습니다.
"주원씨 한테 배웠어요."
"헤헤. 오늘 저 뭐 때문에 보자고 그랬어요?"
"네? 그런것은 묻는게 아니라고 하던데."
"왜요?"
"만나자고 한 이유가 있으면 당연히 말을 할 것이고,
없으면 뭐 보고 싶어서 만나자 한 거겠죠?"
"음..."
써먹어야 겠군요. 다림씨가 이유를 말하지 않기를 바랬는데
그녀한테는 이유가 있었군요.
"언니 학원에서 야외 스케치를 가거든요.
 그 일 때문에 물어 볼게 있어서요."
"냉커피 어디세요?"
서빙 아가씨가 주문 한 걸 들고 왔습니다.
"저 주세요."
서빙 아가씨가 냉커피 물어 놓구선 다림씨에게 줍니다.
"아가씨 냉커피 이쪽이라고 그랬잖아요."
서빙 아가씨가 저에게 눈을 흘겼습니다.
실수 한 걸 바로 잡아 줬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림씨는 그저 웃을 뿐입니다.

"17일날 갈 생각이거든요."
다림씨가 아이스 커피의 스트로우에서 입을 떼고는 계속 말을 합니다.
난 냉커피 빨대를 물고 들었지요.
"언니가 저보고 한 번 부탁해 보라는군요.
 애들이 말을 잘 안 듣거든요."
"뭘요?"
"주원씨 같이 가자구요."
"난 그림 못 그리는데요. 제가 뭐 할 일이 있나요?"
별로 달갑지 않게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림씨의 말이 나에게 너무나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저하고 놀면 되잖아요."
"네? 다림씨도 갈거에요?"
"네."
다림씨와 진짜 인연이 생기려나 봅니다.
많이들 뒤집어 지겠군요.
구월달은 자랑하고 돌아다녀야 겠네요.하하

"어디로 가는데요?"
"부곡쪽으로 갈 생각이에요."
"예? 그렇게나 멀리요? 온천에 뭐 그릴게 많나요?"
"아니요. 그 부곡 말구요. 수원가다 보면 저수지 하나 있잖아요."
"아. 거기요."
"가실 생각 있으세요?"
"저야. 다림씨가 가면...
 낚시하는 사람도 있을거도 뭐 가지요."

노골적으로 다림씨가 가면 당연히 따라 가지요.
이러기가 뭐 해서 낚시 얘기 꺼낸것은 나의 실수 였습니다.
"낚시 좋아하세요. 야 잘됐다."
"뭐가요?"
"전 낚시하는거 꼭 한번 따라 가고 싶었거든요."
전 낚시 하러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다림씨가 너무 앞서 갑니다.
"애들 야외 스케치 간다면서요."
"걔들만 보고 있을 수 있나요.
 뭐 다른거 하면서 놀면 좋잖아요.
 애들은 오고 갈때만 돌보면 되는거죠."

저렇게 말하는데 나 낚시대 없어요.
낚시는 친구따라 한 번 가본 적 밖에는 없어요.
이렇게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린 소녀같이 설레이는 저 맑은 얼굴을 깨기가 싫었습니다.
"그럼 전 낚시나 할까요."
"그래요. 생선이라도 잡으면 찌개 해먹으면 되잖아요."
생선이라는 말에 조금 안심이 됩니다.
뭐 대충 폼만 잡으면 되겠군요.
아버지 낚시대를 몰래 훔쳐야 겠습니다.
그날이 기다려 집니다. 호숫가에 다정한 남녀의 모습이라...
너무나 아름답겠습니다. 일주일 정도만 있으면
나의 꿈같은 사랑이 시작되려나 봅니다. 하하하.

"내일도 이맘 때 시간 있어요?"
커피숖을 나오며 다림씨에게 물었지요. 내일도 보고 싶었기에.
"네?"
"신참 철가방이 들어와서 미술학원을 뺏겼어요.
 그래서 볼수가 없어서요. 내일 시간 있으세요?"
"왜요?"
다림씨가 아주 귀여운 눈짓으로 저를 쳐다 봅니다.
"아까 그런것은 묻는게 아니라면서요.
 이유가 있으면 당연히 말할 것이고..."
"이유 있으세요?"
"없는데요."
"그럼 마치고 삐삐치세요. 바로 연락할게요."
"그러세요."

