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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각색
2025.07.13 18:44

낯선 입맞춤

조회 수 4441 추천 수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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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입맞춤》)

 

 

1화. 처음, 그 방의 문이 열리던 순간

 

비 내리던 금요일 저녁. 회색빛 도로 위, 조명은 흐릿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바쁘기보단 무거워 보였다.

지친 일상에 짓눌린 나는, 친구의 장난 같은 추천으로 처음 그곳에 발을 들였다.

‘키스방’.

그 말에 조금은 낯간지러운 상상도 떠올랐지만, 묘하게 나른한 흥분이 가슴 안에 스며 있었다.

그리고 그곳, 어둡고 조용한 복도의 마지막 방에서—

나는 그녀를 만났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조명이 부드럽게 켜졌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허리까지 내려오는 차분한 긴 생머리.

고개를 들자, 165cm쯤 될까 싶은 그녀의 단아한 눈매와 유려한 턱선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베이지톤 블라우스 아래로 드러나는 가녀린 어깨선과 여리여리하게 빠진 허리선,

타이트한 스커트를 따라 길게 뻗은 다리와 잘룩하게 빠진 발목, 그리고—

완벽한 곡선의 탐스러운 발이 살짝 오픈된 샌들 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처음이세요?"

조용하고 나긋한 그녀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감쌌다.

그건 누나 같기도, 연인 같기도 한 목소리.

위로하면서도 살짝 이끌고, 기다리면서도 조용히 다가서는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의 손을 받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가늘고 따뜻했고, 손등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

 

"편하게 계세요."

그녀가 가까이 앉으며 속삭였다.

그 순간부터 방 안의 공기는 느리게, 그러나 뜨겁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숨결이, 시선이, 그리고… 이끌림이 점점 농밀해졌다.

 

 

 

2화. 입술이 닿기까지의 거리

 

방 안의 조명은 은은했고, 벽 너머로 흘러나오는 잔잔한 재즈가 공기처럼 퍼졌다.

그녀는 내 옆에 앉은 채,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얹고 있었다.

숨소리 하나, 옷깃 스치는 소리 하나까지도 또렷하게 들리는 정적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향기를 느꼈다.

 

살짝 달고, 부드럽고,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잊을 수 없는 체취.

그건 단순한 향수가 아니었다. 살결에서 풍겨 나오는 체온 섞인 향,

그리고 그 향은 내 안에 숨죽인 본능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긴장하셨어요?”

그녀가 살며시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풀릴 거예요. 하나씩 천천히.”

 

그녀의 손끝이 내 손가락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얇고 따뜻한 손가락. 그 움직임엔 서두름도,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살짝 기운 채 웃고 있는 얼굴.

그녀의 목선은 매끄럽게 이어졌고, 그 끝에 가려진 쇄골이 부드럽게 솟아 있었다.

부드러운 가슴선 너머, 숨결이 오를 때마다 블라우스가 아주 미세하게 출렁였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나를 갈증 나게 했다.

 

그녀는 내 손을 끌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스타킹이 감싸고 있는 자신의 허벅지를 내 손 위에 살짝 기대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촉— 미세한 나일론의 결, 그 아래 살아 있는 따뜻한 살.

나는 조심스레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

 

“만져도 돼요.”

그 말은 평온했지만, 그 안엔 누르려 해도 터지는 열기가 스며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스타킹 위로, 그녀의 허벅지를 따라 손끝을 위로, 더 위로.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다.

그 순간, 긴 생머리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며 그녀의 귀 밑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쪽 손, 따뜻하네요…”

그녀의 목소리는 숨결에 묻혀 떨렸다.

 

나는 그 떨림에 이끌려 그녀의 귓가에 입을 맞췄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명확하게.

그녀의 숨이 멈추었다가, 길게 토해지듯 이어졌다.

그녀는 눈을 떴고,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입술을 맞췄다.

천천히, 그리고 길게.

