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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각색
2015.10.19 23:11
귀농일기 28부
조회 수 13287 추천 수 2 댓글 4
귀농 일기 - 28부.
10시쯤에 펜션에 도착했다. 잠을 설쳐 피곤하지만 할 일이 많아 대충 샤워를 마치고 창립총회를 어떻게 할 것인지 구상했다. 2시경에 이벤트 회사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펜션 위치를 알려주고 기다리니 30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조금 전에 전화 드린 청남기획 김00입니다. 지금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어디로 가면 됩니까?”
“거기 언덕으로 올라오는 오솔길 보이죠. 그 길로 올라오세요. 제가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30대 초반의 남자가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이장님 되시죠. 청남기획 김00대리입니다.”
“찾아오시는데 힘들지나 알았는지 모르겠네요.”
“홈페이지에 있는 안내지도가 워낙 상세해서 쉽게 찾아왔습니다.”
“다행이네요. 드시죠.”
김대리를 거실로 안내했고, 자리에 착석하자 연변댁이 차를 가져왔다.
“연변댁 고마워요. 자~ 드시죠.”
“감사합니다. 차비서님을 통해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창립총회를 하신다구요.”
“예! 그냥 조촐하게 끝내려고 했는데, 도지사님까지 오신다니까 신경이 좀 쓰이네요.”
“참석자는 어느 정도나 예상하고 계십니까?”
“100명 정도 될 것 같아요.”
“100명이라.........혹시 행사진행에 대해서 계획하고 계신 거라도 있습니까?”
“인사말, 내빈소개, 경과보고, 축사, 다과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장소는 혹시 정해두셨습니까?”
“우리가 쓰기로 한 창고 앞에 넓은 공터가 있습니다. 거기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차비서님도 같은 말씀을 하셔서 저도 오기 전에 둘려보고 왔습니다.”
“잘 하셨네요.”
“혹시 축하공연 같은 것도 하시나요. 차비서님은 좀 했으면 하던데?”
“무슨 공연이요?”
“대부분 참석자가 어르신들이니 트로트 가수 한명 부르면 되지 않을까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섭외가 가능합니까?”
“유명한 분은 불가능하지만 우리 도에서 제법 알려진 분들은 가능합니다.”
“듣다보니 차비서님과 대부분 이야기를 끝난 것 같은데, 차비서님 의견대로 준비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신 음식과 선물은 우리 마을에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도 이장님께서 대표이사신데..........!!”
“바쁘신데 괜한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행사개요하고 계획서만 미리 주시고, 우리가 준비해야 될 사항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김대리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가방에서 계획서를 꺼냈다. 예상대로 차연선과 어제 만나서 모든 이야기를 끝나고 계획서까지 만들어 두었던 모양이다. 서류를 검토해 보니 무대설치에서 다과준비까지 전체적인 행사계획에서 도지사 및 군수의 단상위치, 움직이는 동선까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행사를 많이 해보셨나 보군요.”
“차비서님께서 많이 도와주시는 편입니다.”
“이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틀 후에 무대와 다과준비를 위한 자제들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기획사 김대리를 보내고 연선에게 전화해 결과를 알려주었다. 연선은 사전점검을 위해 목요일 오후에 방문하기로 했다. 급한 일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3시가 조금 넘었다. 행사가 삼일정도 남았으니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다. 우나댁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할머니는 깨어나셨을까? 궁금증이 몰려와 연변댁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우나댁에게 전화가 왔다.
“예! 접니다. 말씀하세요.”
“어머니 깨어났어.”
“잘 됐네. 상태는 어때요?”
“몰라. 그런데 어머니 가신데.”
“가시다니요? 퇴원하시겠다는 거예요?”
“응~ 의사는 안 돼 하는데, 자꾸 가신데.”
“제가 지금 거기로 가니까, 제가 갈 때까지 할머니 잘 모시고 계세요.”
차를 끌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부터 만나보았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환자분께서 자꾸 퇴원을 하시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환자분 상태는 어때요?”
“연세도 많으시고 너무 쇠약해진 상태라 종합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만일 그냥 퇴원하시면 큰일 날수도 있어요.”
“며칠이나 치료해야 하죠?”
“며칠이라고 단정하긴 힘들어요. 환자분 상태를 지켜보면서 체크할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를 받으면 좋아지긴 하는 겁니까?”
“방치하는 것보다는 낮겠죠.”
“일단 알았습니다. 제가 환자분을 만나 뵙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사와 면담이 끝나고 병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머니는 이미 입원 당시 입고 계시던 옷으로 갈아입고 계셨다. 초초한 얼굴로 할머니를 지켜보던 우나댁이 달려온다.
“이장! 왔어? 어머니 말려줘~”
“알았어요. 제가 이야기 해볼게요.”
우나댁과 함께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는 침침한 눈으로 얼굴을 확인하시더니 반갑게 인사한다.
“아이고! 우리 이장님 왔소.”
“예! 할머니! 몸은 좀 괜찮으세요.”
“멀쩡하지. 그런데 의사선상님들이 자꾸 못 가게 하네. 이장님이 집에 좀 보내주소.”
“병원이 답답하세요.”
“답답하지. 그리고 잠깐 정신 좀 잃은 것 같고 괜히 부산을 떨어서 우리 이장님만 고생시킨 것 같소.”
“답답하셔도 며칠만 참으세요. 이번에 치료받으시고 가셔야지, 그냥 가시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치료를 해야 얼마나 좋아지겠소. 그리고 삶만큼 산 늙은이라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나댁 생각해서라도 할머니께서 건강하셔야죠.”
할머니가 측은한 눈으로 우나댁을 바라본다.
“저 아기만 보면 가슴이 메어져. 우리가 새아기 한터 못할 짓 많이 했소. 그래서 더 가야 스겠소.”
“혹시 입원비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돈도 돈이지만 새아기 더 고생시키고 싶지 않소. 또 나는 이런 답답한 곳이 싫소.”
“할머니!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조금만 더 있다가세요. 제가 부탁할게요.”
“싫소. 정~ 안보내주면 도망이라도 갈 테니 알아서 하라고 하소.”
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싫다는 분을 강제로 입원시키는 것도 못할 짓이다. 우나댁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장도 안 되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할 수 없죠. 집에 모시고 가서 잘 간호해 주세요.”
우나댁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녀도 방법이 없긴 마찬가지다. 병원에 사정 이야기를 하고 퇴원수속을 밟았다. 의사로부터 주의사항을 전해 듣고, 병원비를 계산한 다음 할머니와 우나댁을 차에 태워 마을로 돌아왔다. 우나댁 집에 도착하여 할머니를 방에 모셔다드리고 보니 어느덧 7시가 넘었다.