오늘은 제가 다림씨를 바래다 주었지요.
뭐 바로 앞인데 바래다 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지하철 가는 길에 잠시 섰다가 간 것 뿐이죠.
떨이로 파는 장미가 이 곳에도 있군요.
다림씨가 예쁘다며 몇 송이 살까 그럽니다.
"제가 내일 사드릴께요. 오늘은 돈이 없거든요."
"정말 사주려구요?"
"이정도야 뭐. 학교가서 한그루 뽑아 줄 수도 있겠는데."
"감사."
그녀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버스를 타고 내 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영상은 여전히 내 맘속에 있지요.
설레이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동생이 히죽거리는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묻습니다.
"형 또 차였어?"
"왜? 내가 언제 차인 적 있냐?"
"형 미팅 깨지고 나서는 항상 그렇게 웃었잖아."
"니 일이나 신경 써."
"난 좀 길어 질 것 같애.
 하지만 뭐 형처럼 차이지는 않겠지. 난 잘난 놈이니까."
"잠이나 자 새꺄."
그녀에게서 받은 이만 이천원은 내일 그녀에게 도로 줄 것입니다.
지갑에다 넣었어요.
그녀에게 꽃으로 변신하여 돌아갈 것입니다.

아침에 형 양복을 하나 훔쳤습니다.
그리고 입어 보았습니다. 어디 대기업 회사원 같습니다.
훌륭한 재원처럼도 보이구요.
그래 이거 입고 출근해야 겠습니다.
일할 옷은 거기서 갈아 입지요 뭐.
지하철에 저같이 회사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군요.
반듯한 머리에 양복이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 잘난 사람들이니까 기죽지 마시고 힘들 내세요.
배용준이가 날 물끄러미 쳐다 봅니다.
주인 아줌마는 왜 혀를 차실까요?
주방장 아저씨도 내다 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줌마는 차던 혀를 멈추고 나의 이 멋있는 인사를
영 이상한 쪽으로 받아 주었습니다.
"동윤이 말이 맞구나. 정말 미친 짓 많이 한다."
"배달은 갈아 입고 할거에요."
"그럼 갈아 입고 해야지. 정장 입고 철가방 든 놈 봤어?
 안 갈아 입고 하려고 했으면 바로 전화 했지."
"어디로요?"
"정신병원이지 뭘 물어봐."
정신 병자로 몰려도 기분이 좋습니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
막연한 그리움과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오늘은 좀 일찍 퇴근 준비를 합니다.
아침부터 이상했기에 아줌마도 다른 어떤 사람도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삐삐를 쳐 놓구선 거울을 보며
머리도 빗고 넥타이도 바로하고 옷맵시도 다듬고 있습니다.
"빼래래. 빼래래."
다림씨 겠지요. 당연히 그녑니다.
"벌써 끝마쳤어요?"
"네."
"어디서 보실래요?"
"일단 그 커피숖으로 오세요."
"뛰어 오시지 마세요. 서울 공기 별로 안좋아요."
"그래요. 거기서 봅시다."
다림씨가 제 걱정까지 해주는 군요.
그럼 뛰어서 갈수는 없지요.
하지만 버스는 많이 막힐 겁니다.
"배용준씨."
"네."
"오또바이 연습 좀 해야죠?"

동윤이는 오또바이를 심하게 몰았나 봅니다.
큐손이 영 별롭니다. 뒷좌석에 앉은 이녀석이 나중에 이걸
어떻게 몰고 갈까 걱정이 될 정도로 차가 많습니다.
이 베테랑님의 솜씨를 보시라.
"잘 몰고 들어가세요. 전 이만."
멀어져 가는 오또바이가 참 불안합니다.
내 애마를 안 타고 온게 다행이군요.

