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펨돔-멜섭] 내게 전화해 줘 (2) - 완결
02.
그래. 내가 이 세상에서 겪었던 중 가장 짧은 일주일이었지. 일요일 아침에 나는 생각했어. 차라리 죽어버릴까? 죽으면 편할 텐데. 하지만 죽음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어. 나는 살아서, 친구들에게 관심과 존경을 받고,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꿈이었지. 바로 너 때문에. 나는 너를 증오해야 마땅했어.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고 덤벼드는 악당이었으니까. 내가 나로 살 수 없게 만드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어떻게 미워할 수 있었겠어? 그래.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나는 지옥의 짚 깔개 위에서 창녀와 뒹굴었던 거야. 문제는, 창녀는 네가 아니라 바로 나였고, 너는 지옥에서 가장 매혹적인 악마였다는 데 있었어. 나는 괴로웠지만 행복했어. 고통스러웠지만 희열로 가득 찼었지. 나는 언제나 갈구하기만 했지, 한 번도 달콤한 열매를 제대로 맛본 적이 없었어. 즙으로 가득한 포도송이 근처를 맴도는 초파리처럼 그 맛을 상상하기만 했던 거야. 나는 너에게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어. 그토록 나를 증오하고, 혐오하고, 무시하고, 괴롭게 했던 것에 대하여. 채찍은 달콤하고 플러그는 감미로웠지. 케인이 내 피부를 찢을 때 나는 그것이 키스와 비슷하다고 느꼈어. 숯처럼 불타는 손가락을 가진 악마의 키스였던 거야. 로프 때문에 손목이 엉망이어서, 나는 긴팔 옷을 입은 채, 여름의 열기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어. 불지옥의 한가운데를 걷는 기분이었지. 예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어. 예배 초중반부터는 한기를 느꼈어. 예배당의 에어컨 바람 때문만은 아닐 거야. 나는 파멸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어, 다 끝이야. 더 이상은 여기서 살 수가 없겠지. 그래. 예정보다 빨리 캐나다로 떠나야 할 거야. 유학길이 아닌, 스캔들로 가득한 도피가 되겠지만, 그게 그나마 고통을 더는 길이 될 거야. 대표기도를 하러 올라갔을 때 나는 세상이 이리저리 기우는 것을 느꼈어. 비틀거렸던 게 분명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느껴졌으니까.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친히 불러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은혜의 하나님.」
내 목소리가 내 목소리 같지 않았어. 말라비틀어진 나무토막을 활줄로 문지르는 기분이었지.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 함께 영광을 올려드리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청년 예배였기 때문에 예배당 안은 내 또래의 신자들로 가득 차 있었어. 예전에는 형제자매라고 부르던 사람들이었지. 이제는 모두 날 비난하게 될 거야. 목구멍으로 심장을 뽑아내서, 철철 피가 흐르는 채로 이리 차고 저리 차면서 마침내는 밟아서 터트려버리겠지. 더러운 말과 더러운 행동으로 성스러운 교단을 더럽힌 죄를 치르게 하겠지.
「저는 죄인입니다. 여기 모여 있는 어떤 형제자매들에게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손가락질을 받고, 당장 교단 아래로 끌려 내려가도 할 말이 없는 죄인입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오늘 이 성스러운 하나님의 집에서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주여!」
벼락같은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정신이 확 돌아왔어. 마치 찬물을 맞은 것 같았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야? 모든 것을 고백하려고 했던 내 계획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흐느끼는 소리가 사람들 사이로 번지기 시작했어.
「주여!」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주님.... 주님.......」
그들이 자신의 죄를 앞 다투어 쏟아내게 하기는 어렵지 않았어. 통성기도라면 나도 몇 번이나 대표로 진행한 적이 있었으니까. 예배가 끝난 뒤, 사람들은 이렇게 감동적인 대표기도는 처음이었다면서, 대표기도가 통성기도가 되어버린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었겠냐고 했어. 선경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지.
「자기 같은 사람도 스스로의 행동과 말 속에서 무서운 죄를 보는데...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보이겠어? 나도 앞으로는 신앙생활 더 열심히 할게. 자기가 정말 자랑스러워.」
나는 그냥 빙긋 웃을 수밖에 없었지. 나에게 악수를 청하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 뒤에서, 네 얼굴이 보였어. 팔짱을 끼고, 기둥에 비스듬하게 기대 서 있었지. 네 입술이 소리 없이 말했어.
