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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선생/선후배/여대생)
2017.06.19 11:04

고교 3년생의 사랑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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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아침부터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민형은 어제의 술기

운이 남아 베개를 끌어 안고 이불위에서 뒤척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방

문이 활짝 열리고 민형의 어머니가 무선 전화기를 든체 모습을 들어 내었

다. 깜짝 놀란 민형이 눈을 번쩍 떴다.

  "뭐,뭐예요 엄마!? 난 지금 팬티 차림이잖아요!"

  "전화다 네 전화인데?"

  "인줘요."

  이른 아침부터 늘어져 있는 아들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민형의 어머니가

혀를 찼다. 이쯤에서 소개 해야겠지만 강희연 39세. 민형의 어머니로서 

강직하고 모든것을 일단락으로 해결하는 확실한 성격의 소유자다. 민형은

그런 어머니에게 전화를 낚아채 귀게 가져갔다.

  "여보세요?"

  아직 잠이 덜깨 하품을 겻들인 민형의 목소리는 아마 상대방을 충분히

당혹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형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올 전

화라면 기껏해야 성우녀석 정도겠지......

  << 여보세요? 민형씨? 나 지영이예요. >>

  "!?@$?!@#%?"

  공교롭게도 수화기 속에서 들려온 것은 유지영 선생님의 목소리. 민형은

깜짝 놀라 떨어뜨린 수화기를 허겁지겁 받아들며 정색을 한채 대답했다. 

이런 젠장! 팬티 어쩌고 저쩌고 한것도 다 들렸을거 아냐!

  "서,선생님? 왠일이세요?"

  아니 어떻게 우리집 전화 번호를 알았지? 알려줘야 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공개한 바 없는데? 어쨋든 생각지 못한 지영의 전화에 민형

은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지영의 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자는데 깨우는거 아니예요? 미안해요. 기록부에 전화번호가 있어서

전화했어요. >>

  "아,아니예요. 지금 막 일어나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그렇군...... 학원 등록때 전화 번호와 주소를 기재하니까 그것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군. 의혹이 풀리자 궁금증도 사라지고 민형은 책상앞에 걸

터 앉아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선생......"

  전화를 받던 민형은 문득 고개를 들어 자신의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순간 오한이 오싹했다. 민형의 어머니인 희연이 방문앞에서 두눈을 반짝

반짝 빛내며 전화를 받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민형은 

냉큼 의자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선생님 죄송해요!"

  

  << 네? 아...... 네. >>

  지영의 대답을 듣는둥 마는둥 민형은 수화기를 책상 위에 엎어놓고 방

문으로 다가가 방문을 쾅 닫아 버렸다. 정말 못 말린다니까...... 민형은

씩씩 거리는 화를 가다듬으며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수화기를 집어 들었

다. 그리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선생님 말씀하세요."

  << 저기...... 제가 아무래도 잘못 건것이 아닌가요...... >>

  "하하하 무슨 말씀. 생쥐가 지나가서 잡았어요."

  << 아, 생쥐요...... >>

  지영이 '아 그렇구나' 라는 듯이 발랄하게 웃었다. 정말 믿은건 아니겠

지, 어쨋든 민형은 한시름 놓고 침대위로 자리를 옮겼다. 일요일 아침부터 

무슨 일로 전화를 건 것일까?

  "그건 그렇고 어쩐 일이세요......?"

  

  "아, 내 정신좀봐."

  

  수화기 안에서 들려오는 지영의 생기발랄한 목소리가 민형의 기분을 유

쾌하게 만들었다. 참 나이에 맞지 않게 활달한 성격의 유지영 선생님이

야. 민형은 그녀가 직접 전화를 걸어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반

가웠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그때 지영이 수화기에 대고 민형에게 대뜸

외쳤다.

  "우리 오늘 놀러가요."

  "아,예......  예!? 어딜요!?"

  갑작스런 지영의 말에 깜짝 놀란 민형이 화들짝 대꾸했다. 놀러가자니?

어딜 놀러 가자는건가? 적극적인 지영의 태도에 민형은 황당하기도 하고

야릇한 기분까지 들어 어리벙벙했다. 참으로 신기한 성격의 소유자란 말

이야 유지영 선생님은...... 이런 민형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영은

신이나서 말을 덧붙혔다.

  "유원지요 유원지!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요!"

  켁 유원지! 아니 꽉찬 나이의 처녀가 왠 유원지.

  "유원지요?"

  "네, 롯데월드에 가는거예요! 그래서 일찍 전화한 거라구요."

  지영이 활기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자 민형은 잠시 머리속의 생각을 정

리했다. 6일째 쭈욱 학원에서 만났고 또 오늘 만나면 일주일을 내리 만난

건가...... 그러고보니 일요일에 만난적은 한번도 없었다. 당연히 둘이서 

어딘가로 놀러가 본적도 없었다. 토요일날 몇번 함께 밥먹은거 제외하고

는...... 그럼 이거 데이트잖아!? 물론 그전에도 데이트 였지만 민형은 

둔감하기 때문에 이것이 자신의 기념될 만한 첫번째 데이트라는 생각이 들

었다. 게다가 선생님 쪽에서 먼저, 이거야 말로 럭키! 신나는구나!  

  "롯데월드라? 좋죠! 저도 그런데 가는걸 아주 좋아해요!"

 

  "신난다~, 그럼 우리 어디서 만날까요?"

  민형이 흔쾌히 대답하자 지영쪽에서도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신이나서 물

었다.

  "잠실에서 만나도록 하죠."

  "잠실이요? 너무 넓은데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롯데 백화점 옆에 곰 동상 아래서 만나면 어때요."

  "민형씨 그건 너구리예요."

  "아, 너구리요......"

  으, 그게 너구리 였다니. 어쨋든 꽤 무안해진 민형이 머리를 긁적 거리

며 대답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럼 그곳에서 11시에 만나면 어때요? 지금이 8시니까."

  지영이 약속시간을 이야기 하자 민형이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곰(으......), 아니 너구리 동상 밑에서 11시에 만나요 

선생님."

  "네~ 민형씨 이따봐요!"

  지영이 정말 즐거운 듯이 신이나서 전화를 끊었다. 민형은 그런 지영의

화사함이 자신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흐믓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 놓

았다. 롯데월드라...... 유원지에 가본것도 꽤 오래된 이야기군. 선생님 

때문에 그런곳에 가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하긴 혼자서 

그런데 가기는 쑥쓰럽잖아! 남자랑 같이 가면 이 나이에 더욱 처절해! 민

형은 싱글벙글 웃으며 방을 나갔다. 집에서 잠실까지는 1시간쯤. 아직 2

시간쯤 여유가 있었다. 민형은 일간 세면을 끝낸후에 아침을 먹으러 1층

으로 내려갔다. 