서툴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그건 포옹 같았고, 위로였으며, 동시에 명백한 시작이었다.

 

 

3화. 그녀가 내게 보여준 것

 

입술이 떨어지던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녀는 단지 감각만을 나누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의 입술은 부드러웠고, 그보다 더 따뜻했다.

사람의 체온은 이렇게도 깊고, 천천히 파고드는 것이었나—

 

조명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녀가 리모컨을 눌렀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 실루엣만으로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조심스럽게 그녀는 내 무릎을 마주보고 앉았다.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두 손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나는 무언가 신성한 것을 마주한 듯, 숨을 죽였다.

 

그녀가 천천히 블라우스의 단추 하나를 풀었다.

단추가 풀릴 때마다, 가슴골 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속살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전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감춰진 채, ‘내게만 보여준다’는 비밀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녀의 말은 조용했지만, 내 귓속에 강하게 박혔다.

 

그녀는 내 손을 이끌어 자신의 가슴 아래로 가져갔다.

그리고 블라우스 자락을 젖혔다.

작지만 단단하고 탐스러운 가슴이, 레이스 아래로 형태를 드러냈다.

나는 천천히 손끝으로 그 곡선을 더듬었다.

속옷 위로 느껴지는 유두의 부드러운 돌기,

그녀는 살짝 떨며 한 손으로 내 손목을 감싸 안았다.

 

“계속해요… 그렇게.”

그녀의 숨결이 내 볼을 스쳤고, 가슴은 작게 떨렸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가녀린 몸, 부드러운 허리선, 허공에 걸려 있던 긴장감까지도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내 손이 그녀의 등을 타고 내려가며,

허리와 골반의 연결부를 넘는 순간—

그녀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입술을 맞추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내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셔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서로가 서로의 체온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순간.

긴 생머리 끝이 내 턱선을 스치고,

나는 더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육체의 접촉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 안에 숨어 있던 ‘결핍’에 스며들고 있었다.

 

 

4화. 불 꺼진 방에서 그녀가 허락한 것

 

조명이 완전히 꺼졌다.

창문도 없는 이 방엔, 이제 아무 빛도 없었다.

시야가 사라진 순간, 모든 감각이 손끝과 심장으로 옮겨갔다.

나는 그녀를 ‘본다’는 것 없이, 오직 느끼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 무릎 위로 천천히 올라앉았다.

허벅지 안쪽이 내 다리를 타고 내려올 때, 팬티스타킹 너머의 온기가 또렷하게 전해졌다.

그 감촉은 마치 한 겹 얇은 베일을 사이에 두고도 그녀의 뜨거움을 그대로 전해주는 듯했다.

 

그녀의 손이 내 가슴 위에 얹혔다.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을까. 그녀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이렇게 뛰는 사람… 오랜만이에요.”

그 말에는 약간의 외로움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한 팔에 들어오는 여리여리한 허리,

그 부드러운 선을 따라 손을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숨이 조용히 떨렸다.

 

내 손은 블라우스 자락 아래로, 그녀의 등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속옷 후크를 스치며 손끝이 멈췄고, 그녀는 한 손으로 내 손등을 덮었다.

“풀어줘요.. 그래도 되요.”

그녀의 말엔 담담함과 동시에 설렘이 섞여 있었다.

 

후크가 풀리는 소리.

어둠 속에서도 나는 작지만 탐스러운 그녀의 가슴이 내 가슴에 닿는 순간을 생생히 느꼈다.

그녀의 유두는 벌써 작게 올라 있었고,

나는 머리를 숙여 그녀의 가슴 위에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

 

그녀는 작게 숨을 들이마시며 목을 뒤로 젖혔다.

그 순간, 그녀의 단아한 턱선과 가늘고 고운 목선이 내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스쳐갔다.

나는 그 곡선을 따라 천천히 입맞춤을 옮겨갔다.

목덜미를 지나, 쇄골 위에 이르기까지.

 

“허억… 좋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나직해졌고, 숨결은 거칠어졌다.