“할머니 병간호 잘 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고마워~ 조심해서 가.”
지금 심정 같아서는 우나댁 겉에 있어주고 싶지만 어제도 연변댁이 고생했기에 또 부탁하긴 미안하다. 펜션에 도착하여 연변댁을 보내고 찹찹한 마음에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려 확인해 보니 처제다.
“여보세요. 처제야?”
“예! 저에요. 형부!”
“별일 없지?”
서로가 마음이 무거우니 구체적으로 묻기도 곤란하다.
“예! 없어요. 저기 다른 건 아니고, 저번에 흥신소를 이용하셨다고 하셨잖아요.”
“응~ 그랬지.”
“혹시 거기 연락처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뭐하게?”
“저도 좀 알아볼게 있어요.”
“뭘 알아보겠다는 거야. 혹시 그놈 일이야?”
“형부는 모르셔도 돼요.”
“무슨 일인데 그래.”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처제! 혹시 위험한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거라면 먼저 나한테 이야기해 봐~”
“형부가 알려주시지 않겠다면 제가 직접 알아볼게요.”
대한민국에 흥신소가 하나둘이 아니다. 알아보려고 마음먹으면 인터넷만 검색해도 줄줄이 뜰 것이다. 일단 처제에게 다짐을 받아야 한다.
“한 가지만 약속해. 절대 위험한 짓은 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았어요. 형부가 걱정하시는 그런 짓은 안 해요.”
“그래. 알았어.”
처제에게 흥신소 연락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흥신소에 전화를 했다.
“흥신소입니다.”
“저번에 남경미 조사를 의뢰했던 사람입니다.”
“남경미? 아~~ 예~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제가 남경서라는 분에게 흥신소를 소개시켜 드렸어요.”
“그래요. 소개까지 해 주시고.......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남경서라는 분에게 혹시라도 의뢰가 들어오면 그게 무슨 내용인지 알려주신 수 있겠습니까?”
“이거 참~~ 그건 좀 곤란합니다. 고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우리는 고객의 비밀을 철저히 보호해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것은 아니고, 어떤 일을 의뢰한 건지 대략적인 것만 알면 됩니다. 예를 들자면 의뢰인이 위험한 일이다. 아니면 위험은 없을 것 같다. 그 정도만이라도 알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단골이시고 또 소개까지 해 주셨는데, 그 정도 알려드리는 거라면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나중에 섭섭지 않게 보답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전화를 끊고도 마음이 찝찝하다. 처제는 대체 무엇을 의뢰하려고 흥신소를 찾은 것일까? 처제도 어린아이가 아니니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믿는다. 청년회장과 부녀회장에게 전해 줄 정관과 창립총회 행사계획서를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연변댁이 준비해준 아침을 먹고 하우스로 향했다. 우나댁이 할머니 병간호 때문에 하우스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우스에 도착하니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우나댁이 평소 차림으로 일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떻게 하고 나오셨어요?”
“가라고 해서.”
“할머니는 괜찮으세요.”
“응~ 평소랑 같아?”
“식사는요? 약은 드셨어요?”
“응~ 잘 먹고, 약도 드셨어.”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많이 외로우신 것 같아요. 더구나 태봉형님도 연락두절이라 더욱 그러신 것 같으니 우나댁이 각별히 신경 좀 쓰세요.”
“알아. 근데 난 도움이 안 돼!”
“그건 또 무슨 말씀이죠. 우나댁이 도움이 안 된다니?”
“나보면 자꾸 한숨만 쉬어. 그리고 가래.”
“가라니, 어딜 가라는 말씀 이죠?”
“답답하니까 나가래. 그래서 여기 왔어.”
할머니께서 우나댁을 보면 미안하신 모양이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우나댁과 결혼한 태봉이는 1년도 지나지 않아 다른 여자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그나마 있는 재산까지 모두 까먹고 집안에는 생활비 한 푼 가져다 준적이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 결혼 이후 우나댁이 돈을 벌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신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태봉이까지 집을 나가 연락두절이니 우나댁 볼 낮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우나댁에게 많이 미안하신 모양입니다. 그럴수록 더 잘 보살펴주세요.”
“응~ 알았어! 그만 일하자.”
우나댁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일이 버섯들의 발육상태를 확인한다. 하루하루 버섯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우나댁을 뒤로하고, 펜션에 들려 미리 준비한 법인 정관과 창립총회 행사계획서를 챙겨 부녀회장을 먼저 찾았다.
“이게 정관입니다. 법인의 설립목적, 운영, 예산, 인사, 회계, 이익배분 등 민감한 사항들도 많으니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다음 회의에서 의견을 주세요.”
“다음 회의는 언제 해요?”
“창립총회행사 끝나면 한 10분 정도 할 겁니다.”
“행사를 끝나면 정신이 없을 건데, 꼭 그때 해야 하나요?”
“법인설립을 하려면 총회회의록이 반드시 첨부되어야 합니다.”
“하여튼 알았어요. 근데 이건 또 뭐예요?”
“창립총회 행사계획입니다. 대부분은 이벤트회사에서 알아서 해주니 크게 걱정하실 건 없고, 부녀회장님께서는 음식준비만 잘 챙겨주시면 됩니다.”
“알았어요. 이것도 그냥 한번 읽어보면 되는 거죠?”
“예! 꼼꼼하게 읽어보세요.”
부녀회장을 헤어져 청녀회장을 찾아가 같은 내용을 전해준 다음 일본댁을 찾았다. 주남주도가의 막걸리를 선물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구씨아저씨도 함께 계셨다.
“이장님 오셨어요.”
“예! 다름 아니라 막걸리 주문 좀 하려고 왔습니다.”
“혹시 저번에 회의에서 말씀하신 외빈선물용 막걸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한~~ 100병정도 준비하면 될 것 같은데, 가능하시겠어요?”
“준비하는데 문제는 없어요. 다만 그걸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 난감해서...........그냥 PT병으로 드리긴 좀 그렇잖아요.”
“쇼핑백을 사와야겠죠. 또 ‘창립총회기념’ 스티커도 붙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쇼핑백 100개를 어디서 구하죠.”
“오늘 제가 읍내에 나갈 일이 있으니 문구점에 미리 주문하겠습니다. 그리고 스티커도 제가 미리 준비해서 내일 쇼핑백과 함께 드리겠습니다.”
“또 이장님께 수고만 끼쳐드리는 것아 죄송하네요.”
“별 말씀을 다하세요. 포장 예쁘게 해서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막걸리 값은 법인에 청구하세요. 세금영수증으로 끊어주시면 됩니다.”
