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3년생의 사랑 11부
민형은 평소보다 20분 정도 늦게 학교에 도착했다. 보통때보다 일찍 일
어나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었으나 유지영 선생님과 이런저런 수다를 떠느
라고 등교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집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우우우...... 정
말 신혼의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내친김에 확 결혼해 버릴까 보다! 민형
은 지영이 자신에 가까운 곳에 있다는 존재감 만으로도 온몸에 세포가 북
받쳐 오르는 극도의 쾌감을 느꼈다. 연애 안해본 사람은 결코 모를 거다
쿠시시......
"어?"
교실에 들어오니 옆 자리에 기현이 앉아 있었다. 저 녀석 오늘은 먼저
와 있었네? 얼굴에 반창코를 붙히고 자리에 앉아 있는 기현은 언뜻 봐도
아직 민형에게 맞은 자리가 가라앉지 안은 채였다. 기현이 어딘가에서 얻
어 맞고 와서 그런지 기현 주위에 아이들은 비상 경계령이 내린 것처럼 조
용했다. 민형도 모르는 채 하고 슬쩍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래 봤자
기현의 바로 옆 자리지만.
"크흠......"
민형이 와서 앉자 기현이 고개를 돌리며 손을 입가에 가져간채 헛기침을
했다. 짜식, 쫄아가지고...... 민형은 무시하고 책가방을 책상옆에 건 후
교과서들을 꺼내 책상안에 집어 넣었다. 이제 이 반은 조금 조용해 지겠
지. 기현의 행패가 알게 모르게 잦아들면 반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라고 생
각하면서 민형은 기현의 버릇을 고쳐준 것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했
다.
"얘, 민형아."
"어 반장. 무슨 일이니?"
그때 민형에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온 의연이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민
형의 이름을 불렀고 민형이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의연의
얼굴은 결코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민형의 옷깃을
잡아 잠깐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민형은 머리위로 물음표를 떠올리며
의연을 따라 교실 밖 복도로 나갔다.
"너 어제 무슨 일 있었니?"
"엉?"
복도로 나가자 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묻는 의연에게 민형에 영문을 모르
겠다는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어제라면 네가 우리집에 놀러와서
유지영 선생님이 삐진 일 정도밖에 없었는데 왜? 그거에 대해서 묻는거
야? ......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
"무슨 일이라니? 무슨일?"
궁금해진 민형이 어깨를 으쓱하며 묻자 의연이 손을 포개어 입을 가린채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택천이가...... 널 찾는다고......"
"뭐!?"
소근거리는 의연의 말과 함께 민형의 눈이 커다랗게 뜨여졌다. 유택천이
라면 이 학교 보스라는 녀석 아니야!? 그 녀석이 나를 찾는다면 한가지 이
유밖에 없다. 기현이 자식 사내 자식이 입이 방정맞군!! 민형은 낌세를 채
고 긴장이 되었으나 의연의 앞이라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그 녀석...... 아니 그 애가 왜 나를 찾는다니......?"
주눅, 주눅, 최대한 주눅이 든 표정으로...... 이러다 배우 되겠네. 민
형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내가 아니......? 그러니까 너한테 묻는거 아니야?"
여전히 손을 입가에 가져간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의연이 답답하다는
듯이 다그쳤다. 하지만 민형은 그런 의연에게 아무런 해답도 해줄 수 없었
다. 대신 민형은 슬쩍 너스레를 떨었다.
"혹시 전학생이라서 신고식 같은걸 하려는게 아닐까......?"
"유택천이가 일일이 전학오는 학생마다 신고식을 하려고? 너 네가 뭐라
도 된줄 아니?"
"농담이었어......"
제길, 이러나 저러나 나라는 놈은 둘러대기에도 서툰 녀석이라니까. 민
형은 더 이상 의연과 이야기를 계속하다간 모든일이 들통 날거 같아서 서
둘러 교실쪽으로 몸을 돌렸다.
"야, 정민형. 말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딜 가는거야?"
"별일 있겠어? 설마 나같은 녀석을 어쩌려고, 너도 너무 걱정하지마."
"그,그래도......"
민형이 괜찮을 거라는 듯 씨익 웃으며 말하자 의연이 여전히 걱정스럽다
는 듯이 눈가에 주름을 잡았다. 민형은 자신을 걱정해 주는 의연이 고마워
서 그녀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튀겼다.
"너무 신경 쓰지마라. 주름 생기겠다."
"뭐~? 어디!? 어디!?"
의연이 화들짝 놀라 두손으로 얼굴을 매만졌고 민형은 그때를 틈타 슬쩍
교실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저라나......
'이거 일이 복잡하게 얽히는거 아냐......'
민형은 새삼스럽게 걱정이 늘어나는 자신을 느꼈다.
.................................................... . . . . . .
"서울대 영문과 수석졸업. 고교 전문강사 자격증1급. 일본어 강사 자격
증1급 번역사 자격증 1급......"
학원 원장은 지영에 앞에 놓인 자격증과 이력서를 정신나간 사람처럼 한
참동안 훑어 보았다. 잠시후 원장이 기죽은 표정으로 지영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약간 수 돕은 듯이 웃고 있는 예쁘장한 지영의 얼굴이 원장에 눈에
들어왔다.
"이,이 정도면 저희쪽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어머, 그럼 된건가요? 저는 대전에 내려온지 얼마 안되서 어서 일자리
를 구해야 하는 형편이거든요."
원장이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렸고 지영이 다행이라는 얼
굴로 웃어 보였다. 원장은 다시한번 이력서를 섞어 보며 조그마하 목소리
로 속삭였다.
"이 정도의 이력서라면 굳이 우리 학원이 아니라 좀 더 좋은 대기업 쪽
이라도......"
"예?"
"아,아니 무조건 합격입니다! 유지영...... 씨라고 하셨죠?"
좋은 강사를 놓치면 안된다는 듯이 원장이 얼른 대답했고 지영은 다행이
라는 얼굴로 양손을 맞잡았다. 이력서를 얼른 추스려 지영에 앞에 놓으며
학원 원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가 구하는 분은 일어 강사가 아닌 고3 수험 대비반인데 괜
찮으시겠어요......?"
"고3 아이들은 예전에도 가르쳐 본 경험이 있어요. 과외도 해 보았고
요."