 

나는 그녀의 스커트 아래로 손을 가져갔다.

팬티스타킹의 고운 질감은 더 이상 차가운 방어막이 아니었다.

그녀의 허벅지를 따라 안쪽으로 파고드는 내 손길을, 그녀는 더 이상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양다리가 내 몸을 감싸며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가져요.”

 

그 순간,

나는 사랑인지 욕망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삼켜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방 안에서 그녀와 나는

둘만의 깊은 어둠 속으로, 함께 내려가고 있다는 것.

 

 

5화. 끝나지 않은 밤의 고백

 

그녀의 몸이 내 위에 천천히 기대어왔다.

격한 호흡 사이로, 방 안엔 땀 섞인 체취와 체온이 가득 찼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고, 두 이마가 조용히 부딪혔다.

어둠은 여전했고,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숨소리만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부드럽게 귓가에 속삭였다.

“오랜만이에요… 이렇게까지 받아들여진 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엔 묘한 외로움과 쓸쓸한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어?”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는 한참을 말없이 침묵했다.

그리고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1년.

그동안 많은 남자를 만났지만…

이렇게 내 속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나는 침묵했다.

감정이 솟구치는 와중에도, 아직은 질문보다 느낌으로 껴안아야 할 순간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가늘고 부드러운 손등, 긴 손가락, 떨리는 온기.

그 손에 담긴 생이, 지금 내게 닿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왜 나였을까요?”

내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처음부터 나를 여자로 봐줬어요.

손님을 받는 매니저가 아니라,

그냥… 따뜻한 온기를 가진 여자.”

 

그녀는 내 목을 끌어안았다.

긴 손가락이 내 등 위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 터치엔 욕망이 아닌, 어쩌면 더 깊은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오늘 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도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나를… 오래 기억할 거라는 걸.”

 

나는 입을 맞췄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는 이미 그녀를 기억해버렸고,

이젠 잊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 밤, 더 이상 말 없이 서로를 안고 잠들었다.

키스방이라는 이름 속에서,

이상하게도 가장 진실한 온기를 느꼈던 밤이었다.

 

 

6화. 그녀가 없는 자리

 

그날 이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그곳을 찾았다.

비슷한 시간, 비슷한 날씨.

방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도록 예약하지 않은 채, 조용히 카운터에 물었다.

 

“혹시… 지난주 금요일, 이 시간대에 계셨던 매니저 분… 긴 머리, 조용한 말투에… 165쯤?”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죄송해요. 저희 매니저님들 스케줄은 돌아가면서 바뀌는데… 말씀하신 분은 당분간 안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말에 숨이 턱 막혔다.

그녀가 없는 키스방은, 그저 어두운 방일 뿐이었다.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또 갔다.

익명의 공간 안에서 단 하나의 온기만을 기억하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집중할 수 없었다.

하던 일에 손이 안 잡혔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체 뭘 한 거지?

키스방에서 만난 여자에게, 감정 같은 걸 느낄 수 있는 건가?’

 

하지만 머리는 아무리 부정해도, 몸은 이미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 숨결, 내 심장에 박힌 목소리.

 

“그 방에서 나를 기억해버린 당신.”

 

그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랐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또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무작정 물었다.

 

“그녀, 연락할 방법은 없나요? 제가…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직원은 곤란한 듯 입술을 다물었다.

하지만 한참 후, 조심스럽게 메모 한 장을 건넸다.

 

“혹시 몰라서 전해드릴게요. 원하시면, 연락해보세요. 거기까지는 허용되어 있어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메모를 받았다.

짧은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정은.”

 

그 순간,

모든 감정이 현실로 변해버렸다.

 

 

7화. 이제, 당신 이름으로 기억될 밤

전화는 두 번 울리고 받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내 휴대폰 화면엔 짧은 문자 하나가 떠 있었다.

 

[오늘 밤 9시, 이 주소로 오세요. -정은]

 

주소는 도심 외곽, 조용한 골목의 작은 모텔이었다.