오늘도 내가 먼저 와 기다려야 겠군요.
다림씨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십분이 훨씬 지나서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들어 왔습니다.
내 모습을 모를것도 같아서 손을 들어 주었지요.
"오늘은 정장차림이네요. 어쩐일로."
"늘 즐겨 입지요. 근데 뛰어 왔어요?"
"차가 막히길래 두 구간 전에 내려서 좀 걸었어요."

들었습니까? 나하고 약속 때문에 다림씨 같은 미인이 일부러
버스에서 내려 걸어 왔답니다.
그 만큼 내가 잘난놈이라는 거죠.
사랑스런 그녑니다.
커피숖에서는 그렇게 오래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냥 서빙 아가씨 한번 놀려 먹고 오늘 뭐 했는지 물어보고 뭐
그랬지요. 꽃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나가야 겠네요.
"정말 꽃 사주실거에요?"
"그럼요."
"몇송이 사줄건데요."
"이만이천원치요."
"그렇게나 많이요. 그런데 왜 이만이천원이에요."
"말해도 될까 모르겠다."
"말해 보세요."
"이만 이천원 다림씨가 준 돈이에요. 보세요. 빳빳하죠?
 저번에 꽃도 다림씨한테 받은 돈으로 산 거에요."
"제가 준 돈이라니요?"
"돈이라기 보다. 음식 계산하면서 다림씨가 준 지폐를 모았어요."
"네? 그럼 그 돈을 보관했었단 말인가요?"
"뭐 인연이 생길까 하여 모아 봤지요."

그녀가 눈동자를 저에게 고정 시켰습니다.
쪼금 감동이 됐나 보지요.
"저 모델인 거 아시죠?"
내가 너무 분위기 잡았나요. 갑자기 모델 얘기는 왜 할까요.
뭐 철가방과는 더 이상 가까워 지고 싶지 않다 이러면 안돼는데...
그녀의 표정이 약간은 굳어 있습니다.
"네. 알지요 당연히."
"남한테 이런 말 잘 안하는데 저 누드 모델도 했어요."
"네?"

그말이 그렇게 크게 다가 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에 앉은 다림씨의 벗은 몸이 생각나는 건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드 모델이라...
"정식 누드 모델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 네 분에게는 누드 모델을
 한 적이 있어요. 전 프로는 될 수 없나 봐요. 부끄럽거든요."
누드 모델을 섰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요.
떳떳하게 나에게 말한다는 것은 내가 많이 가깝다고 생각한다는
것이기에 고맙게 받아 들여야 겠죠.
하지만 그 아는 사람 네명이 누군지는 궁금합니다.

"누드 모델을 자주 했어요?"
내가 아까의 표정과 변함없이 말을 물으니까 그녀의 표정도
약간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화백 한분하고 원장실 언니 있죠.
 그분하고. 그리고 내가 좋아 했던 오빠..."
"네?"
"내가 좋아 했던 오빠가 있었는데 그 분이 처음 제게 제의를 했었죠."

기분이 참 묘하네요.
그녀가 누드 모델인 것은 별로 나를 놀라게 하지는 않았는데
오빠라는 소리는 참 나를 서글픈 쪽으로 몰아 갔습니다.
"그래서 누드 모델 제의 허락한거에요?"
"아니에요."
또 아니라는군요.
"그러면요."
"거절했었죠. 근데 그때의 부탁이 나에게 누드 모델도 한 번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심어 주었죠. 그분에게 모델을 섰었던
 것은 원장언니의 소개 때문이었죠. 그 분은 화가 부부에요.
 부인도 화가죠. 뭐 원장언니한테 누드모델 했던 적도 있고 해서
 허락했죠. 처음 모델을 선 건 원장 언니에요."
"잘 하셨어요."
"예?"
"아니요. 그럼 나머지 한 분은 남자에요?"
"아주머니에요."
"그 누드 뭐 계속 하실거에요?"
"모르겠어요. 요즘 제가 좀 어렵거든요. 일이 안 들어 오네요."
"잘 될거에요. 뭐 할 일 많잖아요. 누드모델하는 거 부끄럽다면서요.
 뭐 다림씨 같으면 나레이터 모델도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요."
"누드 모델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직업으로 한 사람들이야 자부심을 가지고 하면 그것으로 된거죠.
 방송에 보니까 어떤 모델들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그림까지 들고와
 인터뷰도 하더군요. 자기가 떳떳하면 된 거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림씨가 더이상 누드 모델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다림씨가 누드 모델했다는 것이 좋은 기분은
아닙니다. 그녀를 참 순수하게 봤는데 바로 그녀의 나신이
떠올려 진다는 것은 나 자신마저 기분을 나쁘게 하거든요.