  "엄마 밥줘요!"

  기세 좋게 외치는 민형을 향해 쇼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희연이 게슴

츠레 고개를 돌렸다. 물론 함께 쇼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 정성욱씨도 함께

고개를 돌렸다. 두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민형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

다.

  "뭐,뭐예요? 왜 그렇게 웃고 있는 거예요?"

  "우후후후...... 내 아들 민형아."

  갑자기 아버지 정성욱이 은근한 표정으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는 민형과 함께 테이블 앞에 앉으면서 기특하다는 듯이 민형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녀석, 사실 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단다. 네가 결혼은 반드시 할 수 있

을거라고 믿었어. 큰소리 칠때 알아봤다니까."

  "무,무슨 소리예요 아버지? 정신이 어떻게 되신거예요?"

  아버지의 얼굴에 함박 웃음이 가득할때는 무언가 불안한 상태이다. 민형

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 입을 열었다. 그런 민형을 더없이 기특한 표정으

로 바라보며 정성욱씨가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떤애냐? 솔직히 이야기 하렴. 너희 엄마같이 사납지만 않으면

난 괜찮다. 그런 여자는 꼬실때는 즐겁지만 꼬시고 나면 질리거던......"

  "호호, 당신 무슨 소리를 그렇게......"

  정신을 잃은 아버지가 살기어린 어머니의 의해 어디론가 피를 흘리며 

끌려 나갔다. 그리고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민형의 앞에 앉았다. 이,이거 

절대 심각하다. 두분이 김치국물을 마시고 있을땐 침묵이 최고다. 민형은 

죽음의 위기를 느꼈다. 

  "그나저나 누구니? 목소리가 아주 예쁘던데."

  아차! 한순간 민형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렇군, 유지영 선생님의 전

화를 받은것이 바로 엄마였지. 왜 두분의 눈이 이렇게나 반짝이고 있는지

민형은 대충 이유를 알법도 했다. 으, 그러나 순순히 대답할 수는 없지.

결혼도 할 수 없을거라고 무시하던 때가 엊그제이니 잔뜩 초조하게 만들

어야 겠다고 민형은 생각했다.

  "나참, 난 또 뭐라고. 오해 하지 마세요. 아침에 그 여자는 학원의 강

사 선생님 이예요."

  "뭐야!?"

 민형의 한마디와 함께 부모님은 두눈이 동그래져서 서로를 쳐다 보았

다.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듯이 희연이 되물었다.

 

  "아니, 학원 선생이 왜 아침부터 전화를 한대냐!?"

  "왜냐고요? 학원비 내래요."

  마침 2차 수강신청을 해야 될 때가 다가왔기 때문에 민형은 태연히 이렇

게 입을 열었다. 순간 민형의 부모님은 왕창 실망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

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당신아들은 결혼하기는 틀렸어......"

  "왜 날 걸고 넘어져!? 난 학교 최고 미인인 당신을 꼬셨잖아!?"

  "그거야 내가 잠시 돌았으니까!!"

  부모님의 티격태격 말싸움을 뒤로 하고 민형은 토스트라도 먹을 생각으

로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못말리는 두분이라니까......

PART-25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얘! 어디 가려고!?"

  청바지에 청자켓. 멋들어진 차림으로 황급히 집밖을 빠져나가는 민형을 

향해 희연이 큰소리로 외쳤다. 녀석이 일요일 아침부터 일찍 일어난것도 

수상한 일인데 저렇게 나름대로 멋을 부려가면서 까지 외출을 한다는 것은

필시 사건의 음모가 숨어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누구 아들인데 그걸 모

를까. 

  "친구랑 약속이 있어요."

  "친구랑 약속? 어디가는데?"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대꾸하는 민형에게 희연이 수상하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치켜 떴다.

  "유원지요."

  "유원지?"

  특별히 거짓말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서 민형은 사실대로 대답했

다. 친구와 유원지에 간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일 일은 없으니까. 그러나

희연은 의심이 가는 얼굴로 더욱 꼬치꼬치 캐물었다.

  "네가 왠 유원지?"

  아무래도 유도 심문에 넘어갈것만 같아 민형은 딱 자르듯이 당찬 얼굴로

어머니의 말을 끊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할 뿐이다.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요. 그럼 다녀올께요!"

  "얘! 야! 임마!! 짜식이!?"

  희연의 외침을 무시하고 골목을 향해 뛰어나가는 민형을 향해 희연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민형은 못들은채 하고 그 재빠른 긴 다리로 골목

의 저쪽으로 멀어져 갔다. 뒤에 남은 희연은 꺼름직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

셨다. 수상한데...... 그때 의자위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아버지 정성욱

이 나무라듯 말했다.

  "왜 애를 취조하고 그래."

  "취조라니요?"

  날카로운 표정의 희연에게 찔금한 표정으로 정성욱이 대답했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물어보니까 애가 피하잖아. 그럴때는 나를 불러 사

나이대 사나이로서 진실을 밝히게."

  "......."

  자신있다는 듯이 가슴을 탕탕 두드리는 정성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희

연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빨래나 할까."

  "여보! 당신 날 무시하는거야!?"

  "......"

  정성욱의 분한 외침을 뒤로 한체 민형의 어머니 희연을 세탁실로 들어가

버렸다.

............................ . . . . . .  .  .  .  .  .   .   .   .

  

  11시 정시에 지영은 너구리 동상 밑에서 민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와 같은 깔끔하고 소박한 차림이었으나 그런 그녀의 모습을 민형은 

좋아했다. 자신을 알아보고 서둘러 걸어오는 민형에게 지영이 환하게 웃으

며 그를 맞이했다.

  "기다렸어요?"

  

  "아니요. 나도 지금 막 왔어요."

  지영은 민형을 올려다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 웃는 모습이 굉장히 귀

여웠기 때문에 민형은 가슴이 뿌듯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어떤 여자도 유

지영 선생님보다 귀엽고 예쁘지는 않을 것이다. 민형은 묘한 우월감에 힘

이 불끈 솟았다. 그래서 기운차게 앞장서며 말했다.

  "그럼 어서 들어가요!"

  민형이 앞장서자 지영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민형의 뒤를 따

랐다. 자유이용권을 한 장씩 끊은 두 사람은 실내로 덮혀 있는 유원지 않

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와~"

  들어가자 마자 지영이 감탄하듯 탄성을 자아 내었다. 여기저기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이색적인 분위기. 떠들썩한 사람들의 활기찬 기운. 지영은 이

런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민형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속에서 혀

를 내둘렀다. 뭐가 이렇게 많다냐...... 사람이 많은 것은 딱 질색. 무엇

보다 느긋하게 즐길 수 없고 또 자유이용권이 아깝잖아! 사람이 많을수록

기다리는 시간은 늘어나고 또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민형씨 뭘 타도록 할까요?"