거짓말처럼 심장이 요동쳤다.

 

그녀는 먼저 와 있었다.

그날 키스방과는 다른, 사적인 옷차림이었다.

흰 셔츠에 얇은 니트 가디건,

그리고 무릎을 조금 넘기는 플레어 스커트.

그녀의 몸은 여전히 여리였고, 그러나 오늘은 더 어른스러웠다.

 

“오랜만이네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 목소리엔 더 이상 직업적 친절이 아닌,

마음이 담긴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앉자마자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그냥… 그날 이후, 다른 건 잘 생각 안 나요.”

 

그녀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엔, 두려움과 안도, 설렘이 함께 섞여 있었다.

“나도요… 한동안, 당신 얼굴이 자꾸 떠올랐어요.

그래서… 오늘, 그냥 사람으로 만나고 싶었어요.”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조용히 입술을 맞췄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번엔 서로를 보고 싶었다.

 

그녀의 셔츠 단추를 풀자,

작고 탐스러운 가슴이 흰 브래지어 아래로 고요하게 움직였다.

나는 키스를 내리며,

그녀의 턱선을 따라 목선을 타고,

가녀린 쇄골과 부드럽게 가라앉은 유방 사이에 입술을 묻었다.

 

그녀는 나지막이 신음을 흘리며

스스로 스커트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다리는 길었고, 각선미는 매끈했다.

스타킹은 오늘도 그녀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고,

내 손끝은 그 촉감을 따라 천천히 무릎 위로 올라갔다.

 

“당신은 늘… 나를 조심스럽게 만지죠.”

그녀가 속삭였다.

“그래서 더 미치겠어요.”

 

나는 그녀의 두 팔을 들어 침대 위로 넘겼다.

가느다란 손목이 베개 위에서 떨리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팔과 손끝이 내 숨을 멎게 했다.

 

이 밤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니었다.

현실이 그녀의 온기로 증명되고 있었고,

나는 더 깊이, 더 뜨겁게 그녀에게 녹아들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내 볼에 손을 얹고 말했다.

 

“지금부터 당신에게 맡길게요.

이젠 내 직업도, 과거도 상관없어요.

오늘 이 순간만큼은… 그냥 여자이고 싶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8화. 아침이 오기 전에

 

창밖은 어슴푸레 밝아오고 있었다.

침대엔 얇은 시트 한 장 아래로,

따뜻한 온기 두 개가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옆으로 돌아누운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긴 머리는 베개 위로 흘러내렸고,

가녀린 어깨와 등이 어렴풋이 보일 만큼,

이 순간 그녀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가까운 존재였다.

 

그녀는 눈을 떴다.

그리고 조용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나… 예쁘게 보여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등엔 미세한 상처가 있었고,

긴 손가락 끝은 평소보다 더 차분하게 떨렸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나, 사실… 아이가 있어요.

지금 다섯 살.

혼자 키워요.”

 

나는 그 말에 멈칫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리진 않았다.

오히려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 일을 한 거예요.

계약직으로는 감당이 안 됐고,

무섭고 외로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녀의 눈가엔 이슬처럼 맺힌 눈물이 있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울지 않고 버텨왔던 세월의 무게가, 그 눈물 한 방울에 담겨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더 강하게 쥐었다.

 

“지금,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어요.

이미… 당신으로 기억됐어요.

그날 이후부터 계속.”

 

그녀는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눈빛엔 안도와 슬픔,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 담겨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지금처럼만 생각할 수 있겠어요?”

 

나는 미소 지었다.

 

“지금보다 더 괜찮을 거예요.

왜냐면, 나도 그날 이후 계속 생각했으니까.

당신이 단순한 기억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몸을 내 쪽으로 조금 더 기댔다.

 

이 아침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서로를 처음 본 날과는 너무도 달라진,

이 고요한 감정 속에서

우린 비로소 사람으로,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9화.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나

 

며칠 뒤, 정은에게서 문자가 왔다.

