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나는 숫자로 세상을 보는 회계사다

사람들은 내 명함에 찍힌 국내 10대 회계법인의 로고를 보고 신뢰를 보내지만, 그들은 내 진짜 이름을 모른다

어둠이 내린 후 온라인의 세계에서의 나는 대한민국 최대의 성매매 사이트 섹밤에 유명닉 '지방소득세'이다

입사 동기들은 모두가 선망하는 FAS(Financial Advisory Services)팀으로 가기 위해 애썼다

인테리어가 회사의 유형자산중 가장높은 가치를 지닌 사무실에서 M&A실사, 자문, 기업가치평가 같은 화려한 일들을 하고싶어했다

나 역시 그곳에 갈 실력은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회계감사팀을 선택했다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보다, 단단해 보이는 성의 어느 벽돌이 썩었는지 찾아내는 일에 더 큰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감사 시즌이 오면 나는 포식자가 된다

나의 사냥감은 위태로운 기업들, 정확히는 그들의 아내와 딸

장부 속 숫자를 자세히 확인하면 회생이 불가능해질 회사들이다

나는 그들의 심장부인 회의실에 앉아 재무제표를 넘긴다

종이가 스치는 소리보다 대표이사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내 펜 끝에서, 내 말 한마디에서 한 기업의 운명이 갈린다

멀쩡하던 주식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는 마법

그 마법을 부리는 것이 바로 나다

그들은 안다

내가 찾아낸 분식회계의 흔적, 위태로운 현금흐름을 빌미로 부적정의견을 내거나, 제대로 된 자료를 내놓지 않아 의견거절을 내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내 앞에 고개를 숙인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절박한 눈빛을 마주할 때 나는 가장 큰 쾌감을 느낀다

나는 돈을 원하지 않는다

돈은 내게 이미 충분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아끼는 딸과 아내와의 하룻밤이다

나는 '적정의견'을 빌미로 그 가족에게 대표가 보는 앞에서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한다

굴욕으로 일그러지는 대표의 얼굴을 보는 것, 그것이 내가 회계감사를 하는 진짜 이유다

오늘도 한 기업의 운명을 쥐고 그의 사무실을 나와 접대를 받는다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그의 아내와 함께 호텔로 향한다

대표가 그의 아내를 준비시키는 동안 휴대폰을 켰다

익숙한 사이트 섹밤에 접속하자 수많은 메시지가 나를 반긴다

나는 사이트에 가끔 한숨자고 왔다는 소리를 한다

한숨자고 왔다는 소리는 '대표의 딸이나 아내를 맛있게 먹고, 이제 할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겉은 기업의 명운을 쥐는 회계사, 내면은 적정의견을 내세워 그들의 가족을 유린하는 '지방소득세'

세상은 결국 숫자로 기록되고 약점으로 지배당한다

그리고 나는 그 두 세계 모두를 지배하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