  "아,글쎄요?"

  "빨리 골라보세요."

  솔직히 민형은 특별히 무언가를 탈 생각은 없었기에 잠시 망설였다. 유

지영 선생님과 데이트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왔을뿐 놀이기구에 관심

은 없었다. 그런데 유지영 선생님이 저렇게 좋아하니 같이 좋아해주지 않

으면 무안해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천장위를 천천히 흘러

가는 기구 모양의 탈것이 눈에 띄었다. 민형은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먼저 탈까요?"

  민형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자 지영이 공중을 올려다 보았다. 느릿느릿

지나가는 거대한 기구. 지영이 눈쌀을 찌푸렸다.

  "저렇게 느린건 재미없단 말이예요. 민형씨 우리 저거타요."

  "예? 뭔데요?"

  지영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 민형이 갑자기 덜컥 굳어버렸다. 

엄청난 비명과 환호소리가 들려오고 거대한 배한척이 타원을 그리며 부웅 

솟아 올랐다가 다시 씽-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저것이야 말로 공포의 바

이킹! 민형은 예전에 저 증오스런 바이킹을 타본 경험이 있었다.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그 현기증! 울컥울컥 치밀어오르는 매스꺼움. 아주 잘 경험한

바 있다. 싫다! 저것은 절대로 싫다! 민형이 사색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

다. 

  "서,선생님...... 처음부터 무리하면......"

  "무리라니요! 스타트를 화끊하게 끊어야지요! 마침 오전이라 사람이 적

잖아요! 12시 넘으면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단 말이예요! 자 빨리와요!"

  "자,잠깐만요! 잠깐만......!"

  민형이 기겁을 하며 지영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체면상 도저히 그럴수

가 없었다. 이것이야 말로 완전히 걸렸다. 싫다. 바이킹은 싫다! 싫단 말

이야!

................................................ . . .  .  .  .  .  

 << 안전벨트를 착용하시고 손잡이를 꽉 잡아 주십시오. 그럼 출발합니다.

    이 시스템은 3분동안 유지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

  안내인의 친절한 안내 방송과 함께 바이킹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

다. 철컹,철컹,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지면이 서서히 붕 뜨기 시작했

다. 지영은 두근두근한 표정으로 옆자리에 앉은 민형을 돌아보며 말했

다.

  "민형씨? 벌써 부터 긴장되지 않아요......?"

  지영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민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

았다. 그는 꼿꼿하게 세운 몸을 정면으로 향한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몽

사몽한 상태였다. 지영은 그런 민형을 바라보며 난처한 듯이 웃었다. 그리

바이킹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악!!!!!!"

  민형이 떠나갈듯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건 지옥이야!

날 내려줘!! 내려달란 말이야!! 난 죽고 싶지않아! 토할 것 같다! 살려

달란 말이야!!

  "으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악!!!"

  "미,민형씨 진정해요!! 금방 끝날꺼예요!!"

  "으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선생님!!"

  민형이 너무너무 겁을 집어 먹고 큰소리로 외쳤기 때문에 지영은 민형

이 앞을 보지 못하도록 그의 얼굴을 가슴속으로 꽉 껴안은체 식은땀을 흘

리며 달래기에 바빴다. 지영이 얼굴에 쓴웃음을 가득 담은체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민형에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자, 착하지...... 울지 마세요. 아, 벌써 다 끝났다. 이제 다 끝났어

요."

  그러나 바이킹은 가혹하게 몇번이나 왕복한 후 서서히 정지되기 시작했

다.  바이킹이 정지했을 때...... 민형은 탈진 상태로 지영의 무릎위에 쓰

러져 있었다.

................................. . . . .  .  .  .  .  .  .  .  .   

  민형은 풀이 죽어 있었다. 속이 매스껍고 머리가 울렁거리는 것은 둘째

치고 자존심이 왕창 상해 버렸기 때문에 풀이죽어 있는 것이다. 바이킹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 났었는지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남

자로서 보여서는 안될 추태를 보인것만은 기억났다. 휴게실에 앉아 쥬스를

마시면서도 민형은 게속 뚱한 얼굴로 말이 없었다.

  "저어, 민형씨? 그렇게 힘없는 얼굴 하지 마세요. 나도 무서워서 죽는줄

만 알았어요. 어휴, 다시는 타지 말아야지......"

  지영이 애써 밝게 웃으며 민형을 달랬으나 민형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최악이다. 바이킹을 타고 비명을 질러대는 남자따위 민형 자신도 

본적이 없었다. 이제 완전히 스타일 구긴 자신의 자존심은 영영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민형은 울고 싶었다. 

  "저, 제가 햄버거라고 사올까요?"

  지영이 그런 민형의 심정을 알았는지 쓴웃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러자 민형이 그런 지영을 말리며 자신이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제가 같다올께요."

  조금이라도 페이스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햄버거를 사오면서 잘 생

각해 봐야지. 하지만...... 어이구, 아무리 생각해도 망신일 뿐이야!! 민

형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어쨋든 햄버거 두 개

를 사들고 지영이 기다리는 자리로 돌아온 민형의 앞에 어럽쇼? 그야 말로 

뜻밖의 껀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여기 자리가 있거든요......"

  지영이 몇 사람의 남자에게 둘러싸여 난처한 듯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

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곳을 바라보고 있던 민형의 두눈에 회심

의 미소가 어렸다.

  "아,글세 우리도 좀 앉자니까 그래요? 일행이 있던 없던 이 자리 앉으라

고 있는거 아뇨?"

  3명의 불량해 보이는 사내들이 지영에게 수작을 걸고 있었다. 지영은 어

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그럼 제가......"

  "어허, 그러실 것 까지야 없지."

  자리를 피하려는 지영의 손을 붙잡으며 패거리중 한명이 능글맞게 웃었

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마른 체구의 남자가 지영에게 음흉한 눈빛을 보냈

다. 

  "일행이 돌아올때 까지 우리랑 놀자구 아가씨."

  "아,안돼요. 전 가야 겠어요."

  "어허? 말이 잘 안통하는 아가씨네?"

  곤란한 듯이 뒤돌아 서려는 지영을 막아서며 패거리들의 수작이 계속 되

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살기등등한 민형이 천천히 다가왔다. 너희

들...... 오늘의 살인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이것은 페이스를 회복하기

위한 정당방위에 불과하다.

  "선생님 무슨 일이시죠?"

  "아,민형씨?"

  그때 민형이 돌아온 것을 안 지영이 얼른 사내의 손을 뿌리치고 민형에

게 살짝 달라 붙었다. 순간 패거리들과 민형의 두눈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불똥을 튀겼다.