지영이 다소곳이 대답했고 원장은 그런 지영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웃으
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보수는 한달에 130만원 드리죠. 연수기간은 없는 걸로 하고."
"어머, 정말 그렇게 해도 될까요?"
"이 정도의 경력이시면 연수 같은거 없는게 당연하죠."
"정말 고맙습니다."
지영의 실력을 인전하는 학원 원장에 시원스러움에 지영이 활짝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어쨋든 하루만에 손쉽게 원하는 일자리를 손에 넣어서 지
영은 매우 다행스러웠다.
'민형씨한테 빨리 알려 줘야지.'
이제 파트 타임만 구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지영은 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 . . . . .
"정민형 이라는 녀석 왔나?"
조례가 끝나고 1교시 대비를 위한 쉬는 시간. 갑자기 교실 앞문을 열고
우르르 들어온 몇 명의 학생들이 다짜고짜 큰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외쳤기
에 민형은 깜짝 놀랐다. 반사적으로 옆자리에 기현을 돌아보자 기현은 어
색한 표정으로 민형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
의연은 2번째로 찾아온 유택천의 패거리를 보고 이거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되어간다는 것을 직감했다. 민형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택천이 전
학생에게 이런식으로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의연에 판단이었
다. 의연이 일단 얼버무리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제,제가 정민형인데요......"
'저 바보!?'
뒤쪽에서 우물쭈물한 목소리로 일어나는 민형을 본 의연이 일어나려다
말고 눈에 불을켰다. 스스로 나 잡아 잡숴 하고 목을 내밀다니!! 의연은
속이 타 들어 갔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민형을 본 서한영이 픽 하고 콧
소리를 내며 민형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민형에 옆자리에 앉아 있
는 기현을 향해 재미없다는 듯이 한마디 내뱉었다.
"뭐야? 이 녀석이야? 아무리 몸이 안좋아도 이렇게 귀엽게 생긴 녀석한
테 당하면 네 체면이 서겠냐. 안그래 기현아?"
"......"
한영이 이죽거리며 민형과 기현을 번갈아 보았으나 기현은 민형에게 직
접당한 당사자 인지라 ㉫불리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다만 친구 한영
과 택천을 민형이 이길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중간에서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야, 전학생. 네가 편찮은 내 친구를 손 봐줬다며? 맞아?"
"그,그게......"
씩- 웃으며 묻는 한영에게 민형은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순
간 한영의 눈이 빛났고 퍽- 소리와 함께 민형이 책상위에 나가 떨어졌다.
여자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울리고 의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학생이 그럼 돼? 안되지?"
한영이 빙긋이 웃으며 쓰러져 입을 훔치는 민형을 향해 이렇게 입을 열
었다.
PART-59
우웃, 민형은 책상뒤로 엎어진채 손으로 얻어 맞은 얼굴을 어루 만졌
다. 이 녀석이 성질을 돋구다니......! 민형은 눈이 야수와 같이 번쩍였
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서한영이 움찔한 얼굴로 민형을 빤히 내려다 보았
다.
"네놈...... 아직 꺽이지 않은 눈을 가지고 있군 그래...... 해볼 생각
이 있는거냐?"
"......"
민형은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수초간에 엄청난 갈등이 밀려왔다. 끝
까지 참고 버텨야만 하나,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예전에
세계로 돌아가느냐. 한 대 맞을 때 마다 예전에 세계로 되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울컥울컥 용솟음 쳤다.
"전학생이 소란을 피우면 곤란해......"
한영의 눈이 빛나며 입술이 슬며시 이죽거렸다.
"원래 부터 이학교에 계시던 분들의 체면은 뭐가 되냔 말이다!!"
"!?"
한영이 이렇게 외치며 구둣발을 민형을 얼굴을 쪽으로 날렸다. 퍽- 소
리와 함께 놀라는 의연과 같은 반 급우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
그리고 시선이 모아진 곳에는 한영의 구둣발을 손으로 붙잡아 막은 민형
이 있었다. 의연은 가슴이 두근 두근 뛰었다. 한영 역시 눈을 부라렸다.
"너...... 뭐하는 놈이냐?"
"흐윽......!"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을 느낀 기현이 움찔하며 한영의 등뒤로 물러섰다.
한영과 함께 온 유택천의 패거리도 왠지 모를 기선에 뒤로 물러났다. 민형
이 붙잡고 있던 한영의 발을 휙 밀어 던지자 한영이 주춤하며 몇발짝 뒤로
물러섰다. 한영의 눈가가 불쾌한 듯이 파르르 떨렸다.
"날 냅둬."
민형이 짧게 한마디했다.
"이 자식이......?"
그말은 한영과 그의 패거리를 더욱 도발시켰다. 그것은 민형이 바라는
일이었다. 애초에 민형은 놈들을 도발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했던 것이
다. 민형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끝났다. 깡패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못
한 법이다.
"전학생 주제에 분위기 파악을 못한단 말이야!?"
"!?"
돌려차기! 한영의 날카로운 돌려차기가 민형의 얼굴을 향해 휘둘러졌
다. 붕- 소리와 함께 멋지게 회전하는 날카로운 킥. 상당히 훈련된 무술
가의 움직임 이었다. 한영은 태권도를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흡!?"
그러나 민형은 그것을 가볍게 피했다. 밑으로 고개를 숙인 민형의 얼굴
을 건들지 못하고 한영의 발이 한바퀴 크게 허공을 그렸다. 그러나 한영은
턴을 쉬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콤비네이션 킥을 먹였다. 멋진 뒤로 돌
려차기가 다시금 민형의 안면을 노렸다.
- 텅!
"우왁!!"
신음소리와 함께 한영이 인상을 찌프리며 나가 떨어졌다. 기현과 유택천
의 패거리...... 그리고 모든 급우들이 놀라는 앞에서 민형의 세워진 오른
팔이 한영의 돌려차기를 쳐 올렸던 것이다. 꿈틀 꿈틀. 오랜만에 싸움에
의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민형의 팔에 핏줄이 들어났다. 좋다...... 이 느
낌......
"으, 으윽! 이 새끼!"
한영이 넘어진채로 정강이를 움켜잡고 괴로운 듯이 외쳤다. 뭐냐 이놈!