“아니 뭘 그런 걸........그냥 드릴게요.”
“그럴 순 없죠. 계산은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이번 행사비용은 지원금에서 나가는 겁니다. 저도 쇼핑백 구입비나 스티커 제작비 모두 청구할 예정이니까 부담 없이 청구하세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이장님 말씀대로 하죠.”
구씨아저씨 부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니 11시가 넘었다. 펜션에 돌아가 차를 끌고 하우스로 향했다.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우나댁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왜 또 왔어?”
“저랑 함께 갈 때가 있어요.”
“어디?”
“경찰서........태봉형님 실종신고 해야죠.”
“지금?”
“그럼요. 마침 읍내에 갈일도 있으니 함께 나가요.”
“알았어. 잠깐만!”
우나댁은 한쪽 구석이 두었던 가방에서 보기에도 촌스러운 꽃무늬 몸빼바지와 티를 꺼내 탱크탑과 반바지 위에 겹쳐 입었다. 하우스 일을 하면서 군살이 빠지고 근육이 발달하여 건강하고 날씬가 다리와 풍성하면서도 탈력 넘치는 상체를 보기에도 이상한 옷들이 가려버리니 촌스러운 시골아낙이 되었다.
“됐어. 가자.”
우나댁을 차에 태워 출발하니 길이 험해서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다. 구불구불한 농로를 빠져나와 차가 안정이 되고 우나댁도 손잡이를 놓고 다소곳하게 앉는다. 읍내에 도착하여 양장점이라는 옛날 간판을 달고 있는 옷가게 앞에 차를 주차했다.
“내려요.”
“여긴 어디야?”
우나댁이 주변을 둘려보다가 차에서 내렸고, 손을 붙잡고 가계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주인이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옷 좀 사려고요. 입기편한 세미정장으로 한 벌 추천해 주세요.”
“이분이 입으실 거죠. 어디 보자. 이게 좋겠네요.”
주인은 한쪽에 진열된 옷을 가져와 내미니, 우나댁은 황당하다는 듯이 손을 흔든다.
“나 아니야. 저기 줘~”
“우나댁 주려고 사는 겁니다. 마음에 드시는 것으로 골라보세요.”
“싫어. 내가 왜?”
“함께 다니기 창피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저를 보아서라도 잔말 말고 골라요.”
창피하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일까? 우나댁이 토라진 표정으로 째려보더니 밖으로 나가려한다. 얼른 얼른 손을 잡았다.
“말이 심했나! 미안해요. 그 차림으로 경찰서 가긴 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한 벌 사요.”
“돈 없어.”
“제가 사주는 겁니다. 아주머니 그 옷 좋네요. 이래 주시고, 옷은 어디서 갈아입죠.”
“저기로 가시면 돼요.”
“아~~ 저기 있었네. 자~ 우나댁! 빨리 입어보세요. 어서요.”
우나댁에게 옷을 전해주고 반강제로 탈의실에 집어넣고 문을 닫는다. 잠시 후에 우나댁 옷을 알아 입고 나왔다. 투피스 새미정장인데 색깔이나 다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옷은 없어요. 좀 얌전하고 품위 있는 옷이 좋겠는데.”
“잠깐만 기다리세요.”
주인이 3벌의 옷을 가지고 왔다. 물방울무늬 원피스와 투피스 바지정장, 그리고 가죽재질의 짧은 투피스 치마정장이다.
“이게 좋네. 여기 상의에 어울리는 티나 블라우스도 추천해 주세요.”
“이거 어떠세요. 피부가 워낙 고우시니 이것도 잘 받을 것 같아요. 아니면 이거, 몸매가 좋으시니 이렇게 달라붙은 티도 좋을 것 같아요.”
“음~ 이게 좋네. 코트도 있죠.”
“아~ 코트요. 저기 마네킹 입고 있는 코드 어떠세요. 이 투피스하고 같은 회사에서 나온 건데, 맞춤으로 나온 옷이거든요.”
“좋아요. 일단 그것도 준비해 주세요.”
우나댁에게 티와 정장을 주고, 다시 탈의실로 보냈다.
“팬티, 브래지어, 스타킹도 있겠죠.”
“아 그럼요. 여기 있어요. 이거 어때요. 좀 화려하긴 해도 몸매가 좋으시니 잘 소화하실 것 같은데?”
“좋네요. 사이즈에 맞는 것으로 준비해 주시고, 혹시 근처에 양화점도 있나요.”
“여기 골목길로 올라가시면 있어요. 제가 소개시켜 드렸다고 하면 싸게 해 드릴 겁니다.”
“그래요. 잘 됐네요.”
우나댁이 나왔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모양이다.
“좋네..........속옷하고 스타킹도 주세요.”
“여기 있어요.”
눈치 빠른 주인이 얼른 물건을 가져다주고, 우나댁에게 물건들을 전해 주었다.
“들어가서 이걸로 갈아입고 나오세요.”
“꼭 입어야 돼.”
“아이 시간 없어요. 빨리요.”
우나댁이 마지못해 다시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다시 나온다.
“음~ 좋네. 아주머니 코트도 주세요.”
“여기 있어요.”
코트를 받아 입혀보니 마치 우나댁을 위해 나온 옷처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주인이 우나댁을 데리고 전신겨울 앞으로 데려가 보여주니, 우나댁도 좌우로 돌아보며 빙긋이 웃는다. 겉으로는 싫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어때요. 예쁘죠. 이렇게 잘 어울리는 손님은 첨이에요. 정말 예쁘세요.”
“아주머니! 전체가 얼마죠.”
“이게 다 사시계요. 그럼 가격표 때고 계산해 드려요.”
“그렇게 하세요. 대신 서비스는 좀 주셔야 합니다.”
“아유~ 당연하죠. 제가 블라우스 한 벌하고 양발을 서비스 해 드릴게요.”
“양발은 대신, 스타킹이나 더 주세요.”
“알겠습니다.”
주인이 얼른 옷에 붙은 가격표를 때서 가져온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려 계산하려는 모양이다. 쇼핑백을 받아 우나댁이 입고 왔던 옷을 담아 계산을 끝내고 양화점으로 향했다. 다 좋은데 신발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양화점에 도착해 급이 높지 않은 구두를 구입해 신겨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제야 마음에 드네. 우나댁은 어때요.”
우나댁은 겨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손가락으로 머리까락을 쓸어 넘긴다. 은갈색 윤기 흐르는 머리까락이 어깨에 차랑거린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 살짝 튀어나온 이마를 지나 은갈색의 눈썹이 초승달처럼 휘어지고 그 아래 파란호수 같은 눈동자 반짝거린다. 살짝 솟구친 오뚝한 콧날 밑에 연분홍색의 입술, 그리고 빙긋 미소 지을 때마다 살포시 드려나는 보조개가 섹시한 몸매와 어울리지 않게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다.
