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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2017.06.19 11:07

고교 3년생의 사랑 9부

조회 수 6029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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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주에 또 올께요.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요."

  "나참, 겨우 1주일인데 뭘 잘 지내고 말고가 있어요. 제가 자주 연락할

께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발차 시간을 앞두고 민형은 지영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짧은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이제 이 저녁이 지나면 월요일이

돌아온다. 민형은 학교로 돌아가야 하고 지영은 사회에 돌아가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삐삐만 치면 언제든지 연락할께요. 삐삐만 치면......"

  "그래요, 걱정마세요. 자 차 떠나겠어요 빨리 올라가세요."

  민형은 섭섭해서 어쩔줄 모르는 지영을 달래다시피 버스에 태우며 애써 

웃었다. 섭섭하기는 민형도 마찬가지 였지만...... 뭐, 아주 헤어지는 것

도 아니고 기껏해야 일주일인데 남자가 이런일로 약한 모습을 보여야 쓰

나. 민형은 일부러 대범한척 하며 지영을 버스위로 올려 보냈다.

  "전화할께요."

  버스가 시동을 걸자 지영이 창문을 열고 민형에게 외쳤다. 민형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내 버스는 터미널을 빠져나가 도로 저쪽으로 사라졌

고 민형도 후- 한숨을 내쉬며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뒤돌아 보는 지영

의 모습이 애뜻해서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야~!"

  "왁!!"

  어디선가 많이 당해본 수법이었지만 민형은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라 휘

둥그래진 얼굴로 뒤를 돌아 보았다. 놀라서 휘둥그래진 눈을 껌뻑이는 민

형의 앞에는 놀랍게도 반장인 의연이 서 있었다. 의연이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까닥 거렸다.

  "뭐,뭐야 너냐......"

  "어라, 별로 반갑지 않다는 말투잖아. 이런곳에서 만나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은 인연이야. 게다가 같은 반 학생을 말이야."

  의연의 말에 민형은 싱겁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왠일이야 여긴?"

  "사촌이 놀러와서 바래다 주고 오는 길이야. 그보다......"

  의연이 동그란 눈을 빙글빙글 굴리며 민형을 쳐다보자 민형은 왠지 불

안한 느낌에 몸을 뒤로 뺐다.

  "방금 그 여자 누구니?" 

  뜨끔, 내 이럴줄 알았지.

  "으,응......? 누가 말이지?"

  "너랑 서 있다가 버스타고 간 여자 말이야. 누구라니 그 사람밖에  더 

있니? 너 혹시 바보아냐?"

  "아,아아...... 그 여자?"

  정곡을 찔린 민형이 쩔쩔매며 말을 돌렸다. 얼버무려야 되는데 왜 이렇

게 입안에서 말이 헛도는 거야!?

  "여자 친구야?"

  "응?"

  이, 이 녀석 예전부터 예감하건데 눈치가 칼이다 칼. 이런 여잔 정말 

무섭다.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던데."

  아하! 그렇다. 유지영 선생님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 민형은 당황

한 탓에 잊어버렸던 일을 상기하며 애써 태연하게 웃었다.

  "누나야 누나. 잠깐 내려 왔어."

  "누나? 그런데 왜 다시 올라가?"

  "그거야 집이 서울에 있으니까. 몰랐어? 나 여기서 혼자 자취하는거."

  "그랬니......?"

  자취 애기가 먹혀 들었는지, 아니면 누나라는 말이 그럴 듯 했는지 의연

은 더 이상 지영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민형이 자취한다는 것에 상당

한 관심을 보였다.

  "왜 어젠 그 얘기 않했니? 난 또 전 가족이 대전으로 이사온줄 알았

지."

  "아아, 그건 경황이 없어서......"

  음, 특별히 숨길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고 말았다. 어쨋든 지금이

라도 알았으니 된거지 뭐...... 민형은 이렇게 생각하며 바보처럼 하하 웃

었다.

  "넌 가끔 바보 같이 웃는거 같애."

  "그,그래?"

  의연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민형은 그만 얼굴이 빨개져서 이렇게 물었

다. 아, 인간 정민형 많이 죽었다. 바보 같이 웃는다니......

  "뭐, 그점이 귀엽긴 하지만 말이야."

  대답하는 의연의 눈이 생기있게 반짝 빛났다.

  "귀,귀여워?"

  "그래, 그 어리숙한 면이. 야, 우리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저기 가

서 우동이나 먹고 가자. 난 터미널 오면 그게 먹고 싶더라. 유부 우동."

  당황해 하는 민형의 손을 잡아 끌며 의연이 터미널 간이 분식으로 향했

다. 민형은 그런 친근감 있는 의연의 태도가 그리 싫지 않아 순순히 따라

갔다. 유지영 선생님이 떠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왠지 조금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으나 민형은 스스로를 위안했다.

  '선생님은 선생님. 우동은 우동이지'

  민형은 꽤 이기적인 자신의 성격을 비관하면서도 한편으로 새로운 환경

에 적응되는 것을 즐기는 모험심을 기특하게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았을걸 그랬나......'

  왠지 누나라고 속인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는 민형이었다.

........................................ . . . . . . . . . . . .

  한편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지영은 마음속 깊이 알 수 없는 우울

함이 말려와 창밖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이

렇게나 마음이 아픈것인지...... 비록 1주일이지만 1년같이 느껴졌다.

  '민형씨...... 학교 생활은 잘 적응하고 있는지......'

  이런 걱정이 든다는 것에 지영은 새삽스럽게 놀랬다. 확실히 연장자만이

해줄 수 있는 걱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영은 곧 생각을 바꾸고 웃었

다.

  '신분이 다른 것 뿐...... 1년만 지나면 민형씨도 나와 같은 사회인이야

그때까지만......'

  지금의 지영에겐 그 1년이 영영오지 않을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

  꿈같은 주말이 지나가고 활기찬 월요일의 지옥이 돌아왔다. 민형은 도시

락을 싸는 것이 귀찮아서 몇 천원을 들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아침을 먹

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지만 챙겨먹기 뭐해서 요구르트 하나를 냉큼 들이키

고 바깥으로 나왔다. 등교시간 7시 40분. 현제시간 7시20분. 집에서 학교

까지 걸리는 시간 5분. 민형은 새삼스럽게 기분이 좋아져 느긋하게 대문을 

잠그고 학교로 향했다. 교문앞은 등교하는 학생들로 분주했다. 교문을 지

키는 선도부원 4명이 일일이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들어오는 학생들을 

체크 했다. 체크 사항은 별거 없었는데 그저 국기에 대한 맹세와 배지유무 

정도였다. 참 중요한걸 알려주지 않았는데 이 학교는 사복이거든.