마치 철근을 내려친 것 같은 통증. 뼈가 얼얼하고 후들후들 떨려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한영이 귀밑에서 주루룩 한줄기의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오,오라 너도 무술을 했군! 그래서 그렇게 겁이 없구나 새끼! 야! 죽여
버려!!"
"이자식!!"
한영이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외쳤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패거리 4명
이 동시에 민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보다못한 의연이 큰소리로 외쳤다.
"부반장 선생님 모셔와!!"
"아,알았어!"
의연의 외침을 들은 부반장이 놀란 얼굴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뚝- 딱- 묵직한 소리가 울리고 교실을 빠져나가려던 부반장이 교실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
의연도 더 이상 선생님을 모셔 오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믿을수가 없
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의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렇게 멋질수
가, 정말 쎄구나 정민형! 정민형에게 달려들던 4명이 찰나에 순간 한 대씩
얻어맞고 반대쪽으로 뻗어 버렸던 것이다.그 한방한방의 무게가 어찌나 센
지 의연은 가슴속이 북받쳐 올랐다.
"크으으.....!!"
"으!?"
얻어맞고 쓰러진 패거리 4명이 비틀거리며 한영의 등뒤로 물러났다. 그
앞에는 섬 하게 눈을 밝히는 정민형의 무시무시한 모습이 있었다. 의연은
두근두근한 얼굴로 그것을 지켜 보았다. 다른 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겨라 정민형! 이겨라!
"너,너 도대체 뭐야......!?"
쓰러진 친구들을 번갈아 보며 한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이렇게 물었다.
한영의 꽉쥔 두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전학생."
민형이 짧게 대답했다.
"괴,굉장히 쎄군...... 너 덕분에 겁대가리가 없나본데 두고보자 새
끼!"
한영이 이렇게 외치며 친구들과 함께 교실문 앞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
는 도망가는 와중에서 협박을 잊지 않았다.
"전학생 주제에 깽판을 쳐!? 네가 여기서 무사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나
보자!!"
"......"
민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짜식들 유치한 소리 하고 있어. 전
형 적이네.
"이따보자 응!? 이따 보자고!!"
한영이 이렇게 외쳐대며 교실을 빠져나가 후다닥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히 이 학교에 보스라는 유택천에게 가는 것일게다. 민형은 짐작하고
있었다. 도다시 평화로운 학교 생활은 끝난 것 같군...... 민형은 갑자기
서글퍼 졌다. 그때 문득 옆에 서 있던 기현이 민형의 눈에 들어왔다. 기현
은 멍한 표정으로 민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형은 속이 부글 끓었다.
"이짜식!! 네가 일렀지!!"
민형의 분노의 일격이 기현의 뒷통수를 가격하고 교실안에서 비명이 울
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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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보통놈이 아니야! 어디서 한가닥 하는 놈이 들어온 것 같아!"
수업도 빠지고 학교 뒷 공터로 모인 택천의 패거리들 사이에서 한영이
질린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지금은 비상소집. 택천을 중심으로 중영실고
패거리의 80%가 지금 이곳에 모였다. 인원은 40명에 육박하는 숫자. 택천
은 조용히 담배를 피워물고 있을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대로 놔두면 그놈 기세가 쎄져서 우리가 우스워져! 택천! 내가 어떻
게 해줘!"
한영이 머리끝까지 열이 오른 표정으로 택천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택천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서 너희 다섯명이 가서 그 녀석한테 모두 당했다고......?"
"그,그건!"
택천의 불쾌한 듯한 표정에 움찔 놀란 한영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럴 사실대로 말하는게 최상의 방법이다.
"그,그래 당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자식이 진짜로 세던데!"
"......"
당황하는 한영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택천이 바닥에 침을 뱉었
다. 택천의 얼굴이 부리부리하게 일그러졌다.
"전학생 한놈 때문에 수업도 빼먹고 소집이라니...... 기가 막히군."
"......"
택천의 심기가 심히 안좋은 것 같아 한영은 잠자코 있었다. 택천이 기분
이 좋지 않을 때 건드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한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식 이름이 뭐야?"
"이름? 모,몰라......"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묻지 않았군. 기현이는 알고 있을텐데 그는 아직 교
실에 있었다. 택천이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
다. 칙- 지포에 불이 솟아올랐다.
"이거야 원, 완전히 이름도 모르는 놈한테 당하고 온거 아니야."
"......"
한영이 치욕스러운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라면 택천은 도와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우리 힘으로 해결하라고 이
야기 할지도 모른다. 한영은 속이 끓었다. 그때 한영이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후욱 내뱉었다.
"가자."
"에?"
짧은 한마디에 한영이 고개를 들었다. 택천이 아직 한 번 밖에 빨지 않
은 담배를 땅바닥에 내던져 총알을 튀겼다.
"어떤 놈인지 구경가자."
PART-62
"둘다 너무해. 나한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함께 살았다니 용서
못해!"
지영은 그날 매우 화가 난 얼굴로 퉁퉁 부어 있었다. 민형은 지영의 그
런 태도를 본적이 없어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친한 지혜씨에게 싸늘
한 시선을 보내는 유지영 선생은 따윈 상상 한적도 없었던 것이다.
"오빠를 빼앗긴 여동생은 보통 저런 반응이 나오지."
"그런게 아니야!"
지혜가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지영이 무서운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민형이 아무리 다르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 이유 뿐이었
다. 지영씨 의외로 귀여운데가 있군...... 아니 원래 귀여웠지만.
"그런데 지혜씨 언제부터 지훈형이랑 같이 살았어요? 나 놀랐어요."
"애들이 그런건 알아서 뭐하게요?"
"...... 그런식으로 경어를 붙히면 조롱이 되버려요......"
대답하는 지혜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부르르 떨며 민형이 험악하게 으름
짱을 놓았다. 지혜가 농담이었다는 얼굴로 웃으며 다시 대답했다.
"사실은 대학때. 지훈씨가 축재때 학교에 왔기 때문에 그때 봤지 뭐."
"그럼 그때 꼬셔서 아직까지?"
"꼬시다니...... 꼬심당한거지......"
"꼬셨지 임마."
지혜가 어림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훈
이 날카롭게 한마디 했다. 지혜가 발끈해서 지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꼬셨다고!?"
"그럼 아니냐? 게다가 지영이한테는 말하지마. 쇼크받을지도 몰라 라고
말한 것도 지혜 너였어."