"고마워요."
"앵그르의 샘이란 그림을 알아요. 자연주의 시대의 대표적 그림이라
 하길래 저 같은 문외한도 알고 있지요. 그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은
 그냥 자연이었어요. 수줍은 듯 살포시 든 눈동자는 꼭 저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구요. 그냥 흘러 내리는 물은 그도 수줍은 듯
 엉뚱한 곳이죠. 그냥 아름답다는 마음만 들더군요. 아무런 다른
 생각 없이. 몸의 곡선도 젖은 듯한 머리칼도 그리고 젖가슴도..."
유식한 척 하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냥 다림씨가 다소 부끄러운 표정이길래 그 기분을 풀어 주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다림씨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하는 저를
뚜러지게 바라 봅니다. 제 말이 그녀에게 좋은 느낌을 주었나 봅니다.
"꽃 사주실 거죠?"
"당연하죠."

꽃을 사러 갔습니다.
전 꽃 살 때 시간을 끌지 않지요.
그냥 주는 데로 받아서 계산을 하고는 자리를 바로 뜹니다.
솔직히 남자 혼자서 꽃을 사기란 좀 쪽팔리거든요.
하지만 오늘처럼 제 옆에 다림씨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요.
다림씨는 꽃을 한송이 한송이 잘 살피며 고릅니다.
다림씨가 꽃을 다 골랐을때 제가 계산을 하려고 했지요.
근데 다림씨가 돈을 뺏는군요.
그리고 자기 지갑에서 돈을 바꿔 치기 했습니다.

"다음에 주원씨 돈으로 다시 사 주세요.
 그리고 이건 제가 사드리는 것으로 하구요."
그녀가 정성스레 고른 꽃은 마흔 다섯 송이였습니다.
한송이는 그냥 끼워 주는거구요. 그 꽃이 저에게로 왔습니다.
다림씨는 제가 선물하려 했던 꽃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네에?. 그럼 다림씨는?"
"전 지폐를 선물 받았잖아요."
전 여자를 잘 찍었군요.
그냥 외모만 이쁜게 아닙니다.
마음도 이쁩니다.
이렇게 많은 꼿을 들고 가기란 다소 쪽팔리기도 하지만 무척
소중한 것이기에 하나라도 다칠까 조심해서 들고 가야 겠습니다.
오늘은 다림씨가 역까지 왔습니다.
"저기요. 주원씨."
"네."
"저 이제 오빠라고 부를게요."
"네?"
"그렇게 불러도 되죠?"
"네."
"그럼 오빠도 저한테 말 놓으세요."
"네. 그럼."
저 뭐 여자한테 말 놓아 본 적이 있어야지요.
우리과 그녀만 빼고는 가까웠던 여자가 없었기에 늘 존댓말이었는데
다림씨가 말을 놓아라 합니다.
"잘가요."
"네. 아니 응."
다림씨가 웃어주며 저기 뛰어 갑니다.
나도 이제 사랑이 시작 되려나 봅니다.

집에 와서 아버지 어머니가 어디서 꽃을 꺽어 왔냐고 나무랍니다.
무시했지요. 형도 놀랍니다.
자기 양복 훔쳐 입은 것은 보이지도 않나 봅니다.
"그렇게 많이 들고 다니면 불법이야 불법." 이럽니다.
불쌍한 형아야. 하기야 넌 이런거 받아 봤겠냐.