  "어이 거기."

  교문을 통과하려는 민형을 선도부원중 한명이 불러 세웠다. 민형은 무슨

일인가 해서 자신의 몸을 슬쩍 내려보았다. 테크 사항은 확실, 규칙을 어

긴 것은 없다. 

  "잠깐 와봐라."

  선도 부원중 머리를 짧게 깍은 키큰 녀석이 민형에게 까닥 까닥 손가락

을 움직였다. 음...... 너 지금 내 인내심 시험하는 거냐? 아니지? 민형

은 한숨을 쉬며 앞으로 다가갔다.

  "왜?"

  "왜?"

  순간 민형의 볼에 별이 튀었다. 민형은 하도 어처구니 없이 얻어 맞은

것이라 어안이 벙벙하여 볼을 감싼채 멍하니 서 있었다. 주위에 등교하던 

학생들이 흘끔흘금 쳐다보며 그냥 지나쳤다.

  "선도 부원한테 왜? 이자식 기현이 말대로 기가 센 녀석인데......"

  히죽 히죽 웃는 키큰 선도부원을 중심으로 또다른 두명이 가까이 다가 

왔다. 오라, 이녀석들 기현이란 놈과얽혀 있구나. 민형은 속에서 꿈틀꿈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참았다. 왜냐고? 알잖아!? 

  "야 잘들어, 선도부한테는 반말하는게 아니야. 알아 들었어? 같은 학년

이라고 말이야."

  다가온 두명중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한 녀석이 민형의 볼을 툭툭 두드리

며 빈정 거렸다. 민형은 잠시 눈을 내리 깔은채 굳은 표정으로 있다가 불

쑥 대답했다.

  "알았어."

  "이 자식이?!"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가 민형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PART-49

  - 달카닥

  고개 숙여진 민형의 눈 밑으로 그가 끼고 있던 안경이 떨어졌다. 동시에

주위에 등교하던 학생들의 시선이 모조리 민형쪽으로 쏠렸다. 선도부 3명

은 그런 민형을 향해 협박 비슷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선도부에게 대해야 하는 예의에 대해 잘 생각하도록 해."

  "그래, 더불어서 이 학교의 분위기도 잘 파악하도록 해."

  이렇게 말하며 그들은 웃었다. 그렇군, 이것은 일종의 텃세일 것이다.

민형은 얻어맞은 머리를 손으로 감싼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

놈들을 때려  돕힌다고 해봤자 뭐가 되겠는가, 또다시 계속되는 싸움과 싸

움속에서 이 학교 불량배들과의 접전이 될 것이다. 운좋게 이 학교를 쓸

어 잡는다 해도 또 다른 학교와의 싸움이 일어나고...... 결국은 서울에 

있을때와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가게 될 것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더이

상 싸우지 않기로 한 엄마와의 약속, 유지영 선생님과의 약속을...... 

 

  "조심할게......"

  민형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천천히 교실로 걸어 들어갔다. 뒤쪽에서 선

도부들의 여유있는 웃음 소리가 민형의 뒤를 때렸다. 민형은 주먹을 부르

르 떨며 일그러진 얼굴을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교실로 들어갔다. 굴욕

감...... 아마 지금까지 자신의 밑에 무릎꿇었던 많은 이들도 지금 자신의

심정과 똑같았을 것이라고 민형은 새삼 생각했다.

........................................ . . . . .  .  .  .  .  .  .

  교실에 들어오니 언제나와 같이 시끌벅적 했다. 아직 학생들이 다 오지

않았는지 교실의 반정도가 비어 있었다. 민형은 지금까지 이렇게 일찍 등

교한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침에 사람이 빈 교실을 보게 되니 꽤 신선

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그런 민형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며 같은 반의

학생이 한마디 건넸다.

  "너 어쩌다 선도부한테 찍혔냐."

  "넌 죽었다. 임마."

  두 세명의 급우가 민형을 건드리고 복도로 빠져나갔다. 민형은 뒤를 돌

아보며 그들을 눈으로 잠시   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어딜가도 저런 녀

석들이 하나둘씩 있다. 강자 앞에 빌 붙어서 이죽대는 비겁한 녀석들...

... 그런 민형은 이 학교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민형을 모르고 

민형역시 쓸데없는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민형은 약한 자들의 처

신을 배워야 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정민형. 일찍 왔네 모범생 인가봐?"

  자리에 앉아 있던 주리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민형은 그나마 좀 

친절한 주리를 만나자 안심이 되어 히죽 웃어 보였다. 그것을 본 주리가 

고개를 숙이고 킥킥 웃자 민형은 머쓱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에 가 앉았

다. 칠판에는 자습이 적혀 있었다. 수학문제 였으나 민형은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다.

  "......"

  특별히 할 일도 없었고, 민형은 문제를 열심히 공책에 옮겨 적기 시작

했다. 지영은 풀 수 있을려나......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이런 저런 생

각을 하며 자습을 옮겨적었다.

............................................ . . . .  .  .  .  .  .

  "자, 자습 걷는다. 안낸 사람 오늘 담임이 죽인댔어. 빨리 해 빨리"

  수업이 시작되기 5분전 의연은 분단을 돌아다니며 자습장을 걷었다. 더

불어 하루에 한 장씩 해와야 하는 자기 공부 숙제도 걷었다. 의연이 민형

의 앞으로 다가와 자습장을 걷으며 말했다.

  "어머, 한 문제도 안 풀었잖아? 뭐한거야?"

  "......"

  풀 수 없어서 못 풀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민형은 얼굴이 빨개진채

잠자코 있었다. 의연은 풋 웃으며 민형의 자습장을 걷어 얼른 답을 적어 

주었다.

  "몇개 틀리게 했어. 다 맞으면 담임이 의심하거든. 틀린게 내거랑 같을

테니까."

  "너,넌 다 풀었니?"

  민형이 대단하다는 듯이 묻자 의연이 씩 웃으며 매력적인 입술을 치켜

올렸다.

  "당연하지, 내가 낸 문젠데~"

  '......'

  유머 감각도 풍부한 녀석이군, 민형은 밝은 의연의 태도에 마음이 풀려

자신도 웃음지었다. 의연은 천성이 반장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때

였다. 갑자기 뒷문이 드르륵 열리고 기현이 모습을 나타냈다. 카라가 없는

교복 마의를 입은 기현이 건들건들 걸어와 민형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의연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기현에게 말했다.