"그,그런 말 한 기억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지혜가 사색이 된 얼굴로 지영을 돌아보자 이미 지영의 주욱- 힘빠진 얼
굴이 지혜를 노려 보고 있었다. 지혜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을 돌렸다.
"뭐, 이제 지영이도 남자가 있잖아? 그러니까 피차 비긴거지. 사실 지영
을 빼았겼을 때 분노는 지금 지영의 두배를 넘었어."
"설마 레즈는 아니겠죠......?"
"몰랐어? 그거야."
민형의 혹시나 하는 질문에 지혜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민형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때 지혜까 깔깔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걸 믿었어? 어유~ 의외로 귀여운 대가 있네 이 아저
씨."
지혜가 민형의 볼을 두손으로 꼬집어 늘어뜨리며 이렇게 말했고 민형은
말하기도 싫다는 듯이 뚱한 표정으로 지혜를 노려 보았다. 지혜씨는 묘하
게 사람을 아이 취급하는 경향이 있단 말씀이야. 민형은 그것이 못마땅했
으나 사실 지혜는 어른이고 민형은 고등학생. 따질말이 없는게 한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왔어? 게다가 오늘은 평일인데."
문득 지영이 이렇게 물었고 민형과 낄낄 거리던 지혜가 짐짓 사무적인
표정으로 돌아와 어깨를 으쓱했다.
"아, 맞다 오늘 온 이유는 집들이 겸 민형씨 한테 할말이 좀 있어서."
"나한테요?"
지혜가 민형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민형역시 지혜를 향해 고
개를 돌린채 눈을 깜빡였다. 지혜씨가 나한테 무슨 용무가?
"민형씨 원고 있어?"
그때 지혜가 민형을 향해 이렇게 물었고 민형은 영문을 모르고 눈을 깜
빡 거렸다. 원고라니? 갑자기 무슨 원고? 민형이 선뜻 지혜의 말에 반응하
지 못하자 지혜가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설명을 덧붙혔다.
"만화 말이야 만화. 민형씨 만화 그린다고 했잖아?"
"마,마,만화요? 그건 왜요?"
갑자기 예상치 못한 질문에 민형이 뜨끔하여 말을 더듬었고 지혜가 더없
이 태연한 표정으로 민형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왠지 그 미소가 의미심장
하여 민형은 숨을 죽였다.
"지영이 전화에 대고 어찌나 떠들던지. 궁금해서 와봤어.그린거 있으면
좀 내놔봐."
"지,지영씨가요......?"
민형은 이렇게 대답하며 흘끔 지영을 돌아 보았다. 지영이 쑥쓰러운 얼
굴로 민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군...... 선생님은 만화가를 꿈꾸는
내 희망을 항상 생각하고 계셨나 보구나. 민형은 갑자기 조금전에 공부문
제로 화를 낸 것이 미안했다.
"뭐해? 원고 좀 달라니까."
"예? 지,지금 원고가 어딨어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민형에게 지혜가 제촉해서 물었고 민형이 얼른
지혜를 돌아보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지혜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되 물었다.
"평소에 그린거 없어?
"그,그런거......"
"괜찮아 내놔봐. 만화는 남에게 보이는거야. 안그래?"
그래도 지혜씨한테는 함부로 보이고 싶지 않은데, 민형은 얼굴이 뻘개져
서 시끈덕 시끈덕 딴청을 하기 시작했다. 잠자코 있던 지훈이 한몫 거들었
다.
"야 깡패 정민형, 네가 만화를 그린다는 소릴 듣고 놀랐다. 그래서 이렇
게 직접 보러 온거니까 좀 보여줘."
"누가 깡패라고요!"
발끈하는 민형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지훈이 씩 너털 웃음을 남겼다.
"어, 미안하다 미안해......"
"......"
웃는 지훈을 바라보며 민형은 속으로 부글 부글 끓었다. 정말 마음에 들
지 않는 콤비야. 그래서 서로 잘 사귈 수 있는 거겠지. 지영씨가 저 둘 사
이에서 용케도 저렇게 순하게 버텨왔구만...... 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그녀가 기특해 졌다.
"어쨋든 지금은 그려놓은게 없어요."
민형은 딱 잘라 거절했다. 만화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줘 봤자지, 사실 누군가가 그림을 보여 달라고 하면 상당히 보
여주고 싶어 못견뎠을텐데 왠지 이 두 커플에게만은 그러고 싶지 않군...
... 왜냐고? 이상하게 기분나뻐!
"그래? 그거 안타깝군. 주간 웨이브에 팀장을 좀 알아서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아니 귀도 띄였다. 주,주,주간 웨이브!? 그거라
면 현제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주간 30만부를 찍어내는 만화잡지 아닌
가!? 그것도 기자도 아닌 팀장이라니!? 민형은 한순간 머리가 띵하니 울렸
다.
"주,주,주간 웨이브지에 팀장이라고요!?"
민형이 지혜의 앞으로 바싹 다가서 씨근덕 대며 묻자 지혜가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거기 팀장하고 옛날 같은 회사 디자인 팀에 있었어. 요번에 단기
집중으로 신인을 모집하고 있는데 말이야 감각있는 신인으로."
"그,그래요? 어떤건데요?"
민형은 두눈을 반짝 반짝 빛내며 지혜에게 바짝 다가섰고 지영과 지훈이
서로 자기 파트너를 붙잡아 때어내었다. 그러나 민형은 정신없이 지혜에게
달라 붙었다.
"어떤 건데요?"
"어떤거라도 원고가 없으면 소용없지."
"있어요 있어! 원고는 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형은 후다닥 방으로 달려 들어가서 작업책상과 서
랍에 쌓여 있는 자신의 원고를 모조리 들고 나왔다. 그것을 지혜의 앞에
털썩 내려 놓으며 민형이 말했다.
"봐줘요."
"이,이렇게 많아......?"
지혜가 조금 놀랐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고 민형이 얼굴이 빨개져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그중에 제일 잘 된 것은......"
"괜찮아 내가 보지."
민형이 무언가 설명을 뒷바침 하려고 했으나 지혜가 손을 흔들며 민형의
말을 막았다. 그녀는 원고 뭉치의 맨 윗장의 그림부터 한 장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민형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
"......"