PART-25

  "넌 뭐야?"

  불량배들의 전형적인 질문, 녀석들은 마치 자신들이 이 지역, 아니 구

역, 아니 아니!! 이 유원지에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죽거리며 민형을

쳐다보았다. 죽일 놈들...... 지금 그런 표정으로 실컷 바라봐라, 네놈들

이 아직 살아 있을때 말이다. 민형은 자신을 향해 입술을 찡그리는 불량

배중에 한명을 쳐다보며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이 자식이 왜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거지? 뭐 불만있어?"

머리에 수건을 두른 키큰 녀석이 입술을 기묘하게 찌푸리며 민형에게 건들

건들 다가왔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민형의 도발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

지 않는 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민형의 오른쪽 볼을 가볍게 철썩철썩 때렸

다. 그 순간 민형의 두 눈에 불똥이 튀었다.

  "욱!?"

  갑자기 수건을 둘러 쓴 불량배가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배

를 움켜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입가에서 허연 거품을 문채 바닥에 무릅을 

꿇었다. 어찌나 아픈지 두눈에서 눈물이 철철 흘러 나왔다. 자신의 친구가 

갑자기 무릎을 꿇자 놀란 다른 두명이 어찌되 영문인지 몰라 민형과 두건

머리를 번갈아 보았다. 그런 두 녀석의 앞에서 짧게 휘둘렀던 주먹을 내리

며 민형이 이죽거리듯 입을 열었다.

  "뭐야 너희들, 왜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거야?"

  그 모습은 전형적인 불량배였다. 멋진 캐쥬얼을 차려입고 깔끔한 용모의 

민형이었지만 지금 그는 예전에 민형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 민형의 모

습 본 지영은 짐짓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너, 너 이 자식......!?"

  민형의 도발적인 언사에 남은 두 녀석이 그대로 주먹을 뻗으며 민형에게

달려 들었다. 이미 민형에 이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현재 분노한 상

태. 게다가 누군가라도 때려 부숴주지 않으면 기분이 풀리지 않을 분위기

였다.

  "짜식!"

  두 녀석중 하얀 백색의 나시를 입은 녀석이 민형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민형은 고개를 아래로 숙여 그것을 가볍게 피하고 그대

로 놈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버렸다.

  "쿠웩!"

 복부에 정면으로 일격을 당하 하얀 나시가  두건머리와 꼭같이 입에서 거

품을 내뿜으며 나뒹굴렀다. 극악과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순간 마지막 남

은 한명이 거의 발악하는 태도로 민형에게 달려 들었다. 그는 겁에 질려 

있었다.

  "이, 으아아아!"

  "!?"

  달려드는 놈의 주먹이 민형을 노리는 순간, 민형은 그대로 빙글 등을

돌리며 오른쪽 다리로 놈의 턱에 뒷 차기를 먹였다. 무시무시한 각력, 달

려들던 건달은 그대로 지면에서 20센티 정도 붕떴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졌

다. 쿵 소리와 함께 지영의 어깨로 들썩였다.

  '정확히 세발......'

  정확히 세발로 3명의 건을 무찔러 버렸다. 게다가 민형 보다 훨씬 나이

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인데...... 지영은 몸이 떨렸다. 그때 쓰러져서 어

쩔줄 모르는 건달들이 슬금슬금 기어 한곳으로 뭉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서 버티고 서 있는 민형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그 귀신과 같은 강

함, 녀석들은 겁에 질렸다.

  "여, 여긴 우리 구역이야. 너 반드시 복수당할 거다."

  두건 머리를 한 녀석이 아픔을 참으며 발악하듯 중얼거렸다. 그말에 지

영은 겁을 집어 먹고 민형 팔을 붙잡았다. 이런 곳은 조직 붕량배가 있다

고 들었다. 만약 잘못 건드려 수없이 많은 건달들이 몰려 오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민형이 싸움을 잘한다 해도 당하지 못할 것이다. 

  "복수?"

  순간 민형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 웃음엔 살기가 들어 있었고 지

영과 3명의 건달들은 자기도 모르게 얼어 버렸다. 잠시후 민형이 입을 열

었다.

  "내 이름은 정민형이다."

  "저,정민형!?"

  순간 3명의 건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자리에서 얼어 붙었다. 어찌

된 일일까? 복수 운운하며 악을 쓰던 놈들이 민형의 이름을 댄 것 만으로 

마치 죽은 사람처럼 얼어 붙어버렸던 것이다.

  "호,혼자서 전 중,고교를평정한......?"

  "그, 정민형이? 이런 얼굴이라고? 그,그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게다가 이 세계를 떠났다고 했는데!"

  믿을 수없다는 듯이 녀석들이 외쳤다. 그러자 민형이 더없이 무서운 얼

굴로 이렇게 한마디 했다.

  "떠났다. 그러니까 내 앞에 나타나지마."

  "죄,죄송합니다!!"

  민형의 한마디와 함께 건달들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마구 달아나

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들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민형이 진지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정도라면 오늘의 망신을 커버할 정도로 괜찮은 연

출이었지? 고맙다 피래미 들아...... 민형은 이렇게 생각하며 지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헉!?"

  그 순간 민형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주위에 엄청나게 많은 인파들이 싸

움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 들어 있었던 것이다. 지,지금까지 이 많은 사람

들 앞에서 폼 잡은거야? 아구구...... 민형인 눈앞이 아찔했다. 그순간 사

람들의 사이에서 아직 어린 꼬마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저 아저씨 알아! 아까 바이킹 탈 때 여자한테 안겨서 울었던

아저씨야!!"

  하하...... 최악. 사람들의 웃음 소리와 함께 민형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녔다. 와...... 하늘이 참 맑다.

........................................ . . .  .  .  .  .  .  .  .

  "민형씨 좀 천천히 가요."

  지영이 자신의 손을 끌어 당기며 어디론가 급하게 나아가는 민형에게 사

정하듯 말했다. 그러니 민형은 그런 지영의 말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군중들

과 한참 떨어진 구석진 곳까지 와서야 겨우 지영의 손을 놓아 주었다. 지

영이 아픈 팔목을 만지작 거리며 억지로 웃었다.

  "미,민형씨, 괜찮아요? 얼굴이 창백해 보여요."

  "아, 아니예요 선생님."

  민형이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정말 최악의 데이

트가 아닌가. 경악의 바이킹. 지옥 꼬마의 폭탄선언. 완전히 스타일을 구

기고 말았다. 민형은 지영의 얼굴을 보기 민망했다. 제길, 바이킹 누가 만

들었냐. 

  "민형씨, 아까 바이킹 때문에 창피해서 그래요?"