  "김기현, 자습하고 숙제."

  "없어."

  기현이 짧게 대답하자 의연은 뚱한 표정으로 수첩을 꺼냈다.

  "그럼 이름 적는다."

  의연이 볼펜으로 기현의 이름을 적으려고 하자 갑자기 기현이 손을 휘둘

러 의연의 수첩을 후려 쳤다. 아- 소리와 함께 수첩이 땅에 떨어지고 기

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연에게 얼굴을 바짝 갔다댔다.

  "왜이래 반장...... 예쁜 얼굴 망치고 싶어?"

  "내,내가 안적어도 어차피 담임이 확인해. 기왕 혼날거면 너 혼자 혼나

면 돼잖아!"

  "그런건 안 적어봐야 알지!!"

  갑자기 기현이 의연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확 돌려

버렸다. 의연이 목이 삐끗 꺽이고 그녀가 신음하며 자리에 쓰러졌다. 그것

을 본 민형이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무,무슨 짓이야!"

  "이 자식이!"

  일어난 것 까진 좋았으나 그대로 기현의 주먹을 얼굴에 얻어맏고 민형

은 책상위로 쓰러졌다. 우당탕 책상이 무너져 내리고 의연이 비틀비틀 몸

을 일으켰다. 민형은 선방을 정통으로 맞아 정신이 어찔어찔 했으나 가까

스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기현이 민형의 머리통을 구두발로 걷어

찼다.

  "으억!"

  민형이 비명을 지르며 털썩 쓰러졌다. 쓰러져 있던 의연이 악에 받친 얼

굴로 기현에게 달려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나쁜 자식! 네가 뭔데 사람을 때려! 이 나쁜놈아! 너 같은 놈은 퇴학당

해야 돼!"

  "얌전하시더니 또 도지셨군...... 반장병!"

  기현이 의연의 따귀를 갈겼고 의연이 또다시 털썩 쓰러졌다. 주위에 급

우들은 모두 겁먹은 듯이 흘끔흘끔 쳐다 봤고 개 중에는 모른척 교과서를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의연이 쓰러진채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훌쩍 훌

쩍 울기 시작했다. 그때 민형이 아픈 머리를 움켜 잡고 기현의 앞에서 몸

을 일으켰다.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할 수 없다 이자식...... 민형의

두눈은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뭘봐 이 짜식이!!"

  그러나 또다시 퍽 소리가 나고 민형은 또다시 나가 떨어졌다. 제길....

.. 약속만 아니었으면...... 민형의 한쪽눈에 찡 하니 눈물이 맺혔다.

...................................... . . . . . .  .  .  .  .  .  .

  조례가 끝나고 쉬는 시간. 김기현은 바깥으로 나갔고 아이들은 의연의 

주위로 몰려 들었다. 모두들 억울하게 얻어맞은 의연을 위로하기 위해서

였다.

  "잊어 잊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 그녀석 원래 그러잖아."

  "그래, 그래도 대단했어. 기현이한테 덤빌 수 있는 애는 우리반에 반

장 너밖에 없어."

  아이들이 위로하고 의연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귀를 맞은

볼이 부어 올라 애처로워 보였다. 민형은 뒷 자리에서 얻어 맞은 부분을 

만지작 거리며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자신 때문에 

얻어맞은 의연을 지키지 못한게 한이 되었다. 눈앞에 의연보다 유지영 선

생님과의 약속을 더 소중히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두 대나 정통으로 맞아 정신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왠지 마음에

걸려 민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연 쪽으로 다가갔다. 민형이 가까이 다가

오자 아이들의 시선이 민형에게 쏠렸다. 의연도 민형에게 고개를 들었다.

  "저, 미 미안해."

  "......"

  의연은 잠시 민형을 올려다 보다가 허무한 듯이 고개를 돌렸다.

  "됐어 괜찮아."

  "......"

  "네 잘못이 아니니까 뭐."

  속상한 마음을 묻어둔채 의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민형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민형에게 실망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아니 이반 누구도 민형

과 같은 입장이었겠지만...... 그래도 섭섭하긴 사실이었다.

  "너, 정말 약하구나! 어떻게 그렇게 힘없이 나가 떨어질 수 있니? 남자

라면 몸으로라도 기현일 막았어야지."

  "......!?"

  순간 주리가 이렇게 책망하듯 나섰고 민형은 당황하여 어쩔줄 몰랐다.

  "두대 맞고 뻗어서 꼼짝도 못하다니 그게 남자냐? 너 정말 형편없이 약

하구나."

  "...... 미, 미안해......"

  왠지 할말이 없어서 민형은 고개를 숙였다. 제길...... 어쩌다 이렇게 

됐지. 생각 같으면 당장이라도 기현이 녀석을   아가서 죽여 버리고 싶

다. 하지만 여기까지 참았는데...... 여기까지 참았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민형은 차라리 자신이 겁장이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주리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민형은 잘못이 없어!"

  "의,의연아?"

  순간 의연이 주리를 나무라듯 치고 들어왔다.

  "어쩔 수 없잖아. 민형이 한테 뭐라고 하지마, 민형이 아니었더라도 마

찬가지였을 테니까."

  의연은 이렇게 말하며 반 아이들을 주욱 쳐다 보았다. 모두들 무안한 듯

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주리 역시 새침해져 고개를 숙

인채 아무말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있어야 돼."

  의연이 분한 듯이 중얼 거렸다.

  "선생님은 해결해 줄 수 없어. 누군가 쎈녀석이 우리 학교에 들어와 주

면...... 그래서 이 학교를 잡아주면......"

  의연은 자포자기한 듯이 이렇게 중얼 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또 그녀석한테 괴롭힘 당할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그런 의연의 이야기를 들으며 민형은 가슴이 아팠다. 마치 자신 혼자 비

겁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어 착찹한 심정이었다.

 PART-50

  집으로 돌아온 민형은 힘없이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얻어맞은 볼이 욱

신욱신 쑤셨고 기분역시 최악이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반 아이들의 

시선을 받고 또 친절한 의연이까지 피해를 보게 만든 것이다. 민형은 가슴

이 무거웠다. 이렇게까지 약속을 지켜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새삼스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이 학교의 패권을 잡으면...... 그렇게 되면......'