갈색과 은색가죽으로 멋을 낸 구두를 따라 올라가면 커피색 스타킹에 감추어진 건강하고 날씬가 다리가 보이고, 양쪽허벅지 부근에서 갈라진 타이트한 갈색 가죽치마가 무릎 위까지 살짝 가리고 있다. 몸에 달라붙은 티 때문에 지룩한 허리와 풍만한 젖가슴이 한눈에 들어오고, 갈색가죽 자켓에 검은색의 반질거리는 재질의 코트로 코디를 완성했다.
“배고프지 않아요. 우리 밥부터 먹으러 가요.”
“도시락 있어.”
“그건 집에 가서 드시고, 오늘은 저랑 함께 식당으로 가요.”
우나댁 함께 식당을 찾아본다. 읍내라고는 하지만 시골이라 분위기 있는 음식점을 찾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나마 최근에 관광객이 늘어나 토속음식점과 술집들은 제법 있다. 식당들을 찾다가 제법 괜찮게 보이는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올라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나물들과 살짝 양념한 다진 고기와 숯불에 구운 고기들 그리고 전들이 푸짐하게 나왔다.
“배고프죠. 많이 드세요.”
“응~ 잘 먹을게. 자~ 이게 먹어.”
우나댁이 고기를 집어 앞 접시에 올려준다.
“제가 알아서 먹어요. 우나댁이나 많이 드세요.”
“알았어.”
흘려 내리는 머리까락을 한쪽으로 넘기고, 조심스럽게 음식을 먹는 우나댁을 보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측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진다. 보통 서양 여자들은 삼십이 넘어가면 급격하게 노화가 오는 법인데, 우나댁은 삼십이 넘고 꾸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다. 어쩌면 그녀의 외모보다 다른 이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알기에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우나댁 이름이 뭐예요?”
“이름?”
“예! 만나지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 이름도 모르고 있어서요.”
“로지아 정!”
“뒤에 붙은 것은 태봉이 형님 성 같고.........이름이 로지아라는 말이죠.”
“응~”
“듣기로 우즈베키스탄은 다민족 국가라고 하던데, 로지아씨는 어느 민족이에요.”
우나댁은 고개를 들어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인다.
“혼혈! 아버지가 러시아 쪽이야.”
“러시아! 그래서 그렇구나. 어때요. 음식들은 맛있어요?”
“응! 맛있어. 이장도 먹어.”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점심식사가 끝나자 우나댁과 함께 문구점으로 향했다. 구씨아저씨에게 이야기했던 쇼핑백과 라벨지를 구입하기 위해서다. 문구점 주인에게 쇼핑백과 포장지 등을 주문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읍내에 파출소는 있으나 경찰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나댁과 함께 건물로 향하는데, 길가는 남자 놈들이 우나댁을 힐끔힐끔 훔쳐본다. 이런 촌구석에선 찾아보긴 힘든 이기적인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에 다들 눈을 땔 수 없는 모양이다. 경찰서에 들어가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경찰서 민원계 놈도 서류보다는 우나댁을 훔쳐보기 바쁘다. 보다 못해 우나댁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섰다.
“집을 나가서 소식이 끊어진지 벌써 2주가 다 되어 갑니다.”
“아~ 그래요. 어디 보자. 정태봉? 남편분이 실종이네요. 아니~! 같이 오신 분이 남편 아닌가요?”
“아닙니다. 저는 같은 마을 이장입니다.”
“아~ 그렇군요. 어디로 가신다는 말씀은 없었습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나가서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서울이다. 전주다. 이렇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걸 모르니 답답해서 경찰서를 찾아온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일단 접수해서 각 경찰서 및 파출소에 알아보고 찾으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꼭 찾아주세요. 어머니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종신고를 마치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이제 필요한 절차는 모두 밟았다. 우나댁은 길게 한숨을 쉬고 차에 오른다. 태봉은 어딜 갔을까? 그는 왜 밖으로 돌까? 주차장을 빠져나와 외곽도로로 접어들었다.
“답답하죠. 우리 드라이브나 갈까요?”
“응! 그래!”
건성으로 대답하고 창밖을 바라본다. 우수에 젖은 우나댁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차는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로 향한다. 마음 같아서는 바다라도 보고 싶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구불구불 연결된 산길을 지나 지리산 노고단에 도착했다. 주중이란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차를 주차하고, 안개가 자욱한 전망대로 향한다. 우나댁은 어깨를 펴고 크게 숨을 쉬고 다음 발밑에 펼쳐진 정경을 바라본다.
“좋다. 여기가 어디야.”
“노고단.........지리산에서 차로 올라올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죠.”
“이런 곳이 있었구나! 상쾌하다.”
결혼하고 5년 넘게 우리나라에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마을 옆에 있는 이곳도 처음인 모양이다. 난간에 매달려 밑을 바라보던 우나댁이 펄쩍 뛰어내리다 비틀거린다.
“괜찮아요?”
“아~ 아파.........신발. 불편해.”
평소에 신던 신발이 아니라서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어린아이 같은 우나댁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같은 여자인데,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심성(心性)을 가진 여인이 있는가 하면, 세속에 찌들다 못해 추잡하고 혐오스러운 여인이도 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었는데,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안 돼. 피지 마.”
우나댁이 손가락으로 ‘금연’이라는 푯말을 가르치며, 휴지통에 담배를 버린다.
“쩝~ 여기도 국립공원이었지. 휴게소라도 없나.”
“담배! 금지야!”
“아~ 알았어요. 안 피우면 되잖아요.”
“우리 걷자.”
우나댁이 팔짱을 끼고 길을 걷는다. 상쾌한 공기와 함께 은은한 육향이 풍긴다. 약간은 느끼하고, 약간은 향기롭고, 약간은 자극적인 복잡 미묘한 느낌이다. 우나댁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을 돌아보면 신나게 걷는다.
“힘들다. 우리 그만 갈까요?”
“싫어. 더 있다 가자.”
“아쉬워서 그래요. 또 오면 되잖아요.”
“또?.........언제?”
“우나댁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모시고 올게요. 그럼 되겠어요?”
“약속해.”
“알았어요.”