몇편의 원고가 지나가고 민형은 조바심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지훈도 흥미 있는 얼굴로 지혜의 옆에서 민형의 원고를 들여다 보고 있었
다. 지영 역시 두근 거리긴 마찬가지였다.
"이게 원고야?"
그때 지혜가 고개를 들며 민형에게 물었고 민형은 눈이 번쩍 뜨였다.
"이,이게 원고냐니요......?"
"무슨 원고가 배경이 하나도 없냐. 사람만 잔뜩 있고."
"그,그건 명랑 만화라서."
"그래?"
민형이 변명하듯 이렇게 대답했으나 지혜는 영 뚱한 반응이었다. 어쨋든
지혜는 계속해서 민형의 원고를 살펴 보았다.
PART-63
- 탁
지혜가 가장 최근 것이라는 60페이지 짜리 원고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민형은 두근거리는 얼굴로 지혜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지혜
씨 그런 분야에 관계되 있었던 거야? 뜻밖에 가까운 곳에 만화 관계자를
만나게 되어 민형은 가슴이 설레였다.
"잘 모르겠는걸."
"에......?"
김세는 지혜의 한마디. 민형은 눈을 크게 뜨고 지혜를 뚫어져라 바라 보
았다. 지혜가 조금은 탐탁치 않은 얼굴로 원고 뭉치를 들어 보이며 민형에
게 말했다.
"솔직히 그림이 약한거 아니야? 선도 깔끔하지 못하고, 그리고 구도
도 좀 후진 것 같애."
"그,그럴지도......"
민형은 얼굴이 빨개져서 지혜의 말을 듣고 있었다. 솔직히 자신의 그림
이 그리 뛰어나다고 생각 해 본적은 없다. 국민학교때 알게되고 고등학교
때 부터 그리게 된 만화. 경력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면전에
서 누군가에게 그림이 '약하다' 라는 마을 들으니 왠지 비참해졌다.
"요즘엔 정말 끝내주게 잘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야. 고교생이 아
니라 중학생들도 거의 환상적인 수준이지. 이젠 데뷔 연령층도 모두 고교
생으로 내려왔을 정도니까 말이야."
"네에......"
할말은 없다. 민형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분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민형의 가슴이 욱신욱신 쑤셔왔다.
"신인 모집이라고 해도 연재는 주지 않으니까 단기집중 단편으로 나갈
거라고. 그림이 튀지 않으면 힘들거야. 뭐 어쨋든 내가 한 번 가져가 볼
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가장 최근껄로......"
"됐어요."
원고를 집어 들려는 지혜의 손에서 민형이 원고를 뺏아들며 이렇게 한마
디했다. 그 순간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민형은 바라보았다. 민형의 얼굴은
패배자의 처절함이 온통 서려 있었던 것이다.
"나...... 아직 그림이 형편없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민형은 이렇게 말하며 원고를 주섬주섬 챙겨들었다. 그 모습을 본 지영
은 가슴이 찢어질 듯 했다. 항상 당당하던 민형씨가 저렇게 울적한 모습
은 보인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지영의 원망이 지혜에게 쏠렸
다. 지영이 민형에게서 원고를 뺏어 들었다. 깜짝 놀라는 민형 앞에서 지
영이 지혜에게 민형의 원고를 불쑥 내밀었다.
"가져가 봐!"
"지,지영씨......?"
갑자기 강하게 나오는 지영을 바라보며 민형이 영문을 모르고 눈을 깜
빡였다. 지영은 분한 듯이 지혜를 쏘아보며 원고를 얼굴에 바짝 내밀었
다.
"너 말고 전문가한테 보여줘. 잡지사의 팀장이라면 반드시 민형씨 원고
를 알아 줄거야."
"지영아 너 화났구나? 내가 한말은 말이야 그냥 너무 기대를 갖지 말라
는 말......"
"나 화 안났어."
지혜가 어색한 얼굴로 변명하자 지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민형을
한 번 바라본 후 다시 지혜에게 고개를 돌렸다.
"만약에 잡지사에서 퇴짜 놨다면 할 수 없지만 한 번 도전해 볼 가치는
있어. 민형씨도......"
지영은 이렇게 말하며 민형을 돌아보았다. 민형은 두근두근 떨리는 얼굴
로 지영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됐다고 할게 아니라 이번 기회를 한 번 잡아봐요. 만화가가 되는게 꿈
이잖아요!"
"하,하지만 저도 제 그림이 약하다는 건 인정해요......"
"그럼 지금부터 더 잘 그리도록 노력하면 되잖아요!"
"에......?"
지영의 강경한 태도에 주위에 세 사람은 잠자코 아무말도 할 수 없었
다. 지영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꽤 자기 주장을 펼칠 줄 아는 여자로 변
하는 것이다.
"만화는 재미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그림은 그릴수록 늘 거예요. 한 번
가져가 봐요. 가져가 봐야 알꺼 아니예요."
"지,지영씨......"
지영의 공격적인 태도에 질려버린 지혜와 지훈이 아무란 대꾸도 하지 않
았고 민형 역시 얼떨떨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분명히 자신을 걱
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고마우면서도 부담되었다. 부끄러운 그림
을 보이고 싶지는 않은데......
"처음부터 잘 그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지영이 이렇게 한마디 하며 민형을 똑바로 쳐다 보았다. 왠지 그말이 민
형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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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지영은 지혜와 함께 한방에서 누워 있었다. 시간은 12시가 가
까워진 늦은 밤. 지훈을 민형의 방에서 재우기로 하고 둘은 오랜만에 한방
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여성잡지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던 지혜가 문득 지영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가 함께 자는거 대학때 엠티 제외하면 엄청 오랜만이다 그지?"
"그러네."
지영도 감개무량한 듯이 가볍게 웃었다. 지영은 오랜만에 오빠와 지혜와
함께 놀 수 있게 되어 기분이 들떠 있었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라면 오빠와 지혜의 동거, 지금까지 깜쪽같이 자신을 속여온 두 사람이 얄
밉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지영이 물었다.
"너 우리 오빠랑 결혼할거니?"
"응? 갑자기 뭔소리야."
지혜가 여전히 여성잡지를 들추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지
영은 그대로 넘어가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벌써 몇 년째 계속된 동거라며. 너 때문에 난 2년이 넘게 집에서 혼자
있었다.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한마디도 안 해줄수가 있니?"