아직 시들지 않은 동생의 꽃들을 뽑아 버리고 안의 담배 꽁초도
꺼내고 물도 깨끗이 갈아서 꽃을 꽂았습니다.
어린 왕자가 그랬다면서요.
화단에 핀 여러송이의 장미는 이름 없는 장미라고 자신의 장미만
이름이 있다고 그랬나요.
여기도 있네 이사람아. 다리미 원,투,쓰리, 포.... 포티 파이브.
동생은 오늘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들어 왔습니다.
역전이다 이놈아.
 


오늘 이 철가방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무겁네요.
처음엔 참 막막하고 이런 아르바이트를 꼭 해야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난 철가방 일을 하면서 설레였었지요.
사랑을 꿈 꾸면서 말입니다.
좋은 만남을 가졌어요.

하늘의 해가 갓 구운 호떡처럼 뜨겁지만 오늘은 시원 섭섭 합니다.
다림이와는, 이제는 다림이라 그래요.
요 며칠 동안 계속 만났거든요.
제가 오빠하기로 했으니까 자연스럽게 불러주어야죠.
뭔가 될 것 같습니다.
다림이를 만나기 위해 주원이는 봄부터 짱개를 날랐나 보다.
다림이를 만나기 위해서 주원이는 20년을 그렇게 꺼이 꺼이 울었나 보다.
제가 좀 조숙했거든요.
유치원 들어가면서 이성에 눈 뜨기 시작했었어요.
그때부터 울었으니까 20년 맞죠.
제 후임은 저보다 나이가 세살이 많아요.
까불다가 직장에서 쫓겨났대요.
돈 벌면 호주 간데요.
요즘 호주에 나무심는 사업을 많이 하나 봐요.
자기 전공이 조경이니까 전공 살리러 간다네요.
이름이 송승언입니다. 눈섭이 참 시커멓더군요.
짱개 칠 한 것처럼 말이죠.
주인 아줌마가 오늘부터 며칠간 힘이 들겠네요.
신참들 둘을 데리고 가게 꾸려 나갈려면 어려움이 많지요.
그렇다고 제가 하루 더 일해 주고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데이트 해야 되거든요.
내일은 집에 가서 낚시에 대해 공부도 좀 해 보고 아 새끼들 심리도 파악할 겸 동네 꼬마들과도 좀 놀아야 겠습니다.
"승언씨. 이건 제 친구가 물려 준 제 애마거든요.  이제 승언씨 거니까 잘 부탁드릴게요. 이 철가방두요."
잘 키운 딸을 어떤 못 믿을 놈한테 시집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잠시
헤아려 봅니다. 지금 제 기분이 그렇습니다.

"잘 가. 그 동안 고마웠어. 간 혹 놀러 와야돼."
"네."
제 통장에는 사백 팔십여만원이 저축되어 졌습니다.
일년 등록금으로는 조금 모자라지만 뭐 또 조금씩 아르바이트도 하고 용돈도 모으면 충분 할 겁니다.
뿌듯하네요.
주인 아줌마가 아쉬운 듯 탕수육을 서비스로 주었습니다.
우리 주인 아줌마 참 좋은 분이시지요.
저녁 무렵에 중국집을 떠났습니다.
하늘은 지가 아직 낮인양 밝습니다. 낮달이 떴습니다.
수줍은 듯한 모양입니다.
자기가 너무 일찍 나왔나 다소 헷갈리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헤헤.
다림이가 떠오르네요. 하지만 모레면 볼텐데요.
그때까지 잠시 그리워 하지요.


동생은 이제 그의 애인이랑 화해를 했나 봅니다.
싹싹 빌었나 보지요.
오늘은 꽃을 한 아름 들고 왔습니다.
화병의 꽃은 시들지 않았습니다.
내가 형인데 저녀석이 감히 화병의 꽃을 뽑지는 못하지요.
당분간 일점 팔리터 사이다 병을 잘라서 화병으로 대신 하려 합니다.
근데 제꺼보다 동생의 꽃이 더 빨리 시들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화해 했냐?"
"내가 이거 두배는 사주고 받아 온 거다."
"그렇게 싸우면서 짙어 지는 거야."
"아는 척 하지마. 저 꽃 형이 산거잖아. 그러고 싶냐?"
"니 맘데로 생각하세요."