우나댁의 손을 잡아 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고 손바닥을 펴서 복사를 했다. 이제 우나댁도 이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한 모양인지 ‘풋’하고 웃는다. 그녀와 함께 다시 차에 올랐다. 시계를 보니 6시가 넘었다. 연변댁에게 전화해서 늦을 것 같으니 손님 잘 챙기고 퇴근(?)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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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쯤에 펜션에 도착했다. 잠을 설쳐 피곤하지만 할 일이 많아 대충 샤워를 마치고 창립총회를 어떻게 할 것인지 구상했다. 2시경에 이벤트 회사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펜션 위치를 알려주고 기다리니 30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조금 전에 전화 드린 청남기획 김00입니다. 지금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어디로 가면 됩니까?”
“거기 언덕으로 올라오는 오솔길 보이죠. 그 길로 올라오세요. 제가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30대 초반의 남자가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이장님 되시죠. 청남기획 김00대리입니다.”
“찾아오시는데 힘들지나 알았는지 모르겠네요.”
“홈페이지에 있는 안내지도가 워낙 상세해서 쉽게 찾아왔습니다.”
“다행이네요. 드시죠.”
김대리를 거실로 안내했고, 자리에 착석하자 연변댁이 차를 가져왔다.
“연변댁 고마워요. 자~ 드시죠.”
“감사합니다. 차비서님을 통해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창립총회를 하신다구요.”
“예! 그냥 조촐하게 끝내려고 했는데, 도지사님까지 오신다니까 신경이 좀 쓰이네요.”
“참석자는 어느 정도나 예상하고 계십니까?”
“100명 정도 될 것 같아요.”
“100명이라.........혹시 행사진행에 대해서 계획하고 계신 거라도 있습니까?”
“인사말, 내빈소개, 경과보고, 축사, 다과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장소는 혹시 정해두셨습니까?”
“우리가 쓰기로 한 창고 앞에 넓은 공터가 있습니다. 거기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차비서님도 같은 말씀을 하셔서 저도 오기 전에 둘려보고 왔습니다.”
“잘 하셨네요.”
“혹시 축하공연 같은 것도 하시나요. 차비서님은 좀 했으면 하던데?”
“무슨 공연이요?”
“대부분 참석자가 어르신들이니 트로트 가수 한명 부르면 되지 않을까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섭외가 가능합니까?”
“유명한 분은 불가능하지만 우리 도에서 제법 알려진 분들은 가능합니다.”
“듣다보니 차비서님과 대부분 이야기를 끝난 것 같은데, 차비서님 의견대로 준비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신 음식과 선물은 우리 마을에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도 이장님께서 대표이사신데..........!!”
“바쁘신데 괜한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행사개요하고 계획서만 미리 주시고, 우리가 준비해야 될 사항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김대리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가방에서 계획서를 꺼냈다. 예상대로 차연선과 어제 만나서 모든 이야기를 끝나고 계획서까지 만들어 두었던 모양이다. 서류를 검토해 보니 무대설치에서 다과준비까지 전체적인 행사계획에서 도지사 및 군수의 단상위치, 움직이는 동선까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행사를 많이 해보셨나 보군요.”
“차비서님께서 많이 도와주시는 편입니다.”
“이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틀 후에 무대와 다과준비를 위한 자제들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기획사 김대리를 보내고 연선에게 전화해 결과를 알려주었다. 연선은 사전점검을 위해 목요일 오후에 방문하기로 했다. 급한 일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3시가 조금 넘었다. 행사가 삼일정도 남았으니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다. 우나댁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할머니는 깨어나셨을까? 궁금증이 몰려와 연변댁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우나댁에게 전화가 왔다.
“예! 접니다. 말씀하세요.”
“어머니 깨어났어.”
“잘 됐네. 상태는 어때요?”
“몰라. 그런데 어머니 가신데.”
“가시다니요? 퇴원하시겠다는 거예요?”
“응~ 의사는 안 돼 하는데, 자꾸 가신데.”
“제가 지금 거기로 가니까, 제가 갈 때까지 할머니 잘 모시고 계세요.”
차를 끌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부터 만나보았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환자분께서 자꾸 퇴원을 하시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환자분 상태는 어때요?”
“연세도 많으시고 너무 쇠약해진 상태라 종합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만일 그냥 퇴원하시면 큰일 날수도 있어요.”
“며칠이나 치료해야 하죠?”
“며칠이라고 단정하긴 힘들어요. 환자분 상태를 지켜보면서 체크할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를 받으면 좋아지긴 하는 겁니까?”
“방치하는 것보다는 낮겠죠.”
“일단 알았습니다. 제가 환자분을 만나 뵙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사와 면담이 끝나고 병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머니는 이미 입원 당시 입고 계시던 옷으로 갈아입고 계셨다. 초초한 얼굴로 할머니를 지켜보던 우나댁이 달려온다.
“이장! 왔어? 어머니 말려줘~”
“알았어요. 제가 이야기 해볼게요.”
우나댁과 함께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는 침침한 눈으로 얼굴을 확인하시더니 반갑게 인사한다.
“아이고! 우리 이장님 왔소.”
“예! 할머니! 몸은 좀 괜찮으세요.”
“멀쩡하지. 그런데 의사선상님들이 자꾸 못 가게 하네. 이장님이 집에 좀 보내주소.”
“병원이 답답하세요.”
“답답하지. 그리고 잠깐 정신 좀 잃은 것 같고 괜히 부산을 떨어서 우리 이장님만 고생시킨 것 같소.”
“답답하셔도 며칠만 참으세요. 이번에 치료받으시고 가셔야지, 그냥 가시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치료를 해야 얼마나 좋아지겠소. 그리고 삶만큼 산 늙은이라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나댁 생각해서라도 할머니께서 건강하셔야죠.”
할머니가 측은한 눈으로 우나댁을 바라본다.
“저 아기만 보면 가슴이 메어져. 우리가 새아기 한터 못할 짓 많이 했소. 그래서 더 가야 스겠소.”
“혹시 입원비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돈도 돈이지만 새아기 더 고생시키고 싶지 않소. 또 나는 이런 답답한 곳이 싫소.”
“할머니!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조금만 더 있다가세요. 제가 부탁할게요.”
“싫소. 정~ 안보내주면 도망이라도 갈 테니 알아서 하라고 하소.”
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싫다는 분을 강제로 입원시키는 것도 못할 짓이다. 우나댁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장도 안 되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할 수 없죠. 집에 모시고 가서 잘 간호해 주세요.”
우나댁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녀도 방법이 없긴 마찬가지다. 병원에 사정 이야기를 하고 퇴원수속을 밟았다. 의사로부터 주의사항을 전해 듣고, 병원비를 계산한 다음 할머니와 우나댁을 차에 태워 마을로 돌아왔다. 우나댁 집에 도착하여 할머니를 방에 모셔다드리고 보니 어느덧 7시가 넘었다.
“할머니 병간호 잘 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고마워~ 조심해서 가.”