  헉, 갑작스런 유지영 선생님의 폭탄 질문. 민형의 온몸에 식은땀이 삐질

삐질 솟아 나왔다. 그러나 민형은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지

영에게 입을 열었다.

  "아, 그런 것은 아니구요......"

  "민형씨, 얼굴이 사색이 되었어요. 가엾어라......"

  지영이 불쌍하다는 듯이 민형의 얼굴을 한쪽 손으로 만져 주었다. 순간 

민형은 온몸에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는 기분과 함께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민형씨. 바이킹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가나 한둘씩 있거든요.

남자 여자가 문제가 아니라 토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뭐. 그러니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사람들도 그런걸 가지고 남자 답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

예요."

  지영이 이렇게 말하며 민형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천사같은 얼굴. 사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닌 유지영 선생님 본인 때문이었는데...... 지영이 저

렇게 말해주고 위로해 주니 민형은 마음이 놓였다. 역시 자신은 아직 어린

것일까, 하고 민형은 생각했다. 어쨋든 민형은 유지영 선생님의 손 감촉이

좋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민형씨랑 함께 다니면 이렇게 든든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이 민형은 너무나 좋았다. 착한 유

지영 선생님. 상냥한 유지영 선생님. 그리고 너무나 예쁜 유지영 선생님.

민형은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절대로 이 여자를 놓치지 않겠다고, 언젠가 반드시 오나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속으로만. 에? 겉으로 말하면 

부끄럽잖아!

  "그럼 민형씨 우리 밥이라도 먹으러 가요. 민형씨가 사온 햄버거 어디론

가 가 버렸지요?"

  "에? 아, 네."

  경황속에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햄버거를 생각하며 민형이 쓴웃음 지었

다. 민형은 그렇게 자신의 손을 잡아 끄는 유지영 선생님을 따라 식당가로

향했다. 어쨋든 오늘 민형은 너무나 행복했다.

.............................................. . . . .  .  .  .  .  

  "민형씨는 중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어요?"

  식당에서 철판구이 볶음밥을 먹으면서 지영이 문득 이렇게 물었다. 갑자

기 민형은 먹고 있던 볶음밥을 굴꺼덕 삼키며 얼른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의 앞에서는 궁금한 듯 두눈을 말똥말똥 깜빡이는 유지영 선생님이 있었

다. 민형의 목 뒤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민형씨......"

  지영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불량소년이였죠? 하하하하."  

  "네, 하하하하하."

  갑자기 두 사람이 어색한 표정으로 하하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1분쯤 

웃다가 민형이 뚝 웃음을 멈추었다. 그와 함께 지영도 웃음을 멈추고 조금

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민형을 살폈다. 민형을 책망하기 위해 물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궁금하고, 민형이 과거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알고 싶은 

것이 그녀의 본심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민형은 자신의 옛일을 지영에게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많은 부분에서 보았듯이 지영이 의

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바에 확실하게 

털어 놓는 것이 어떨까, 민형은 결심했다.

  "불량 소년은 아니었어요. 우리가 나쁜 짓을 한적은 없거든요."

  "우리요?"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화제가 그쪽으로 몰린다는 신호

탄이기도 했다. 지영은 침착한 표정으로 민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영

은 항상 기다려 주는 타잎이었다.

  "그때는 아직 어렸으니까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젊은 혈기라는 것은 

만용을 만들죠...... 선생님도 알고 게실거예요. 제가 대강 어떤 녀석이었

는지......"

  "모르겠어요......"

  지영은 일부러 조용히 대답했다. 가급적이면 민형을 통해 듣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를......

PART-27

  "그때의 영웅주의라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참 허황대고 오만하기 그지 

없는 장난감 병정들의 과욕이였지요. 다행히 3학년이 되어서 제 정신을 차

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민형은 내심 입가에 한심스러운 미소를 떠올리며 두 속가락에 깍지를 끼

웠다. 이런 일을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은 흘러 왔다. 

그리고 자신은 또 그만큼 어른이 되어 있었다. 대화하기 편한 유지영 선생

님의 앞에서 민형은 자신의 과거, 중,고생때의 어리석은 잘못들을 모두 털

어 놓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왠지 유지영 선생님에게 떳떳해질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싸우고 또 싸우고...... 피가 흐르는 패 싸움의 연속. 주위에 있는 친

구들은 모두 팔이 부러지거나 얼굴이 깨지고 손가락이 꺾였죠. 그렇게 될

때마다 더욱 흥분하여 앞에 보이는 다른 학교 녀석들을 완벽하게 깨 부시

는 것이 옳은 길인줄로만 생각 했었어요. 흔히 착실한 모범생들이 경계하

며......"

  이 부분에서 민형은 입술을 약하게 깨물었다.

  "깡패나....... 좋은 말로는 불량학생...... 뭐 그렇게 불렸죠."

  "......"

  왜일까, 숨기고 싶었던 모든 일들은 유지영 선생님 앞에 술술 털어 놓

는 자신을 바라보며 민형은 스스로 솔직해진 모습에 얼떨떨 했다. 유지영

선생님은 언제나와 같은 가만가만한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조금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얼굴에는 얼떨떨한 이야기에 놀란 

기미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민형은 그런 유지영 선생님이 좋았다. 그녀 

는 누구에게나 편하고, 그것이 민형에게 그녀를 더없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었던 것이다.

  "그럼 지상 최강이예요?"

  문득 지영이 말문을 열었고 민형은 퍼뜩 내리 깔았던 눈동자를 치켜 올

렸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했다면 어느 정도는 이질감이나 모멸감이 느껴

졌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을 연 유지영 선생님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네......?"

  "그럼 민형씨가 제일  거냐고요. 아까 본 애들이 민형씨 이름을 듣고 

겁먹고 도망 갔잖아요. 민형씨 혹시 전국의 불량배들을 모두 때려  돕힌거 

아니예요?"

  "!?"

  어쩌면 저렇게 밝은 표정으로 이런 상황에서 말할 수 있을까? 민형은 얼

떨떨할 지경이었다. 자신의 불량한 시절을 모두 이야기 했는데 과연 아무

렇지도 않다는 것일까? 민형은 지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

다.

  "정말 민형씨가 전국에서 가장 쎄요?"

  "그,글쎄요...... 언제부턴가 도전해 오는 녀석들이 없어졌다는 것만은

확실하죠......"

  "화아~"

  한순간 지영이 두 손을 꽉 마주 잡았다. 그리고 감탄한 듯이 입을 열었

다.

  "완전히 정민형 전설이네~"

  "......?"

  정민형 전설? 전설? 패 싸움이나 하면서 보낸 지난 시절이 전설로 승화

될 수 있는 건가? 민형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서 웃고 있는 유지영 선

생님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진정 즐거운 듯 했다.