오늘 다행히 아버지가 어디론가 출타를 하셨습니다.
장농위에 숨겨논 아버지가 아끼시는 낚시대 세개를 몰래 빼왔습니다.
릴낚시대 하나하고 그냥 낚시대 두개요.
이 걸로 향어나 한 마리 낚는 다면 참 좋겠습니다만 부푼 기대를 가지고 친구 따라 갔던 나의 첫경험은 자릿세 만원만 날리고 물위로 풍덩 뛰어오르는 향어새끼들 놀림만 받고 왔었지요.
날씨가 더운지 동네는 사람들의 자취를 감춘채 한산 합니다.
다림이에게 삐삐나 쳐 봐야 겠습니다.
얼레레 바로 전화가 오네요.
"여보세요. 주원입니다."
"오빠 저에요."
"다리미구나."
"아르바이트 끝마쳤나 보네."
"응."
"그러면 어제 연락해 줬어야죠."
"그세계 사람들하고 좀 있어 주었지."
"잘했어요."
"내일 몇 시에 어디로 나가면 되냐?"
"잠깐만요."
다림이는 오늘도 학원에 있군요. 요즘 진짜 일이 없나 봅니다.
나에게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 주려 하지만 간혹 걱정이 섞인 표정을 지을 때가 있습니다.
잘해 줄 겁니다.
오늘 학원이나 가 보는 건데 그랬습니다.
"여보세요."
"응."
"내일 오전 아홉시에 학원으로 오세요."
"학원으로 가면 되니?"
"네."
"그래 내일 보자."

다림이는 내일 어떤 차림으로 올까요?
그 모습이 궁금하지만 예쁘겠지요.
다른 이들은 방학이 끝나감에 다소 심기가
불편할 지 몰라도 난 가을이 다가옴에 가슴이 떨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해는 아침잠을 설쳤는지 새벽부터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해 저녀석이오.
여름엔 더우니까 아침잠을 설치구요.
겨울엔 추우니까 이불속에서 늦잠 자나봐요.
상쾌합니다.
동생 녀석은 자고 있거든요.
좀 젊어 보여야죠.
동생이 아끼는 반바지를 하나 훔쳐 입고 동생이 아끼는 붉은 티셔츠를 또 훔쳐 입었습니다.
이녀석 항상 깃을 세우고 다녔는지 카라가 빳빳합니다.
혹시나 해서 동생 엉덩이를 툭 찼습니다.
"얌마."
"아이이잉."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겠습니다. 잠에 취한 것 같습니다.
"얌마. 이거 입고 간다."
"아이잉."
"이거 입고 간다니까."
"이잉. 잠 좀 자자. 니 맘대로 해."
허락 받았습니다. 나중에 딴말하면 졸라 패 버려야지.

학원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아 새끼들이 많았습니다.
중학생들도 있네요.
이 정도면 버스 전세 내도 되겠는데 전철을 이용한다 하네요.
학원도 어렵겠지요.
다림이는 아직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야. 철가방이다."
요즘 애들 버릇 없는 것들 많네요.
내가 장가를 빨리 갔으면 니 만한 새끼가 있다.
팰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그때 다림이랑 있던 놈인데 내 신분이 노출됐습니다.
"주원이 학생 왔어. 오랜만이네.  그 동안 배 삼용 같은 애가 계속 배달하더라."
"그렇게 됐어요."
"아저씨 진짜 철가방이에요?"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묻네요.
애들이 너무 똑똑해도 부담이 가지요.
긍정의 대답을 해주면 놀림감 되기 쉽상입니다.
"아니야. 그냥 아저씨야."
"그럼 철가방 아저씨야? 들고 있는 건 뭐야?"
무시했습니다.
다림이가 나타났습니다.
호호 자기가 낚시나 하자고 그래 놓구선 하얀 바탕에 연노랑색 장미가 그려진 다소 짧은 원피스를 입고 왔습니다.
옷 다 버릴려고 작정을 했나 봅니다.
"다림이 왔구나."
"오늘 깔끔하네요. 정장도 잘 어울리던데."
생각하고 내 뱉는 말일까요?
"낚시 하자며?"
"네. 정장 입고는 낚시 못하나 뭐."
할 수야 있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여타 매체를 통해서 정장입고 등산하는 사람은 봤어도 정장차림으로 낚시하는 사람은 못 봤는데요.
"주원씨 말이 많이 낮아졌다?"
"네? 예."
"괜히 그러는 거에요. 언니한테 다 얘기 했거든요."
"뭘?"
"말 낮아진거."