  이런 비굴한 생활은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뒤로 파

생되어져 오는 꼬리를 무는 싸움, 또 싸움. 결국 목뒤에 붙는 '보스'라는 

꼬리표. 서울도 모자라서 대전까지 방출, 게다가 선생님들의 좋지 않은 시

선은 모조리 자신에게 쏠릴 것이다. 이제 그런 것은 지긋지긋했다. 약속뿐

만이 아니라 지금가지 민형을 얽매고 있던 꺼름직한 감정들이 그의 전투본

능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 따르르릉

  - 따르르릉

  이불위에 엎드려 있는 민형의 옆에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 

시간에 전화가 올만한 사람이라면......? 민형은 반가워서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 여보세요? 민형씨 저예요 >>

  전화를 건 사람은 역시 지영이었다. 민형은 우울한 기분인 만큼 지영의 

목소리를 들으니 두배로 기뻤다.

  "선생님?"

  << 마침 집에 있었군요. 다행이네요 >>

  항상 그렇지만 지영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듯 했다. 무언가 

좋은일이 있는것 같아 민형은 밝게 물었다.

  "뭔가 기분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 헤헤, 좋은 일은요 무슨...... 그보다 민형씨 학교는 잘 다녀 왔어

요? >>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니 기분좋은 것이 분명했다. 민형

은 오늘 있었던 일은 알리지 않기로 하고 가볍게 대꾸했다.

  "학교가 그렇죠 뭐. 이제 곧 여름 방학이라 기말고사가 있어요. 그걸 빼

고는 별다른 고민거리가 있겠어요~"

  학교 문제를 돌리기 민형은 일부러 시험 이야기를 꺼냈다. 모름지기 어

른들은 시험 얘기가 나오면 민감하니까.

  << 시험이요? 그게 무슨 고민거리예요~ 제가 찍어줄까요? 제가요? >>

  "선생님 그런것도 할 수 있어요?"

  시험문제를 찍어 준다니? 그런건 학원 선생이나 과외 선생들이 자주 하

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실력있고 확률좋은 선생일수록 많은 학원에서 원

하고 또 보수도 짭잘하다고 들었다.

  "선생님 일어 학원에 있기 전에 다른 곳에도 있어 봤나요?"

  혹시나해서 물었는데 반응은 의외로 간단했다.

  << 물론이죠. 대학때 과외도 많이 했고 또 고3 수험생 대비반에도 1년정

도 있었어요. >>  

  오오...... 그런 경력이 있었단 말인가? 민형은 새삼스럽게 놀라며 지영

의 경력에 감탄했다. 하긴 서울대 생이니까 과외를 안뛴게 이상하지. 게다

가 영문과라면 어디가도 인정해 주는 탄탄한 과이니까.

  "아, 그것보다 무슨 일로 전화 하셨어요?"

  << 아참참, 내 정신좀 봐 얘기한다는걸 깜빡 잊었네 >>

  민형의 물음에 지영이 깜빡 잊었다는 목소리로 호들갑 떨듯 외쳤다. 잠

시후 그녀의 배시시 터지는 웃음 소리가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왔다. 민형

은 갑자기 궁금함이 밀려왔다.

  << 저 있잖아요...... 저 학원 그만 뒀어요. >>

  "예?! 학원을 그만둬요!?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학원을 그만두다니!? 갑작스러운 지영의 말에 민형이 놀라서 언성을 높

혔다. 어째서? 학원생과 사귀었다고 원장에게 문책이라도 받았나? 민형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고요...... 사실은...... >>

  지영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하지만 결코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었

다. 민형은 점점 더 궁금증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 사실은 저 대전으로 내려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자취하려고 

생각해요~! >>

  "네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대,대전으로 내려온다니!?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 바로 이 대전으

로 내려온단 말인가!? 민형은 어안이 벙벙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한참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 서울에서 학원에 다니나 대전에서 학원에 다니나 마찬가지 잖아요. 

민형씨가 그곳에 있는 반년동안 저도 그곳에 있을 생각이예요. 여기 월세

도 다 찼고 보증금 빼면 비슷한 평수는 구하기 쉬우니까요. >>

  이렇게 말하는 지영은 수화기로 전해져 오는것을 감안하고도 매우 흥분

한 억양이 뚜렸했다. 

  << 민형씨랑 떨어져 있는것보다는 그게 좋을것 같아서......>>

  "선생님......"

  그런가...... 유지영 선생님은 그렇게까지 나와 함께 있고 싶은건가..

.... 민형은 지영의 말에 감동받아 수화기를 귀에 댄체 한참동안 아무말

이 없었다. 지영인 이곳에 온다면...... 그녀가 이곳에 온다면 틀림없이

자신도 기쁠것이다.

  << 민형씨...... 내말 듣고 있어요? >>

  "아,네 물론 듣고 있어요."

  민형이 아무말 없자 궁금해진 지영이 물었고 민형은 얼른 고개를 들고 

수화기에 기운차게 대답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지영이 이곳에 

온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기쁜일이 아닌가. 민형은 갑자기 힘이 솟

았다.

  "그럼 선생님, 내려오시는 기념으로 제가 한가지 선물해도 될까요!?"

  << 선물이요 뭔데요? >>

  수화기 저쪽에서 기대에 찬 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민형은 흐믓해

져 입을 열었다.

  "우리집 봤죠? 마루 건너방은 비었거든요. 월세 18이예요. 어때요?"

  대전에 내려올 지영에게 그 이상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 굉장히 싸네요? >>

  지영도 신이 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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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민형은 부모님께 연락해 집주인과 통화했다. 원래 내놓았던 방이

었기에 주인의 조건을 만족시킨 지영의 이주의사는 쉽게 통과 되었다. 월

18만에 보증금 500. 민형은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흐믓해진 얼굴로 오후 

수업을 맞이했다. 물론 옆집에 이사올 지영에 대해선 부모님에게 일체 이

야기 하지 않았다. 집주인의 전화번호를 알기 위해 통화했을때 직장인이 

자취방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했을뿐 별다른 대화가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부모님이 의심할 상황도 생기지 않았다. 지영이 나이가 많은 것은 이럴 경

우에는 매우 좋은 쪽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목요일날 내려 오신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화요일, 즉 이틀후가 되면 지영은 옆방으로 이사온다. 이것 참 

꿈같은 현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즉. '동거'로군.  민형은  

행복한 얼굴로 입이 벌어져 하루종일 교실에 앉아 히죽히죽 웃었다.

  "쟤 어제 맞더니 정신이 이상해진거 아니니?"

  자리에 앉아 있던 주리가 하루종일 헤벌레 앉아 있는 민형을 턱으로 가

리키며 이상하다는 듯이 묻자 의연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의연 역시 민

형의 행동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

  가볍게 한숨을 쉬며 의연은 책장에서 다음시간 교과서를 펴내 펼쳐 놓

았다. 그나저나 민형이 저애...... 어제 안좋은 일이 있어서 어쩔까 걱정

했는데 의외로 낙천적인듯 하군, 의연은 그 부분에서는 안심했다.