지금 심정 같아서는 우나댁 겉에 있어주고 싶지만 어제도 연변댁이 고생했기에 또 부탁하긴 미안하다. 펜션에 도착하여 연변댁을 보내고 찹찹한 마음에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려 확인해 보니 처제다.
“여보세요. 처제야?”
“예! 저에요. 형부!”
“별일 없지?”
서로가 마음이 무거우니 구체적으로 묻기도 곤란하다.
“예! 없어요. 저기 다른 건 아니고, 저번에 흥신소를 이용하셨다고 하셨잖아요.”
“응~ 그랬지.”
“혹시 거기 연락처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뭐하게?”
“저도 좀 알아볼게 있어요.”
“뭘 알아보겠다는 거야. 혹시 그놈 일이야?”
“형부는 모르셔도 돼요.”
“무슨 일인데 그래.”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처제! 혹시 위험한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거라면 먼저 나한테 이야기해 봐~”
“형부가 알려주시지 않겠다면 제가 직접 알아볼게요.”
대한민국에 흥신소가 하나둘이 아니다. 알아보려고 마음먹으면 인터넷만 검색해도 줄줄이 뜰 것이다. 일단 처제에게 다짐을 받아야 한다.
“한 가지만 약속해. 절대 위험한 짓은 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았어요. 형부가 걱정하시는 그런 짓은 안 해요.”
“그래. 알았어.”
처제에게 흥신소 연락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흥신소에 전화를 했다.
“흥신소입니다.”
“저번에 남경미 조사를 의뢰했던 사람입니다.”
“남경미? 아~~ 예~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제가 남경서라는 분에게 흥신소를 소개시켜 드렸어요.”
“그래요. 소개까지 해 주시고.......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남경서라는 분에게 혹시라도 의뢰가 들어오면 그게 무슨 내용인지 알려주신 수 있겠습니까?”
“이거 참~~ 그건 좀 곤란합니다. 고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우리는 고객의 비밀을 철저히 보호해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것은 아니고, 어떤 일을 의뢰한 건지 대략적인 것만 알면 됩니다. 예를 들자면 의뢰인이 위험한 일이다. 아니면 위험은 없을 것 같다. 그 정도만이라도 알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단골이시고 또 소개까지 해 주셨는데, 그 정도 알려드리는 거라면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나중에 섭섭지 않게 보답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전화를 끊고도 마음이 찝찝하다. 처제는 대체 무엇을 의뢰하려고 흥신소를 찾은 것일까? 처제도 어린아이가 아니니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믿는다. 청년회장과 부녀회장에게 전해 줄 정관과 창립총회 행사계획서를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연변댁이 준비해준 아침을 먹고 하우스로 향했다. 우나댁이 할머니 병간호 때문에 하우스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우스에 도착하니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우나댁이 평소 차림으로 일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떻게 하고 나오셨어요?”
“가라고 해서.”
“할머니는 괜찮으세요.”
“응~ 평소랑 같아?”
“식사는요? 약은 드셨어요?”
“응~ 잘 먹고, 약도 드셨어.”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많이 외로우신 것 같아요. 더구나 태봉형님도 연락두절이라 더욱 그러신 것 같으니 우나댁이 각별히 신경 좀 쓰세요.”
“알아. 근데 난 도움이 안 돼!”
“그건 또 무슨 말씀이죠. 우나댁이 도움이 안 된다니?”
“나보면 자꾸 한숨만 쉬어. 그리고 가래.”
“가라니, 어딜 가라는 말씀 이죠?”
“답답하니까 나가래. 그래서 여기 왔어.”
할머니께서 우나댁을 보면 미안하신 모양이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우나댁과 결혼한 태봉이는 1년도 지나지 않아 다른 여자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그나마 있는 재산까지 모두 까먹고 집안에는 생활비 한 푼 가져다 준적이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 결혼 이후 우나댁이 돈을 벌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신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태봉이까지 집을 나가 연락두절이니 우나댁 볼 낮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우나댁에게 많이 미안하신 모양입니다. 그럴수록 더 잘 보살펴주세요.”
“응~ 알았어! 그만 일하자.”
우나댁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일이 버섯들의 발육상태를 확인한다. 하루하루 버섯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우나댁을 뒤로하고, 펜션에 들려 미리 준비한 법인 정관과 창립총회 행사계획서를 챙겨 부녀회장을 먼저 찾았다.
“이게 정관입니다. 법인의 설립목적, 운영, 예산, 인사, 회계, 이익배분 등 민감한 사항들도 많으니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다음 회의에서 의견을 주세요.”
“다음 회의는 언제 해요?”
“창립총회행사 끝나면 한 10분 정도 할 겁니다.”
“행사를 끝나면 정신이 없을 건데, 꼭 그때 해야 하나요?”
“법인설립을 하려면 총회회의록이 반드시 첨부되어야 합니다.”
“하여튼 알았어요. 근데 이건 또 뭐예요?”
“창립총회 행사계획입니다. 대부분은 이벤트회사에서 알아서 해주니 크게 걱정하실 건 없고, 부녀회장님께서는 음식준비만 잘 챙겨주시면 됩니다.”
“알았어요. 이것도 그냥 한번 읽어보면 되는 거죠?”
“예! 꼼꼼하게 읽어보세요.”
부녀회장을 헤어져 청녀회장을 찾아가 같은 내용을 전해준 다음 일본댁을 찾았다. 주남주도가의 막걸리를 선물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구씨아저씨도 함께 계셨다.
“이장님 오셨어요.”
“예! 다름 아니라 막걸리 주문 좀 하려고 왔습니다.”
“혹시 저번에 회의에서 말씀하신 외빈선물용 막걸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한~~ 100병정도 준비하면 될 것 같은데, 가능하시겠어요?”
“준비하는데 문제는 없어요. 다만 그걸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 난감해서...........그냥 PT병으로 드리긴 좀 그렇잖아요.”
“쇼핑백을 사와야겠죠. 또 ‘창립총회기념’ 스티커도 붙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쇼핑백 100개를 어디서 구하죠.”
“오늘 제가 읍내에 나갈 일이 있으니 문구점에 미리 주문하겠습니다. 그리고 스티커도 제가 미리 준비해서 내일 쇼핑백과 함께 드리겠습니다.”
“또 이장님께 수고만 끼쳐드리는 것아 죄송하네요.”
“별 말씀을 다하세요. 포장 예쁘게 해서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막걸리 값은 법인에 청구하세요. 세금영수증으로 끊어주시면 됩니다.”
“아니 뭘 그런 걸........그냥 드릴게요.”