  "난 정말 기분 좋아요. 민형씨가 비겁하게 나쁜 짓을 했을리는 없었을테

고 말이예요."

  "뭐가 기분이 좋으시다는 거죠? 전 공부는 꼴찌에다 싸움밖에 할줄 모르

는 그런 고교생이예요. 절 놀리시는 거예요?"

  민형은 울컥 부아가 치밀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전혀 거부감을 가지

지 않는 지영의 모습에 자신이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것처럼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형의 착각일 뿐이었다. 

  "생각해 봐요 민형씨."

  생글생글 웃으며 꿈에 부푼 소녀처럼 환하게 입을 여는 유지영 선생님의

모습에서 민형의 모든 잡념은 날아가 버렸다.

  "이 한국의 고교에서 최고로 센 남자가 내 연인이라는 기분 말이예요."

  "선생...... 님?"

  그 웃음에 거짓은 없었다. 그녀의 말은 모두 진심일 뿐이다. 지영은 지

금까지 한 번도 마음에 없는 말을 한적이 없다. 고백을 할 때도, 또 자신

을 가르칠때나 어떠한 대화를 할 때도 없는 마음이나 없는 일을 지어 낸

적은 없다. 그것은 민형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네?"

  "아, 저 그게 선생님...... 저"

  민형의 옆으로 바짝 달라 붙으며 수줍게 입을 여는 지영에게 민형이 얼

굴이 빨개진채 어쩔줄 모르며 시선을 두리번 거렸다. 주위는 유원지. 연인

이 어떤 상황을 연출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민형은 너무나 어색했다. 자신을 가르쳤던 유지영 선생님과 점점 더 깊은

관계에 빠져간다는 사실이......

  "그냥 지영이라고 부르면 더 친해 보여요."

  "그,그렇게는 죽어도......"

  민형이 쩔쩔매며 대답하자 지영은 재미있다는 듯이 민형의 옆에 더욱 찰

싹 달라붙으며 싱글싱글 웃었다.

  "저를 그냥 여자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남들이 볼 때 얼마나 우습겠

어요. 민형씨~ 선생님~ 호칭이 멋없잖아요."

  "그,그래도 어떻게......"

  "괜찮아요."

  지영이 테이블 저쪽으로 물러서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난 민형씨가 오빠처럼 든든해요. 그러니까 반말해도 허락하겠어요. 모

두 다요. 그러니까 오늘부터 지영이라고 불러 주세요."

  "으......"

  방실방실 웃는 유지영 선생님의 웃음은 사람을 거역할 수 없게 만드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민형은 지금 이 넘어서는 안될 선 앞에서 지영의 마

력에 걸려드느냐 이성을 찾아가느냐게 갈림길에 서 있었다. 

  "네~?"

  재차 묻는 그녀의 모습에 민형은 그만 모든 페이스를 잃고 말았다. 꽉다

문 입으로 크게 심호흡을 한후 민형이 지영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지,지영아!"

  "좋아요! 민형씨 우리 다른거 또 타러가요~ 아직 일요일은 지나가지 않

았어요~"

  기뻐하며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유지영 선생님의 손에 몸을 맡기며 민형

은 빨개진 얼굴로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기상천외하고 상식

의 관념을 깨버리는 그녀, 괴짜이기는 했지만 밝고 명랑한 나이에 구애되

지 않는 그녀가 민형은 더욱도 예뻐 보일 뿐이었다. 이거 이거, 황당한 커

플이라고 누가 욕해도 이젠 모른다!

  "좋아! 그럼 이제 말놨어! 선생, 아니 유지영! 일요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거야!!"

  신이나서 외치는 민형의 뒤를 따르며 지영은 행복한 듯이 그의 뒤를 따

랐다. 때 마침 불어준 가벼운 바람이 지영의 머리카락을 잠깐이나마 휘날

렸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뭐라고 부르죠?"

  우뚝 멈춰선 민형의 질문에 지영은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옴을 느끼며

하하 웃을 뿐이었다.

         

............................................. . . .  .  .  .  .  .  .

  홍제동 좁다란 골목을 오르던 검은 가죽 잠바의 긴 머리 사나이가 한 허

름한 대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는 물고 있던 다타 꼬리가 보이는 담배

를 쓰레기 통에 던져 넣으며 낮은 담 너머를 기웃 기웃 바라 보았다.

  "......"

  집안에서 아무런 낌세가 없자 그는 귀찮은 듯이 대문을 발로 탕탕 소리

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유지영!! 집에 없냐!? 유지영!!"

  그러나 집안은 잠잠했고 사나이는 짜증썩인 얼굴로 주위를 돌아 보았

다. 마침 주위는 아무도 없었고 그는 그대로 낡은 대문을 강하게 발길로 

걷어 차 버렸다.

  - 카카강

  큰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어 제쳐 졌다. 그리고 사나이는 유유히 지영의

집안으로 적지 않은 덩치를 옮기기 시작했다.

................................................ . . .  .  .  .  .  

  "더 이상 바래다 주지 않아도 되요. 집까지 올라갔다 내려 오려면 상당

히 귀찮단 말이예요. 이곳까지 와 준것만으로도 고마우니 그만 가세요."

  "저,정말 바래다 주지 않아도 괜찮겠어요? 아니 괜찮겠어......"

  홍제동 버스 정류장 앞에서 민형이 어색한 반말을 석으며 지영의 앞에서

우물쭈물 거렸다. 지영은 민형의 서투른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쿡쿡 웃으

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 됐어요. 내일 학원에서 만나요 우리. 그럼 저 들어갈께요."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꾸벅 인사하는 민형에게 지영이 가볍게 눈총을 주자 그가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럼 내일 보자 지영아, 흠."

  "네, 그럼 내일~"

  어색한 듯이 헛기침을 하는 민형에게 손을 흔들며 지영은 골목으로 사라

졌다. 민형은 오랫동안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후훗......'

  집으로 돌아가는 지영의 발걸음을 가벼웠다. 오늘 하루종일 걸어 피곤하

기도 하겠지만 그녀는 기뻤다. 민형과 하루 하루 가까워 질때마다 지루했

던 삶의 어떠한 희망 같은 것이 밀려 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민형과 만

난 것, 또 그와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신께 감사 드렸다.

  "응......?"

  집앞에 도착한 지영은 무언가 평상시와 다른 낌세를 채고 자리에 멈추어 

섰다.

  "......"

  대문이 열려있고 창문에 불이 들어 와 있었다. 게다가 대문은 반쯤 날아

가 한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인기척에 지영의 얼굴

이 어두워 졌다.

  - 끼익

  그녀는 조심스럽게 부숴진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 갔다. 가능한 소리

가 나지 않게 하려는 그녀의 발걸음을 조심스러웠다.