「비겁자.」
그래. 맞아. 나는 가장 간교한 회개자였어. 마치 암을 떼어낸다고 개복을 해 놓고서, 멀쩡한 다른 조직에만 칼질을 하고 정작 암덩어리는 그대로 두는 사이비 의사 같았지. 하지만 수술은 이미 끝났어. 나는 의기양양해질 지경이었지. 사람들은 날 믿고 있었고, 내 여자 친구는 날 존경하고 있어. 솔직히 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신용 받는 타입은 아니었지. 누구도 네 신앙심을 칭찬하지 않으니까. 나는 자신이 있었어.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요새 많이 힘든가 봐.’ 혹은 ‘왜 그래? 내가 너에게 뭐 잘못했니?’ 라고 말하면서 무마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 그렇게 두려워했던 ‘증거’마저 하찮게 느껴질 지경이었어. 네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예배당을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승리감에 차올랐지.
03.
내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몸이 달아올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지난 일주일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거지. 몸의 성분이 바뀌고, 영혼이 교체되어버린 느낌이었어. 채찍을 맞지 않으면, 목이 졸리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으니까. 달아오른 몸을 주체하지 못해 내가 내 목을 스스로 조르는 지경까지 이르렀어. 겁이 났지. 나는 결국 너에게 전화를 했어. 물론 너는 받지 않았지. 음성 녹음으로, 카톡으로, 문자로 나는 애원했어. 내가 잘못했으니, 제발 연락을 받아달라고.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너 없이는 견디지 못하겠어.」
오랜 시간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에게 갑자기 많은 양의 물을 주면, 그리고 그 물을 다 마셔버리면 그대로 숨이 끊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왜 이 순간에 그런 이야기를 떠올렸을까? 나는 늘 목이 말랐고, 너를 통해 쏟아지는 폭포수를 마셨으며, 이제는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오래 억누른 만큼 나는 빨리 죽게 될 거야. 대표기도 후 느꼈던 승리감은 완전히 잘못된 감정이었어. 자동차 안에서, 너의 하이힐에 짓밟힐 때 이미 나는 지고 말았던 거야. 애초에 승산 없는 싸움이었어. 며칠 뒤 너에게서 전화가 왔고 나는 너에게 허겁지겁 달려갔어. 그리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어. 협박이 무서워서가 아니었지. 이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어. 나는 너를 원했고...... 너의 자비를, 잔혹함을, 경멸을, 희롱을, 지배를 갈망하게 되었던 거야. 네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어. 너의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너는 나에게 고백을 강요했지. 모두에게 할 수 없다면 한 사람에게라도 솔직해지라고 했어. 나는 선경에게 내가 행한 모든 죄악을 고백했어. 선경은 끝까지 믿지 않았지. 나에게 왜 이러는 거냐며 우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어.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또 마음 아파하는 것 역시 내 죄에 대한 과보일 거야. 그렇게 고통 받고도, 선경은 내 사정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어. 진정한 신앙인은 바로 그 애였을지 몰라. 하지만 교회 사람들은 우리가 헤어진 것에 대해 깊은 충격을 받았지. 나를 칭찬하는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어.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거야. 나는 에드먼턴으로 가는 비행기에 혼자 올랐지. 선경도, 사람들의 신뢰도 모두 잃은 채로.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비겁한 나로서는 그정도의 고백이 최선이었을 거야.
다시 눈 오는 소리가 들려. 서울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생각해. 네가 나와 같은 소리를 듣기 바라지만, 서울에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지. 설령 정말로 눈이 내리더라도.
나는 아직도 생각하곤 해. 너는 어떻게 나의 타락을 눈치 챘을까? 내 위선의 갑옷을 뚫어버린 창은 어디서 어떻게 손에 넣었던 걸까? 어쩌면 너도 처음에는 나에게 관심을 가졌던 게 아닐까? 나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은 모두 소용없겠지.
시간을 확인해. 애드먼턴에서는 모두 잠들어있는 시간이야. 하지만 서울에서 너는 깨어있겠지. 전화벨이 울리고, 너의 목소리가 들리고, 다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내게 전화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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