“그럴 순 없죠. 계산은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이번 행사비용은 지원금에서 나가는 겁니다. 저도 쇼핑백 구입비나 스티커 제작비 모두 청구할 예정이니까 부담 없이 청구하세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이장님 말씀대로 하죠.”
구씨아저씨 부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니 11시가 넘었다. 펜션에 돌아가 차를 끌고 하우스로 향했다.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우나댁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왜 또 왔어?”
“저랑 함께 갈 때가 있어요.”
“어디?”
“경찰서........태봉형님 실종신고 해야죠.”
“지금?”
“그럼요. 마침 읍내에 갈일도 있으니 함께 나가요.”
“알았어. 잠깐만!”
우나댁은 한쪽 구석이 두었던 가방에서 보기에도 촌스러운 꽃무늬 몸빼바지와 티를 꺼내 탱크탑과 반바지 위에 겹쳐 입었다. 하우스 일을 하면서 군살이 빠지고 근육이 발달하여 건강하고 날씬가 다리와 풍성하면서도 탈력 넘치는 상체를 보기에도 이상한 옷들이 가려버리니 촌스러운 시골아낙이 되었다.
“됐어. 가자.”
우나댁을 차에 태워 출발하니 길이 험해서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다. 구불구불한 농로를 빠져나와 차가 안정이 되고 우나댁도 손잡이를 놓고 다소곳하게 앉는다. 읍내에 도착하여 양장점이라는 옛날 간판을 달고 있는 옷가게 앞에 차를 주차했다.
“내려요.”
“여긴 어디야?”
우나댁이 주변을 둘려보다가 차에서 내렸고, 손을 붙잡고 가계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주인이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옷 좀 사려고요. 입기편한 세미정장으로 한 벌 추천해 주세요.”
“이분이 입으실 거죠. 어디 보자. 이게 좋겠네요.”
주인은 한쪽에 진열된 옷을 가져와 내미니, 우나댁은 황당하다는 듯이 손을 흔든다.
“나 아니야. 저기 줘~”
“우나댁 주려고 사는 겁니다. 마음에 드시는 것으로 골라보세요.”
“싫어. 내가 왜?”
“함께 다니기 창피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저를 보아서라도 잔말 말고 골라요.”
창피하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일까? 우나댁이 토라진 표정으로 째려보더니 밖으로 나가려한다. 얼른 얼른 손을 잡았다.
“말이 심했나! 미안해요. 그 차림으로 경찰서 가긴 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한 벌 사요.”
“돈 없어.”
“제가 사주는 겁니다. 아주머니 그 옷 좋네요. 이래 주시고, 옷은 어디서 갈아입죠.”
“저기로 가시면 돼요.”
“아~~ 저기 있었네. 자~ 우나댁! 빨리 입어보세요. 어서요.”
우나댁에게 옷을 전해주고 반강제로 탈의실에 집어넣고 문을 닫는다. 잠시 후에 우나댁 옷을 알아 입고 나왔다. 투피스 새미정장인데 색깔이나 다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옷은 없어요. 좀 얌전하고 품위 있는 옷이 좋겠는데.”
“잠깐만 기다리세요.”
주인이 3벌의 옷을 가지고 왔다. 물방울무늬 원피스와 투피스 바지정장, 그리고 가죽재질의 짧은 투피스 치마정장이다.
“이게 좋네. 여기 상의에 어울리는 티나 블라우스도 추천해 주세요.”
“이거 어떠세요. 피부가 워낙 고우시니 이것도 잘 받을 것 같아요. 아니면 이거, 몸매가 좋으시니 이렇게 달라붙은 티도 좋을 것 같아요.”
“음~ 이게 좋네. 코트도 있죠.”
“아~ 코트요. 저기 마네킹 입고 있는 코드 어떠세요. 이 투피스하고 같은 회사에서 나온 건데, 맞춤으로 나온 옷이거든요.”
“좋아요. 일단 그것도 준비해 주세요.”
우나댁에게 티와 정장을 주고, 다시 탈의실로 보냈다.
“팬티, 브래지어, 스타킹도 있겠죠.”
“아 그럼요. 여기 있어요. 이거 어때요. 좀 화려하긴 해도 몸매가 좋으시니 잘 소화하실 것 같은데?”
“좋네요. 사이즈에 맞는 것으로 준비해 주시고, 혹시 근처에 양화점도 있나요.”
“여기 골목길로 올라가시면 있어요. 제가 소개시켜 드렸다고 하면 싸게 해 드릴 겁니다.”
“그래요. 잘 됐네요.”
우나댁이 나왔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모양이다.
“좋네..........속옷하고 스타킹도 주세요.”
“여기 있어요.”
눈치 빠른 주인이 얼른 물건을 가져다주고, 우나댁에게 물건들을 전해 주었다.
“들어가서 이걸로 갈아입고 나오세요.”
“꼭 입어야 돼.”
“아이 시간 없어요. 빨리요.”
우나댁이 마지못해 다시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다시 나온다.
“음~ 좋네. 아주머니 코트도 주세요.”
“여기 있어요.”
코트를 받아 입혀보니 마치 우나댁을 위해 나온 옷처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주인이 우나댁을 데리고 전신겨울 앞으로 데려가 보여주니, 우나댁도 좌우로 돌아보며 빙긋이 웃는다. 겉으로는 싫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어때요. 예쁘죠. 이렇게 잘 어울리는 손님은 첨이에요. 정말 예쁘세요.”
“아주머니! 전체가 얼마죠.”
“이게 다 사시계요. 그럼 가격표 때고 계산해 드려요.”
“그렇게 하세요. 대신 서비스는 좀 주셔야 합니다.”
“아유~ 당연하죠. 제가 블라우스 한 벌하고 양발을 서비스 해 드릴게요.”
“양발은 대신, 스타킹이나 더 주세요.”
“알겠습니다.”
주인이 얼른 옷에 붙은 가격표를 때서 가져온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려 계산하려는 모양이다. 쇼핑백을 받아 우나댁이 입고 왔던 옷을 담아 계산을 끝내고 양화점으로 향했다. 다 좋은데 신발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양화점에 도착해 급이 높지 않은 구두를 구입해 신겨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제야 마음에 드네. 우나댁은 어때요.”
우나댁은 겨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손가락으로 머리까락을 쓸어 넘긴다. 은갈색 윤기 흐르는 머리까락이 어깨에 차랑거린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 살짝 튀어나온 이마를 지나 은갈색의 눈썹이 초승달처럼 휘어지고 그 아래 파란호수 같은 눈동자 반짝거린다. 살짝 솟구친 오뚝한 콧날 밑에 연분홍색의 입술, 그리고 빙긋 미소 지을 때마다 살포시 드려나는 보조개가 섹시한 몸매와 어울리지 않게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다.