"글쎄 말했잖니...... 네가 쇼크 먹을까봐 그랬다고."
지영이 조금 원망스러운 얼굴로 다그치자 지혜가 쓴웃음을 지으며 지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혜가 미안하다는 듯이 씩 웃었다.
"너 그 덕분에 민형씨도 만났잖아. 연애도 자유롭게 하고. 나한테 고맙
다고 해."
"야, 같다 붙힐곳에 같다 붙혀 얘."
"어쨋든."
지영이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혀를 차자 지혜가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은 태도로 다시 여성지에 고개를 돌렸다. 지영은 그런 지혜를 빤히 쳐
다 보았다. 한가지 묻고 싶은 있는데...... 지영이 결심하고 입을 움직였
다.
"저...... 지혜야."
"왜."
지혜가 여전히 여성지에 눈을 때지 않은채 대답했고 지영은 얼굴이 빨개
져서 어쩔줄 모르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너 우리 오빠랑 했니?"
"......?"
지영이 어렵게 어렵게 묻자 그제서야 지혜가 지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조금 의외라는 듯 지영을 바라보다가 입가에 씩 미소를 띄웠다. 지
혜는 순진한 지영이 귀엽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했지."
"그,그래? 벌써?"
지혜의 대답에 지영이 놀랐다는 듯이 침을 꿀꺽 삼켰고 지혜의 얼굴이
용의 주도하게 변했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그런걸 묻는걸 보니 너도 다 컸다. 아니 많이 타락했다. 민형씨가 타락
시킨게 분명해."
"얘,얘는, 민형씨는 아직 고등학생이야."
"요즘은 고등학생들이 아는게 더 많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는 듯이 얼굴을 붉히는 지영에게 한마디 쏘아 붙
히며 지혜가 흥미있다는 듯이 지영에게 바싹 몸을 밀착 시켰다. 지영이 두
근두근한 얼굴로 지혜를 빤히 바라보자 지혜가 말했다.
"넌 어때?"
"뭐,뭘?"
왠지 잘못 걸린 것 같아 지영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지혜의 눈
총이 따갑게 옆으로 꽂혔다. 지혜가 씩 미소를 띄우며 되물었다.
"했니?"
"뭐......? 너, 너는 그런걸 그렇게 자연스럽게 물어볼수 있어?"
"너도 물어봤잖아."
"그건 우리 오빠니까 그렇지."
지영이 말을 돌리자 지혜는 안되겠다는 듯이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
아 지영을 붙잡았다. 깜짝 놀라는 지영의 윗도리를 붙잡고 지혜가 압력을
가했다.
"벗어봐!"
"왜,왜 그래 놔! 갑자기 무슨 짓이야!?"
지영이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필사적으로 윗도리를 잡아 당기자 지혜
가 의미 심장하게 씨-익 길게 웃었다.
"했는지 안했는지 가슴만 보면 알 수 있어. 자 빨리 벗어봐."
"지,지혜 이 변태! 싫어! 놔!"
킥킥 거리면서 지영의 윗도리를 잡아당기는 지혜를 온힘을 다해 밀치며
지영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혜의 손끝은 교묘하게 지영의 몸 구석구
석으로 파고 들어갔다.
PART-64
"......"
지영의 브레지어를 억지로 뜯어 벗긴 지혜가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지영은 곧바로 자신의 브레지어를 지혜의 손에서 확 낚아채며
얼굴이 빨개져서 외쳤다.
"무슨 짓이야! 지혜 바보!"
지영이 화난 듯 이렇게 외치며 지혜에게서 등을 돌리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지영은 이불속에서 얼른 얼른 브레지어를 입으며 마음속으로 두근두
근 생각에 잠겼다. 지혜는 정말 가슴만 보고 했나 안했나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때 이불 밖에서 지혜의 손이 이불속으로 쑥 들어와 지영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지영이 미처 피하기도 전에 지혜가 무지막지한 힘으
로 지영의 머리를 이불속에서 확 빼내었다. 지영이 비명을 질렀다.
"아퍼......!"
"시끄러 기집애야."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인상을 찡그리는 지영의 얼굴에 꿀밤을 먹이며 지
혜가 정할 할 수 없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지영이 머리카락을 붙잡은채로
긴장한 얼굴로 지혜를 빤히 쳐다보았다. 왠지 가슴 언저리가 쿡쿡 저려 오
는 것만 같았다. 그때 지헤가 지영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너 어쩔려고 그래."
"뭘......"
지영은 시치미를 뚝 때고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지혜는 지영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민형씨는 아직 고등학생이야. 연하의 남자랑 사귀면 사귀는 만큼의 책
임을 져야지. 그렇게 자신을 함부로 해서 어쩌겠다는 거니?"
"대답안해."
왠지 민형씨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라서 지영은 볼을 부풀린 채 휙 고
를 돌렸다. 지혜는 정말 골치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지영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자신쪽으로 확 끌어 당겼다. 지영이 기겁을 하며 비명
을 질렀다.
"아파! 놔!"
"잘들어 이것아! 피임은 했니?"
지혜가 정말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지영도 조금 기가 죽
어 우물쭈물 대답을 못했다. 지혜는 여전히 한심하다는 얼굴로 다시 되물
었다.
"괜찮은거야?"
"이번달 월경은 있었어......"
지영이 포기한 듯이 순순히 대답했다. 어차피 지혜는 모든 것을 꽤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영이 순순히 대답하자 지혜가 백을 가져와 안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콘돔 세트였다.
"설마 설마 했지만 설마가 사람잡을 것 같아서 사온거다. 민형씨가 일일
이 신경써 줄 것 같지도 않고, 앞으로는 네가 약국에서 사."
"...... 고마워."
지영이 지혜가 내민 상자각을 집어 들고 우물쭈물 대답했다. 지혜는 가
슴 앞으로 팔짱을 낀채 왠지 괘씸한 듯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에 조금의 실수라도 있어 임신했다고 생각해봐. 단순히 너도 걱정
이지만 아직 고등학생 밖에 안된 민형씨의 일생이 흔들리는 일이야. 너도
진정으로 민형씨를 좋아한다면 24살답게 처신해야지."
"......"