  '생각보다 나쁜일을 잊는데 빠른 성격이군...... 잘 해나갈 수 있을거

같네......'

  의연은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자신이 한심해서 또다시 깊게 한숨을 내

쉬며 손으로 턱을 받친채 책상에 엎드렸다. 고3, 이런 시기에 전학생이 오

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처신시켜야 할지 모른것도 있었지만 

이 학교가 워낙 유명하다는 비참한 현실도 한   단단히 했다. 아, 남자가 

반장 이었으면 좋았을텐데..... 힘센 남자가...... 의연은 요즘따라 자신

이 반장이 된것이 후회 되었다. 반장은 이 학교에선 말그대로 심부름꾼일 

뿐인 것이다.

  "근데 의연이 너 말야."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의연의 앞에서 주리가 반짝 눈을 빛내며 말을 걸

어 왔고 의연은 고개를 들었다. 주리가 짖궂은 표정으로 싱글생글 웃고 있

었다.

  "너 전학생한테 맘 있지?"

  "뭐?"

  갑작스런 질문에 얼굴이 빨개진 의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PART-51

  "무,무슨 소리야? 그런 소리 하지마, 누가 듣겠다 얘."

  얼굴이 빨개진 의연이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주

리는 빨개진 의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은근히 입술을 치켜 올렸다.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니 뭔가 있어. 너 유난히 전학생한테 관심이 있

는것 같고 말이야."

  "전학생은 처음이니까 친절의 기준을 못잡았을 뿐이야."

  주리의 은근한 접근을 딱 끊으며 의연이 책상위에 책을 탁 덮었다. 주리

는 조금 기가 죽은 얼굴로 의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의연은 침착한 표

정으로 주리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그밖에 할말 있니?"

  "너 그렇게 말하니까 무섭다?"

  "후훗, 무섭긴 얘는......"

  의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 책을 펼쳤다. 주리는 그런 의연을 잠

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 쉬었다. 모처럼 한 크라스에서 썸씽

이 생기나 했더니...... 하지만 저렇게 부정하는걸 보면 수상하단 말씀이

야? 그때 머리를 굴리는 주리를 향해 의연이 불쑥 한마디 했다.

  "그리고 난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으니까."

  "뭐? 그랬어?"

  야,이건 정말 뜻밖에 사실이네. 의연이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을 줄이

야. 하긴 누구에게나 첫 사랑은 있는 법이니까...... 주리는 의외라는 듯

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턱을 만지작 거렸다. 음 의연인 미인이니까 남

자도 잘 생겼겠지...... 좀 부러운데?

  "그래, 지금 사귀니? 어디 살어?"

  "서울에 살아. 그 밖에 사항은 안 가르쳐 줘."

  "에~ 얌체 아니야~!"

  "문답무용이다."

  약오른 얼굴로 보채는 주리에게 의연이 씨익 웃으며 사악한 얼굴로 눈을

빛냈다. 

........................................... . . . . . . . . .  .  .

  중영 실업고는 대전시를 총괄하고 있는 유택천의 아지트. 그는 대전 지

역 고교 주먹의 실질적인 보스로 이 학교의 명성역시 그의 이름하에 날리

고 있는 실정이었다. 당연히 많은 학교에 표적이 되고 내 놓으라 하는 전

투고교와 동맹을 맺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것은 서울의 있던 민형의 이강 

실고와 마찬가지였다.

  "삼목 공고에서 27일날 붙자는데. 거기 1,2년 꿇은 녀석들이 대량으로 

들어 왔나봐. 서울에서 내려온 녀석들이라는 말도 있고. 어쨋든 삼목에 허

지원이가 전해주라고 하더군."

  학교 건물 뒷 공터는 유택천 패거리들의 모임 장소였다. 오늘 패거리가

모여든 이유는 총무겸의 서한영이가 패싸움의 도전장을 가지고 왔기 때문

이다. 한영의 설명을 들은 유택천은 천천히 빨고 있던 디스의 꼬랑지를 손

가락으로 탁- 쳐 떨어 뜨렸다. 꽁초를 버린 후 발로 밟으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에 패거리들이 동요했다.

  "삼목의 허지원이라고...... 몇달전에 깨부쉈는데...... 왜 또 귓가에서

아른거리지......"

  "그때의 복수를 하려는것 같은데."

  서한영이 어깨를 으쓱 하며 훗- 미소 지었다. 유택천은 관심 없다는 듯

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서한영에게 말했다.

  "그런 녀석들은 관심없어. 진드기 같은 놈들 이번에 박살내고 와. 더 이

상 내 귀에 귀찮은 녀석들이 아른거리지 않게. 내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불러."

  "그러지 대장."

  서한영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한영의 지시로 패거리가 해산하고 공터

엔 유택천과 서한영 둘만 남았다. 한영은 또다시 담배를 빨고 있는 택천의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줘야 하는거 아냐 택천? 벌써 6월이야."

  "아아......"

  택천은 한영의 말을 흘리며 담배재를 털었다. 그는 왠지 힘이 없는 듯 

했다.

  "네가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으니까 기어 오르는 녀석들도 많은 거라고.

도대체 왜그래? 작년에 서울에 가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길래."

  "......"

  유택천은 작년 2학년 시절 서울에 원정을 간적이 있었다. 동맹을 맺고 

있던 모 전투고교에 지원차 갔던 것. 그곳에서 돌아와 택천은 알 수 없는

실의에 빠져 버렸다.

  "무서울 것 없는 대전시 총 보스가 왜 이렇게 힘이 빠져 있냐고!!"

  답답한 나머지 한영이 언성을 높히자 택천은 잠시 말없이 바닥을 응시

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때 그의 얼굴 가득히 허무함이 서려 있었다.

  "글쎄, 작년까지는 아무것도 무서운게 없었어...... 그렇지만 서울에 있

는 괴물을 본 후에는......"

  "도대체 그 괴물이란 녀석이 사실이야!? 난 도무지 믿을수가 없어! 혼자

서 총보스 31명을 때려 눕히다니 스테미너는!? 사각은?!"

  서울에서 돌아온 후부터 때때로 이야기하는 유택천의 말. 그것은 한영에

게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않는 이야기 였다. 서울 전투고교 연합에서는 어

느날 서울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그 지역 총보스가 있는 이강실고

를 치기로 결정했었다. 그때가 1993년 서울 전 연합은 이강실고에 도전했

다.