갈색과 은색가죽으로 멋을 낸 구두를 따라 올라가면 커피색 스타킹에 감추어진 건강하고 날씬가 다리가 보이고, 양쪽허벅지 부근에서 갈라진 타이트한 갈색 가죽치마가 무릎 위까지 살짝 가리고 있다. 몸에 달라붙은 티 때문에 지룩한 허리와 풍만한 젖가슴이 한눈에 들어오고, 갈색가죽 자켓에 검은색의 반질거리는 재질의 코트로 코디를 완성했다.
“배고프지 않아요. 우리 밥부터 먹으러 가요.”
“도시락 있어.”
“그건 집에 가서 드시고, 오늘은 저랑 함께 식당으로 가요.”
우나댁 함께 식당을 찾아본다. 읍내라고는 하지만 시골이라 분위기 있는 음식점을 찾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나마 최근에 관광객이 늘어나 토속음식점과 술집들은 제법 있다. 식당들을 찾다가 제법 괜찮게 보이는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올라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나물들과 살짝 양념한 다진 고기와 숯불에 구운 고기들 그리고 전들이 푸짐하게 나왔다.
“배고프죠. 많이 드세요.”
“응~ 잘 먹을게. 자~ 이게 먹어.”
우나댁이 고기를 집어 앞 접시에 올려준다.
“제가 알아서 먹어요. 우나댁이나 많이 드세요.”
“알았어.”
흘려 내리는 머리까락을 한쪽으로 넘기고, 조심스럽게 음식을 먹는 우나댁을 보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측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진다. 보통 서양 여자들은 삼십이 넘어가면 급격하게 노화가 오는 법인데, 우나댁은 삼십이 넘고 꾸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다. 어쩌면 그녀의 외모보다 다른 이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알기에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우나댁 이름이 뭐예요?”
“이름?”
“예! 만나지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 이름도 모르고 있어서요.”
“로지아 정!”
“뒤에 붙은 것은 태봉이 형님 성 같고.........이름이 로지아라는 말이죠.”
“응~”
“듣기로 우즈베키스탄은 다민족 국가라고 하던데, 로지아씨는 어느 민족이에요.”
우나댁은 고개를 들어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인다.
“혼혈! 아버지가 러시아 쪽이야.”
“러시아! 그래서 그렇구나. 어때요. 음식들은 맛있어요?”
“응! 맛있어. 이장도 먹어.”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점심식사가 끝나자 우나댁과 함께 문구점으로 향했다. 구씨아저씨에게 이야기했던 쇼핑백과 라벨지를 구입하기 위해서다. 문구점 주인에게 쇼핑백과 포장지 등을 주문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읍내에 파출소는 있으나 경찰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나댁과 함께 건물로 향하는데, 길가는 남자 놈들이 우나댁을 힐끔힐끔 훔쳐본다. 이런 촌구석에선 찾아보긴 힘든 이기적인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에 다들 눈을 땔 수 없는 모양이다. 경찰서에 들어가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경찰서 민원계 놈도 서류보다는 우나댁을 훔쳐보기 바쁘다. 보다 못해 우나댁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섰다.
“집을 나가서 소식이 끊어진지 벌써 2주가 다 되어 갑니다.”
“아~ 그래요. 어디 보자. 정태봉? 남편분이 실종이네요. 아니~! 같이 오신 분이 남편 아닌가요?”
“아닙니다. 저는 같은 마을 이장입니다.”
“아~ 그렇군요. 어디로 가신다는 말씀은 없었습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나가서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서울이다. 전주다. 이렇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걸 모르니 답답해서 경찰서를 찾아온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일단 접수해서 각 경찰서 및 파출소에 알아보고 찾으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꼭 찾아주세요. 어머니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종신고를 마치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이제 필요한 절차는 모두 밟았다. 우나댁은 길게 한숨을 쉬고 차에 오른다. 태봉은 어딜 갔을까? 그는 왜 밖으로 돌까? 주차장을 빠져나와 외곽도로로 접어들었다.
“답답하죠. 우리 드라이브나 갈까요?”
“응! 그래!”
건성으로 대답하고 창밖을 바라본다. 우수에 젖은 우나댁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차는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로 향한다. 마음 같아서는 바다라도 보고 싶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구불구불 연결된 산길을 지나 지리산 노고단에 도착했다. 주중이란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차를 주차하고, 안개가 자욱한 전망대로 향한다. 우나댁은 어깨를 펴고 크게 숨을 쉬고 다음 발밑에 펼쳐진 정경을 바라본다.
“좋다. 여기가 어디야.”
“노고단.........지리산에서 차로 올라올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죠.”
“이런 곳이 있었구나! 상쾌하다.”
결혼하고 5년 넘게 우리나라에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마을 옆에 있는 이곳도 처음인 모양이다. 난간에 매달려 밑을 바라보던 우나댁이 펄쩍 뛰어내리다 비틀거린다.
“괜찮아요?”
“아~ 아파.........신발. 불편해.”
평소에 신던 신발이 아니라서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어린아이 같은 우나댁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같은 여자인데,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심성(心性)을 가진 여인이 있는가 하면, 세속에 찌들다 못해 추잡하고 혐오스러운 여인이도 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었는데,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안 돼. 피지 마.”
우나댁이 손가락으로 ‘금연’이라는 푯말을 가르치며, 휴지통에 담배를 버린다.
“쩝~ 여기도 국립공원이었지. 휴게소라도 없나.”
“담배! 금지야!”
“아~ 알았어요. 안 피우면 되잖아요.”
“우리 걷자.”
우나댁이 팔짱을 끼고 길을 걷는다. 상쾌한 공기와 함께 은은한 육향이 풍긴다. 약간은 느끼하고, 약간은 향기롭고, 약간은 자극적인 복잡 미묘한 느낌이다. 우나댁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을 돌아보면 신나게 걷는다.
“힘들다. 우리 그만 갈까요?”
“싫어. 더 있다 가자.”
“아쉬워서 그래요. 또 오면 되잖아요.”
“또?.........언제?”
“우나댁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모시고 올게요. 그럼 되겠어요?”
“약속해.”
“알았어요.”
우나댁의 손을 잡아 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고 손바닥을 펴서 복사를 했다. 이제 우나댁도 이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한 모양인지 ‘풋’하고 웃는다. 그녀와 함께 다시 차에 올랐다. 시계를 보니 6시가 넘었다. 연변댁에게 전화해서 늦을 것 같으니 손님 잘 챙기고 퇴근(?)하라고 했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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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가는게 우나댁하고 잘될것 같은데...내가 잘못 짚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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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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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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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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