아새끼들 진짜 떠드네요.
중학생이라고 있는 것들도 초등학생들하고 덩달아 떠듭니다.
지하철 안에서 이런 녀석들 보면 데리고 온 사람이 누구야, 짜증이 막 났는데 오늘은 저도 저놈들이 잡혀가면 따라가야 되는 신셉니다.
"철가방 잡아라."
"철가방은 정의의 칼을 받아라."
이놈들 부모가 누굽니까.
제발 날 좀 가만히 놔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길다란 붓을 가져와 나를 쿡쿡 찌릅니다.
별 말않고 가만히 있는 원장아줌마가 밉습니다.

역에서 내려 조금 걸었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았습니다.
저수지는 참 컸습니다.
늪지 식물들도 많았습니다.
별로 아는 이름은 없었지만 갈대가 파랗게 익어 있었고 꽃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부들도 보입니다.
애들이 그래도 그림을 그릴때는 조용합니다.
애들을 돌보며 원장아줌마와 다림이와 같이 한 동안 있었습니다.
다소 내 시간을 가질 만해지자 들고온 낚시대를 꺼내었지요.
여기도 유료인가 봅니다.
티켓 끊어 주는 사람이 돌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낮에는 없을 겁니다. 예전에도 그랬거든요.
이런 더운날은 낚시가 잘 되지 않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구요.
여름 낚시는 해질녘에 시작해서 해가 떠오르면 끝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낚시대 멋있다."
"낚시 하러 갈래?"
"언니는 여기 있을거에요?"
"나야 애들 그림 봐줘야지."
원장 아줌마가 눈치는 있군요.
젊은 남녀 노는데 알아서 빠져 줍니다.
다림이를 데리고 어제 누가 앉았던 흔적이 있는 자리를 하나 차지 했습니다.
"낚시 잘 해요?"
"강태공이라고 나하고 낚시 내기 했던 사람이 있지."
근데 떡밥만드는 것에서 벌써 들통이 났습니다.
쪼그리고 옆에 앉은 다림이의 다리가 눈부셨습니다.
"옷 버리겠다. 구두도 불편하지?"
"네."
"이런데 온 적이 없나 보다?"
"네."
"오늘 큰 놈 하나 낚아서 내 보답할게."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 맘 뿐이었죠.
점심때가 지날때 까지 입질도 안 합니다.
원장 아줌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그럽니다.
밥? 전 밥가지고 온 것이 없지요.
낚시를 잠시 접어 두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애들은 모두들 도시락을 하나씩 준비해 왔군요.
다림이가 밥을 참 맛있게 준비를 해 왔습니다.
원장 아줌마가 가져온 김밥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습니다.
애들한테 빼기기 싫었지요. 눈치를 살피며 먹었습니다.
그냥 하얀 콩밥이 한층을 차지하고 또 다른 한층은 아무래도 손수 만든것 같은 반찬들이 보기 좋게 놓여 있는 그녀의 도시락은 예술이었습니다.
맛도 물론 좋았지요.
"잘 먹을게."
"아무래도 도시락 가져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많이 준비했어요."
'언제 도시락 가져 오라고 말했었나?'
부담되네요.
솔직히 다림이는 나한테 부담이 됩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처음부터 이렇게 마음에 드는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되면 나중에 혹시나 다른 사랑을 찾아야 할때는 너무 힘이 들 것 같습니다.
거의 불가능 할 것 같네요.