짧은 한 줄.

 

“오늘 저녁,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다시 처음 만났던 듯 차분한 얼굴로 나타났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몸에 붙지 않는 회색 코트를 입은 그녀는

이상하게도 멀어 보였다.

 

“그날 이후, 계속 생각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에게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당신 삶에 내가 들어간다는 게

어떤 무게일지.”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당신이 나를 감싸 안고 싶어 한다는 거 알아요.

그리고 나도 그게 고맙고, 기뻐요.

하지만…

난 지금 당신을 받아들이면,

당신이 나 때문에 무너질까 봐 무서워요.”

 

그녀의 눈동자가 떨렸다.

사랑이 커질수록 두려움도 커진다는 걸,

그녀는 너무 일찍 배운 사람이었다.

 

나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등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정은아,

나도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야.

회사도, 관계도, 감정도

늘 모래 위에 세운 것처럼 불안했어요.

 

그런데…

널 만난 그날 이후,

내 감정은 처음으로 단단해졌다고 할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한 발짝만 더 같이 가보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앞에서 조용히 울었다.

 

“나, 사실…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린 지 오래됐어요.

내가 먼저 다가서면, 언젠가는 떠나더라고요.”

 

나는 그녀를 안았다.

숨이 멎을 듯 안았다.

 

“이번엔 내가 먼저 선택할게요.

그리고…

끝까지 책임질게요.

사랑이라는 게 그런 거라면,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정은은 내 품 안에서 떨리는 손으로 내 등을 감쌌다.

그녀의 손끝이 내 심장을 쓰다듬는 듯,

가슴이 조용히 아릿하게 벅차올랐다.

 

 

 

10화. 함께 있는 삶을 선택하다

 

늦은 밤, 도심 외곽의 한 작은 호텔.

창밖으론 잔잔한 빗소리가 흘렀다.

 

정은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긴 머리는 풀려 어깨 너머로 흘렀고,

단정한 셔츠 위로 그녀 특유의 고요한 기운이 감돌았다.

오늘은 화장기조차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 곁에 앉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이미 수없이 마음을 주고받은 뒤였고,

이제는 몸과 감정이 함께 선택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늘고 길고 부드러운 손가락,

그 아래로 이어지는 섬세한 손등.

그 손은 오늘 밤, 나에게 가장 귀한 약속이었다.

 

정은이 먼저 내게 입을 맞췄다.

이전보다 더 깊고, 더 천천히.

서두르지 않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겠지.

 

나는 그녀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속옷 아래로 드러난 작고 탐스러운 가슴은 조용히 숨 쉬듯 오르내렸다.

그녀는 부끄러움 없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천천히 입술을 가져갔다.

유두의 온기, 떨리는 숨결,

그 모든 것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내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팔 한가득 안기는 여리여리한 허리,

그 아래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곡선을 따라 스커트가 흘러내렸다.

 

스타킹 아래 감춰졌던 길고 매끄러운 다리,

그리고 아찔할 만큼 잘룩한 발목,

그 끝에 놓인 발은 마치 작품처럼 완성된 곡선이었다.

 

나는 천천히 가슬거리는 감촉을 따라 손을 올렸다.

촉감은 부드러웠고, 긴장감은 촘촘했다.

그녀는 내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작게 숨을 들이켰고,

숨결 사이로 내 이름을 아주 작게 불렀다.

 

“…윤재씨…”

 

이름이 처음으로 그녀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우리는 완전히 서로를 받아들였다.

 

사랑은 열기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린 이제 서로의 온도를 지닌 사람이었다.

 

행위가 끝난 후,

나는 그녀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긴 머리를 쓸어넘기고,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이 밤이 끝이 아니라는 걸 속삭였다.

 

“이젠… 나에게로 오는거지?.”

내 말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창밖의 비는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있었다.

욕망에서 시작한 감정은 사랑이 되었고,

그 사랑은 이제 함께 사는 삶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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