  "지영이냐!?"

  "!"

  갑작스런 외침과 함께 지영은 숨이 멈추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고 한자

리에 멈칫 한채 어쩔줄 몰랐다. 순간 방문이 왈칵 열리고 안에서 셔츠와 

츄리닝 차림의 긴 머리 남자가 무서운 표정으로 모습을 들어 내었다. 그는 

무릎을 오무리며 시선을 놓지 못하는 지영을 찬찬히 바라보며 무서운 표정

으로 입을 열었다.

  "너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오,오빠 오셨어요......"

  "어디 갔다 오는거냐고 묻잖아 이 X년아!!"

  한순간 철썩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지영의 머리카락이 공중에 휘날리며 그

녀가 자리에 주저 앉았다. 엄청난 힘에 얻어 맞은 지영이 벌벌 떨리는 몸

으로 쓰러진채 입을 열었다.

  "죄,죄송해요 오빠...... 학원에 수업이 있어서......"

  "너네 학원은 일요일도 수업이 있어!?"

  "보충수업이 있었어요......"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잘 열리지 않는 말문을 여는 지영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자신의 부당한 처신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를 뻥뻥치는 이 

남자의 행동으로 보아 그의 권위가 지영에게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내가 몇 달씩 자주 집을 비운다고 그따위로 처신하고 다니면 가만안

둬! 말했지? 넌 누구한테나 싱글거리고 다니니까 놈팽이들이 따라 붙는단

말이야! 일요일에는 집에 붙어 있어! 알았어!?"

  "죄,죄송해요......"

  지영이 거의 반쯤 얼이 나간 표정으로 용서를 빌었다. 그제서야 긴머리

의 사나이는 조금 화를 누그러 뜨리며 방안으로 발을 집어 넣었다.

  "빨리 밥해! 저녘도 못 먹었어! 도대체 이집엔 라면도 하나 없냐!"

  버럭버럭 소리치는 사나이의 으름짱이 게속 되는 와중에서 지영은 비틀

거리며 일어나 옷도 갈아 입지 못하고 주방으로 들어 갔다. 그런 지영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사나이가 짜증섞인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X발......"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민형은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맡긴 체였다.

PART-28

  "오빠 저녁 드세요."

  지영은 작은 밥상에 이것저것 급하게 차린 음식들을 방안으로 들여오며 

방 중앙에서 팔자 좋게 들어 누워 있는 긴 머리 남자에게 속삭이듯 말했

다. 그의 이름은 '유지훈' 지영보다 2살 많은 그녀의 오빠였다. 잔뜩 기가

서린 얼굴로 들어 누워 있던 지훈은 밥상이 들어오자 곧 꾸물거리며 일어

나 상앞에 양반 다리를 꼬고 앉았다.

  "온통 채소 뿐이군. 넌 내가 없으면 항상 이렇게 먹고 사냐?"

  "하,항상 그런것은 아니예요......"

  "나 참, 자, 가서 담배 좀 사와."

  지훈이 수저를 집어 들면서 주머니에서 꺼낸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지영

에게 건네 주었다. 지영은 그것은 두손으로 받고 드르륵 방문을 열었다.

  "아 참 지영아."

  "네?"

  지영이 겁먹은 표정으로 얼른 뒤를 돌아보자 지훈이 막 수저로 밥을 뜨

며 왼쪽 손가락을 끄덕 거렸다. 

  "맥주 두병이랑 안주도 좀 사와라"

  "네."

  한숨 돌린 지영이 방문을 닫고 마당으로 나가자 지훈은 이내 눈앞에 차

려진 밥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한편 바깥으로 나온 지영은 두팔로 어

깨를 움추리고 아래쪽 상점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오빠 지

훈은 복싱을 하기위해 체육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좀처럼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한달에 한 번, 두달에 한 번, 이렇게 점점 주기가 길어지기를 몇

년 지영 쪽에서는 연락도 할 수 없고 어쩌다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와서 그

녀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 한다. 주로 돈이나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숨

어 있기 위해 찾아오는 것 같지만 지영은 지훈이 돌아오면 언제나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또 필요한 돈을 대 주었다. 그는 지영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핏줄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복싱도 때려 치웠는지 금기된 술과 음식을

원하는 대로 마구 먹는 것 같았다. 지영은 맥주를 사러 가면서도 지훈이 

걱정 되었다.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다 돌아 온것인지...... 또 이제는 집

에서 머무를 것인지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온 오

빠의 몰골을 볼때마다 지영은 마음이 아팠다. 어디서 그렇게 부서져 오는 

것인지 항상 온몸이 상처투성이에다 얼굴도 초췌해져서 돌아온다. 오늘도 

그렇다. 지영은 부디 지훈이 마음을 바로 잡고 집에서 안정된 생활을 해주

기를 마음속으로 바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영은 골목밑에 위치한 

단솔 구멍가게에 도착했다.

  "어서오세요. 어머, 지영이 처녀 어서와."

  구멍 가게에서 TV 를 보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가 지영을 알아보고 반가운

목소리로 맞이했다. 지영도 빙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주머니, 맥주 두병하고 땅콩, 오징어 좀 주세요. 오마샤리프 한갑하

고요"

  "응? 맥주하고 담배? 지영이 처녀가 찾는 메뉴중에는 이런 것이 없을텐

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지영을 빤히 바라보던 주인 아주머니는 곧

그녀의 입가에 터진 입술과 살짝 부어 오른 오른쪽 볼을 발견했다. 

  "아니? 다쳤잖아? 어떻게 된거야?"

  "너,넘어졌어요......"

  "아니 어떻게 넘어졌길레 예쁜 처녀 얼굴이 이 모양이야? 무슨 다른 일

이 있는거지? 그지 지영이 처녀?"

  "아,아니예요."

  지영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자 주인 아주머니는 어련하겠냐는 듯

이 이미 모든 것을 알아차린 얼굴로 혀를 찼다.

  "쯧쯧......또 지훈이 그 개망나니 녀석이 왔구만 그려. 내 이 녀석을 

당장!"

  "아,아주머니 참으세요! 오빠가 그런게 아니예요!"

  "그 녀석이 올때마다 지영이 얼굴이 상처가 나니까 하는 소리 아니야!"

  "저,정말 넘어진 거라니까요......"

  "지영인 오빠가 오는날은 꼭 한 번씩 넘어지는군 그랴?"

  "......"

 

  핵심을 찌르는 아주머니의 말에 지영은 아무말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

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주인 아주머니는 맥주와 담배를 비닐 봉투에

담으며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가끔 나타나서 착하디 착한 동생을 이렇게 패니 그 녀석이 제명에 살길

바래? 여자한테 손지껌 하는 놈이 이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녀석이라니

까!"