지영은 왠지 어머니에게 꾸중듣는 딸의 입장같이 느껴져 아무 대꾸도 하
지 않았다. 이래라 저래라 해도 지혜는 좋은 친구다. 이런 걱정을 해주는
여자는 지영의 주위에는 지혜밖에 없는 것이다. 지혜가 못마땅한 얼굴로 다
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떻게 일이 이렇게 돌아갈수도 있다니......"
지혜가 자포자기 한 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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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은 지훈과 함께 방에 누워 있었다. 지훈과 특벽히 할말도 없고 또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었기에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잠이 오
지 않았다. 아무래도 민형에게 지훈이라는 존재는 거북하기만한 존재였
다.
"야, 민형아."
"?"
그때 어둠속에서 지훈이 말을 걸어왔다. 민형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지훈
은 아직 민형이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게속 말을 이어갔
다.
"너 말이야. 만화가 해서 성공할 자신있냐."
"......왜요?"
자신에 대해 묻는 것을 씹어 버릴 수는 없어서 민형이 샐쭉하게 대답했
다. 지훈이 후우 한숨을 쉬며 두팔로 머리를 받쳤다.
"너 복싱 해볼래? 넌 맷집하고 펀치력이 죽이니까 금방 늘거다."
"난 얼굴에 상처 나는거 싫어해요."
"그런말 한다고 믿어줄 것 같냐?"
"정말이예요. 그리고 사실 난 폭력보다 섬세한 예술가가 체질에 맞는 타
잎이라고요."
"정말이냐? 난 거짓말 장이한테 내동생 못줘."
"농담이예요. 나 쌈 좋아해요."
"......"
왠지 의미없는 농어가 몇마디 오고 갔고 지훈은 기분이 좋은지 쿡쿡 소
리내어 웃었다. 민형은 지훈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어 잠자코
지훈의 다음 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훈이 말했다.
"너 내동생 책임질 수 있냐."
"!"
왠지 뜨끔한 질문. 민형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예요 형?"
"네 동생 먹여 살릴 수 있냐고 묻는거야."
"결혼하란 말이예요?"
"뭐야? 그럼 안할 생각이었단 말이야? 이 자식이......!"
"케,켁...... 아,알았어요. 이것좀 놔줘요."
누운 자세에서 지훈이 민형의 목을 졸랐고 민형이 켁켁 대며 고개를 흔
들었다. 민형이 죽는 시늉을 해대자 재미가 없어졌는지 지훈이 민형의 목
을 붙잡았던 자신을 손을 놓고 자시 팔배게를 하고 누웠다. 지훈이 감개
무량한 듯 혼자말로 중얼 거렸다.
"지영인 진짜 괜찮은 여자다. 내 동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요즘 어
딜 가서도 지영이 같은애 찾기 힘들어. 어쩌다 너같은 깡패 자식한테 걸려
버렸는지 모르지만 말이야...... 난 지금도 아깝다."
"뭐가 아까워요. 근친상간이라도 해보고 싶은거요?"
"자식이 말을 해도 꼭......"
"크크......"
어느세 거북함이 허물어지고 둘은 오랫동안 사귀어온 친한 친구처럼 이
런저런 농담을 주고 받았다. 물론 두 사람의 주제는 지영과 민형의 관계에
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훈이 무언가 하고 싶은말을 하지 못하고 말을 돌
리는 것을 알아챘는지 민형이 대뜸 이렇게 말을 꺼냈다.
"지영씬 내가 맡을테니까 형은 이제 손 털어요. 이젠 내꺼라고요 내
꺼."
민형이 히죽 웃으면서 한마디 했고 지훈은 민형의 목을 팔로 감아 조이
며 안심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 넌 멋진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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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 유택천의 패거리는 고수부지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것은 단순히
중영실고의 학생들만이 아니라 유택천과 동맹을 맺고 있는 여러 학교의 모
임이기도 했다. 아직 꺼지지 안은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어두운 밤 고수
부지를 온통 시끄럽게 달구어 놓고 있었다.
"와줘서 고맙다.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골치아픈 녀석 한
명을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야."
유택천은 자신의 오토바이에 앉아 앞에 모인 여서 패거리들에게 긴장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중영 실고 패거리와 신천지 고교. 석강 공고까지
모두 세학교. 이들은 모두 유택천과 의형제를 맺고 있는 각각의 보스가 지
휘하고 있으며 세학교를 모두 합친 패거리의 수는 130명이 넘었다.
"만약에 만약까지 대비해야 하는 위험한 놈이 우리학교에 전학왔다. 그
놈을 이곳으로 유인해서 묵살내는 것이 이번 우리의 목표다."
오타바이 위에서 패거리들을 둘러보는 유택천의 눈에는 치욕스러움과 복
수에 눈이 먼 시뻘건 인이 번쩍이고 있었다.
PART-65
금요일 아침, 오늘도 지영의 덕분으로 일찍 일어나게 된 민형은 아침을
잘 차려먹고 학교로 향했다. 지혜와 지훈에게 아침 6시 대는 아직 한밤
중. 각 방에서 쿨쿨 골아 떨어져 있는 두 손님을 놔두고 민형은 학교로
향했다. 지영은 요번주는 그냥 집에서 쉬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학원에
나간다고 했다.
"좋은 아침."
여전히 학교에 일찍 나와 있는 의연에게 아침인사를 건네고 민형은 자
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자 마자 먼저 와 있던 아이들의 싸늘
한 시선이 느껴졌다.
"......"
민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 책상안에 집어
넣었다. 전혀 예상을 하지 않고 있던 일은 아니었다. 뭐 어제의 사건이 있
었으니 충분히 색 안경을 끼고 보일만 했다. 민형은 책상위에 자습장을 꺼
내고 연필을 들었다. 문득 옆자리에 기현이 오지 않은 것을 깨달은 민형이
빈 의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야,정민형."
"!"
그때 어김없이 의연이 말을 걸어왔고 민형은 고개를 돌렸다. 의연이 물
었다.
"너 어제 아무일 없었니?"
"응, 덕분에."
민형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씩 웃으며 대답하자 의연이 그것참 신기
한 일이라는 듯이 반색을 하고 중얼거렸다.
"유택천 패거리를 건드려 놓고도 멀쩡하게 등교할 수 있다니 참 특이한
녀석이다 너는."
"넌 내가 무슨일 당하길 바랬냐?"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의연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고 민형은 뚱하니 그런 의연을 쳐다보았
다. 잠시후 의연이 민형의 책상위에 걸터 앉으며 가슴 앞으로 팔짱을 꼈
다.