  "그리고 단 한명에게 무참히 깨졌지. 난 그것을 지켜보다가 홧김에 뛰어

들었지만...... 그 녀석에게는 나도 31한명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어."

  지방에서 까지 용병을 모집한 서울 전투고교 연합은 그 당시 서울 총보

스를 맞고 있던 단 한명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그 녀석 이름은 정민형이라고 했어...... 그 녀석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 그 레벨의 차이란 것은......"

  정민형. 그는 명실공히 전국 최강이며 한국의 모든 전투고교를 통합한 

히로. 당시 전 불량배들의 영웅적인 존재였다. 유택천은 작년 그것을 직접 

느꼈던 것이다.

  "어쨋든 그 녀석은 인간이 아니니까......"

  유택천이 생각하기 싫다는 얼굴로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 . . .  .  .  .

  "점심 시간에 먹을 컵라면 하고 샌드위치 사와. 4교시 끝나고"

  기현은 책상위에 발을 올려 놓은채 같은 반 학생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그러나 명령은 들은 급우들은 그것이 마치 어기면 안되는 철칙처럼 아무런

대꾸도 반항도 없었다.

  

  << 우리 반에선 돌아가면서 기현이 도시락을 사와야 하는거야. >>

  누군가가 얘기해준 이 사실이 민형을 끓어오르게 했다. 우와 나쁜 개자

식...... 나도 학교에서 그런짓은 해 본적 없다. 민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중영고교에 똘마니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제길 졸업하면 찾아가서

모두들 지져 버릴테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4교시가 끝났고 민

형은 매점으로 내려갔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에 온지 몇일 되지도 않았는데

점심을 사먹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민형은 학생들로 가득해 북적거

리는 매점의 문을 열며 한숨을 쉬었다. 전쟁이 일어난 시장바닥도 무색하

지 않은 학교의 매점. 외국처럼 넓은 설비와 깨끗하고 다양한 매뉴는 준비

되지 못하는 걸까...... 등록금은 더 비싼데 말이야.

  "아저씨 고로케 주세요!!"

  "튀김이요 튀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민형은 등을 돌렸

다. 어차피 시간이 좀 지나면 학생들이 빠지니까 그때 와서 먹는 것이 

낫겠다 생각이 들었다. 순간 고개를 돌리는 민형의 눈앞에 의연이 보였

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마구 밀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민형이 얼른 그녀에게 다가갔다.

  "의연아?"

  "어 민형? 너도 도시락 안싸왔니? 너 항상 안싸오더라?"

  "아, 그게 좀 그래......"

  의연의 물음에 민형이 머리를 긁적 거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너도 도시락 안 싸왔어?"

  보통   항상 주리와 함께 먹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이상해진 민형이 물

었다. 그러자 주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괴롭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기현이 빵사러 왔잖아 빵. 우리반의 평화를 위해서 반장도 변함없이 순

서가 도는 법이야."

  "그,그랬어......?"

  왠지 말을 잘못 꺼낸 것 같아 민형은 꺼름직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

다. 그러나 의연은 상관없다는 얼굴로 민형의 어깨를 툭툭쳤다.

  "괜찮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보다 사람 너무 많다."

  "돈 이리줘. 내가 사줄께."

  "어? 괜찮은데......"

  왠지 의연이 딱해 보여 민형은 얼른 돈을 낚아채고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워낙 많아 쉽사리 들어갈 수 없었다. 점점 학생들

이 민형을 밀치고 조여들기 시작했다. 민형은 울컥 화가 났다.

  "제길!"

  반사적으로 조금 힘을 준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너

무 힘이 들어가 본래 민형의 파워를 되살리고 말았다. 민형을 중심으로 양

쪽에 모여들던 수많은 학생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

다.

  "우와아아앗!"

  "와악!!"

  쿵-쿵- 소리가 나고 매점 카운터 앞에는 머쓱한 표정의 민형만이 서 있

었다. 주위에 쓰러진 아이들이 기가질린 얼굴로 멀뚱히 서 있는 민형을 바

라 보았다.

  "저...... 컵라면 하고 샌드위치 주세요......"

  민형이 머쓱해져 조용히 중얼 거렸다.

 PART-52

  "야, 너 힘 되게 세다? 어떻게 그렇게 했어?"

  교실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의연이 신기한 얼굴로 민형에게 묻자 민형은 

시치미를 뚝때고 모르는 척 눈을 깜빡 거렸다.

  "뭘?"

  "뭐긴 뭐야. 아까 말이야 아까. 네가 파고드니까 아이들이 모조리 쓰러 

졌잖아. 너 무슨 운동했니?"

  의연이 두눈을 반짝 거리며 기대에 가득찬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민형은 

반사적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 이 아이는 눈치가 무섭게 빠르다. 민형은 

예전에 기억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약간의 실수라도 있었다가는

이리저리 파고드는 질문 공세에 밑천이 바닥날 것이다. 민형은 얼른 의연

에게서 시선을 때었다.

  "운동이라니......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야. 나도 어떻게

된일인지는 모르겠어."

  "아, 그래......?'

  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듯이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자 민형

은 안심이 되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의연과 같이 있으면 등줄기에 식은

땀 마를 날이 없다. 이거 속담으로 등록시켜야 돼.

  "난 또 네가 무슨 무술이라도 한줄 알았지. 어깨로 미는 데는 대단한 발

힘이 필요하다고 책에서 읽은적이 있거든. 진각이라던가......."

  그말을 들은 민형이 뜨끔하여 숨을 죽였다. 별걸 다아는 여자애야....

.. 민형은 끝까지 모른체 하며 묵묵히 복도를 걸었다. 의연도 잠시 민형의

서투른 태도를 수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 . . . .  .  .  .

  "글쎄 말이야~ 민형이 퍽~ 미니까 그 수많은 애들이 우르르르! 정말 끝

내줬어."

  "그거 정말이야 반장? 되게 재밌었겠다!"

  교실에 들어온 의연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주위에 아이들에게 매점에

서 본 현상을 큰소리로 떠들었고 아이들은 의외라는 듯이 민형과 의연을 

번갈아 보며 화제를 맞추었다. 의연이 녀석...... 끝까지 무언가를 확인해 

보려는 심산인가...... 민형은 곤란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자는척 하고 두

팔에 얼굴을 묻은채 책상위에 엎드려 있었다. 하지만...... 참 귀가 따갑

군.

  "어쨋든 덕분에 컵라면을 수월하게 샀지 뭐니. 매점에서 이렇게 빨리 물

건을 사보긴 이 고교 들어와서 처음이야."