  "저,정말 넘어졌어요. 아주머니 그럼 안녕히 계세요."

  지영은 서둘로 돈을 내고 물건을 받은 뒤 달음질쳐 골목을 올라갔다. 그

런 지영의 뒷 모습을 지켜보며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또 다시 혀를 찼다.

  "쯧쯧쯧...... 저렇게 착한애를 울리면 벌받지. 암 벌받고 말고."

............................................. . . . . .  .  .  .  .   

   

   지훈은 밥을 다 먹고 난후 상을 밀어 놓고 자리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

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니 비록 좁긴 하지만 편안하기는 어느 곳보다 편

안 했다. 동생 지영이 항상 집을 지키고 생활하고 있으니 그는 어디를 돌

아다녀도 항상 마음만은 편했다. 단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면 여동생

지영이에 대한 것이었다. 여자 혼자서 이런곳에 살게 하는 것이 항상 마음

에 걸렸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지영에게 다른 남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결

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성미는 조금은 병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

도로 과격했다.

  "오빠, 담배 사왔어요. 술상 볼께요."

  "아, 그래."

  방문이 드르륵 열리며 지영이 담배를 들고 고개를 내밀자 지훈이 그 담

배를 건네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이 방문을 열어둔체 방 바깥에 싱

크대 앞에서 쏘세지를 후라이팬에 볶기 시작했다. 지훈은 오마샤리프를 입

에 물고 연기를 뿜으며 그런 지영의 뒷 모습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많이 컸어......'

  이제 지영도 어엿한 성인, 벌써 24살인 것이다. 지훈 자신이 집을 나간

지 벌써 몇 년이 됐지만 그녀는 사고 한 번 치지 않고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지훈은 은근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지영의 등뒤로 다가갔다.

  - 지글지글

  맛있어 보이는 소리는 내며 후라이팬 위에 쏘세지가 볶이고 있었다. 지

영이 안주를 만드는데 열중하는 동안 지훈은 슬며시 지영의 등뒤로 바짝 

다가가 겨드랑이 밑으로 그녀의 가슴을 껴안았다.

  "오빠?"

  깜짝 놀란 지영이 화들짝 두팔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

나 지훈이 너무 바짝 달라 붙어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잘 돌릴 수 없었

다. 지영은 어깨를 움츠리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저기......"

  "가만 있어."

  지훈이 이렇게 말하며 지영의 가슴을 천천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지영은

눈을 꽉 감았다. 지훈의 입술이 지영의 귀밑으로 내려와 그녀의 목을 자극

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지훈의 호흡이 느껴지고 지영은 온몸이 경직 되었

다.

  - 달깍

  지영이 들고 있던 주걱을 떨어 뜨렸다. 순간 지훈이 눈을 번쩍 뜨고 지

영의 등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지영은 크게 숨을 내쉬며 겁먹은 표정으로 

떨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의 떨림이 지훈에게 그대로 전해져 왔다.

  "음......"

  지훈은 멋적은 표정으로 지영에게서 떨어져 방문가에 털썩 걸터 앉았

다. 지영은 그런 지훈의 앞에서 두손을 가슴 앞으로 모은채 하아 하아 가

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거 주워라."

  지훈이 땅에 떨어진 국자를 가리키며 입을 열자 지영이 엉거주춤 무릎을

꿇고 않아 국자를 집어 들었다. 지훈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못했지만 상

당히 두려운 모양으로 경계하고 있는 듯 했다.

  "......"

  지훈은 그런 지영의 옆 모습을 가만 지켜 보았다.

  -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

  순간 지영의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과 함께 방안에서 구식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마치 천둥같이 지영의 심장을 자극

시켰다.

  "제,제가 받을께요!"

  "기다려."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지영을 가로막으며 지훈이 무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움직이지마."

  "오,오빠......"

 

  지영의 애원하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지훈은 지영을 꼼짝 못하게 한 후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한편 민형은 한창동안 전화를 받지 않아 망설이던

차에 상대방이 수화기를 들자 당연히 지영인줄로 생각하고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 아, 선생님? 접니다 민형. 잘 들어 가셨군요? 저도 지금 막 도착 했

어요. >>

  "......"

  우두커니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서 있는 지영의 귓가에 수화기에서 울려

퍼지는 민형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지훈의 내

리깔린 시선에 지영은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지훈이 지영 쪽으로 수화기

를 내 밀었다.  

  "......"

  그 침묵, 지영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 선생님? 선생님, 왜 그러세요? >>

  수화기 안에서 오래도록 응답이 없는 것에 궁금해 하는 민형의 목소리가

계속 되었다. 지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지훈이 넘겨주는 수화기를 두손으로

붙잡았다. 그것을 귓가에 가져다 대며 지영이 대답했다.

  "아...... 민형씨?"

  그말을 하면서도 지영은 속으로 뜨끔 놀랐다. '씨'자 따위를 붙히는 것

이 아니었는데...... 지훈의 싸늘한 시선에 지영은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

았다.

  << 예, 선생님 잘 들어가셔서 다행이예요. 저도 막 들어왔어요. 안부 전

화 해 본거예요. >>

  "고,고마워요 민형씨. 전 잘 들어 갔어요."

  << 선생님 왜 그러세요? 기분이 않좋으신것 같아요? >>

  "아,아니예요~ 오늘 요란한 걸 많이 탔더니 조금 피곤할 뿐이예요."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지영은 두눈을 질끈 감았다. 당장이라도 뒤통수를

얻어 맞을 것같 같았다. 하지만 지훈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그 침묵이

지영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 그럼 선생님 오늘은 그만 쉬세요. 내일 학원에서 봐요. >>

  "예, 민형...... 군. 그럼 내일 봐요."

  - 딸깍

  지영은 급한 마음에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민형군......?"

  민형쪽에서는 지영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커다랗게 신경쓰

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조금 피곤 하겠거니...... 라고만 생각 했을뿐.

  "누구냐?"

  문득 가라 앉은 목소리로 지훈이 물었다. 지영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다가 두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학원생이예요. 우리 학원......"

  "그런데 왜 울어...... 무언가 잘못한거라도 있어?"

  "오,오빠......"

  지영은 태연한 지훈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지영은 너무나 무

서운 나머지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참으려고 했지만 겁에 질린 나

머지 눈물이 자꾸 흘렀다. 그런 지영을 잠자코 지켜 보고 있던 지훈이 고

개를 번쩍 들었다.

  "이런 쌍!! 말을 해 말을!! 이 기집애야------!!"

  "꺄악! 자,잘못했어요 오빠!"

  손을 번쩍 드는 지훈의 앞에서 지영이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으며 자

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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