"역시나 기현이도 나오지 않았고 너 혹시 '폭풍전야' 라는 말 들어 봤
니?"
"너 '과민반응' 이라는 말은 들어봤냐?"
"......"
왠지 할말이 없어진 의연이 똑딱똑딱 몇초간 침묵에 잠겼고 민형은 아무
렇지도 않게 칠판에 자습을 노트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의연이 다시 말을 걸었다.
"지금까지 유택천의 패거리를 건드려 놓고 그냥 넘어간 녀석이 없었는데
너무 조용하니까 이상하잖아. 그 녀석들 원래 상식이 통하지 않는짓을 하기
로 유명한 녀석들인데."
"나한텐 상식이 통하고 있잖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넌 집도 학교 근처 한 번 찍히면 위험할텐
데......게다가 혼자 살잖아. 아니, 예쁜 누나랑 같이 살잖아......"
자꾸 불길한 소리를 해대는 의연의 말이 듣기 싫어진 민형이 책상을 손
바닥을 탁 때렸다. 그순간 의연의 말도 멈추고 교실에서 수근대던 아이들
의 잡담 소리도 딱 멈췄다. 민형과 의연이 긴장한 얼굴로 서로의 눈을 바
라보았다. 민망해진 민형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그만 자리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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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천은 학교 근처에 사는 패거리의 집에서 수족인 친구들과 집회를 갖고
있었다. 물론 서한영과 김기현도 이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있었다.
"그 녀석은 우리반 반장 신의연이하고 친해. 그리고 집도 학교 앞 구식
양옥이야. 게다가 자취니까 부모님도 안계셔."
"......"
기현의 보고를 들으며 택천은 깊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영은 그런 택천의 옆자리에 앉아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뚱한 표
정으로 앉아 있었다. 택천이 한영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냐 한영?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봐."
"......끙"
한영은 오내지 못마땅한 얼굴을 추스리며 양반자세를 하고 있던 다리를
풀어 편하게 주저 앉았다. 그는 계속해서 택천의 이런 소심한 행동을 못
마당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맘에 안들어...... 도대체 그 한녀석 상대하는데 동맹까지 끌어들일 필
요가 뭐가 있어? 이건 이겨도 체면이 말이 아니야!"
"......"
한영이 열받은 얼굴로 불만을 털어 놓았고 택천은 아무말 없이 그런 한
영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체면이 문제이기 전에 이기는 것이 중요한 녀석이야."
"뭐? 이 숫자로 이길 수 없다는 말이야?"
"......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기가 막히는군!"
한영이 별꼴을 다 보겠다는 듯이 손으로 이마를 때리며 바닥에 벌렁 들
어 누었다. 택천은 그런 한영을 흘끔 바라보았다가 다시 친구들을 향해 고
개를 돌렸다.
"그럼 그 녀석을 도발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지? 말해봐 기현."
택천이 기현을 쳐다보며 눈을 번쩍였고 기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
다.
"가장 좋은 방법은 친한 친구인 의연이를 이용하거나 역시 그 녀석집을
노리고......"
"음......"
기현의 말을 듣던 택천이 손으로 턱을 만지작 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녀석 혼자 사나?"
"내가 알아본 바로는 누나가 내려와 있다는 것 같던데."
"누나......?"
그말을 들은 택천의 눈동자가 조금 크게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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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지훈은 아침 10시가 지나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시시
한 얼굴로 세면을 마치고 거실로 나온 두사람의 앞에서 벌써 일어나 민형
을 학교에 보내고 두 사람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지영이 있었다. 지
영은 어른들이 무슨 늦잠을 그렇게 자느냐며 핀잔을 주었고 지혜와 지훈은
그 말을 씹어 버렸다. 지혜가 거실에 털썩 주저 앉으며 하품했다.
"아함~ 민형씨는 어디갔니?"
"학교갔지. 오늘은 평일이잖아."
"아 그러니?"
지혜가 어깨를 북북 긁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고 지영은 싱크
대 위에서 양파를 썰고 지개 끓일 준비를 했다. 지혜가 싱크대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지영이 냉큼 지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혜야. 두부 좀 사올래?"
"어...... 싫은데."
"방금 일어났으니까 밥맛 나게 같다와. 빨리!"
지영이 아직도 잠이 덜 깬듯한 지혜에 손에 억지로 1000원 짜리를 쥐어
주며 바깥으로 내보내자 지혜가 비틀 거리며 일어나 억지로 신발을 신었
다.
"아 귀찮아....."
"그런말 하면 밥 안줄꺼야?"
"......"
협박비슷한 지영의 말을 뒤로하고 지혜는 건들건들 대문을 빠져 나갔
다. 구멍가게 어딘지 몰라 대문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지혜
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저, 이집에 사십니까?"
"......?"
가까이 다가온 두 남자가 지혜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사복을 입고 있
어서 언뜻 봐선 학생의 신분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지혜가 대답했다.
"그런데요."
"정민형이 하고 어떻게 되는 사이세요?"
'뭐라는 거야 이 녀석들.'
갑자기 나타나서 알아듣지 못할 질문을 해대고 있는 택천의 패거리에게
지혜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누난데요."
별로 다른 대사가 떠오르지 않아 지혜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거라면 가
장 무난하고 또 뒷탈도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 지혜에게 질문을 건넨
두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정민형이의 누나시라고요?"
"그런데요...... 근데 너희들 뭐야!?"
괜히 짜증이 난 지혜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순간 두 남자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지혜를 양옆으로 감사며 무서운 얼굴로 으름짱 놓았다.
"조용히 해! 죽고싶어? 잠깐 좀 따라와 이X아!"
"뭐야!? 이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자식들이!! 니들 뭐야! 니들 깡패야!
좋아 깡패라면 나도 두사람이나 안다!! 지훈씨!! 지훈씨이-------!!"
갑자기 지혜가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기 시작하고 당황하는 택천의 두 부
하 앞에 당황한 얼굴의 지훈이 뛰어 나왔다. 그는 얼마나 급하게 뛰어 나
왔는지 신발도 꺾어 신고 있었다.
"왜그래 지혜?"
지훈이 지혜와 그녀의 양옆을 감싸고 있는 택천의 부하들을 번갈아보며
이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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