하늘이 참 뜨겁습니다.
물도 뜨겁겠지요.
그래서 낚시대의 찌는 움직일 생각도 안합니다.
그래도 다림이는 즐거운 듯 찌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내 옆에서 말입니다.
바로 물 가이기 때문에 흙이 물을 많이 머금고 있습니다.
그녀의 치맛자락에 흙이 많이 튀겼어요.
하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움직이지도 않는 낚시대를 들었다 떡밥만 다시 뭉쳐 바르고는 던졌습니다.
지금까지 그 일 밖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언제 물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고기님 마음이지요.
"곧 물거야. 물게 되있어."

오후가 깊어 지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 애들은 그림을 다 그리고 원장 아줌마에게로 갔습니다.
이제 슬 여기도 정리를 해야 겠군요.
"푱."
"오빠. 저거 고기 물은 거 아니에요?"
난 잠시 딴데 정신을 팔고 있었는데 찌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다림이가 묻더군요.
분명 찌가 움직였습니다.
"야! 걸렸다."
아주 신나는 표정으로 변하는 다림이 얼굴을 마주하며 낚시대를 들었습니다.
묵직합니다.
찌의 움직임은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진짜 묵직합니다.
릴낚시대가 아니었기에 조심스럽게 들었다, 놓았다 했습니다.
잘 끌려 오지 않습니다.
"너도 한번 잡아 볼래. 이게 손 맛이라는 거야."
다림이에게 낚시대를 한 번 줘 봤습니다.
낚시대의 감촉이 좋았거든요.
"야. 큰 생선인가 보다."
활짝 웃는 다림이의 모습이 이 생선을 꼭 잡아 올려야겠다는 다짐을 주었습니다.
"같이 올리자."
힘을 내어 끌어 올렸습니다.
"이거 잡으면 너 주께."
그녀의 웃음처럼 나도 웃음치며 낚시대를 들었습니다.

"이거 고기 맞아요?"
하늘이시여.
낚시대에 끌려 올라 온 것은 납자룬지 붕어 새낀지 십센티도 안되는 물고기 한마리와 그보다 열배는 큰 물먹은 군화 한짝이었습니다.
다림이가 다행히 '언니. 여기 큰고기 걸렸어. 빨리 와봐.' 이 소리 안 한 걸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떤 군발이 새끼가 여기다 군화 던져 넣었어? 나는 아무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쪽팔렸기 때문입니다.
그냥 주저 앉았지요.
낚시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싶습니다.
"오빠?"
"왜."
"재밌었잖아요."
"뭐가."
"신발 꺼집어 내기 전까진 재밌었잖아요."
그렇네요.
저게 고기라고 생각하며 재미있었고 설레였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저사람이 내 사랑이다 생각하면 참 아름답게 보일거고 설레이겠지요.
"사랑한다."
"네? 갑자기 무슨."
"아니야."
주저 앉아 끌려나온 군화를 쳐다보다가 내 마음에 못 이겨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 말은 내가 태어나 여자에게 처음 해 보는 말이었습니다.
참 하기 힘든 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뱉고 나니 참으로 가슴이 맑아졌습니다.
"다림아. 이제 가야 되거든. 그쪽도 이제 갈 준비 해라."
멀리서 원장 아줌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아직 내 옆에 앉아 군화와 나를 번갈아 쳐다 보고 있는 다림이에게 머쩍었지만 내 딴에는 귀엽게 웃어 주고는 일어 섰습니다.
"챙기자. 다음에 꼭 잡아 주께."
"오늘도 재밌었어요."

돌아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 내 양 어깨에는 원장아줌마와 다림이가 머리를 주며 잠 들었습니다.
철가방이라 놀렸던 꼬마들도 조용했습니다.
저녁이 가까워 집니다.
이렇게 저녁을 맞이하는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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