  "이야 나도 민형이한테 부탁해야지."

  "재밌겠다! 나도 나중에 같이 가야지!"

  급우들의 이야기가 민형의 온몸을 쿡쿡 사정없이 찔렀다. 의연이 녀석

...... 녀석...... 제발 그만둬!! 민형은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어이 전학생"

  "?"

  그때 엎드려 있는 민형의 머리위에서 목소리가 들렸고 민형은 고개를 돌

려 자신을 부른 사람을 올려다 보았다. 김기현. 녀석이었다. 갑자기 민형

은 기분이 나빠졌다.

  "왜 그래?"

  민형이 묻자 기현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너 그렇게 힘세? 애들이 그러던데......"

  "......"

  아, 이거 안좋게 걸렸군. 가뜩이나 이녀석 나한테 불만이 많은듯 한데말

이야. 민형은 아찔했다. 싸울수도없 으니 뭐라고 한다.

  "애들이 한말을 그대로 믿냐? 난 몰라......"

  민형이 엉거주춤 고개를 돌리자 기현이 히죽 웃으며 민형에게 귀찮게 달

라 붙었다. 

  "너 말이야...... 예전부터 느낀건데 상당히 건방져...... 일어나."

  "!"

  불길한 느낌. 민형은 고개를 들고 기현을 바라보았다. 이 자식 또다시 

뭔가 시비를 걸 생각이다. 벌써 몇번째냐...... 민형은 부글부글 끓어 오

르는 속을 참으며 그를 똑바로 올려다 보았다.

  "어쭈, 쳐다봐? 이자식 정말.......!"

  - 철썩

  기현이 민형의 따귀를 한대 갈겼고 주위에 급우들이 조용해 졌다. 왠지 

모르게 침착한 의연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그런 기현과 민형을 응시하고 

있었다.

  "너 잠깐 따라와라."

  기현이 이렇게 한마디를 툭 내뱉고 등을 돌려 교실을 빠져 나갔다. 하

하하...... 민형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따라오라고...... 너 말잘했

다. 이자식...... 그래 사람없는 곳에서 손좀 봐주겠다 이거지. 민형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이제는...... 이제는 아무리 나라도...... 하

지만 지금은 겁먹은 척 따라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민형은 얻어 맞은 볼을 손으로 감싼체 고개를 숙이고 터벅터벅 교실을 

빠져 나갔다. 많은 아이들이 그런 민형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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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칵

  피가 튀고 고개가 젖혀진 한사람의 학생이 학교 뒷산에서 데굴데굴 굴

러 떨어졌다. 흔들흔들한 이빨과 터진 얼굴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기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고통보다 더한 공포를 맛보고 있었다.

  "일어나 이 자식아......"

  섬  한 전학생의 얼굴이 기현의 눈앞에 정면을 꽂혔다. 이, 이자식은?

  - 퍼억

  또다시 한방의 주먹이 기현의 복부에 꽂혔다. 기현은 민형에게 멱살을

붙잡히고 있었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복부를 가격당했다. 울컥, 입에

서 허연 물이 튀었다. 그러나 다음 주먹이 정통으로 기현의 얼굴을 후려

쳐 날려 버렸다. 기현이 신음하며 산길을 데굴데굴 굴렀다.

  "으...... 아아......"

  뭐,이런놈이 다 있지...... 조금전 까지만 해도 비실대던 녀석이......

기현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실감하면서도 고통에 몸이 부르르 떨

렸다. 모도의 앞에서는 맞기만 하던 전학생 녀석이 아무도 없는 뒷산에 올

라오자 마자 무섭게 변한 것이다. 모든 주먹을 식은죽 먹기로 피하고 한방

씩 펀치를 날리는데 마치 어른이 아이를 데리고 놀듯이 능숙했다. 기현이 

겁먹은 개처럼 비틀비틀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의 민형의 구둣

발이 기현의 턱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와악!"

  기현이 턱을 움켜 잡고 비명을 지르며 거꾸로 쓰러졌다. 완전히 뻗어버

린 그는 두눈만을 희번덕 거리며 자리에 추욱 늘어져 버렸다. 전학생...

... 아니 민형이 그런 기현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얼굴위에 발을 올려 놓

으며 입을 열었다.

  "아프니......?"

  

  "헉...... 헉......"

  대답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현은 숨을 헐떡 거릴뿐 아무말도 하지 못

했다. 그때 민형이 또다시 기현의 귀 부분을 발로 걷어찼다. 극심한 통

증, 기현은 눈물이 흐를 정도로 심한 아픔을 느꼈다. 신체의 어느부분이 

맞았을 때 가장 괴롭고 아픈지 전학생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잘들어. 넌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땡땡이 중 지나가는 깡패한

테 맞은거야. 내 얘기를 하는 순간 너는 마지막이야. 너도 전학생한테 엄

청 깨졌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겠지?"

  민형이 싸늘한 눈빛을 빛내며 눈을 희번덕 거리는 기현에게 이렇게 중얼

거렸다. 이미 기현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대답해 이 자식아!!"

  민형이 이렇게 외치며 기현의 복부를 발로 콱 밟아 버렸다. 기현이 욱- 

하고 신음을 내뱉으며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놈...... 정말 잔혹

한 놈이다. 이렇게까지 당한 자식을 괴롭힐 수 있는걸 보면 보통 녀석이 

아니라고 기현은 생각했다. 

  "그럼 난 간다. 잊지마...... 어느 학교 녀석들한테 당했는지는 네가 알

아서 생각해 두라고."

  "끄으으......"

  아픈 배를 움켜 잡고 꿈틀거리는 기현을 내버려 둔채 민형은 산길을 내

려가기 시작했다. 학교 쪽으로 돌아가면서 민형은 씁쓸한 기분으로 자신이

한 행동을 돌이켰다. 비록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완벽한 계획이었다고

는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깬것같아 마음이 우울했다.

  '난 역시 이런놈인가......'

  민형은 스스로를 한탄하며 학교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 . . . . . . .

  "어머 민형아 너 괜찮니!?"

  교실로 돌아온 민형을 향해 의연과 급우들이 우를 몰려 들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외쳤다.민형은 아까 한대 얻어 맞은 대수롭지 않은 상처를 손으로 

감싼채 어수룩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다음부터 조심하면 된데......"

  "어휴......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왠일이야 보통 끌려가면 무사히 돌

아오지 못하는데. 유택천이 만나지 않았니?"

  "유택천? 만나지 못했는데......"

  의연에 물음에 민형이 고개를 저었다. 아하, 그렇다면 녀석이 나를 유택

천에게 데려가려고 했던 거로군. 어딘가로 가던 길에 때려   혔기 때문에 

최종 목적지를 체크하지 못한 것이다. 민형은 무언가 자신의 계산에 오류

가 생긴 것을 느꼈다.

  "나, 나같은 녀석을 상대로 그렇게 가지 하겠어...... 그냥 기합을 준것

뿐이겠지."

  애써 모른체 하며 민형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급우들의 이상야릇한

시선이 있었지만 민형은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유택천이란 녀석

에 대해 신경이 쓰였다.

  '설마 기현이 그녀석 유택천이라는 놈한테 불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

  민형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PART-53

   다음날 수요일 기현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민형은 조바심을 내면서도 

내심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기현을 생각하며 안심했다. 너무 세개 패 버

렸나? 혹시 집에 돌아가다고 죽어 버린건 아닐까? 어쨋든 민형 자신의 정

체만 들어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민형은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켰

다. 이러고 보니 꼭 만화에 나오는 턱시도 가면 같네...... 민형은 자신이

한심했다.

  "야!"

  "?"

  갑자기 등뒤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치며 민형의 등을 때렸고 깜짝 놀

란 민형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싱글싱글 웃으며 의연이 서 있었

다.

  "뭐야...... 너였냐?"

  "그 퉁명스러운 얼굴은 뭐지? 그나저나 뭐해? 집에 안가고? 청소하는 애

들이 째려보잖아."

  "으,응!?"

  그말을 듣고 황급히 주위를 돌아보니 오느세 종례는 끝나 있었고 빗자루

와 대걸래를 든 같은반 아이들이 주욱 둘러 서 민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형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이거 언제 끝났지? 종례사항 하나도

듣지 못했는데...... 민형인 하하하 억지 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가방을 챙

겨 들었다.

.............................................. . . .  .  .  .  .  .

  "육성 회비,모의고사비. 그리고 아까 나눠준 설문지 작성해서 가져와야 

돼."

  운동장 맞은편 계단에서 의연이 종례사항때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번

복해서 민형에게 불러 주었고 민형은 그것을 열심히 메모지에 적었다. 왠

돈 나가는게 이렇게 많아. 학교가 아니고 무슨 일수금 사업제단 같네, 민

형은 투덜투덜 대면서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안 가져와서 선생님한테 찍히

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근데 설문지가 뭐지? 난 없는데?"

  "뭐야? 아까 나눠줬잖아!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둔거야 어휴!"

  "그,그랬냐......?"

  의연이 못말린다는 듯이 혀를 끌끌차자 민형은 민망한 듯이 얼굴리 빨

개졌다. 의연이 그런 민형의 머리를 손으로 툭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쩔 수 없지. 내가 교무실 가서 한 장 얻어다 줄게."

  "미,미안해서 어쩌지?"

  "괜찮아 반장의 힘이니까."

  "......"

  호호호 웃으며 교무실쪽으로 들어가는 의연의 뒷모습을 흘끔 보면서 

민형은 머리를 긁적 거렸다. 이강학교 다닐때의 반장은 이렇지 않았는데

...... 역시 반장이 여자니까 좋은게 많구나. 민형은 내심 이렇게 생각하

면 속으로 흐믓해 했다. 그때 계단에 앉아 있는 민형의 눈에 뒷 건물 쪽에

서 우르르 몰려 나오는 같은 학교 학생들이 보였다.

  "......"

  민형은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머리에 물을 들이고 귀걸이에 목걸

이 까지 휘황찬란한 녀석들이 많았다. 보아하니 학교에서 한가닥 하는 놈

들이 모인 것 같은데...... 민형은 문득 맨 뒤에 따라오는 키가 크고 덩치

가 좋은 사내 녀석에게 눈을 돌렸다. 머리의 3분의1 정도를 금발로 염색

하고 가슴이 푹 파인 런닝 같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꽤 폼이 좋은데...

... 민형은 과거를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닭살이 돋았다. 하지만 저녀석

들 저렇게 때거리로 모여서 어디가는 거지? 민형은 무언가 이상해 패거리

를 잠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야,뭘 보고 있어?"

  그때 교무실에 다녀온 의연이 멍하니 운동장 저쪽을 쳐다보고 있는 민형

에게 한 장의 설문지를 들이밀며 이렇게 물었고 민형은 화들짝 놀라 고개

를 돌렸다. 의연이 궁금한 듯이 민형이 바라보고 있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

다.

  "어머, 유택천이다. 또 어딘가 패싸움이라도 하러 가나보지? 한동안 조

용하다 싶더니......"

  "저 애가 유택천이니......?"

  저애? 저애...... 아, 직접 말하려니까 참 부끄러운 말이군. 민형은 얼

굴이 빨개져서 이렇게 물었다. 달리 뭐라고 가리킬 말이 생각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잖아!! 민형이 묻자 의연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골치아픈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쟤가 유택천이야. 쟤 때문에 우리 학교가 날리잖아. 우린 더 피

곤하지만......"

  "그래.....? 그렇구나......"

  이 대낮에 패 싸움이라니 뻔한 놈들이군...... 민형은 불과 1년전에 자

기 모습이었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 사람처럼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개

구리 올챙이적 시절 기억못한다는 말이 딱 맞다니까. 

  "어, 그런데 이게 뭐야."

  뒤늦게 설문지 내용을 훑어본 민형이 재미없다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

렸다.

  "교내외 폭력사건 조사서...... 학교 선배나 그처 불량배에게 금품을 빼

앗긴 적이 있다 없다. 불량 서클이라고 생각되는 그룹을 본적이 있다 없

다. 같은반에 불량써클에 든 아이가 있다 없다......"

  민형이 설문지 내용을 주욱 잃어 내려가며 점점 고개를 수그렸다. 질리

네 이거...... 아직도 이런거 하나? 대단히 진부한 내용이잖아 이거!

  "정말 웃기지? 반 아이들이 모두 한 녀석한테 괴롭힘 당하고 있는데 이

런 설문지를 돌려서 뭘 하겠다는 건지. 학교는 너무 뭘 몰라! 새대가리들

만 모였나봐."

  "너 말이 좀 심한거 아니냐 여자가......?"

  "여자도 화나면 막 나간다고."

  민형인 조금 쭈삣쭈삣한 목소리로 묻자 의연이 얼굴이 붉어진채 고개를

돌리며 냉큼 대답했다. 야, 그래도 그건 너무 막 나가는거 아니냐? 민형

은 속으로 킥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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